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 할매와 차사들
- 작성일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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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 할매와 차사들
김하영
차례
프롤로그
잠보 삼매 할매
2. 거북 아재와 만나다
3. 저승차사 대리
4. 색다른 영혼
5. 힘내!
6. 찬희야, 이제 내 차례야
에필로그
- 프롤로그 -
지상에는 삼매 신이 살고 있다. 인간들과 어울려 살면서 영혼이라 부르는 귀신들에게 죽을 만들어준다.
어느 날, 옥황상제가 삼매신을 불러올렸다.
“삼매, 특별히 해줄 일이 있네.”
“뭔디?”
옥황상제가 천천히 깍지를 꼈다. 옥황상제의 두툼한 송충이 눈썹이 꿈틀댔다.
“아이들 영혼 중에 하늘로 안 올라오는 오는 영혼이 있어. 아무래도 자네가 나서서 해결 좀 해줘야겠어.”
“그건 저승차사들이 할 일이잖여. 난 아이들 꼬시는 법도 몰러.”
“저승차사들이 좀 바빠야 말이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차사들로 보내줄 테니 좀 부탁함세.”
삼매가 자기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허연 머리와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면 다 놀라 도망갈걸?”
“알았어. 자네 젊었을 때 모습으로 바꿔주지. 그리고 맛난 것도 준비해 놨어. 그럼 내 부탁 들어줄 거지?”
삼매 할매는 마지막 말에 홀라당 넘어갔다.
이리하여 삼매 할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고양이와 아이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갈 거북이를 차사로 죽집을 시작했다. 죽집 주변의 어린 영혼들을 다 거두면 옥황상제의 명에 의해 죽집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다음 죽집 장소는 옥황상제만 알 뿐,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천년이 지난 어느 날, 삼매의 죽집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옥상엔 풀들이 무성히 자란 빈 가게 앞이었다. 삼매 할매가 황금 보자기를 어깨에 둘러멘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옥황상제, 이번엔 여기여? 음, 나쁘진 않구먼. 주걱아, 어뗘? 맘에 들어?”
삼매 할매 앞치마에 꽂혀 있던 나무 주걱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 인간들 눈에 잘 안 띄는 곳이야. 저번처럼 결계가 열린 사이 인간들이 불쑥불쑥 들어오면 큰일이니까.”
“그럼 시작해 볼까?”
할매가 히죽 웃으며 황금 보자기를 풀었다. 기름칠로 윤이 나는 커다란 무쇠 가마솥이 드러났다. 할매는 가마솥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솥을 바닥에 쿵, 내려놓았다. 그러자 허름했던 가게가 순식간에 깔끔한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풀이 무성하고 허름한 빈 가게로 보였다.
1. 잠보 삼매 할매
“준후야, 죽 좀 사 올래?”
현관으로 들어서던 준호가 가방을 멘 채 안방 침대맡으로 달려갔다. 노을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방이 온통 다홍빛이다.
“엄마, 어디 아파요?”
“체했나 봐.”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에 준후가 엄마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엄마, 병원 가요.”
엄마가 준후 손을 옆으로 살짝 내려놓으며 힘없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괜찮아, 그냥 죽이나 사다 줘.”
“알았어요. 그럼, 소화제랑 혹시 모르니 해열제도 사 올게요.”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는 준후를 보며 엄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에휴, 저 녀석 오지랖을 누가 말려. 제 아빠랑 똑같은걸.”
준후는 약국에 들러 약을 샀다. 약국에서 나오자마자 휴대 전화로 검색을 시작했다. ‘죽집’을 치니 바로 뒷골목에 있다는 표시가 떴다.
“가깝네.”
준후는 ‘길찾기’가 알려 주는 대로 바로 뒷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6월의 뜨끈한 공기 속, 치킨 냄새며 고기 굽는 냄새가 준후의 코를 벌렁거리게 했다. 준후는 냄새로 배를 가득 채운 채 눈을 크게 뜨고 죽집을 찾았다. 그런데 몇 번이고 골목 안 음식점을 샅샅이 뒤졌지만 죽집 팻말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여긴데···.”
준후는 휴대 전화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분명 골목 끝 집이고 맞은편에 치킨집이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죽집이 있어야 할 곳엔 허름한 빈집이 있을 뿐이었다. 이층 옥상은 버려진 화분에서 자란 풀들과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준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골목을 나와 주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죽집이 나올 때까지.
한편 골목 안, 보통 사람들 눈에는 허름한 빈집으로 보이는 삼매 죽집에서 난리가 났다.
“우당탕탕!”
막 잠에서 깬 삼매 할매가 하품을 하다 깜짝 놀랐다.
“옴마야, 뭔 일이여?”
헝클어진 긴 머리를 휘날리며 안방에서 뛰쳐나왔다.
까만 고양이 깜콩이 식당 구석구석을 뒤지며 쏘아붙였다.
“주걱이 도망갔어! 이게 다 할매 때문이야. 이제 어쩔 거야? 아이들을 하늘로 데려갈 거북 아재 올 시간인데.”
“이잉?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넌 이제 꺼 뭐 했냐? 아이들 영혼 안 모아 오고.”
삼매 할매가 볼멘소리를 하자 깜콩이 버럭 화를 냈다.
“뭐래! 애들 영혼 다 모아 놨거든. 일주일 동안 잔 게 누군데! 그것도 죽을 만들다가! 잤다 하면 뭔 짓을 해도 안 일어나니. 이런 지도 벌써 천년이야, 천년. 몰라! 거북 아재한테 혼나든 말든. 애들 데리러 가니까 얼른 주걱 찾아서 죽이나 열세 그릇 만들어 놔.”
깜콩은 빠르게 가게를 나가 버렸다.
“으윽, 저 잔소리는 옥황상제보다 더혀. 에이, 잔소리 냥이라고 소문낼까 보다.”
삼매 할매는 허리까지 오는 까만 머리카락을 통통한 손으로 쓸어내렸다. 빠르게 땋아 감아올린 뒤 비녀를 꽂았다. 쪽빛 계량 한복을 입고 새하얀 앞치마를 두른 삼매 할매의 팽팽한 얼굴로 봐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할매는 가마솥 옆으로 갔다. 있어야 할 주걱이 온데간데가 없었다. 깜콩 말대로 어디로 숨어버린 게 틀림없다. 주걱을 찾으러 가게 안 여기저기를 뒤졌다. 아무래도 삐지기 대왕 주걱이 뭔가에 제대로 삐쳤나 보다.
할매는 뒤지는 걸 멈추고 아이를 어르듯 달콤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예쁜 나무 주걱아, 어디 숨었냐아? 그땐 미안혔어. 너무 졸려서 널 솥 안에 두고 잠들어 버렸지 뭐냐. 혹시 불에 덴 건 아니지?”
가게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그래서 원하던 대로 네 몸통에 예쁜 꽃무늬를 새겨 줄까 하는데.”
그때 주방 싱크대 아래쪽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다. 삼매 할매가 씩 웃으며 뒷짐을 진 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얼른 나올 줄 알았던 주걱이 꼼짝하지 않았다. 할매는 일부러 이마를 탁, 치며 능청을 떨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잠들기 전에 새 나무 주걱을 옥황상제 쇼핑몰에 신청해 놓은 걸 깜박했네. 잘 됐구먼! 주걱아, 기왕 쉬는 김에 푹 쉬어. 알았제?”
할매가 뒤돌아서려는데 싱크대 아래쪽 선반 문이 끼익하고 열렸다. 나무 주걱이 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밥을 푸는 동그란 부분에 눈코입이 달려 있고 손잡이엔 팔다리가 붙어 있다. 크기는 어른 팔뚝보다 두 배는 더 컸다.
나무 주걱이 앙증맞은 팔과 다리를 비비 꼬며 나왔다.
“할매, 뭐 그런 일로 새 주걱을 사. 나도 그때 깜박 졸았지 뭐야. 그 정도 덴 자국은 상처도 아니야. 봐봐! 나, 아직 쓸 만하지?”
나무 주걱이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돌더니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요즘 하늘나라 택배원들이 파업한 거 모르지? 끊임없이 쏟아지는 주문량 때문에 택배원들이 택배 기사들을 더 모집하라고 난리도 아니래. 지금 주문하면 일주일 넘게 걸릴걸?”
할매가 눈을 뚱그렇게 뜨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나 오래 걸리는겨? 큰일이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죽을 만들 거야?”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말을 하던 나무 주걱이 삼매 할매의 손에 착 달라붙었다. 할매는 못 이기는 척하며 주걱을 토닥였다.
“아이고, 네가 맘 돌려먹어서 참만 다행이여. 뭔 일인지 요즘 들어서 이유로 모르고 죽는 아이가 너무 많아졌지 뭐냐.”
“흠흠, 거봐. 나만 있으면 가마솥에 죽 마를 날이 없으니 얼마나 좋아. 새로 주문한 주걱은 할매가 말하는 대로 뚝딱 알아서 못 해 줄걸?”
나무 주걱이 목에 힘을 빳빳이 주며 말했다.
