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자살심판관

  • 작성일 2024-11-05

   자살심판관

양혜영


   [예비심판관 김안의 면접 녹취록]

   질문자: 오르디나토르 외 6인

   장소: 스위스그랜드 호텔 613호


   오르디나토르: 먼저, 예비심판관 면접에 오른 걸 축하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예비심판관님의 경력을 조사한 결과 최종 후보에 올랐고, 이제 여기 모인 여섯 심사관이 심층 면접을 통해 최종 선택을 결정하려 합니다. 예비심판관님은 심사관의 질문에 진실만을 답해야 합니다. 답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거짓말탐지기가 부착되며, 예비심판관님의 답변은 모두 녹취되어 향후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김안: 네, 알겠습니다.


   오르디나토르: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여섯 심사관의 이름과 신상은 블라인드 처리되어 현재 착석한 자리에서 시곗바늘 방향으로 모노, 디, 트리, 테트라, 헥사, 펜타로 지칭될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말에 대한 질문이나 이의가 있습니까?


   김안: 아니오, 없습니다.


   오르디나토르: 그럼, 현재 2046년 6월 6일 오후 2시 13분. 자살허용심판관 선정을위한 최종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노님, 질문을 시작해 주세요.


   모노: 대한민국 최초의 자살허용예비심판관 후보 1번, 김안. 1986년 경기도 파주 출생. 2010년에 사법고시 수석 합격 이후 2040년 재판관 역임. 2043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청렴한 재판관으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 수상. 그런데 돌연 2044년에 판사를 그만두고 자살고위험군을 보호하는 생명존중연구소에 소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2년 가까이 생명존중연구소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본인의 공적 경력이 맞나요?


   김안: 네 맞습니다.


   디: 본격적인 면접 질의에 앞서, 자살허용심판관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해 주세요.


   김안: 2033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경제공황 이후 자살하는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홀로 혹은 집단으로 뭉쳐 다니다 숲과 강, 빈집에서 예고 없이 자살을 시도했고,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방치된 시신들 때문에 시민들은 공포와 전염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는 2046년 1월 세계에서 최초로 자살허용법을 제정했고, 자살 허용 여부를 판단할 자살허용심판관을 뽑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생명은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아름다울 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을 부여하는 자리가 자살허용심판관이라 생각합니다.


   트리: 예비심판관님께서 자살허용심판관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요?


   김안: 저는 법조계에서 36년간 근무하면서 선과 악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반평생을 오롯이 선과 악을 판별하는 데 전력을 다해 왔던 만큼 죽음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판단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현재 소장으로 근무하는 생명존중연구소만 봐도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가득 차 더 이상 자살고위험군을 수용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전국 각지에 있는 다른 지역의 생명존중연구소의 상황도 같습니다. 이렇듯 자살고위험군을 보호하지 못하면 앞으로 자살자가 늘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외롭게 길거리와 숲에서 죽어 가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자살허용심판관에 지원했습니다.


   테트라: 답변 잘 들었습니다. 법관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만큼 대한민국에서 가장 청렴한 재판관으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도 받고,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던데, 36년의 공직 생활 동안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전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더군요. 36년 동안 수없이 구형하고 판결을 내렸을 텐데 민원 한번 받은 적이 없어요. 마치 깨끗한 백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김안: 네, 하하. 감사합니다.


   헥사: 뭐 감사까지 하실 일은. 기록상 그렇다는 건데요. 하지만, 저희가 궁금한 건 예비심판관님이 검사가 되기 이전에 관련되었던 사건입니다. 자살허용심판관이란 자리는 죽음을 선고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죽음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지난 공직 생활만이 아니라 전 생애를 심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가장 먼저 예비심판관님이 연루되었던 두 건의 사건에 대해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안: 두 건의 사건이요?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건지?


   펜타: 그건 차차 아시게 되겠지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모양인데, 아마 저희가 질문을 하다 보면 기억하게 될 겁니다.


   김안: 네, 알겠습니다. 성심껏 답변하겠습니다.


