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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워터 카우보이

  • 작성일 2024-11-01

   언더워터 카우보이


김아영


   지난 7월 9일, 제주시 애월 앞바다에서 괴생명체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스쿠버 다이빙 중 괴생명체를 목격했다고 주장한 박 모(15세) 군은 ‘괴생명체의 얼굴은 사람과 같았고, 다리는 물고기 꼬리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고 말했다. 


   “기사 좀 봐라. 괴생명체가 아니라 인어였다니까! 내가 분명히 봤어!”

   병수가 자신의 휴대폰에 실린 기사를 내 턱밑에 들이밀었다. 심장이 박자를 잃은 채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기사와 함께 올라온 사진 속에는 흐릿하게 푸른색 지느러미가 보였다.

   내 옆자리에 앉은 윤찬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또 그 얘기야. 그래서 인어 공주님은 예뻤냐? 왜 인어 공주님 옆에 수다스러운 바닷가재는 없었고?”

   며칠 전 병수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가 바닷속에서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를 봤다고 했다. 꿈이라도 꿨냐고, 같이 바다에 들어간 다른 사람들은 왜 못 봤냐며, 평소 병수를 잘 아는 윤찬은 그저 웃어넘겼다. 

   “아, 진짜라니까. 내 두 눈으로 직접 봤다고!”

   병수의 말에 윤찬이 듣기 싫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박병수,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 쉬는 시간은 다 끝났어!”

   하여간 저 두 사람은 인어 공주와 바다 마녀처럼 누구 하나가 물거품이 되어야지 이 악연이 끝나지 싶다. 

   ‘그날 병수가 본 게 정말 인어였을까?’

   갑자기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기침을 할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주변 아이들이 힐끗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차가운 수돗물을 얼굴에 마구 끼얹었다. 

   화장실 거울 속에 발갛게 달아오른 내 얼굴이 비쳤다. 가쁜 호흡도 서서히 제 박자를 찾아갔다. 

   복도 끝에서 조회를 하러 오는 담임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교실로 뛰어들었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찌잉 울렸다. 병수가 보낸 문자였다.


   - 이번 주말 다이빙 한 깡 어때? 


*


   내가 다이빙을 배우게 된 것은 병수 때문이었다. 병수는 가벼운 입만큼이나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 학교로 처음 왔던 날, 담임이 조회 시간에 말했다.

   “해구는 건강상의 이유로 한동안 학교를 쉬었다고 한다. 제주도에도 처음 왔다니,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모두 도와주도록.”

   어색한 인사를 한 뒤 아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피해 맨 뒷자리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담임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복도 쪽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병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격하게 손을 흔들어댔다. 내가 알던 사람인가, 아님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자 병수가 옆자리에 앉은 아이의 의자를 밀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책상이 휘청거리더니 옆자리에 앉은 아이의 스마트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로 그 순간, 교실을 나가려던 윤찬이 무심코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밟고 말았다. 윤찬은 당황하며 인상을 구겼다. 

   스마트폰 주인이 액정이 깨진 폰을 한 손에 쥐고 병수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박병수! 이거 최신 폰인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병수가 억울하다는 듯 반박했다.

   “그러니까 내가 몇 번이나 말했냐? 나 좀 지나가게 해달라고. 해구한테 인사하러 가려고 했는데, 네가 안 비켜줬잖아.”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순간 나에게 집중됐다. 그 시선들은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박병수랑 서로 아는 사이야?’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병수에게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걸 내가 왜 물어내? 바닥에 떨어졌을 땐 분명 멀쩡했어. 오윤찬, 저 자식이 조심성 없이 밟은 거잖아.”

   병수의 말에 스마트 폰 주인이 이번엔 윤찬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어쩔 거야? 너라도 책임질 거지?”

   윤찬은 얼굴이 붉어진 채 스마트 폰 주인의 어깨 너머로 병수를 노려봤다. 병수는 억울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해구야, 넌 어떻게 생각해? 내 말이 틀렸냐?”

   “어, 어?”