“그려 그려. 주걱 네 말이 맞다. 이제 삐지지 말거라.”
“히히, 알았어. 사실 할매 때문에 삐진 거 아니야. 깜콩이 할매의 오른팔은 자기라고 팍팍 우기잖아. 오른팔은 나라고 하니까 내 옆구리를 발톱으로 할퀸 거 있지? 여기 봐봐. 겨드랑이 쪽에 난 선 세 개, 보이지?”
할매가 “오냐오냐.” 하며 옆구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살 한번 요란하게 떠는 주걱이다.
가게를 나온 깜콩은 주택과 작은 공장들이 즐비한 곳으로 갔다.
공장으로 가려면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 아래에 영혼들이 많이 모여 있다. 올라갈 시기를 놓쳤거나 갈 데가 없는 영혼들이 지내는 곳이다.
깜콩이 다리 아래로 내려가 길게 울었다. 돌다리 기둥에서 이런저런 영혼들이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얘들아, 오래 기다렸지? 나랑 밥 먹으러 가자.”
아이들 영혼이 하나둘 깜콩 곁으로 모여들었다.
“열둘··· 어라? 열세 명인데, 한 명 모자라네.”
깜콩이 아옹아옹하며 불러도 보고 어른 영혼에게 가 물어도 봤지만 모른다는 말만 돌아왔다.
“우선 너희들 먼저 삼매 할매한테 데려다 놓고 찾아야겠다. 얘들아, 출발!”
열두 명의 아이 영혼들이 깜콩을 따라갔다.
깜콩이 음식점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끝까지 가서 치킨집 맞은편 허름한 빈집 앞에 도착했다.
“얘들아, 여기란다.”
깜콩이 허름한 빈집 앞에 세워진 입간판을 향해 걸어갔다. 깨진 입간판에는 ‘집’이라는 글자만 남아 있었다. 깜콩이 입간판에 왼쪽 앞발을 올리고 탁탁탁 세 번 쳤다. 그러자 깨진 입간판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더니 깨진 글자가 되살아났다. ‘죽집’ 글자가 붉은색으로 바뀌더니 환하게 빛이 났다. 허름했던 빈집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깔끔한 식당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깜콩이 아옹하고 울자 죽집 문이 활짝 열렸다. 삼매 할매가 방긋 웃으며 가게에서 나왔다.
“아이고, 우리 아가들 왔어? 어서 오너라. 이 할미가 맛난 죽 끓여놓았단다.”
아이들 영혼이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다. 깜콩이 뒤돌아서서 아옹아옹 말하듯 울자 놀란 아이들이 얌전해졌다. 깜콩이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할매를 힐끔 쳐다보며 쭈뼛쭈뼛 깜콩 뒤를 따랐다.
할매 앞치마에 꽂혀 있던 나무 주걱이 입을 삐쭉였다.
“봐봐, 깜콩이 으스대는 꼴. 정말 밉상이야.”
“어허, 주걱아. 깜콩이 일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이들 영혼을 누가 데려오겠니?”
“치, 깜콩 말고 할 사람이 없나 뭐.”
“주걱아, 기억 안 나냐? 백 년 전에 깜콩이 너랑 싸우고 열 받아서 숨어 버렸잖여. 그래서 옥황상제에게 우리 둘이 반성문 백 장 쓴 거. 난 이제 못 쓴다, 팔 아파.”
주걱은 깜콩 뒤통수를 째려보다 고개를 팩 돌려 버렸다. 깜콩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박치기가 나갈 것 같았다. 할매와 주걱이 옥신각신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주변 골목을 다 뒤지고 나서 다시 돌아온 준후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때 붉게 빛나는 죽집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준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빈 가게가 있었는데···. 내가 잘못 봤나? 에구 모르겠다. 빨리 죽이나 사 가자.”
준후는 서둘러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할매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깜콩이 주방 가까운 의자에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죽 사러 왔는데요.”
준후가 가게 안을 휘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순간 깜콩이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봤다.
‘이런! 결계가 열렸을 때 들어오다니.’
깜콩은 자세를 낮추고 매서운 눈으로 준후를 보았다.
준후는 발뒤꿈치를 들고 목을 잔뜩 뺀 채 가게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주방에서 죽을 만들려던 삼매 할매가 놀란 토끼 눈을 한 채 뛰쳐나왔다.
“어라? 너 여길 어떻게 들어왔냐?”
“문이 열려 있길래 걸어서 들어왔는데요.”
준후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 죽집이 보였느냐?”
“네! 간판이 저리 빨갛게 빛나는데 어떻게 안 보여요.”
준후는 근처 의자에 앉더니 삼매 할매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전복죽 두 개, 맛있게 만들어 주세요.”
씩 웃더니 손에 쥔 휴대 전화로 게임을 시작했다.
할매가 재빨리 깜콩이 있는 곳을 보았다. 깜콩이 알아서 내보내라는 듯 배를 의자 바닥에 깔았다. 그제야 할매는 결계가 열린 사이로 들어왔다는 걸 눈치채고 주문을 받았다.
“알았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앞에 주문이 좀 밀렸거든.”
할매는 주방으로 급히 돌아가서 전복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참 게임을 하던 준후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엄마? 죽집 찾았냐고요? 네, 그런데 주문이 많아 시간이 좀 걸린대요.”
준후는 전화를 끊고 하던 게임을 다시 시작하려 했다.
“에이, 한참 점수 올리고 있었는데. 아아, 다 날아가 버렸네.”
준후는 툴툴거리며 휴대 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네 개의 테이블이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출입문 바로 옆에는 어른 허리 높이까지 오는 계산대가 눈에 들어왔다. 계산대 바로 뒤에 3개의 액자가 걸려 있었다. 모두 거북이 증명사진이었다. 눈꺼풀이 눈을 반쯤 덮고 있는 첫 번째 사진, 눈과 콧구멍을 동그랗게 한 채 웃고 있는 두 번째 사진. 그런데 세 번째 사진 액자는 비어 있었다.
그러다 바로 아래 계산대에 눈이 갔다. 진귀한 물건들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아주 오래된 물건들이네. 이건 뭐지?”
준후는 석류 열매 모양을 한 나무 상자를 열었다.
“와아! 안경이다.”
알이 겹쳐 있는 안경이 들어 있었다. 손으로 안경을 꺼내려는데 깜콩이 준후 다리를 박박 긁었다. 깜짝 놀란 준후가 황급히 다리를 움츠렸다.
“으악! 뭐야? 깜짝 놀랐잖아.”
다시 달려드는 깜콩을 피하며 준후가 접힌 안경을 폈다. 빨간 실이 대롱거렸다. 귀 거는 부분이 동그랗게 묶여 있는 안경다리였다. 뿔테처럼 반질반질 윤이 나는 안경테가 참 멋져 보였다.
“한 번 써 봐도 뭐라 안 하겠지?”
준후는 안경다리인 붉고 동그란 실을 귀에 걸었다.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보았다.
“왜 이렇게 뿌옇지?”
준후는 안경을 벗어 티셔츠 끝부분으로 깨끗이 닦았다. 다시 안경은 썼지만 뿌옇기는 매한가지였다. 준후는 다시 안경을 벗어 요리조리 살폈다.
그때 깜콩이 폴짝 뛰어올라 준후 손등을 ‘탁’ 쳤다. 그 바람에 준후 손에 있던 안경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새를 틈타 깜콩은 안경을 얼른 입에 물고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준후가 자기도 모르게 냅다 소리쳤다.
“아야! 야, 그걸 물고 가면 어떡해?”
포장된 죽을 들고나오던 할매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준후는 얼른 목소리를 낮췄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마에요?”
“만 팔천 원.”
준후는 계산을 하고 급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안경을 써 봤다는 게 들통나면 왠지 혼날 것 같았다.
2. 거북 아재를 만나다.
준후는 서둘러 골목을 벗어났다. 큰 도로를 따라 걷다가 건널목을 건너 바로 앞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놀이터를 막 지나는데 혼자서 미끄럼을 타고 있는 꼬마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라 놀이터엔 딸랑 그 애 혼자였다.
“왜 쟤는 집에 안 가고 있지? 에이, 그냥 가자. 괜히 오지랖 떨었다간 엄마 잔소리가 폭탄으로 날아올 거야.”
준후는 꼬마 아이를 힐끗 보다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언제 왔는지 꼬마 여자아이가 옆에 와 섰다. 마침 띵, 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준후가 들어가 9층을 누르며 따라 들어온 꼬마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넌 몇 층 가?”
꼬마는 손가락으로 불이 들어온 숫자판을 가리켰다.
“너도 9층이야? 아, 앞집 할머니 집에 온 거야?”
꼬마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앞집 할머니와 손녀가 산책하던 모습이 준후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 뒷모습만 봐서 손녀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진 못했지만 키가 비슷해 보였다.
띵! 문이 열렸다. 준후는 꼬마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전복죽 사 왔어요.”
엄마가 화장실에서 배를 움켜쥐며 나왔다.
“늦었네···. 아구구, 또 배가 살살 아프네. 준후야 아무래도 죽은 너 혼자 먹어야겠다.”
