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외 6편
- 작성일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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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김연필
수조 속에 천국의 물고기가 있다 조명을 받으면 푸르고 붉게 빛나는
천국이라는 말이 생소하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천국을 말해본 적 없고
이 작은 천국을 바라본다 이 수조는 20x20x25센티미터의 수조로
센티미터라는 말이 생소하다 센티는 100, 지네는 영어로 센티페드이다 지네의 발은 40개, 지네 발에 신 신기고 다시 수조를 본다 천국의 물고기를 본다 저 작은 물고기가 왜 벌써 천국에 있을까 죽어서도 수조에 갇혀 밥을 달라 아우성치는
세상에는 천국의 계단도 있고 천국의 문도 있다 저기 남쪽 섬에 있다는 천국의 문, 그 문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 문 너머에는 정말로 죽은 것이 남아 있을 것 같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이곳엔 천국의 것이 많아서
말해본다 천국의 계단 천국의 문 천국의 물고기 천국의 새 천국의 개 천국의 쥐 천국의 말이나 천국의 죽은 코끼리 같은 것, 살아서 천국에 간 너에게 말한다 나는 죽고 나서도 그곳에 가지 않을 거라고
작은 수조에서 이야기한다 한 번쯤 표면에 올라와 입을 뻐끔하고 기포를 아가미에 녹이며
저기 도마뱀 보인다 저것의 이름을 나는 안다
너는 천국의 도마뱀이 아니다 나는 너를 벌레라고 이름한다
빛이 없는 무대
이곳은 빛이 있는 무대이다
빛은 한 곳으로 수렴하고, 무대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
빛은 무대의 알레고리이다 무대 위에 여러 오브제가 있다 하나는 악기이고 하나는 털실이다 아직 공연하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무대에서 공연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오래된 통념이다
누군가 무대 위로 털실 뭉치를 던지며 공연은 시작한다 아직 아무도 무대에 올라오지 않았다
이곳은 사실 작업실, 사실 연습실, 사실 무대에 오르려면 아직 시간이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춤을 추는 이가 무대에 오를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화면을 바라보는 이로, 나의 다른 이름은 관객이라고 한다
#
무대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아직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른다
무대 위에 아크릴 수조가 있다 물이 가득 찬, 그 안에서 조금씩 거품이 일어난다 거품은 파도의 은유이다 수조는 바다의 환유이다 수조는 오브제이고, 이 수조는 무대에서 벌어질 사건을 제시한다 수조의 한쪽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그 물이 조금씩 사람이 되는 풍경이다
춤을 아장아장 추는 아기 하나
출연한다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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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람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그림을 그리는 글을 쓰는 춤을 추는 사람 그 모든 것을 하는 사람을 무어라 불러야 될지 모르겠다 뒷걸음질을 치고 조금씩 휘청거리는, 나는 저 휘청거림에 물이라는 말을 붙인다 사람의 70%는 사실 물이라서
저 몸짓은 증발의 몸짓이다 저 사람의 70%는 물로 이루어졌는데
모든 물이 증발하고 난 후 남은 것은 사람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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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기어 나온 사람이 내 앞에 서서 눈을 마주친다 무대 위의 수조는 이미 물이 말랐다 아니 새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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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수조 속에는 조금의 소금이 말라붙어 있다 소금은 물의 불순물이다 소금은 조금씩 바스라진다 아니 결정을 맺는다 소금의 결정이 조금씩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소금은 조금씩 올라가며 천장에 닿는다 수조에 맺힌 소금이 기둥이 된다 성경에서 읽은 적 있다 뒤돌아보면 된다는 바로 그 소금 기둥이다
그리고 추락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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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서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있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닮은 것을 보고 함부로 따라나서면 안 된다 사람을 닮은 것 중 사람은 없다 저기 비닐처럼 흔들리는 것, 어릴 적 본 나무에 걸린 쓰레기를 닮았다
쓰레기가 회전한다는 말로 다음 장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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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관객이다 저기 걸어다니는 이의 이름을 관객이라고 해보자 저기 앉아 있는 이의 이름을 관객이라고 해보자 저기 악기를 두드리는 이의 이름을 관객이라고 해보자 악기를 두드려 봐 마지막까지 악기를 두드려 봐 저기 탁탁 소리가 들리잖아 저기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잖아 마지막까지 춤추는 이의 이름을 춤이라고 해보자 저기 춤에서 파생되는 감정의 이름을 아픔이라고 해 저기 계속해서 흐르는 물의 이름을
고정된다 고정에는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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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장이다 움직이던 이는 더는 움직이지 못한다 아니 못 했으면 좋겠다 이제 끝을 내야 하고 나는 무엇을 더 적을지 아직 생각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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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직까지 무대에 남아 있는 것, 금이 간 수조
수조에 물이 차오른다 조금씩 물이 차오르며 흔들린다 마지막 남은 사물에 금이 간다 물은 사실 굉장히 무거워서, 조금의 금만 가도 수조는 터져버리고
무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깨진 수조는 더 이상 수조가 아니다
어디선가 빛이 밝게 스며들기 시작한다.
