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 까딱하지 않았는데」 외 6편
- 작성일 2022-10-21
- 댓글수 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시]
손도 까딱하지 않았는데
김규학
화장대를 잡고
처음으로 아기가 섰다
화장대 위에 있던
향수
립스틱
스킨로션이
아기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올라간다.
일어서기만 했는데
화장품이 착착
올라가는 것은
아기의 힘이다.
아기의 초능력이다.
다음 시험 때문에
시험 치고 나오는 순간
공부했던 거
다 잊어 먹는다는
대학생 삼촌
-어차피 잊어 먹을 건데
공부는 왜 해?
-시험 쳐야 하니까
- 까맣게 잊어 먹을 건데
시험은 왜 자꾸 쳐?
-말끔하게 비워야
새로운 거 또 공부하지!
단풍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는가 보다.
여름내 푸르던 잎
빨갛게
노랗게
저마다 물들었다.
박수 받아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이별이다.
텃밭 풍경
아기 하나씩 업은
옥수수가
참관수업 온 엄마들처럼
빙 둘러 서 있다,
고춧대야
가지 대야
바람이 살랑살랑 꼬드겨도
못 들은 척 있어라.
돌아다니고 싶어
좀이 쑤시겠지만
고구마 덤불 너도
얌전하게 있어라.
사과를 깎기 전에
칼등으로
엄마가
사과 어깻죽지를
탁탁 친다.
주사 놓기 전에
간호사 언니가
내 엉덩이
찰싹찰싹 때리듯
전기톱과 나무
나무를 자르면서
전기톱이 운다.
쓰러지면서도
나무는
울지 않는데
전기톱 저만
소리소리 치며 운다.
어찌나 크게 우는지
나무
그루터기에도
그렁그렁
눈물방울 맺힌다.
웃기는 펌프
병희 아재 자전거포 앞에는
펌프가 세워져 있다.
누구라도 와서 바람을 넣고
-고맙습니다.
-잘 썼습니다.
인사를 하는
펌프 아니면
평생 가도 인사받을 일 없다는
병희 아재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고
펌프 덕에
하루에도 몇 번씩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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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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