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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쇠

  • 작성일 2024-08-13

   방아쇠 


조현숙


   팽팽한 새벽 공기를 쩍, 가르며 현관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라면 시아버지밖에 없다. 남편이 죽고 난 뒤에도 시아버지가 왔다. 싫은 기색을 했고 시어머니도 수긍했다. 니 시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다. 내가 괜히 잡도리하겠냐? 못 가게 할게. 그렇게 덧붙였다. 그 뒤로 2년째 오지 않았다. 그새 또 공동현관 벨이 울린다. 도어폰을 들고, 누구냐고 묻는 내 목소리도 곱지 않다. 

   “나다, 열어라.”

   낮고 불퉁스러운 목소리다. 대답 없이 버튼만 누르고 도어폰을 껐다. 시아버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 때까지 챙겨서 바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졌다. 시아버지가 안에 들어오면 경서가 깰 것이다. 그러니 내 편에서 빨리 나가야 한다. 늘 그렇듯 경서는 차려 놓은 아침을 먹고 등교할 것이다. 야무진 아이가 가슴 저리도록 대견하다. 하늘색 재킷을 걸치고 헤어롤을 뺐다. 서두르면 모텔에 시아버지를 모셔 놓고 가더라도 조회 시간에 늦지 않을 것이다. 모텔을 나설 때쯤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올 것이고.

   니 시아버지, 바꿔라.

   아버님요? 안 오셨는데요. 

   시어머니는 콧방귀를 뀔 거다.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을 것이다. 내가 말이다, 그 영감쟁이 때문에··· 그러면 오늘 출근길에는 슬기로운 묵상 대신 시어머니 푸념을 들어야 할 것이다. 간간이 맞장구도 치면서. 하! 남편이라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아직 며느리 노릇을 하려는 내가 웃긴다.

   엘리베이터 멈춤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벨 소리로 이어졌다. 뭐가 급하다고 숫제 문을 두들겨댄다. 시어머니가 집까지는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시아버지는 늘 그렇듯 화급하다. 문을 여는 대신 차 키와 핸드폰을 챙겼다. 어제까지 중간고사 치르느라 녹초가 된 경서는 줄기찬 벨 소리에도 푸지게 자고 있다. 오지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작고 추레한 몰골의 노인이 서 있다. 안 본 사이 많이 늙었다. 철 지난 바람막이에 맨발로 크록스를 꿰찼다. 시아버지가 우리 집으로 도망쳐 올 때마다 수십 번을 봐 왔던 모양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긁히고 까진 이마에 피딱지가 눌어붙었다. 시어머니가 팔다리를 꼬집고 물어뜯어서 피멍이 든 적도 많았지만,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다. 

   “아버님, 머리도 맞으셨어요?”

   그렇게 물었지만 그렇다고 시아버지 머리카락까지 들춰 보고 싶지는 않았다. 시아버지가 바투 다가오려다 다리가 꼬이는 바람에 비틀거렸다. 빨리 일러바치고 싶어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다가가 부축하자 꿉꿉하고 비릿한 냄새가 훅, 끼쳤다. 머리카락에도, 옷에도 낙엽 부스러기와 작은 깃털 같은 게 붙어 있다. 하늘색 재킷이 더러워질 것 같아 얼른 시아버지한테서 떨어졌다. 눈치도 없이 바짝 다가선 시아버지가 주절거렸다.

   “언제나 니 시어매가 사달 아이가. 날도 안 샌 새벽부터 사람을 잡아 쥑일라 카이 정신없이 도망쳤는데 육교 위에서 뭐가 쿵, 하고 떨어졌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도 시아버지는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기 철판이라. 그라이 그 소리가 얼마나 요란했겠노. 식겁했다. 근데도 요래 웅크리고 있던 비둘기들은 놀라지도 않는 기라.” 

   대체 무슨 말인지. 경서가 잘 있는지, 혼잣손에 애 키우며 힘들지, 그런 말 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는다. 조용히나 가면 좋겠다. 

   “희한타, 저게 어떻게 여까지 따라왔나? 꿈쩍도 안 하디만.”

   시아버지가 주차장 화단의 배롱나무 아래를 보면서 웅얼거렸다. 나무둥치 아래서 비둘기 두 마리가 머리통을 처박고 먹이를 찾고 있다. 

    “철판이 떨어질 때, 내는 퍼뜩 피했다. 그 바람에 보도블록에 걸려서 자빠져가 뒹군 기제. 아프데. 기가 맥혀서 한참 앉아 있었다. 이긴 뭐, 쇳디 피하다 돌디에 처박힌 꼴 아이가.”