엄마는 급히 화장실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준후는 걱정스레 한숨을 내쉬며 식탁으로 갔다. 포장된 죽통을 식탁 위에 놓고 수저랑 그릇을 챙겼다. 식탁에 앉으려고 몸을 돌렸는데, 세상에! 앞집 간다던 꼬마가 식탁 앞에 버젓이 앉아 있는 거였다.
깜짝 놀라 입에서 “엄마야!” 소리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꼬마도 놀랐는지 겁먹은 표정으로 준후를 빤히 보았다. 준후는 엄마가 들을까 봐 얼른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엄마가 알면 또 오지랖 떨어서 꼬마를 데려온 줄 알 테니까.
“얘! 네 할머니 집은 앞집이잖아? 날 따라오면 어떡해?”
꼬마는 준후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전복죽만 빤히 보고 있었다. 입맛을 다시면서.
“할머니 집에 안 계셔?”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할머니 올 때까지 나랑 있자. 배고프지? 죽 먹을래?”
아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작은 손으로 열심히 숟가락질하더니 죽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준후가 죽을 더 푸려고 일어났을 때였다. 엄마가 화장실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준후야, 엄마 그냥 잘게. 도저히 못 먹겠어.”
안방 문이 닫혔다.
준후는 죽 한 그릇을 아이에게 더 퍼 주었다. 두 그릇을 비운 아이는 만족스러운지 씩 웃었다. 그러곤 연거푸 하품을 해댔다.
“할머니가 오실 때까지 내 침대에서 자고 있어.”
준후는 자기 침대로 아이를 안내했다. 벽에 걸린 아빠 사진을 보며 미소 지었다.
“아빠, 나 잘했지?”
준후 아빠는 소방관이었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할머니부터 길 잃은 강아지 주인 찾아주기 등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동네에서 유명한 오지랖쟁이니, 말해 뭐해.”
준후가 오지랖을 피울 때마다 엄마가 귀엽게 내뱉는 소리였다.
“왜, 좋은 오지랖이라 난 보기 좋은데. 사회성에 사교성까지. 다 갖췄잖아. 좋은 쪽으로 생각해. 난 우리 준후가 나를 닮아서 정말 맘에 들어.”
준후에게 윙크를 날리는 아빠를 향해 엄마가 눈을 흘기곤 했다.
준후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아빠 손 크기만 한 육지 거북을 데려왔다. 엄마가 기겁하며 어디서 났냐고 물었다.
“불을 진압하고 정리하는데 현관 신발 더미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거야. 꼭 나를 데려가 줘요, 하는 것처럼. 그래서 데려왔어.”
아빠가 불룩한 엄마 배를 어루만지며 싱긋 웃었다. 엄마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키우는 걸 허락했다. 거북이 이름은 튼튼하게 자라라고 트니로 정했다.
준후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거북이 트니도 등딱지에 흰색 성장 줄무늬를 만들면서 쑥쑥 자랐다. 7년이 지난 어느 날, 아빠가 화재 진압 중에 건물이 붕괴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한 달 뒤, 트니도 시름시름 앓다 아빠 뒤를 따랐다.
준후는 침대에서 잠든 꼬마 아이를 보고 책상에 앉았다. 해야 할 숙제가 많았는데 의자에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았다. 죽집을 찾느라 너무 뛰어다녔나 보다.
까무륵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준후는 눈을 떴다.
“창문이 열렸나?”
눈을 비비며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닫혀 있었다.
준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침대 위를 봤다. 아이는 피곤했는지 곤히 자고 있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엄마와 아이가 깰까 봐 얼른 현관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앞집 할머니가 상추 한 봉지를 내밀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오늘 밭에 갔다가 딴 거란다. 엄마 드려라.”
“네. 참, 손녀가 제 방에서 자고 있어요.”
“응? 손녀라니? 방금 손녀 집에서 오는 길인데 무슨 소리냐?”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놀란 준후를 뒤로 하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준후는 후다닥 방으로 뛰어갔다. 세상에! 꼬마는 온데간데없고 침대가 텅 비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준후는 안방에 가서 자는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 앞집 할머니한테 6살 되는 손녀 있죠?”
엄마는 부스스 실눈을 뜨더니 힘없이 다시 감았다.
“6살이 아니라 9살이야.”
“엥? 키가 작던데요?”
엄마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맞아. 앞집 할머니도 그게 큰 걱정이라고 했어. 그런데 그건 왜 묻니?”
“아, 아니에요. 참, 할머니가 상추 주셨는데 냉장고에 넣어 놨어요.”
준후는 얼른 안방에서 나왔다.
“도대체 그 꼬마는 누구지?”
자기 방으로 가려고 거실을 지날 때였다. 거실 베란다에 그 여자아이가 등을 지고 서 있었다. 깜깜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준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베란다로 다가가며 말했다.
“야아, 한참 찾았잖아.”
준후 말에 여자아이가 뒤돌아봤다. 여자아이는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준후의 눈이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헉, 저게 뭐야?”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베란다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섬에나 살 법한 거대 육지 거북이었다.
준후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여자아이는 무섭지도 않은지 손을 흔들며 방방 뛰기까지 했다. 거북이가 사뿐히 베란다에 앉으며 말했다.
“아가야, 이제 갈까? 친구들은 먼저 갔단다.”
포근한 아재 같은 목소리였다. 아이는 생글 웃으며 거북이 등에 올라탔다.
놀란 준후가 꼬마에게 달려갔다.
“안 돼! 위험해.”
여자아이의 팔을 붙잡으려는 순간 준후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준후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자기 손을 봤다가 아이와 거북이를 번갈아 보았다.
“오호라, 우리 종족의 등뼈로 만든 안경을 쓴 아이가 바로 너구나.”
준후가 엉덩이로 뒷걸음을 치며 물었다.
“누, 누구세요?”
“아이들 영혼을 옥황상제에게 데려가는 사자란다. 음, 그걸 이성에선 저승차사? 라고 한다더구나.”
“네에? 거짓말 마세요. 거북이 저승차사는 처음 들어 보는데요.”
생각지도 않은 말이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준후의 오지랖이 또 발동한 거다.
“하하, 그렇지. 인간이 어떻게 저승 사정을 알겠니? 옥황상제가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용한 차사란다. 나도 이번에 새로 뽑힌 거북 차사지. 오백 년 주기로 바뀐단다.”
순간 준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거북이는 죽으면 다 차사가 되는 거예요?”
거북 아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준후를 바라보았다.
“꼭 그렇지만은 않단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니?”
“우리 집 트니가 생각나서요. 4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는데 꿈에 한번도 안 찾아왔거든요. 차사로 오면 정말 반가울 것 같아 물어본 거예요.”
거북 아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저 아이를 데려가도 되겠느냐?”
준후가 자기 머리를 콩 때렸다.
“아, 맞다. 또 내 이야기만 했네요.”
그러다 준후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거북이 등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를 가리켰다.
“그럼, 그 아이, 영혼이에요?”
육지 거북이가 긴 목을 빼고 머리를 살짝 돌렸다. 자기 등에 앉아 신나게 다리를 흔드는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불쌍한 영혼이란다. 죽기 한 달 전부터 부모에게 밥 한 끼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지.”
준후는 며칠 전에 아이가 굶어 죽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육지 거북 아재가 준후를 향해 빙긋이 웃었다.
“고맙구나. 이 아이가 삼매 할매 죽을 든든히 먹고 갈 수 있어서.”
순간 준후의 눈과 입이 동시에 쩍 벌어졌다.
“죽집 아줌마가 할머니라고요? 거기다가 저승사자?”
“후후, 그건 죽집에 가서 물어보렴. 우리 종족 안경을 썼으니 결계가 있어도 죽집이 네 눈엔 잘 보일 게야. 이제 가야겠구나. 또 보자꾸나.”
육지 거북 아재는 아이를 등에 태웠다. 그러고는 깜깜한 하늘 위를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반짝 빛을 내며 사라졌다. 준후는 곧바로 볼을 꼬집었다.
“아얏. 꿈이 아니었어!”
아무래도 죽집에 답이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준후는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집을 나섰다. 죽집이 있는 골목으로 뛰어갔다. 풀이 무성한 가게가 있어야 할 곳에 붉은 글자의 죽집 입간판이 놓인 가게가 보였다. 준후는 문 앞에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어제 죽을 만들어 준 아줌마 아니 할머니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용히 다가갔다. 가게 문이 열려 있었다. 어제 죽을 만들어 준 할머니가 누군가와 티격태격 말다툼 중이었다.
세상에! 고양이가 말을 하고 있었다.
“할매 때문에 어제 옥황상제한테 불려 갔잖아. 일 제대로 안 한다고.”
“뭐 틀린 말은 아니잖여. 어제 꼬마 여자아이를 놓친 건 사실이니까.”
“일주일 동안 잠만 잔 게 누군데! 나 이제 할매랑 일 못 하겠어. 아니, 안 할 거야. 할매 혼자서 잘 해봐.”
