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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 작성일 2024-11-05

   럭키

장진영


   냉동실을 여니 증거물 봉투가 보였다. 질기고 불투명한 봉투 안에 핫도그가 아주 많이 들어 있었다. 얼굴로 냉기를 받으며 잠시 멈추었다. 증거물9: 핫도그(아주 많은).

   “여자친구가 핫도그 백 개 사 줬어.” 운석 오빠가 트렁크 팬티 차림으로 화장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샤워한 참인지 한 손에 수건을 들었고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핫도그 싫어하는데. 너 좀 가져갈래?”

   운석 오빠는 몸이 더 불어 있었다. 2미터 가까운 키에 지진이 나도 안 부러질 것 같은 뼈에 엄청난 근육질이었는데 지방까지 붙어서 더 압도적이고 과다해 보였다. 상냥하지 못해 보였다. 솔직히 내가 환장하는 타입의 몸이었다. 구구절절 없이 단박에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몸. 나는 0.1초가량 운석 오빠의 팬티를 바라봤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상상했다. 마찬가지로 클까? 포경수술은 했을까?

   그러다 혼자 사는 집에서 샤워하러 들어가는데 팬티를 챙기는 습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오기로 되어 있었으니 그랬겠지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았다. 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샤워할 때 갈아입을 옷을 챙기지 않기까지 오래 걸렸다. 누가 알려 주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 어려운 버릇인데 누가 알려 주려면 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러려면 이미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설명하기 어렵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샤워하고 나갔을 때 단 한 순간도 밖에 사람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단 한 순간도. 그러다 혼자 살게 되었다. 버릇은 오래 갔다. 버릇인 줄도 몰랐으니까. 깨달음의 순간은 계시처럼 찾아왔다. 알몸으로 나와 물기를 자연 건조시키는 건 어안이 벙벙할 만큼 기분 좋은 일이다. 습한 데서 땀 흘리며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특히 팬티는 최대한 늦게 입는 게 좋다. 운석 오빠에게도 알려 줄까 하다가 말았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편이 더 멋질 듯했다.

   “운석 오빠 뚱뚱해.” 대신 그렇게 말했다. “뒤룩뒤룩해.”

   “헬스 못 가서 더 뚱뚱해졌어.” 운석 오빠는 별로 기분 나빠 하지 않고 인정했다.

   “핫도그 먹고 그렇게 됐어?”

   “응. 너 핫도그 좀 가져가라.”

   운석 오빠가 머리를 말리는 동안 나는 집 탐색을 이어 갔다. 사랑의 증거가 보관된 냉동실 문을 닫은 다음 그 아래 냉장 칸을 열어 보고, 싱크대 찬장을 열어 보고, 수저통을 열어 보고, 옷장을 열어 보고,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 봤다. 언젠가 운석 오빠가 말했던 것처럼 다 열어 봐야 속이 시원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무얼 궁금해하는지 알고 있었다. 신경은 이미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리로 가는 시간을 충분히 음미하고 싶었다.

   배달 음식 박스를 발로 밀치며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못 보던 물건이 있었다. 전자피아노였다. KURZWEIL. “크루즈··· 웨일?”

입속말이었는데 운석 오빠가 문 너머에서 커즈와일! 외쳤다. 직접 가져갈 수만 있다면 공짜로 준다는 글이 중고마켓에 올라왔다고 했다. 커즈와일의 주인은 할머니였는데, 치매로 요양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중학생인 손자가 글을 올렸다. 버리는 데 힘과 돈이 들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손자를 맨날 찾아와서 귀찮게 구는 옆집 아저씨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리스트의 〈위안〉만큼은 미스 터치 하나 없이 완벽하게 연주해 냈다. 운석 오빠는 예약해 둔 용달을 취소하고 운임을 할머니에게 주었다. 근사한 공연에 대한 답례로. 피아노는 그냥 둘러메고 왔다. 그날 이후로 십자인대 통증이 더 심해진 것 같다고 했다. 드라이기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렸지만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팬데믹이라 결혼식 미뤄졌잖아.” 운석 오빠가 방문을 열어젖히고 말했다.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 들어 봤지? 시간도 생겼겠다 연습해서 결혼식 날 들려주려고.”

   “도레미파 알아?”

   “결혼은 다음에 하고 피아니스트 되려고.”

   “한번 뽐내 봐.”