   시아버지가 쿡쿡대다가 상처 난 이맛살이 당기는지 인상을 썼다. 

   “그래서 다치신 거예요? 근데 무슨 철판이 육교에서 떨어져요?” 

   “철판에 처맞았으믄 벌써 죽었을 기다. 고기도 무 본 놈이 묵는다고, 니 어매한테 하도 쥐 터지다 보이 그게 또 피해지데.”

   순발력을 자랑하느라 내 말은 듣지도 않는 시아버지를 차에 태웠다. 모텔보다 병원이 급했다. 시무룩한 내 앞으로 무심한 봄날의 햇살이 환하게 쏟아졌다.

   조용한 모텔 대신 복닥거리는 응급실로 가자, 시아버지는 처음으로 장터에 따라온 아이처럼 움츠러들었다. 땀과 피로 떡 진 머리칼이 이마에 달라붙었고 진보라색으로 부어오른 눈두덩이 때문에 눈을 뜨고 있지만 눈동자를 읽을 수 없었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시아버지는 진회색 바람막이 때문인지 늙은 비둘기 같았다.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 때문에 더 그랬다. 

   응급의가 시아버지 머리를 돌려 보고 이마를 넘겨 상처를 살피는 동안 시아버지는 긴장해서 수다는커녕 어디가 아프냐는 물음에도 입을 꾹 다물었다. 

   “넘어지면서 다치신 것 같아요.”

   자빠졌다고 들었으니 틀린 말도 아닌데 나는 변명처럼 말했다. 어디까지가 맞은 데고 어디까지가 넘어진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더 그랬다. 핸드폰이 울렸다. 시어머니였다. 전처럼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받았다. 

   “설마 또 너한테 갔냐?”

   시어머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도 받아쳤다. 

   “아버님, 응급실에 모셨어요. 핏,투성이가 되셔서.” 

   나는 ‘피’를 ‘핏’으로 발음한다. 허, 시어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떨리는 게 느껴졌다.

   “뭐가 피투성이란 말이고? 화가 치밀어가 몇 대 친 건 맞지만 어디가 째지고 깨졌을 리는 없다.”

   “온 데 다 상처투성인데요?”

   “아니, 그 영감쟁이는 대체 어디서 쥐 터졌길래 피투성이란 말이고. 새벽부터 기 나가선 가지가지 한다. 그니까 돈은 왜 숨기냐고. 자기가 돈 쓸 데가 어딨다고 노임 들어온 걸 벼락같이 찾아 숨겨 놓느냐고.” 

   시어머니는 남편의 안위는 묻지 않았다. 

   “여기 가톨릭 병원이에요.”

   나는 시어머니 말을 탁, 끊어 버렸다. 가만있는 시아버지를 건드는 건 언제나 시어머니다. 일하고 임금 받아 온 사람은 시아버지인데 돈도 많은 시어머니는 왜 그 돈을 빼앗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시아버지는 또 어떤가. 늘 두들겨 맞고 돈을 뺏기면서도 공공근로를 나간다. 하기야 돈을 빼앗길망정 일이라도 나가야 숨구멍이 트이는 건지도 모른다. 




   “집에 갈란다.”

   시아버지가 습관적으로 중얼거렸다. 잔뜩 어깨를 치켜들어서 목이 보이지 않은 채 시아버지는 줄곧 한 곳만 응시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시아버지 시선이 닿은 곳에 TV가 있었다. 시아버지는 늘 그랬다. 다급하게 도망칠 때는 우리 집을 그리도 잘 찾아오면서 모텔에 모셔 놓으면 당신 집을 찾아 나서지 못했다. 아니 찾아 나서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무서운 걸까. 아니다. 그냥 어린애처럼 줄기차게 집에 데려다 달라고 졸랐다. 시간이 지나고 분이 가라앉으면 살갑게 대해 주는 아내는 몸에 밴 습성일지도 모른다. 

   새들은 날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데 도시의 비둘기들은 사람이 다가가도 날지 않고 뒤뚱거리면서 걸어간다. 거친 바닷가 암벽 대신 도시의 건물을 택한 비둘기는 날지 않는다. 강한 귀소 본능만 남았을까? 

   “여기 모텔 아니에요. 치료를 받아야 가죠.”

   “내는 안 아프다. 고마 집에 보내도.”

