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지켜라
- 작성일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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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지켜라
조원희
하얀 탑이다. 줄줄이 끌려 나온 화장지가 휴지의 임무를 마치고 하룻밤 사이에 탑을 만들었다. 뼈대 없는 연체동물보다 더 흐물흐물하고 낙엽보다 맥없는 것도 모이면 대단한 뭔가를 도모할 줄 안다. 하얀 휴지가 쌓이고 쌓이더니 제법 단단한 탑이 되었다. 신기하여 바라보며 미소 짓다가 아뜩해짐을 느낀다. 미소 지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본다. 좁은 이마가 시선에 잡히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러자 조물주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어쩌자고 외모에 민감한 여인에게 이토록 좁은 이마를 주시어 고민에 빠지게 하는지. 시선이 눈으로 내려간다. 눈은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중간 크기에 그렇다고 밉게 보이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나의 소견이지만. 입도 나무랄 일이 아니다. 보조개가 눈을 찡긋한다. 별로 예쁘지도 않고 왼쪽 뺨 하단에 아무렇게 자리 잡긴 했지만 없는 것보다 나으니 그나마 감사하다.
시선이 코에게로 옮겨진다. 진즉부터 자존심을 곤두세우고 있는 게 신경이 쓰인다. 제 몸으로 낳은 자식도 너무 애를 먹이면 정머리가 떨어지는 법이다. 제 주제도 모르고 내 얼굴의 정중앙에 앉아서 위세를 부린다. 없으면 추녀가 되고 병신이 된다. 그러니 없으면 절대 안 된다. 그렇다고 그렇게 밉게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는 대책 없이 너무 큰 탓에 학창 시절 놀림의 대상이었다.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이 난다고 했던가. 주제도 모르고 자존심만 세우던 코. 언제나 나를 주눅 들게 했던 코는 제 끼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주 사고를 쳤다. 조물주는 어쩌자고 내 코에게 그렇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는지. 가진 것도 없으면서 마음만 넉넉해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지도 모르고 세균, 바이러스 등 온갖 불량한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낭패를 당하여 인사불성하고 있으면 사고를 수습하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내 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뒷감당을 해야 했다.
언제부터인가 코에 알레르기 비염이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나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 당연히 모른다. 분명 코가 불러들인 것일 게다. 큰 코는 터 잡고 살기 좋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것을 약삭빠른 알레르기 비염이 모를 리 없다. 어떻게 구슬렸는지 코는 내 의견도 묻지 않고 쉽게 허락해 버렸다. 기가 찰 노릇이다. 자신도 괴롭겠지만 거느리고 사는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일은 자기가 저질러 놓고 나까지 힘들게 한다. 죽을 맛이다.
알레르기 비염은 점점 세력을 넓혀 갔다. 보통 악랄한 녀석이 아니다. 받은 은혜를 순식간에 배신으로 돌려 놓는다. 내 몸이 약해지면 용케 알고 수시로 대거 공격을 한다. 은혜를 듬뿍 준 코는 물론이고 나까지 초토화해 버린다. 그러면 나는 살기 위하여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현대 의학은 물론이고 한의학, 민간 의료법 등 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한다. 그러다 보니 코는 만신창이가 되어 갔고, 내 몸도 마음도 지쳐 갔다. 그러니 은혜는 아무에게나 베풀면 안 된다.
겉만 보고는 누가 배신할지 모른다. 은혜로 돌려줄지 배신할지를 안다면 삶이 얼마나 수월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가 미래를 모르듯이 상대의 마음속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이 늘 당하고 나서 가슴을 치며 후회한다. 그러다가 눈물 툭툭 털고 일어나 비틀거리는 몸으로 숙제를 하듯 주어진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진흙탕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삶이 힘들어도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비염은 흔한 병이다. 전 세계 인구의 5~20%가 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환경 오염, 공해의 증가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알레르기 비염은 어떤 물질에 대하여 코의 속살이 과민 반응을 하여 일으켜 일어나는 증상이다. 발작적이고 반복적인 재채기, 콧물, 코 막힘, 코 가려움증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나에게 알레르기 비염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은 낮은 체온과 공해, 먼지이다. 밖의 상황에 변화가 있으면 기가 막히게 안다. 즉각 반응을 하고는 괴롭다고 소란을 피운다. 알레르기 비염 증상 중 하나인 콧물 증상은 사람을 참 난처하게 만든다. 특히 식당이나 커피숍 등 음식물을 대하는 자리에서는 기겁할 정도이다. 화장지로 콧물 닦는 모습은 불결하기 짝이 없다. 그것을 알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느라 곤욕을 치른다.
