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
- 작성일 2024-11-04
- 댓글수 7
어머니의 손
조원희
승전보를 알리는 아군의 깃발 같다. 고통도 잊어버린 손가락 끝마다 허연 반창고가 붙었다. 물밀 듯이 밀려온 고난과 시련도 모성애의 힘으로 거뜬하게 물리친다. 적군의 성벽 위에 필사적으로 오르는 아군의 함성처럼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감동의 소용돌이. 곱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너무도 곱고 아름다운 손이다.
볼수록 민망하고 안쓰럽다. 크고 두툼한 손이 손가락마저 굵다. 손등과 손바닥 살결이 오랜 가뭄에 지친 논바닥처럼 갈라져 노송(老松)의 껍질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랑을 만든 손가락 끝마다 피가 새어 나온다.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허연 반창고로 갈라져 피가 새어 나오는 손가락 끝을 대충 땜질하고는 생활 전선을 종횡무진 누빈다. 마치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부러뜨리고 비장한 각오로 적진으로 달려가는 용감한 장수를 보는 듯하다.
갈퀴 같은 손이 장사(壯士)의 힘을 지녔다. 열 개의 손가락이 소나무 뿌리같이 꿈틀거린다. 치열하게 살아온 손임을 누구라도 알아채겠다. 분투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한 뼘의 손에 모였다. 감출 수도 없는 손. 도저히 여자의 손이라고 할 수 없는 투박하고 큼직한 손은 막일꾼 장정의 손보다 억세다. 희고 고와야 할 손은 아니더라도 부드럽게 가꾸어야 하는 게 여자의 손이건만 그런 손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어머니는 가난한 어부의 아내였다. 가난한 살림에 자식은 약을 올리듯 늘어났다. 아버지가 생선을 잡아 오면 어머니는 동네 아낙 서넛과 함께 생선을 머리에 이고 새벽이든 밤중이든 가리지 않고 팔러 나갔다. 생선을 빨리 팔아야 했기에 세상을 밝음과 어둠으로 나눌 겨를이 없었다. 버스와 시계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가난한 시골에는 버스도 시계를 가진 자도 드물었다.
어머니는 먼 길을 걸어 걸어서, 고을고을 집집마다 다니며 생선을 팔았다. 나는 언제나 버릇처럼 해가 중천을 넘어서면 마을 어귀로 어머니 마중을 나갔다. 그곳에서 어머니가 올 때까지 죽치고 기다렸다. 어둠살이 내려도 개의치 않았다. 여섯 살 터울 여동생을 등에 업고 생선을 보리쌀로 바꾸어 이고 올 어머니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여동생은 내 등에 오줌을 싸고도 따개비처럼 찰싹 붙어서 꼼짝을 안 했다. 뜨뜻한 오줌이 버젓이 등을 차지하면 등의 반기가 만만찮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중이 더 중요했기에 망부석이 되어 앙버티었다.
어머니가 보리쌀을 머리에 이고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기다림으로 지쳐 있던 얼굴이 제일 먼저 환호성을 질렀다. 내게 개선장군보다 더 당당하고 위대해 보였던 어머니. 어쩌면 나는 어머니보다 든든하게 내 배를 채워 줄 보리쌀을 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구수한 밥으로 부풀어진 배를 쓰다듬으면 하루의 임무를 완수한 것 같아 뿌듯했다.
가난은 모성애도 무용지물로 만든다. 그토록 자식을 지키려 애를 썼건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아홉 살 터울 큰오빠는 중학교를 끝으로 머구릿배<sup>1)</sup> 선원이 되었다. 아직은 투정 부릴 나이에 눈물을 훔치며 험난한 바다로 나가는 아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그 애끓는 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리. 여섯 살 터울 언니는 입 하나 덜고자 초등학교를 마치고 도회지에 식모살이를 갔다. 지금도 언니를 보면 죄인이 된 듯 가슴이 아리다. 철모르는 어린 딸을 엄혹한 세상 속으로 밀어 넣어야 했던 어머니의 가슴속은 시커먼 재로 쌓였을 것이다.
바로 위 세 살 터울 작은오빠는 일찌감치 큰오빠처럼 머구릿배 선원이 되었다. 그다지 공부에 취미가 없다는 이유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바다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갔다. 놀기 좋아하고 공부를 싫어하긴 했지만 거친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선원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잘살기 위해 선택한 선원의 길. 그러나 작은오빠는 아직도 가난을 떨치지 못하고 힘들게 살고 있다. 응석을 부려야 할 어린 자식들을 험지로 보내야 했던 어머니. 자식을 온전히 지키고 싶었지만 가난은 대적하기 힘든 괴물이었다.
