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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색깔로 탐색하는 문학의 장-
모색 포엠맥 -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문학의 곁]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배동훈 “언젠가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어.” 8년 전, 어느 군인의 일기에 적혀있던 문장입니다. 그렇습니다. 뻔하지만 사실 제가 쓴 문장입니다. 오랜만에 여름옷을 챙기러 들렀던 본가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공군에서 근무하던 2018년 당시에 썼던 일기장이었습니다. 아직 군대 내에서 휴대폰이 자율화되기 전이라, 매일 점호가 끝나고 10분씩 짬 내서 썼던 일기들의 조각이 모여있는 다이어리 중간쯤에 써 있는 맥없는 문장,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다. 시기를 보니 아마 일병 말에 썼던 일기 같은데요. 꿈과 희망이 없는 군부대에서 20대 청춘을 보내다 보면 정신이 반쯤 돌기 마련입니다. 저런 가엾은 문장도 그때의 파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과연 까까머리 공군 청년은 마침내 시에게 구원 받았을까요? 그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출발 비디오 여행 톤으로). 안녕하세요. 포엠매거진입니다. 이제는 제 본명인 배동훈보다 포엠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저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익숙하군요. 그만큼 제가 인스타그램의 망령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포엠매거진은 인스타그램에서 시를 소개하는 채널입니다. 소개한다기보다는 ‘영업’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제 취향을 배경으로 하거든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가 가진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마치 시식 코너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거 맛있으니 함 무봐라” 홀로 외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저는 2년 동안 시를 영업하고 있을까요? 이유야 당연합니다.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물론 그 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저는 정말 감사하게도 어찌저찌 2년째 먹고살 만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만큼 짜릿한 일이 있을까요? 저는 이 상황이 너무 황홀해서 매일 밤 내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지저귀는 새에게 영어로 말을 걸곤 합니다(공주풍 레이스 잠옷을 입고 있음). 물론 포엠매거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포엠매거진을 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나왔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포엠매거진을 위해 퇴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일의 배후에는 늘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재직하던 회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고, 더 늦기 전에 시를 활용해서 뚜렷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포엠매거진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시를 알리고 싶다!’라거나, ‘최초로 시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막연한 바람뿐.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약 일주일 뒤에 바로 ‘@poem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구돌 - 토끼가 사는 섬[레지던시 일기-남이섬 호텔정관루] 토끼가 사는 섬 구돌 남이섬은 1.4km의 직선과 그를 감싸는 호로 이루어진, 긴 달 모양의 섬이다. 본래 홍수가 나면 물에 둘러싸이던 곳이었는데, 1944년 댐이 들어서며 북한강 수위가 높아진 뒤 완전한 섬이 되었다. 모래땅이던 곳에 나무를 심고 길러 지금은 3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숲을 이루었다. 2025년 문학 레지던시를 열었고, 나는 2026년 3월, 그곳에 보름간 머물렀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세 번째 작가라고 했다. 그곳 역시 나의 세 번째 레지던시였다. 첫 번째는 도시 한복판에, 두 번째는 인적 드문 산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남이섬은 유명한 관광지였다. 앞선 두 곳의 조건이 묘하게 겹쳐졌다.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숲길 옆에는 갤러리와 카페가 있었고, 인파가 넘쳐나다가도 어느 순간, 나는 섬에 혼자였다. 한 시기마다 한 명의 작가만 초청하는 남이섬 레지던시의 특성은, 섬 안의 섬처럼 온전한 고립을 만들어주었다. 