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다귀 가족
- 작성일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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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다귀 가족
이선강
“어, 저러다 부딪치겠습니다, 아 다행…. 어어, 다시 위험합니다. 아빠 선수가 뱃살을 흔들며 가볍게 진열장 모서리를 살짝 비껴가네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습니다. 역시 오늘도 노련함을 과시하는군요. 네, 수정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잠시 마이크를 넘겨 보겠습니다.”
은영이가 내 입 가까이로 마이크인 양 볼펜을 내밀었다.
“그만해. 그러다 진짜 들켜.”
나는 은영이가 내민 볼펜을 뽑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뼈다귀 가족이 눈치채지 못 하게 음악 볼륨을 살짝 높였다. 은영이는 중계를 포기하지 않고 옆에 붙어 서서 계속 속닥였다.
뼈다귀 가족은 아주 열심히 컵을 고르고 있다. 늘 같거나 비슷한 제품을 사면서도 불량품을 가려내는 컵 감별사처럼 신중하다. 100킬로그램은 족히 넘어 보이는 거구의 남자 셋이 스무 평 남짓한 선물 가게에서 물건을 고른답시고 활개를 칠 때마다 나도 마음이 조마조마하긴 마찬가지다. 유리제품과 도자기 제품이 빼곡히 들어찬 진열대에 몸이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중량감만으로도 사방이 와장창 부서져 버릴 거다,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뼈다귀 가족의 컵 고르는 취향은 그 덩치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80년대에나 나왔음직한 유치하고 화려한 꽃무늬가 어지러운 그런 도자기 제품만을 고른다. 주로 촌스런 빨간색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무늬나, 촌스런 빨강 장미에 금박 테두리가 있는 것들이다.
뼈다귀 가족은 한 물건에 거의 의견 일치를 봤는지 마지막으로 신중하게 심사하고 있다. 나는 끊임없이 내 귀에다 대고 쫑알거리는 은영이를 파리 쫓듯이 탁탁, 떨쳐 내고는 다른 물건을 닦는 척하면서 그들이 고른 컵을 흘깃 훔쳐봤다. 촌스러운 빨강 장미에 금박 테두리, 누리끼리한 아이보리색이다.
‘오, 천하무적인데. 과연!’
나는 그들다운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19년밖에 안 살았지만 이렇게 지조 있는 인간들은 처음 봤다. 늘 비슷한 종류의 컵을 고르면서도 끊임없이 살피고 심사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는다. 지금도 뼈다귀 가족은 꽤 흡족한 얼굴로 연신 흠흠, 모두가 마음에 든다는 일종의 신호를 서로에게 보내고 있다. 도대체 심사 기준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역시 사람들의 취향이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가격이 싸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긴 하지만 이모가 그런 물건들을 계속 받는 이유를 처음엔 알 수 없었다.
‘역시 이상한 가족이야.’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뼈다귀 가족이 돌아가자 은영이는 물건을 정리하며 혼자서 다시 중계를 시작한다.
“네, 아빠 선수와 두 아들 선수는 오늘도 흡족한 얼굴로 당당하게….”
나는 뼈다귀 가족이 사간 머그컵 빈자리를 채우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영, 선수들도 다 퇴장했는데 도망간 알바 대타 광고나 다시 붙이시지?”
“사장님이 알바 구했다고 전화했잖아요. 모레부터 온대요. 아, 그때 언니 없었나?”
“뭐? 언제…? 프린트 괜히 했네.”
은영이는 쓸데없는 말은 잘도 지껄이면서 꼭 말해 줘야 하는 건 잘도 까먹는다. 나는 어이가 없어 한마디 하려다 말았다. 잔소리하느라 입 아픈 것보단 속 편하게 그냥 넘어가는 게 이래저래 편했다. 어차피 얘들은 방학 때만 하는 오전 파트고, 나도 이제 2주만 잘 버티면 여기도 안녕이다.
“엄마, 쟤 좀 어떻게 해 봐.”
근 두 달 만에 자는 낮잠인데 개 소리 때문에 깨고 말았다. 한 번도 꾼 적이 없는 멋진 꿈이었다. 베개 위치를 옮기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토막 난 잠을 이어 붙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찡코가 다시 요란하게 울기 시작한다. 두통이 일었다.
“으으, 저 놈의 개가 정말!”
나는 마지못해 침대를 빠져나와 마당으로 직행했다. 개집 안에 손을 집어넣고 있던 어머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본다.
“간만에 쉰다고 하루 종일 잠이냐!”
“찡코 때문에 깼잖아. 버들이가 또 그랬어? 찡코, 네가 늑대냐. 왜 만날 우우 거려!”
엄마 손에 늙은 개 한 마리가 개집에서 질질 끌려 나온다. 버들이다. 엄마가 다시 개집으로 들어가려는 버들이 궁둥짝을 기세 좋게 탁, 내려쳤다. 버들이는 움찔 놀라 꼬리를 엉덩이 밑으로 바짝 말아 넣고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네 새끼도 아니면서 왜 자꾸 뺏어가? 너 때문에 찡코가 하도 울어대서 동네에서 쫓겨나게 생겼잖아!”
