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복선」외 6편

  • 작성일 2024-11-05
  • 조회수 841

   복선

윤인숙


   참 이상하지

   빨간 가운을 걸치면

   몸에서 죽은 쥐 냄새가 나


   유리 머리 폭탄

   웃음 마음 바다

   어느 쪽이 더 좋아


   수족관에 손 하나가 어슬렁어슬렁

   손도 키우시나요


   그럼

   물도 매일 갈아 줘야겠어요

   손톱에 물때가 낄 테니까요


   깨진 유리 구겨진 웃음


   진심으로 고마웠다니,

   이런 환멸은 처음이야


   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리를 오므린다


   온도가 중요해

   시시때때로 변하는 손바닥 얼룩같이

   두 눈이 없어도 잘 느낄 수 있는 늪의 악어 알처럼






   수국을 움켜쥘 때의 기분



   모든 첫 중에

   첫, 한 입

   복숭아


   수국을 손바닥으로 움켜쥘 때

   무른 복숭아의 즙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거기를 만질 때

   조금 젖을 때의

   침이 꿀꺽 넘어가는


   물고기가 찌를 물고 달아나는

   산꼭대기 고사리 밭

   층층나무의 향기

   이끼 아래 바위


   복숭아 살을 손으로 뭉개 봤다면

   밀가루 반죽을 휘휘 저어 봤다면


   끝물이라는 말


   그 여름이 뜨거웠다는,






   뼈의 화목



   나무가 이름을 얻는다 적막이

   가만히 가라앉고 있다 


   흰 항아리

   한 줌 

   다섯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뼈의 화목


   허공은 잠시 눈을 감았다


   밖은 따뜻하고 속은

   부서지는 중


   골목을 들어서며 느리고 크게 부르던

   노래도 낡아, 노래뿐이다


   기억은 가뭇없고

   폭풍이 쓸고 간 듯 먼 길이 생겨나고 있다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다

   풀이 풀의 어깨에 기대 흐느낀다


   목덜미에 내려앉은 나비의 날갯짓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나무의 이름이

   살갗 아래 새겨진다






   얕은 밤 



   고개를 젖혔다가

   퉤, 하고

   누런 가래를 

   뱉을 때, 가래가, 누런 가래가

   땅바닥에 ‘척’하고 달라붙은 거 같죠. 척하고

   뭉개지는 거죠. 산산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요

   발끝으로 쓰윽 뭉개지 말아요.

   진득한 실이 달라붙을지도 몰라요

   영원이 알을 슬어 놓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도 꽃은 피니까요

   어떤 순간도 영원이 될 수 있으니까요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든다는 걸 일깨워 주진 말아요

   왜 그런지, 선명한 것은 가여워요

   얕은 밤에 꿈은 무르익고

   계절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슬금슬금 와버려요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야 할까요

   전 언제나 

   지는 쪽이 더 좋기는 해요






   숨



   비 오고 라일락이 막 피려고 해요

   꽃향기 비눗방울처럼 터져요

   다정한 소문 같아요

   향기는 몸이 없고

   소문은 멀리 가고


   비 오는 날, 오른손을 높이높이

   볼륨을 올리고 몸을 흔들어요


   온몸에 풍선 달고

   가라앉는 배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요


   아아 목 놓아 노래 불러요

   꿈틀꿈틀 

   드디어

   다른 몸이 되려나 봐요


   괴로움은 역사가 짧아

   우리 엄마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춤으로 노래로 하늘로 하늘로

   오! 길 위의 오르가즘


   숨을 깊이 들이마셔요

   피가 새로 돌아요






   날씨 이야기



   우산을 쓰고

   이리저리 기웃거린다


   어깨가 젖을 만큼 비는 오지 않고

   걸으면 기분 좋게

   자박자박 온다

   식당을 오래 찾아다녀도 괜찮다


   비가 오고 

   우산을 하나씩 쓰고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따뜻한 숭늉을 마시며 참 좋다고 두 손을 컵에서 놓지 않았다


