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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나무

  • 작성일 2024-10-22

떡갈나무

하성민


장소

지방 도시 노인복지관 그리고 독거노인들의 집


배경

12월 중순. 추운 날씨다. 관내 노인복지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직원 민영과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조사원 준성, 도시에서 귀촌한 준성은 복지 대상자인 노인들을 한 명씩 만난다.


인물

박수환, 남자, 80대, 독거노인.

최장수, 남자, 70대, 독거노인.

김양희, 여자, 70대, 독거노인.

김준성, 남자, 32세, 독거노인 현황 조사원.

전민영, 여자, 52세, 노인복지관 직원.


무대

무대는 삼분할된다. 왼편은 민영의 사무실, 중앙은 준성이 다니는 길, 오른편은 노인들의 집 마당이다.


하수(무대 왼쪽), 사무실 출입구

상수(무대 오른쪽), 노인들의 집



  [전막]
   
  자연은 과연 아름다운가. 말없이 무심함을 내뿜는 자연을 우리는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나. 시골은 사람 없는 자연이다. 지금 여기 겨울을 지나는 시골은 그 어느 때보다 깊게 고요하고 서늘하다. 가랑잎나무가 조용히 흔들린다. 지난 시절 푸릇하던 잎 하나가 어느새 기력을 다하고 지면으로 툭 내려앉는다. 추위에 내려앉은 잎의 맥처럼 마을에 듬성듬성 자리를 지키는 노인들의 주름살도 그 결이 또렷하다. 마을을 지나는 구불한 길은 적막을 걸치고서 노인들을 생의 끝자락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곳은 그렇게 기운을 잃었다. 무겁게 발을 내디디며 쉭쉭 빠지는 노인들의 날숨은 시간이 지나며 더욱 짙어질 뿐이다.
   
  준성, 무대 중앙에 있다.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빼고를 반복한다. 다른 손에는 서류뭉치가 들려 있다. 천천히 무대 좌우로 왔다 갔다 걷는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무대 중앙에 멈춰 선다.
   
  3초 후
   
  민영, 하수에서 등장. 손에는 종이컵이 들려 있다. 자리에 앉고 차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키보드를 두들긴다. 기지개를 켰다가 다시 차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준성, 민영 쪽으로 느리고 천천히 다가간다. 중간중간 숨을 고르기도 한다. 옷매무새를 다듬고서 민영 앞에 멈춘다.
   
준성 (서류 뭉치를 건네며) 여기요.
민영 (슬쩍 준성을 보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네, 고생하셨어요. 거 두고 가시면 됩니다.
준성 ···뭐 다른 건 없나요?
민영 (모니터만 바라보며) 다음 주에 조사원들 다 같이 모이는 거 아시죠? 시간 정해서 연락드릴게요.
준성 네. (돌아가려 몸을 돌린다)
민영 몇 분 정도 남았죠?
준성 (다시 몸을 돌린다) 아, 다섯 명 정도?
민영 다섯 명, 그거 마치면 저번에 얘기 드린 기초조사에서 사백 명 분량이 필요하니까 부지런히 다니셔야겠어요.
준성 몇 명이요?
민영 사백 명
준성 사백 명이요?
민영 예예. 저번에 얘기 드렸잖아요. 추가 명단 있다고.
준성 아.
민영 어쨌거나 시간 없으니 얼른 돌아다니셔야겠어요. 언제 다 할라고.
준성 ···네.
   
  수환, 민영과 준성이 이야기하는 중에 상수에서 등장한다. 지팡이를 짚고 있지만 크게 이용하지는 않는다. 허리를 두들기며 평상으로 걷는다. 천천히 앉으려고 할 때 평상 앞쪽 텃밭에 앉은 고양이를 발견한다. 움직임을 멈추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바라보다가 다시 천천히 평상에 앉는다.
  준성, 민영과 대화를 마치고서 인사하고 상수로 걷는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수환이 앉아 있는 평상 쪽으로 걷는다. 중간중간 숨을 고른다. 옷매무새를 다듬고서 수환 앞에 멈춘다.
   
준성 (숨 고르며) 실례합니다. (서류를 들춰 본다) 박수환 어르신 맞으세요?
   
  수환, 가만히 앞만 보고 있다.
   
준성 어르신?
   
  수환, 고개를 돌려 준성을 바라본다.
   
준성 저, 박수환 어르신 댁 아닌가요?
   
  수환, 고개를 끄덕인다.
   
준성 박수환 어르신 맞으세요?
   
  수환, 고개를 끄덕인다. 손짓으로 평상에 앉으라고 한다.
   
준성 아, 네 감사합니다. (평상에 앉는다) 저는 읍에 있는 노인복지관에서 나왔어요. 혼자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 현황 조사 중입니다. 시간 괜찮으세요?
   
  수환, 다시 앞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준성 (서류를 뒤적거리고 바라보면서) 그··· 저··· 박수환 어르신 맞죠? 지금 혼자 살고 계신 거 맞나요?
   
  수환, 고개를 끄덕인다.
   