엄마가 버들이 집에서 호빵만 한 새끼 다섯 마리를 차례로 꺼내 어미인 찡코 젖꼭지를 물렸다. 어미는 마지못해 어정쩡하게 선 자세로 젖을 먹이면서도 계속 킁킁이며 새끼들의 냄새를 맡는다. 나는 이마에 팔자 주름을 세 겹, 네 겹이나 만들며 풀죽어 있는 버들이가 안쓰러워 오랜만에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네 새끼가 낳은 새끼니까 손자야, 손자! 자꾸 찡코 새끼들 네가 데리고 가면 안 되는 거야, 알겠어?”
버들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새끼들을 빼앗긴 것이 서러운 건지 슬며시 내 눈치를 보다 땅바닥으로 두 번 콧김을 내뿜었다. 그러자 마른 흙이 둥실 떠올랐다가 다시 살포시 가라앉는다. “한숨은. 너도 참 별종이다.”
사실 별종이 아니다. 버들이는 분명 치매처럼 보였는데 쟤 인생도 그럴 만했다. 한 번의 파양과 가장 좋아하던 주인을 잃었다. 우리 집에서만 거의 6년을 지냈지만 버들이에게 우리는 여전히 임시 보호자다. 거기서 비롯된 서운함과 여윳돈이 없다는 옹졸함이 더해져 우리 가족은 치매를 모른 척 중이다. 병원비가 솔직히 무서웠다. 나는 채 가라앉지 못한 마른 흙가루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왜 같은 질량의 흙가루가 가라앉는 속도가 제각기 다른지 잠시 의아했다. 하긴, 저렇게 적은 질량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에도 방향이나 속도가 달라지겠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는 것들에 요즘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나는 손바닥을 탁탁 털며 일어나 찡코 옆에 쪼그리고 앉은 엄마 곁에 섰다.
“점심 먹었어? 나 배고파.”
“좀 있어, 새끼들 젖 다 먹이는 거 보고. 이렇게 안 지키고 있으면 새끼들 젖 안 주려고 자꾸 밀어낸단 말이야.”
“엄마 새끼 배고프다고요. 찡코 탓 하지 말고 제 밥이나 주시죠?”
엄마가 갑자기 내 허벅지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휴일 한 끼쯤은 네 손으로 차려 먹어.”
난 엄마한테 얻어맞은 왼쪽 허벅지를 문질렀다. 냉장고 문을 열며 혼잣말을 했다.
“이제 때리는 것이 습관이야. 예전에는 그 분노를 어찌 참았대?”
밑반찬 통을 꺼내 식탁에 쭉 늘어놓고 젓가락으로 밥알을 몇 개 건져 올렸다. 너무 오래 잔 탓인지 생각보다 영 입맛이 없다. 난 가스 불에 녹아내려 형태가 일그러진 플라스틱 반찬통 덮개를 젓가락으로 툭, 한쪽으로 밀쳐 냈다.
“참 징글징글하다, 정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싱크대 선반만 열면 새 밀폐용기들이 가득한데도 엄마는 망가진 것들을 버리지 못한다. 사 온 지 하루 만에 이가 나간 비싼 밥그릇은 망설임 없이 잘도 버리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싸구려 밀폐 용기에 집착하는 엄마 심리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은영이가 금방 빨아 온 밀대를 가게 안쪽 모퉁이에 세우며 툴툴거렸다.
“아니, 신입이 첫날부터 이렇게 늦어도 되는 거예요? 너무하잖아.”
15분 지각한 나한테 하는 소리 같아 기분이 조금 야릇했다. 난 사장 조카니까 좀 봐 달라고 애교라도 떨까 잠깐 고민했다.
그때, 새 알바생이 태평한 얼굴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청바지와 하얀 면 티 위에 크롭 재킷을 덧입은 새 알바는 유달리 긴 팔다리를 흔들며 유유히 다가서며 눈인사를 한다. 보조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은 폼이 모델처럼 꽤 그럴싸했다. 고1이라더니 여드름 자국이 살짝 있는 얼굴도 싱그러워 보였다. 한 살 많은 은영이보다 어른스러워 보이면서도 생기가 넘치는 묘한 얼굴이었다. 은영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왔어? 하는 손인사만 건넸다.
막 뼈다귀 가족이 다녀갔다. 이번엔 두 아들만이다. 그들은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는지 우울한 얼굴로 가게에 들어서서 급하게 물건을 골랐다. 엄격한 심사도 없이 틀림없이 형으로 보이는 쪽이 ‘이것?’ 하자 틀림없이 동생으로 보이는 쪽이 흠, 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거구를 이끌고 총총 멀어져 간다. 은영이도 그들의 표정에서 수상쩍은 냄새를 맡았는지 내 옆에 서서 그들이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봤다. 저 뼈다귀 가족에게는 도무지 멀어져 사라진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더 이상 안 보이자 카운터로 가는 나를 은영이 졸졸 따라 붙었다. 은영이는 오늘 항상 해 오던 중계를 빼먹고, 조용하게 내 곁에 그냥 붙어 있거나 손님이 있을 때 가끔 신입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했다. 생전 안 하던, 어울리지도 않게 선배 티를 내려는 은영이 조금 유치하게 느껴졌다.
