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까마귀」외 6편
- 작성일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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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까마귀
이경교
한밤중에 까마귀를 본다, 방금 나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었다 까마귀는 어둠 속에 처박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까마귀는 제 몸의 검은 빛을 어둠 속에 보태고 있다 어둠을 입은 까마귀 울음소리가 따스하게 밤공기를 뒤흔든 뒤 밤은 더 짙은 검은 빛 속으로 가라앉는다, 어둠 속으로 날아가는 까마귀를 나는 더듬는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컴컴한 까마귀 울음소리를 듣는다 한순간, 한 움큼의 어둠이 마치 까마귀만 한 분량으로 더욱 짙어지다가 풀어지는 걸 본다, 어두워 까마귀는 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기가 한 줌의 어둠인 줄 안다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가 한밤의 까마귀, 어둠 중의 어둠인 저 까마귀
저 검은빛은 누구의 빈약한 배후인가 잠든 하늘에 걸려있는 구름은 왜 딱딱하게 몸이 굳나, 까마귀 떼가 지나가자 구름은 맥없이 풀어지고 건드릴수록 구름은 더욱 캄캄해진다 오오래 변방을 떠돌던 까마귀들도 덩달아 어두워진다, 울음도 세월 가면 녹이 스는지 목쉰 까마귀들이 울고 있다, 보이지도 않는 허공을 흔들며 검은빛이 단단하게 뭉치고 있다
경전(經典),낙타
소설의 시작은 모래밭이었지 모래밭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들이 사건의 암시였지 어떤 사건이 지나갔다는 걸 눈 밝은 독자들은 눈치챘을까 눈망울이 큰 낙타가 피해자였지 지난밤 선량한 낙타를 누군가 응징했지 그건 그가 신이라 해도 온당치 못한 처사였지 더구나 모두들 낙타를 사랑했지 그건 사랑에 대한 도발이었지 어지러운 발자국 속엔 낙타의 것도 섞여 있었지 영문도 모른 채 낙타는 주저하고 발버둥을 쳤으며, 끝내 저항한 걸 알 수 있었지 그 저항이 복선이었지
가혹한 우연이 낙타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지 그러나 훨씬 많은 수의 발자국들은 일정한 궤도를 그리고 있었지 계획된 범행을 알리는 확실한 단서였지 누군가는 발자국들이 원형이란 사실을 지적했지 그 원형은 사건의 끝없는 순환을 상징한다고 했지 그것은 지속적인 낙타의 수난을 의미했지 불길한 예언이었지 발자국의 개수가 증식하고 있다는 걸 주목한 이도 있었지 원형증식은 무한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재앙이 온다고 했지 낙타의 수와 범인의 비율이 불균형을 초래하는 것도 문제였지 종말은 한쪽의 전멸과 함께 가까워지고 있었지
낙타가 사라지는 건 순한 눈망울과 긴 속눈썹의 상실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랑의 종식을 뜻했지 아무도 소설의 결말을 알 수 없었지 그것은 소설의 소멸에 대한 암시이기도 했지 모두가 사라진 곳엔 텅 빈 모래밭만 남겨질 것이므로, 사람들 역시 모래를 닮아갈 것이므로
낙타는 사라짐으로써 영웅이 되었지 복선의 해명이었지 종말을 예고한 암시의 희생제물로서, 그는 종말에 저항하는 이들의 종교가 되었지 모든 신앙이 그래왔던 것처럼
점액질