까만 고양이가 털을 잔뜩 곤두세우더니 가게를 뛰쳐나가 버렸다. 가게로 막 들어오려던 준후가 놀라 입간판 뒤로 몸을 비켰다.
할매가 깜콩을 부르며 가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이구, 깜콩아! 내 사정도 들어 봐야제. 네가 아니면 누가 아이들 영혼을 데려오냐?”
하지만 발 빠른 깜콩은 온데간데없었다. 할매는 툴툴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다 입간판 뒤에 서 있는 준후를 그제야 발견했다. 할매가 작은 소리로 꿍얼거렸다.
“아이고, 깜콩이 나가면서 입간판을 두드렸나 보네. 흠흠, 얘야 무슨 죽으로 줄까?”
“저 죽 사러 온 거 아닌데요.”
할매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그럼 뭐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
“육지 거북이 아재를 만났어요.”
준후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줄줄이 말했다. 할매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준후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할머니도 저승사자예요?”
뜬금없는 물음에 삼매 할매는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이래 봬도 난 신이여. 저승에 가는 길에 배고프지 말라고 죽을 만들어 먹이는 일을 하제. 옥황상제 명으로 말이여. 벌써 이 일 한 지도 천년이 다 되얐어.”
그때였다. 할매 앞치마에 꽂혀 있던 나무 주걱이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밥을 푸는 곳에 붙은 눈과 입을 보고 준후는 화들짝 놀랐다. 나무 주걱은 준후 표정을 못 본 척하며 할매 말에 끼어들었다.
“어? 할매. 날 빼먹으면 안 되지. 1인분 만들어서 백 명이 먹을 수 있게 하는 건 다 나 때문이잖아.”
삼매 할매가 아차차! 하며 나무 주걱을 쓰다듬었다.
“아이고, 미안. 깜박했어. 죽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건 바로 이 요술 나무 주걱 덕분이란다. 이제 됐지? 주걱이 너, 또 삐지고 그러면 안 된다.”
나무 주걱이 씩 웃었다. 그러다 눈을 반짝이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할매! 깜콩 대신에 이 아이를 사자로 쓰면 안 될까? 그래서 거북 아재가 이리로 다시 가 보라고 했나 봐. 음, 역시! 거북 아재, 시작한 지 며칠 안 됐지만 젊으니까 센스가 좋아.”
그제야 할매는 갑갑했던 속이 뻥 뚫렸다.
“좋은 생각이여. 어뗘? 꼬마 친구, 우리랑 일 한번 해볼텨?”
준후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물었다.
“너 어제 본 꼬마 여자아이, 영혼이여. 귀신이라고.”
“알아요. 그래서요?”
“우릴 도와주면 귀신 안 보게 해 줄 수 있는디.”
준후는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봐도 문제는 될 건 없었다.
“괜찮아요. 귀신같은 건 안 무서워요.”
나무 주걱이 앞치마에 폴짝 뛰어내렸다. 준후를 위아래로 훑으며 한 바퀴 빙 돌았다.
“진짜? 할매, 이 친구는 간이 큰가 봐.”
할매가 짓궂게 웃었다.
“그래? 혹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여기로 오렴. 내 조건은 변함없으니까.”
준후는 꾸벅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오려다 계산대 위를 쳐다봤다.
“어? 비어 있던 액자가 채워졌네. 엥? 세 번째 거북이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헉! 어젯밤에 본 거북 아재잖아?”
언제 왔는지 삼매 할매가 등 뒤에 와 있었다.
“그려. 세 번째 거북 차사란다. 음, 어젯밤에 만나긴 제대로 만났구먼. 내가 저승차사 대리인으로 딱이여. 이래도 우리랑 일 안 해볼텨?”
“저 어제 만난 거북 아재 맘에 들어요. 귀신을 못 보면 거북 아재도 못 보는 거잖아요. 전 이대로가 좋아요.”
어제처럼 귀여운 아이들을 보는 건 전혀 무섭지 않다. 거기다가 트니를 닮은 거북 아재를 볼 수 있다는 게 더 맘에 들었다. 준후는 인사를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교실엔 아무도 없었다. 아침부터 움직였더니 장이 신호를 보냈다. 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 볼일을 보고 나와 손을 씻으려는데 뒤에서 누가 물었다.
“오늘 점심은 뭐야?”
준후는 손을 씻기 위해 수도꼭지를 들어 올리며 점심 메뉴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언양 떡갈비와 비빔밥이야.”
“맛있겠다. 나도 좀 주면 안 될까?”
“주긴 뭘 줘? 급식실 가서 먹으면 되는데.”
“난 여길 벗어날 수가 없어.”
준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에는 자기 말고 아무도 없었다. 준 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을 마저 씻었다.
“나 좀 갖다 주라, 응? 그래 줄 거지?”
준후는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들어 거울 속을 봤다. 준후 혼자였다. 준후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고함을 질렀다. 눈이 있어야 할 부분에 새까만 구멍이 난 아이가 코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으아악!”
준후는 혼비백산이 되어 그대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곧바로 죽집으로 내달렸다.
꽝, 출입문이 열렸다. 나무 주걱 몸에 예쁜 그림을 그려 주던 삼매 할매가 깜짝 놀라 주걱 얼굴에 분홍 줄이 찌익 그이고 말았다.
“아구, 깜짝이야,”
나무 주걱이 빽 소리를 질렀다.
“할매, 제대로 안 그릴 거야?”
그때 준후가 헥헥대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할, 할머니. 정, 정말 귀신 안 보게 해 주실 거죠?”
삼매 할매와 주걱이 동시에 준후를 봤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니 제대로 무서운 귀신을 본 게 틀림없었다. 할매는 붓을 내려놓고 준후에게로 다가갔다. 두 손을 꼭 잡으며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준후가 펄떡이는 심장을 가라앉히면서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귀신을 안 보게 되나요?”
“간단혀. 잠시 집 나간 아니 일이 있어 떠난 저승차사가 돌아올 때까지만 아이들 영혼을 데리고 오면 돼. 쉽지?”
준후가 눈을 끔벅였다.
“그 차사가 언제 돌아오는데요?”
할매가 쩔쩔매자 나무 주걱이 얼굴에 묻은 물감을 행주로 닦으며 대답했다.
“저번에도 일주일 정도 있다가 돌아왔으니까 이번에도 그 정도만 있으면 될 거야. 그지, 할매?”
“응? 으응. 그래, 딱 일주일!”
준후가 할매를 뚫어져라 보다가 툭 물었다.
“그동안 한 사람의 영혼도 못 데리고 오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런, 그 생각을 못 했네. 그럼 다시 계약하자. 두 명의 영혼을 데리고 오면 우리 계약은 이뤄지는 걸로. 기간은 상관없이. 어뗘?”
준후가 입술에 힘을 주고 말했다.
“좋아요.”
준후는 약속을 한 뒤 다시 학교로 갔다. 올 때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교실에 들어가자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3. 저승차사 대리
준후는 수업 시간 내내 책상에 머리를 박고 뭔가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귀신을 보면 조심해야 하는 행동 수칙이었다.
그때 짝지가 준후 어깨를 툭 쳤다.
“준후야, 뭐해? 집에 안 갈 거야?”
준후는 후다닥 공책을 덮었다.
“집? 벌써 수업이 끝났어?”
“오늘 왜 그래? 수업 시간에도 몇 번 혼나더니. 뭔 일 있어?”
준후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마침 준후 휴대 전화가 부르르 떨렸다. 엄마였다.
“병원이라고요? 네, 알았어요.”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짝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엄마 많이 아프셔? 그래서 정신이 없었던 거야?”
“심한 식중독에 장염이래. 병원인데 입원하셨대.”
준후는 짝지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교실을 빠져나왔다. 학교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대로변에 있는 꽤 큰 병원으로 달려갔다.
밝은 목소리와는 달리 엄마는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꽂은 채 누워있었다.
“왔어?”
준후가 엄마 침대 곁으로 가 물었다.
“그냥 설사 아니었어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구토에 설사가 멎지 않아서 온 거야. 그런데 어쩌니? 내일까지 입원해 있으라는데.”
준후는 걱정하는 엄마를 달랬다.
“나도 다 컸어요. 4학년인걸요. 밥 챙겨 먹고 학교 갈 수 있어요.”
“진짜? 혼자 자야 하는데. 괜찮겠어?”
순간 오늘 아침 일이 생각났다. 갑자기 팔에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준후는 빠르게 팔을 슥슥 문질렀다.
“준후야, 할머니 부를까?”
엄마보다 잔소리가 더 심한 할머니는 사절이다.
“아, 아니요. 혼자 잘 수 있어요.”
엄마가 준비물은 없는지 숙제는 없는지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준후는 짧게 답을 한 뒤, 숙제가 많다며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왔다.
간호사실 앞을 지날 때였다.
8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다급하게 소리치는 게 보였다.
“간호사 누나, 엄마가 위험해요. 온몸을 부르르 떨어요.”
마침 환자가 위급하다는 신호음이 간호사실에 울렸다. 간호사 둘이 복도 제일 끝으로 뛰어갔다. 아이가 울며 뒤따라갔다.