나와 은영 곁에서 좀 떨어져 있던, 남 눈치라고는 안 보는 듯한 신입이 유난히 긴 팔다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마른가지에서 푸르게 솟아난 연한 잎들이 봄바람에 흔들리듯 눈부시다. 나는 뚜렷하게 내세울 게 없는 내 오종종한 체격과 강하게 비교되는 신입이 부럽고도 조금 얄미웠다.
“금방 손님들 너무 심하지 않아요? 뚱뚱한 것도 민폐야.”
은영이가 신참에게 주의를 줬다.
“뼈다귀 가족 말이야? 그래도 단골이니까 말조심해!”
그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심성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은영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에? 아니, 좀 전에 나간 뚱뚱한 사람들 말인데.”
신참도 만만치 않다. 나와 은영 누구에게랄 수도 없는 첫 물음에선 반 높임말을 쓰더니 말상대가 은영 혼자가 되자 혼잣말인 것처럼 슬쩍 말이 짧아진다. 예사 솜씨가 아니다. 어제 스치듯 가벼운 인사만 하고 헤어졌으니 오늘 처음 만난 사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 살 많은 은영이 말을 놓자 신입도 지지 않는다. 같은 한 살 차이인 은영이가 처음 나한테 말을 놓기까지는 보름이 넘게 걸렸다. 그것도 반 높임말이 적절하게 가미된 반말이었다. 아무리 고등학생에 아르바이트라도 우린 어째든 직장 동료다.
“그래. 그 사람들 말이야.”
“그렇게 뚱뚱한데 뭔 뼈다귀 가족?”
말하기 좋아하는 은영이는 선배 행세를 하던 것도 잊고 신이 났다. 성우처럼 목소리까지 바꿔 가면서 뼈다귀 가족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에 수정 언니랑 고기 먹으러 간 적이 있거든. 둘이서 저녁 먹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할머니가 막 난리를 치는 거야. 이 도둑놈들! 내 뼈다귀 내놔. 훔쳐 가는 거 내 못 본 줄 알지? 하고 막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장난 아니었어. 놀라서 나갈까 하고 있는데, 그 뚱뚱 가족이 할머니 팔을 잡고 막 말리는 거야. 어머니, 제가 당장 도둑놈 잡아 올 테니 걱정 마세요. 할머니 제가 나중에 혼내 줄게요, 하면서 할머니 진정시키려고 별 쇼를 다 하더라니까. 결국 그 뼈다귀 다 돌려받고 나니까 할머니도 조용해지더라.”
“진짜 창피했겠다.”
“그러게. 그 할머니 치매잖아. 동네 사람들이 아무리 다 안다고 해도 창피해서 어떻게 같이 다니냐. 아무튼, 그 가족이 먹은 갈비뼈 그릇 바꿔 주다가 종업원만 된통 당했어요. 할머니 상태도 그런데 외식이 다 뭐야, 그치?”
“아, 그래서 뼈다귀 가족이구나! 난 또 이상하다 했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려다 그만뒀다. 그 일이 있었던 날, 나도 그 가족을 비웃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모가 오늘 저녁이랑 노래방 쏘신다는 거 들었지? 마감 알바들 말고 우리만 가는 거니까 늦지 말고.”
문득, 서로를 부끄러워하는 가족은 서로를 의식하느라 같이 외식하는 것도 두려워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엄마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게졌다.
새끼들이 제 어미를 두고 또 버들이 집에서 자고 있었다. 찡코는 내가 들어서자 꼬리를 흔들었는데 자기 새끼들이 어디서 자는지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새끼들이 어미인 저를 버리고 늙은 개한테 들러붙어 있는 꼴이 보기 싫은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어미라고 해서 새끼에게 늘 깊은 정을 주지는 않는다. 상대에 따라, 필요나 상황에 따라 애정의 깊이도 변한다. 가끔 모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싸늘함을 찡코한테 느끼곤 했다.
버들이는 제집을 고스란히 강아지들한테 내주고 바깥에서 자고 있었다. 춥지도 않는데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양새가 꼭 찡코한테 새끼 뺏기는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주인이, 아니 임시 보호자가 들어온지도 모르고 집 바깥에서 곤히 잠든 늙은 개를 잠시 바라봤다.
버들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땐 너무 사랑스러운 개였다. 아는 사람이 사정이 생겼다며 우리 집에서 임시로 맡자며 아빠가 데리고 들어왔다. 성견이었지만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개는 사방으로 요리조리 튕겨 다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결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젠 웬만한 일에는 짖지도 뛰지도 않는다. 6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온 버들이는 담 옆에 뿌리를 내린 감나무나 자목련처럼, 이제 그냥 개집 옆에 엎드린 늙은 개다.
“넌 아빠 기억 하니? 아빠 발소리 들으면 자다가도 일어나 문 열기 전부터 꼬리 흔들었겠지?”