   모노: 첫 번째 질문입니다. 1999년 12월 31일 부친의 죽음에 용의자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예상 밖의 질문을 받은 김안은 눈앞이 뿌옇게 번졌다. 마치 하얀 눈송이들이 내려와 시야를 가로막는 것 같았다. 모노가 말한 1999년 12월 31일.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 외할머니 기일이어서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은 먼저 외갓집으로 갔고, 김안은 수업이 늦게 끝나 해가 기울 무렵에야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평소처럼 술에 취한 아버지가 안방에 드러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김안은 아침에 어머니가 당부했던 대로 소반 위에 아버지 저녁을 차리고 부엌 아궁이 속 연탄불을 살폈다. 연탄불이 곧 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김안은 비상용 번개탄을 꺼내 불씨를 살리고 새 연탄을 그 위에 올렸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라 목을 옥죄었다. 숨을 컥컥거리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김안은 연탄 위로 파란 불꽃이 올라올 때까지 신문지를 접어 열심히 부채질했다. 그러다 보니 완전히 어둑해져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술이 깨지 않은 아버지는 기척이 없었다. 김안은 소반 위에 상보를 덮고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외갓집으로 가는 동안 가늘게 뿌려지던 눈발이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굵어졌다. 걸어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외갓집에 도착했을 때쯤엔 눈사람처럼 온몸에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마루턱에 앉아 김안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눈사람이 되어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는 동상에 걸려 빨갛게 부은 김안의 손발을 오래 주무르며 눈물을 훔쳤다.  

   밤새 눈은 그치지 않았고, 늦게라도 술이 깨면 오리라 생각했던 아버지는 파제 때까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외갓집 식구들 볼 면목이 없어 소매 끝으로 눈가를 훔치면서 눈이 너무 와서 못 오시나 보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옷소매로 눈언저리를 훔칠 때마다 화장으로 가린 푸른 멍 자국이 드러났다. 창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어머니도 더 굵어진 눈발과 무릎에서 곤히 잠든 동생을 보고는 결국 이부자리를 폈다. 김안은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다음 날, 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데 너무 고요했다. 으레 방 밖으로 새어 나와야 할 아버지의 고성이 들리지 않았고, 집 안 가득 얼음 같은 냉기가 흘렀다. 어머니가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시큼하면서도 매음하고 뭔지 알 수 없이 혼탁한 냄새가 열린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방 안으로 들어가던 어머니가 입을 틀어막고 미끄러지듯 뒷걸음쳤다. 

   김안은 어머니를 밀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에 아버지가 허연 거품을 가득 물고 잠들어 있었다. 아버지를 부르거나 흔들어 깨우지 않아도 그의 몸에서 생명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몸은 마른 장작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김안: 용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이란 표현이 정확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으니까요.


   디: 아버지가 자고 있는 방 안에서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유서는 없었고, 부검은 가족의 반대로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단언하는 이유가 있나요?


   김안: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셨고, 취하면 죽어 버리겠다고 칼을 들고 와 자해를 하거나 농약을 사다 실제로 마신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칼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말리다 어머니가 베인 적도 있었고, 저희들은 아버지가 사 온 농약병을 숨기느라 곤욕이었습니다. 


   트리: 그런데, 경찰에서는 왜 예비심판관님을 불러 심문을 했을까요? 수사일지에 경찰서에서 8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은 기록이 남아 있던데요.


   김안: 그건 제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본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상황을 진술하고, 혹시나 타살됐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원한 관계와 자살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묻더군요. 어머니가 거의 실신 상태로 제대로 진술하기 힘들어서 제가 자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테트라: 열세 살이면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데, 참 가혹했네요. 어린 나이에 자살한 아버지의 시신을 보게 되다니. 충격이 컸겠습니다. 혹시 그 사건이 이 자살허용심판관을 지원하는 데 동기가 되었나요?


   김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안의 팔뚝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김안은 팔뚝에 맺힌 땀방울이 또르르 손목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김안은 손바닥으로 훔쳐내고 싶었지만 손목이 끈으로 고정되어 있어 그럴 수 없었다.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오른손가락 끝에 매단 검은 전극이 보였다. 면접 보는 데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하다니. 김안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김안이 앉은 쪽에서는 거짓말탐지기 모니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분명 김안의 감정 변화를 초 단위로 그려 내고 있을 터인데, 김안은 조금도 알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거짓말탐지기 모니터만이 아니었다. 