준후의 오지랖이 또 발동했다. 아이 뒤를 따라가 보니 1인실이었다. 아이는 아빠로 보이는 사람 옆에 함께 서서 울먹이며 엄마를 불렀다. 병실은 응급 처치로 정신없이 바빴다. 다행히 몇 분 뒤, 환자인 아이 엄마가 안정을 찾았다. 의사가 보호자인 아빠를 보며 말했다.
“이번 발작은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저번과 같을 것 같습니다.”
“사고에 대한 몸부림인가요?”
의사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가 침대 곁에서 울었다.
“엄마, 일어나. 언제까지 잘 거야?”
아이가 큰 소리로 우는데도 아이를 달래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였다. 간호사가 급한 호출을 받고 밖으로 뛰어나가다 아이와 부딪쳤다. 아니, 아이를 통과해 버렸다!
준후는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울고 있는 아이만 뚫어져라 보았다. 아이가 그 기운을 느꼈는지 고개를 휙 돌렸다. 준후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준후에게 다가왔다. 준후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아이가 준후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른침을 몇 번이고 삼켰다.
아이가 궁금한지 눈을 또르르 굴리며 물었다.
“누구야?”
준후는 천천히 입을 뗐다. 입술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준, 준후라고 해. 넌?”
“이찬희. 근데 왜 우리 엄마 병실에 왔어?”
준후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두 손을 맞잡았다. 어젯밤에 만난 여자아이를 생각하며 속으로 ‘안 무섭다, 하나도 안 무섭다.’를 외쳤다. 손 떨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손에 힘을 꽉 준 뒤, 궁금한 걸 물었다.
“엄, 엄마는 어쩌다 저렇게 누워 계시는 거야?”
찬희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분명 엄마랑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잠이 들었다고 했다.
“일어나보니 집안이 연기로 꽉 차 있었어. 엄마는 내 옆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었어.”
어느새 준후는 찬희 감정과 똑같아져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를 흔들어 깨우지 그랬어?”
찬희는 준후 말에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엄마를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는 걸 어떡해, 으아앙.”
찬희는 자신이 죽은 걸 그때 깨달은 거였다.
준후가 콧물을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고양이 차사 깜콩이 떠올랐다.
“혹시 까만 고양이가 널 데리러 오지 않았니?”
“왔었어. 119에 타려는데 고양이가 날 불렀어. 난 엄마가 깨면 하늘나라로 갈 거라고 하고 여기로 와버렸어.”
찬희는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혼자 죽게 되었던 거다.
“찬희야, 집이 어디야?”
준후는 찬희가 말하는 동네를 휴대 전화로 화재 기사를 찾았다.
우울증 이대로 둘 것인가. 00동에서 우울증을 앓던 엄마,
아이와 동반자살을 시도하다.
준후는 얼른 휴대 전화를 꺼버렸다. 다리가 심하게 떨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복도를 훑었다. 저만치 의자가 보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찬희를 삼매 할매한테 데려가야 하는데 어떻게 데려가야 할지 난감했다.
‘저렇게 엄마가 일어나길 바라는데 어떻게 데려가지?’
준후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찬희는 엄마가 깨어났을지도 모른다며 병실로 돌아가 버렸다.
“후우우, 영혼을 죽집에 데리고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준후는 그대로 병원을 나왔다. 집으로 향하는데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음식점들이 있는 골목이었다. 엄마가 저녁 사 먹으라고 준 돈을 만지작거리며 분식집 앞에 섰다.
“떡볶이 1인분이랑 어묵 1인분 싸 주세요. 어묵 국물 좀 먹어도 되죠?”
따듯한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그런데 아까부터 어묵과 떡볶이가 놓인 판매대 앞에 서 있던 형이 어묵 국물이 담긴 컵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형의 손이 컵을 그대로 통과했다. 준후는 곁눈으로 그 모습을 보고는 모른 척을 했다. 병원에서 만난 찬희 일로 마음이 불편해 오늘은 귀신을 그만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그 형은 어떤 낌새를 느꼈는지 준후 옆으로 와 자꾸 말을 걸었다.
“나 한 모금만 줘.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래.”
준후는 눈 딱 감고 국물을 다 마셔버렸다. 아줌마가 건네는 까만 봉지를 받아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파트 단지 안을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갔다. 놀이터 앞을 막 지날 때였다.
“타이어 밧줄 타기가 있네. 와, 재밌겠다. 야, 나랑 놀다 가자.”
순간 멍하게 걷던 준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떡볶이집에서 본 형이 짓궂게 웃었다.
“크크. 네 예감이 맞았어. 너, 죽은 사람이 보이지? 근데 아까는 왜 날 모른 척했어?”
준후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사라지길 바랐건만 눈을 사납게 추켜 뜬 형이 준후를 노려보며 웃었다.
“심심했는데 잘됐다. 이제 너랑 놀면 되겠다, 으흐흐흐.”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게 떠올랐다. 준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형은 핏발 선 눈을 불쑥불쑥 준후 코앞에 디밀었다. 그때마다 준후는 움찔거렸다.
‘으윽, 이럴 땐 도망가는 게 최고야.’
준후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허벅지가 터질 만큼 빠르게 뛰었다. 아파트 남쪽 출입구 쪽에 있는 슈퍼마켓을 지나치려 할 때였다.
“여기야, 여기!”
임대라고 적힌 가게와 슈퍼마켓 사이의 좁은 골목 안이었다. 준후는 얼른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숨을 죽이고 형 귀신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형 귀신은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다가 고운 목소리로 “나랑 같이 놀자”라며 어르기도 했다. 한참을 골목골목 다니며 외치더니 준후가 숨은 곳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준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아, 고마워. 네 덕분에 살았어.”
옆에 앉은 아이의 얼굴을 봤다. 딱 준후 또래였다.
“원래 저 형, 남 놀라게 하는 걸 좋아해. 정말 짓궂지? 그래서 우리 영혼들이 무섭다는 오해를 받는다니까.”
준후는 ‘뭐지?’ 하는 표정으로 아이를 빤히 바라봤다. 자신이 지금 영혼이라고 말하다니. 준후는 아이를 꼼꼼히 봤다. 영혼을 몇 번 봐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의 미소가 선해 보여서 그런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너는 네가 영혼인 걸 알고 있었어?”
아이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후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튼 고마워. 오늘 밤 혼자 집에서 자야 하는데 저 형이 너무 무섭게 하는 바람에 삼매 할매한테 가려고 했거든.”
아이가 준후를 멀뚱멀뚱 바라보자 준후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너, 삼매 할매 못 들어봤어? 아이들 영혼에게 맛있는 죽을 끓여주는 할머니야. 너도 하늘나라 올라가기 전에 꼭 그곳에 들를 거야.”
“난 하늘나라 가기 싫어. 오댕이랑 함께 갈 거야.”
아이가 강아지를 불렀다.
“오댕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크림색 믹스견 한 마리가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강아지는 몸통을 흔들며 아이에게 다가왔다. 꼬리는 프로펠러처럼 쉬지 않고 흔들렸다. 준후가 강아지를 요리조리 살폈다. 어딘가 눈에 익은 강아지였다.
“어? 이 강아지 맨날 아파트 단지 밖을 돌아다니던 강아지네. 네가 주인이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깊은 사연이 있는 듯했다. 순간 준후 머릿속에 삼매 할매와 한 거래가 떠올랐다. 왠지 이 아이는 착하고 무섭지 않아서 잘 설득하면 삼매 할매 죽집으로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랑 우리 집에 갈래?”
준후 말에 아이가 강아지와 준후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강아지도 데려갈게.”
순간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준후는 아이와 오댕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집으로 돌아온 준후는 오댕이의 발을 닦여서 베란다에 두었다. 바닥에 담요를 한 장 깔아주고 먹이와 물을 주었다.
좀 전에 산 떡볶이랑 어묵을 식탁에 차렸다.
“이름이 뭐야? 난 준후야. 초등학교 4학년.”
“어, 나랑 같은 학년이네. 내 이름은 혁진이야.”
“어쩌다 영혼이 되었어?”
“오댕이를 구하려다 차에 치였어.”
준후는 깜짝 놀랐다. 차에 치인 사실을 덤덤하게 말하는 혁진이가 대단했다. 준후는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냥 조용히 떡볶이와 어묵을 먹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혁진이었다.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많이 슬퍼해.”
준후는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삼매 할매라는 사람이 있어. 나랑 만나러 가지 않을래? 널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혁진이가 눈을 크게 뜨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오댕이랑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거지?”
준후는 사실대로 말할까 하다가 삼매 할매를 만나보는 게 답일 듯했다.
“아마도.”
그제야 혁진이가 팔다리에 힘을 뺀 채로 바닥에 앉았다.
준후가 게임기를 들어 올렸다.
“너, 이 게임 할 줄 알아?”
혁진이가 눈을 크게 뜨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얼른 하자.”
준후가 게임기를 텔레비전에 연결했다. 그때 옆에서 혁진이의 힘 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난 물건을 만질 수 없어.”