   운석 오빠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손목을 풀었다(아직 트렁크 팬티 차림이었다). 목뼈를 꺾어 으득으득 소리를 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 같았다. 운석 오빠는 시작할 듯 시작하지 않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떨려 죽겠다며 나가서 들으라고 했다.

   찬스였다. 나는 긴장 풀라고 응원해 준 뒤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커즈와일의 방에서 나와 괜히 냉동실 문을 한번 열어 보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약간 서성이다가 침대에 앉아 쿠션감을 확인했다. 침대 밑에서 아디다스 운동화 박스를 꺼냈다.

   마침내 시작된 우울한 장송행진곡을 들으며 뚜껑을 열었다. 지난번 확인했을 때와 수량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뭐든지 대용량으로 구매하는 새언니는 핫도그뿐 아니라 콘돔도 백 개씩 샀다. 설마 다 쓰고 다시 산 건 아니겠지. 나는 가슴 두근거리며 사가미 오리지널 0.01을 만지작거렸다. 초박형··· 남의 성생활이 나는 왜 궁금한 걸까?

   예비 새언니는 운석 오빠보다 어리고 나보다도 어린데, 벌써 결혼도 하고 섹스도 백 번 할 예정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 이상했다. 청약통장을 갖고 실비보험을 드는 것만큼이나 어른스러운 일처럼 여겨졌다.

   나도 남자와 자 볼 기회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점장이 내 못생긴 외모를 무릅쓸 용기를 냈다. 시급으로 쳐주겠다는 선심까지 썼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점장은 불을 모조리 끄고 편의점 문을 걸어 잠갔다. 개점 이래로 한 번도 닫아 본 적 없었는데 나를 위해서라고 했다. 본사의 페널티를 감수할 정도로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주장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거짓말이라면 그것대로 좋았다. 잘 보이고 싶다는 뜻이니까. 나는 워크인으로 들어가 바지를 벗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기대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냉장고 안에서 첫 경험을 한 여자가 세상에 있을까? 특별해지는 기분이었다. 코카콜라와 스프라이트 사이로 매장 밖이 보였다. 전조등을 켠 자동차가 지나갔고, 버스가 지나갔고, 행인이 불 꺼진 편의점을 의아하다는 듯 흘깃대며 지나갔다. 도로 맞은편은 점장의 둘째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였다. 티셔츠에서 머리를 빼내려는데 점장이 팔을 잡았다. 워크인 조명을 따로 끌 수는 없다고 했다. 조명을 끄려면 냉장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말인즉 얼굴을 가리라는 뜻이었다.

   첫 경험은 미수로 끝났다. 얼굴을 가리고 할 수도 있었지만···

   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점장은 왜 안 나오느냐고 연락하지 않았다. 딱 일주일 뒤 월급이 입금되었다. 워크인에서의 5분을 어떻게 정산했는지는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시급이 4300원이었으니까 358.333333···원, 소수점 첫째 자리 반올림하면 358원, 원 단위 절사하면 350원. 모르겠다. 모아 두었던 돈에 350원이 포함되거나 누락된 월급을 더해 신사동의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부기를 빼 준다는 호박즙을 빨아 먹으며 선글라스 안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놀랍게도 나는 내 외모에 대해서 그때까지 별로 문제의식이 없었다. 다만 앞으로는 티셔츠를 뒤집어쓰고 섹스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번거롭고 숨 막힐 테니까. 쌍꺼풀만 했는데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유전이었을까, 거울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그거였다.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재빨리 뚜껑을 닫고 운동화인 척하는 콘돔 박스를 침대 밑에 밀어 넣었다.

   “잘 들었어?” 운석 오빠가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레퀴엠 같았어.”

   “역시.” 운석 오빠는 레퀴엠이 뭔지 모르는 듯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핫도그 두 개를 전자레인지에 집어넣었다.

   “수술 몇 시야? 안 서둘러도 돼?” 오늘 십자인대 수술을 받기로 한 터였다. 어릴 때 축구하다가 다쳤는데, 이제야 기회가 왔다. 십자인대는 전량 수입하는 부위라고 들었다. 외국 어딘가에서 운석 오빠만 한 거구가 죽었다는 뜻이었다.

   “내일로 미뤘어. 어차피 너 병원 못 들어가. 코로나 때문에 가족도 못 들어온대.”

   “그럼 왜 오라고 한 거야?”

   “반장님한테 오늘 수술한다고 뻥치고 휴가 받았어.” 운석 오빠가 제복을 입으며 말했다. “너 나랑 어디 좀 가자.”

