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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결투

  • 작성일 2024-11-04

   한여름 밤의 결투

조원희


   무차별 폭격이다. 숨을 데도 없다. 따가움과 가려움도 견딜 수 없는 고문이다. 몸부림치다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물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적군이 휩쓸고 간 마을처럼 참혹하다. 물린 자리가 볼록하게 부풀어 올라 울음보를 터뜨릴 것만 같다. 

   황급히 파리채를 집어 들었다. 모기나 벌레 해충을 잡기 위해 모기약 대신 파리채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모기를 죽이는 약이 사람에게 좋을 리 없겠다는 건강 염려증이 불러온 결과다. 모기약을 쉭쉭 뿌려 버리면 간단할 것을 파리채로 모기를 잡으려고 앉아 있으면 탁상시계의 분침은 기척도 없이 시침을 밀어낸다. 

   모기는 게릴라 작전의 고수다. 불을 끄면 달려들어 물고, 불을 켜면 금세 내빼고 없다. 그중 간 큰 녀석은 불을 켰는데도 윙윙거리면서 내 얼굴을 공격하며 약을 올리기도 한다. 얼마나 잽싼지 종잡을 수가 없다. 발견하고 옳거니 하면서 파리채를 휘두르면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없다. 멍하니 파리채를 들고 시간만 축내고 앉아 있으면 다시 윙윙거린다. 사자가 먹이를 낚아채듯 목표물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파리채를 휘두른다. 하지만 녀석은 미꾸라지처럼 날렵하게 피하고는 유유히 달아난다. 

   불을 끄고 두 손을 얌전히 올려놓았다. 기척 없이 있다가 불을 끄면 다시 나타나 분명 내 피를 공수해 갈 것이다. 그때 다른 데는 제발 물지 말고 물려거든 손등을 물라는 뜻이다. 손이나 팔다리는 괜찮은데 얼굴, 특히 눈두덩에 물리면 여간 꼴불견이 아니다. 물파스를 바르지도 못하니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등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팍, 한 녀석이 걸렸다. 따가움을 견디지 못한 신체가 무조건 반사를 신속하게 가동한 결과다. 뜻밖에 올린 쾌거다. 녀석이 나를 우습게 알고 방심한 탓이기도 하다. 거미손 파리채도 못한 일을 엉성한 손바닥이 해냈다. 몸은 해체되어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피만 벌겋게 얼룩져 방바닥을 더럽혔다. 그동안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내려친 손바닥에 힘이 실렸다. 

   경허 대선사의 일화가 떠오른다. 경허 대선사는 헝겊 조각으로 기운 누더기 같은 가사(袈裟)를 오랫동안 입고 입었다. 가사 안에는 빈대와 벼룩이 늘 들끓었다. 하지만 경허 대선사는 도무지 빈대와 벼룩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사에서 역한 냄새까지 났다. 수발을 들던 만공 스님이 가사를 입으신 지 한 철이 다되어 간다며 갈아입기를 청했다. 경허 대선사는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옷을 벗었다.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빈대와 벼룩이 물어뜯고 피를 빨아 먹어 난장판이었다. 온몸이 불그죽죽 단풍든 것 같았다. 만공 스님이 가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경허 대선사는 “만공, 나라고 왜 가렵지 않겠는가. 빈대와 벼룩이 내 몸의 피를 마음대로 빨아 먹을 수 있도록 참고 있는 거라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참다운 수행자가 아니겠는가.” 그 말씀을 듣고부터 만공 스님은 경허 대선사의 가사(袈裟)가 더 이상 누더기로 보이지 않았다.   

   윙윙윙. 또다시 괴로운 소리가 들린다. 슬프게도 나에게는 경허 대선사의 보살행(菩薩行)을 흉내 낼 만한 아량조차 없다. 오로지 나를 괴롭히는 모기를 때려잡아 괴로움에서 벗어날 궁리밖에 없다. 모기는 저를 죽일 파리채를 손에 들고 있는데도 겁이 없다. 귀를 쫑긋 세우고 눈으로 부지런히 모기를 찾았다. 그때, 한 녀석이 빨대같이 긴 뾰족한 입부리를 내 오른 손목에 들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피를 뽑으려는 극적인 찰나였다. 파리채보다 손바닥이 빠르겠다 싶어 얼른 손바닥으로 쳤다. 놓쳤다. 어디론가 잽싸게 숨었다. 아뿔싸, 불을 끄고 누우면 앙갚음할 게 뻔하다. 