마치
너는 변하는구나. 너는 말하고. 너는 죽었지만 말한다. 말하며 변한다. 변하는 너의 얼굴이 있고 너의 목소리가 있다. 너의 얼굴은 문장 같아서. 화면 속에 너를 넣으면 너는 소멸하지 않는다. 너의 손을 잡고 싶어도 화면에 너의 손은 없구나. 손이 없어 얼굴을 더듬으며 바라보면 변하는구나 너는. 너의 얼굴에서 예수의 형상이 보인다. 예수의 흔적이 보인다. 예수의 그림자가 남는다. 너의 표정에서 부처의 형상이 보인다. 부처의 그림자가 보인다. 부처의 형상이 말처럼 남아 자꾸만 나를 더듬고. 너의 말에서 너의 상이 남는다. 남는 상을 더듬어본다. 더듬어도 너는 없다. 너는 남는다 형식과 내용으로. 형식과 내용을 두들기고 두들기며.
백년 동안의 고독
나무 위에 새 하나 서 있습니다 눈이 하나 날개가 하나 다리가 하나인 새
새가 바라봅니다 조금씩 눈이 녹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눈이 녹아 조금씩 물이 되고
물이 다 마르면 이 공연은 시작합니다.
*
이곳은 방이다 온갖 빨래가 널린 곳으로
조금씩 축축해진다 저 물, 눈이 녹아내린 물일 수 있겠다
이 공연에는 객석이 없다 모두가 무대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무대를 바라본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작가는 이 장면을 구상하며 무슨 메모를 했을까? 바닥에 널린 빨래 하나를 줍는다 축축하다 하나 더 줍는다 축축하다 하나는 상의이고 하나는 하의이다 축축하다 축축해서 이 둘을 붙이면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되어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갈 수도 있겠다 걸어 나가 관객이 되어 울 수도 웃을 수도 있겠다,
라며 누군가가 대사를 읊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관객의 이름을 의자라고 해보자 철제 의자라고 해보자 이곳은 축축하고
의자는 모두 삭아 무너지고 말았다
*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 개구리 한 마리를 올린다 거북이어도 좋겠고 강아지여도 좋겠다 한 마리 동물이 걸어다닌다 뛰어다닌다 아니 날아다닌다 관객의 잔해 위로 날아서 천장까지 오른다 그리고 먹는다 천장을 그리고 남는다 무대 위에 빛이 하나 그리고 죽는다 천장을 덮은 혼돈이
이 새의 이름을 마음이라고 해봅시다 마음은 아파서 눈이 하나 귀가 하나 코가 하나
마음은 아파서 천장을 다 먹고 난 뒤에도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파서 서로를 바라봅니다 무대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서로가 아직 구석에 남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장면, 을 마음이 바라본다 마음 없이 보다가 마음 없이 살고 마음 없이 죽는다 마음은 그렇게 죽어버리고
죽어버린 마음을 들고 무대 밖으로 나가는 사람, 무대 중앙의 원형 계단을 돌며, 이 하얀 방은 맘에 들지 않아, 나는 하늘을 보고 싶다, 라고 말하며,
는 사실 나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등장합니다 무대의 중앙에
*
우리 이야기해 볼까? 솔직한 이야기, 서로는 사실 서로를 좋아해, 서로를 좋아하다 서로 하나가 되었어, 하나는 매일 울어 서로가 없어서, 홀로 서로가 되는 이야기를 쓰려 해 매일 울면서, 한 사람을 둘로 갈라 그것을 다시 하나로 뭉치는 이야기, 다시 사람을 둘로 잘라 다시 붙이는 이야기, 여기 있는 이 옷처럼, 사람은 대부분이 물이고, 이 옷은 젖어 사람이 될 수 있어. 사람을 가르고 붙여보자, 사람을 자르고 이어보자, 사람을 죽이고 살려보자, 사람에 두 줄을 그은 뒤 다시 아래에 사람이라고 적어보자, 사람이 다시 살아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자. 이제는 사람이 다 죽어서 없다고, 그래도 사람을 만드는 이야기를 해보자, 내 이름은 여와야 나는 진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고, 진흙은 얼마든지 뭉쳤다 뗄 수 있어, 나는 얼마든지 사람을 뭉치고 부수고 떼고 자르고 나는. 여기는 무대야, 무대에는 마음이 없어, 마음 없이 울고 마음 없이 웃고 마음 없이 신나서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추다가 그대로 땅을 짚고, 나는 외롭다고 해볼래
서로가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어떤 연극에 대한 이야기면 좋겠다
*