   전자레인지가 땡 하고 울렸다.


   며칠 전 반장은 폐기일이 지난 증거물을 국과수에 보냈다. 장난삼아 한 일이었다. 변사사건으로 출동했던 인원들이 시체와 함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음성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에서 해제된 시점이었다. 형사3팀은 형사과 네 개의 팀 중 최하위 실적이었다. 그런 데다 코로나 해프닝이 겹쳐 분위기가 침울했다. 반장은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은 뒤부터 미니멀리즘 라이프 스타일에 꽂혀 있었고, 집뿐 아니라 일터의 물건도 비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출근할 때마다 마음이 갑갑했기 때문이다. 숙청 대상 1순위는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증거물이었다. 폐기 전, 국과수를 떠올린 건 초짜 미니멀리스트가 일으킬 법한 변덕이었다.

   강도 교살 건이었다. 케이블 타이에서 검출된 DNA가 인천교도소에 수감 중인 잡범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5년 7월 31일,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이른바 태완이법 법안이 발효되었는데, 개정안 시행일 기준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사건을 소급했다. 소급된 사례는 5년에 걸쳐 두 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반장의 변덕이 형사3팀을 구원했다.

   새로운 국면이었다. 교활한 긴장감이 흘렀다. 운석 오빠는 팀원들의 눈빛에서 광기를 읽었다. 승진에 대한 광기였다. 어린 피해자의 이제는 늙은 부모는 그 광기를 사명감으로 오해했다. 운석 오빠는 환멸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케이블 타이에 목 졸려 죽었지 않은가? 보통 승진은 계급당 한 사람씩 하는 게 관례였다. 형사3팀은 총 다섯 명이었고, 운석 오빠는 경장이었다. 팀에 1개월 선배인 경장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운석 오빠를 이 모든 일에 초연하게 만들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반장이 인터뷰를 대비해 리프팅 시술을 받고 온 날, 운석 오빠는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첫 번째는, 예식장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예식일을 미뤄야 한다는 통보였다. 내년 봄으로 미뤘다. 되는 일이 없었다. 무력했다. 그날 운석 오빠는 중고마켓에서 커즈와일을 구매했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연주하는 리스트의 〈위안〉을 들으며 조금 울었다. 작은방에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전자피아노를 내려놓은 다음 무릎을 붙잡고 뒹굴었다. 그때 두 번째 전화가 울렸다. 척추관절병원이었다. 스웨덴에서 장신의 남성이 사망했고, 십자인대가 한국으로 공수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축하드려요, 간호사가 말했다. 운석 오빠는 목요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간호사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가족 한 명만 간병인으로 입장할 수 있다고 알렸다. 가족관계증명서와 신분증을 지참하라고 했다.

   다음날 운석 오빠는 광기의 분위기 속에서 두 달 병가를 냈다. 당장 그 주 목요일부터 두 달이었다. 팀 전체가 전에 없이 바쁜 상황이었고, 갑작스러웠으나, 사안의 특수성이 감안되어 결재가 났다. 운석 오빠는 내게 전화해 수술 소식을 알렸고, 간병을 부탁했다. 한우를 사 주겠다고 했다. 나는 수락했다. 전화를 끊은 뒤에야 운석 오빠는 동행인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지참하라던 간호사의 음성을 기억해 냈다. 내가 생물학적 가족이되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온 우주가 자신을 한곳으로 등 떠미는 것 같았다. 운석 오빠는 수술을 하루 미뤘다.

   그리고 오늘이 목요일이었다.

   “예, 반장님. 지금 병원 도착했습니다. 예. 예.” 운석 오빠가 조수석에 앉은 내 허벅지를 핫도그 꼬챙이로 찔렀다.

   “최운석 환자분 들어오실게요.”

   출근도 안 하는데 왜 운석 오빠가 제복을 입었는지 알 것 같았다. 처음 봤을 때도 운석 오빠는 제복 차림이었다. 조폭이나 사기꾼으로 오해할까 봐 그랬다는데, 솔직히 옷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만 해도 근육맨이 지금처럼 각광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운석 오빠가 우려했던 대로 겁을 먹었다.

