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옆 나무의자」외 6편
- 작성일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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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기 옆 나무의자
한상순
전철 승강기 옆
쪼루루 나무 의자 네 개
저렇게 얌전한 척 앉아 있지만
난, 다 봤지.
사람들이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불끈 네 다리에 힘을 주는 걸
승강기 문이 열릴 때마다
함께 타려고 엉덩일 들썩이는 걸
한밤중엔 둘씩 짝지어
승강길 타고 오르락내리락
장난치고 놀지도 몰라
저 봐,
얼마나 놀았는지
엉덩이가 밴질밴질 윤이 나잖아.
상상이라는 아이
딱, 몇 초 만에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어.
구름 위를 날기도 하고 바다 위를 저벅저벅 걸을 수도 있지.
물론 110층 빌딩 벽을 맨손으로 오를 수도 있어.
물구나무로 뚜벅뚜벅 걸어서 학교에 가기도 해.
늦잠을 잔 날은 휘리릭, 해리포터 빗자루를 타고 날면 되지.
숙제 안 한 날은 비둘기로 잠깐 변신,
숙제 검사가 끝날 때까지 창가에 앉아 꾸룩꾸룩 노래하면 돼.
이 아인 꼬리가 길 때도 있고 짧을 때도 있어.
도마뱀 꼬리처럼 뚝뚝 끊어지기도 하지.
하지만 금세 새 꼬리가 생겨나니 걱정 없어.
쉿! 비밀인데
나는 이 아이의 주인이야.
눈물 저금통
새해엔
저금통 하나 마련해야겠어.
눈물을 모으는
저금통.
어쩌다 울게 되면
주먹으로 씩씩 닦지 말고
저금통에
방울방울 모아야겠어.
방울방울 눈물방울
저금통에 담기면
할머니 눈에 인공눈물 대신
눈물방울 톰방톰방 넣어드려야겠어.
자꾸자꾸 태어나
자꾸자꾸 태어나
비 오는 날, 올챙이들이
차 앞유리창 연못에서 꼬물꼬물
자꾸자꾸 태어나
악어 입보다 큰 와이퍼가
입 쩍, 벌리고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자꾸자꾸 태어나
꼬물꼬물 자꾸자꾸 태어나
쓰읍-싹 쓰읍- 싹
와이퍼 괴물이 한입에 꿀떡꿀떡 삼켜버려도
자꾸자꾸 태어나
꼬물꼬물 자꾸자꾸 태어나
석수장이
석수장이 할아버지
망치 한 개, 정 하나로
툭,툭,툭,툭,
돌 껍질 벗기고
강아지를 꺼낸다.
양을 꺼낸다.
낙타를 꺼낸다.
어떤 때는 돌 속에서
부처님도 모시고 나온다.
이럴 땐 석수장이 얼굴도
마냥 부처님 얼굴이다.
공갈빵
소보루빵슈크림빵단팥빵단호박빵소세지빵소금빵
호밀빵소라빵바게트빵흑임자빵밤빵고구마빵완두앙금빵
빵빵빵들이
빵빵하게 이름을 걸고
빵빵하게 앉아 있다.
그 옆에
속없는 공갈빵
엉덩이에 바짝 힘을 주고
더 빵빵하게 버팅기고 있다.