   나는 순간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호흡이 엉키며 기침이 터져 나왔다. 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침을 해대자 병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달려왔다. 

   “김해구, 왜 그래? 괜찮아? 보건실 갈래?”

   쏟아지는 기침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을 괜찮다고 손을 저었지만, 병수는 나를 굳이 보건실로 데려갔다. 보건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처럼 기침이 멈췄다. 그런 나를 보며 병수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씩 웃었다.

   “뭐야. 이제 진짜 괜찮아 보이네.”

   그날 이후로 병수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도 이것저것 가르쳐주며 굴비 묶듯 나와 자신을 하나로 엮어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수가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했다. 자기가 검색해 보니 천식에 좋은 운동 중 하나가 수영이며, 폐활량을 늘리는 데 스쿠버 다이빙만큼 좋은 게 없다나 뭐라나. 

   난 가끔 숨이 차는 것일 뿐 천식은 아니고, 폐활량을 늘릴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그제야 병수는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러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엔 용기가 안 난다고 했다. 자신이 동호회 가입은 다 해뒀다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두항에 스쿠버 다이빙 가게 겸 동호회가 있다는 것도 알아뒀다는 것이다.

   토요일 늦은 오후,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간 도두항은 황량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눈이 부시게 푸른 바다도, 아기자기한 카페나 식당도 없었다. 커다란 주차장에는 가끔 관광객을 실은 관광버스가 들어왔다 허름한 기념품 가게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금세 사라졌다. 항구 가장자리에 시멘트로 대충 지은 판잣집 건물이 있었다. 

   “여기가 분명 맞는데···.”

   병수가 건물 주변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꽤 깊은지 물빛이 어두웠다. 계속 내려다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몸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역시 처음부터 병수를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왔다. 얼굴만 빼고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까만 고무 옷을 입은 남자의 눈이 둥그레졌다. 남자가 놀란 듯 후다닥 머리에 쓴 고무 모자를 벗었다. 안경을 벗고 있어 잠깐 못 알아봤다. 윤찬의 얼굴이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병수가 놀라 물었다. 

   “야, 윤찬! 왜 여기 있어? 너 여기 사냐?”

   윤찬이 어이없어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여기 살겠냐?”

   “뭐야. 너도 여기서 스쿠버 다이빙 배우냐? 야, 범생인 줄만 알았는데 ”

   병수가 반가워하며 다가갔다. 윤찬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너희가 여긴 웬일이냐?”

   “우리도 이 동호회에 가입했지. 언더워터 카우보이! 와, 멋있지 않냐. 바닷속의 카우보이처럼 우리 여기서 물고기 좀 잡아보려고.”

   “스쿠버 다이빙으로 물고기를 잡으면 안 되는 것도 모르냐. 무슨 말을 하는지 좀 알고나 해라.”

   그때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남자가 윤찬과 같은 복장을 한 채로 밖으로 나왔다. 손바닥만 한 작은 고무 모자를 간신히 머리에 눌러쓴 남자의 얼굴은 독이 잔뜩 오른 복어처럼 부풀어있었다. 

   병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블루드래곤···님?”

   “혹시 불가사리···님?”

   풋, 헛웃음이 나왔다. 병수가 ‘왜?’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불가사리가 뭐냐. 이 불가사의한 인간아.

   “블루드래곤 강사님은 급한 일로 며칠 동안 육지로 가셨고, 난 바다표범이다.”

   “와, 동호회 카페에서 봤어요. 블루드래곤 강사님하고 범섬으로 다이빙 갔던 사진이요. 진짜 멋있었어요. 사실 저 바다표범 님에게 반해 이 동호회 가입한 거잖아요.”

   “이런, 팬이 있었다니. 하하하하하.”

   바다표범이라는 남자가 몸을 흔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까만 잠수복 위로 볼록한 배가 너울이 일 듯 출렁거렸다. 

   바다표범이 병수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윤찬의 친구들인가?”

   윤찬이 피곤하게 됐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친구는 아니고. 같은 반이야, 삼촌.”

   병수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에, 윤찬이 바다표범 님 조카예요?”