   시아버지를 두들겨 패고 나면 시어머니는 백화점에 가곤 했다. 공짜로 지상철을 타면 바로 갈 수 있는 백화점에서 시아버지를 위해 셔츠나 보양식을 샀다. 어느 게 더 색상이 곱지? 옷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기도 했다. 답을 할 필요는 없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심각하게 고민한 뒤 답을 보냈는데 상황종료 후였다. 내 의견 같은 건 필요 없다. 그저 자신의 행위를 확인시키는 거다. 어떤 날은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갈비찜을 전송했다.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를 피해 처음으로 우리 집에 왔던 날의 충격은 너무 옛일이라 아스라하다. 그때는 시부모들 때문에 사네, 못 사네, 남편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는데 어쩌다 나는 시아버지를 모텔에 모셔 두고 시어머니 약까지 올리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 양반 있는 데 대라. 니가 모실 기가? 그것도 아이면서 와 말을 안 하노?

   몇 번 나를 볶아대면 못 이기는 척 모텔 이름과 위치를 대 줬다. 모시고 살 생각은 없으니까. 시아버지는 시어머니 손에 양순하게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때로는 내가 모셔다드렸다. 찰지고 따뜻한 밥을 짓고 노릇노릇 생선도 굽느라 바쁜 시어머니를 대신해서. 시어머니는 세상 다정한 모습으로 시아버지 턱밑에 앉아 갈비도 올려 주고 생선 살도 발라 주고 자기가 때려서 터진 입에 숟가락도 넣어 줬다. 시아버지가 음식을 흘리면 그 입도 닦아 줬다. 나는 부르르 진저리를 치면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한 시간 속에 시아버지를 집어넣고 돌아섰다. 폭력이 자행되는 시간의 간격이 좀 더 벌어지길 바라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두 분 다 치료받아야 하는 거 아냐?

   그럴 때마다 내 말을 듣는 남편은 온순했다. 그 모습은 시아버지와 많이도 닮았다. 그래서 시아버지는 장남을 제치고 매번 남편에게 도망쳐 왔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자기 엄마를 지긋지긋해했지만 부당함에 대들지 않았다. 남편이 들려줬던 젊은 시아버지는 오토바이를 잘 몰고 싱거운 소리도 잘하는 유쾌한 남자였다. 그런 기억을 가진 남편은 시아버지를 잘 받아 줬다. 늘 아내에게 내몰리기만 하던 시아버지에게 남편은 작은 숨통 같은 존재였다. 그의 죽음은 그 숨통마저 끊어 버렸다. 




   “넘어지면서 다친 상처는 심하지 않은데 그전에 생긴 상처와 멍 자국이 여러 군데 보이네요.”

   응급의가 내 눈치를 살피면서 말했다. 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였다. 시아버지가 꾹 다물었던 입을 열고 새된 소리를 냈다. 

   “저거 아이가. 내가 저걸 피했단 말이라. 니 어매도 피하고 저것도 피하고. 그러다 자빠졌지만 내는 안 죽었다.”

   시아버지가 팔을 뻗쳐 줄곧 응시하고 있던 TV를 가리켰다. 뉴스가 나오는 중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해 놨는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친절하고 굵직한 자막이 천천히 지나갔다. 




   오늘 새벽, 갑자기 떨어져 나와 ‘쾅’ 소리와 함께 5m 아래에 있는 인도를 덮친 육교 외장재. 




   현장에 나가서 육교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기자의 입이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자막이 붕어 입을 해독했고 아울러 현장 소식을 받아서 전달하는 아나운서 목소리도 음성 지원했다. 도시를 배회하는 비둘기들이 육교의 벌어진 틈새를 비집고 안팎을 드나들었다. 추락한 철판 외장재는 용접이 아닌 나사와 실리콘으로 육교에 고정돼 있었는데 비둘기들이 물어 온 흙과 지푸라기 같은 이물질과 비둘기 배설물이 두텁게 끼어 접착 부분이 부식되었다. 그러다가 추락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이른 새벽이라 근처를 지나던 사람이 없어서 다행히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자막이 되풀이됐다. 

   “내가 저걸 피했다. 귀신같이 피하다가 자빠졌다 아이가.” 

   시아버지가 자꾸 웅얼거렸다.




   “엄마, 오늘 비둘기 떼가 사람들을 공격했어.”

   며칠 전 경서가 말했다. 아이의 하루는 곧잘 비둘기로 채워지곤 했다. 자신은 그런지 잘 모른다. 강박이 될 것 같아 나도 인지시키지 않았다. 무심한 듯 들어줄 뿐이다. 아이는 학원 가는 길에 만난 비둘기를 계속 얘기했다.  