   운석 오빠는 자기가 내 친오빠라고 주장했다. 나를 찾으려고 형사가 된 건 아니지만 형사가 되고 나니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물론 사적 용도의 신원조회는 불법이었다. 비교적 쉽게 불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당시 나는 오빠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상태였다. 쌍꺼풀 수술로 눈이 퉁퉁 부은, 성교에 실패한 분별없는 계집애에 불과했다. 배 나온 대머리 할아버지가 와서 내 아들이라고 주장했더라도 아마 부둥켜안았을 것이다. 운석 오빠는 나보다 네 살 많았고, 좀 더 많은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부인하기 어려운 몇 가지 객관적 증거와 낭만적인 증거를 준비해 올 수 있을 만큼은. 결과적으로는 헛된 노력이었다. 운석 오빠 얼굴은 내 성형 전과 완벽하게 같았다.

   운석 오빠는 남아를 비선호하는 입양 시장에서 잘 풀린 케이스였다. 남자였고, 갓난아기가 아니었음에도 한국인 부모에게 입양되었다. 좋은 가정에서 외동으로 기복 없이 자랐다. 내 경우에는 운석 오빠보다 여러모로 유리한 조건이었다. 만 여섯 살 때 파양되지만 않았더라면. 그분들이 나를 왜 내쳤는지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못생겨서. 선택했을 땐 중국 인형처럼 예뻤는데 자라면서 못생겨졌을 것이다. 전적으로 디자인이 중요한 시장이었다. 그게 거의 전부였다. 기구한 사연이야 많았겠지만 들을 필요도 없었다. 단순 변심. 그때는 그런 일이 흔했다. 물론 흔하다는 게 내게 일어나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보육원으로 돌아갔을 땐 시기를 놓친 상태였다. 다시 입양될 가능성은 제로였다.

   아양 떨지 않아도 되어서 마음은 편했다. 쇼윈도에 나를 진열하지 않아도 되어서. 무구한 표정을 연습하지 않아도 되어서. 버려질 아기는 매해 태어났다. 나는 기다렸다. 새로운 부모나 나를 파양했던 부모가 아니라 내게 못생긴 유전자를 물려준 친엄마를. 맡겼던 아이를 되찾으러 오는 부모들이 드물게 있었다. 조금이라도 추억이 있는 경우에 그랬다. 맡겨졌을 당시 나는 갓난아기였다. 추억이 없었다. 운석 오빠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나는 궁금했다. 왜 운석 오빠까지 버렸을까?

   운석 오빠의 부모님은 친모를 찾기만 한다면 혼주석에 의자 세 개를 놓아도 된다고 말할 만큼 쿨한, 쿨하다 못해 추운 분들이었는데, 나를 입적하는 일에 대해서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해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운석 오빠였다. 가족이 드래곤볼도 아닌데 왜 모으고 다니나. 왜 괜한 일을 꾸미나.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창피하게 만드나.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자 운석 오빠는 차라리 자기가 결혼해서 나를 딸로 입양하겠다고 했다. 미친놈이었다.

   운석 오빠가 핫도그를 문 채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았다. 멀지 않았다.

   “운석 오빠.”

   “어.” 운석 오빠가 대꾸했다. “운석 오빠 말고 그냥 오빠라고 해.”

   “운석 오빠 말고 그냥 오빠.”

   “운석 오빠 말고 그냥을 빼고 그냥 오빠라고 하라고.”

   “운석 오빠 말고 그냥을 빼고···”

   “말해.”

   “운전 내가 해도 돼?”

   운석 오빠가 허를 찔린 사람처럼 숨을 들이마셨다. 면허 취득 이후 나는 총 2회 차를 빌려 주행했는데, 한 번은 가로수를 들이받았고 한 번은 정차해 있던 메르세데스 벤츠를 쳤다. 살짝 닿았을 뿐인데 벤츠 차주가 입원을 했다. 심지어 그는 차에 타고 있지도 않았다!

   운석 오빠가 차 키를 건넸다. 보험회사로 전화를 걸어 하루치 보험을 들었다. ‘누구나 보험’, 그 이름이 늘 마음에 들었다.

   “위기를 기회로.” 운석 오빠가 다짐했다.

   우리는 자리를 바꿔 앉았다.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신세계백화점이 보여 들어갔다. 즉흥적인 척했지만 계획된 동선임이 자명했다. 주차는 운석 오빠가 해 주었다. 쉬운 것만 해도 된다고 했다. 적당한 때 만나기로 하고 잠시 헤어졌다.