사람들은 저마다 깃 안에 고개를 파묻고 흘러가지 물컹거리는 안개 더미 속으로 점액질처럼 스며들지 그냥, 묵묵히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어디쯤에서 다 녹아버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 다만, 흐르고 흘러 저 다리 아래로 강물은 흘러가고 사람들은 지금 이곳이 어딘지 알지 못한 채 안개 더미 속으로 바쁘게 흡수되지 오히려 안개 속에 편입되지 못한 몇몇 그림자만 어두운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하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다만, 제 본분을 다해 흐르는 강물이 보이고 말없이 서 있는 가로수 아래 정체 모를 점액질이 흐르고 있지 흐르고 흘러 점액질이 고이는 곳마다 집이 서 있지 넘치는 그릇을 주체하지 못해 방을 잘게 쪼개놓기도 하지
첼로를 위하여
그녀가 첼로의 현을 뜯을 때마다 내 몸의 먼 기억 속에선 덜커덕덜커덕 우마차 지나가는 소리, 흙먼지 길 가장자리로 띄엄띄엄 포플러 나무가 서 있고 내 몸의 알 수 없는 어느 부위에선 물 새는 소리가 들리지, 태풍이 몰려오는 바다 굵은 빗줄기 사이로 첼로의 젖은 현은 힘겹게 휘어지고 기우뚱, 선박은 침몰하지 이리저리 난파당한 내 몸의 어느 곳에선가 불협화음이 들려오지 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첼로는 서늘한 물길을 내지 그녀가 첼로의 현을 튕길 때마다 안개를 헤치고 다가오는 사내의 두꺼운 외투가 보이지 첼로의 선율은 지금 구릉을 넘어 무거운 눈꺼풀 아래 밀려오는 초록 잠을 만나지 이런 날이면, 어지럽게 쏟아지는 별과 파도 위로 날아가는 물새들의 젖은 날갯짓이 보이지
어둠이 허공을 꿰매고 있다
한밤의 까마귀 달빛을 건너간다, 어두운 허공에 금 하나 그어진다 대학병원 906호 창 너머, 허공도 막 수술이 시작됐는지 하얀 상처를 서둘러 꿰매고 있다 어둠이 수술 자국을 뒤덮고 나자, 한밤의 까마귀 어디로 갔나 906호 병실에 고이는 아내의 신음, 까마귀는 어둠보다 더 어두운 울음을 남긴 채 사라지고, 아내의 울음이 까마귀 울음과 겹쳐진다 마취가 덜 풀린 달빛 혼자 까마귀를 기다리는지, 906호 병실 창 너머로 희끗희끗 수술 자국을 비추고 있다 다만, 까마귀는 허공을 가위질하기 위해 지나가고 어둠은 그 자국을 덮기 위해 다가온다 누가 누구의 상처를 문지르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까마귀, 불러도 대답 없는 까마귀, 어둠을 덮고 잠이 들었는지 까마귀는 흔적이 없고, 상처 난 허공이 몰래 아물고 있다
돈화문 위에서 부엉이가 울었다
세종실록 어느 날의 기록은 이 한 줄 뿐이다 얼마나 역사적 사건인가? 사관도 말을 잊었는지, 문장 앞뒤가 텅 빈 여백이다 대궐 문이란 장소와 울었다는 행위에 앞서는 건 부엉이다 부엉이가 문제다 그러니까 부엉이의 등장부터 역사는 시작된다
부엉이 울음은 캄캄하다 깊은 숲길을 지나가야 한다 어느 땐 구불구불 협곡을 내달리는 물살이 되기도 한다 서슬 푸른 그 울음소리에 귀를 열거나 떠밀린 이들은 모두 물살에 휩쓸린다 협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늪이 펼쳐진다 부엉이 울음은 끈적거리는 늪이다 푹푹 빠져 헤어날 수 없다 울음소리가 아니라, 결국 끈적거리는 늪이 문제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검은 늪이 문제다
돈화문 위에서 부엉이가 울었다
사관은 부엉이 울음소리에 들렸거나 지폈던 게 분명하다 역사는 들렸거나 지폈던 멍 자국이다 깊은 숲, 칼날 같은 협곡, 그 물살에 떠밀려 늪에 닿았을 때, 사관도 부엉이 울음을 흉내 낸 건 아닐까 그는 또 무슨 슬픔을 떠안고 잠 못 이룬 걸까
뭐지? 우중충 어두운 하늘을 긋고 가는 이 소리는? 이건 또 뭐지? 내 속에 펼쳐지는 저 검은 늪은? 지금 내 안에서 우는 건 누구지?