고립. 내가 레지던시에 들어간 목적이다. 작년 말 나는 모든 모임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에게도 반년간 연락이 닿지 않을 거라 말해 두었다. 그러고는 묵언수행을 하는 명상원에 들어갔다. 열흘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어느 절에서 묵언수행자의 등을 멀찍이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나는 그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지쳐 있었다. 끝까지 타 흘러내린 초의 자국처럼 책상 위에 눌어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낸 일은 전생인가 싶었다. 작년까지 나는 수험생 두 명과 살았고, 둘을 차례대로 대학에 보내 놓고 고립을 택한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런데 남이섬에 들어오기 전날 밤, 그중 한 명이 재수를 선언하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을 뜨자마자 급히 짐을 쓸어 담고 택시에 탔다. “남이섬이요! 최대한 빨리 가 주십시오.” 섬에서 눈을 뜨면 러닝화부터 신었다. 숙소의 왼쪽 길은 그대로 긴 달 모양의 외곽선과 이어져 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곧게 뻗은 직선 길을 달리다 섬의 끝에 다다르면 거대한 돌탑을 8자로 턴하며 돈다. 북에서 남으로 커다란 호를 그리며 달려 돌아온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라 뿌연 물안개가 수면에 낮게 깔려 흐르고 물안개를 가르며 오리 떼가 줄을 지어 따라왔다. 러닝을 마치면 아침으로 황태국을 먹었다. 황태국은 운동 후 단백질을 보충하기에 적당했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작업실로 출근했다가, 오후가 되면 숲길을 걸었다. 해가 질 녘의 섬은 언제나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낮 동안 사람의 발걸음에 맞춰 땅에서 걷던 공작새는, 어두워지면 높은 나뭇가지로 날아올라 밤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나도 작업실로 돌아와 온 섬의 불이 꺼질 때까지 책상 앞에 있었다. 작업실은 남이섬 측에 별도로 요청드린 공간이었다. 그림책 작업 중이어서, 자료를 펼쳐 놓고 볼 수 있는 커다란 책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0인용 원목 책상 맞은편 벽에 족자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하가람 - 내가 만났던 서랍[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내가 만났던 서랍 하가람 2026년 2월 13일 체크아웃을 하고 탄 기차에서 내가 앉은 자리 대각선으로 전자책을 보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작가의 말’이고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만났던 서랍을 잘 잊지 못한다. 문득 던진 시선이 정지한다. 실눈을 뜨고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내가 ‘사람’을 ‘서랍’으로 잘못 읽었음을 알아챈다. 내가 만났던 서랍.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쓴다. 주로는 두어 개의 카페를 전전하지만 몇 년 전 팬데믹으로 카페가 폐쇄되었을 때는 호텔에 묵으며 작업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왜 글을 쓰기 어려울까. 언젠가 본 영상에서 한 요리사는 말했다. 국물이 들어간 음식에는 10시 1분의 맛과 10시 3분의 맛이 있다고. 나는 매일 그날 하루에만 쓸 수 있는 문장과 장면이 있다고 믿는다. 많은 날 나는 나룻배 위에 있다. 검은 호수의 수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늘 무언가 부유하고 있다. 헤엄치는 물고기나 신발 한 짝, 썩은 과일 같은 것들이 내 주변을 흐른다. 검은 호수에서 나는 매번 다른 것을 건져 올린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없건만 내 자세는 달라진다. 한 호수에 오래 머물다 보면 바짝 세웠던 허리가 굽어지고, 어제 잡은 물고기나 오늘 잡은 물고기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생각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익숙한 공간은 나를 무르게 만든다. 몸이 고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별수 없이 집에서 작업하지만 그럴 때조차 집을 낯설게 만드는 의식이 필요하다. 영국 성당이나 사찰 ASMR을 틀어 공간의 공기를 바꾸고 평소에 쓰지 않는 향수를 방 안에 뿌리기도 한다. 정작 호텔 같은 곳에 들어가면 나는 반대로 군다. 문고리를 돌려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전경―빳빳한 침구와 가지런한 가구의 배치―은 처음 만난 이의 얼굴만큼이나 서먹하다. 나는 잠시 얼어붙은 채 그 얼굴을 응시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친밀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 물건을 소개하는 것이다. 쪼글쪼글한 핸드크림과 아끼는 티백, 인공눈물처럼 사소한 것들을 그에게 나누어주기. 짐을 풀자마자 나는 차가운 서랍 속에 소지품을 집어넣는다. 내 속내를 내어 보이듯 그 방 곳곳에 손길을 뻗는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어떤 공간을 나는 원하는 걸까? 