버들이는 처음부터 유난히 아빠를 따랐었다. 이전부터 오가며 몇 번 본 사이일 테니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밥을 챙겨 주고 똥을 치우고, 목욕과 산책을 시켜 주는 것도 다 엄마와 내 몫이었는데 애정의 무게 추는 변하지 않았다. 아빠가 우리를 떠났을 때 한동안 엄마와 나는 본체만체하고는 온종일 아빠만을 기다렸다. 그때의 배신감은 따뜻했던 추억조차 앗아갔다.
“어두운 데서 뭐 하냐? 안 들어오고.”
어머니가 거실 창에 얼굴만 내밀고 어두운 마당을 내다봤다. 나는 귀를 쫑긋거리며 실눈을 뜨는 버들이를 한번 노려보고는 거실로 들어섰다.
“술 마셨니? 네가 대학을 포기했다고 해도 아직 고등학생이라 건 잊지 마라.”
엄마는 유난히 술 냄새에 민감하다. 소주 딱 한 잔을 마셔도 단박에 알아챈다. 응, 조심할게 하고 들어가려다 나는 방문을 닫으려는 엄마를 도로 붙잡았다.
“엄마! 옛날에 말이야, 우리가 엄마하고 안 살고 새엄마랑 산다고 했으면 엄만 기분이 어땠을 거 같아? 배신감 느꼈을까 아니면 홀가분했을까?”
“모르지! 지나간 일을 지금 생각한다고 기분이 그때랑 같을 수 있겠니? 들어가 어서 자. 오빠 아직 안 들어 왔으니까 거실 불 끄지 말고.”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방문을 닫았다. 이럴 땐 엄마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가장 하찮은 것이 아빠와 만나고 헤어진 일 같다. 엄마는 아빠 욕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엄마가 토란잎에 담긴 물방울 같았다. 보기엔 좋은데 조금만 잘못하면 철퍼덕 땅에 스며들어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오빠가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리고 거실의 미등이 꺼졌다. 문틈으로 들어오던 희미한 불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아주 익숙한 느낌의 온도다. 벽이 뿜어내는 냉랭한 기운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갑자기 어릴 적 일이 떠올랐다. 술 마시고 들어온 아빠가 오빠를 붙잡고 늘어놓던 ‘뼈대 있는 가문’으로 시작하던 일장 연설. 난 그 말이 늘 우스웠다. 뼈대 없는 가문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존재할까. 하지만 그 말을 하던 아빠의 그때 기분을 이제는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무엇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스스로를 속일 수 없는 더러운 기분, 아마 아빠는 부끄러웠던 거다. 뼈대를 내세우면서라도 덮고 싶었던 부끄러운 뭔가가 있었을 게다. 그 부끄러운 마음이 오히려 더 많은 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아빠를 통해 배웠다. 무엇이든 자꾸 감추다 보면 엉뚱한 순간 엉뚱한 곳에서 펑, 하고 터져 버린다. 사소한 실수를 감추기 위해서 시작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듯이, 아빠의 부끄러움은 가족 전체를 짓뭉개 버렸다.
은영이는 거의 데스크 책상을 안다시피 엎드려 늘어져 버렸다. 오픈 준비가 끝나자마자 저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입을 쳐다봤다. 너무 생생했다.
어제 저녁은 신입의 독무대였다. 17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팝부터 트로트까지 전부 꿰차고 있었다. 아예 처음 듣는 곡도 많았다. 어른이자 사장인 이모가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활달한 것은 좋은데 누구도 어려워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무신경이 나는 거슬렸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쿨 하다며 좋다고 하는데 이해되지 않았다.
노래방 초반엔 신나하던 은영이는 신입의 현란한 노래와 춤 솜씨에 끝까지 저항하다 결국 나가떨어졌다. 신입과 같이 춤을 추는 은영이는 눈엔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이모도 신입의 춤에 넋이 빠졌다. 노래와 춤하곤 인연이 없는 나와는 달리 은영이는 꽤 춤을 잘 췄다. 그런데 신입이랑 같은 춤을 출 때면 은영이의 춤은 초라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인기 최정상 아이돌 센터와 동네 자타 공인 춤꾼의 차이처럼 체급 차이가 났다. 결국 은영이는 제 페이스를 잃고 과장된 즐거움으로 폭주했다.
뭔가에 밀려나는 느낌이 어떤 건 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곱게 생각해 주려다가 은영이의 맥 빠진 등짝을 보자 뭔가 울컥 치밀었다.
“술 마신 아저씨처럼 왜 늘어져 있어? 일어나 정신 차려! 신입한테 안 부끄럽냐?”
은영이의 등짝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에 벌떡 몸을 일으키는 은영이 얼굴이 노랬다. 은영이는 신입을 한번 쳐다보고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지친 중에도 곱지 않은 얼굴이 뭔가 따져 묻는 듯하다. 자기가 잘못하고서 되레 불만스러운 얼굴의 은영 때문에 좀 짜증이 났다.
“뭐 하자는 거야?”