누가 미루나무에게 노랠 시켰나
강가에 서 있는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파르르파르르 떤다
교단 위에 서서
노래 시험 보는 나처럼
파르르파르르 자꾸 떤다
저러다가 노랠 부르면
들으나 마나
나처럼 목소리도
파르르르 떨려 나올 텐데
도대체 누가
미루나무에게 노랠 시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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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화석 오지연 나 시조새처럼 날지 못해도 나 공룡처럼 크지 못해도 나 매머드처럼 힘세지 못해도 나 흔하고 보잘것없어도 그래도 나, 수억 년 전에 살았었노라고 절대 잊지 말아 달라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도장 하나 바위 위에 온몸으로 쿵, 찍어 놓았다. 넘어진 날 오늘은 기분이 영··· 안 좋아서 길을 가다 애꿎은 보도블록과 싸웠다. 내가 먼저 머리를 훅 박았더니 대뜸 왕혹이 날아왔다. 까치가 부러워 우리 집 마당에 오래된 감나무 있는 힘껏 까치발 해도 내 맘대로 홍시 하나 따 먹기 어려운데 까치는 어디선가 날아온 까치는 제집처럼 이 가지 저 가지 맘대로 옮겨 다니며 요것조것 입맛대로 골라 먹네요. 쳐다보는 날 보고 “깍깍!” 웃고 가네요. 세상의 저녁 커다란 집 멋진 부엌에도 불이 켜지고 작은 집 허름한 부엌에도 불이 켜진다. 여럿이 혹은 혼자서 갓 지은 또는 식은 이른 때론 늦은 밥을 천천히 먹는다. 울게 하소서 오늘도 난리법석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후 어린 동생은 형이랑 거실에서 〈울면 안 돼〉를 듣고 엄마는 홀로 작은방에서 〈울게 하소서〉를 듣는다. * 〈울게 하소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아리아. 끝 눈 기억이 하나둘 사라지던 할머니 하늘나라로 가시던 날 첫눈이 왔다. 내리는 눈을 보면 “곱다, 참 곱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할머니 할머니에게 오늘 내린 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끝 눈이었을 거야. 추운 겨울날들을 위해 프레드릭, 너는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았지. 그리고 시를 지어 친구들과 나누었지. 나도 한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 먼저 포근한 이불을 챙길 거야. 겨울밤 내내 들을 음악을 모을 거야. 재미있는 책도 잔뜩 모으고, 귤이랑 과자, 향기로운 차도 모을 거야. 손난로와 무릎담요도 준비할 거고, 서투른 시도 가끔은 써 볼 거야. 겨울 내내 안에서 뒹굴뒹굴 대면 아마… 뱃살도 잔뜩 모아질지 몰라. * 프레드릭: 레오 리오니가 쓴 그림책 제목. 주인공 들쥐의 이름.
- 최고관리자
- 2024-11-01
언더워터 카우보이 김아영 지난 7월 9일, 제주시 애월 앞바다에서 괴생명체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스쿠버 다이빙 중 괴생명체를 목격했다고 주장한 박 모(15세) 군은 ‘괴생명체의 얼굴은 사람과 같았고, 다리는 물고기 꼬리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고 말했다. “기사 좀 봐라. 괴생명체가 아니라 인어였다니까! 내가 분명히 봤어!” 병수가 자신의 휴대폰에 실린 기사를 내 턱밑에 들이밀었다. 심장이 박자를 잃은 채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기사와 함께 올라온 사진 속에는 흐릿하게 푸른색 지느러미가 보였다. 내 옆자리에 앉은 윤찬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또 그 얘기야. 그래서 인어 공주님은 예뻤냐? 왜 인어 공주님 옆에 수다스러운 바닷가재는 없었고?” 며칠 전 병수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가 바닷속에서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를 봤다고 했다. 꿈이라도 꿨냐고, 같이 바다에 들어간 다른 사람들은 왜 못 봤냐며, 평소 병수를 잘 아는 윤찬은 그저 웃어넘겼다. “아, 진짜라니까. 내 두 눈으로 직접 봤다고!” 병수의 말에 윤찬이 듣기 싫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박병수,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 쉬는 시간은 다 끝났어!” 하여간 저 두 사람은 인어 공주와 바다 마녀처럼 누구 하나가 물거품이 되어야지 이 악연이 끝나지 싶다. ‘그날 병수가 본 게 정말 인어였을까?’ 갑자기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기침을 할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주변 아이들이 힐끗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차가운 수돗물을 얼굴에 마구 끼얹었다. 