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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담

  • 작성일 2026-05-04


필담


구혜경


처음 본 날 아이는 딱 한 문장을 썼다.

공평했으면 좋겠어요.

그때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던 사회복지사는 나와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한 번 저었다. 나는 그 고갯짓의 의미를 읽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무슨 의미였는지 알지 못한다.

공평, 좋겠다.

나는 아이의 문장 어느 한 조각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응이 두 개나 들어갔는데도 네모나게 생긴 공평을 검지로 짚었다.

공평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무릎 위로 양손을 모아 쥐고 있던 아이는 입을 꾹 잠근 채 가만히 있었다. 그날은 펜을 다시 쥐지 않았다. 모든 글자를 네모반듯하게 썼으니 내 소임은 끝났다는 듯이.

 

아이는 두 해에 걸친 학대 끝에 사명감 넘치는 어린이집 교사의 신고로 구조되었다. 부모 둘 다 경찰에 잡혀가거나 법정에 서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가 세운 학대 기준에 아이의 부모는 한참 못 미쳤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었다. 기준선에 닿지 못한 불성실한 가해자들은 아이를 버려두고 남남이 되었다. 가해자 둘은 감옥에 가는 대신 집으로 돌아갔는데 피해자인 아이가 돌아갈 집은 없었다. 복잡한 과정 끝에 아이의 책임 소재는 지역 아동복지관으로 넘어갔다. 복지관과 연계된 상담 기관의 상담사 1은 아이의 심리상담을 맡게 되었다. 그게 나다.

나와 아이의 상담은 기본적으론 필담(筆談) 형식이었다. 아이는 어느 날 불현듯 튤립반 교실 구석에서 연필로 성대 위를 그었다. 성대 안에 있던 아이의 모든 언어가 뾰족하게 깎인 연필 끝에 걸려 송두리째 뽑혀 나갔다. 인형뽑기 기계의 갈고리가 인형 대가리를 위로 뽑아내듯이.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그 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복지사는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며 그게 아니면 여기가 아니라 병원에 가지 않았겠느냐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는 키가 내 허벅지에나 겨우 오는 아이가 말을 안 하는 게 못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생각했지만 말을 아꼈다.

아이가 오려면 2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이번이 상담 2회기였다. 나는 1회기에 아이가 썼던 글자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다가 포털사이트의 국어사전에서 공평을 검색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

내가 아는 한 아이는 여섯 살이었다. 여섯 살이 공평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이상하다.

아이의 언어는 육체가 그러하듯 그 부모가 낳는다. 세상을 만나기 전의 아이가 사용하는 언어는 곧 부모의 언어라 해도 비약이 아니다. 공평은 아이의 부모가 심어놓은 단어였다. 그들의 언어였다.

이번에도 복지사에게 어깨를 붙들려 온 아이는 얌전히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끓였다가 식혀놓은 맹물을 종이컵에 따랐다. 그리고 작은 접시에 담긴 티백을 함께 아이의 앞에 놓았다. 얘기하다가 목마르면 마셔도 돼.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은 튀어나오려다 목젖에 걸렸다. ‘얘기하다가라는 말은 아이의 사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문 채로 아이 맞은편에 앉았다.

복지사가 나긋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속닥거렸다.

얘기하다 목마르면 이거 마시면 돼. 이건 찻잎인데 요렇게 담그면 되고.”

접시에 놓여있던 티백이 복지사의 손에 들려 종이컵 안으로 잠겼다.

아이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선생님.”

, 알겠어요.”

내가 조심스레 부르자 그 사람은 다 안다는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주억이더니 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어찌나 힘차게 흔들던지 덜그럭덜그럭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잘 지냈어?”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 나 알아들었어.

우리 저번에 했던 얘기를 다시 해볼까?”

말끝을 명랑하게 끌어올리면서 아이의 앞에 볼펜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 국어사전에서 본 공평의 정의를 끄집어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른 거. 이게 공평이래. 무슨 뜻인지 아니?