“제가 뭐라고 했어요?”
분명 화난 목소리다. 나는 은영이가 뾰족하게 쏘아붙이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뭐라고 대꾸할 틈도 없이 은영이가 지갑을 들고 가게를 나가면서 한마디 한다.
“두통약 좀 사러 갔다 올게요.”
신입은 잠시 우리를 보는가 싶더니 다시 핸드폰으로 대화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다. 가게 안에서 수시로 울리는 수신음에 나까지 두통이 밀려왔다. 진동으로 바꾸라는 내 목소리가 지나칠 정도로 차가워서 스스로 움찔 놀랐지만 신입은 고게도 돌리지 않고 네, 한다.
이모 가게에서 일을 한 건 작년 겨울 방학부터다. 고3에 올라와 입시를 포기했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며 방과 후와 방학 때 따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모가 도와줬다. 마침 외사촌이 특목고에 붙어 기숙사에 들어가자 이모는 근처에 방을 구했다. 휴일이면 그곳에서 외사촌은 과외를 한다. 이모는 그곳 살림살이를 챙기느라 가끔 가게를 비웠다. 그 빈자리를 메꾸며 방학 때면 내가 문을 열고 닫을 때도 있다. 사회생활 익히며 용돈도 벌고, 무엇보다 엄마와 단둘이 종일 집에 안 있어도 된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말수 적은 모녀가 같이 아침 점심 저녁을 함께하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어쩐지 으스스했다. 하지만 역시 쉬운 건 없다. 파트타임마다 달랑 셋인 가게에서조차 인간관계는 여전히 복잡하다.
대문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서려다 뭔가 허전했다. 그러고 보니 늙은 개가 사라졌다. 나는 넓지도 않은 마당을 샅샅이 훑으며 오랜만에 버들아, 버들아, 하고 늙은 개를 불렀다. 뒤늦게 찡코가 개집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너 부른 거 아냐.”
괜히 찡코한테 짜증을 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커니 앉았던 엄마가 반기는 기색도 없이 쳐다본다.
“엄마. 버들이 어디 갔어? 안 보이네.”
“부동산 아줌마네 줬다.”
“뭐? 버들이를 왜 줘? 걔가 물건이야?”
“그 집 어르신이 적적하다고 한참 전부터 달라고 했어. 개 예뻐라 하시는데 기력 없어서 못 키우는데 버들이가 딱이라고.”
“그래도 그렇지! 걔도 가족인데 어떻게 남을 줘?”
“아빠 나가고 네가 버들이 얼마나 챙겼다고 가족이야!”
꼭 울 듯한 얼굴로 엄마가 다시 성질을 냈다.
“불쌍해서 줬다. 남의 새끼 나오지도 않는 젖 물리고, 안 오는 주인 기다린다고 만날 쪽잠만 자는 거 난 더 안 보고 싶다. 네 아빠도 잊고 그 집에서 예쁨만 받다 가면 얼마나 좋냐.”
머리로는 알겠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잊을지 아님 다 기억할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 우리까지 버렸으니 이제 버들이는 세 번이나 버림받는 거야.”
순식간에 엄마 얼굴이 싸늘해졌다.
“그래, 말 잘했네. 그 여자가 키우다 귀찮으니까 네 아빠한테 떠넘기고, 네 아빠는 그 여자랑 산다고 우리한테 떠넘기고, 넌 그거 알고 밉다고 눈길도 안 줬잖아. 그런데 부동산 어르신은 버들이 볼 때마다 이쁘다 이쁘다 하시며 달라 하셨어. 버들이가 어딜 더 좋아할지 네가 어떻게 알아? 개는 충성심이 강해서 예뻐해 주는 사람보다 버리고 방치하더라도 주인을 더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어? 그런 주인한테 꼬리를 친다고 그저 좋기만 한 감정일 거라고 생각해?”
입이 떡 벌어졌다. 자식들과도 십 분 이상 말을 섞지 못 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다. 내가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하겠다고 했을 때도 ‘네 미래니까 네가 잘 알아서 해라.’라던 엄마다. 그런 엄마가 무심하게 밥이나 주던 개한테 이런 마음을 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엄마가 강하게 말하니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고 말았다.
“아빠가 우리 데리고 간다고 했으면 엄마는 쿨 하게 잘 살아라고 했겠네. 아빠가 우리 키우고 싶어 하는 거니까!”
“그러면 안 되냐?”
말문이 막혔다. 예상치 못한 공격적인 말투에 아주 짧은 순간 숨이 막혔다. 엄마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 않고 벌써 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말끔하게 비워진 머릿속엔 그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언니! 신입 앞에서 저한테 너무 함부로 대하지 말아 주세요.”
“무슨 말이야? 내가 어쨌다고 그래?”
“언닌 못 느끼는지 모르지만 신입한텐 안 그러면서 저한텐 막말하잖아요. 그러면 제 입장은 뭐가 돼요?”
“너야 말로 왜 그래? 요즘 너, 너무 무게 잡는 거 알고 있어?”
“그럼 신입을 언니하고 똑같이 대해요?”