이 이야기는 개천 속의 피라미, 이 이야기는 개천 속의 피라미의 꿈, 이 이야기는 피라미의 꿈에서 흘러나온 물 같은 것, 이 물 같은 것이 흘러 개천이 되는 이야기, 개천이 되어 흐르다가 그대로 말라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지고, 이 이야기는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 같은 것, 그 물줄기를 헤엄치는 피라미 떼, 그 물줄기에 스며드는 피라미 떼, 그 물줄기를 잡아먹는 피라미 떼, 그 물줄기를 잡아먹고도 배가 고파 서로를 잡아먹고 난 뒤 남은 것(은 남지 않은 것), 그것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죽음 상징 표정 마음 감정 서로 홀로 술래잡기 지워지는 바람 무너지는 꿈 부서지는 방 죽은 건물 천 번을 만 번을 죽고도 다시 태어나 말을 하는 짐승
이라고 나는 말한다 나는 말을 반복한다 관객이 없어도,
이것이 나의 유일한 역할로서
*
새의 이름을 지어본다 녹색 블라인드라고
백 년 동안 울지도 뛰지도 날지도 않은 새가 다시 백 년을 침묵하는 아무것도 아니면 좋겠다
하얀 개들의 밤
공간에 빛이 있다
빛은 공간의 은유이다
방 안에 빛이 비친다 선명한 빛이다
빛은 조금 파랗고 빛은 중앙으로 수렴한다 중앙에는 명확한 오브제가 있다 저것의 이름은 사람이고, 저것은 숨을 쉰다 저것은 빛을 받으면 말을 하는 습성이 있어, 저것은 유리 속으로 들어간다. 전시이다.
방에서는 멀리 바다가 보인다 바다에 빛이 비치면 비늘 같은 것이 돋는다 비늘이 돋아 바다는 어류가 된다 바다는 큰 물고기로, 아무도 바다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한다
바다 위에 개 한 마리 떠돈다 저것은 죽음이다 개는 죽음의 모습을 하고 바닥에 머리를 비빈다 개의 꼬리는 하얗고, 개의 몸은 하얗다 개는 회전한다 끝없이 바다 위를 돌아 조금씩 커지고 조금씩 희미해지다 사라진다 그 개의 이름은 관객으로,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
조명이 켜지면 무대 위로 한 사람이 올라온다
한 사람은 물의 은유이다 사람은 물처럼
조금씩
출렁이기 시작한다
#
개를 바라보는 개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본다
그것은 물결이며, 회전의 은유이다
삶은 가는 팔처럼 조금씩 늘어지고, 언젠가는 죽어 뼈가 된다
바다 깊은 곳, 뼈들이 삭아 모인 곳에서 다시 시계가 자란다
시계는 공간이며 회전은 빛이다 몰아치는 빛이 회전하면 그곳은 별들이 죽어 뭉치는 어느 무덤이 된다 무덤에서 다시 자라는 꽃을 본다 그것을 춤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본 일이 있다
#
재미있니? 저기 나와 춤추는 일이 재미있니? 나는 춤을 추고, 너는 말을 하자. 우리가 춤을 추면 우리는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우리는 조금씩 부서져서 먼지로 가라앉는다 그런 말을 떠드는 것을 상상한다 방 안에서 오브제로 남은 작가가 혼자 말을 한다 누군가는 그 말을 받아 적고, 누군가는 그러다 대본이 되어버리고
사람이 파도가 될 수도 있어? 파도가 되어 돌을 비빌 수 있어? 돌을 모래로 만들고, 그러고도 살아 있을 수가 있어? 어디선가 목소리 들린다. 크고 무거우면서 장난스러운 소리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이제 타이핑을 그만두려 한다
#
뒤돌아선 한 사내의 모습 보인다 선명하다 빛이 비친다 빛이 수렴한다
저 등에 요철이 돋는다 갑자기 나타난 한 사내가 그 요철을 부빈다 사내의 요철은 조금씩 바스라지고, 사내는 바스라지고, 사내는 이제 재도 먼지도 남지 않았다
#
어느 방에, 어느 밝은 방에 빛이 있고 사람이 있고 빛을 빨아들이는 흰 마음이 있고
그 방을 부수면 모든 물이 지하로 휘돌아 감긴다 욕조의 마개를 뽑은 듯
위작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모아 말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말을 모아 또 말을 만든다. 그렇게 모인 말을 눌러 말의 끝을 바라본다. 말의 끝에는 내가 있고 나는 말을 쥐어 흔든다. 흔들리는 말을 들어본다 안아본다 그리고 돌아 다시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바꾸면 저기 보이는 건 하늘 아래 핀 코스모스. 코스모스 한 송이 흔들리면 말이 하나 죽고 죽은 말들이 다시 돌아 이루는 초원. 초원에 말을 심으면 말이 자꾸 자라고. 자란 말들을 모아 씨를 얻으면 그것은 발아하지 않는다. 발아하지 않는 말의 씨를 모아 다시 돌면 보이는 것은 무대. 무대 위에 혼자 서 실뭉치 하나 던지고. 그래도 말은 풀린 실뭉치가 되지 않네. 이런 것은 슬픔. 슬픔이 없는 무대에 슬픔을 뿌린다 거둔다 그것은 또다시 돌아 말할 수 없는 이야기. 그리고 생각한다 너를 슬픔이 없는 말을 말해도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단단하고 깨지기 쉬운 슬픈 말의 조각을.