시나브로 죽음을 들이밀며 위협하는 바다. 그 변덕스러운 성미를 달래며 사는 삶이 녹록할 리 없다. 삶이란 줄 위에서 내려오지 않으려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살았을까. 두 오빠를 볼 때마다 애처롭고 안쓰러운 마음에 늘 가슴이 저렸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조금<sup>2)</sup> 때가 되면 두 오빠가 가져온, 기름으로 범벅된 이불을 빨았다. 세탁기도 수돗물도 귀하던 시절이라 두레박으로 우물을 길어서 빨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기름으로 칠갑한 이불은 이불솜까지 모두 빨아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오르기 힘든 높고 험준한 산처럼 막막하게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기름을 뒤집어쓴 이불은 마치 명장(名將)의 위엄에 전의를 상실한 적군처럼 고분고분해졌다. 어머니의 손길에 줄줄이 줄행랑치는 기름때를 보며 내 안의 기름때가 씻어진 듯 시원했다.
작은올케가 작은오빠 곁을 떠났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풋감처럼 어린 조카 셋이 덩그러니 남았다. 어머니는 역시나 팔을 걷어붙였다. 편안한 노후를 과감히 떨쳐 버리고 치열한 삶의 현장 속을 파고들었다. 손자손녀를 지키겠다는 간절한 일념 하나로 들로 산으로 바다로 달렸다. 남동생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나 몇 마지기 밭뿐인 가난한 시골 여인에게는 사활을 건 전투였다. 그러는 와중에 왼팔이 부러져 무척 고생을 했다. 팔이 부러져도 쉴 수 없었던 바쁘고 고단한 삶. 왼팔은 기어이 어긋나게 붙고 말았다.
우리의 육체 중에 손만큼 가슴을 울리는 것이 있을까. 손에는 삶의 격랑(激浪)이 할퀸 자국이 화석처럼 남아 있다. 때로 과거의 아픈 기억을 소환하여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고 일그러진 험한 손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가슴 아픈 사연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인의 본성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건 고운 손이다. 어머니의 애달픈 손은 못난 여식의 가슴에 화인(火印)처럼 선명하게 찍혀 있다. 여인의 상징과도 같은 고운 손을 어쩔 수 없이 모진 세월에 제물로 바쳐야 했던 어머니. 그 쓰라린 삶의 격전지를 상기하면 내 가슴은 어느새 닳은 걸레처럼 너덜거린다.
손으로 삶의 파고(波高)를 가늠할 수는 없다. 따라서 손이 곱다고 해서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직업의 종류는 다양하기 때문이다. 명석한 두뇌의 활약을 필요로 하는 직업도 많고, 미소가 필요한 감정 노동자라는 직업도 있다. 그런 업종의 사람들의 손은 대체로 곱고 부드럽다.
하지만 손이 험하다는 것은 고된 시련과 분투하며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손을 본다. 그 사람의 손을 보면서 어머니의 손을 떠올려 비교해 보곤 한다. 간혹 삶의 회초리에 시달린 애처로운 손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여태껏 어머니의 손보다 거칠고 험한 여인의 손은 만나 보지 못했다. 그것이 더 큰 아픔이 되어 울컥 슬픔을 몰고 온다.
어머니의 손을 잡으면 죄스럽다. 자식으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쓰리다. 도저히 여인의 손이라고 할 수 없는, 보기에도 민망한 손이 나를 꾸짖고 있는 것 같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한 번도 매니큐어를 바른 적도 없고 바르면 더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서글픈 손. 발바닥에 박힌 가시처럼 내 마음을 찌르는 가슴 아픈 손. 삶의 희로애락이 오히려 사치였던 안타까운 손. 자식을 지키기 위해 불붙은 모성애는 꺼지지 않는 성화(聖火)처럼 숭고했다.