아이는 펜을 쥐더니 종이에 또박또박 글자를 썼다.

, 모두 다 똑같은 거예요.

반듯한 글자들을 두 번 읽고 나서 물었다.

정말 모든 게 똑같았으면 좋겠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먹 쥔 손가락 사이로 펜이 삐주룩이 나와 있었다.

나는 이런 문장에서 모든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좁혀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의 모든 것이 뭘까. 여섯 해를 산 아이 머리통 속 우주는 아직 행성 수준도 못 되었을 것이다. 이맘때 아이들의 세상은 무엇을 중심으로 도는가.

그중에 뭐가 꼭 똑같았으면 좋겠어? 하나만 고르면?”

통통한 손가락이 꼼지락 펜을 매만지더니 이윽고 글자를 토했다.

엄마랑 아빠.

나는 엄마, 아빠 두 글자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었다. 엄마와 아빠가 같았으면 좋겠다. 그게 공평이다.

엄마랑 아빠가 달랐어?”

아이가 또 고개를 흔들었다. 끄덕끄덕.

모든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어. 엄마, 아빠도 다른 사람이잖아. 너와 내가 다르듯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이 말을 어떻게 풀어내야 아이의 언어로 이해시킬 수 있을지 막막했다.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달랐어?”

아이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망설이다가 다시 펜을 꼭 쥐었다. 이번에는 문장이 아니라 그림이었다. 동그라미와 세모로 이루어진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 동그라미는 큰 말풍선에 타래처럼 얽힌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맞은편 동그라미의 말풍선은 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았다. 아이는 큰 말풍선을 가진 동그라미 아래 엄마라고 적었다. 한참 작은 말풍선 옆의 동그라미는 아빠였다. 아이가 그림을 그릴 동안 나는 촘촘히 내리깔린 아이의 속눈썹과 불룩한 볼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든 아이가 눈을 깜빡였다.

엄마는 말이 많았고 아빠는 말이 없었어?”

나는 동그라미 두 개를 번갈아 짚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큰 말풍선 안에 마구 그린 검은색 타래는 말이 아니라 흉터처럼 보였다.

 

부모가 아이에게 한 짓은 학대 아동을 8년간 대해 온 나도 처음 보는 종류의 일이었다. 그림이 사실이라면 그 광경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이는 2년간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는 부모의 전서구 노릇을 했다. 다른 게 있다면 아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비둘기가 아니라.

복지사는 말했다. 글쎄, 부부가 2년간 대화를 아예 안 했대요. 믿어져요?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성인 둘은 대화가 필요한 순간을 자주 맞닥뜨렸다. 그게 문제였다. 알 수 없는 계기로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 않기로 결심한 성인 1, 성인 2는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아빠한테 해달라고 해줘. 가서 엄마한테 전해줘. 엄마는 그거 싫다고 말해줘. , 엄마한테 가서 이렇게 말해.

말에 떠밀려 부모를 오가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 소매를 뜯었다. 아이는 부모를 비둘기처럼 오가면서 헨젤과 그레텔처럼 과자 부스러기 대신 실밥을 흘렸다. 너저분한 실밥은 엄마든 아빠든 누군가 치웠을 것이다. 그들은 그 실밥에 담긴 뜻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이의 이상행동을 이상하다고 말로 꺼낸 건 어린이집 담당 교사였다. 아이가 걸핏하면 소매를 뜯어대는 꼴이 비정상으로 보인 건 당연했다. 교사는 알림장에 친절하게 적었다.

아이가 자꾸 소매를 뜯습니다. 가정에서 지도해 주세요.

복지사에게 들은 얘기지만 그때 교사는 불안 징후가 보인다.’라고 쓰려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아이의 엄마가 득달같이 달려와 따질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아이는 헨젤과 그레텔 짓을 2년간 반복한 끝에 제 성대를 그었다.