표면서사
불과 물이 흐른다 들판으로 들판으로 번진다 나는 물의 표면을 만진다 표면이 조금씩 녹아 흐른다 불과 물의 표면이 맞닿으면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돌의 표면이 녹아 흐른다 검은 물이 손을 적시면 나는 너와 마주 보는 상상 마주 보고 웃어도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녹아 흐르고 불타고 녹아 불과 물의 침전물이 되고
기울어진 들판의 태엽을 감는다 열쇠를 끼워 돌리면
내 소원은 마주 보고 웃고 죽는 한 쌍의 문장으로
녹인다 녹이고 돌린다 돌다가 웃는다 죽는다 달린다 죽은 새가 눈 없는 날개 없는 새가 달리다 쓰러지고 검은 꽃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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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2024-11-05
직전의 양 임지은 잠이 오지 않을 때 그만 좀 불러냈으면 좋겠어 사람들은 양털로 옷도 이불도 해 입으면서 잠까지 덮어버릴 셈인가 봐 가을이 오면 확연하게 줄어든 몸무게에 양이 얼마나 어리둥절해하는지 모르면서 내가 아는 제일 불면증이 심한 사람은 양을 구십구만 구천 마리까지 셌지만 잠이 오지 않았대 세기를 그만두자 그제야 잠에 들었다지 좁은 방에 아침까지 불러 모은 양들이 서로를 밟고 올라섰다지 이런 사정을 아는 동물 애호가는 양 대신 말, 소, 사자들을 불러 모았대 함께 있기에는 긴장감이 넘치는 사이라서 밤새 뜬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지 이런 얘길 들으면 내 마음이 조금 약해지긴 해 그래서 생각해 본 건데 컵이나 상자를 부르는 건 어때? 쌓아 올리기도 쉽고 무너지기도 쉬운 게 잠이잖아 쏟아진 잠 밑에 깔려 상자에 구멍을 내고 그 안을 들여다봐 보면 하얗고 부들부들한 털이 그게 설마··· 양이 아니라면 대체 뭐겠어 한낮의 잎맥처럼 활짝 펴지는 잠, 수증기 가득한 욕실의 콘센트처럼 짜릿한 잠, 일주일째 닦지 않은 안경처럼 흐릿한 잠, 프라이팬 위에 터진 노른자처럼 중심이 없는 잠, 그런 잠을 자기 위해 사람들은 계속 양을 부르고 좀비 소원 깨고 나니 좀 이상했습니다 욕구라고 부를만한 게 없어졌습니다 더는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늦장 부리다가는 정말 지각이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화가 난 걸까요? 하지만 저에겐 기분이라고 할 게 없어졌는걸요? 그래도 습관이라고 할 게 남아 있어 학교에 갔습니다 이가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 비어있는 의자들 ㅂ ㅂ ㅂ ㅂ ㅂ 선생님이 소원을 적어 실내 나무에 걸라고 합니다 소원이라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거잖아요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소원이라 할 수 있나요? 연필 끝을 씹는 동안 준호가 시아를 깨물고 시아가 영재를 깨물고 나는 깨끗한 종이에 소원을 적고 있었습니다 진우를 더 이상 못 만나게 해달라고요 진우는 사인펜도 잘 빌려주고 내 얘기에 많이 웃어줍니다 진우를 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원은 벌써 어긋나버렸나 봅니다 진우가 내 손을 잡고 달리고 있습니다 못 만나게 해달라고 했는데 진우는 하필 나를 만나서 숨을 몰아쉬면 진우는 깨물기 좋은 목덜미를 가졌고 아주 이상한 맛이 납니다 소원이라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거잖아요? 어떤 소원은 정말 이뤄지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새로 생긴 점 코 위에 점은 미인 점이라 부르고 손가락 위에 점은 재주가 많다는 뜻이라죠? 입술에 점이 생기면서 할 말이 많아졌습니다 친구가 손에 샤프 점이 생겼다고 했을 땐 반투명한 점이 참 신기했는데 나도 없던 점이 생기길 바란 적 있습니다 한 번 마음 먹으면 진짜 해내는 점
- 최고관리자
-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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