   내가 봐도 외모나 성격 면에서나 바다표범과 윤찬은 닮은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다표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병수의 어깨를 꽉 잡았다. 

   “너희들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고 싶다고?”

   “네!”

   병수가 힘차게 소리치자, 바다표범이 흐뭇한 얼굴로 우리의 어깨를 두들겼다.

   “좋았어. 특별히 내 팬들을 위해 이 바다표범이 직접 가르쳐주지.”

   그렇게 토요일마다 나와 병수는 바다표범에게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다. 이론 수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표범은 공기통과 부력조끼를 연결하는 법을 반복해서 연습하게 했다. 병수는 만날 똑같은 것만 연습시킨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만두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도 탐탁지 않은 얼굴로 병수를 따라갔지만, 바다에 들어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고 시시때때로 호흡이 엉키는 순간, 바다에 들어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드디어 이론 교육이 끝나고 실전의 날이 밝았다. 버스에서 내려 도두항 쪽으로 걷고 있는데 삼삼오오 사람들이 잠수복을 입고 분주하게 장비를 챙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병수가 흥분해서 도두항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우리를 발견한 바다표범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윤찬은 역시나 인상을 팍 쓰고 서서 병수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바다표범이 병수와 내 어깨를 퍽퍽 두들겼다. 

   “오늘은 애월 앞 바다에서 다이빙할 거다. 겁먹지 말고 침착하게 나를 따라 하면 된다. 알겠나?”

   “네!”

   “좋다! 우선 장비 점검!”

   바다표범은 우리에게 다른 동호회 회원들을 소개해 줬는데, 그중에는 블루드래곤 강사님도 계셨다.

   병수와 나는 그동안 수십 번도 더 연습했던 대로 공기통을 열어 잔압계를 확인했다. 블루드래곤 강사님은 우리가 빠르고 정확하게 장비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아주 잘 배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바다표범이 그래도 실력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문득 다른 동호회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는 윤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만날 얼굴을 찌푸리며 인상만 쓰고 있던 윤찬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하나둘 장비를 차고 도두항 바로 앞 바다로 뛰어들었다. 옆에서 병수는 드디어 입수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내 차례가 됐다. 공기통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10킬로그램의 웨이트 벨트까지 착용하니 몸이 휘청거렸다. 내가 컴컴한 눈으로 바다만 내려다보고 있자, 바다표범이 큰소리로 다그쳤다.

   “김해구, 뭐해. 빨리 바다로 뛰어들어!”

   머리로는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내 몸은 저절로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나는 호흡기를 손에 쥐고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다. 마우스피스가 저절로 어금니에 꽉 물렸다. 발을 허우적거리며 물 위에 동동 떠 있는데 바다표범이 내 앞에 나타났다. 바다표범이 손짓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해구야, 나처럼 숨을 쉬어. 천천히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라고!” 

   나는 바다표범의 지시에 따라 호흡기를 문 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마치 숨쉬기를 처음 배우는 것 같았다. 찌그러져 있던 내 폐가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하아, 이제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력조끼에서 조금씩 공기를 빼자 몸이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호흡기에서 나오는 크고 작은 공기 방울들이 은빛으로 반짝거리며 수면 위로 올라갔다. 물속으로 내려갈수록 물살이 느려지면서 몸도 편안해졌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는 오리발을 저었다. 부드러우면서 상쾌한 물살이 온몸을 기분 좋게 휘감았다. 나는 바닷물의 감촉을, 그리웠던 냄새를, 햇살과 파도가 부딪쳐 만들어내는 투명한 물빛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병수는 겁을 먹은 듯 바다표범의 팔을 잡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얼마나 버둥거렸는지 바닥에 가라앉았던 부유물들이 떠올라 주변이 흐려졌다. 그 옆에서 윤찬은 물 위로 떠오르지도 않으면서 가라앉지도 않는 중성 부력을 유지한 채 팔짱을 끼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환하던 물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물의 흐름이 달라졌다. 조류가 바뀐 건지 차가운 물살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자 바다표범이 놀라 다가왔다. 나는 바다표범을 밀치고 육지를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공기통을 짊어진 채 계단을 서둘러 기어올랐다. 그러고는 다이빙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 창가에 웅크리고 앉아 밖을 내다봤다. 