   김안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듣는 심사관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김안이 볼 수 있는 것은 책상 앞에 놓인 아크릴판과 책상 아래로 드러난 하반신뿐이었다. 아크릴판에는 특수거울이 부착되어 김안에게는 그저 불투명한 가림막으로 보이지만 저쪽에서는 김안의 표정을 살필 수 있을 거였다. 

   생명존중연구소에서는 김안이 특수거울 뒤에서 지켜보는 자리였는데, 상황이 완전히 바뀐 셈이었다. 김안은 어서 빨리 면접을 마치고 연구소로 돌아가 폭신한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대고 싶었다. 집보다 연구소를 먼저 떠올리다니. 김안은 씁쓸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긴 아무도 없는 집보다 동료들과 수용자로 북적거리는 연구소가 나을 때가 많았다. 

   김안이 2년째 근무하고 있는 생명존중연구소는 간판은 연구소지만 실상은 자살 시도에 실패한 사람들을 모아 놓은 수용소였다. 생명존중연구소에는 144개의 방이 있었다. 수용자가 기거하는 방은 전면이 유리로 만들어져 어디서든 지켜볼 수 있었고, 방 안에는 침대와 텔레비전 역할을 하는 모니터 한 대만 놓여 있었다. 수용자들은 자살고위험군으로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행여 있을지 모르는 자해와 자살 시도에 대비해 위험 요소들을 제하다 보니 그것만 남은 셈이었다. 수시로 간호사들이 오가며 방 안의 상황을 확인하고, 김안은 방 천장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로 수용자들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지금의 김안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생명존중연구소에 수용된 이들처럼 무방비 상태로 심사위원들에게 관찰당하고 있었다. 김안은 누군가에게 매 순간 관찰당하는 기분이 참담하고 더럽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간 보호소 모니터에서 본 수용자들의 얼굴이 그늘지고 어두웠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헥사: 예비심판관님!


   김안: 아, 네엣!


   헥사: 면접받는 동안은 질문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김안: 아, 네. 죄송합니다.


   헥사: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열여덟 살 때, 다시 살인에 관련돼 진술을 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같은 반 여자아이가 자살을 시도한 사건에 연루되어서요.


   김안: 아아, 네. 기억이 납니다. 같은 반이라고는 해도 말을 건네 본 적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 수첩에 제 이름이 있, 있었다고 해서 한 번 경찰서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물, 물론 참고인이었습니다.


   제기랄, 말을 더듬거리다니. 김안은 얼굴이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심사관들의 질문이 예상 밖이었다. 김안은 심사관들의 질문이 날카로울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설마 공직에 들어오기 이전의 사생활을 낱낱이 파헤칠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그 아이의 자살 시도까지. 김안의 머릿속이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복잡해졌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좋을까? 김안은 타래처럼 얽힌 거미줄을 빠져나오려 애쓰며 기억을 되살렸다.

   그 애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이 들린 건, 성폭행 사건이 있은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8층에서 몸을 날렸지만, 다행히 조경수 가지에 걸리면서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나 머리를 크게 다쳐 의식이 없다고 했다.

   다음 날, 경찰이 학교로 찾아왔다. 그 애의 수첩에 적힌 이름들 사이에 김안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수첩에 이름이 적힌 남학생은 한 명도 빠짐없이 상담실로 불려 들어갔다. 한 명씩 들어가 조사를 받고, 상담실 옆에서 순서를 기다리느라 남은 아이들끼리 어색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도장을 누르듯 눈을 크게 끔뻑거렸다. 

   김안 차례가 되었다. 몸 전체가 뻣뻣해 올 정도로 긴장했는데, 막상 경찰은 ‘그 애와 친했느냐? 최근에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은 없느냐?’ 같은 질문만 했다. 형식적인 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과 학교에서는 그 애를 잊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평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증거가 없잖아요. 뭐. 의식이라도 있어야 물어보지. 그리고, 범인이라고 고발한 것도 아니고 그냥 수첩에 적은 이름들만 가지고 잡아넣을 수는 없잖아요.”