뜨거운 번식
사막을 지날 때마다 낙타는 흔들리는 풍경을 눈망울에 새겼다 그 렌즈엔 자신이 머물고 싶은 장소들이 기록되었다 처음 점 찍은 장소는 모래 산의 뾰족한 정상 부근이었다 저녁노을이 가장 늦게까지 머무는 곳, 어스름이 꼭대기까지 밀려오면 노을은 텅 빈 눈빛만 허공에 걸어둔 채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 순간, 노을의 눈빛은 부활하듯 다시 밝아지곤 했다 노을이 지워진 그 위치에서 별이 떠오르곤 했으므로
낙타가 기억하는 다음 장소는 모래 산의 남쪽 계곡이었다 사막 깊은 곳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곳, 물소리는 미세한 울림으로도 모래알의 틈을 벌리고, 한 모금씩 스며드는 물기를 빨아들였다 그곳, 젖은 바닥은 사막 안에서 가장 소란하고 분주한 자리가 되었다 물방울은 야금야금 웅덩이를 넓혀갔다
낙타가 새겨놓은 마지막 풍경은 사막의 한가운데였다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는 곳, 사방으로 활짝 열린 문과 보이지 않는 문설주가 뙤약볕에 녹아내리는 곳, 언제나 그곳의 주인은 모래였다 모래알들이 모여 새끼를 치는, 그곳은 뜨거운 번식이 장려되는 마을이었다 당연히 날이 갈수록 모래 부족은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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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2024-11-05
복선 윤인숙 참 이상하지 빨간 가운을 걸치면 몸에서 죽은 쥐 냄새가 나 유리 머리 폭탄 웃음 마음 바다 어느 쪽이 더 좋아 수족관에 손 하나가 어슬렁어슬렁 손도 키우시나요 그럼 물도 매일 갈아 줘야겠어요 손톱에 물때가 낄 테니까요 깨진 유리 구겨진 웃음 진심으로 고마웠다니, 이런 환멸은 처음이야 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리를 오므린다 온도가 중요해 시시때때로 변하는 손바닥 얼룩같이 두 눈이 없어도 잘 느낄 수 있는 늪의 악어 알처럼 수국을 움켜쥘 때의 기분 모든 첫 중에 첫, 한 입 복숭아 수국을 손바닥으로 움켜쥘 때 무른 복숭아의 즙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거기를 만질 때 조금 젖을 때의 침이 꿀꺽 넘어가는 물고기가 찌를 물고 달아나는 산꼭대기 고사리 밭 층층나무의 향기 이끼 아래 바위 복숭아 살을 손으로 뭉개 봤다면 밀가루 반죽을 휘휘 저어 봤다면 끝물이라는 말 그 여름이 뜨거웠다는, 뼈의 화목 나무가 이름을 얻는다 적막이 가만히 가라앉고 있다 흰 항아리 한 줌 다섯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뼈의 화목 허공은 잠시 눈을 감았다 밖은 따뜻하고 속은 부서지는 중 골목을 들어서며 느리고 크게 부르던 노래도 낡아, 노래뿐이다 기억은 가뭇없고 폭풍이 쓸고 간 듯 먼 길이 생겨나고 있다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다 풀이 풀의 어깨에 기대 흐느낀다 목덜미에 내려앉은 나비의 날갯짓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나무의 이름이 살갗 아래 새겨진다 얕은 밤 고개를 젖혔다가 퉤, 하고 누런 가래를 뱉을 때, 가래가, 누런 가래가 땅바닥에 ‘척’하고 달라붙은 거 같죠. 척하고 뭉개지는 거죠. 산산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요 발끝으로 쓰윽 뭉개지 말아요. 