준후가 게임기를 잡았던 손을 떨구었다.
“앗! 미안.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어.”
텔레비전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뭘 하며 놀까 고민하다가 잠시 뒤, 둘은 소파에 드러눕거나 기대앉아 같이 만화책을 봤다. 깔깔거리며 신나게 웃었다. 둘밖에 없으니까 꼭 친구랑 파자마 파티하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토요일이라 학교 갈 걱정은 없었다.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혁진이와 준후는 삼매 할매 죽집으로 향했다. 오댕이는 준후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어디론가 달려갔다.
4. 색다른 영혼
“할머니, 저 왔어요.”
“아이고, 우리 준후가 사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구먼. 어디 보자, 어떤 아이의 영혼···, 에구머니나!”
할매가 혁진이 영혼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곧 안쓰러운 표정을 짓더니 혁진이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었다.
“애야, 넌 아직 여기 오면 안 된단다. 얼른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무나.”
준후는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할매 얼굴을 쳐다보았다.
“네 친구는 아직 죽은 게 아니란다. 아마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을 게야. 이런, 쯧쯧. 생명선이 희미해져 가고 있네. 준후야, 얼른 네 친구를 데리고 돌아가거라.”
준후는 삼매 할매의 성화에 혁진이를 데리고 죽집에서 얼른 나왔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준후는 힐끔거리며 혁진이의 눈치를 보았다.
“저, 있잖아···.”
“괜찮아. 넌 내가 죽은 줄 알았구나? 그나저나 너 저승사자였어? 살아있는데? 그게 가능해?”
혁진이가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준후는 모든 걸 이야기했다.
“아, 그랬구나. 원래부터 영혼을 볼 줄 알았던 거야?”
혁진이 말에 준후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니. 삼매 할매 죽집에 있는 골동품 안경을 쓰고 난 뒤부터야.”
혁진이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물었다.
“나도 영혼이지만, 영혼 보는 거 안 무서워?”
준후는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엔 그랬는데 자꾸 보니까 괜찮아. 그런데 좀 전에는 무서웠어.”
“크큭, 맞아. 그 형이 좀 무섭긴 해.”
준후가 진지하게 물었다.
“부모님 곁으로 안 돌아갈 거야?”
“오댕이에게 새 주인이 생길 때까진 안 돌아갈 거야.”
조용히 걷다 보니 벌써 준후 아파트 앞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준후 네가 오댕이 새 주인이 되어주면 안 될까?”
준후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혁진이를 바라봤다.
간절한 눈빛의 혁진이를 보자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싶은데 우리 엄마가 개를 싫어하셔. 음, 그리고···.”
그때였다. 슈퍼 맞은편 채소 가게 아줌마가 알은 채를 했다.
“어머나! 준후야. 여기서 뭐해? 아이고, 요 귀여운 녀석은 누구니?”
“안녕하세요, 아줌마. 제 친구 강아진데 돌볼 사람이 없어서 이러고 있어요.”
순간 준후의 머리에 아이디어가 번쩍였다. 준후는 아줌마에게 혁진이의 사정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줌마가 빙긋이 웃으며 오댕이를 쓰다듬었다.
“그럼 내가 임시보호자가 되어주면 되겠구나. 그런데 오늘은 혼자 사시는 시골 친정엄마한테 갔다 와야 해. 내일부터 오댕이를 돌봐도 되지?”
“네!”
혁진이와 준후가 동시에 대답했다. 둘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채소 가게 아줌마가 옆을 보며 웃는 준후를 멀뚱멀뚱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오댕이가 아줌마 얼굴을 핥는 바람에 금세 잊어버렸다.
“오댕아, 오늘만 길에서 놀고 있거라. 내일부터는 이 아줌마랑 함께 지내는 거야, 알았지?”
오댕이는 왈왈 짖으며 꼬리를 신나게 흔들어댔다. 그러다 산책 나온 강아지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아줌마와 헤어진 뒤, 준후는 아파트 출입구로 가면서 혁진이에게 물었다.
“이제 네 몸으로 돌아가는 거지?”
“아니. 아직 오댕이 새 주인이 나타난 건 아니잖아.”
“야아! 너 그러다 진짜 하늘나라로 간다니까. 생명선 빛이 더 약해졌어. 얼른 돌아가!”
혁진이가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안 가. 절대 안 가. 오댕이 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채소 가게 아줌마는 임시보호자일 뿐이잖아.”
준후의 오지랖이 또 스멀스멀 올라왔다. 준후는 자기 가슴을 팡팡 치며 기운차게 말했다.
“알았어! 내가 오늘 우리 엄마한테 허락받아서 오댕이 새 주인이 되어줄게.”
“됐어···. 이 세상 엄마들을 설득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혁진이가 힘없이 대꾸하더니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준후는 속상했다. 혁진이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니까.
“먼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새 주인을 찾으면 되잖아! 으이구, 고집불통.”
준후는 툴툴대며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병실에 가니 엄마는 없었다. 6인실 병실에는 맞은편 할머니와 그 옆 아주머니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네가 준후지? 엄마 검사받으러 갔어. 곧 오실 거야.”
“아, 네.”
두 사람은 하던 얘길 계속했다.
“들었는감? 저기 506호 아이 말이여.”
“아, 강아지 구하다가 교통사고 난 아이요? 왜요?”
할머니가 주변을 쓱 살피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젯밤에 쇼크가 왔나 벼. 아이 엄마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
“어머나, 어쩜 좋아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할머니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 밤이 고빈가 벼. 어쩌누?”
준후는 벌떡 일어나 506호로 뛰어갔다. 이름을 확인해야 했다.
506호 병실 환자 명표에는 ‘박혁진’이라는 이름이 꽂혀 있었다. 준호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방금까지 함께 있던 혁진이가 맞았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혁진이 엄마가 혁진이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우리 아들, 그만 자고 일어나. 엄마가 잘못했어. 오댕이 데리러 가자, 응?”
순간 준후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오댕이는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설마 마음이 바뀌셨나?’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준후를 불렀다.
“누구니? 우리 혁진이 친구니?”
뒤돌아보니 혁진이와 붕어빵인 혁진이 아빠였다. 눈 밑에 생긴 다크서클이 볼 가운데까지 내려와 있었다. 준후가 작은 소리로 그렇다고 답을 하자 준후를 병실 안으로 데려 들어갔다.
“여보, 혁진이 친구가 왔어.”
혁진 엄마는 울고 있었는지 눈과 코끝이 빨겠다. 눈물 자국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비소를 띄었다.
“찾아와 줘서 고맙구나. 네 이름이 뭐니?”
“준후라고 해요. 저, 오댕이를 진짜 키우실 거예요?”
혁진이 엄마가 놀라며 물었다.
“오댕이를 어떻게 아니?”
“이 일대를 떠돌아다녀서 모르는 아이들이 없어요. 저어,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요, 진짜 혁진이 일어나면 오댕이를 키우실 거예요?”
혁진이 엄마는 산소마스크를 끼고 누워있는 혁진이의 손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래야지. 생명은 다 소중하니까.”
준후는 두 분께 또 오겠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엄마 병실로 돌아갔다.
엄마는 검사 결과 보고, 오후에 퇴원할 수 있단다.
“그럼 엄마, 나중에 집에서 봐요.”
병원을 나와 헐레벌떡 집으로 달렸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돌며 혁진이를 불렀다. 단지를 몇 바퀴 돌아도 혁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오댕이를 찾으면 되겠다. 분명 오댕이 곁에 있을 거야. 오댕아? 오댕아?”
오댕이도 대답이 없었다. 놀이터며 좁은 곳을 뒤지고 다녔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준후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때 슈퍼마켓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해서 저번에 혁진이랑 숨었던 슈퍼마켓 옆 골목 쪽으로 가보았다. 컴컴하고 축축한 냄새만이 감돌 뿐이었다.
“야, 뭐해?”
화들짝 놀란 준후가 돌아보니 짓궂게 굴던 형 영혼이었다. 준후는 어쩔 줄 몰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최대한 형 영혼과 눈을 안 마주치려고 했다.
“야, 어디로 튈까 고민 중이야? 너도 참 불쌍하다. 어쩌다 나 같은 귀신을 보게 됐냐.”
순간 준후는 발끈했다.
“하나도 안 불쌍하거든. 가야 할 곳으로 못 가고 떠도는 형이 더 불쌍해!”
“뭐! 내가 불쌍하다고? 이게 어디서 말대꾸야? 가만 안 둬!”
형 얼굴이 점점 커졌다. 고무풍선처럼 빵빵하게 변하더니 눈이 점점 커졌다. 까만 눈동자는 콩알만 해지고 흰자위가 주먹만 해졌다. 준후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어느새 좁고 컴컴한 골목 제일 끝 담벼락에 등이 닿았다. 땀으로 젖은 옷이 찹찹하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한기가 몰려왔다.
형이 우우 소리를 내며 서서히 다가왔다. 눈 흰자가 빨갛게 변했다. 준후는 심장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섭고 두려워서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크르릉 왈왈.”