   “어떤 할머니가 인도 위에서 콩하고 보리쌀을 팔고 있었어. 근데 비둘기들이 몰려와서 콩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콕콕 파는 거야. 할머니가 바구니로 쫓아내니까 갑자기 사람한테 달려들었어.” 

   무섭다고 비명을 지르는 경서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역시나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경서는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다.

   “엄마, 나만 비둘기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던데? 지나가던 언니들도 막 소리 지르면서 도망갔어.”

   동의를 구하려는 듯 쳐다보는 아이를 꼭 안아 줬다. 자기만 비둘기에 놀라는 게 아니라는 것, 비둘기를 무서워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비둘기는 오랜 세월 사람들 곁에서 사는 새야. 그만큼 다른 새들에 비해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도 많지. 자연히 비둘기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는 거고. 엄마가 개를 무서워하는 것처럼. 

   심리상담센터에서는 아이의 심리를 특정 공포증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내재한 아이의 공포심이 비둘기를 무서워하는 것으로 표출되는 거라고 상담사는 설명했다.

   경서의 무의식에 내재한 기억은 갑작스러운 제 아빠의 죽음 때문에 드러났을 것이다. 막 두 돌을 넘긴 경서에게 무심하게 다가갔던 비둘기, 놀란 남편이 그 자리에서 비둘기 목을 부러뜨렸다. 고통으로 바둥대며 죽어 가는 비둘기를 보고 일그러졌던 내 얼굴. 경서는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깊은 우물 바닥에 묻혀 있던 그 기억이 먼지를 일으키며 불쑥 머리를 치켜든 건 아마 남편의 죽음 때문일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여겼던 사람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봤거나 반복적으로 위험하다고 과잉 주의를 받으면 공포가 학습됩니다.” 

   그렇게 말한 상담사는 비둘기 캐릭터나 사진 같은 것을 단계적으로 보여 줘서 공포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도 공포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환자분, 겉옷 좀 벗으시고요.” 

   채혈하는 간호사 지시로 시아버지는 구시렁대며 바람막이를 벗었다. 옷을 병상 한쪽에 치우는데 꼬깃꼬깃 접힌 종이의 감촉이 잡혔다. 편지일 것이다. 시아버지는 보풀이 이는 빛바랜 편지를 늘 가슴에 담고 살았다. 한때 가족들은 그 편지에 담긴 구구절절한 사연을 궁금해했다.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잠든 시아버지 가슴팍에 손을 집어넣어 몰래 편지를 빼내려다가 식겁을 했던 시어머니가 그 사실을 무용담처럼 들려줬기 때문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질릴 정도였다. 

   넣도 몬했다. 우에 그리 귀신같이 알고 가슴팍을 움켜쥐는지. 하이고, 천성 사내더라. 그래 무서울지 알았나. 그래 그년이 중요했던가? 그라이 내 마음이 우얬겠노. 내가 괜히 그러나? 사나가 미쳤다꼬 뚜디리 맞으면서 가만 있겄나? 저도 지은 죄가 있으이 그라제. 

   그 힘은 강하고 단단했다. 덩치 큰 시어머니가 나가떨어졌다. 아내에게 속절없이 두들겨 맞던, 무심하게 아픔을 견뎌내고 분노를 삭이던 사내가 아니었다. 서슬 퍼런 칼날도 녹여 버릴 듯, 시아버지의 눈에서는 검푸른 독기가 뚝뚝 떨어졌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다시는 그 편지를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시아버지를 폭행하는 일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무기력하게 두들겨 맞는 시아버지가 온몸으로 풍기는 냉랭한 웃음기가 시어머니를 더 날뛰게 했다. 

   편지는 시아버지를 살게 하는 힘이었을까? 한밤중 옆에서 코를 고는 시어머니의 두꺼운 숨소리를 견디게 해 주었을까? 칼로 위협하고 슬리퍼로 등짝을 후려쳐도 편지가 있어서 시아버지는 견딜 만했던 걸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 편지를 봤다. 내 보호 아래 들어오곤 하는 시아버지의 편지를 훔쳐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해져서 보풀이 이는 편지는 백지였다. 시아버지의 순정이라는 그 여인과 주고받은 애틋한 밀어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편지 따위 없었는지도 모른다. 시아버지가 거짓 편지를 만들어 시어머니 속을 뒤집어 놓은 건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로 시아버지가 입을 벌려 말한 것일까? 시어머니 푸념을 통해 만들어지고 각색된 이야기는 어느덧 폭력의 명분이 되어 자신을 후벼 팠고 서로를 다치게 했다. 분노의 힘으로 서로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다. 

