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밭의 마트료시카」외 6편
- 작성일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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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밭의 마트료시카
강기원
진초록 안에 초록
초록 안에 연두
연두 안에 노랑
큰 잎 속에 작은 잎
작은 잎 속에 더 작은 잎
더 작은 잎 속에 더더 작은 잎
겹겹이 포옥 포옥
감싸 안고
오므린 듯 펼쳐서
펼친 듯 오므려서
안반데기 고랭지 매서운 겨울을
파르라니 난다
재우다
엄마는 마음만 먹으면
모두 잠재울 수 있다
(마른) 김을 재우고
(질긴) 고기를 재우고
(고집 센) 북어를 재우고
(생) 배추를 재우고
(쉭쉭) 아빠 화를 재우고
(칭얼칭얼) 아기야
재우고말고
엄마만 있으면
올빼미도 박쥐도
밤잠을 잘 것 같다
은행털이범
은행을 털기로 했다
악동 넷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수군 소곤소곤
 ̄마스크는 써야겠지?
 ̄낡은 운동화가 좋겠어. 자국이 남지 않게
 ̄모자도 써야 해
 ̄모두 검정 옷을 입자.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니까
 ̄어느 곳부터 털까?
모의를 마친 넷은
오소산 아래 노랑마을*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령 은행나무 마을.
비둘기의 구구단*
비둘기야, 비둘기야
구구는 팔십일이란다
9단이 어렵기야 하지
그래도 그렇지
구구단 시작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외우지를 못해
구구 구구···
그러다 언제 3학년 될래?
*심언주의 시 「주의 사항」을 읽고 씀.
피곤한 장갑
내 엄지장갑은
끼나 벗으나
말이 없는데
벗어 놓은 아빠 가죽장갑은
뭔가 말을 하는 것 같다
움켜쥐려다 놓친 게 있는 듯
뭔가 허전한 듯
다섯 손가락 편히 펴지 못한 채
아빠의 손금이 새겨진
낡고 검은 가죽장갑
아빠만큼 피곤해 보인다
어스름
뉘엿뉘엿
개가 담장을 넘으면
늑대가 되는 시간
고양이가 공중돌기를 하면
호랑이가 되는 시간
지렁이가 똬리 틀고
뱀이 되는 시간
관 속의 드라큘라가
슬슬 기지개 켜는 시간
놀이터의 함성이
사라지고
나만 남는 시간
오래된 달걀
냉장고 속 달걀이
달걀귀신이 되었어
그것도 모르고
보글보글 라면 속에
퐁당 넣어
호로록호로록 먹었지
먹고 나니 내가 이상해졌어
숨어 있는 귀신들이 다 보여
두루마리 화장지 속 미라
트렁크 속 드라큘라
보름달 뜬 밤
멍멍 대신 하울링 하는 늑대인간
야옹거리는 구미호
옷장 속 벽장 귀신
목욕하려 물을 받으니
물귀신이 먼저 들어와 있는 거야
혹시?
하며 거울을 보니
아, 어쩜 좋아
좀비가 된 내가 나를 보고 있어
오래된 달걀 하나 먹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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