고개를 번쩍 들었다. 꾀죄죄한 오댕이가 이빨을 드러내며 당장이라도 물 듯이 짖어댔다. 준후 코앞까지 온 형 영혼이 휙 뒤돌아봤다. 오댕이가 계속 크르릉거리자 형 영혼이 오댕이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려 겁을 주었다.
하지만 오댕이는 오히려 낮은 자세를 취하더니 더 크고 사납게 짖어댔다. 형 영혼이 귀청이 떨어져 나갈 만큼 괴이한 소리를 질렀다. 오댕이의 눈빛이 좀 전보다 강렬하게 빛났다. 뒤로 몇 발짝 물러나더니 형 영혼을 향해 달려 점프를 했다. 놀란 형 영혼은 괴성을 지르며 공중으로 도망가 버렸다.
오댕이가 머리를 감싸고 있는 준후 곁으로 와 얼굴을 핥아댔다.
“고맙다, 오댕아. 네가 날 구했어. 그나저나 혁진이는 어디 있어?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
오댕이가 갑자기 왈왈 짓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뛰다가도 준후가 오는지 확인한 뒤에 다시 뛰었다. 준후는 그런 오댕이를 따라 달렸다.
동쪽 아파트 상가 화장실 앞에 갔을 때였다. 아주 흐릿한 모습으로 혁진이가 푹 꼬꾸라져 있었다. 준후가 다가가 혁진이를 불렀다.
“혁진아, 박혁진!”
혁진이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준후?”
“왜 그래? 어디 아파?”
“모르겠어. 어제부터 몸이 이상해. 힘이 없어. 왜 이러지?”
“너 어젯밤에 죽을 뻔했어. 아무래도 삼매 할매한테 물어보고 와야겠어. 오댕아, 혁진이를 부탁해.”
5. 힘내!
준후가 숨을 헐떡이며 죽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할머니, 큰일 났어요!”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식당 안쪽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할매가 눈을 감은 채 양반다리를 하고 방 안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 일어나세요. 혁진이가 위험해요.”
흔들어도 할머니는 일어나질 않았다. 귀에 대고 큰소리를 질러도 어깨를 주물러도 소용없었다.
그때였다. 까만 고양이가 아옹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준후를 보자 자세를 낮추고 이빨을 드러내며 물었다.
“너 뭐야? 누가 삼매 신을 깨워?”
준후는 깜짝 놀랐다. 나갔다던 고양이 차사 깜콩이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보고 삼매 신이라니, 준후는 어리벙벙했다.
“뭐래? 할머니는 죽 만드는 요리사야.”
준후가 힘주어 말했다. 고양이 차사 깜콩이 준후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준후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러다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넌? 거북이 등껍질로 만든 안경을 쓴 녀석이구나.”
준후도 고양이를 자세히 봤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만난 고양이였다.
“내 얼굴을 친 그 고양이, 맞지?”
“크르렁. 어서 여기서 나가. 따끔한 맛을 보기 전에.”
“싫어. 할머니가 약속했어. 두 명의 아이 영혼만 데리고 오면 귀신 안 보게 해준다고.”
고양이 깜콩이 발톱을 넣고 눈을 똥그랗게 떴다.
“할매가 그런 약속을 했다고? 냉정하기 짝이 없는데? 거짓말 마. 어디서 날 속이려 들어?”
준후가 아무리 우겨도 소용이 없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나무 주걱이 주방에서 하품을 하며 나왔다.
“왜 이리 시끄러워. 삼매가 신들 회의에 갔을 땐 우리도 좀 쉬자고. 세 시간도 못 참냐? 어, 준후야! 웬일이야?”
준 후는 주걱을 보자마자 달려가 주걱의 손을 잡으며 매달렸다.
“큰일 났어. 혁진이가 이상해. 병원에선 오늘이 고비라고 하고 혁진이 영혼은 힘없이 쓰러져 있어.”
고양이 깜콩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원래 영혼은 죽기 직전에 힘이 약해져. 이제 내가 움직일 시간이구나. 그나저나 넌, 저승사자 대리인을 하면서도 그것도 몰랐냐?”
준후가 깜콩을 힘껏 째려봤다. 깜콩이 흥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준후는 나무 주걱에게 매달렸다.
“주걱아, 방법이 없을까?”
“죽만 만들 줄 아는 주걱이 뭘 알겠냐?”
깜콩이 거들먹거렸다.
그러자 주걱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후가 갑자기 왜 깜콩이 편을 드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걱이 손을 꼼지락거리며 깜콩의 눈치를 봤다.
“깜콩 말이 맞아. 사실 난 아는 게 없어. 깜콩, 그러지 말고 방법 좀 알려줘.”
준후는 깜콩이 얄미웠지만 꾹 참았다. 혁진이를 살리려면 깜콩을 구슬려야만 한다. 준후는 심호흡을 하고 마른침을 삼킨 뒤 깜콩에게 물었다.
“그럼 넌 안다는 거네? 가르쳐줘. 어떡하면 돼?”
깜콩이 까칠하게 툭 내뱉었다.
“싫어. 내가 왜 가르쳐줘야 해?”
준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솟구쳐 오르는 화를 누르려 애썼다.
그때 아빠가 늘 하던 말이 떠올랐다.
“준후야, 누군가에게 부탁할 땐 아주 정중하게, 그러면서 너의 굳은 의지가 명확히 전달되게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단다. 알았지?”
준후는 자신의 두 손을 꼭 잡고 앞으로 모은 뒤 꾸벅 인사를 했다. 깜콩이 ‘뭐냐?’ 하는 표정으로 봤지만 준후는 마음에 담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깜콩, 무례하게 부탁해서 미안해. 넌 아이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아끼는 저승사자라고 들었어. 이번에 네 일을 도와주면서 알았어. 차사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러니 아직 시간이 있는 혁진이를 도와주면 좋겠어. 깜콩과 주걱이 서로에게 귀한 친구인 것처럼 나에겐 혁진이가 그래. 제발 혁진이를 도와줘. 부탁이야!”
깜콩의 수염이 꿈틀거렸다. 준후는 삼매 할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할매가 그랬어. 사자 중에 제일 일도 잘하고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고 잘 따른다고. 네가 키즈존 차사 중에 최고라 했어.”
깜콩이의 두 귀가 쫑긋 섰다.
“키즈존 최고 차사? 그게 뭔데?”
“아이들 영혼이 많은 곳에서 최고의 인기 차사란 뜻이야. 아이들 영혼이 있는 곳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거지.”
깜콩의 꼬리가 조금씩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눈치 빠른 주걱이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 할매가 그랬어. 이번에 신들 회의에 가서 깜콩이 널 승급시켜 달라고 할 거라 했어.”
깜콩이 턱을 치켜들며 힘있게 말했다.
“할매가 없으니 네가 나서야겠군. 앞장서.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혁진이 녀석 진짜 저승길이야.”
준후는 깜콩이와 함께 아파트 상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오댕이가 깜콩을 보자 으르렁거렸다.
“괜찮아, 오댕아. 혁진이를 살리려고 온 거야. 이리 와.”
준후는 오댕이를 안았다. 오댕이가 말을 알아들었는지 준후 품에서 버둥거리지 않았다.
“혁진아, 조금만 힘내.”
깜콩은 혁진이 주위를 빙글빙글 세 바퀴를 돌았다. 그러더니 혁진이를 향해 아옹 하고 울었다. 혁진이가 깜콩을 바라봤다. 깜콩이 욱욱하며 뭔가를 토해냈다. 작디작은 파란빛을 내는 구슬이었다. 깜콩이는 그걸 입에 물더니 혁진이를 향해 불었다. 파란 구슬이 혁진이 영혼과 닿는 순간 새하얀 빛으로 변했다. 흐릿하던 혁진이의 몸이 선명해졌다. 오댕이가 먼저 알아채고 왕왕 짖어댔다.
“오댕아, 준후야.”
준후와 오댕이가 혁진에게 다가갔다.
“야아아, 큰일 나는 줄 알았잖아. 이제 정신이 들어?”
혁진이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내가 준 기운은 30분 밖에 효능이 없어.”
깜콩이 서두르라는 투로 말했다.
“혁진아, 얼른 내 몸으로 돌아가. 부모님이 기다리셔. 그리고 부모님이 오댕이랑도 함께 잘 살자고도 했어.”
혁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병원에 갔다가 들었지. 빨리 가자. 참, 오댕아 넌 여기 있어. 깜콩아, 고마워.”
준후와 혁진이는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이런! 앞으로 15분밖에 안 남았어. 여기 맞지?”
혁진이는 506호 병실 앞에 멈춰 섰다. 준후가 어서 들어가라고 눈짓으로 재촉했다. 혁진이는 천천히 병실로 들어갔다. 혁진이 엄마가 혁진이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두런두런 얘기하고 있었어.
“혁진아, 기억나니? 작년에 엄마랑 아빠랑 동물 카페 갔던 날. 사실 그날 강아지를 입양하려 했었어. 그런데 넌 그곳에서 유기견 오댕이 얘기만 하더구나. 그때 네 말대로 오댕이를 입양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미안해, 혁진아.”
