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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땅 사 준 여자

  • 작성일 2024-11-04

   나무에게 땅 사 준 여자

이혜숙


   마당을 제 집 삼아 사는 길고양이가 여덟 마리나 된다. 현관 앞에서 밥 줄 때만 기다리거나, 잔디밭을 축구장 삼아 뛰어노는 것밖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녀석들이다. 가끔 늘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면 한마디 한다. 신체 건강한 놈들이 놀고먹기만 하냐는 잔소리가 그것이다. 

   녀석들이 알아듣기라도 한 듯 하루 종일 안 보일 때가 있다. 녀석들이 무위도식하는 걸 보이지 않으려고 공사다망한 척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기껏 멀리 갔다는 것이 주차장 위란다. 그곳은 남편이 목공 작업을 하는 장소인데, 지붕이 있어서 비 맞을 일이 없으니 고양이들이 잔소리와 비아냥을 피해서 몇 걸음 옮긴 것에 불과했다.

   남편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바로 튀어나온 말, 

   “얼씨구. 지난봄에 데크 깔더니 고양이 좋은 일 했구려.”

   길에서 훤히 보이는 곳이라 작업장밖엔 쓸 일이 없는 공간에 돈을 들인 게 못마땅해서 나온 소리였다. 남편은 오월 황금연휴 동안 방부목을 사들인다, 오일페인트를 칠한다 하면서 혼자 공사를 마쳤다. 공사를 밀어붙인 이유가 나중에 집 팔 때를 대비한 속셈임을 알기 때문에, 그가 일하는 내내 부루퉁했다. 나로선 집을 팔 생각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우리 손으로 지은 집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인지 남편은 알지 못한다.

   20년 전, 오랜 전세 생활을 접고 아파트를 사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친구가 그 금액이면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게 어떠냐고 했다. 집 짓는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면서도 친구 말에 솔깃해서 주말에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로 나섰다. 

   때는 봄, 연두색 붓질이 지나간 어디라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백화점에서 아이쇼핑하는 티를 안 내려고 살 것도 아니면서 걸쳐 보는 진상 손님처럼 몇 군데 전원주택 단지를 돌아보며 땅값을 알아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연히 들른 동네에서 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꽃구름을 이고 있는 벚나무가 몇 그루 있는 땅을 보곤 그만 눈이 멀고 말았다. 

   ‘이곳에 집을 지으면 주목도 옮겨 심겠네.’

   그 순간 아파트 16층 베란다에서 노랗게 말라 가고 있는 주목이 생각났다. 지난가을 엉겁결에 주워 온 나무였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서 용인으로 이사를 할 때 전세로 구한 집은 마당이 넓은 시골집이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열 그루도 넘었고, 단풍나무, 감나무, 주목도 있었다. 텃밭과 앞마당이 넓어서 그때도 한눈에 반해 이사를 했다. 서까래에 6·25 전쟁 때 총 맞은 자리가 남아 있는 구옥이었지만, 유치원생 딸과 돌 지난 아들이 흙을 밟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조건은 완벽했다. 그 집에서 산 것은 일 년 남짓. 몇 년 동안 지방 발령으로 이사를 했다가 다시 그 동네로 돌아와서 가까운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지나다 보니 그 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여기저기 나무들이 뽑혀 있는 것이 보였다. 땅을 분할해서 경매했다더니 마당을 정리하는가 싶었다. 그때 한구석에 주목이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버리는 나무라는 생각에 앞뒤 잴 것도 없이 남편을 부추겨 차에 실었다. 가져와 보니 작은 나무가 아니었다. 큰 화분에 구겨 넣다시피 심고 거실 창문 앞에 두었다. 

   뒤늦게 값비싼 주목이라 따로 옮길 생각으로 파놓은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길 가다 끈 하나 떨어져 주워 왔는데 황소가 따라 들어왔다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황소를 통째 집어 온 셈이니. 큰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 후로는 문이 닫혀 있어서 제자리에 갖다 놓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후회는 오래가지 않았다. 후회 대신 세뇌를 택했다. 

   ‘버린 나무였을 거야···. 다른 나무도 포클레인으로 찍어서 던져 놓았던데···. 그냥 두었으면 묻어 버렸을지도 몰라. 우리가 죽음 직전에 구해 준 거라고.’

   나무는 옆으로 잘 퍼져서 그늘이 넓었다. 우리는 저녁이면 나무 밑에 술상을 차렸다. 나무 아래 앉으면 커다란 우산 아래 든 것처럼 아늑했다. 몇 년 만에 나무와 재회한 것을 자축하며 잔을 부딪쳤다. 어쩌다 때맞춰 그곳을 지나갔는지, 이 나무가 한눈에 들어왔는지 생각할수록 인연이라고, 우리끼리 기뻐하고 나무에게도 말을 건넸다.

   봄이 되어 주목을 베란다로 옮겼는데, 바람과 햇볕이 잘 들어오고 물을 잘 주어도 점점 생기를 잃어 갔다. 좁은 화분에서 뿌리를 뻗지 못하니 잎이 마르기 시작했다. 베란다에서는 이슬도 비도 눈도 맞지 못하고 바람도 가지 한 번 쓰다듬지 못하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이사 가려는 아파트는 평수가 작아서 나무를 가져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더욱이 나무에게 못 할 짓을 한 게 아닐까.

   결국 이틀 후에 하기로 한 계약을 깨고, 생각지도 않은 땅을 사게 된 것이다. 생애 최고의 절도가 나무하고의 끊을 수 없는 인연에서 빚어졌던 것일까.

   지금 마당에 뿌리 내린 나무는 잘 자라고 있다. 벚나무 곁에서 꽃비를 맞으며 가지를 뻗고 잎을 피운다. 천년 주목의 발치라 그런지 할미꽃도 더 허리를 굽힌다. 새가 촘촘해진 잎 사이로 들어가 가지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   

   “나, 너에게 땅 사 준 여자야!”

   나무에게 큰소리를 쳐 본다. 그런다고 나를 향해 가지 한 번 흔들어 주는 법이 없다. 새끼 고양이에게는 부챗살처럼 잘 뻗은 가지를 캣 타워로 내주면서. 

   “고양이가 놀 수 있는 데크도 만들어 주고, 어때? 나 통 크지?”

   호스로 물을 뿌려 주면서 한 번 더 생색을 내 본다. 그러자 주목이 잎을 반짝인다. 반짝이는 잎들이 자음, 모음을 만들더니 이렇게 대꾸한다.

   “잘 생각해 봐라. 누가 누구에게 땅을 준 건지.”

   그렇구나. 주목 때문에 땅을 산 게 아니라 덕분에 산 것이었구나. 

   내게 이슬과 비, 눈, 바람, 햇살을 더 가깝게 끌어다 준 나무, 잔디를 밟게 해 주고 새 소리를 듣게 해 주고 더 넓은 하늘을 보게 해 준 나무. 주목이 신령스러운 나무임이 틀림없다. 오래전에 한집에 살면서 아침저녁 눈 마주쳤던 것을 기억하여 내 앞에 나타난 것을 보면. 주목 덕분에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아무렴, 백 년 살기도 어려운 사람이 천 년을 사는 나무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남아 있을 주목은 곁에 있는 나무에게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옛날에 재미있는 여자가 있었지. 인연을 말하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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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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