“뭐?”
주말을 보내고 온 은영이가 벼르고 있은 듯 따박따박 대꾸했다. 반박할 말이 안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은영이 입장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신입보다는 편한 은영한테 이런저런 일들을 시키다 보니 그게 감정을 상하게 한 모양이었다. 신입은 오늘도 지각이었다.
가게 안쪽 모서리에 두껍게 발린 페인트가 후드득 바스라진다. 매끄러운 표면에서 툭 튀어나온 붉으죽죽한 흠집을 손끝으로 살짝 잡아당겼을 뿐인데, 매끄러웠던 부분까지 뭉텅 떨어져 버려 난 잠시 당황했다. 벽의 회색 속살이 새끼손가락만큼 드러났다. 꼭, 지금 가게 안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처럼 흉하다.
이모한테 전화가 걸려 왔다. 뼈다귀 가족의 할머니가 오늘 세상을 떠났단다. 그 말을 듣고 있는 가게 공기도 스산하다.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바닥에 바스러져 떨어진 페인트 가루를 신발 끝으로 쓱쓱, 한곳으로 몰아 두었다.
결국, 첫날부터 계속 지각인 신입한테 은영이가 한 소리 했다. 은영이를 위해서는 다음 주말을 끝으로 관두는 내가 했어야 할 말이었다. 그랬다면, 계속 남아서 일할 두 사람이 이 문제로는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됐다. 난 떠날 입장이라 조용히 나갈 생각만 했다. 서로 편한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은영이한테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줬을까. 난 은영이가 아침에 말한 자신의 입장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배려는 편하지만은 않다와 비슷한 꼴이다. 좋은 관계는 서로 배려하는 관계와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좋은 관계라는 것이 약간의 거리를 유지할 때만이 지속되는 것일까. 입안이 깔깔해졌다. 씹을수록 질겨지는 서로의 입장이라는 재료는 어떤 요리로도 소화하기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옷매무시를 다잡고 쭈뼛쭈뼛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이모가 오늘 가게에 못 온다고, 창고 선반에서 보자기에 싸 둔 상자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상주와 맞절을 끝내고 나오는 이모와 눈이 마주쳤다. 울었는지 코가 빨갰다. 이모는 죽은 할머니의, 더 오래전에 죽은 며느리와 자매처럼 친했다.
빈자리를 찾아 앉기도 전에 몇몇 사람들이 이모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아직 치우지 못한 지저분한 탁자 앞에 앉게 됐다. 누군가 먹다 남긴 음식 접시에서 이모가 떡 하나를 집어 먹었다. 인상을 찌푸리는 나를 보며 이모는 언제 울었느냐는 듯이 경쾌한 목소리로 웃었다.
“뭐 어때! 사람이 먹던 음식이야.”
식욕이 싹 달아났다. 이모는 또 떡 하나를 집어 들다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떡을 든 손을 흔들었다. 형으로 보이는 뼈다귀 남자다.
“이모, 언제 오셨어요? 식사 안 하셨죠?”
형 뼈다귀가 탁자 위에 있던 남겨진 음식과 그릇을 쓸어 담았다. 젖은 행주로 탁자를 닦고는 앞치마에서 젖은 행주를 꺼내 또 한 번 닦았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춤추는 듯한 몸놀림이었다. 이모는 형 뼈다귀 어깨를 톡톡 쓰다듬으며 다시 코끝이 붉어졌다.
“넌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제 살 빼야지.”
“네, 그래야죠.”
형 뼈다귀가 일손을 멈추고 희미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늙은 개가 찡코한테 새끼를 뺏겼을 때와 이상하게 꼭 닮았다. 이렇게 뼈다귀 가족의 얼굴을 자세히 보긴 처음이었다.
형 뼈다귀가 갈비탕을 가지러 가는 뒷모습을 보며 이모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예전엔 뼈밖에 없었는데.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이야?”
“노모가 치매 걸리기 전에는 식구들이 엄청 말랐었어. 식단 관리도 철저하게 지키고 운동도 엄청 열심히 했거든.”
“와! 그럼 어쩌다 저렇게 살이 쪘대?”
“노인네가 뭐가 그렇게 맺힌 게 많으셨던지, 치매 걸리고 완전 다른 사람이 됐잖아. 수시로 소리 지르고 던지고. 집에 있는 컵이란 컵은 죄다 던져 깨부쉈거든. 하필 막둥이가 맞아서 갈비뼈에 금이 간적이 있었어. 병을 탓할 수 없으니까 그때부터 가족이 살을 찌웠지. 그 뒤로도 계속 다른 건 다 두고 컵만 던졌어. 희한하지?”
“왜? 컵을 플라스틱으로 바꾸면 되잖아. 그리고 요양원 같은데 모시고 가도 되고!”
“플라스틱 컵으로 바꾼 적도 있었어. 그런데 가만 보니까 노인네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를 듣고 나면 한동안 기분이 좋아지더래. 또 희한하게도 며느리 살아 있을 때는 절대 안 던졌어. 참, 가족이 뭔지. 노모가 좋아하니까 아들 손자가 집에서 모시면서 참은 거지.”