   밀쳐내도 슬프고 밀착되어도 아프다. 서로를 못 견뎌 하면서도 서로에게 서로를 꽂아야만 살 수 있나 보다. 시아버지에게 편지는 마음을 싣고 폴폴 날아가는 풀씨였겠지. 홑껍데기만 남아서 상대를 휘감고 상대는 홑껍데기에라도 감겨서 살아가야 했을까. 말랑말랑한 속살 한번 보여 주지 않는데, 아니 살갗을 긁어낼 듯 아픈 껍데기라도 뿌리박고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어머니는 때리지 않는 순간에는 헌신적이었고 그 헌신은 언제나 무시당했다. 

   편지는 백지였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오해를 푸세요. 

   시아버지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댄 며느리가 되어 욕을 먹는다 해도 폭력을 푸는 작은 실마리라도 된다면, 그런 마음으로 말했을 때 시어머니는 자꾸만 눈을 깜빡이면서 쓴웃음만 지었다. 




   “네, 일 처리 잘하고 오세요. 안전 운전하시고.” 

   조회 시간에 들어가는 건 어림도 없고 1교시 수업 시간에 맞추기도 어렵게 됐다. 집안일 때문에 급하게 수업 교체를 부탁해야 하는 건 언제나 입 열기가 옹색한 일이다. 최대한 불편함을 숨기고 말하는 교감 목소리는 단정하고 건조하다. 우리 반 민주의 학폭 신고 건으로 교감은 이미 기분이 나쁘다. 그의 들숨과 날숨에는, 대체 아이들 생활지도를 어떻게 하길래, 그래 놓고 집안일로 수업에 지장이나 주고, 그런 말들이 묻어 있다. 그 와중에 나는 간호사와 실랑이까지 벌였다. 

   “지금 보호자가 온다니까요, 수업 때문에 정말 가야 해요. 다 어른인데 왜 안 된다는 거죠?” 

   “검사 때문에 안 된다고요.”

   소용없었다. 그냥 가 버릴걸. 애초에 간호사에게 가겠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경서보다도 제 앞가림을 못하는 시아버지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어서 말했던 건데 가지 말라고 재차 당부까지 한다. 바장거리고 있는데 시숙이 왔다. 모텔이면 시어머니가 바로 달려왔을 텐데 시숙을 보낸 걸 보면 응급실은 겁나는 모양이었다. 물끄러미 제 아버지를 내려다보는 시숙의 얼굴에는 감정 같은 게 담기지 않았다. 아무런 질문도, 위로도, 인사도 없다. 시아버지도 무덤덤하다. 남편이 떠올랐다. 그와 같이 있을 때 시아버지는 잘 웃었다. 아버지랑 낚시하러 다닐 때가 젤 좋았지. 아버지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달리면 얼마나 신났는데. 가끔 학교도 빠지고 같이 낚시하러 갔다니까. 그때의 남편은 가볍고 걱정 없는 말간 사람이었다. 

   “제수씨도 그만 학교 가세요.”

   돌아서는 내게 시숙이 불쑥, 은행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봉투를 건넸다. 뜨악한 얼굴로 쳐다보자, 그가 건조하게 말했다. 경서 뭐 하나 사 주세요. 봉투를 받았다.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응급실을 나오자마자 봉투를 열어 봤다. 오만 원권 열 장. 큰아빠가 돼서는 따뜻한 말이라도 한번 해 주지. 그런 생각 같은 건 안 한다. 따뜻한 말보다 훨씬 유용하다. 경서 여름방학 때 보낼 연수 프로그램이 뭐가 있을까 생각한다.




   숨 고를 새도 없이 1교시와 교체한 2교시 수업을 했다. 시아버지 때문에 망쳐 버린 차림새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성적 일람표를 챙겨 들어갔다. 애들도 내 차림새 같은 건 관심이 없고 중간고사 점수 확인에만 열을 올렸다. 2교시를 마치고 학년실로 들어가니 창을 등지고 앉아 있던 학년 부장이 쳐다봤다. 그가 턱으로 내 책상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종례 때 나눠 주세요.”

   책상 위에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 핀 버튼 뭉치가 놓여 있었다. 학폭 예방 주간이었다. 등굣길 캠페인은 잘했는지 물으려다가 속 보이는 것 같아 말았다. 핀 버튼 초록색 바탕에는 “폭력을 반대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연하늘색 비둘기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 반 경숙이 와서 종이 한 장을 삐죽 내밀었다. 

