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물었다
- 작성일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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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물었다
이용옥
아들이 물었다.
"제가 악입니까?"
악이라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귀한 아들이 악이라니! 놀란 어미에게 아들은 강화길의 소설 <음복>을 읽었다면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주변 여인들에게 해악을 끼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로서 자신이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행한 적 없는 폭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물은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난 쉽게 '아니'라고 답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남자이자 내 귀한 아들은 대한민국의 여자이자 내 사랑스런 딸에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음복>은 주인공인 ‘나’가 시댁 식구들 사이의 갈등 구도를 들여다보며 가정 권력의 역학관계를 파헤친 소설이다. 시할아버지 제사에 처음 참석한 ‘나’는 제사상에서 ‘토마토가 올라간 소고기 찜’이라는 낯선 음식을 발견한다. 시할아버지가 생전에 즐기던 음식이자 아들(나의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상에 올린다는 시어머니의 설명에 나는 의아해한다. 또한 나에게 배려 깊은 시어머니와 달리 시고모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에 의문을 갖는다. 제사상 위 낯선 음식의 실체와 원인 모를 시고모의 적의를 추적하던 나는 치매를 앓는 시할머니의 입을 통해 모든 의문을 푼다.
"정원이 재수시키지 마라. 주제를 알아야지. 지가 무슨 약대를 간다고."
정원이는 시할머니의 외손녀이자 시고모의 딸이다. 치매를 앓는 상황에서도 시할머니는 외손녀가 친손자보다 더 나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토마토소고기 찜이 제사상에 올라가는 이유도, 아내에게 향하는 고모의 질투 원인도 알지 못하는 ‘나의 남편’은 그 집안 모든 여자들이 아는 유쾌하지 않은 진실들을 모르는 채 해맑은 얼굴로 갈등 없이 살아왔다. 남편은 그저 ‘모르는 권력’을 쥔 사람으로서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존재, 가정 내의 특권층이었던 것이다.
친정집은 1년에 여덟 번 기제사를 지냈다. 제사 때마다 여자들은 진종일 음식을 장만했고, 잿밥을 지어 상을 차렸다. 이상하게도 겨울 제사가 많았는데, 북풍한설 매서운 날 한밤중에 불 때서 밥 짓고 제상을 차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제사를 마치면 보통 새벽 한 시가 넘었고, 음복까지 하면 두세 시가 되는 것은 예사였다. 대청에서 제사를 마친 남자들은 따뜻한 방안으로 옮겨 앉아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자기들이 차린 제상에 절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여자들은 불기 걷혀가는 부엌에서 제꾼들 뒷수발을 들어야 했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남녀불평등의 기원이었다.
친정집의 불행은 큰오빠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서 시작되었다. 첫 손녀를 애지중지하던 아버지가 둘째까지 딸을 낳자 상심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태어난 손녀에겐 반갑지 않은 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급기야는 작은 오빠가 낳은 아들을 큰오빠 양자로 들여 조상을 모시겠다는 의사까지 표하셨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시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새언니는 집안에서 멀어졌고,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큰며느리로 인해 대들보가 무너졌다고 하소연하셨다 여자의 지위가 아들이라는 남자로 인해 견고해지거나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도 나는 그때 알았다.
가족 내에서 맞닥뜨리는 남녀 차별의 문제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성에게는 막힌 교육 기회 형제자매를 위해 강요된 여성의 희생, 재산 상속상의 기회 박탈 등의 일반적인 문제에서부터, 외면당하는 여성의 지위와 권리, 심리적인 문제까지. 그것에 대한 고발과 되새김을 위한 것이라면 강화길의 <음복>은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소설에서 가정 내 남성 권력을 만들고 유지하게 하는 조력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낸다. 누구일까.
어머니는 어린 내게 수시로 일렀다. “남자들 먼저”, “오빠들 하고 난 후에”라고. 유교적인 풍토에서 나보다 오빠들이 먼저라는 데에는 의문을 갖지 않았지만 언니마저 남동생들의 후순위가 된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었다. 넷째 오빠든 막내 오빠든 그 불합리한 상황에서 “왜 우리가 누나보다 먼저여야 하나요?”라는 물음을 던진 적이 없다는 사실 역시 이해하기 힘든 점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들이 누나를 제쳤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음복> 속의 ‘내 남편’처럼 그들은 그 불편한 사실들은 몰라도 되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물을 필요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권력이 주어졌으니 누렸을 뿐, 그들에겐 죄가 없다. 그 모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자인 어머니가 만든 상황이었으니까. 어머니는 든든한 아들들에게 많은 기회를 몰아주면서 그 아들들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내 아들은 물었다!
이제 나는 대답해야 할까.
“그렇다, 아들아. 너는 어미의 비호 아래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네 누나보다 ‘먼저’ 많은 것들을 누려왔고, 의도하지 않으면서도 네 누나에게 상처를 줬다.”라고 말해야 할까. “파란 옷 파란 이불을 사놓고 손자를 기다리던 네 할머니께, 첫딸을 안겨드렸던 미안함을 네가 태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잊을 수 있었다.”라고 숨겼던 진심을 고백해야 할까. 그리고는 마침내 “내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위 어머니들로부터 전수받아왔던 불평등한 역사를 깨려 하니, 남자인 너는 이제 모든 여자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줄을 서고 순서를 받고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선언이라도 해야 할까.
질문은 두렵고 대답은 아프다. 돌아보니 불평등한 역사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느새 그 역사의 가해자가 되어있고, 내가 어미가 된 이 집안은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친정집의 축소판이 되어가고 있다.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아들 먼저라는 의식으로 아들 중심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잘라내야 한다. 손아귀의 힘을 기르고 가위의 날을 벼려 이 불편한 역사를 내 손으로 잘라야 한다. 아들의 질문이 잊히기 전에, 내 딸과 아직은 누구인지 모를 미래의 내 며느리가 그 이상한 시간들을 알아버리기 전에.
진짜 가해자는 네가 아닌 나라고. 이 어미가 달라져야 세상이 달라지는 거라고. 이제는 힘주어 말할 시간이 되었음을 나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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