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터너를 생각하며
- 작성일 20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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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를 생각하며
변명희
수술실 문이 열리고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나오더니 말했다.
“ㅇㅇㅇ보호자님.”
사위가 총알처럼 일어나 문 앞으로 갔다. 예상보다 이른 시간이라 중간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가슴이 쿵쾅거렸다. 잠시 후 담당 의사의 설명을 듣고 온 사위가 시술 경과를 전해 주었다.
두 달여를 긴장 속에 지냈다. 사위의 권고로 MRI를 찍어본 결과 딸아이가 이름조차 생소한 뇌 질환 판정을 받았다. 재차 확인을 위해 정밀검사를 할 때도 2박3일 동안 입원을 해야 했다. 보통의 경우 추적관찰을 하지만 머릿속 꽈리의 크기나 모양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 방치하면 뇌출혈이나 관련 질환이 일어날 확률이 있는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했다. 더욱이 시술 보다는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정이 어려웠다. 머리 부분이라 미세한 오차라도 있으면 다른 신경을 건드릴 수 있어서 큰 결단이 필요했다. 사타구니를 통해 머릿속 꽈리 안에 코일을 채우고 스텐트도 삽입할 거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이틀 전부터 입원하고 아침 일곱 시부터 시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석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밤잠을 못 잤는지 사위의 얼굴이 수척했다. 보호자 명패를 목에 건 그의 등이 초조함에 흔들리는 듯도, 긴장감에 콘크리트처럼 굳어있는 듯도 했다. 동의서에 사인도 사위가 하고 남편과 나는 바라만 보았다. 불안하고도 생경한 상황에 모든 역할을 하며 간간이 여러 과정에 관해 설명해 주니 고맙고 든든했다. 그런데 뭔가 어색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막중한 상황을 구경만 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함과 무력감이 동시에 일었다. 딸내미의 삶은 이제 그들이 연주하고 우리는 객석의 관객이 된 것일까, 객쩍은 생각들이 스치며 피아노 연주회의 그녀가 떠올랐다.
화려한 의상의 피아니스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입장했다.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잦아들 무렵 수수한 검정색 차림의 여자가 발소리도 없이 들어와 연주자의 옆에 앉았다. 피아노 소리는 홀을 가득 메우고 가끔 그림자 같은 여인이 악보를 넘겼다. 페이지 터너인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눈길이 꽂히며 그 역할에 대해서 생각들이 오갔다. 아무도 페이지 터너에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지만, 연주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조력자였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나는 딸아이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일까 생각에 잠겼다. 시집을 보냈으니 당연한 줄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내 이성과 감성은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입원 기간 내내 사위가 보호자 역할을 하며 딸아이의 상태를 알려 주었다.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거쳐 닷새 만에 퇴원했다. 저녁에 마련한 식사 자리에서 사위가 오랜만에 먹는 밥이라며 제법 술잔을 기울였다. 의학지식이 없는 나는 막연한 걱정을 했지만, 사위는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긴장이 풀렸을까, 평소와 달리 말수가 많아지고 상기된 모습이었다. 딸아이가 진단을 받은 후 관련 자료를 찾아 읽는다더니, 아는 만큼이나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나는 시술이 끝나고 48시간이 지나야 안심할 수 있다는 것도 사위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았다. 의식을 회복했다는 소식에 바로 마음을 놓았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눈자위에 눈물이 흥건한 사위가 딸아이의 팔다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는 만약에 수술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자신이 받고 싶다며 말끝을 흐렸다. 애초에 우리는 생각도 못 한 검사를 사위가 데리고 가서 한 걸 보면, 이미 나보다 한 수 위의 보호자였던 게다. 부모와 형제도 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으니 날을 잡아 함께 가자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한 쌍의 아기 사슴이 어깨를 기대고 앉아 있는 것 같아, 나는 얼른 일어나 북쪽으로 난 창문을 닫았다.
토네이도 같은 바람이 지나갔다. 버석거리던 내 속 뜰에 한줄기 단비가 내렸다. 나는 객석에서 응원하는, 행복한 페이지 터너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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