2회기는 동그라미 두 개, 세모 두 개, 말풍선 두 개로 끝났다. 아이는 펜을 놓으면 다시 잡지 않았다. 다음에는 볼펜이 아니라 연필을 쓰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자 관자놀이를 조이는 느낌이 났다. 아이들에겐 볼펜보다 연필이 친숙하다. 친숙한 도구를 쓰면 아이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게 옳은 생각인지 자신이 없었다. 아이 앞에 내민 볼펜은 이미 끝없이 반복한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연필로 목을 그은 아이의 손에 연필을 쥐여주고 싶진 않았다.

응접실에 아이를 앉힌 복지사가 잠시만, 하더니 문을 닫았다.

상담은 어때요? 잘 되어 가요?”

나는 복지사의 손에 붙잡혀 종이컵 안으로 침몰하던 티백을 떠올렸다. 화가 났다. 하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고작 티백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는 건 우습지 않은가.

그냥,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복지사가 대놓고 실망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렇게 덧붙이고 방긋 웃었다. 나는 그 눈에 스치는 말을 읽었다. 너야 그렇겠지. 팔자 좋은 소리한다.

 

퇴근길에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 앞에는 근린공원이 있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뭐가 그리 신나는지 까르륵대고 있었다. 뒤로 자지러지던 아이 하나는 아예 균형을 잃고 자리에서 넘어졌다. 그러자 아, 뭐야, 아하하, 하는 요란한 말과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좋을 때구나.

나는 봉지에 넣었던 맥주를 꺼내어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교복이 눈에 익다 했더니 상담센터 바로 옆 중학교 교복이었다.

아니, 들어봐. 그래서 내가 걔한테 먼저 페메했거든? 근데 미친, 1분 만에 답장 옴.

. 미쳤다. 그건 그냥 너가 말하길 기다렸다는 거 아냐?

내 말이!

아이들의 수다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페메가 뭐지. 메신저 같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펜을 꾹 쥐고 있던 아이가 겹쳐 보였다.

그 아이도 교복을 입는 나이가 되면 요란하게 웃고 떠들 수 있을까.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말을 나눴다. 그러다 옆 친구 등짝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때리기도 했고, 갑자기 손바닥을 마주하고 손뼉을 치기도 했다. 손날을 세워 목에 대고 흔들며 그건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결국 맥주 한 캔을 다 마신 구경꾼이 이야기꾼들보다 먼저 지쳐 일어섰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빈 맥주 캔이 캉 소리를 냈다.

 

세 번째 시간에 나는 볼펜을 치운 자리에 12색 색연필을 놓았다. 아이는 색연필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만졌다. 호기심 가득한 여섯 살의 눈빛이었다.

이제부터 대답은 꼭 글씨로 안 써도 돼. 몸으로 이렇게 막 설명해도 되고, 그게 싫으면 그림을 그려도 되고. 물론 글씨로 쓰고 싶으면 글씨로 써도 돼.”

과장된 몸짓으로 설명하자 아이는 귓불 뒤를 두어 번 긁었다.

엄마가 말이 많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

아이의 입술이 안으로 말려들어 갔다. 미간이 좁아지고 볼이 씰룩였다. 아이는 손가락을 움찔움찔하며 색연필 케이스를 열었다가 금세 다시 닫았다.

나는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른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두 발 다 얌전히 허공에 떠 있었지만 내겐 확실히 발을 구르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가 갑자기 종이를 와락 구겼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통통한 손가락 아래 형편없이 구겨진 종이가 보였다.

그랬구나. 잘했어.”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티슈를 뽑아 들고 아이의 옆에 앉았다. 불룩한 볼에 난 눈물을 티슈로 닦아주자 아이는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렸다. 티슈를 아이의 앞에 두고 등허리를 한 번 쓸어준 뒤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이가 손가락을 꼬물대며 눈물을 닦는 것까지 보고 다시 종이를 내밀었다.