   김안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펜타: 예비심판관님! 그 피해자분 경찰 조사 이후 결국 사망했지요?


   김안: 네에.


   김안이 웃는 걸 보았는지 펜타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김안은 마지막으로 그 애를 보았던 때를 떠올렸다. 경찰들이 다녀간 뒤, 그 애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길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그 애가 깨어났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김안은 그 애가 갑자기 교문을 열고 들어와 왜 그랬냐며 몰아세울까 전전긍긍했다. 

   학교를 마치고, 김안은 그 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휠체어를 탄 그 애가 집 앞에 있었다. 김안은 시선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 그대로 굳어 버렸는데, 정작 그 애는 김안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애는 김안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애는 먼 곳을 향해 허옇게 홉뜬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 애 등 뒤로 이삿짐을 챙기는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가족들이 꽁꽁 동여맨 짐꾸러미를 들고 바로 앞을 분주히 오가는데도 그 애의 시선은 먼 곳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저게 사람이야?’ 혼잣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저렇게 살 바엔 죽는 게 나아.’ 그런 김안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걸까. 그 애는 일주일 만에 정말 죽었다. 휠체어를 탄 채 내리막길 아래로 미끄러져 지나가는 트럭에 부딪혔다. 

   김안은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다만 입관을 마친 그 애의 엄마가 아이의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여 천국에 간 게 분명하다며 울었다는 말을 급우에게 전해 들었다. 

   생명존중연구소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애 꿈을 꾸었다. 처음 만난 날 마른걸레로 유리창을 닦다가 눈을 마주친 김안에게 살짝 웃어 보이던 그 애의 하얀 덧니가 눈부시게 빛났다.


   모노: 네, 잘 들었습니다. 예비심판관님, 그간 공직 생활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자부한다고 들었습니다.


   김안: 한 점의 부끄러움이라고 하니, 민망합니다. 뭐, 늘 조심하며 살았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디: 예비심판관님의 생명존중연구소가 전국에서 가장 퇴소율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에 부임하고 2년 동안 40명을 완치 혹은 자립 갱생 판정으로 퇴소시켰습니다. 이는 다른 지역에 있는 생명존중연구소에 비해 월등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올 말에 포상을 받을 거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김안: 네, 맞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그런 행운도 따르는 것 같습니다. 허허허.


   트리: 그런데, 완치 혹은 자립 갱생 가능의 판정을 받고 귀가한 40명 중 30명이 다시 자살을 시도했거나 실종된 것은 알고 있습니까?


   김안: 네? 처음 듣는 말입니다. 저희 연구소는 퇴소한 자살고위험군에 대해 6개월간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그런 내용을 보고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트리: 네, 그러실 겁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6개월의 모니터링이 끝난 이후에 벌어졌으니까요. 애석한 일이죠. 그 결과는 뭘 의미할까요? 예비심판관님의 퇴소 판정이 잘못된 거였을까요? 


   김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퇴소 판정은 주치의와 충분히 상의한 끝에 내린 결론이고, 모니터링 기간에도 아무 사고 없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다만, 모니터링 기간이 더 길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트리: 그렇군요. 잘 들었습니다. 질문이 많이 남아 있어 더 묻지는 않겠습니다. 심사관들은 예비심판관님의 답변을 하나하나 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질문 이어 가겠습니다.


   테트라: 이번은 시뮬레이션 질문입니다. 저희가 보여 주는 영상을 보고 허용 여부를 앞에 있는 버튼을 눌러 심판해 주십시오. 자살 보류는 하얀색 버튼, 자살 허용은 검은색 버튼입니다. 이 부분이 가장 배점이 높은 만큼 신중히 결정해 주십시오. 시간은 11분입니다.