   “반성문, 아니 사과 편지요.”

   “이건 왜?”

   “엄마가 내라고 했어요. 학폭위 전에 제출하면 도움이 된다고.”

   학폭위가 열릴지, 안 열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속내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다. 잠자코 받아서 훑어봤다. 민주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는 기세등등하게 학교를 뛰쳐나간 경숙은 풀죽은 모습이다. 경숙이를 퇴학시키라고 낭창하게 말하던 민주의 암팡진 얼굴도 겹쳤다. 경숙이 불퉁거렸다.

   “머리 한 번 잡아당긴 거 갖고 학폭이란 게 말 돼요?”

   “그러니까 진술서 쓰라고 했잖아. 싫다고 소리치고 뛰쳐나간 사람이 누구더라? 내 전화도 안 받았을 때는 너도 뭐 생각이란 게 있었겠지?”

   벌점 주면 되지 왜 선도까지 해요? 그냥 벌점만 주라고요, 울 엄마도 안 하는 충고 같은 거 좀 하지 말고, 존나 짜증 나게. 이야기 좀 해 보려면 그렇게 밀어내는 아이다. 물론 민주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년이 짜증 나게 하잖아요.” 

   나도 니들이 정말 짜증 나거든.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말을 삼키느라 큼큼거렸다. 이럴 땐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상책이다. 중립을 지키지 않고 판단을 내리면 그 말꼬리를 잡아채서 담임을 잡아먹으려고 덤비는 게 아이들이다. 경숙이가 징징거렸다. 

   “엄마가 무조건 쓰라고 했어요.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아빠한테 죽는다고.”

   “네가 진술서 쓰라는 내 말 안 듣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간 순간, 이 일은 내 손을 떠났어.” 

   냉정한 내 말에 아이는 기가 죽었다. 나보다 한 뼘이나 더 크고 나보다 더 진하게 화장하고 나보다 더 큰소리로 웃으며 친한 척 다가왔다가 나보다 더 큰소리로 대들던 아이가 기가 팍, 죽으니 고소했다. 이 일은 내 손을 떠났어.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뾰족하게 울렸다. 남편이 불쑥 떠올랐다. 그날 내 전화를 받지 않았던 남편이 고소한 순간을 북북 찢어 놨다. 

   경숙이 써 온 편지를 흔들면서 딱딱거렸다. 수학 선생이 힐금 쳐다봤다. 발단은 수학 시간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수학 선생이 경숙과 민주를 잡아 왔다. 보나 마나 수업을 방해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한참 혼내고 내보낸 수학 선생이 구시렁거렸다. 대체 반 편성을 누가 한 거야. 저 둘은 붙여 놓으면 안 되는데. 학년 부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저럴 줄 알았나. 아무도 몰랐다. 학년실을 나서는 길로 바로 또 욕하며 싸울지. 약삭빠른 민주가 때려 봐, 때려 보라고! 바보처럼 왜 못 때리는데? 하면서 경숙이를 도발했고 버럭거리기만 잘하는 경숙이가 민주의 머리를 잡아챈 것이다. 민주는 바로 경숙이를 학폭 가해자로 신고했고 나는 학폭 책임 교사에게 알렸다. 

   사안 조사가 시작됐고 민주와 경숙 엄마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원래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이라 학부모 간에도 아는 사이였고 양쪽 다 학폭까지 가는 걸 원치 않았다. 진술서 쓰라니까 싫다고 뛰쳐나갔어요. 내 말에 경숙이 엄마가 제 딸을 반 죽여 놓겠다고 했다. 그 말에 민주 엄마도 웃었다. 그래서 진술서 작성과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보호자 확인서로 해결될 듯했다. 그런데 민주가 느닷없이 117로 학폭 신고를 한 것이다. 

   “사과 편지가 이게 뭐냐, 어? 다시 써. 볼펜으로 정성껏 또박또박, 길게 구체적으로. 너 같으면 연습장 쭉 찢어서 줄 북북 그은 편지 받고 알았어. 용서할게, 그러겠냐? 그리고 이것도 민주가 받겠다고 해야 전해 줄 수 있어. 알겠냐?”

   네, 경숙이 편지를 받아 주머니에 구겨 넣으면서 학년실을 나갔다. 




   예고된 시각에 학교 전담 경찰이 왔다. 동료 한 명과 함께.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진술을 확보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다. 학폭 책임 교사와 이야기하고 있던 경찰은 내가 담임이라고 하자 신고자인 민주를 먼저 불러 달라고 했다. 

