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외 6편
- 작성일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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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김정배
글을 읽고 나면 눈이 멀었다지
평생 그 글만 반복해서 읽어야 했다지
손끝의 힘으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제국은 무너지고
흰 종이는 숨을 거두었다지
모든 문장은 늘 절박하지
어떤 구절도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지
가령 내 어머니도
읽지 말아야 할 구절이었다지
밑줄이 너무 많아
가슴에 귀를 대고 있으면
어떤 호흡도 두근거릴 필요가 없었다지
불길에 휩싸이면 불보다 먼저 타오르는 얼굴
입가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지
눈멀고 혀가 굳은 표정들이 찾아와
얼굴을 바닥에 쏟아낼 때마다
금서로 쌓아둔 책들은
서술어가 지워진 나뭇잎을 떨어트렸다지
그걸 줍는 아이들, 자라서도
입속에 유배를 구겨 넣고 살았다지
스스로 금서가 된 줄도 모르고
이미 밑줄 친 문장에 또 밑줄을 그었다지
마지막 페이지의 독이 사라지고
손끝의 글자가 희미해질 때까지
사람들은 읽지 않아도 되는
얼굴을 해독하며 문장을 이어갔다지
모탕
아이들의 웃음이 튀어 오른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 놀이터 한 켠
낡은 그물망 위로 5분에 300원
널빤지에 그린 노인의 빼뚤빼뚤한 글씨가
파도 소리에 지워질 듯 넘실거린다
아이들은 탄력 있는 수평선을 발판 삼아
대서양 어딘가로 향하는 참다랑어 떼처럼
한꺼번에 공중으로 솟구친다
허공의 허공 위로
웃음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바닥의 머리카락이 천장 끝에 가닿으면
햇살 출렁이는 공중의 난류 속에서
만선을 꿈꾸는 거미들,
잔챙이 바람이 빠져나가기 좋은 간격으로
바다에 그물을 치고 있다
바닥 아닌 바닥 밑으로
아직 상처를 배우지 못한 풀들이 자라고
그 풀들이 가끔 풍랑을 풀어놓으면
바닷가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무인도에까지 표류하기 일쑤였다
가장 높은 허방을 짚고 서서
얼굴 검은 아버지를 만났다가 내려온 하루
아이들의 얼굴엔 침묵이 부표처럼 떠다녔다
10분에는 500원, 생선 궤짝 마냥 지루해진 하루 속에서
몇 번의 계절을 뒤집으며 착지하는 나뭇잎들
문득 밑도 끝도 없는 바닥에서 홀로 튀어 오른 트램펄린은
지루한 바닷가 풍경을 잠깐 감추기도 하였다 그제서야
노인은 흰 머리카락을 수평선 너머로 쓸어 넘기며
찢어진 하루를 오래 손질했다
참다랑어 떼가 언제 들이닥칠지 몰랐다
*모탕: 나무 팰 때 밑에 받치는 나무토막.
빗속을 헤매는 휘파람처럼
당신이 뒤에서 휘파람을 불 때
나는 우산 대신 햇살이 필요했던 날이었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태양은 녹아내리고
땅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개미의 연회가 되었어요
하지만 일하지 않아도 창밖은 고요하니
증명해 볼까요?
붉은 골목에 쉼표를 던지며
바람 속에서 태어난 비닐봉지의 아이
더 말해볼까요?
그저 한 장의 전단지는 목숨을 구하지 못해요
울음은 때로 강력한 무기가 되니까요
가뭄에 죽은 맨드라미를 봐요
오만한 죽음이란 이런 것이죠
골목은 실타래처럼 엉켜
새로운 길을 만들고
그 순간 우산도, 비도 내 것이 아니었어요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처럼
저도 반쯤 살아 있나 봐요
휘파람이 계절을 만든다는 걸 알아요
쉼표,
이제 잘난 척은 그만둘게요
읽지 않은 책 속의 혁명처럼 지루해졌거든요
누가 알겠어요?