   테트라의 말이 끝나자 천장에서 하얀 스크린이 내려왔다. 스크린 가운데에 전구 모양의 불빛이 어른거리다 푸르게 번지며 한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는 하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소녀가 누워 있는 방의 풍경이 낯익었다. 김안은 자신이 근무하는 생명존중연구소의 1305호란 것을 알아보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1305호 소녀의 모습은 참혹 그 자체였다. 소녀는 여러 번의 자살 시도로 신체 훼손이 무척 심한 상태였다. 리스트컷 증후군을 앓고 있어 손에 쥔 도구를 활용해 자신의 몸을 찔러댔다. 주치의 말에 의하면 소녀의 전신에 458군데가 넘는 자상이 있다고 했다. 소녀는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가 와서 의식이 없고, 자가호흡이 불가능해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중이었다.

   여기까지는 김안이 자주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혹시 소녀가 자살허용심판 첫 대상인 걸까? 김안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얼굴과 몸. 완전히 망가진 위장기능. 소녀는 더 이상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저런 몸으로 더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김안은 자신의 왼손 앞에 놓인 두 개의 버튼을 보았다. 하얀색과 검은색 버튼이 놓여 있었다. 하얀색은 보류, 검은색이 허용이라고 했다. 김안은 검은색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안 돼!” 

   갑자기 여자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소녀가 누워 있는 1305호실 안으로 머리를 산발한 노파가 뛰어 들어왔다. 

   “제발, 안 돼요.”

   노파는 만류하는 간호사의 손을 뿌리치고 소녀 옆에 앉아 오열했다. 그렇게 한참을 꺼이꺼이 울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물수건을 가져왔다. 보온병에 물을 데우고 그 물을 부어 수건을 적시더니 소녀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벌어진 상처 주변에 묻은 핏자국을 깨끗이 지우고 소녀의 전신을 꼼꼼히 닦아 내고 다 닦고 나자 수많은 생채기에 연고를 일일이 다 발랐다. 이미 의식이 없는 소녀는 노파의 손길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던 간호사가 용기를 내 노파의 어깨를 붙들었다. 노파를 방문 밖으로 잡아끌려고 힘을 주자, 노파는 양팔을 휘둘러 직원의 팔에서 벗어났다.

   “아직, 아직 살아 있잖아요. 제발, 그냥 살게 해 줘요.”

   노파는 엉엉 소리 내어 울며 소녀의 몸 위로 엎드렸다. 그리고 천천히 소녀의 몸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오래 감지 않아 먼지와 기름기가 뭉친 머리카락을 앙상한 손가락으로 빗어 내리고, 소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머리와 이마의 경계선에서 시작된 노파의 입맞춤은 소녀의 발가락까지 이어졌다. 맨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생채기들을 다 지워 버리려는 듯이 노파는 아주 작은 상처까지도 찾아내 입을 맞추었다. 덜 아문 상처에서 나오는 핏물이 노파의 입술에 묻어 빨갛게 물들여도 노파는 입맞춤을 멈추지 않았다. 

   간호사가 차마 그 모습을 더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노파는 발끝에서 끝난 입맞춤을 다시 머리부터 시작했다. 그때였다. 소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처음엔 잘못 봤나 싶어 김안은 눈을 끔뻑 감았다 다시 떴다. 착시현상일 수 있다는 생각에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다시 보았지만, 소녀의 손가락은 분명히 움직거렸다. 노파를 향해 뻗거나 노파의 손을 움켜잡지는 못하지만 노파가 입맞춤을 할 때마다 바람에 흔들리듯 까딱거렸다. 마치 노파의 입맞춤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헥사: 자, 이제 소녀에 대한 심판을 내려 주세요. 소녀가 다시 깨어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설사 기적적으로 깨어난다고 해도 이미 손상된 소녀의 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고, 망가진 장기 때문에 식이와 배변도 정상적이지 못할 것입니다. 

ㅍ소녀의 보호자는 화면 속에 있는 할머니가 유일합니다. 할머니 역시 암 말기 판정을 받아 몇 년 이내 사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할머니마저 떠나면 소녀를 돌봐 줄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활이 불가능한데 보호자마저 없다. 이 경우, 어떤 심판을 내릴 수 있을까요?


   펜타: 결정할 시간을 11분 주겠습니다. 11분이 되기 전에 허용 여부를 결정하고, 앞에 놓인 버튼을 눌러 주세요. 심판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비심판관님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예상이 맞는가를 판단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카운트다운하겠습니다. 심판의 버튼을 눌러 주세요.