준성 (계속 서류만 바라본다) 그럼 몇 가지만 여쭐게요. 음, 자녀분들은 몇 분이나 되세요?
수환 자식? 아들은··· 일본에 갔다.
준성 아, 아들 한 분 계신 건가요?
수환 작은놈은 서울서 일하고 있고.
준성 아들 둘?
수환 막내는 병원 신세 지고 있지.
준성 아··· 아들 세 명인 거죠?
수환 큰 딸내미는 동남아··· 필리핀 가서 살고.
준성 아이고 딸도 계시구나. (계속 서류에 체크한다)
수환 작은 딸내미는 부산서 장사한다.
준성 딸 둘?
수환 다들 제 삶이 바쁜 게 못 와. 안 와야지.
준성 아, 연락은 자주 하시고요?
수환 아무도 없어.
준성 (서류를 보면서) 명절 때는 한 번씩 들르시나요? 자녀분들이?
수환 없지 아무도.
준성 (서류에 체크하면서) 그럼, 왕래가 없으시고··· 아들 셋, 딸 두 분이 계시고··· 혹시 경제 활동 같은 건 안 하시죠? 일하는 게 있으세요?
수환 없어. 몸이 이래가꼬.
준성 (서류에 적으면서) 없으시고··· 그럼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는 자주 가세요?
수환 몸이 이래가 뭘 하겠나.
준성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가세요?
수환 안 가. 가서도 재미도 없고. 몸이 이래가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
준성 아··· 아예 안 가시는 걸로··· (서류에 적는다) 그럼 이웃분들이랑은 자주···
수환 어디서 왔다고?
준성 아, 저 읍에 노인복지관에서 왔습니다.
수환 어디?
준성 노 인 복 지 관에서요.
수환 복지관. 거서 왜 왔을까.
준성 그게···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설문조사 나왔어요. 이제 막 복지 서비스 대상 연령이 되신 분들도 있으셔서 전체적으로 조사도 하고 나라에서 다른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찾는 거예요.
수환 조사? 내 조사해서 뭐 할라고. 가끔 도시락 차가 저 마을회관 앞으로 오는데, 그 도시락이나 좀 자주 나오게 해 주라.
준성 아, 그게 대상자 조사 중이라서 확인되면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을 겁니다.
수환 도시락이나 넣어 줘.
준성 네, 그럼요. 도시락 준비도 될 것 같아요. (서류를 보며) 그러면 이웃분들이랑은 자주 만나세요?
수환 누구?
준성 주변에 이웃 분들이요. 집 근처나 아니면 회관에 가서 만나거나. 자주 얼굴 보세요?
수환 내 여서 산 지 칠십 년이다. 그만치 살았는데 그동안 내한테 해꼬지한 놈들, 흉보던 놈들, 시시덕거리던 놈들, 다 명 끊기고 이제 내밖에 없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하 밑에서 허풍이나 늘어놓고 있겠지. 지겨운 놈들. (무대 앞 텃밭을 살핀다)
준성 네. (서류를 쭉 살펴본다) 그러면, 저, 어르신 도장이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도장 있으세요?
수환 (고개를 저으며) 내도 살믄 얼마나 살겠나. 됐다.
준성 네?
   
  수환, 상수로 천천히 퇴장.
  민영, 차를 마시고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수환이 퇴장하면 하수로 퇴장.
   
준성 (상수 쪽 바라보며) 어르신···? 혹시 도장을 찍을 수 있을까요?
수환 (무대 바깥에서) 됐다 고마 가라. 내 도시락 필요 없다.
   
  준성, 수환이 나간 방향을 바라보다가 포기하고 천천히 하수 쪽으로 걷는다. 무대 중앙에 가만히 서서 민영 쪽을 바라본다. 핸드폰을 꺼내고 전화를 건다. 민영의 책상 위 전화기가 울린다. 전화기가 세 번 울리고 나면 전화를 끊는다. 한숨 쉰다.
   
  장수, 상수에서 등장. 평상 주위를 한 바퀴 천천히 돈다. 자리에 앉는다.
  준성, 하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민영, 하수에서 등장. 자리에 앉는다.
  준성, 민영 앞에서 멈춘다.
   
