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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절

  • 작성일 2024-10-22

   아름다운 시절

이용옥

    

   마른 나뭇가지 사이를 서성이는 바람에 훈기가 묻어있다. 나는 얇은 외투에 벙거지 하나 쓰고 집을 나선다. 익숙한 곳은 익숙해서 반갑고 낯선 곳은 낯설어서 새로운 우리 동네 여행. 신발 끈만 묶고 나서서 찾아가는 고샅고샅이 정겹다. 

   양재천을 따라 내려간다. 작년에 누군가가 천변의 나무들을 다 베어버렸지만 그래도 갯버들 군락지에 새 가지 하나쯤 돋아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무작정 찾아가는 길이다. 먼발치서 보니 물가에 희부연 뭔가가 보인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다가갈수록 분명한 모습. 가지마다 조로롱 달려있는 회백색 털꼬리들, 버들강아지다. 말라버린 나무둥치 사이로 자라난 새 가지들이 제법 어우러져 탐스런 버들강아지를 피워내고 있다.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가지를 낸 여린 식물의 의지와 눈 위 바람에도 지지 않고 때를 맞춰 피어난 봉오리가 대견하다. 나는 중얼거리며 휴대폰 카메라로 버들강아지를 찍는다.

   “와, 버들강아지가 피었네요.”   

   돌아보니 젊은 아기 엄마가 다가온다. 2인용 유모차에 아기를 둘이나 태운 채. 나는 그들이 버들강아지를 잘 볼 수 있도록 얼른 자리를 비켜준다. 엄마의 탄성에 아이들도 한껏 호기심 어린 표정이다. 

   “아가들도 나들이를 나왔구나!”

 괜스레 웃음이 나오고 목소리는 높아진다. 언제부턴가 아기들만 보면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기엄마도 유모차를 세우고 휴대폰을 꺼내 든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사랑스럽다. 앞에 앉은 사내아이가 내려달라고 버둥거리자 엄마는 아이들을 내려놓는다. 사내아이는 발이 땅에 닿자마자 길을 따라 내달리고 누나는 버들강아지가 있는 천변 쪽으로 다가선다.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두 아이에 엄마는 순간 당황한다. 나는 작은 아이가 달려가는 쪽으로 따라가며 아기엄마에게 안심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만 두 돌이나 지났을까. 뒤뚱거리며 내달리는 녀석이 인형처럼 앙증맞다. 긴 겨울 동안 얼마나 자유롭게 달리고 싶었을까. 뒷걸음질하고 있을 겨울도 녀석을 보며 싱긋 웃음을 지을 것 같다. 아이가 발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본다. 웬 낯선 사람이 따라오나 하는 표정이다. 최대로 인자한 미소를 지었더니 나 한 번, 멀어진 제 엄마 한 번 바라보고는 가던 길로 다시 달린다. 따라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듯 신이 난 나는 녀석 뒤를 졸졸 따라간다. 

   아이를 저만큼 기르는 동안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래전, 짧은 육아 휴가를 마치고 복직한 후의 나날은 정말로 힘들었다. 밤낮이 바뀐 아기는 낮에 잠을 잤고 밤이면 놀아달라고 칭얼거렸다. 밤새 실랑하느라 비몽사몽인 나와 달리 날이 밝으면 잠에 드는 딸은 천연덕스럽도록 평온했다. 근 준비를 한 후,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우유를 먹인 다음 딸을 업고 현관문을 나서면 딸은 내 등에 ‘꼴깍’ 하고 우유를 토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아기 옷을 갈아입히고 속속들이 내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런 후 아기를 맡기고 출근하면 지각은 따 놓은 당상이었고 종일토록 정신이 멍했다. 퇴근과 동시에 허덕거리며 딸을 찾아와서는 씻기고 먹이고 밤새 놀아주고···. 한시도 쉴 수 없는 고달픈 시간이었다. 