아빠는 말이 없었다고 했잖아. 그건 어땠어? 아빠가 싫었어?”

깨끗한 새 종이를 내려다보던 아이가 이번엔 색연필 케이스를 열어 빨간색을 꺼냈다. 큰 동그라미와 큰 세모가 종이 귀퉁이에 앉았다. 이번엔 동그라미에 눈이 있어서 등을 보인 자세라는 걸 알았다. U자 모양으로 꾹 감긴 눈을 모서리에 고정한 큰 동그라미 뒤에 작은 세모 몸통을 가진 작은 동그라미가 섰다. 큰 동그라미는 등을 지고 있어서 작은 동그라미를 보지 못했다.

작은 동그라미 안에 더 작은 동그라미가 있었다. 아이는 더 작은 동그라미를 빨간색으로 가득 칠했다. 종이가 이렇게 넓은데 큰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는 귀퉁이에 처박혀 있었다. 빨간색 색연필을 내려놓으려던 아이가 문득 생각난 듯 작은 동그라미 뒤로 펼쳐진 공간에 불규칙한 빨간 점을 찍었다. 점 같기도 했고, 부스러기 같기도 했고, 색 때문인지 핏자국 같기도 했다.

이건 뭐야?”

아이에게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아이는 거기서 색연필을 내려놓았다.

 

아이를 중간에 끼고 나름대로 공평했던 부모 사이는 아이 아빠가 예고 없이 입을 다물면서 무너졌다. 아이 엄마는 응답받지 못한 말을 아이의 등에 쌓았다. 그녀는 아이가 어린 투정인 체 전하면 남편이 다시 한마디는 하겠지, 기대했다. 아이는 엄마의 욕망을 제 욕망처럼 전하는 데 익숙해졌다. 아이 아빠는 그때까지 공범이었던 주제에 아이를 등지고 입을 잠갔다. 복지사는 그때쯤 아이 아빠도 뭔가 잘못된 거 같다고 생각했나 봐요.’라고 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아이 아빠는 갑자기 이유도 없이 그때쯤 아이를 불쌍히 여겼다는 것이다.

자기 혼자 살 궁리를 하기 시작했으니 그때 가서야 죄책감도 느낀 거죠.’

복지사 앞에서 그런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으나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다.

공평함이 무너졌다. 아이 아빠는 아이 엄마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아이 엄마는 예고 없는 침묵에 당황했고 균형 잃은 기대를 버거워했으며 그 돌연한 변화의 원인을 아이에게서 찾았다.

아이는 아빠의 등에 대고 몇 번이고 부르짖었다.

아빠, 아빠, 아빠…….

아이의 엄마는 그제야 그 등에 대고 소리쳐야 하는 게 누구인지 깨달았다.

여보, 내 말 좀 들어 봐. 우리 얘기 좀 해.

건네야 하는 버거운 말도, 네 탓이라 쏟아지던 책망 어린 말도 사라진 후 중간에 덩그러니 버려진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가 목을 그은 건 아빠가 말을 안 한 지 한 달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4회기를 하루 앞둔 날 복지사가 갑작스럽게 상담센터에 들이닥쳤다.

이러지 말고 검사를 해야죠. 아니, 왔을 때부터 검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게 순서잖아요.”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신경질적이었다. 어떤 문제가 여기까지 이 사람을 떠밀었는지 가늠했지만, 그네들 사정이니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울컥 치미는 짜증을 억지로 눌렀다.

아이가 검사를 끝까지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에요. 말을 안 하는 게 제일 문제긴 하지만 비언어적 표현도 억제되어 있고요. 이제 조금씩 행동이 나타나고 있으니까 적당한 때에 검사도 하면 되죠.”

그 적당한 때가 언젠데요?”

그걸 정하는 건 제가 아니에요.”

복지사는 씩씩 거친 숨을 뱉으며 나를 노려보다가 알겠어요.” 짓씹듯이 말하곤 나갔다. . 문이 요란하게 닫혔다. 나는 들고 있던 커피를 개수대에 부어버렸다.