어머니의 손은 훌륭한 스승이다. 우리 일곱 남매는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손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달았다. 무언으로 가르치는 숭고하고 거룩한 울림. 우리가 벋나가려고 해도 벋나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큼직한 두 손이 언제나 등 뒤에서 우리가 올바르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허나 자식이란 게 참 뻔뻔한 존재다. 제 살기에만 급급하다. 보은은커녕 쉽게 잊는다. 나 또한 어머니의 손을 잡을 때면 보은을 꿈꾸지만 언제나 희망 사항에 머물러 있다. 그날이 언제쯤 다가와 먹먹해진 내 가슴을 풀어 줄 것인가. 아직도 건재한 어머니의 손이 그저 고맙다.
1) 조금 :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를 이르는 말.
2) 머구릿배 : 잠수기선(潛水機船)의 일본 말.

추천 콘텐츠
문장, 콤마 수필
한여름 밤의 결투한여름 밤의 결투 조원희 무차별 폭격이다. 숨을 데도 없다. 따가움과 가려움도 견딜 수 없는 고문이다. 몸부림치다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물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적군이 휩쓸고 간 마을처럼 참혹하다. 물린 자리가 볼록하게 부풀어 올라 울음보를 터뜨릴 것만 같다. 황급히 파리채를 집어 들었다. 모기나 벌레 해충을 잡기 위해 모기약 대신 파리채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모기를 죽이는 약이 사람에게 좋을 리 없겠다는 건강 염려증이 불러온 결과다. 모기약을 쉭쉭 뿌려 버리면 간단할 것을 파리채로 모기를 잡으려고 앉아 있으면 탁상시계의 분침은 기척도 없이 시침을 밀어낸다. 모기는 게릴라 작전의 고수다. 불을 끄면 달려들어 물고, 불을 켜면 금세 내빼고 없다. 그중 간 큰 녀석은 불을 켰는데도 윙윙거리면서 내 얼굴을 공격하며 약을 올리기도 한다. 얼마나 잽싼지 종잡을 수가 없다. 발견하고 옳거니 하면서 파리채를 휘두르면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없다. 멍하니 파리채를 들고 시간만 축내고 앉아 있으면 다시 윙윙거린다. 사자가 먹이를 낚아채듯 목표물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파리채를 휘두른다. 하지만 녀석은 미꾸라지처럼 날렵하게 피하고는 유유히 달아난다. 불을 끄고 두 손을 얌전히 올려놓았다. 기척 없이 있다가 불을 끄면 다시 나타나 분명 내 피를 공수해 갈 것이다. 그때 다른 데는 제발 물지 말고 물려거든 손등을 물라는 뜻이다. 손이나 팔다리는 괜찮은데 얼굴, 특히 눈두덩에 물리면 여간 꼴불견이 아니다. 물파스를 바르지도 못하니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등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팍, 한 녀석이 걸렸다. 따가움을 견디지 못한 신체가 무조건 반사를 신속하게 가동한 결과다. 뜻밖에 올린 쾌거다. 녀석이 나를 우습게 알고 방심한 탓이기도 하다. 거미손 파리채도 못한 일을 엉성한 손바닥이 해냈다. 몸은 해체되어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피만 벌겋게 얼룩져 방바닥을 더럽혔다. 그동안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내려친 손바닥에 힘이 실렸다. 경허 대선사의 일화가 떠오른다. 경허 대선사는 헝겊 조각으로 기운 누더기 같은 가사(袈裟)를 오랫동안 입고 입었다. 가사 안에는 빈대와 벼룩이 늘 들끓었다. 하지만 경허 대선사는 도무지 빈대와 벼룩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사에서 역한 냄새까지 났다. 수발을 들던 만공 스님이 가사를 입으신 지 한 철이 다되어 간다며 갈아입기를 청했다. 경허 대선사는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옷을 벗었다.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빈대와 벼룩이 물어뜯고 피를 빨아 먹어 난장판이었다. 온몸이 불그죽죽 단풍든 것 같았다. 만공 스님이 가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경허 대선사는 “만공, 나라고 왜 가렵지 않겠는가. 빈대와 벼룩이 내 몸의 피를 마음대로 빨아 먹을 수 있도록 참고 있는 거라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참다운 수행자가 아니겠는가.” 그 말씀을 듣고부터 만공 스님은 경허 대선사의
- 조원희
- 2024-11-04
문장, 콤마 수필