화장실 거울 속에 발갛게 달아오른 내 얼굴이 비쳤다. 가쁜 호흡도 서서히 제 박자를 찾아갔다. 복도 끝에서 조회를 하러 오는 담임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교실로 뛰어들었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찌잉 울렸다. 병수가 보낸 문자였다. - 이번 주말 다이빙 한 깡 어때? * 내가 다이빙을 배우게 된 것은 병수 때문이었다. 병수는 가벼운 입만큼이나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 학교로 처음 왔던 날, 담임이 조회 시간에 말했다. “해구는 건강상의 이유로 한동안 학교를 쉬었다고 한다. 제주도에도 처음 왔다니,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모두 도와주도록.” 어색한 인사를 한 뒤 아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피해 맨 뒷자리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담임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복도 쪽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병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격하게 손을 흔들어댔다. 내가 알던 사람인가, 아님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
- 최고관리자
- 2024-11-01
너를 그릴 때 유행두 동그라미를 그린다 나를 바라볼 네 눈은 크게 그리고 나한테 좋은 말만 해 줄 입을 그리고 내 손을 잡아 줄 따뜻한 네 손을 그린다 그리고 나한테 더 빨리 달려올 수 있도록 다리는 길게 그린다 내 마음에 하트를 그려 넣긴 했지만 네 마음은 어떻게 그려 줘야 할지 모르겠다. 침의 힘 한국인은 밥심이라던데 틀린 말 같다 무거운 장롱 옮길 때 화분 들 때 재활용 모아 둔 것 들 때 종이 넘길 때도 아빠는 손바닥에 침을 퉤 퉤 뱉는다 손바닥 착착 두드리고 나면 꼼짝 않던 장롱이 들썩! 무거운 화분이 으라차! 한국인은 침의 힘이다 치 멸치보다 세 배 맛있어서 삼치 삼치보다 갈 곳이 많은 갈치 갈치보다 꽁꽁 잘 숨는 꽁치 꽁치보다 도망 잘 가는 가물가물 가물치 가물치보다 참말로 큰 참치 참치보다 잘 날아다니는 날치 날치보다 넙죽 잘 엎드리는 자존심 없는 넙치 넙치보다 쥐가 잘 나는 쥐치 쥐치보다 할 말 없는 멸치 치사하게 제사상에 누울 녀석 하나도 없다는 그 치들 참! 맛있네 치! 기도시간 엄마가 손을 꼭 모으고 있다. 아빠 꼭꼭 돈 많이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내 시험 성적 잘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아빠가 눈을 감고 손을 살며시 모으고 있다.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달라고 살며시 기도하고 있다. 엄마 욕심 좀 줄여 달라고 슬그머니 기도하고 있다 엄마 아빠 사이에 앉아 나는 손을 꼭 모았다가 살며시 풀면서 기도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기도하는 것 다 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기도하다 깜빡 졸면, 그때는 좀 기다려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달 지구 이야기가 다 모여 있는 밤마다 내려다보고 지구 이야기 주워 담는 옛날이야기가 다 모여 있는 달 그래서 지구에는 달에게 보낼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있단다 시인이 있고 소설가가 있고 동화작가가 있지 달에게 물어볼 거야 내가 달 출판사에 보낸 이야기 혹시 못 봤느냐고 구름 택배를 이용했는데 달 출판사 어디쯤에 굴러다니는 내가 보낸 이야기 정말 못 봤느냐고 개명 사유서 얼얼한 세상에서 살기 싫었던 동태 채 자라지 않아 말라 버린 노가리 얼다가 녹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서서히 마른 북어 방망이에 두들겨 맞기 싫었던 황태 추위에 벌벌 떨다가 갑자기 녹아 버려 울다가 검어져 버린 먹태 다시는 낚여 잡히기 싫은 조태 그물에 잡히고 싶지 않은 망태 푸른 물살을 가르며 살고 싶은 명태였어요. 까치집 에어컨 실외기 구석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 지푸라기-참새한테 빼앗아 온 것 깃털-닭이 한눈팔 때 잽싸게 물어 온 것 머리핀-알바하던 이모가 잠시 빼놨던 것 못-까마귀네 집에서 몰래 가져온
- 최고관리자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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