   1층을 둘러보았다. 평일 낮이라 한산했다. 손님보다 직원이 많았다. 뭐 하는 사람들일까? 오늘은 나도 뭐 하는 사람이었다. 백화점은 좋은 냄새가 나고 환하고 반짝반짝했다. 왠지 주눅 들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산책하듯 몇 바퀴 빙빙 돌았다. 제발 말 걸지 말아 주세요, 기도하며 아무 매장이나 들어갔다.

   슈에무라였다. 가장 알록달록해 보이는 구간에 섰다. 거기서 거기지만 조금씩 다른 색깔의 아이섀도가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다. 인가를 습격하는 곰이 된 기분이었다. 당분간 테스트가 불가하다는 안내가 곳곳에 적혀 있었다. 훔치러 온 것도 아닌데 가슴이 떨렸다. 화장에는 문외한이었다. 야구나 바둑처럼 평생 모를 룰이었다. 호박보다 나쁜 건 줄 그은 호박이라고 생각해 왔다. 관심 없다고 여기는 편이 마음 편했다.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다가와 살갑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뭐랄까, 기절할 만큼 아리따웠다.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도리어 신비로워 보였다. 당장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눈이 크셔서 붉은 계열은 부어 보일 거예요.”

   “성형한 거예요!”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천사가 웃으며 내 엉덩이와 허리 사이에 손을 얹었다. “뭐가 중요해요. 저도 살짝 집었어요.”

   하반신에 화상을 입은 듯했다. 지금까지 누가 나를 만진 적이 있었던가. 결코.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원했는가 하면, ‘터치미’라는 상표의 바디로션을 바를 정도였다. 심지어 편의점 점장도 나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삽입만 하고 싶어 했다. 뽀뽀부터 해요, 티셔츠 속에서 웅얼거렸지만 점장은 못 들은 척했다.

   직원이 제품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기 집에 초대해 아끼는 보석을 꺼내 보여 주는 사람 같았다. 애정과 자부심이 엿보였다.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노래처럼 들렸다. 귀하고 신성한 새의 지저귐 같았다.

   “실은 선물하려고요. 엄마한테요.” 엄마라는 단어를 처음 발음해 봤는데 어색하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엄마한테요.”

   “착해라!” 직원은 나보다 어릴 게 분명했는데, 꼬마에게 하는 것처럼 말했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동안이 아님에도 그랬다. 못생기면 어려 보이나. 섹스를 못 해서인지도. 무엇이 사람을 어른으로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예의 바르게 미소 지었다.

   “혹시 어머님도···” 직원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펼쳐서 자기 눈 위에 부채처럼 드리웠다. 성형했느냐는 뜻이었다.

   “아닐 거예요. 아마도.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만나거든요.”

   직원이 내 눈을 골똘히 들여다봤다.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눈빛이었다. 저쪽은 내 잘못을 알고 있는데 나는 모르는, 무엇부터 자백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의 눈빛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뭐라도 변명해야 할 것 같았다.

   “만나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빠가 수술한다고 해서 왔다가, 아니 성형 말고 십자인대요···” 말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조차도 모를 지경이었다. 직원이 카운터에서 스툴을 꺼내 와 나를 앉혔다. 나는 앉아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주절댔다.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가 뒷걸음질하며 나갔다. 말이 많다는 이유로 맞아 본 적 있으신지. 나는 있다.

   “버려 드릴까요?” 직원이 내 콧물 묻은 티슈를 버리러 가다가 뒤돌아 물었다.

   나는 손을 내려다봤다. 핫도그 꼬챙이가 들려 있었다. 지휘자나 마법사처럼 흔들면서 지껄였던 모양이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괜찮아요.”

   잠시 후 60만 원어치 아이섀도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슈에무라에서 나왔다.

   운석 오빠는 조수석에 잠들어 있었다.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고 시트에 등을 기댔다. 잠시 운석 오빠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피곤해 보였다. 깨우고 싶지 않았다. 스미듯 저절로 깨기를 바랐다. 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하나. 저렇게 피곤할 거면. 정말 기회인가. 비릿하고 짭짤한 냄새에 돌아보니 뒷좌석에 죽방멸치 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나 만날 때는 굴비 사 왔었는데. 안 구워도 되는 줄 알고 그냥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렸다. 나중에 얘기했더니 보리굴비를 사 줬다.

   “안 가?” 운석 오빠가 물었다.

   “자는 줄 알고.”

   “안 잤어.”