   김안은 눈앞에 있는 버튼을 보았다. 사실 김안은 영상을 보기 전부터 마음을 굳혔다. 영상 속에 누운 소녀의 모습은 이미 봤던 것이다. 다만 할머니가 나오는 영상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놓쳤을까. 김안은 조금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안의 결정이 달라질 필요는 없었다. 다만 김안이 망설이는 이유는 심사관들이 어떤 결정을 원하는지를 알지 못해서였다. 굳이 울고불고 피를 묻혀 가며 손녀의 몸에 입맞춤하며 오열하는 할머니를 보여 주는 이유가 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만약 김안이 소녀를 살려 주기를 원해서라면 김안은 다시 판단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자살 허용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심각하게 대립했다. 반대 의견은 인간의 존엄성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는 생명은 무조건 보호되어야 한다고 했고, 찬성하는 쪽에서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줘서 고립되어 썩어 가기보다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결말을 강조했다. 그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섰다. 사실 생명존중연구소 안에서도 두 의견은 팽팽히 맞섰다. 김안은 물론, 길거리나 숲에 버려져 짐승의 먹이로 전락할 바에는 온전한 상태로 숨을 거두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었다. 죽지 못해 사는 경우나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경우가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했다. 


   모노: 5분 남았습니다.


   김안은 맞은편 심사관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이제 심사관들과 자신을 가로막은 아크릴-판에 허옇게 김이 서려 더 견고하고 아득해 보였다. 시곗바늘 방향으로 앉아 있다고 했으니 방금 말한 모노란 이는 가장 왼쪽에 앉아 있을 거였다. 그렇다면 마지막 순서인 펜타는 오른쪽 끝에 있을 거였다. 

   김안은 시선을 돌려 펜타가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미 예비심판관님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예상이 맞는가를 판단할 것입니다.’라는 그의 말이 계속 거슬렸다. 


   디: 2분 남았습니다.


   디의 목소리는 높고 낭랑했다. 그래서 마치 재촉하는 것처럼 들렸다. 김안은 디의 목소리가 들리자 쫓기듯 손을 내밀었다. 짓말탐지기가 연결되지 않은 오른손 앞에 하얀색 버튼과 검은색 버튼이 있었다. 김안은 검은색 버튼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검지와 중지에 힘을 주어 버튼을 누르자 쉬익,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트리: 네, 김안 비자살허용심판관님은 허용 버튼을 누르셨습니다. 맞습니까?


   김안: 네.


   트리: 실제로 영상 속의 소녀는 이 영상에 찍힌 나흘 뒤에 사망했습니다. 누군가 소녀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습니다. 소녀의 할머니는 발인이 끝난 뒤 목을 맸습니다. 함께 묻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요. 2명의 생명이 며칠 간격으로 사라졌습니다. 더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트리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김안은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사관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던 것일까? 김안은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걱정이 되었다.


   테트라: 예비심판관님, 이제 40건의 심판이 남아 있습니다. 심판 대상자들은 예비심판관님의 연구소에서 판정을 받고 퇴소한 수용자들입니다. 퇴소 이후 상황을 짤막하게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그 영상을 보고 자살 허용 여부를 심판해 주세요. 이번에는 그 이유도 말해 주세요. 이제 저희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자, 그럼 김안 예비심판관님의 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뭐, 40건의 심판을 더 해야 한다고. 김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김안은 항의하려고 고개를 쳐들었다. 심사관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노려보았지만, 어느새 전등이 꺼지고 무거운 어둠이 그곳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김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안은 전극이 달리지 않은 왼손으로 의자에 묶인 오른손을 풀려고 했다. 그러나 김안의 왼손도 의자에 묶여 있었다. 

   김안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늘 그래 왔듯이 살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죽을 기회를 줬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죽음보다 못한 삶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마저 없는 사람들을 돕는 게 자살심판관의 임무이다. 김안에게는 더없이 적합한 일이었다. 

   김안은 여전히 암흑에 잠긴 심사관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심사관님, 내가 최고의 자살심판관입니다!”