내가 만났던 서랍.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다 보면 꼭 서랍 속에 물건을 두고 오는 일이 생기곤 한다. 체크인 직후에는 맨 먼저 서랍을 열어 물건을 채워 넣으면서도, 체크아웃을 할 때는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서랍을 열어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그저 눈에 보이는 물건만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다. 왜 떠나는 나는 도착하는 나보다 언제나 조금 더 무심할까. 대개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곳에 물건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아챈다. 아니,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사라졌던 시기를 돌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임택수 - 빛의 카르토그라피[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빛의 카르토그라피 임택수 여행지의 호텔에 며칠 묵게 되면, 나는 꽃을 샀다. 야생의 빛 같은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은 나를 밀어내듯 납작해졌다. 유리컵이든 값싼 꽃병이든 물을 담아 꽃을 꽂아두면, 방 안에 없던 높이가 생겼다. 오늘은 미모사 한 줄기. 만지면 부서지고, 멀어지면 공기 속으로 풀어질 것 같은 꽃송이들, 흩어지기 직전의 햇빛 알갱이 같다. 모네처럼, 아버지처럼 평생 정원을 가꾸며 살고 싶었지만 나는 여러 장소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주소는 자주 바뀌었고, 도착한 곳의 계절은 늘 막 시작되거나 막 끝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 머무는 일보다, 잠시 머문 것들에 눈길을 주었다. 지나가는 빛이나, 금세 사라질 장면 쪽으로 조용히 서게 되었다. 서울프린스호텔에서 걸어서 오륙 분, 남산 초입에 모교가 있다. 언제나 열려 있는 정문, 비좁은 마당, 대극장의 파사드. 창의 배열과 입면의 분절이 만드는 리듬에 따라 시선을 옮긴다. 스물다섯에 입학한 학교는 경기도로 이전했고, 옛 건물은 부속 캠퍼스가 되었다. 오래전, 이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 얼굴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담장에 바투 붙어 걷던 뒷모습 같은 것. 그리운, 스승의 방에서 흘러나오던, 주먹만 한 물방울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내는 소리 같은 음악. 이해한 만큼 오해한 시간. 나는 입을 다문 채, 늘 바람 속을 걸어가는 사람 같다. 겨울이므로, 칼바람이 분다. 조금 더 늙은 기분이 든다. 뺨부터 천천히 지워지는 것 같다. 밤이 내려오자, 명동의 창들은 하나둘 불을 밝힌다. 머릿속에 펼쳐진 지도 위로 맥락 없이 떠올랐다 끊기는 장면들. 누구의 것도 아닌 시간이 잠시 눈앞에 머무른다. 어떤 기억은 슬픔으로 남는다. 그 기억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십 대에 일했던 을지로입구 인쇄골목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진 지 오래. 삼십 대의 직장과 디가 살던 충무로 적산가옥. 각각의 시절이 명동 주위의 위성처럼 가물거린다. 무력한 그리움. 명동이 아니라면, 나는 더 기꺼이 미쳤을 것이다. 저만치, 남산타워가 붉게, 느리게 깜박인다. 눈이 녹은 길 위에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다. 큰길의 경사는 그대로인데, 안쪽 골목은 말끔히 정비되었다. 지워진 자리일수록 정돈된 얼굴을 하고 있다. 예술관은 기억보다 작게 보이고, 주변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띄게 들어섰다. 국적을 특정할 수 없는 얼굴들과 생소한 언어들이 궤도를 따라 떠다닌다. 어떤 식당에서는 히잡을 쓴 단체가 치킨을 먹고 있다. 닭을 볼 때마다 나는 김수영 시인을 떠올린다. 오래 머물지 못한 빛. 어쩌면 그가 남긴 짧은 밝음이야말로 우리가 통과한 벨 에포크였는지도 모른다. 네온이 쏟아지는 밤거리는 눈이 시리다. 불 꺼진 환전소 앞이 별안간, 환해진다. 눈을 떼면 사라질 것 같은 세 사람이 빛 속에 서 있다. 담배를 문 사람이 나를 똑바로 본다. 그의 두 눈에는 이미 끝이 와 있다. 현실은 늘 늦는다. 시는 그보다 먼저 간다.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 내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고혜원 - 익숙한 경로에서 벗어나기[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익숙한 경로에서 벗어나기 고혜원 익숙함을 좋아하는 수동적 도전자 나는 익숙한 경로를 좋아한다. 산책을 가더라도 평소에 자주 가던 길로만 가고 글을 쓸 때면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서 작업한다. 그 카페에 자리가 없다면 2순위, 3순위까지 정해져 있다. 사실 노트북과 글을 써야만 하는 내가 있다면 어느 카페든 상관이 없겠지만 나의 발걸음은 익숙한 곳을 향해 간다. 언제였을까. 이직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직 전 회사와 이직 후 회사는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중심으로 정반대에 있었는데, 자연스레 이전 직장 방향 지하철에 몸을 실으려는 걸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잡고 내렸던 적이 있다. 