   운석 오빠가 주차권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깜빡했다고 했다. 나도 받지 않았다. 주차권을 받아야 하는 줄은 몰랐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슈에무라에서 아이섀도를 한 무더기나 샀는데 주차비까지 내야 했다. 다시 다녀온다고 했더니 그냥 가자고 했다. 게이트에서 운석 오빠가 나를 가로질러 만 원을 내밀었다. 나는 거스름돈을 받아 운석 오빠에게 건넸다.

   “나 백 원만.”

   운석 오빠가 거스름돈을 다 주려고 했다. 나는 그냥 백 원만 달라고 말했다. 운석 오빠가 백 원을 줬다. 왜냐고 묻는 법이 없어 좋았다. 엄마에게도 왜냐고 묻지 않겠지. 왜 그랬느냐고. 나도 오늘은 ‘왜’에서 놓여날 작정이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 테니까. 동전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학교마다 ‘백 원만’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그게 나였다. 어린이로서 백 원은 굉장히 큰돈이었다. 얻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운이 매일 나쁜 건 아니었다. 도망치려고 양말에 모았다. 잘 때도 품고 잤다. 어느 날 돌아와 보니 없었다. 처음에는 벽을 보고 다섯 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몇 가지 다른 잘못을 실토한 후에야 알았다. 돈이 없어서 힘든 적은 없었다. 네 것과 내 것을 구분하는 행동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백 원만.”

   “아까 줬는데?”

   “그럼 오십 원만.”

   운석 오빠가 내 오른쪽 손바닥에 동전을 올렸다.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서늘하고 단단했다. 럭키.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졌다. 특별할 것 없는 주택가였다. 낮은 건물과 상점들. 이렇게 흔한 데서 얼마나 흔하게 살았나. 길이 좁고 굽었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쳤던 데가 딱 이랬다. 핸들에서 손이 미끄러지려고 했다.

   “고깃집 갈 거야.” 운석 오빠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소고기 시키는지 돼지고기 시키는지 볼 거야.”

   “왜?” 아차. 또 ‘왜’라고 했다.

   “엄마라면 소고기를 사 주고 싶어 할 테니까.”

   “유치하다.”

   “사랑은 유치한 거야.” 운석 오빠가 내비게이션을 종료했다. “주차해 줄까?”

   목적지 부근이었다. 나는 주변에 벤츠가 없는지 살폈다.


   운석 오빠가 골목에서 통화를 하고 왔다. 엄마가 늦는다는 전언이었다.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어디 들어가 있으라고 했단다. 우리는 꽃집과 복권방 사이에서 담배를 피운 뒤 장소를 물색했다. 고깃집이 몇 군데 보였다. 배고팠다. 고양이가 자동차 밑에서 우리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지켜봤다. 때리지 마세요, 어딘가에서 아이가 울었다.

   “저기 갈까?” 운석 오빠가 가게 하나를 짐짓 가리켰다.

   “한우전문점인데.”

   “뭐야.” 낙심한 말투였다. “똑똑하네.”

   우리는 소와 돼지를 같이 파는 가게를 찾아다녔다. 휴업 중인 곳이 많았다. 시간이 일러 아직 안 연 곳도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엄마는 엄마였고, 엄마가 아니었다.

   “경찰 아저씨.” 아까부터 우리를 미행하던 남자애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꼬질꼬질한 꼬마였다.

   운석 오빠가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무릎이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

   “엄마가 때려요.”

   뭘로? 손으로. 어디를? 엉덩이를. 몇 대? 세 대. 자주? 숙제 안 할 때, 그러니까 매일.

   “아저씨가 잡아갈까?”

   아이가 멈칫하더니 집으로 도망쳤다.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시장이 있었다. ‘고기구이’라는 상호의 가게에 들어갔다. 4인용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남는 의자에 죽방멸치 상자와 슈에무라 쇼핑백을 놓았다. 운석 오빠가 엄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동안 나 몰래 꽤 자주 연락을 주고받은 듯했다. 운석 오빠가 스테인리스 컵 세 개에 물을 따랐다.

      “주문하시겠어요?” 종업원이 물었다.

   “일행 오면 할게요.” 운석 오빠가 대답했다.

   혼자 온 아저씨들이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국밥을 먹고 있었다. 소주를 곁들여서. 우리는 물을 홀짝이며 기다렸다. 가끔씩 현관문 쪽을 봤다. 천장에 걸린 대형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왔다. 시간이 게으르게 갔다. 종업원이 눈치를 줬다.