휘파람과 함께 미래를 꿈꾸게 될지
이건 단지 기억이 아니라 기록일 뿐
가까우면서도 먼 징후의 오만함
맨드라미처럼 죽었다 깨어나
빗속을 헤매는 휘파람처럼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기록하지 않겠어, 딸기나무라 적힌 낡은 일기장 속에서
희미하게 발견될지라도
기록을 기록하지 않겠어, 나는
이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에서
내 엉덩이에 악보를 새기고
두려움의 노래를 부를 뿐
축제가 아직 끝나기도 전에
지구라 불리는 좁은 패널 속에 갇힌 이름들
계산된 아름다움은 언제나 현실을 피해
공포에 시달리는 자들은 늘 노래로 변하지
그림 속 천국에 갇혔다면
현실은 반대편, 지옥
지옥을 기록하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나 벌거벗고
그래서 기록은 기록되지 않을 거야
이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에서
내 엉덩이에 새긴 악보가 두려움을 노래하듯
축제는 계속되고
지구라는 패널은 여전히 좁아
계산된 아름다움이 현실을 피할 때
그림 속 천국과 현실의 지옥 사이에서
벌거벗은 채로 우리는 살아가
*히에로스 보쉬의 작품 제목.
생일 고아원
죽는 순간 모두 가족이야
밤의 소리가 깜깜해도
귀는 밝게 열린다
윙윙거리는 불빛 아래
형광등을 켜며
어둠을 밝히던 모닥불의 따스함을 떠올린다
팔 한쪽의 간질거림
마치 생일 축하 노래처럼
안방 거울에 붙어 반짝이는 모기
제 피를 빨고 있다
평생 니들 등골만 빼먹고 간다
아파트 베란다의 작은 화분
그 안에서 기지개를 켜는 봉숭아꽃 한 마리
생이 가려운지
꽃망울을 툭, 터트린다
예수병원 중환자실 302호
아버지는 자식들 얼굴에 붙어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신다
손뼉으로 모깃소리를 잡다
아버지를 놓친 어머니
누가 거울을 깨지도 않았는데
이목구비가 선명해진다
그 순간, 부풀어 이목구비를 탁,
때려잡는 고요
태어나는 순간 모두 고아야
일기
숨결과 숨결이 만나는 곳
생각의 지퍼를 살포시 잠그듯
빵틀은 따스한 반죽을 품고 몸을 감싸네요
차가운 빵틀이 뜨거워지네요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만나 침묵하고
잘 익은 붕어빵은 캄보디아의 지도처럼 자리를 잡네요
앙코르 와트라는 발음처럼 달콤한 팥앙금
아내의 고향에선 여전히 물고기 같은 나무가 자라네요
무언가를 싫어하면 그것을 닮는다는 말
아내는 아이를 가졌어요
일이 끝나는 저녁, 숲에서 별을 바라보면
검게 그을린 고향의 말투가 싫어
빵틀의 붕어빵이 타는 줄도 모르고
당신은 사랑을 굽네요
살다 보면 부부는 닮는다는데,
캄보디아의 웃음과 한국의 웃음이
오늘 저녁 빵틀에서 만나네요
눈발이 허기와 섞이네요
적막하게 익은 붕어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 눈(雪)을 본 적 없는남쪽 나라 어디, 사진 속 런닝구를 입은 웃음 곁으로 헤엄쳐 가네요
어느덧 부부의 아가미가 닮아 있네요
울음을 참아요
입술을 데기에는 새벽이 적당하죠
경황도 없이 죽은 이의 얼굴이 물집처럼 떠올라요
그러니까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동안
울음을 참아요
천천히 식어가는 커피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웃음도 괜찮아요 설탕을 조금 넣고
시럽을 넣지 않는 취향이란
누구에게나 뜨거운 법이죠
장례식장 옆 새로 생긴 엔젤 커피숍,
산 사람을 배려한 폭신폭신한 소파와 사각의 테이블
마음에 들어요 천사와 함께하지 않아도
벽에 걸린 조등 앞엔
늘 하루살이들이 분주하게 맴돌아요
죽음엔 불황이 없고
커피숍은 사시사철 불행하지 않아요
골프 연습장을 차려보는 것은 어떨까
고스톱을 치다 나온 남자들이
허공의 달을 뒤집으며 비틀거려요
커피머신에선 끊임없이 리필 울음이 쏟아져 나오죠
고인도 이곳을 이용하겠죠
진한 커피향기를 맡다 보면
제 향불도 싫증 나지만은 않을 거예요
바쁜 일정에 테이크아웃할 거라는 습관,
쿠폰은 또 어떤가요?
살생부에 스스로의 이름을 남기듯
아홉 번만 조문하면 한 번쯤 죽음도 공짜라는 기쁨,
육개장에 질린 식욕을 생각하며
제 취향의 죽음을 마셔요
어디까지가 천국의 맛일까요 조심조심
자신의 상처를 비켜 가며
입술에 거품을 묻혀요
진한 에스프레소에 어울릴 만한 표정 한 조각을 씹으며
장례식장 옆 엔젤 커피숍에 드나들어요
모두 고인의 얼굴을 로스팅한 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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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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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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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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