아직 내 삶의 경로가 바뀐 걸 몸이 인식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만큼 몸에 배어있는 행동들이 나를 지배한다.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별다른 약속이 없다면 자동으로 몸이 움직여 회사 또는 집으로 나를 데려간다. ‘어디로 가야지’라는 어떠한 의지가 배제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멍을 때리다가도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회사로 나가기 위해 합정역 10번 출구 쪽으로 몸이 향한다. 몸이 기억하는, 현재진행형인 내 삶의 경로다. 그래서 주말마다 작업하기 위해 가는 장소도 대부분 정해져 있다. 주말인데 글 쓰러 나왔다고 말하면 오랜 지인들은 ‘오늘도 거기?’라며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그럼 나는 ‘네, 마감이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거기에 없는 날은 마감이 없거나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는 날이다. 그럼 이따금 지인들은 글 쓰는 나를 찾아와 지나가다 들렀다며 인사하고 갈 때도 있다. 이럴 때면 마치 게임 속 NPC가 된 기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머무는 공간에 익숙해져야 긴장이 풀리고 효율이 좋아지는 나에겐 내가 잘 아는 공간,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꽤 중요하다. 그런 내가 6주 동안 새로운 공간으로 내 몸을 던지는 건, 도전이었다. 굳이 새로운 곳에, 무거운 짐을 풀고 적응해야 하는 곳에 ‘지금 내가 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신청할 때는 4주만 신청했었다. 너무 길게는 힘들 것 같아서. 그렇지만 입주 전 통화로 담당자님께서 진짜 4주로 충분하겠냐고 재차 물어보셨다. 다들 더 지내고 싶어 하신다고. 그 제안에 나는 그렇다면 6주를 꽉 채워 지내보겠다며 마음을 바꿨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레지던시 지원사업’에 왜 신청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의문이 자연스레 따라올 거다. ‘낯선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굳이 왜?’ 그러니까 나는 도전을 좋아한다.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고 반 페이지에 걸쳐 외쳤지만 그 와중에도 새로운 것을 곁에 두는 건, 내 호기심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언젠가 나는 왜 이럴까, 하며 고민하던 내가 나를 정의하는 단어로 ‘수동적 도전자’라는 수식을 만들었다. 익숙한 걸 좋아하면서 이따금 아예 새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진보라 - 날마다 이방인[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날마다 이방인 진보라 그날의 감각이 여전히 선명하다. 서울의 한파가 절정에 달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던 날, 따뜻한 부산에서는 볼 수 없는 함박눈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배정받은 방의 문 앞에 내 이름이 적힌 ‘소설가의 방’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본래 호텔 객실이란 철저히 익명의 장소다. 하루, 혹은 며칠 단위로 주인이 바뀌며 앞선 이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는 것이 그곳의 가장 큰 책무일 것이다.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표식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호텔이라는 공간이 지닌 엄격한 불문율일 테고. 그 견고한 익명의 공간이 기꺼이 나를 제 일부로 받아들여 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를 위한 소설가의 방은 마치 이 공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왔다는 정중한 방증 같았다. 집이 있는 부산을 떠나 이토록 긴 시간 서울의 심장부에 거처를 둔 것은 내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짐을 풀기도 전에 창가로 다가가, 흰 눈의 눈부신 비행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바닥에 내려앉은 부드러운 눈이 세상을 덮으며 명동의 소음을 지워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정처 없이 서울을 떠도는 유랑자가 아닌, 비로소 머무는 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호텔 투숙객의 90퍼센트는 외국인이었다. 로비에는 늘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가 들렸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매일 새로운 얼굴로 교체되었다. 그들은 짧으면 이틀, 길어야 일주일 사이에 짐을 싸서 떠났다. 누군가 잠시 머물다 흔적 없이 증발하는 곳. 이 공간의 본질은 본래 머무름이 아니라 스쳐 감에 있었다. 