   “운석 오빠, 나 먼저 갈게.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깜빡했네.”

   “반장님이다.” 운석 오빠가 텔레비전을 보며 말했다.

   화면 속에서 형사가 태완이법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케이블 타이로 교살’이라는 자막이 파란 바탕에 하얀 글자로 흘렀다. 우측 상단에 살인범의 사진이 타원형으로 떠 있었다.

   “너희구나.” 웬 여자가 불쑥 나타났다.

   우리는 점프하듯 일어났다. 의자가 쿠당탕탕 넘어졌다. 아저씨들이 이쪽을 봤다가 다시 국밥으로 돌아갔다. 운석 오빠가 재빨리 의자를 세우고 자리를 수습했다. 그런 다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늦었네. 빨래 돌리고 나오느라.”

   나는 운석 오빠와 나란히 앉았다. 엄마와 선물들이 맞은편에 앉았다. 종업원이 주문을 독촉하기 위해 다가왔다.

   “저는 아무거나요.” 운석 오빠가 말했다.

   “저도 아무거나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동시에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가 난처하다는 듯 벽에 붙은 메뉴판을 읽었다. 평생의 시간이 흘렀다.

   “삼겹살로 줘요.” 엄마가 주문했다.

   운석 오빠는 시체처럼 미동이 없었다. 마음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모르는 척 한우전문점에 갈 걸 그랬다. 엄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속삭였다. “우리가 내는 줄 알고 돼지고기 시킨 것 같아.”

   “그래.” 운석 오빠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자리로 돌아온 엄마는 화장실이 더럽다며 투덜거렸다. 젖은 손을 티슈로 닦고, 그 티슈로 테이블을 닦고, 벨을 눌러 물티슈를 달라고 한 다음 물티슈로 손을 닦고, 또 테이블을 닦고, 굉장히 부산스러웠다.

   “며칠 전에 저희 반장님이 폐기일 지난 증거물을 국과수에 보냈습니다. 장난삼아 한 일이었습니다···” 운석 오빠가 아침에 내게 했던 얘기를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공소시효, 예식장, 커즈와일, 〈위안〉, 스웨덴, 십자인대, 가족관계증명서. “···오늘은 목요일입니다.”

   연습했구나.

   엄마는 고기를 뒤집으며 건성으로 얘기를 들었다. 뭐 어쩌라는 거냐는 듯. “다 익었네. 먹어요.”

   물색없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불에 구운 음식을 오랜만에 보았다. 평소에는 과자나 초콜릿처럼 열량 높고 포만감 적은 음식만 먹었다.

   우리는 묵묵히 식사를 했다. 별로 할 얘기가 없었다. ‘왜’를 제외하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엄마는 지루해하는 기색이었다.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실망감도 들지 않았다. 고기가 맛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엄마보다 고기가 더 흥미로웠다. 주방에서 접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조선족 종업원을 꾸짖었다. 엄마는 저녁 약속이 있다며 먹는 시늉만 하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만났으니 되었다. 헤어지려면 우선 만나야 하니까.

   “제 말은···” 운석 오빠가 텔레비전을 흘깃하고 말했다. 비데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태완이법에도 소급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까부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엄마가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놨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렇게 한다면서?”

   “엄마.”

   운석 오빠와 엄마가 나를 바라봤다. 욕설이라도 들은 사람들처럼.

   “사과해요.”

   “무슨 사과?”

   “오늘 늦은 거 사과해요. 약속에 늦었으면 사과를 해야죠.”

   “빨래 돌리느라 늦었다고···”

   “이유는 필요 없어요. 그냥 미안하다고 말해요.”

   “미안하구나. 그런데···”

   “그런데 빼고 미안하다고만 말해요.”

   “미안하구나.” 엄마가 마지못해 사과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엄마와 악수했다. “사과받았어요.”

엄마가 티슈를 뽑아 이마를 몇 번 찍어 눌렀다. 시든 목소리로 미안하다, 미안해, 중얼거렸다. 최악이었다.

   “사과받았다고 했잖아요. 더 안 해도 돼요. 그리고 엄마,” 나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쌍꺼풀 완전 티 나요.”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았다. 고깃집에서 버린다는 걸 깜빡했다. 나는 꼬챙이로 벽을 긁으며 걸었다. 시장을 벗어났고, 한우전문점을 지나 복권방과 꽃집 사이에 다다랐다. 골목이 어둑했다. 운석 오빠는 치한처럼 뒤따라오고 있었다. 멈추면 뒤에서도 멈췄고 걸으면 뒤에서도 걸었다.