   조금 있다가 병수가 얕은 물가에서 허우적대다 공기통만 다 비우고 나왔다. 얼마나 바닷물을 마셨는지 병수는 뭍으로 나오자마자 소금물을 토하며 구역질했다. 그러다 다이빙 가게 안에 숨어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너무 많이 먹어도 사람이 저렇게 미치나 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류 좀 바뀌었다고 잔뜩 겁먹은 꼴이라니···. 

   그 후로 병수와 나는 참 열심히 다이빙을 하러 갔다. 병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 사진을 동호회 카페에 올리기 시작했다. 깊은 바닷속에 잠겨있는 낡은 잠수함 속을 헤엄치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과 다이버들, 심해 절벽을 따라 수직 하강을 하는 사진은 다이버들의 심장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병수가 올린 사진 밑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쏟아졌고, 병수는 신이 나 일일이 모든 댓글에 답글을 달았다. 

   나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핏기 없이 창백했던 얼굴은 태양에 검게 그을려 갔고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던 폐는 이제 달리기를 해도 쉽게 지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병수가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바닷속에서 인어를 봤다고 했다. 처음에는 병수의 말을 듣고 모두 웃어넘겼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목격담과 관광객이 찍은 사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는 지역 커뮤니티에도 퍼져 나갔고 심지어 신문 기사로도 보도됐다. 

   나는 병수와 함께 괴생명체가 목격됐다는 애월 해안으로 향했다. 더 이상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경찰차 두 대가 해안도로에 정차해 있었다. 경찰들이 분주하게 해안가를 탐색하고 몇몇은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표범이 경찰 로고가 붙은 잠수복을 입고 입수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이, 청소년들. 학교는 다 끝나고 온 건가?”

   반전, 이런 대반전이 없었다. 알고 보니 바다표범은 해양 경찰이었다. 우리는 한달음에 바다표범에게 뛰어갔다. 

   “지금 괴생명체를 조사하러 나왔다. 그러니 너희들도 당분간 바다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마라.”

   바다표범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바다표범의 모습에 병수는 또 반한 듯 눈을 반짝였다.

   “돌고래 떼 지나간 것 보고 오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제주도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평생 괴생명체는 본 적이 없었거든.”

   “제가 진짜 봤다니까요! 한 수심 20미터쯤이었을 거예요. 갑자기 조류가 빨려져 벗어나려고 오리발을 차는데도 소용이 없었어요. 힘이 다 빠져서 조류에 휩쓸리고 있을 때, 무언가가 제 앞을 휙 하고 지나갔어요. 저도 처음엔 돌고래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보니 꼬리가 두 개로 갈라져 있었다고요. 그런데 그게 갑자기 방향을 바꿔 저에게 다가오는데 사람 얼굴을 하고 있었다니까요!”

   병수의 이야기에 바다표범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네 말대로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어. 우리가 철저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니까.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이 바다는 우리가 지킨다!”

   바다표범은 팀원들과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우리는 한참 동안 해변에 서서 해양 경찰들이 바다를 살피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


   며칠 동안 뉴스에서는 괴생명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렇게 점차 잊히나 했는데, 병수가 쉬는 시간에 또 인어 이야기를 꺼냈다.

   반 아이 중 하나가 물었다. 

   “혹시 해녀 아니었냐?”

   “야, 해녀가 인어 코스프레하고 물질하냐. 파란색의 물고기 꼬리였다니까!”

   “윤찬이랑 해구도 같이 바다에 들어갔다면서. 근데 왜 너만 봤어?”

   “그게 내가 좀 돌발적인 행동을 자주 하거든.”

   실제로 병수는 바다표범에게 그렇게 주의를 듣고도 혼자 말미잘을 관찰하거나, 특이하게 생긴 물고기를 따라가다가 일행을 잃어버리곤 했다. 나는 병수의 다이빙 버디였기에 내 공기통의 절반은 종종 병수를 쫓아다니는 데 쓰곤 했다. 