코 막힘은 또 어떤가. 사람은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 숨을 쉬는 것은 코와 입이 담당한다. 그러나 입은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코가 막히면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렵다. 겪어 보면 알겠지만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은 코로 숨을 쉬는 것보다 영 못하다. 아니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스트레스가 분수처럼 솟는다. 잠자려고 할 때 코가 막히면 수면 중에 숨이 막혀 저승길로 직행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따라서 코가 막히면 생명과 직결되기에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코가 우뚝하면 보기 좋다. 한때 큰 코 덕에 사랑 고백도 받아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양인처럼 우뚝 솟은 큰 코가 알레르기 비염에 오랫동안 시달리다 보니 주먹코가 되고 말았다.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치료차 들른 유명한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께서 묻지도 않았는데 가르쳐 주었다. 여자의 코치고 너무 큰 코인 데다가 펑퍼짐하게 퍼져 주먹코가 되어 있으니 나름 짐작이 갔던 모양이다. 남들은 ‘복코’라며 안심시켜 주었지만 조물주의 배려를 무용지물로 만든 알레르기 비염은 나에게 혹 같은 존재이다.
어쨌든 내 코를 너무 크게 만든 것은 조물주의 실수이다. 조물주는 내 코를 만들면서 알레르기 비염이 살기 좋은 안성맞춤 터라는 것을 몰랐을까. 아니면 삶이 너무 편하면 교만과 나태에 쉽게 젖어들어 안하무인의 덫에 빠질 것이 염려되어서일까. 병에 내용물이 어느 정도 들어 있어야 쉽게 넘어지지 않듯이 사람의 등짐도 그러하다 여겼을까. 그러나 나는 조물주의 생각이 그러하든 말든 거머리 같은 알레르기 비염을 하루빨리 떼어 내고 싶은 마음만 간절할 뿐이다.
안 되겠다. 맞불 작전이다. 알레르기 비염을 이대로 두고만 볼 수가 없다. 병원에 가서 지져 버려야겠다.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통받던 은사님도 병원에 가서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고 하지 않던가. 레이저로 지져 버리면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재발이다. 그래서 은사님도 세 번이나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재발하면 지지고, 재발하면 지지고···. 까짓것 재발하긴 해도 그동안의 삶은 수월하지 않겠는가.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아, 그러나 변덕스러운 마음이 ‘재발’이란 말에 걸려 꼼짝을 안 한다.
병고의 시련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삶은 어차피 악다구니가 난무한 전쟁터이다. 굳이 병고의 시련을 주어 삶을 수렁 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조물주의 노파심이 아닐까. 아니면 하늘과 무턱대고 키 재기를 하려고 덤비는 인간들의 안하무인을 애당초 잘라 버리려는 조물주의 계산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고난과 시련이 닥치면 괴롭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은 시시각각 고개 드는 오만방자한 내 못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기 위한 조물주가 만든 장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알레르기 비염은 나의 참 스승이 아닌가. 수많은 세월 동안 시달리며 살았다. 어쩌면 더 빨리 달려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 아마도 조물주는 목적지에 빨리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내게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내가 어둠에 휩싸여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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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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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희
-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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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알레르기 비염을 참으로 잘 묘사했네요아마도 공감하시는분들이 아주 많을듯십네요아주 바로 가까이에있는 내 옆지기도 아침이면 재채기에 콧물에 ㅎㅎ 밥 먹는 중간에도 재채기와 시름합니다일상생활 속에서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데도 하나하나 잘 그려내고 조물주의 마음까지 알아채시니 참으로 영특합니다 너무나 잘 보았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