   서러움이 많으면 오히려 순해진다고

   비 오면 방문 열고 멍하니 중얼거리던,


   수저는 놓아 줘도

   생선 가시를 발라 주기는 어색하고

   된장찌개를 같이 먹기엔 부족한


   우리는 아직

   우리가 아니어서 분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집으로 가는 길



   재난 문자가 온다

   위험하니 빨리 집으로 가라고


   식탁이 오늘을 위해 있는 것처럼

   의자에 마주 앉아

   숟가락을 번갈아 벌건 찌개에 넣으며

   비의 식구가 될까


   산사태로 뭉개진

   집들이 온종일 뉴스를 덮고

   저

   망연자실한 인터뷰는 꼭 해야 했을까,


   밥을 우물거리며 먼 곳을 떠올리겠지


   집으로 가야지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물 위에 잠자는 잠자리같이


   잠시 숨을 고르고 

   우산을 편다




추천 콘텐츠

「모자의 줄」외 6편

모자의 줄 박소언 그리운 적막이 투명하게 걸려있다 마르지 못하는 목매단 모자 하나가 바지랑대를 하늘 높이 세우면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두 줄이 생긴다 젖은 옷가지들과 모자가 걸린 문이었으므로 하늘이 내린 경계에서 하루의 동거가 바짝 말라간다 맨살을 비비적거리는 살갑던 허공을 헤아려본다 두들기던 얼룩이 서성대다, 발버둥 치다, 뜨거운 태양에 몸을 맡긴다. 자리매김한 여분도 없이 넘나들다, 휘날리다, 사지가 갈리면 문을 닫고 눈을 감고 싶다 두 개의 집게에 물려 벼랑에 설 때마다 하늘과 땅 사이를 맥없이 자맥질하는 무지개를 동반한 비바람의 날들이 가까스로 씻겨나간다 바람 너머 저 홑청 속으로 얼비치는 아홉 살 여자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등에 밥물을 잡는다 뒷산에 해가 걸리면,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매운 눈을 비비며, 육자배기 노랫가락에 아들 타령 늘어진 아버지가 ”아~ 신라의 밤이여” 털레털레 삽짝 문을 열고 갈지자로 휘청거린다 “아버지 내가 커서 아들 낳아드릴게요” 버스럭버스럭 벗겨내던 슬픈 말꼬리가 아들 없는 빈소를 기억하며 하얗게 운다 구멍 뚫린 양말이 늙지도 못한 채 유품처럼 마당가에 서 있는 빈 바지랑대 줄에 걸린 검정 두루마기가, 술 취한 혼잣말이 낮 그림자에 나풀거리며 자꾸만 손짓한다 흙 마당에 고꾸라진 짝 잃은 속디디미처럼 종종걸음하며 방향을 잃고 몸부림쳐대는 꼴이라니 옷가지 거두어간 자리에 방울방울 물음표만 걸리는 속알속알 느낌표만 걸리는 저 섬망 같은 세월을 하염없이 일으켜 세운다 허공 의자 한 사내가 높다란 허공 의자에 앉아 바람을 타고 있다. 창문에 매달린 꿈을 꾸며 리듬을 갈之자로 가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순간이다. 밧줄에 매달려 좌우로 흔들리는 난간에서 무거운 몸통을 거미처럼 붙여 놓고 사내는 끝없이 추락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빌딩 외벽에서 사내가 환상을 찾아 떠난다. 반짝반짝 별자리에 머물렀던 적 있었던가. 절벽 같은 유리창에 매달려 흔들흔들 안락의자를 기웃거렸을 뿐이다. 울렁울렁 목을 잡아당기던 밧줄에 맞춰 기어올랐을 벽과 빌딩 사이, 이곳저곳 희망에 꿰차고 앉아 날개를 달기도 했다. 높다란 저녁별 마주 보며 떨어지는 어둠에 하루치의 밧줄을 말아 잡아당겼다. 바람의 끝에서 홀로 앉아 있던 사내의 앉음새가 스르륵 풀어졌다. 핑 도는 어지럼증이 발아래로 튀어 오르자 사내는 그제야 허공 의자에서 내려오는 그때 유리창 아늑한 방안에서 아장아장 기어 나오는 아기가 두 손을 꽉 쥐고 까르르 웃는다. 하늘 높이 날아오를 포즈로 나는 그네 타기 놀이에 빠져든다. 은지화 애오라지. 손바닥만 한 딱지에 물고기와 아이들*이 놀고 있다 은물결 팔딱이다 헤엄치다 긴한 말들이 아로새겨진 활자 같다 꼬리꼬리한 비늘이 까르르 뒹굴면 깊은