코를 지켜라코를 지켜라 조원희 하얀 탑이다. 줄줄이 끌려 나온 화장지가 휴지의 임무를 마치고 하룻밤 사이에 탑을 만들었다. 뼈대 없는 연체동물보다 더 흐물흐물하고 낙엽보다 맥없는 것도 모이면 대단한 뭔가를 도모할 줄 안다. 하얀 휴지가 쌓이고 쌓이더니 제법 단단한 탑이 되었다. 신기하여 바라보며 미소 짓다가 아뜩해짐을 느낀다. 미소 지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본다. 좁은 이마가 시선에 잡히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러자 조물주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어쩌자고 외모에 민감한 여인에게 이토록 좁은 이마를 주시어 고민에 빠지게 하는지. 시선이 눈으로 내려간다. 눈은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중간 크기에 그렇다고 밉게 보이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나의 소견이지만. 입도 나무랄 일이 아니다. 보조개가 눈을 찡긋한다. 별로 예쁘지도 않고 왼쪽 뺨 하단에 아무렇게 자리 잡긴 했지만 없는 것보다 나으니 그나마 감사하다. 시선이 코에게로 옮겨진다. 진즉부터 자존심을 곤두세우고 있는 게 신경이 쓰인다. 제 몸으로 낳은 자식도 너무 애를 먹이면 정머리가 떨어지는 법이다. 제 주제도 모르고 내 얼굴의 정중앙에 앉아서 위세를 부린다. 없으면 추녀가 되고 병신이 된다. 그러니 없으면 절대 안 된다. 그렇다고 그렇게 밉게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는 대책 없이 너무 큰 탓에 학창 시절 놀림의 대상이었다.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이 난다고 했던가. 주제도 모르고 자존심만 세우던 코. 언제나 나를 주눅 들게 했던 코는 제 끼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주 사고를 쳤다. 조물주는 어쩌자고 내 코에게 그렇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는지. 가진 것도 없으면서 마음만 넉넉해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지도 모르고 세균, 바이러스 등 온갖 불량한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낭패를 당하여 인사불성하고 있으면 사고를 수습하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내 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뒷감당을 해야 했다. 언제부터인가 코에 알레르기 비염이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나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 당연히 모른다. 분명 코가 불러들인 것일 게다. 큰 코는 터 잡고 살기 좋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것을 약삭빠른 알레르기 비염이 모를 리 없다. 어떻게 구슬렸는지 코는 내 의견도 묻지 않고 쉽게 허락해 버렸다. 기가 찰 노릇이다. 자신도 괴롭겠지만 거느리고 사는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일은 자기가 저질러 놓고 나까지 힘들게 한다. 죽을 맛이다. 알레르기 비염은 점점 세력을 넓혀 갔다. 보통 악랄한 녀석이 아니다. 받은 은혜를 순식간에 배신으로 돌려 놓는다. 내 몸이 약해지면 용케 알고 수시로 대거 공격을 한다. 은혜를 듬뿍 준 코는 물론이고 나까지 초토화해 버린다. 그러면 나는 살기 위하여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현대 의학은 물론이고 한의학, 민간 의료법 등 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한다. 그러다 보니 코는 만신창이가 되어 갔고, 내 몸도 마음도 지쳐 갔다. 그러니 은혜는 아무에게나 베풀면 안 된다. 겉만 보고는 누가 배신할지 모
- 조원희
- 2024-11-04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7건
조원희 작가의 어머니의 손은 마치 고향의 품속같아요남해 바닷가 마을 척박한 곳에서 어린자식들을 위해서 머리에 이고 떠나야했던 행상, 마치 영화를 보듯 선합니다.그 어머니와 작가의 마음이 한 결을 이루는것 같아요.너무 감동적이고 울컥한 마음을 달래며 글이 아닌 아름다운 영상을 보는듯 합니다
앙상하고 거칠고 쪼그라던 어머니의 손, 가족과 자식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위대한 손이지요. 감동적인 글입니다. 만약 지금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누군가가 돼지 목에 진주 목거리라며 조롱을 하든말든 어머니 손톱에 네일아트를 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한참 배워야 할 어린 나이에 머구릿배를 타러 간 오빠의 이야기에 동병상련의 정에 눈물이 맺히기도 합니다. 문운을 기원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옛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련이 떠오릅니다.작가님 좋은 작품 기다리겠습니다.
작가님의 심성이 참으로 곱습니다 우리네 어머니들께서는 오로지 자식 하나만을 보고 살았었지요 새삼 어린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감동입니다 어머니 살아계셔주셔서 너무나감사드립니다
댓글이 삭제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