   그때였다. 윤찬이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며 나를 불렀다.

   “해구야, 누가 널 찾아왔는데.”

   “누, 누구?”

   “몰라. 누군지 말 안 하던데.”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걸 직감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피가 폐로 쏠리는 것만 같았다. 또다시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다. 내가 가쁜 숨을 몰아쉬자, 병수가 달려와 내 팔을 잡았다. 

   “김해구, 괜찮아? 요즘 좀 나아진 것 같았는데, 또 그러네.”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아니, 당장이라도 도망쳐야 한다! 나는 병수의 팔을 뿌리치고 복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운동장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 후텁지근한 더위와 금방이라도 타들어 갈 것 같은 뜨거운 태양에 놀란 듯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어?”

   그의 첫 마디에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덜덜 떨렸다. 그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 끝까지 쫓아올 것이다. 

   “네 엄마는 잘 지내고?”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생을 얻어맞고 물어뜯기며 몸에 밴 습관적인 반응이었다.

   “너라도 연락했어야지, 이 새끼야.”

   그가 신경질적으로 내 다리를 툭툭 찼다. 그의 몸에서 축축하고 서늘한 깊은 바다 냄새가 났다. 한때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나갈 수도 없는 그 어둡고 차가운 심해가 내 모든 세상이었다. 

   “지금은 어디 사냐?”

   금방이라도 그가 달려들어 저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한 턱으로 내 목덜미를 갈가리 찢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목을 잔뜩 웅크린 채 뒷걸음질 쳤다.

   하아아악, 그가 목구멍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살기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그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그는 툭 튀어나온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재빨리 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새하얀 소금 가루가 덕지덕지 말라붙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인마,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법이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누르며 말했다. 

   “나는 이제 사람으로 살 거예요.”

   바닷속이었다면 나에게 승산은 없었다. 한 치의 그늘조차 허락하지 않는 한낮의 맹렬한 태양과 구름조차 없는 바짝 마른 대기에 나는 익숙해졌지만, 그는 아니었다. 지금 그는 먹잇감을 잡겠다고 스스로 통발에 들어온 물고기였다.

   그때였다.

   “김해구!”

   병수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몇 발짝 뒤에는 윤찬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어디서부터 보고 들은 것일까? 그의 앞에서 잔뜩 겁에 질린 채 맞고 있었던 것도 부끄러웠지만 병수와 윤찬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됐다. 엄마와 나는 살기 위해 그로부터 도망쳐 나왔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더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병수가 그를 힐끔거리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해구야, 너 여기서 뭐 해. 모두 널 얼마나 찾고 있는 줄 알아?”

   “나를 왜?” 

   “그게···.”

   병수가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하자, 윤찬이 온 운동장이 다 울릴 정도로 소리쳤다.

   “너 없어졌다고 난리 났어! 담임이 너 어디 갔냐고 당장 찾아서 데려오라고 했어.”

   “그래, 맞아. 모두 널 걱정하고 있어. 얼른 교실로 돌아가자.”

   병수와 윤찬이 이끄는 대로 나는 발을 옮겼다. 그는 여전히 나무 그늘에서 희멀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모두 학교를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혼자 교실에 남았다. 더 이상 이렇게 있을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병수가 교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윤찬한테 문자 왔다. 학교 후문에 지금 아무도 없다고. 자기가 계속 그 앞을 지키고 있으니까 빨리 나오래.”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물었다. 

   “넌 내가 무섭지 않아?”

   “내가 왜 널 무서워해야 하는데?”

   병수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불가사리가 바다 생물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어져야 할 존재가 아냐. 어떤 불가사리는 죽은 물고기나 다른 썩어가는 걸 먹으면서 바다를 깨끗하게 해. 그런데도 모든 불가사리를 다 없애버려야 한다면 불가사리 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겠냐.” 

   나는 천천히 병수를 바라봤다. 병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빨리 나가자. 윤찬, 그 자식 마음 변해 가버리기 전에.”