  • 최고관리자
  • 2024-11-05
「직전의 양」외 6편

직전의 양 임지은 잠이 오지 않을 때 그만 좀 불러냈으면 좋겠어 사람들은 양털로 옷도 이불도 해 입으면서 잠까지 덮어버릴 셈인가 봐 가을이 오면 확연하게 줄어든 몸무게에 양이 얼마나 어리둥절해하는지 모르면서 내가 아는 제일 불면증이 심한 사람은 양을 구십구만 구천 마리까지 셌지만 잠이 오지 않았대 세기를 그만두자 그제야 잠에 들었다지 좁은 방에 아침까지 불러 모은 양들이 서로를 밟고 올라섰다지 이런 사정을 아는 동물 애호가는 양 대신 말, 소, 사자들을 불러 모았대 함께 있기에는 긴장감이 넘치는 사이라서 밤새 뜬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지 이런 얘길 들으면 내 마음이 조금 약해지긴 해 그래서 생각해 본 건데 컵이나 상자를 부르는 건 어때? 쌓아 올리기도 쉽고 무너지기도 쉬운 게 잠이잖아 쏟아진 잠 밑에 깔려 상자에 구멍을 내고 그 안을 들여다봐 보면 하얗고 부들부들한 털이 그게 설마··· 양이 아니라면 대체 뭐겠어 한낮의 잎맥처럼 활짝 펴지는 잠, 수증기 가득한 욕실의 콘센트처럼 짜릿한 잠, 일주일째 닦지 않은 안경처럼 흐릿한 잠, 프라이팬 위에 터진 노른자처럼 중심이 없는 잠, 그런 잠을 자기 위해 사람들은 계속 양을 부르고 좀비 소원 깨고 나니 좀 이상했습니다 욕구라고 부를만한 게 없어졌습니다 더는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늦장 부리다가는 정말 지각이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화가 난 걸까요? 하지만 저에겐 기분이라고 할 게 없어졌는걸요? 그래도 습관이라고 할 게 남아 있어 학교에 갔습니다 이가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 비어있는 의자들 ㅂ ㅂ ㅂ ㅂ ㅂ 선생님이 소원을 적어 실내 나무에 걸라고 합니다 소원이라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거잖아요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소원이라 할 수 있나요? 연필 끝을 씹는 동안 준호가 시아를 깨물고 시아가 영재를 깨물고 나는 깨끗한 종이에 소원을 적고 있었습니다 진우를 더 이상 못 만나게 해달라고요 진우는 사인펜도 잘 빌려주고 내 얘기에 많이 웃어줍니다 진우를 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원은 벌써 어긋나버렸나 봅니다 진우가 내 손을 잡고 달리고 있습니다 못 만나게 해달라고 했는데 진우는 하필 나를 만나서 숨을 몰아쉬면 진우는 깨물기 좋은 목덜미를 가졌고 아주 이상한 맛이 납니다 소원이라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거잖아요? 어떤 소원은 정말 이뤄지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새로 생긴 점 코 위에 점은 미인 점이라 부르고 손가락 위에 점은 재주가 많다는 뜻이라죠? 입술에 점이 생기면서 할 말이 많아졌습니다 친구가 손에 샤프 점이 생겼다고 했을 땐 반투명한 점이 참 신기했는데 나도 없던 점이 생기길 바란 적 있습니다 한 번 마음 먹으면 진짜 해내는 점