   경찰 1이 민주에게 말했다.

   “머리채 말고 다른 데 맞은 데는 없나?”

   “뺨도 할퀴었어요.”

   어제 너 말짱한 얼굴을 내가 봤는데,라고 말하기 전에 경찰 1이 말했다.

   “얼굴은 괜찮아 보이네.” 

   민주가 작은 목소리로 예, 하고 대답했다.

   “경숙이가 처벌받길 원하나?”

   민주가 되물었다.

   “그년은 언제 잡아갈 건데요?”

   “이따가 너희 부모님께도 경숙이 처벌을 원하는지 물어볼 거야. 더 조사하겠지만 그렇다고 경숙이를 잡아가진 않을 거다.”

   “왜요?”

   “머리채 한 번 잡아당긴 걸로?” 

   “그러면 퇴학시켜 주세요.”

   “그건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고.”

   불쑥 경찰 2가 끼어들었다.

   “경숙이랑 싸우면서 너도 욕했지?”

   “네, 그치만 난 안 때렸어요.”

   “그래도 같이 욕하면서 싸웠기 때문에 경숙이도 그걸로 널 신고할 수 있어. 그건 알고 있지?”

   민주 표정이 흔들렸다. 

   “그럼 딴 학교로 전학 보내세요.”

   “그건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니까. 선생님, 경숙이도 불러 주시죠.”

   민주를 돌려보내고 나도 뒤따라 교실로 갔다. 수업 중이라 담당 교과 교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경숙이를 불렀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경숙이가 하품을 하면서 나왔다. 거짓으로 기절한 척해서 119를 부르게 했던 일, 배 아프다고 간 보건실에서 자살하겠다며 핀으로 팔목을 긋는 바람에 응급실로 싣고 갔던 날들이 나는 아득한데 아이는 오늘도 태평스럽게 잠을 잔다. 응급실에 실려 갔던 날, 연락받은 경숙이 엄마도 태평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년이 죽긴 왜 죽어요. 겁이 얼마나 많은 년인데요. 체험활동 가는 날도 버스가 뒤집혀서 죽을까 봐 안 가겠다는 년이에요. 그런 년이 죽기는요.

   잠잘 시간에 사과 편지나 고칠 일이지. 나는 속으로 욕을 한다. 생각 없이 태평한 게 얼마나 사람 성질나게 하는지 가슴이 찌르르해질 지경이다. 하루걸러 일을 만드는 아이는 이제 폭력의 가해자가 됐으니 한동안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경숙에게도 사실 확인을 했다. 민주가 말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숙에게 너도 민주를 고발할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경찰은 돌아갔다. 




   점심시간, 복도에서 때아닌 함성이 들려왔다. 한나절 하도 종종거려서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쳐서 급식실에도 가기 싫었다. 학년 부장이 뭔 일인가 싶어서 복도로 나갔다가 허허거리며 들어왔다. 

   “비폭력 퍼포먼스를 한다네. 애들이 구경한다고 아주 매미 새끼들처럼 창문에 붙어서 난리야.” 

   다시 아이들 함성이 쏟아졌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학생자치회 간부 학생들이 운동장에 원을 만들고 누워 있다. 죽은 듯이 드러눕는 걸로 폭력에 항의하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죽은 듯 누워 있지 않고 환호에 주먹을 불끈 쥐며 호응했다. “괜찮아, 힘내.”, “폭력 추방” 그런 문구가 쓰인 피켓도 같이 널브러져 있다. 

   “아이고, 열일들 하시네.”

   옆에 와서 밖을 내다보며 수학 선생이 뇌까렸다. 오월의 푸른 햇살이 아이들 환호에 섞여 운동장으로 부시게 쏟아졌다. 

   시아버지는 집에 가셨을까? 광풍이 불기 전에는 고요함과 아늑함이 보장되는 수상한 집으로. 그러나 시아버지가 도망쳐 나온 그 거리 역시 불온한 폭력을 감추고 있었지. 비둘기들이 만드는 긁히고 까진 평화는 지금 어느 하늘에 잿빛 날개를 흩뿌리고 있을까. 시릴까? 눈부실까? 시어머니의 폭력도 처음부터 폭력이었을까? 시아버지도 잘못한 게 있으니 방관했고 수긍했고 대처하지 않았다. 시어머니 분노는 폭력의 희열로 바뀌었다. 이제 누구도 시어머니의 폭력에 속수무책이다. 싱싱하게 날로 푸르러지는 시어머니의 폭력은 온전히 당신 안에 시아버지를 종속시키는 원동력이고 거부할 수 없는 힘이다. 

