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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런 날이」외 6편

  • 작성일 2024-11-04

   어쩌면 이런 날이

김필아


   어슬한 날씨를 입술에 얹는 일은

   곧 장마가 오겠다는 일기예보를 빌라 옥상에 늘어놓고 방울토마토 몇 개를 따 손톱으로 붉은빛 굴려 보는 일


   튀어 오르는 자갈처럼 초록 들판을 달려가는 일곱 살 아이의 마음처럼 바람이 전나무 숲을 헝클고 건너가는 모양새를 지켜보는 일과 곧 장마가 머물겠다는 소식에 모르는 꽃의 이름을 입술에 얹어 보는 일


   말간 시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일이 백자를 깨뜨리고 밤 아래 피는 꽃을 말한 것은 아닌데 밤이 굴러가는 담 아래 흰 꽃봉오리 뱀 대가리로 기어오르는 일이 되었다


   유리 항아리에 매실을 푸르게 붓는 일은 뱀 알을 품는 일 같아 신을 영접하는 그 숨결의 언저리


   맴돌 수밖에 없고

   어슬한 날씨 모실 생각을 미리 해 두는 일과


   그럼에도 벤치에

   햇볕이 앉은 자국이 남았다고 문자를 보낸다


   어쩌면 저녁이 먼저 어슬해 오는 이런 날이 좋을지도 모르죠






   한때



   아침 볕이 잠잠하여 책을 버린다


   눈멀어 가는 사람이 되어 걷는다. 청설모가 잣 방울을 끌고 가려다 나무 위에서 여러 번 놓친다. 떨어지는 소리의 방향으로 청설모가 따라가 줍는다. 청설모가 손에 쥐는 것은 뚝의 소리


   눈이 내리는 사람이 되어 


   잣나무 숲을 맨발로 걷는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찌릿한 전깃불. 천천히 느끼도록 몸을 여기에 둔다. 나는 차가운 밤처럼 선명하다. 무덤의 책자처럼 차갑다. 바닥은 찌른다. 나는 열리는 꽃


   나는 쌓인다

   꽃의 적설량


   당신은 폭닥한 이불을 덮은 것 같다 한다






   모과의 배꼽



   나비를 입속에 넣었다

   파르르 떨리는 심장을 갖게 되었다

   모과 향이 났다


*


   모과는 여름에 푸르기로 했다

   모과 꽃에 밟히는 빗소리 


*


   나는 물고기와 모과 꽃 사이에 서 있다


   비가 길어진다 모과 꽃 속에 점자를 박은 물고기

   헤엄친다 우툴두툴하다 

   물고기는 표음 문자를 달고 

   나는 물고기의 소리를 엿듣기 위해 나무가 되기로 했다


*


   푸른 낯빛을 잡고 

   살이 깎인다 

   몸통이 작아질수록 안간힘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인다 모과 씨가 박혀서

   몸 깊숙한 곳에 씨를 묻은 물고기가 유영한다


   꼭꼭 몸을 여민

   씹어 먹을 수도 없는 배꼽을 내밀고

   물고기는 나를 본다 

   있는 듯 없는 듯 꽃을 피우는 배꼽을 보고 있다 

   푸르뎅뎅 물방울이 탑처럼 쌓이다 하나가 되는 






   상추 꽃



   나는 상추만 있으면 밥 잘 먹어


   남자는 밥 못 짓는 여자에게 청혼한다 


   여자는 붉은 옥상 고무 통에 상추씨를 뿌린다 


   까치의 아침 식사가 되는 날이 있다

 

   저녁 식탁에 상추는 지칠 줄 모르고 매일 올라온다


   어느 날 꽃대 세운 상추가 빳빳하다


   하얀 젖이 꽃대에 흘러내린다


   남자는 상추에 손을 대지 않는다


   여자는 상추를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


   상추 꽃들이 텃밭을 노랗게 덮고 있다






   꿈의 카타콤



   하짓날 잠자리에 들 때 베개 밑에 꽃을 넣어 두었다

   아름다움을 어깨에 올려 두기 위하여


*


   웃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 깊은 곳을 두드려 보면 어딘가 어두운 소리가 난다*