처음엔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호텔의 배경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호텔 직원들에게 나는 수많은 익명의 투숙객 중 하나였을 테니. 나 역시 그들의 친절한 마스크 너머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되던 어느 아침, 직원 한 분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작가님, 오늘도 일찍 나가시네요.”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익숙한 이를 발견한 반가움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나를 기억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매일 새로운 얼굴을 맞이해야 하는 이들에게, 날마다 같은 자리에 나타나는 나는 어쩌면 일종의 균열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방 번호 뒤에 숨지 못하고, 익숙한 얼굴과 기척으로 호텔이라는 공간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과, 나라는 사람을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위화감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 역설적으로 내가 여전히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기 위해 들인 시간보다, 내가 그 공간을 홀로 기억해 온 시간이 훨씬 깊고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공용 세탁기가 몇 시에 제일 붐비는지 체감했고, 조식 식당 창가로 들어오는 서울의 아침 볕이 몇 시쯤 따스해지는지를 알아냈다. 엘리베이터에서 스쳐 지나간 수십 개의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서 어제 본 눈매를 찾아
작성일 2026-05-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천운영 -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인 날들[레지던시 일기-협성마리나 G7]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인 날들 천운영 1. 여행과 나날 여행 짐 꾸리는 데는 꽤 능숙하다 자부하는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좀 고심을 많이 했다. 여행자와 거주자를 오가는 ‘여행과 나날’을 위해 필요한 것들. 가방 하나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있어야 하는 것과 있으면 좋은 것 사이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것만 추려서. 목표는 기내용 캐리어 하나였는데, 추울까 불편할까 모자랄까 들었다 놓았다 하다 보니, 24인치 캐리어에 백팩까지 꽉 채우고 말았다. 그런데 또 막상 가서 풀어 보니 텀블러는 두 개나 챙겼으면서 꼭 필요한 약주머니는 통째로 두고 왔다. 비상약이야 그렇다 치고 일정 시간에 복용해야 하는 처방약들은 어쩌란 말인가. 짐을 풀다 말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내과를 찾아갔다. 딱 보기에도 연식이 오래된 병원이었다. 새로 진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진단서로 약만 처방받으면 될 일이니 상관없었다. 나이 든 간호사와 더 나이 든 대기실의 환자들. 대화로 짐작건대 서로의 사정까지 다 알고 지내는 단골들만의 병원인 듯했다. 할머니가 진료실에 들어간 지 꽤 지났는데 나올 기미가 안 보이자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변명하듯 말했다. 치매야 치매, 하루가 멀다 하고 와서 약 내놓으래. 소화 안 되고 허리 쑤시고. 약을 그렇게 드시니 소화가 안 되지. 오늘은 아들이 돈 훔쳐 갔다고 하소연. 원장님은 그걸 또 다 들어줘. 힘들게 왜 그걸 다 받아 주고 있냐고. 환자의 비밀인지 간호사의 하소연인지. 정감 있다 해야 할지 대책 없다 해야 할지.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간 진료실에서 마주한 것은, 데스크 간호가 왜 그리 세세히 문진을 했는지 알겠는 의사의 상태. 허리가 기역자로 꺾여 머리가 거의 책상에 닿을 것 같았는데, 그나마도 목을 못 가누는 어린애마냥 흔들흔들 매가리가 없는 것이, 의사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처럼 보였다. 의사가 내게 물었다. 어디 불편해? 불편한 거 있으면 나한테 다 말해. 다 들어줄게. 요즘 뭐 힘들어? 뭐라고 답해야 하나. 고지혈증약을 먹어야만 되는 몸 상태를 말해야 하나. 하도 글이 안 써져서 이 먼 곳까지 왔다 말해야 하나.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의사가 재촉했다. 지금 고통스러운 게 뭐야? 다 말해 봐. 저 깊은 곳의 통증까지 끌어올려야 하나 어쩌나. 여기가 내과인가 정신과인가 성당인가. 그냥 처방전이나 내주시라고요, 하고 싶었다. 내게 들을 하소연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번엔 다른 걸 들어야겠다 나섰다. 어디 심장 소리 좀 들어 보자. 의사가 다짜고짜 청진기를 들이댔다. 숨소리도 아니고 심장소리. 나는 얼결에 외투를 벌리고 가슴을 밀었다. 이곳저곳 청진기가 지나갔다.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리겠나 싶은 곳까지 구석구석. 이제 그만하시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을 때, 의사가 마침맞게 청진기를 떼며 웃었다. 잘 뛰고 있네. 잘 뛰고 있어. 못 뛰고 있으면 여기 왔겠냐고요, 할 뻔했다.