 

아이는 처음 온 놀이치료실이 낯설고 불편한 듯 보였다.

오늘은 여기서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하면 돼.”

놀이치료실에는 다양한 종류의 블록과 레고, 모서리가 둥그런 놀이기구들, 수많은 책, 모래놀이 판이 있었다.

엄마랑 아빠를 떠올리면 기분이 어때? 여기서 표현해 볼까?”

나는 야트막한 장난감 의자에 앉아 아이를 지켜보았다. 사실 의자에 앉았다기보다 엉덩이를 욱여넣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아이는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만져보았고 어떤 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모래놀이 판 앞에 다다른 아이가 멈춰 섰다. 대부분의 아이는 모래놀이 판 앞에서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어린이집이나 가정에서도 볼 수 있는 다른 장난감들과 확연히 다른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놀이터 모래사장을 미니어처처럼 줄인 다음 눈높이가 맞는 대형판에 깔아놓은 모양새이니 신기할 만했다. 물론 위에 깔린 모래는 교육용으로 안전 인증까지 마친 시판 제품이었다.

아이가 천천히 손을 내밀어 모래에 손을 얹었다. 나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너는 모래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가슴이 뛰었다. 안 그래도 어제 함묵증을 다룬 논문에서 모래놀이가 유의미하다는 문구를 읽었기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때 아이가 모래를 한 움큼 집더니 입을 벌렸다. 아이의 작고 붉은 혀를 보면서 입 벌린 건 처음 보는 것 같네, 멍청한 생각을 하다가 엉덩이에 끼웠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안 돼, 안 돼!”

아이가 허겁지겁 모래를 입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팔목을 붙들자 으응,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들은 아이 목소리였다.


퇴근길에 발길 닿는 대로 가니 편의점이 나왔다. 근린공원에는 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지난주에 본 애들인가, 매치시켜 보려 했지만 당장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떠오르지 않았다. 엉덩이가 끼지 않는 넉넉한 의자에 앉아 맥주를 깠다. 이번 아이들은 저번 아이들보다 덜 시끄러워 술맛이 안 났다.

맥주를 홀짝이며 보다 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아이 네 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내가 맥주 한 캔을 다 비울 동안 한마디도 안 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세 명은 그걸 모를 리 없는데도 저들끼리 신나게 떠들었다.

맥주 캔을 하나 더 깔 때쯤 말이 없는 아이 입술은 댓 발 튀어나와 있었다. 100미터 밖에서도 입술이 보일 것 같았다.

일이 나겠는데, 생각하는데 양반은 못 되는지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세 쌍의 시선, 아니 나까지 네 쌍의 시선이 아이의 얼굴로 꽂혔다.

너네 진짜 너무한다. 어떻게 말 한 번을 안 시키냐?!”

빽 소리를 내지른 아이가 가방을 훌쩍 메더니 그 자리를 벗어났다. 넋이 나간 세 명 중 한 명이 그 아이 뒤를 쫓아갔다.

처음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냥 말을 하면 되잖아. 나 여기 있다고. 관심 좀 달라고. 곧 웃음이 사그라들었다.

나는 그 뒤꽁무니를 보다가 필사적으로 모래를 집어삼키던 아이를 생각했다. 맥주가 썼다.

 

놀이치료실은 당분간 금지였다. 본래 계획대로 미술치료와 필담을 병행하다가 검사를 통해 구체적인 치료 방안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럴 확률은 거의 없었지만 부디 약물치료나 입원 치료가 아니기를 바랐다.

다섯 번째 보는 아이는 한결같은 자세와 한결같은 표정으로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표정만으로는 경과가 어떤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일관적인 얼굴이었다.

나는 하얀 종이와 12색 색연필을 앞으로 밀어주었다.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그려볼래? 글씨로 써도 돼.”

