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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리뷰」외 6편

  • 작성일 2024-09-05

   데스 리뷰 

김사리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가 울 때마다 비도 따라 내렸다


   화장실 문을 잠근 엄마는 손톱을 깨물었고

   울음을 지운 아빠는 또 다른 울음을 찾아 떠돌았다 


   폭풍우 치는 언덕을 빠져나오기 위해

   폭풍처럼 성장한 아이는 

   내내 지붕을 찾아 헤매 다녔다


   울음이 바람막이가 된 아이는 

   봄이 와도 녹지 않는 

   단단한 설움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사람을 지워버린 하늘과 땅은

   지붕이 되지 못한 기억마저 지워버렸다


   태어나서 한 번

   성인이 되어 또 한 번

   버려진 눈사람이 안길 품은 어디에도 없었다


   따뜻한 품이 되어 줄 옥상으로 올라갔다


   심장을 데우는 빛이 꺼지자 

   아이는 단번에 차가운 눈으로 흩날렸다


   더 이상 집도 지붕도 필요 없는 

   창밖으로 아이는 천천히 녹아내렸다


   밤이 깊도록 눈은 그치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휴일



   오아시스를 만날 수만 있다면

   사막이 숲으로 변할 수만 있다면

   휴일은 사라져도 괜찮겠다


   물동이를 짊어지고 황톳길을 걷는다

   금 간 주말을 접착제로 이어 붙여 

   온몸이 젖어야 사는 사람처럼 쉬지 않고 걷는다


   평일, 평일, 평일이 겹쳐서 

   평생 휴일이 부러운 나는 젖은 신문지

   팔을 걷어붙이고 물동이마다 비를 받아 모은다


   물의 기분을 알지 못하는 저녁은

   펼쳐진 적 없는 우산

   새장 속 새를 닮은,


   비를 걸어 잠근 발걸음은 

   공휴일이 없는 일주일처럼 무겁다


   발이 부르트도록 

   황토물을 길어 온 아이에게

   목마름은 차라리 진흙으로 만든 쿠키


   날개가 뜯겨 나간 새가 

   버스 승강장에서 멀어지는 장면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아무도 찾지 않는 휴일은 어떤 맛일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깔때기로 걸러 낸 요일을 마신다


   손바닥으로 비를 가린 맨발의 아이가

   천막집으로 뛰어간다






   뼈의 재구성



   물고 빨고 훑고 뜯는,


   소꼬리뼈 

   닭다리뼈

   돼지목뼈

   오리 발바닥뼈

   하다못해 생선 가시까지,


   모두 뼈의 힘으로 살았다 


   조이고 풀고 덧댄

   뼈다귀로 종은 완성되고 


   정강이뼈 부러진 곳을 접합하여

   첫발을 뗀 순간이 있었기에

   돌보다 먼저 석상이 된 순간이 있었기에

   손톱으로 생살을 후벼 파도

   아프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의 뼈는 유용한가

   내 뼈에서 쓰임을 다한 꼬리뼈

   뼈와 꼬리 사이에도

   우선순위는 있는 걸까

   도발하듯 질문이 질문을 밀어낸다


   온 힘을 다하다 

   제풀에 지친 살갗은 내 뼈가 떠올린 난파선


   난바다를 표류하던 뼈는 

   남은 임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뼈를 맞추고 각을 잡는다

   뼈다귀에 붙은 근육을 꽉 잡아당긴다






   주검의 자세



   통나무 관 속에는

   여태 울음을 버리지 못한 인골이

   무릎을 구부리고 있다

 