작성일 2026-04-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김휴일 - 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문학의 곁] 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 ― 신춘문예를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신춘회관(@Sinchun.co.kr) 김휴일 1. 2024년 10월의 마지막 주. 퇴근길의 지하철은 언제나처럼 붐볐다. 3호선의 고질적인 문제인 스크린도어 고장으로 출발은 한참이나 지연되었다. 출발 즈음에는 서로의 몸으로 잔뜩 끼어 버려 손잡이를 잡을 필요조차 없었다. 불특정한 사람들의 불쾌한 체취를 참아 내며, 나는 이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어야지. 침대에 누워 영화나 보아야지. 바라기엔 너무나 소박하고 초라한 소망들만 떠올랐다. ‘신춘문예’는 그 답답한 열차 내에서 불현듯 떠오른 단어였다. 2015년. 국어를 전공했지만 글을 쓰지 않고,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 없이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내가 대학교 3학년이라니. 뭘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선배였고, 대학교는 언제나 1, 2학년을 위한 공간이었다. 익숙해진 모든 것들로부터 조금 치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노인이 있듯이 고등학교에는 고3이 있는 법이었고, 대학교에는 3, 4학년이 있는 법이었다. 내년이면 내가 졸업반이 되는구나. 그렇게 취업전선에 뛰어들겠구나.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했다. 몹시 두렵고 조급했다. 좀 알 만하면 떠나야 하는 게 대학 생활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3학년의 봄은 그렇게 왔다. ‘시창작특강’을 수강 신청한 이유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들을 수업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첫 강의를 들은 날부터 시에 매료되어 졸업에 이르기까지 내 대학 생활의 포커스는 오로지 시 쓰기가 되었다. 교수님의 권유로 학과 내 문학 창작 동아리에 뒤늦게 들었고, 시를 읽고 쓰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세상을 시로 보고, 시를 통해 세상을 보니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눈이 생긴 기분이었다. 시를 진지하게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로운 눈 하나를 얻는 일이라는 것을. 길을 걸으며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로 보였다. 비유의 세상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타이어와 사랑을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고, 낙지젓갈과 미래를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다.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연결하고, 일상의 사건 사이 낯선 감정들을 구태여 파고들면서, 모든 생각을 시로 재구성하던 그 시절은 정말 행복했다. 졸업 후의 삶도 나름대로 다채롭고 재미있었지만, 먹고살 걱정을 하면서 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더 이상 읽지도, 쓰지도 않는 삶이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아저씨들이 “국문과 나왔다고? 나도 한때 작가의 꿈을 꿨었는데.” 하는 말들에 헛구역질을 하던 나는 어느새 ‘한 때 시인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30대가 되어 있었다. 영원히 낭만적일 거라 호언장담했던 그 시절의 나를 가볍게 배신하고, 시의 세계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이 몹시 부
작성일 2026-04-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김이성 - 가능성의 길이 무한히 확장되는 순간 - [문학주간 2025] 도움―닿기[문장서포터즈] 가능성의 길이 무한히 확장되는 순간 - [문학주간 2025] 도움―닿기 문장서포터즈 2기 김이성 1 안녕하세요. 어느덧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네요. 개인적으로는 문장서포터즈 2기 ‘쓰담’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문학 콘텐츠를 여러분들께 소개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문학을 매개로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 무척 보람찬 시간이었죠. 아마 이 글을 보고 계실 때쯤이면 새해가 밝아있을 텐데요. 저는 이번 원고를 구상하면서 파일 제목을 ‘세밑에서 새해로’라고 붙여놓았대요. 마지막 원고를 작성하며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과연 새해에는 또 어떤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새해에도 역시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겠지만, ‘쓰담’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것처럼 무엇보다 가능성을 믿는 한 해가 된다면 좋겠네요. 최근에 읽은 소설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엄마, 나 소설 안 쓸래. 일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래.”1) (엄마는 이렇게 답하죠. “쓸 거면서 또 저런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앞의 문장을 반복해서 읊조렸어요. 일하고 사랑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겠다고 말하는 인물의 태도가 미래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어쩌면 때로는 이렇게 작고 사소한 다짐이 우리를 가능성이라는 희망의 길로 나아가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저도 이제 새해라는 가능성을 향해 첫발을 내디뎌보려 하는데요. 그전에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공유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새 출발을 앞두고 있던 제가 문학의 도움을 받아 용기를 얻었던 순간이죠. 