잠깐 망설이던 아이는 색연필 케이스에서 검은색을 꺼내 이젠 익숙한 동그라미와 세모들을 그렸다.

큰 동그라미, 큰 세모로 이뤄진 두 명은 종이 양 끝에 서 있었고 정확히 가운데에 작은 동그라미, 작은 세모가 있었다. 큰 동그라미 둘은 똑같은 말풍선 크기로 똑같은 검은 덩어리 말을 나눴다. 작은 동그라미 위에는 말풍선이 없었다.

검은색 색연필이 케이스 안의 제자리를 찾아갔을 때 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가리켰다.

얘는 왜 말을 안 해?”

아이가 나를 보았다. 평소보다 눈을 많이 깜빡였다.

이건 공평하지 않잖아.”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내 말은 아이에게 충격을 준 듯했다. 눈이 티가 날 정도로 흔들렸고 손가락 끝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멋대로 테이블에서 튀어 올랐다. 색연필 케이스는 아이가 손을 뻗으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검은색 색연필은 케이스 맨 오른쪽에 있어서 뚜껑을 열지 않아도 헐거운 틈으로 그냥 빼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손을 뻗지 않았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혼자 침묵하는 작은 동그라미를 하염없이 보고만 있었다.

 

아이와 함께 나오자 복지사가 싱크대에 기대서 있었다. 다리를 엑스 자로 꼰 자세였다. 손에는 믹스커피가 들려 있었다. 커피 광고모델도 저렇게 서 있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복지사는 아이가 다가오자 반납받은 책을 대하듯 어깨를 한 번 꽉 쥐었다가 두 번 토닥였다.

검사 언제 한다고 했죠?”

하마터면 치매냐고 물어볼 뻔했다. 치매 환자들에겐 몹쓸 짓이지만 직업병인지 그 생각부터 떠올랐다. 밀크커피를 호록 마시는 얼굴이 반질반질했다. 뻔뻔해도 유분수지. 이번엔 진짜 한마디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그 옆에 선 아이가 보였다.

그때 말씀드린 것처럼…….”

나는 말을 끝맺는 대신 눈짓으로 아이를 가리켰다. 복지사는 아, 하더니 다 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넣은 복지사가 아이의 등허리를 톡톡 두드렸다.

가자. 선생님께 인사하고.”

아이는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나도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흔들리는 내 손을 힐끔거리더니 몸을 돌렸다.

네가 말없이 인사하니까 나도 공평하게.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어떤 표정을 할지 궁금해졌다.

 

복지관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의 행동 관찰보고서를 보내왔다. 아이가 지내는 생활시설과 담당 사회복지사의 소견이 적절히 섞여 있는 보고서였다. 첫 주에는 밥을 얼마나 먹는지, 어떤 반찬을 좋아하는지, 잠을 몇 시간 자며 악몽을 꾸는지, 상담 후 달라진 모습들이 세세하게 적혀있더니 갈수록 내용이 부실해졌다. 보고서만 보면 아이는 그저 세 끼 꼬박 나오는 밥을 먹고 때가 되면 잠이나 자는 로봇이었다.

그나마 이번 보고서엔 모래를 집어먹은 후의 이야기가 있었다. 등을 두드려도 한 줌 정도만 뱉어냈던 아이는 시설에 가자마자 모두가 오가는 입구에서 보란 듯이 구토했다. 안전 인증을 마친 모래가 토사물과 한 데 섞여 다른 아이들 앞에 쏟아졌다. 아이는 눈물을 찔끔하긴 했으나 크게 동요하지 않았으며 다행히 목을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첨언이 있었다. 옆에는 아직도 종종 소매 끝을 뜯는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꾹꾹 눌렀다. 어떤 환경에서 소매 끝을 뜯었는지 참견만큼이나 친절하게 적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이의 부모가 그랬듯 복지관의 누군가도 아이가 남긴 흔적을 치우다 발견한 게 고작이었다.