   나는 휙 뒤돌았다. “백 원만.”

   “아까 줬는데?”

   “그럼 오십 원만.”

   “아까 줬는데?”

   “그럼 이백 원만.”

   운석 오빠가 내 쪽으로 동전을 던졌다. 은색 두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떨어뜨리지 않고 받았다. 럭키. 럭키. 나는 차 키를 던졌다. “운전해 주면 한우 사 줄게.”

   “내일 수술이라 저녁은 금식해야 하는데.”

   “럭키.”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무사히 귀환한 느낌이었다. 뚱뚱한 사람과 나란히 차에 타면 비좁아서 평안하다. 벼랑으로 굴러떨어져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안전할 것이다. 다음에는 경차를 샀으면 싶었다. 핫도그를 더 먹든지. 뒷좌석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나는 주머니 속 동전을 만졌다.

   “집에 가자. 데려다줄게.”

   “오빠.”

   “어.” 운석 오빠가 시동을 걸었다. “그냥 오빠라고 했네. 그러니까, 그냥 빼고 오빠.”

   “오빠 나랑 어디 좀 가자.”

   초등학교 앞에 다다를 때쯤 나는 조수석의 거울을 내렸다. 마스크를 썼다. 팬데믹의 장점은 마스크를 써도 수상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자도 빌려 썼다. 거울 속에서 독수리가 금빛 날개를 펼쳤다.

   “뭐 좀 사 올게. 5분만 기다려.”

   왕복 4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했다. 맞은편 편의점에 들어갔다. 나는 카운터로 직진했다. 점장의 경동맥에 꼬챙이를 겨눴다. “꼼짝 마. 움직이면 찌른다.”

   점장이 양손을 들고 뒤로 물러섰다. 나는 꼬챙이를 들지 않은 손으로 계산대를 열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담배 진열대에 막혀 뒤가 없었다. 목이 팔딱팔딱 뛰는 게 보였다. 의도했던 건 아닌데 벽에 갈려 꼬챙이 끝이 날카로웠다.

   “돈 드릴게요.” 점장이 손을 내려 금전출납기를 열려고 했다. 나는 꼬챙이를 들이밀었다. 닿지는 않았다.

   나는 길을 약간 텄다. “나와.”

   “네?”

   “나오라고.”

   점장이 찔리지 않으려 애쓰며 카운터에서 나왔다.

   “불 꺼.”

   “네?”

   “불 끄라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렇지만 본사에서 페널티가···”

   “불 꺼!”

   세상에 편의점만큼 형광등이 많이 달린 곳은 없을 것이다. 스위치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점장과 나는 왈츠를 추듯 매장 안을 누볐다. 마침내 모두 소등되었다. 음료 냉장고가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하게 빛났다.

   “워크인으로 들어가.”

   점장이 네? 하려다가 퍼뜩 아니요, 했다. 고분고분 워크인으로 향했다.

   “워크인 조명 꺼.”

   냉장 어쩌고 하며 거부할 줄 알았는데 말을 들었다. 끄면 세계가 멸망하는 것 아니었나. 음료수 온도보다 자기 목숨이 더 소중한 듯했다. 측은하게도. 모터가 멈추며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다시 조명을 켜라고 명령했다.

   “바지 벗어.”

“혹시 너···” 점장이 바지를 벗으며 말했다. 이제야 알아본 모양이었다. 오래전인 데다 성형까지 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기린이 그려진 사각팬티 아래로 앙상한 두 다리가 드러났다.

   “티셔츠 벗어요. 조끼부터 벗어야죠. 잘했어요. 거기서 스탑.”

   “그땐 미안했어.” 티셔츠 안에서 점장이 웅얼거렸다.

   “사과받으러 온 거 아니에요.”

나는 당신 딸이 아니라고, 딸 같다는 이유로 섹스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나는 누구의 딸도, 딸 같은 딸도 아니고 누구나, 그냥 누구일 뿐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신 동전을 꺼냈다. 한번 그러쥐었다가 손에 힘을 풀었다. 350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늘 하루치의 행운이었다.

   빛이 점멸했다. 코카콜라와 스프라이트 사이로 비상등을 켠 차 한 대가 보였다. 5분이 지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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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진영
  •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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