   깨진 접시를 붙이면 

   생사의 빈자리도 봉분처럼 볼록해질까


   통형굽다리접시는

   수천 조각의 뼈를 맞춘 후에야 비로소

   죽음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솜털 보송하던 어제와 

   뼈만 앙상한 오늘을 품어 안은

   긴목항아리의 목구멍에는 

   목보다 긴 정적이 걸려 있다


   뼈와 뼈가 부딪히자 

   인기척에 놀란 눈빛 하나

   꺾인 허리를 펴고 저고리 앞섶을 여미고 있다


   굽은옥 귀걸이가 딸랑거리자

   볼 언저리부터 복숭앗빛이 차오른다


   긴목항아리를 가슴에 안고 

   애기구지봉 쪽으로 걸어 나오는 여자 


   억새가 쓰러지는 평야를 굽어보며 

   지금 어떤 구릉을 지나고 있을까


   손이 자라기도 전에

   전시실 문은 닫히고,


   책상 앞에는 지친 여자가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퇴근 시간은 멀기만 한데 

   순장된 여자가 

   뭉친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


   밖에는 리을 자로 구부린 대한(大寒)이 

   저승사자처럼 버티고 있다






   요리의 품격



   어떤 접시에 담아야 할까 


   작고 오목한 접시를 꺼내 들다가 

   크고 넓적한 접시로 바꾼다 


   일품요리는 맛 내기 쉽지 않은 일

   버터를 바르다 말고 참기름을 꺼낸다 


   어, 어···

   마이크 시험 중, 마이크 수리 중 


   저마다 접시를 하나씩 들고 입장한다

   탁자 위에는

   수건이 덮인 접시가 다섯 개


   모두의 입맛에 맞으려나 


   불러 봐도 꾀꼬리는 없고 

   낙지도 오징어도 문어도 아닌 무언가가

   접시 위에서 데구루루 구른다 


   취향은 다를 수 있으니 염려하지는 마!


   고깔모자는 모던하다

   홍옥은 발칙하고

   칼질한 부츠는 이목을 끈다


   접시 위에다 부츠라니

   걱정까지 올려놓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조미료를 치지 않은,

   늘 주요리가 문제다


   얼마나 더 숙성시켜야 제맛이 날까

   칼질한 너덜너덜해진 재료로 

   백지를 온전히 채울 수 있을까 


   빛과 어둠을 버무린 깊은 맛을 내려면 

   쥐구멍이라도 들락거려야 한다 


   젊게, 낯설게

   흥미에 진정성까지 가미된 비법은

   팔을 뻗어 좀 더 비틀어야 한다


   해시태그를 치려다 말고 

   되레 요리저장소에 던져둔다 


   깨진 접시도 품격은 있다






   유리병에 빠진 꿀벌



   젊은 날은 

   해 뜨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네

   꿀을 따러 꽃밭을 헤맬 때

   향기란 그저 해내야 할 일

   한낱 산더미같이 쌓인 일에 불과했네

   밤, 유채, 아카시아, 잡화, 때죽나무꿀···

   꿀이란 꿀은 다 맛보고 싶어

   눈을 뜨고 잠을 자야 했네

   가진 꿀은 나누어 가졌지만

   정작 꿀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네

   그래, 너는 원래 꿀벌이니까

   꿀을 모으는 게 당연하지

   그런 너 때문에 나는 늘 외로웠어

   이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쉴 새 없이 꿀을 따 모았어

   그러나 꿀 속에 갇혀 사는

   바보스러운 내 모습을 알게 된 순간

   병은 미끄럽고

   병은 유리로 된 거대한 벽

   단맛은 헤어 나오기 힘든 감옥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조커를 집어 드는 일

   매주 행운을 사 모았네

   그러나 벼락 맞을 운명은 

   꿀물 떨어지는 

   생지옥에 갇혀 끝없이 추락하는 일 

   사탕처럼 흘러내리는 계단을 빨고 있었네

   오를 수 없는 계단을,






   투명 기법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새가 난다. 유리는 허공에 그물을 던져 놓는다. 새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 부레를 움직일 수 없다. 유리에 박혀 지느러미를 잘리고 만, 새가 아가미를 벌름거리며 죽어 간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유리는 새를 받아 든다. 자꾸 새어 나오는 흐느낌은 이차원 삽화에서 흘러내리는 독백. 유리와 새의 거리만큼 먼 입장이 새와 유리에 갇힌 심장을 관통한다. 투명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 새가 버둥거릴 때 유리는 거미처럼 입을 오물거린다. 송곳니에 물린 숨통에서 피가 솟구친다. 보이는 것만 믿은 습성은 눈앞을 흐리게 만든다. 내가 쓴 탈은 내 크기에 알맞은 관, 돌변하는 늑대의 탈을 숨기고 수시로 양의 탈로 바꿔 쓴다. 너를 뭉갰을 땐 몰랐던 내 마음이 뭉개지고야 비로소 당연은 잘못으로 수정된다. 먹물을 흠뻑 적신 붓으로 늑대의 하울링을 틀어막는다. 양의 탈 아래로 흘러내리는 늑대를 지운다. “벌거벗은 임금님! 아직도 거기 계신가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양의 얼굴을 한 늑대가 관 속에 고요히 누워 있다. 창틀에 가득 낀 먹물이 눈물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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