   교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뒤따라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병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우리 이번 토요일에 괴생명체 찾으러 바다에 들어가는 거 어때?”

   “언제는 인어라더니만.”

   윤찬은 숨이 찬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병수가 계속해서 말했다.

   “괴생명체건 인어건 가서 좀 말해주자. 이제 우리 구역엔 그만 오라고.”

   “언제부터 애월 앞바다가 네 구역이었냐?”

   “자식, 몰랐구나. 나 다이빙할 때마다 오줌 싸서 내 영역을 표시 해뒀잖아.”

   “웩! 더러운 자식.”

   윤찬이 헛구역질을 해대자, 병수가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김해구, 내일부터 우리 학교 같이 가는 거다!”

   윤찬이 얼굴을 찌푸리며 병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왜?”

   “야! 우린 언더워터 카우보이들이잖아. 우리 구역에 들어온 침입자는 쫓아내야지. 안 그러냐?”

   병수와 윤찬이 서로의 팔을 투덕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윤찬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김해구, 거기서 뭐 해. 빨리 안 오고.”

   “어, 지금 갈게.”

   나는 윤찬과 병수를 뒤따라갔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호흡기의 마우스피스를 입에 문 것처럼 어금니에 꽉 힘이 들어갔다. 바람이 분주하게 구름을 실어 나르자 푸르스름한 달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달빛 아래 손톱만 한 푸른색 물고기 비늘들이 내 몸에서 어렴풋이 반짝거렸다. 이제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도 숨을 쉬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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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아크네스

P. 아크네스 김아영 아크네스, 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겨울 방학이었다. 만날 학원과 집만 오가던 나에게 너는 그저 내 일상에 스쳐 지나가는 물웅덩이 위에 잔잔한 파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너의 존재가 내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을 울트라 메가급 핵폭풍으로 변할 줄은 그땐 미처 상상도 못 했다. 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나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곧 깨달았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번 겨울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고등학교 첫 시험의 결과가 달라진다며 수학학원 선생님은 우리를 몰아세웠다. 지금까지는 설렁설렁 공부했다 쳐도 고등학교 2년 동안 빠르게 모든 과정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지금 선행이 필수라는 흔한 말도 잊지 않았다. 히터가 내뿜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좁은 강의실에서 선생님과 서른 명 남짓한 아이들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마시며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했더니 피타고라스 정리나 미분 같은 단어들이 점점 귓가에서 아득하게 멀어져갔다. “야, 눈 감지 마!” 옆에 앉은 한 녀석이 내 옆구리를 툭 쳤다. 나는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놀란 눈으로 눈만 끔뻑거리자 수학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눈 감아보니 어때? 깜깜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지? 그게 너의 미래가 된다. 오늘 힘들다고 눈을 감으면 여러분의 내일은 더 힘들어져요.” 선생님의 말에 강의실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졸고 있던 녀석들마저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께 웃고 있었다. 그러다 복도 쪽 구석에 앉은 한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 시선에 당황해하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찰랑찰랑한 단발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목까지 빨갛게 물든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내 뺨을 쓰다듬었다. 모공조차 보이지 않는 탄탄하고 매끈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피부 하나는 타고났다며 부러워하던 친구들의 말이 떠올라 나는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때까지도 난 내 일상이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크네스, 네가 내 삶의 어떤 의미가 될 것이라곤 그땐 상상조차 못 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습관처럼 양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다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마 한가운데에 커다란 여드름이 빨갛게 볼록 솟아있었다. 얼마나 속이 곯았던지 손만 대도 아팠다. 거뭇거뭇 수염이 난 코밑에도 작고 하얀 피지들이 몇 개 올라와 있었다. 그것들은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아 손톱 끝에 힘을 주어 짜버렸다. 이마에 여드름이 나는 건 누군가가 나를 짝사랑한다는 뜻이라던데. 문득 어제 학원에서 나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던 그녀를 떠올렸다. 혹시 그녀가 나를&mid

  • 김아영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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