혁진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혁진이가 엄마 어깨를 살포시 안았다.
“나도 고집 피워서 미안해요, 엄마.”
순간 혁진이의 영혼이 새하얀 연기가 되어 누워 있는 몸으로 스며들었다. 혁진이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혁진이 엄마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세상에! 간호사님, 간호사님! 혁진이 손가락이 움직였어요.”
혁진이 엄마가 문을 열고 외쳤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이 뛰어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보던 준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준후는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쓱 닦으며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6. 찬희야, 이제 네 차례야.
간호사실 앞을 지날 때였다.
“어, 형. 또 왔어?”
화재로 죽은 찬희 영혼이었다.
“찬희야, 이 층에서 무슨 일이야? 아래층 중환자실에 있었잖아.”
“엄마가 방금 깨어났어.”
찬희가 방글방글 웃었다.
“그랬구나. 그런데 왜 여기 있어?”
“형 엄마가 여기 있다고 했잖아. 형 보려고.”
“나를? 왜?”
“이제 가야지. 삼매 할매 죽집에 데려가 달라고 하려고.”
준후는 놀랐다. 찬희가 스스로 가겠다고 하다니. 신기하고 궁금해서 준후는 죽집에 가는 내내 찬희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혼자서 웃고 떠드는 준후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준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찬희와 쫑알거리며 죽집으로 향했다.
“어서 오너라.”
삼매 할머니가 둘을 반겼다.
“어, 할머니 언제 깨어났어요?”
“호호호, 좀 전에. 회의가 빨리 끝났단다. 깜꽁이랑 함께 나간 일은 잘 해결되었니?”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후 곁에 있던 찬희가 삼매 할매에게 알은 척을 했다.
“안녕하세요, 찬희예요.”
“오, 잘 왔다. 그동안 배가 매우 고팠지? 조금만 기다리거라.”
삼매 할매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찬희는 식탁에 앉아서 죽이 나오길 기다렸다. 준후는 제일 궁금하지만 묻기 힘들었던 걸 물었다.
“찬희야, 엄마가 안 미워?”
찬희는 방긋 웃었다.
“응. 안 미워. 내 엄마니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생각을 했어?”
찬희는 입구에 엎드려 낮잠을 자고 있는 깜콩을 가리켰다.
“병원 앞에서 차 구경을 하고 있는데 쟤가 오더니 알려줬어. 내가 빨리 좋은 곳으로 가야 엄마가 빨리 건강해진대. 그래서 왔어.”
준후는 물끄러미 깜콩을 바라봤다. 무슨 이유로 차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깜콩이 조금 멋져 보였다.
마침 할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을 들고 나왔다.
“어서 먹거라.”
찬희는 맛나게 죽을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그러자 언제 왔는지 육지 거북 아재가 죽집 앞에 나타났다. 찬희는 신나 하며 거북 아 재 등에 올라탔다. 준후는 거북 아재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아저씨 덕분에 어른이 된 트니를 만나는 것 같아 좋았어요. 혹 저승에서 아빠와 트니를 만나면 제 안부 좀 전해주세요.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요.”
거북 아재가 고개를 돌려 준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래, 나도 즐거웠단다. 오늘밤 좋은 꿈 꾸렴.”
거북 아재가 공중으로 떴다. 찬희가 깜콩이와 준후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거북 아재가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준후는 거북 아재가 눈에 안 보일 때까지 한참을 손을 흔들었다.
“준후도 이제 원래대로 돌아가야지?”
삼매 할매 말에 준후는 놀랐다.
“아직 한 명 더 데려와야 하는데요?”
“후후후, 혁진이를 깨어나게 했잖니. 그것도 영혼을 구한 거란다.”
준후는 기뻐서 손뼉을 쳤다. 그러다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할머니도 주걱이도 거북 아재도 못 보는 거예요?”
할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돌아가기 싫으냐?”
준후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못 본다니까 서운해서 그러죠.”
“서운해할 거 없어. 쟨 보일 거야.”
할매가 깜콩을 가리켰다. 준후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까만 고양이가 하도 많아서 깜콩이를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뭐! 날 못 알아본다고? 이렇게 몸매 좋고 윤기 나는 털을 가진 길고양이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할매도 준후도 주걱도 깔깔깔 웃었다.
“고맙구나. 준후 덕분에 이 주변의 아이 영혼들을 다 거두었단다.”
“헤헤, 뭘요. 우리 엄마는 오지랖이 넓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난 오지랖 넓은 게 정말 좋아요. 아, 참! 날 무섭게 했던 형 영혼도 거두었나요?”
그때 깜콩이 스윽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가 거뒀어. 아무리 무섭게 해도 고양이 차사인 나한테는 못 당하지.”
주걱이 얼른 끼어들었다.
“맞아! 깜콩이 화나면 몇십 배나 커지거든. 준후는 한 번도 못 봤지?”
“볼 일이 뭐가 있었겠어. 여기 아이들은 다 착했는데. 아, 물론 그 형이라는 영혼은 많이 삐뚤어져 있었지만.”
깜콩이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이제 밉지 않았다. 준후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헤헤, 이래저래 고마웠어, 깜콩.”
할매는 주방으로 가 맛있는 죽을 가져왔다.
“이건 준후 몫이란다. 어여 먹어. 이 죽 다 먹고 집에 돌아가면 귀신 같은 거 안 보일 게야.”
준후는 죽을 먹었다.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 있어 고소한 게 참 맛있었다. 죽을 다 먹은 준후는 할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준후가 가게 문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주걱이 말했다.
“할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공기 좋고 물 좋은 곳.”
“엥? 그런 곳도 있어?”
“가보면 알어. 옥황상제가 그리 보내준다고 했거든. 어여 짐을 싸자고.”
그때 깜콩이 할매에게 말을 걸었다.
“삼매, 나와도 이제 이별이군. 내 몸뚱아리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어. 옥황상제한테는 이미 차사 그만둔다고 이야기해 놨어. 남은 생은 여기서 지내다 갈 테니 하늘나라에서 만나세.”
“그려. 수고혔어, 깜콩.”
깜콩이 밖으로 나갔다. 삼매 할매가 부엌에 있던 가마솥을 들어 올려 황금 보자기에 쌌다. 그러자 죽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풀이 수북이 난 빈 집터만 남아 있었다.
그날 밤, 준후는 달콤한 꿈을 꾸었다. 한번도 나타나지 않던 아빠와 트니와 함께 바다와 하늘을 날았다. 꺄르르 꺄르르, 한밤중 준후의 방에서 웃음소리가 간간이 흘러나왔다. 꿈에서 깰 때까지 준후의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준후가 아파트 상가 앞 화장실을 지나갈 때였다.
“야옹.”
준후는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와, 귀엽게 생긴 고양이다.”
고양이는 배를 까뒤집으며 애교를 피웠다.
“내가 좋아? 집에 데려가고 싶어도 엄마 때문에 안 돼. 대신 매일 밥 챙겨줄게. 맛난 간식도 가져올게.”
고양이는 대답이라도 하듯 야옹거렸다.
“눈이 까만 콩처럼 귀엽게 생겼네. 그래, 이제부터 널 깜콩이라 부를게. 깜콩?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는데. 어디였더라?”
그때 고양이가 준후 다리에 와 온몸을 비벼댔다.
“후후! 깜콩, 너도 이름이 맘에 든 거야?”
고양이가 아옹하며 길게 울었다.
-에필로그-
“삐리링, 다음은 00역,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어깨에 황금 보자기를 맨 삼매 할매가 재빨리 둘러봤다. 사람들이 긴 의자에 앉아 각자의 휴대 전화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기는 바로 도시 외곽을 달리는 경전철 안이었다. 순간 삼매 할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삼매는 경전철 천장 그 너머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옥황상제, 정말 이러기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 여기야? 약속이랑 다르잖여?”
할매 앞치마에서 얼굴을 쏙 내민 주걱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구, 또 당했군, 당했어. 내가 그랬잖아, 절대 옥황상제가 주는 거 넙죽넙죽 받아먹지 말라고. 할매, 도대체 이번엔 뭘 얻어먹은 거야?”
한참을 씩씩대던 삼매 할매가 마음을 가라앉히더니 중얼거렸다.
“한입에 쏙 들어가면서 달달하고 쫀득하니 천상의 맛이었당께. 아아, 또 먹고 싶다, 쩝쩝.”
삼매가 입맛을 다시자 주걱이 황금 보자기를 가리켰다.
“못 말려, 못 말려. 빨랑 가마솥이나 거슈. 일 시작해야지?”
삼매 할매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소매로 쓰윽 닦으며 황금 보자기를 경전철 바닥에 내려놓았다. 보자기를 풀자 커다란 가마솥이 드러났다. 삼매 할매가 두 팔로 가마솥을 번쩍 들어 올려 경전철 바닥에 쾅,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자, 얘들아, 경전철 1호 칸으로 죽 먹으러 어서들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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