   목청을 쥐어짜 쇳소리가 섞였지만 충분히 방 바깥까지 들릴 정도로 또렷하고 우렁찼다. 김안은 방 안에 메아리치는 자신의 목소리에 흡족해하며 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 안을 무겁게 짓누르는 어둠을 뚫고 하얀 스크린이 내려왔다. 스크린이 밝아지면서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김안은 심판을 내리기 위해 몸을 앞으로 당겼다. 하얀색 버튼과 검은색 버튼이 손가락만 뻗으면 되는 거리에 있었다. 김안은 검지를 검은색 버튼 위에 천천히 올려놓았다. 




추천 콘텐츠

문장, 콤마 소설

멜들다

멜들다 양혜영 멜*이 들어왔다. 강 선주가 포구 안으로 들어온 멜 떼를 발견했다. 강선주는 포구에 매어 둔 배를 살피러 나왔다가 방파제 아래 바닷물이 은색으로 팔딱이는 것을 보고 멜 떼가 들어온 걸 알았다. 강 선주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양동이와 족대를 챙겨 나오며 멜이 들어왔다고 마을 안쪽을 향해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소도리 포구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급히 나오느라 베개에 눌린 머리와 엉덩이께 대충 걸친 바지 차림을 하고도 양손 가득 뜰채와 양동이를 들고 나오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랑이가 젖는 것도 아랑곳 않고 바닷물 속으로 텀벙텀벙 들어가 뜰채로 멜을 건지기 시작했다. 사방에 은빛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아이구, 이제랑 좀 앉아 쉬어 보카” 일찍 멜을 발견한 덕에 양껏 멜을 건진 강 선주가 슬그머니 방파제 한쪽에 술자리를 벌였다. 그 모습을 본 남자 서넛이 뜰채를 넘기고 방파제로 올라와 강 선주 옆에 앉았다. “아이고, 맛나다.” 검지 끝으로 멜의 꼬리지느러미를 잡아 입 속에 털어 넣으며 장 씨가 웃었다. “그냥 녹암쪄, 녹아.” “입 속에서 꿈틀꿈틀 헤엄쳠서.” “아이고, 맛 좋다. 맛 좋아.” 누가 채여 가기라도 할 것처럼 남자들은 쉴 새 없이 멜을 집어 먹었다. 멜이 수북이 쌓였던 접시가 어느새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아이고, 다 떨어지기 전에 여기들 왕 한잔씩 합써.” 강선주가 선심 쓰듯 바다에서 멜을 건지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좀 조용헙써! 바당 전세 냈수과!” 갑자기 강 선주를 향해 볼멘소리가 날아왔다. 대성호를 모는 박 선주였다. 민망해진 강선주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박 선주를 쏘아보았다. 박선주도 강선주의 눈을 피하지 않고 한판 붙을 기세로 노려보았다. 옆에 있던 박 선주의 아내가 황급히 박 선주의 팔꿈치를 낚아챘다. “그냥 멜이나 건집써. 시간 아깝수다.” 아내의 말에 박 선주가 고개를 돌리고 다시 멜을 건지기 시작했지만, 잔뜩 굳은 어깨가 못마땅한 심사를 그대로 드러냈다. 강 선주는 그런 박 선주의 뒤통수를 계속 노려보다 바지통을 잡아끄는 일행의 손끝에 못 이긴 척 앉았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보통 멜 떼가 머무는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웬만한 소도리 포구 사람들은 죄다 포구에 나와 있었다. 이미 강 선주와 박 선주 사이가 껄끄럽다는 소문을 아는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둘을 힐끗거렸다. 강 선주는 그런 사람들의 눈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아 눌렀다. 포구 사람들 사이에 끼어 멜을 건지던 정순도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둘 만큼이나 정순도 그들과 껄끄러웠다. 몇 년 전 화재 보상 문제로 생긴 앙금이 다 풀리지 않은 탓이었다. 한숨을 쉬며 시선을 내리자 바닷물 속에서 희끗거리는 멜 떼가 보였다. 정순은 손을

  • 2023-11-15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