나는 형 뼈다귀가 가져온 갈비탕을 억지로 먹으며 이모한테서 뼈다귀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동산에 가려면 한 정거장만 돌아가면 된다. 부동산 바로 뒤가 가정집인데다가 담장도 낮아 작은 마당이 훤히 보였다. 엄마랑 몇 번 놀러 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대로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엄마를 탓하면서도 속으론 버들이의 안부가 크게 궁금하지 않았던 거다. 그 난리를 치고도 하루 만에 버들이를 잊은 거다. 처음 아빠는 분명 기간을 알 수 없지만 잠깐 맡아 두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임시 보호라서 깊은 애정을 주지 않으려 했다. 물론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주인이 아빠가 자주 드나들던 고향 여동생이라는 걸 알고 나서 버들이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됐다. 우리 집에 오기 전부터 알아선지 유독 아빠를 따르는 버들이를 시기했었다. 그러다 우리가 같이 버려졌을 때 내가 꼭 버들이가 된 것 같아서 보는 게 괴로웠다. 그렇게 천천히 마음이 멀어지는 사이에 이제 몸까지 멀어져 버렸다. 그러다 대문을 들어서면 순간, 버들이는 옛 추억처럼 잠시 되살아났다.
“이제 오니?”
엄마가 빈 버들이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빈 개집 앞에서 뭐 해?”
“그냥. 버들이가 새끼들한테 빈 젖 물리고 있던 게 생각나서. 들어가자.”
엄마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앞장서 들어간다. 같이 질질 끌려가는 엄마 그림자가 꼭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한테 주려고 만든 용돈 통부를 꺼내려다가 주춤했다.
문득, 혼자 빈집을 지키고 있을 엄마는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한 울타리 안에서 자고 깨는 식구인데도 남들보다 서로를 더 모르는 관계. 이제껏 내가 엄마의 앙상한 뼈다귀 같은 그림자만 핥으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야말로 정말 뼈다귀 가족이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도 같았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노크도 없이 안방 문을 벌컥 열었다. 엄마가 앞머리에서 실핀을 뽑다 화들짝 뒤돌아본다. 나는 점프하다시피 방으로 들어가 이불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엄마는 평소답지 않은 딸의 행동에 조금 당황한 눈치다.
“엄마, 이모한테 뼈다귀 가족이야기 들었어?”
“잘 밤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난 은근슬쩍 엄마 손을 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엄마 손은 생각보다 더 마르고 더 거칠었다.
“여기에 빨리 누워 봐. 이거 실환데 내가 이야기해 줄게.”
나는 재빨리 바닥에 드러누우며 엄마가 들어올 이불 한쪽을 잡아 들었다. 엄마는 어색한 얼굴로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나와 나란히 누웠다. 나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귀찮은 척하며 이야기를 기다리는 엄마한테 나는 뼈다귀 가족에 관한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표정에 따라 이야기를 제멋대로 줄였다가 부풀리기도 했다. 엄마는 중간에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진짜냐고 물었다.
“좀 다를 수도 있지. 기사 쓰는 것도 아닌데. 따지지 좀 마!”
내가 뻔뻔하게 버팅기자 엄마는 어이없어하다 웃었다. 그러다 조금은 잠긴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물었다.
“그렇게 살아도 행복한 기분이 들까?”
나도 궁금해졌다. 그 뼈다귀 가족은 정말 행복한 걸까? 자주 불행해도 가끔 커다란 행복감을 느끼면 그걸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오늘 저녁이 나처럼 엄마한테도 약간은 행복한 시간이었을까? 정말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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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3-11-10
태몽 찾으러 왔어요 변선아 1. 태몽 때문이야 “4교시는 체육이니까, 수업 종 울리면 축구 골대 앞에 모여 있어요.” “네.” 3학년 1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성운이는 힐끔 선생님을 봤지요. 성운이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이 활짝 웃었어요. 교실에 남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요. ‘야호!’ 그제야 성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어요. 마음은 쌩하고 운동장으로 달려나갔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죠. 성운이는 소아 천식을 앓고 있어요. 절대로 뛰면 안 돼요. 엄마는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성운이가 뛰지 않도록 부탁해요. 운동장에서 하는 수업이 있을 때는 성운이 혼자 교실에 남아 책을 읽게 해달라고 해요. 