새해로 도약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 중인 분들에게 세밑에서 전하는 저의 후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때 그 순간을 전해보아요. 2 지난 2025년 가을, 일상을 지속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저는 문학주간 행사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관련 소식을 찾아보았어요. 몸도 마음도 지쳐 물리적으로 문학과 멀어져 있던 시기였기에 문학의 힘을 빌려 조각난 일상을 수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문학주간과 관련된 글을 찾아 읽고, 저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 기획의도 우리가 만약 어떤 트랙을 달리고 있다면 그리 머지않은 곳에 구름판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견고하고 상상할 수 있지만 막상 상상한 대로는 닿지 않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은 몹시 중요합니다. 높이 뛰어오르려면 적당한 타이밍을 생각하고 안정적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죠. 문학은 쉬이 상상할 수 없는 구름판을 감각하게 해줍니다. 내가 아닌 삶과 삶으로 이루어졌기에 분명 나인 세계 같은 것들이요. 문학은 자그
작성일 2026-01-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소희 -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문장서포터즈]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 중국 천진(天津, Tiānjīn) 책기행 문장서포터즈 2기 박소희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서점이 있다. 서점이 없다면 책 한 권이라도, 책 한 권도 없다면 문장 한 줄이라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어디를 가든 서점이 있다면 꼭 가보는 사람에 속한다. 비록 그곳이 해외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현재 중국 천진에 위치한 남개대학교(南开大学) 어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다. 지난 몇 년간 배워왔음에도 곳곳의 한자들은 낯설었다.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낯선 생활 방식까지. 나를 지칭하는 수많은 이름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곳에는 이방인, 외국인이라는 이름만 남아있었다. 천천히 생활에 적응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서점이었다. 이곳에도 책방이나 서점이 있을 텐데 어디에 있을까? 어떤 모습일까? 나는 지도를 켜서 서점들을 하나씩 찾았다. 그렇게 소소하게 시작된 이틀간의 천진 책기행을 적어본다. 사진1. 무명서점 무인도 서점과 무명서점 책기행의 시작은 늘 가는 학교 근처부터다. 학교의 서남문으로 가면 작은 책방이 두 곳 있다. 하나는 무인도 서점이며 하나는 무명서점이다. 중국의 몇몇 장소들은 건물 내부에 있어 이곳이 맞나 헷갈리기도 하다. 처음 간 무명서점도 그랬다. 또 두 서점 모두 벨을 누르거나 노크를 해야 들어갈 수 있는 방식이라 처음에는 운영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그러니 중국의 작은 책방을 방문할 때면 의심하지 말고 문을 두드리면 된다. 분명 안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들어간 서점 내부는 아늑하고, 따뜻해서 마치 가정집에 초대된 손님이 된 것 같았다. 고양이들이 있었고, 곳곳에 책이 있었다. 책방지기는 “여긴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으며 이곳에는 오래된 책들만 있다”고 말했다. 역사‧법‧소설 등 여러 종류의 책이 있었으나 주로 경영 도서가 있었고, 중국 문학이나 한국 문학은 비교적 적었다. 비치된 도서 중 비교적 문학의 비율은 적다는 말에 조금 더 구경을 하고 서점을 나섰다. 책을 읽고 싶을 때나 공부를 하고 싶을 때 찾으면 좋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사진2. 무인도 서점 그리고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무인도 서점으로 향했다. 이곳도 벨을 누르니 책방지기가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어쩐지 조금 더 환영받는 느낌도 들었다. 이곳은 무명서점과 달리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곳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저런 소품들이 있었고, 무명서점보다 문학, 과학 등 각 분야와 관련한 책이 여러 권 있었다. 한일문학 코너에서는 한강 작가와 김애란 작가 등의 작품과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가 있었다. 다만 한국 문학은 일본 문학에 비해 비교적 수가 적었다. 내가 아쉬움을 표하자 책방지기는 원한다면 직접 서점에서 책을 주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김애란 작가가 유명하며,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란 작품을 추천해 주었다. 한편 무인도 서점은 대출카드를 만들어 책을 빌릴 수도
작성일 2026-01-01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김성호 - 가르치는 문학, 배우는 문학, 자라나는 문학[문장서포터즈] 가르치는 문학, 배우는 문학, 자라나는 문학 (인터뷰이: 조인혜, 고등학교 국어교사) 문장서포터즈 2기 김성호 문학은 단순히 독자와 작가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독자와 작가가 되기 위한 그 과정, 여로를 봐야 한다. 그 여로엔 다양한 존재가 있지만, 나는 그중 학교 현장에서의 교사와 학생 간의 공간에 주목했다. 2025년 10월 23일, 합정역의 한 카페에서 조인혜 선생님을 만났다. 9년 전 모교의 국어 교사였던 조인혜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진지하고 활기차게, 자신의 독서론과 더불어 서포터즈 질문에 답해 주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조인혜입니다. 배우는 경험을 좋아합니다. (사진1. 조인혜 선생님의 오브제인 뉴욕도서관 에코백) Q. 평소에 문학을 즐겨 접하시나요? 특히 즐기시는 장르나 분야가 있다면요? - 음, 소설을 제일 많이 읽어요.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고요. 