   둘째로 아들이 태어나고는 육아휴직을 해서 출근 걱정은 덜었었다. 하지만 어린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은 서너 배의 힘을 필요로 했다. 아들은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잘 아팠다. 밤새 뜬눈으로 새우며 아픈 아이를 돌보고 나면 기진맥진해 딸의 요구를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활동적인 딸은 밖에 나가 놀고 싶어 했고 아들은 주로 집에서 돌봐야 했다. 아들을 재우고 딸과 함께 밖에 나가면 아들이 깨어 울까 걱정이었고, 딸을 혼자 내보내면 위험할까 마음이 안 놓였다. 다행히 딸은 아래층 친구를 사귀어 놀았는데 동생만 재우면 용케 시간을 맞춰 초인종을 눌렀다. 간신히 잠든 작은 아이는 놀라 깨었고 그때부턴 칭얼대는 아들을 업고 딸과 딸의 친구까지 돌봐야 했다. 

   젊은 날, 아이들은 내게 맡겨진 가장 막중한 책임이자 의무였다. 두 아이에게 온 힘을 쏟아부어도 부족하기만 했고, 열심히 하고 있는 데도 제대로 못 해주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성장발육이 늦지 않을까 노심초사했고, 잘 길러야 한다는 강박감에 빠져 허우적댔다. 지나고 보니 아이들은 내가 동동거린 것과 관계없이 스스로 자라났고, 원하는 대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격려만 해줬으면 되었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억지로 만들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되어가도록 기다리는 것이 아이도 부모도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뒤늦게야 한다.

   앞서가던 아이가 획 돌아서더니 제 엄마 쪽을 가리키며 “엄마, 엄마.” 한다. 녀석의 손짓을 따라 돌아보니 아이 엄마가 빠르게 걸어오고 있다. 녀석은 내게 “엄마 가.” 하더니 제 엄마를 향해 달려간다. 큰아이 손을 잡은 채 빈 유모차를 끌고 오던 아이 엄마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품을 벌려 달려간 아이를 끌어안는다.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는 순간, 내가 녀석을 안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가슴 속이 저릿하고 온몸에 뭔가 가득 찬 느낌.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다면, 어린 것들의 체온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알 수 없을 신비한 무엇, 그것이 빠르게 가슴 속을 지나간다. 진짜로 녀석을 한번안아보고 싶지만 차마 그러자는 말은 하지 못한다. 

   “애기 엄마는 참 행복하겠어요.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둘씩이나 있으니.”

   아기를 지켜봐 줘 고맙다는 아이 엄마에게 그럴 수 있어 내가 더 고맙다고, 살아보니 아이들 키우는 일만큼 귀한 일은 없더라고 쓸데없는 말까지 주절거린다. 아기 엄마는 7월까지 육아휴직인데 그 이후가 걱정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돌봐줄 시설이나 기관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기들이 태어나지 않아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라는데 저 귀한 녀석들이 무럭무럭 안심하고 자랄 터전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은 유모차에 타고 가고, 나는 돌아서 왔던 길을 향한다. 충분히 사랑땜을 하지 못한 버들강아지를 다시 보기 위해서다. 아이만큼 사랑스러운 버들강아지일까, 버들강아지만큼 사랑스런 아이일까. 오동통한 버들강아지들이 방금 헤어진 아이처럼 사랑스럽다. 어린왕자가 밀밭을 보면 여우를 생각하듯 이제부터 나는 버들강아지를 보면 저 아이를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쓰다듬듯 나뭇가지에 조로롱 매달린 버들강아지들을 쓰다듬는다. 갯버들은 잘린 나무 둥치에서도 줄기를 내 마침내 이렇게 예쁜 버들강아지를 피워냈다.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생명을 창조해 낸 갯버들의 집념이 대단하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이 쉽기만 하다면 어떻게 위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도 제일 힘들고 고달팠던 그때, 아이들을 낳고 기르던 시절이었다. 나는 두 팔을 겹쳐서 나를 끌어안고 토닥여 본다. 그대에게도 위대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 시절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라고. 나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나직이 속삭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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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옥
  •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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