  • 최고관리자
  • 2024-11-05
「가스라이터와 함께하는 시간 ―태양」외 6편

가스라이터와 함께하는 시간 ―태양 고광식 당신은 나의 가슴을 열고 태양을 심었다 심장 대신 태양은 뜨거운 분노로 이글거린다 큐브처럼 여섯 가지 색깔의 표정을 찾아 당신이 지목한 사람들을 폭행했다 관상동맥은 뜨거운 열로 딱딱하게 굳어지고 아버지를 폭행하는 날이면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심장이 약속보다 빨리 뛰어 나는 흥분한다 깨끗해지기 위해 단단한 빗장을 풀었다 태양을 안고 달리다 보면 늘 동쪽 서쪽 너머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당신의 입술은 책 어느 페이지이든 숨어 있다 동생이 강물에 뛰어들어 나를 잡아당겼다 축축한 말을 들으면 당신은 언제나 옳다 태양이 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당신이 준 태양을 심장 대신 가슴에 품고 다닌다 열리는 입술을 보는 나의 귀가 커진다 바다의 소멸각 나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고래를 그려 넣었다 검은 눈동자 속에서 해변이 소멸하고 있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셀프 마사지기로 문질러댔다 아침과 저녁을 오가며 파도가 출렁인다 소멸하는 파도가 안타까웠다 각이 사라진 고래는 곧 척추동물의 소멸을 예고한다 고래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다 바다의 각이 다 닳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케 했다 고래 등에 각이 산다 멀리 있는 겨울 바다의 표정이 녹아든다 고래수염은 각자 각을 만든다 바다 각의 크기는 일정치 않다 나는 몇 번 태양의 각을 떴나 일출과 일몰 때의 시간을 모두 놓친 것 같다 크릴새우와 수염 사이의 각은 살아 있다 고래의 시간은 열대 대양에 각을 뜨면서 만들어진다 파도의 높이와 상관없이 바닷속은 각을 뜨기 좋은 압력으로 눌리는데 차단된 소통은 외로움을 부른다 소음은 파도치는 속도로 플랑크톤처럼 쌓인다 좌우 비대칭으로 기울어진 자세로는 바다의 각을 뜰 수 없다 파도는 공작새의 꼬리만큼 화려하다 고래는 해안가에 일렬로 떼 지어 마지막 각을 만든다 각은 고래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하얗게 흩어진다 난독증 ―결별 ㅍ, ㅏ, ㄷ, ㅗ를 놓고 마주 앉았다 카페의 창문에 매달려 우리를 붙잡고 있는 바다 꽃병과 꽃잎이 분리되지 않는다 커피잔과 네 입술을 구별할 수 없는 시간이 의자 밑으로 흐른다 구름이 바닥에 깔린다 표정 잃은 너의 발과 내 발이 동시에 젖는다 이미 구별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우리의 발 ㄱ, ㅡ, ㅁ, ㅏ, ㄴ, ㅁ, ㅏ, ㄴ, ㄴ, ㅏ 각각의 소리에 대응할 수가 없다 네 목소리가 낮게 탁자와 탁자를 건너뛰고 있다 긴 꽃병이 환경에 적응하려는 듯 바닥의 물을 위로 끌어올리고 있는데 카페의 의자는 유행가로 사랑을 만든다 너는 항상 같은 의자에 앉아 지연 없이 이해되는 말을 익혔다 노래는 감정을 파도에 섞으며 가벼운 허기로 삐걱거렸다 젖은 발로 구름을 밟는 너, ㅇ, ㅏ, ㄴ, ㅕ, ㅇ 시각적인 기호를 나는 분리할 수 없다 고양이 무리가 되고 싶

  • 최고관리자
  • 2024-11-04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