책 대화 모임을 4년째 하고 있기도 합니다. 잡지 독서평설과 출판사 사계절 콘텐츠에서 청소년 소설을 읽고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문학을 접하고 읽고 소개하고 가르친다는 건, 일적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에요. 물론 시도 좋아해요(웃음). 쉽지 않지만 시창작 모임을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시 창작 활동을 같이 하기 전에 먼저 저 스스로 배우고 체득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소소하게 문집도 내고요. 시가 어렵지만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희곡은 상대적으로 적게 읽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SF 소설을 많이 읽었고요. 딱히 가리는 건 없고, 그때마다 빠지는 장르나 분야가 있어요. 무엇보다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 아무래도 좋은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Q. 최근에 그런 작품이 있었는지요? - 박지리 작가의 작품입니다. 다만 어두워서 아이들에게 쉽게 풀어서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최진영, 김애란 작가의 작품도 좋았어요. Q. 국어교사로서 문학작품을 접할 때와 개인 독자로서 접할 때의 다른 점이 있나요? - 정체성을 나누고 있진 않습니다. 불쑥불쑥 나와요. 그런 게 혼재되어 있죠. Q.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어떻게 문학적인 활동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작품을 다 읽고 대화하게 하려고 합니다. 어떤 활동을 하든 반드시 하도록 했던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책 대화’와 ‘글쓰기’입니다. 같은 소설을 원하는 아이들끼리 묶은 다음, 질문하고 대화하는 활동을 해요. 그 이후 개인 서평을 쓰게 하고요. 사회적 독서인데(정의가 모호하긴 하지만 같이 공유하면서 읽기가 필요합니다. 먼저 선생님들과 경험해보니 그렇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게 참 중요하다고 여러 번 느껴요. 그런 활동을 하고 나면, 혼자 개인적으로 읽었을 때와 사회적 독서 활동 후의 감상의 결과 차이가 커요. 일단 혼자 읽을 때 몰랐던 점들을 알게 돼서 좋은 점이 있고, 내가 잘 몰랐던 같은 반 아이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작성일 2025-12-29 댓글수 0상세보기 -
모색 수현 - 계절을 보내는 방법[문장서포터즈] 계절을 보내는 방법 -무화과나무 한 그루와 오팔 라이트 문장서포터즈 2기 수현 올해 10월 초에 발매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곡 〈Opallite〉는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시작된다. I had a bad habit of missing lovers past (나는 지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나쁜 습관을 가졌어) 이후 가사를 통해 테일러는 “사실 나는 망령 같은 추억 속에서 살았던” 것이라고 위 ‘습관’에 대해 덧붙인다. 망령과도 같은 추억. 너무 좋았거나 너무 좋지 못한 과거 중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무의식 한편을 둥둥 떠다니는 기억들. 아마 모두 공감할 이야기리라 생각한다. 어떠한 기억은 묻어 둬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매번 그러길 실패하니까. 어쩌면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일지 모른다. 내게 있어 문학은 보낼 수 없는, 애도 불가능한 기억의 반복이다. 테일러가 곡을 낸 시월은 올해의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이다. 나는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서 도서를 구매하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 왔는데, 이번 가을은 독서와 더불어 테일러의 신곡과 함께하고 있다. 오늘은 〈Opallite〉와 덧붙여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 가을 2025》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진1. 문학과지성사 《소설 보다 : 가을 2025》 먼저, 《소설 보다》는 문지문학상 후보작을 세 편씩 묶어 낸 얇은 단행본 시리즈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춰 4권씩 해마다 출간되므로 젊고 개성 있는 한국 작품을 빠르게 접할 수 있는 도서이기도 하다. 사진1. 문학과지성사 《소설 보다》 시리즈 표지 올해 《소설 보다》의 표지는 해마다 다른 디자인을 선보인다. 이번 2025년에는 각 계절에 어울리는 과일나무를 콘셉트로 하고 있는데, 아직 덜 익어 푸릇한 딸기나무와 싱그러운 포도나무가 그려진 봄, 여름에 이어 가을에는 무화과나무가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아무래도 각 시즌에 맞춰 출간되는 책이다 보니 다음 계절, 해의 표지 디자인을 기다리는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소설 보다》 시리즈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좋은 작가들의 글을 모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좋은 작가라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돌이켜 보니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은 모두 이 책에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각 소설 한 편을 마치면 문학 평론가와 작가의 인터뷰가 실린 페이지가 등장하는데, 그 속에는 글을 쓰는 동안 작가가 구상하고 골몰했던 내용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문학잡지보다 임팩트 있고 기성 작가에 대해 내밀하게 알 수 있는 위 시리즈에 더 손이 가는 것 같다. 이번 《소설 보다 : 가을 2025》에는 서장원의 「히데오」, 이유리의 「두정랜드」, 정기현의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가 있다. 먼저, 「두정랜드」는 지방 소도시의 놀이공원인 ‘두정랜드&
작성일 2025-12-01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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