그래서 몸을 크게 움직이는 활동이 있는 수업에는 미리 선생님이 말했어요. “성운이는 교실에 남아 있을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도 좋아.” 이뿐인가요? 급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도 먹지 못해요. 천식에 좋지 않으니까요. 의사 선생님은 가끔씩 한두 번 먹는 건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는 ‘절대 금지’라고 했어요. 어쨌든 지금, 선생님이 그냥 웃기만 했잖아요? 체육 수업에 참여해도 좋다는 말일 거예요. 그동안 교실에 혼자 남아서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오늘은 친구들하고 같이 운동할 거예요. 조심히 달리면 괜찮겠죠? 성운이에게 소원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맘껏 뛰어보는 거예요. 쉬는 시간에 잡기 놀이도 하고 축구도 하고 싶어요.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축구 골대 앞에 모였어요. 물론 성운이도 당당하게 서 있었죠. 곧 선생님이 와서 말했어요. “오늘은 축구를 할 거예요. 성운이는 벤치에 앉아 있을까?” “네? 저도 축구 할 건데요?” 성운이가 실망하며 말했어요. “안 돼. 성운이는 뛰면 안 되니까 친구들 수업하는 걸 지켜보자.” “휴.” 그럼 그렇지요. 성운이는 긴 한숨과 함께 어깨를 축 떨어뜨리며 벤치로 갔어요. “살살이 공성운, 넌 앉아서 공 차는 거나 구경해.” 민찬이가 성운이 뒤에 대고 소리치고는 혀를 쑥 내밀었어요. 성운이는 민찬이가 얄미웠지요. 민찬이는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어요. ‘살살이’란 별명도 민찬이가 지어준 거예요. 천식 때문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니는 걸 놀리는 거죠. 민찬이와 아이들이 공을 굴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녀요. 그 모습을 보는 성운이 마음은 소금에 절인 배추 같아요. ‘나도 뛰고 싶다.’ 생각할수록 속상했어요. 왜 자기만 천식이 있어서 뛰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었죠. 지루했던 체육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에요.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면서 밥을 많이 먹었어요.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성운이는
- 관리자
- 2023-11-10
어떤 겨울밤 김미혜 눈보라가 휘이잉 몰아치는 밤, 하얀 옷을 입은 눈 아이가 어깨에 소복 쌓인 눈을 털며 들어왔어. 가늘고 새하얀 손을 비비며 추워라, 추워라, 달달 떨었어. 이리 와 불을 쬐렴. 할아버지가 난로에 불을 켰어. 눈 아이 손이 흐물흐물 녹고 발목도 녹고 종아리도 녹았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데 아, 따스해라, 따스해라 입은 녹지 않았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를 내오던 할아버지는 그만 얼어 버렸어. 쨍그랑 찻잔이 깨져 버렸어. 할아버지는 얼른 난롯불을 껐어. 웃을락 말락 철창에서 빠져나온 흰둥이 요리 폴짝 조리 폴짝 배롱나무 뒤로 갈락 말락 잡힐락 말락 마당 밖으로 발을 디딜락 말락 숟가락 내던지며 달려 나와 저놈 좀 잡아라, 할아버지가 소리치면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한테 오지 마, 제발, 제발, 흰둥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가, 멀리 가 어둑어둑 붉어지는 논둑을 가로질러 갑니다 흰둥이가 멀어집니다 개와 늑대 사이를 달립니다 울락 말락 웃을락 말락 밤이 옵니다 족제비 일기 기름진 고기 냄새가 닭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막아요. 삼겹살 한 점이 끌어당겨요. 철커덕 철창문이 닫혀요. 오르락내리락 두리번두리번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어요. 힘이 풀려요. 잠잠해지기로 해요. 가만히 기다리면 비상구가 나타날 거예요. 어쩌나, 날이 밝아 오는데 아무 데도 뚫리지 않아요. 닭장 문이 열려요. 할아버지가 덫 안에 든 나를 안아요. 바르르 떨고 있는 나를 자동차에 태워요. 망할 놈의 족제비, 다시 잡히면 안 놔 준다, 욕하며 겁주며 구박하며 풀어 주러 간대요. 잡히기만 해 봐라, 닭이 죽어 나갈 때마다 잡히기만 해 봐라 잔뜩 벼르더니, 구불구불 강 건너 멀리 놓아 주러 간대요. 큼큼, 냄새를 맡아요. 메모를 해 둬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서는 안 되거든요. 여우양말꽃이 피었습니다 여우 양말을 알록달록 걸어 놓았으니 여우가 오겠지요? 오늘 밤에는 분홍 양말 흰 양말 맘에 드는 양말 골라 신고 발소리 숨기고 신나게 놀다 가겠지요? 양말이 시들기 전에 오겠지요? 우리 집 꽃밭에는 여우양말꽃이 여러 켤레 활짝 피었답니다 민들레 걱정 민들레를 피하려다 개똥을 밟았다 “야, 개똥을 왜 밟아?” “그럼 민들레를 밟아요?” 시 선생님이랑 꽃 보러 가면 내가 아닌 것 같다 개꿈 어둠 속에 툭 던져 놓고 쌔앵 달아나는 자동차를 쫓아가요 “멈춰요! 잊은 게 있어요!” 달려가던 자동차가 지쳐 헉헉거려요 이때다, 가속페달을 밟아요 두 발로 서서 앞을 가로막아요 창문 너머로 뺨을 핥으며 인사해요 “그냥 헤어지는 게 어디 있어요.” 나는 꼬리를 흔들며 보내 줘요 “안녕!” 앗, 이건 꿈이야 깨면 안 돼 나는 꿈속에서도 꿈꾸고 있다는 걸 알아요 어서 자, 계속 자 번개처럼 꿈속으로 돌아가야 해요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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