  



   그러면 그날, 나와 남편은? 인생은 일관되게 배신을 꿈꾼다. 난장맞을 난장은 언제나 있어 왔다. 그날 경서가 찢어지는 소리로 전화를 해 왔다. 막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의자에 주저앉을 때였다. 

   “엄마, 언제 와? 밖에서 어떤 여자가 소리 지르고 난리야. 미친 사람처럼 문을 두드려. 무서워 죽겠어. 아빠 나오라고 소리치고. 아빠 이름도 부르고 욕도 해. 안에 있는 것 다 아니까 문 열라고. 어떡해, 엄마?” 

   “지금 바로 갈 테니까 아무한테도 문 열어 주지 마. 엄마가 경비실에 연락할게, 넌 네 방에 있어.”

   경비실에 전화해서 모르는 사람이 행패를 부리고 있으니 가 봐 달라고 했다. 차에 시동을 걸면서 생각했다.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다른 집을 착각한 걸까? 그러나 경서는 제 아빠 이름을 들었다고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넣었지만 받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행패 부리던 여자는 없었다. 경비실에서도 같은 대답을 했다. 

   “댁에 가니까 아무도 없던데요.”

   경서는 내게 전화를 한 뒤 제 아빠하고도 통화를 했다고 했다. 아빠가 뭐라셨는데, 나는 실마리라도 얻을까 싶어 물었지만, 남편은 아이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그날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영원히. 과속으로 달리던 남편은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차는 전복됐다. 평소에 다니지 않던 길이었다. 남편은 왜 전속력으로 그 길을 달렸을까? 아침에 말짱한 얼굴로 나가서 끝내 돌아오지 않은 그를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아무리 구겨 박아도 늘 떠올랐다. 그때부터였다. 아이가 비둘기에 놀란 것은. 

   남편은 죽으러 간 걸까, 살려고 간 걸까. 알 수 없다. 그와 사는 동안 시아버지 일 말고는 싸움 같은 거 하지 않았다. 남편이 잘못해도 그래서 내 편에서 먼저 사과하지 않을 거라고 모질게 마음먹었어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서 혹은 그 말을 할 수 없게 되어서 한으로 남을까 봐 먼저 말하고 먼저 사과했다. 그런 내게 그는 어떤 폭력을 자행한 걸까. 다 안다고 생각한 그는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어떤 예고도, 징후도 남기지 않고 나와 경서의 세계에서 사라졌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폭력이 아니던가. 어떤 모습으로든 세상의 틈새 속에서 폭력은 자라고 숨 쉬고 있다. 심지어 안온함과 평화의 모습으로. 피와 살과 세상과 정신이 사라진 그를 확인할 때 나는 보았다. 비둘기를 죽이고 난 뒤 두려움에 떨면서 울던 그 얼굴을. 

   그는, 소심한 그는, 제 엄마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큰 그는, 제 아버지를 애통해하던 그는, 평생 딴 여인을 품고 산 제 아버지를 비웃던 그는, 제 아버지랑 낚시 갔던 게 유일한 추억이었던 그는 어떤 얼굴로 그 길을 달린 걸까? 그 여인은 남편과 어떤 관계였을까? 정말 관계가 있었을까?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낯모를 여인이 장례식에 왔을까 오로지 그에 몰두했다. 그 여인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은 날마다 모양과 부피와 크기를 달리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 잃은 충격을 견뎌냈다. 그리고 경서, 아빠를 잃은 슬픔이 뭔지도 모를 아이에게 비둘기가 또 다른 비둘기를 가져다줬다.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한 떼의 아이들이 안을 향해 소리쳤다. 

   “쌤, 애들이 난리 났어요. 비행기 접어서 날리고, 책 찢어서 던지고.”

   퍼포먼스를 하던 아이들이 일어나 총 쏘는 흉내를 내고 피켓을 던지고 춤을 추었다. 그때마다 환호하는 아이들이 던지는 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날아가 떨어졌다. 흥분한 아이들은 연습장을 찢어서 비행기를 만들고 교과서를 찢어 뭉쳐서 종이공을 던졌다. 그것들은 운동장으로 꽃처럼 떨어졌다. 새처럼 날았다. 학년 부장이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어디선가 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뒤뚱거리지 않고 오월의 푸른 하늘을 쩍, 가르며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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