책망할 생각은 없었다. 나만 해도 일주일에 여섯 명의 아이를 상담했다. 복지관이든 생활시설이든 상담센터든 아이들이 득시글거렸다. 그 아이만 남다를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공평이라는 아이의 말을 생각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평행선을 걷는 아이를 생각했다. 로봇처럼 먹고 자는 아이 앞에 놓이는 식판을 생각했다. 모든 반찬이 최대한 공평하게 나뉘어 있는 식판을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이 똑같이 먹는 모습을 생각했다.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생각했다. 모래가 섞인 토사물을 치웠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출근하자마자 사무실로 나를 부른 센터장이 30분 넘게 인생의 지혜에 대해 설파한 덕이었다. 요지는 지자체의 지원 범위가 축소되었다는 거였고, 결론은 그러니 그만큼만 일하라는 거였다. 센터장은 소명 의식이라는 말을 썼다. ‘소명 의식은 첫 출근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센터장이 사랑하는 단어였다. 오늘의 소명 의식은 아픈 아이들은 발에 채도록 많이 있으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의미로 설명되었다. 나는 난데없이 낯설고 껄끄러운 혀를 힘주어 눌렀으며 앞으로 맞잡은 양손의 엄지손톱을 주물렀다.

알겠어요. , 그럼요.

고분고분하게 대답하고 센터장실을 나와 복도를 걷는데 놀이치료실의 통유리창으로 모래놀이 판이 보였다. 문득 모래의 맛이 궁금해졌다.

 

아이는 상담 시작 시각 정각에 복지사와 함께 왔다. 복지사는 왜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아이가 앉는 걸 물끄러미 보던 내가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들자, 내게 눈을 찡긋하기도 했다. 첫 시간부터 그랬듯 복지사의 행동에 담긴 의미는 읽어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읽어낼 의지가 없었든지.

아이는 빈 책상을 보고 눈알을 또록또록 굴렸다. 종이도 없었고 색연필도 없었다. 아직 아이를 보고 있던 복지사도 눈썹을 치켜떴다.

선생님.”

나는 복지사에게 말을 건넸고 두 쌍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복지사는 고개를 덜그럭덜그럭 흔들더니 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아이는 내가 맞은편에 앉을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치료실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치료실에서는 시계마저도 전자시계를 썼기 때문에 초침 소리 한 번 섞이지 않는 정적은 농밀했고 동시에 메말라 있었다. 처음엔 얌전히 자리를 지키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자 자세를 몇 번이고 고쳐 앉았고 그때마다 쓱, 끼익, 하는 마찰음이 정적을 깼다.

시간이 더 지나자 이번엔 손톱 뜯는 소리가 들렸다. , . 나는 아이의 손톱이 맞닿았다가 어긋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 아이는 단 한 번도 손톱을 제대로 뜯지 못했다. 아이의 손은 테이블 위에 제일 잘 보이는 위치에 있었기에 나는 모든 과정을 알 수 있었다.

아이의 시선은 바닥에 붙박여 있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나눠지고 있는 이 침묵의 공평함과 시선의 불공평함에 대해 생각했다.

나도 아이처럼 바닥을 보았다. 반질반질한 바닥엔 부스러기처럼 생긴 모래알만 한 무늬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애초에 말끔한 바닥이 더 예쁜데 이런 무늬는 왜 넣는 걸까. 누가 뭘 흘려도 알 수 없게 생겼는데.

의미 없는 생각을 하는데 으, ,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아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절박한 두 개의 눈알이 보였다. 아이가 입을 오물거렸다.

. .

아이의 눈매 끝이 불그스름했다.

, .

아이가 한 번 더 나를 불렀을 때 나는 테이블 서랍을 열었다. 미리 깔끔하게 깎아 둔 연필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그중 제일 반듯하게 깎인 연필을 꺼냈다.

고개를 들자, 아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아이를 마주 보았다. 나는 다시 공평에 대해 생각했다.

 



*위 작품은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 하반기 선정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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