   그들을 먹지에 대고 따라 걸어 들어갔는지 매미가 등으로 우는 소리를 낸다


*


   초록 폐허만큼 그림자의 굴은 길다

   굴을 파고 있었다. 하지의 자정. 별빛이 굴 벽면에 빗 모양 긴 눈썹을 그렸다. 빛을 발하는 올빼미 여신의 눈이었다. 암사슴 수사슴 푸른 눈을 그렸다. 사슴의 뿔이 벽면을 타고 자라났다. 뿔의 가지마다 새들이 태어났다. 새들은 물줄기를 물어 왔다. 물이 빗물의 빛처럼 흘러내렸고 물이 꽃처럼 자라났다. 무성한 물, 굴의 입구가 점점 커졌다. 앞으로 나아갔고 나아갔고 나아가 여기는 꿈속이니 폐허라는 생각을 밖으로 밖으로. 떨어지는 물이 다른 세계로 범람하였다. 바깥은 드넓은 어둠 아래


   밤의 궁륭 


   금속기계 쓰레기더미




*나쓰메 소세끼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변용






   벤치의 여름



   개미가 부드러운 직선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나아가는 담벼락 덩굴손 같다 


   사

    랑

    해

    사

     랑

   해

   사

   랑해 

   거대한 손의 그늘이 눌러도 

   사랑해


   사랑해

   개미


   아즈텍 전사는 죽어서 벌새가 된다

   나는 벌새 모양의 검은 펜던트를 목에 걸고


   떨어진 꽃은 비릿함을 내뿜는다

   사람은 새의 훗날이 된다


   나는 심장을 북쪽에 두고 졸은 것도 같다

   나른한 발걸음 소리


   불현듯

   나에게 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처럼

 

   모래가 귓속에서 사르르 흘러내리고

   멀리서 노는 아이들의 소리 어른어른 물결무늬로 부서진다

   반짝이는 음표들이 공원에 흩뿌려져 있다


   자전거 바퀴는 빠르고 유아차 바퀴는 느리다


   오래전 새의 겨드랑이에서 떨어진 조각들이

   느릿한 공원을 만든다 아이들은 떨어진 보물들을 줍느라 빛난다

   아름다운 공원의 저녁은 이날일 수도, 저 날일 수도, 일 년 뒤의 날일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더, 거대한 

   모래시계

   손을 뒤집는다






   아보가드로의 법칙*



   아보가드로는 이름이 길다


   한 남자가 그림자를 맡긴 적 있다

   한 여자가 그림자를 맡긴 적 있다

   장미가 그림자를 맡긴 적 있다


   염소가 장미를 먹는다

   조선 왕실 백자가 그림자를 맡긴 적 있다

   백자 그릇이 식탁에 있다

   몽골 초원에서 바위에 피는 붉은 꽃을 보았다

   녹슨 문의 오랜 기다림

   문간을 건너온 이름들이 돌에 꽃이 핀다

   솔방울이 그림자를 맡긴 적 있다

   솔방울보다 작은 쥐구멍이 그림자를 맡긴 적 있다

   쥐구멍보다 작은 단추가 그림자를 맡긴 적 있다

   고양이 털이 그림자를 

   나비가 그림자를

   나비 그림자를 잡아 본 적이 있지 않다

   동박새가 그림자를 맡긴 적 있다

   동백이 그림자를 맡긴 적 있다


   참새와 동백이 그림자를 바꾸어 쓴 적 있다

   파도와 물고기가 그림자를 바꾸어 쓴 적 있다

   어부와 뿔소라가 그림자를 바꾸어 쓴 적 있다 

   등대와 뿔소라가 서로 

   피아노와 뿔소라가 서로 스민다

   담장이와 뿔소라가 서로 스며든다

   개가, 사슴이, 사자가, 모든 동물이 

   장미와 동백이 모든 식물이

   모든 미물이 그림자를 맡긴 적 있다 


   그림자가 슬픔을 맡긴 적 있다

   부음은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헛돌았다

   잃어버리기엔 겨울이 좋다고 당신이 말한다

   겨울이니 장갑쯤은 그럴 수도 있다고, 그런데 나는 일 년, 십 년 겨울에도 같은 장갑을 끼는 사람, 존재의 가벼움이나 존재의 무거움이나 그림자의 질량은 같다고 당신은 말한다


   눈은 슬픔의 잔해로 쌓인다

   귀신이 그림자를 맡긴다

   시인이 시를 맡기고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것과 원래 있던 것이 그림자를 

   나는 모든 것들과 함께 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에 문간을 넘는다

   맡긴다

   함께 있다


   낮과 밤은 그림자놀이를 한다

   아메데오 카를로 아보가드로가 지나간다




*Avogadro’s law: 아메데오 카를로 아보가드로가 1812년 발표한 기체 법칙에 대한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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