[글틴 동창회 설문조사 리포트] 십 년 동안의 선물
- 작성일 2015-11-15
- 댓글수 0
[ 글틴 동창회 설문조사 리포트 ]
십 년 동안의 선물
― 글틴 10주년 동창회 : 모여라, 파티하자!
옛살라비 스토킹 설문 결과
전명환(문학특!기자단 3기)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이제 질린다. 이 시간을 어떻게 쉽게 설명할까?
우리에겐 문학이 있다. 2005년 7월 11일,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300번째 『쨍한 사랑 노래』 (이광호, 박혜경 저)가 나왔는데 지금은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472번째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임승유 저)가 나왔다. 172권의 시집이 쓰일 시간이 흐른 것이다.
최근 글틴 캠프에 자주 방문한 황인찬 시인을 아는가? 최근 황인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가 발매되어 연일 화두에 오르고 있다. 2005년이면 황인찬 시인이 대학에도 들어가지 않았을 때다. 2005년에서 5년이 더 지나야 황인찬 시인은 등단을 한다. 그 당시 중ㆍ고등학생이었던 옛살라비부터 지금 이 시대 십대로 살아가는 글티너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글틴 10주년 동창회 ‘모여라, 파티하자!’ 직전, 우리는 “옛살라비 스토킹 설문”을 배포했다.
글틴에 관한 최고의 분석이 될 이 설문조사 내용이 궁금하지 않은가?
| 설문지 전문은 다음을 참고하라 |
다음은 주요 설문 문항에 대한 해석이다.
1. 글틴 유입 시기와 현재의 나이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다양했다. (옛살라비 위주기 때문에 2014년 이후 유입은 거의 없다.) 당연히 응답자 중 최고령자는 10년 전에 (겨울방학 기준) 고3이었기 때문에 30세였고, 제일 적은 나이는 16세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입 시기가 2010년인 걸로 보아 이 분은 문항을 잘못 이해한 듯하다.)
9월 6일 열린 실제 행사에서도 참가자들 나이는 20대 후반과 초반이 가장 많았다. 그러면 20대 중반대 사람들은 설문에서도 행사장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졸업 시즌과 취업 준비, 혹은 군대 등의 이유로 동창회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2. 글틴 활동 당시 주로 활동 무대로 삼았던 게시판은?
1위는 39.2%의 시 게시판, 2위는 33.3%의 이야기글 게시판으로 나타났다. 이 문항은 특정 게시판 이용자가 글틴 활동에 ‘더 열성적이다!’라는 결론보다는, 원래 시와 이야기글 게시판 인원이 많았기 때문에 골고루 이번 설문에 응답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눈여겨볼 점은, 그냥 눈팅(글을 쓰지 않고 게시물을 열람하기만 하는 것)만 한 비율이 3.9%라는 점이다. 글틴캠프를 오기 위해서는 게시판에서 주장원 이상의 상을 받아야 한다. 단, 게시판 선생님께 부탁드리거나 이벤트에 당첨될 때 참가 자격을 얻는데, 이는 게시판에 글을 남기지 않더라도 글틴에 애정을 갖고 있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겠다.
3. 글티너로서의 폐인도 측정을 위한 최근의 사이트 접속 빈도는?
과반수가 ‘아주 가끔’을 택했다. 졸업 후에는 잘 찾아오지 않는 모양이다. ‘완전 끊었음’의 응답도 19.2%로 높은 편이었다. 글틴 졸업생들이 졸업 이후에도 찾아올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트나, 커뮤니티적 요소를 구성하는 쪽을 제안해봐야 할 것이다.
4. 글틴 활동 당시 주장원 혹은 월장원을 수상한 적이 있나?
당연히 캠프 참가자 대부분은 수상 경력이 있을 것이다. 36.5%의 학생들이 주장원을, 40.4%의 학생들이 월장원을, 17.3%의 학생들이 연장원까지 받았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극소수, 이‘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작품 수준을 조절했다’는 ‘은둔고수’들의 응답도 엿보였다. 과연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누가 이렇게 응답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5. 아직도 문학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폐인처럼 살고 있나?
이 문항에 58%의 응답자가 ‘관심은 있지만 목메고 살지는 않는다’라고 답했다. 2위로 24%응답자가 ‘신춘문예나 신인상 투고를 몇 번 해본 적 있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8%가 ‘문학이 뭐니?’, 6%가 ‘등단이 확실시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소수가 ‘등단 직전까지 가봤다’고도 했다.
글티너들은 문학과 십대라는 키워드로 모였지만 졸업생이 되면서 현재는 각자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줄기차게 문학에만 집중하여 등단한 선배 작가도 있고, 때론 자신에게 맞는 다른 길을 찾아 여기저기서 본인의 역량을 펼쳐나가고 있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다들 문학에 관심을 아주 끄고 살지는 않기 때문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에세이 형식의 글을 모아 문집을 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학 창작을 위해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이 있다면?”에서 여전히 그들은 뭔가 쓰거나 읽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
6. 글틴을 빛낸 옛살라비 특별상을 시상한다면 누가 받을까?
다양한 인원이 나왔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가? 사람들 간의 친목을 잘 도모한 사람, 마피아 게임을 잘했던 사람, 촌극에서 엄청난 연극을 보여준 사람, 글틴 하면 빠질 수 없는 사람. 다양한 이유로 다음과 같은 분들이 옛살라비 특별상 시상 후보로 올랐다.
함준형, 장윤정, 박서련, 전삼혜, 이솔잎, 김동혁, 김효정, 꿈바라기(이명규), 전명환, ‘나’, 이이체, 양귀헌, 설동환, 황찬익, 김선우, 송근직, 김윤희, 정대훈, 김지우(영루), 민유하, 홍영준, 정재현, 배혜지.
특히 이 중 ‘전삼혜’ 님의 응답에서 ‘옛살라비의 대모’라는 의견이 나왔는데, 실제로 설문에서 언급된 사람 중 ‘모여라, 파티하자!’에도 참가한 몇 안 되는 글티너이다! 아마 이분께 특별상을 시상한다면 아무도 반론하지 않을 것이다.
아, 아직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라는 답변이다. 응답자는 부연 설명에 “우리 모두가 그때는 너무 특별했어요”라고 적어두었다. 가슴이 짠한 문장이다. 위에 언급된 글티너들 또한 어떤 주역이었고, 특별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겠지만 글티너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 기사를 보고 있는 당신도!
마지막으로 글틴에 하고 싶은 말에서는 다들 추억에 잠긴 듯한 답변을 보내주었다. 아직까지 문학을 하고 있게 한 힘이기도 하고, 슬럼프를 잊게 해주기도 하고, 소중한 시간들과 많은 추억, 문우들을 남겨 준 글틴에게 감사하다는 내용들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자, 아직도 글틴에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한 사람이 있나? 이 설문 결과를 보고 이제 서슴없이 이곳에 뛰어들라. 무엇을 상상하든 더 큰 것들이 당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줄 것이다!

| ◆ 필자소개 / 전명환
- (21세, 남의 집 대문에 낙서하는 게 취미입니다) |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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