   잠자기는 글렀다. 두리번두리번 고갯짓하는 것도 만만찮다. 파리채를 든 손도 고개도 아프다. 잡히면 저승길로 직행할 녀석에게 조롱당한 기분이 든다. 모기약이 자꾸만 손짓을 한다. 마음이 두 갈래로 나뉘어 싸운다. 흔들리면서도 몸이 꿈쩍을 않는다. 고집불통이다. 파리채를 들고 고개만 휘젓고 있을 뿐이다. 여름이 나에게 준 시련이다. 

   마트에 진열된 파리채보다 성능이 좋다는 전자 파리채가 떠오른다. 그것은 좀 나으려나. 아니면 요즘 인기 있는 펼치고 간수하기 쉬운 덮개 모기장을 살까. 이러다 올여름도 이런 저런 궁리로 채우다 끝내고 말 것인가. 언제쯤 모기의 제물 신세를 면하려나.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 정말 싫다.

   모기는 미미한 곤충이다. 가녀린 팔다리는 보기에도 안쓰럽다.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얕보면 큰코다친다.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로 뱀을 제치고 1위를 거머쥔 잔혹한 학살자다. 알과 장구벌레의 시련을 견디고 단단히 준비한 길쭉한 주둥이는 동물이나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생존의 도구로만 쓰이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로 돌변해 오한, 발열, 설사, 두통 등 온갖 질병을 옮겨 사람의 목숨을 한 방에 쓰러뜨린다. 천하무적 징기스칸을 쓰러뜨린 건 불세출의 영웅이 아니라 미미한 곤충인 모기였다. 

   또한 모기는 매우 똑똑하다. 세월 따라 사람만 똑똑해지는 게 아니다. 모기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간다. 사람들이 기세등등하게 수십 수백 층의 건물을 지어 올린다 해도 모기에게는 식은 죽 먹기다. 사람들을 우롱하듯 제 목적을 거뜬히 이뤄 낸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의 옷에 쥐도 새도 모르게 달라붙어 있다가 그 사람의 집으로 침투한다. 집 주인도 속수무책이다. 그리고는 종족을 퍼뜨린다. 보이는 족족 잡아도 수가 줄지 않는 것을 보면 틀림이 없다. 

   벌써 날이 밝았다. 모기에게 단단히 혼쭐이 났다. 모기와 싸우느라 밤을 꼬박 새운 줄도 몰랐다. 작은 곤충이라고 만만히 보면 절대 안 되겠다. 눈치 빠른 모기는 수평선을 박차고 올라온 태양의 억센 손아귀를 피해 재빨리 숨었다. 

   모기가 사라졌다. 이제는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일어난 밤의 고충을 모르는 태양은 빨리 일어나라고 발길질을 한다. 발길에 채이면서도 일어날 생각이 전혀 없다. 옷감이 방패가 되지 못한 살갗 곳곳이 울룩불룩 멀쩡한 데가 없다. 참혹하다. 열패감이 밀려와도 잠이 오기를 기다린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니 오만 생각이 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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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원희
  •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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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원희
  •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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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서병달
    공감합니다

    사십 여 년 전,선풍기도 없는 오지에 있었던 어느 숙직실의 모구장 안, 모구 소리에 잠 못 이루겠다는 동료를 위해서 팬티 바람으로 잠을 청하던 남정네 셋이서 힘을 합쳐, 좁은 모구장 안의 무단 침입자를 잡으려 설쳤지요. 덩치가 작아 잘 보이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30 여분 경과할 무렵에 모구는 기어이 모구 소리에 민감하다던 사람의 손바닥에 피를 토하며 박살났지요. 그 보답으로 그 사람은 다음날 저녁에 간단하게 -술을 한 잔 샀지요. 이 글을 보면서 오래전의 의 추억이 새삼스럽네요. 좋은 글 많이 써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선물하시기 바라며, 문운이 창대하십시오.

    • 2024-12-10 13:18:40
    서병달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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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
  • jdh
    최고에요

    정말 한 여름밤의 결투네요저도 여름이면 온몸 구석구석 성한곳이 없습니다그냥 내어줍니다 여름 한 철 온몸으로 헌혈합니다어차피 질 건 뻔하니까요참으로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꼭 대승하실겁니다

    • 2024-12-02 14:33:00
    jdh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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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용국
    감동했어요

    글읽는 내내 귓가에 모기가 윙~ 하는거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ㅎ

    • 2024-12-02 14:01:46
    권용국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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