진득한 실이 달라붙을지도 몰라요 영원이 알을 슬어 놓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도 꽃은 피니까요 어떤 순간도 영원이 될 수 있으니까요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든다는 걸 일깨워 주진 말아요 왜 그런지, 선명한 것은 가여워요 얕은 밤에 꿈은 무르익고 계절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슬금슬금 와버려요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야 할까요 전 언제나 지는 쪽이 더 좋기는 해요 숨 비 오고 라일락이 막 피려고 해요 꽃향기 비눗방울처럼 터져요 다정한 소문 같아요 향기는 몸이 없고 소문은 멀리 가고 비 오는 날, 오른손을 높이높이 볼륨을 올리고 몸을 흔들어요 온몸에 풍선 달고 가라앉는 배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요 아아 목 놓아 노래 불러요 꿈틀꿈틀 드디어 다른 몸이 되려나 봐요 괴로움은 역사가 짧아 우리 엄마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춤으로 노래로 하늘로 하늘로
- 최고관리자
- 2024-11-05
직전의 양 임지은 잠이 오지 않을 때 그만 좀 불러냈으면 좋겠어 사람들은 양털로 옷도 이불도 해 입으면서 잠까지 덮어버릴 셈인가 봐 가을이 오면 확연하게 줄어든 몸무게에 양이 얼마나 어리둥절해하는지 모르면서 내가 아는 제일 불면증이 심한 사람은 양을 구십구만 구천 마리까지 셌지만 잠이 오지 않았대 세기를 그만두자 그제야 잠에 들었다지 좁은 방에 아침까지 불러 모은 양들이 서로를 밟고 올라섰다지 이런 사정을 아는 동물 애호가는 양 대신 말, 소, 사자들을 불러 모았대 함께 있기에는 긴장감이 넘치는 사이라서 밤새 뜬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지 이런 얘길 들으면 내 마음이 조금 약해지긴 해 그래서 생각해 본 건데 컵이나 상자를 부르는 건 어때? 쌓아 올리기도 쉽고 무너지기도 쉬운 게 잠이잖아 쏟아진 잠 밑에 깔려 상자에 구멍을 내고 그 안을 들여다봐 보면 하얗고 부들부들한 털이 그게 설마··· 양이 아니라면 대체 뭐겠어 한낮의 잎맥처럼 활짝 펴지는 잠, 수증기 가득한 욕실의 콘센트처럼 짜릿한 잠, 일주일째 닦지 않은 안경처럼 흐릿한 잠, 프라이팬 위에 터진 노른자처럼 중심이 없는 잠, 그런 잠을 자기 위해 사람들은 계속 양을 부르고 좀비 소원 깨고 나니 좀 이상했습니다 욕구라고 부를만한 게 없어졌습니다 더는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늦장 부리다가는 정말 지각이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화가 난 걸까요? 하지만 저에겐 기분이라고 할 게 없어졌는걸요? 그래도 습관이라고 할 게 남아 있어 학교에 갔습니다 이가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 비어있는 의자들 ㅂ ㅂ ㅂ ㅂ ㅂ 선생님이 소원을 적어 실내 나무에 걸라고 합니다 소원이라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거잖아요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소원이라 할 수 있나요? 연필 끝을 씹는 동안 준호가 시아를 깨물고 시아가 영재를 깨물고 나는 깨끗한 종이에 소원을 적고 있었습니다 진우를 더 이상 못 만나게 해달라고요 진우는 사인펜도 잘 빌려주고 내 얘기에 많이 웃어줍니다 진우를 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원은 벌써 어긋나버렸나 봅니다 진우가 내 손을 잡고 달리고 있습니다 못 만나게 해달라고 했는데 진우는 하필 나를 만나서 숨을 몰아쉬면 진우는 깨물기 좋은 목덜미를 가졌고 아주 이상한 맛이 납니다 소원이라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거잖아요? 어떤 소원은 정말 이뤄지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새로 생긴 점 코 위에 점은 미인 점이라 부르고 손가락 위에 점은 재주가 많다는 뜻이라죠? 입술에 점이 생기면서 할 말이 많아졌습니다 친구가 손에 샤프 점이 생겼다고 했을 땐 반투명한 점이 참 신기했는데 나도 없던 점이 생기길 바란 적 있습니다 한 번 마음 먹으면 진짜 해내는 점
- 최고관리자
-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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