준성 안녕하세요.
민영 예, 오셨네요. 일은 어떻게 잘 돼 갑니까?
준성 뭐 그냥···.
민영 (테이블에 놓여 있는 서류를 보면서) 요 다른 분들은 벌써 이만큼씩 했는데.
준성 아, 벌써 이만큼이나···.
민영 통장 사본이랑 신분증 사본 준비하셨어요?
준성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서류를 뒤적이면서 꺼내 준다)
민영 (서류를 살피면서) 준성 쌤, 이게··· 일자리 만들겠다는 사업이라. 저번에 얘기하긴 했을 텐데, 사실 이미 복지관에서 올 초에 싹 다 전수조사를 했어요. 그래도 고용을 했으니 억지로, 억지로 일을 시키는 거긴 한데. 이게 좀 그래요. 내가 생각해도 이게 뭔 짓인가 싶네. 돈을 써야 한다고는 하는데, 뭐 너무 갑작스럽게 위에서 옛다 예산, 이러면서 사람 뽑아서 일 시키라고 하니까··· 시키는 저희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원래 계획에 있던 일도 아니고 갑자기 팀 만들어서 진행하는 일인데, (준성 보면서) 나라가 이러면 안 되지. 그렇잖아요, 언제부터 나라에서 노인들 먹여 살렸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컵을 들고선 책상 주변을 걷는다) 아, 물론, 물론 노인복지도 물론, 중요한 문제긴 한데, 이··· 이게 권리와 의무가 같이 가야지. 나도 얼마 안 있으면 노인이지마는,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인 거라 이거요. 여기 지역 살림도 다 노인들한테 뿌려 놓고··· 돈이 있으면 육아에 쓰고 청년들 일자리 만드는 데 써야 이 촌구석에서도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거예요. 근데 정치인들이 그라겠어요? 싹 다 노친네들 표밭인데? 이게 이러면 진짜 미래가 없어요. 근데 뭐 나 같은 사람이야 뭐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사이)
   
준성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면 노인 분들이 참 딱하기도 하더라고요.
민영 그래요···. (자리에 앉는다) 이거 끝나면 기초조사 명단 나올 겁니다.
준성 예···. 알겠습니다.
민영 신속하게! 부지런히!
   
  준성, 민영에게 인사하고 상수로 천천히 걸어간다. 조금 힘겨워 보인다. 무대 중앙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걷는다.
   
준성 (서류와 대문 주소를 살핀다) 45번길 17-2. (평상에 앉아 있는 장수를 발견한다) 안녕하십니까.
   
  장수, 못 듣는다.
   
준성 실례합니다. 어르신?
장수 (준성을 보고) 뭡니까?
준성 안녕하세요. 저는 읍에 노인복지관에서 나왔습니다. 혼자 살고 계신 어르신들 기초조사 나왔어요.
장수 아 됐어요.
준성 네?
장수 필요 없으니 가시라고.
준성 아, 그게···.
장수 내는 받을 것도, 줄 것도 없다 이거요. 그러니까 그냥 가쇼. (일어나서 평상 뒤쪽으로 간다)
   
  (사이)
   
준성 저 어르신, 그러면 혹시 서명만 하나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장수 뭐?
준성 아, 그 제가 여기 조사 나왔다는 확인이 필요한데 괜찮으시면 서명을 좀 해 주실 수 있나 해서요.
장수 (준성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디 사람이요? 서울?
준성 아, 네.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반년 정도 됐어요. 내려온 지.
장수 촌구석엔 뭣 하러. (서류를 달라고 손짓하며) 어디다 쓰면 된다고요?
준성 아, 여기.
장수 젊은 사람이 이게 뭐 하는 거야 여기서.
   
  장수, 평상에 앉아서 서명을 하고는 준성에게 넘겨준다.
   
장수 내 큰 아들놈도 서울서 일하고 있는데, (준성 살피며) 그 젊은 사람이 여서 이러고 살면 못써요.
준성 아, 네···. 그런가요.
장수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나가서 일하고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들 만나면서 진짜 사는 걸 배워야지, 이런 데는 노후 보내려고 오는 거고. 남은 생 마무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와야지. 이 촌구석에 젊은이들이 봤어? 일자리가 있어요? 없지 다 없어. 결혼은 했고?
준성 아, 아직···.
장수 계집도 없는데 짝이나 찾겠나?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죽어 가는 동네라 이거요. 여기 삶은 젊은 사람들이 절대로 이해 못 한다 못해.
준성 하하, 그래도 얼마 안 됐지만 여기 사는 거 좋습니다. 자연도 좋고.
장수 하이고, 늙으면 알아서 좋아진다. 내가 젊었을 적에 서울에서도 살고 부산에서도 살아 보니까 여기 같이 완전히 촌구석은 사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이거야. 도시처럼 살려면 못 산다. 아무것도 없다. 됐고, 그만 가소.
준성 아,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장수, 평상 뒤로 가서 나무 장작을 정리하고 상수로 퇴장.
  준성,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걷는다.
  민영, 전화기를 들고 준성에게 전화를 건다.
  준성, 핸드폰이 두 번 울리면 전화를 받는다.
   
준성 네 여보세요.
민영 다음 주 목요일에는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니까 화요일에 들러서 서류 전달 부탁드려요.
준성 아, 알겠습니다.
민영 수고하세요.
준성 네 수고하세요.
민영 아아, 잠시만요.
준성 네?
민영 추가 명단은 옆 마을에 돌아다니는 분 있죠? 그분한테 전달했으니 받으면 됩니다.
준성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영, 전화를 끊는다.
  준성, 전화를 끊는다. 하수 쪽으로 걷는다. 천천히 걷는다. 민영 앞에서 멈춘다.
  양희, 상수에서 등장. 평상 뒤 나무 장작을 정리한다.
   
준성 안녕하세요.
민영 아이고, 고생하셨네. 많이 도셨어요?
준성 네, 뭐 그냥 도는 거죠. (서류를 건넨다)
민영 왜 이것밖에 안 돼? 요기 어머님들은 이만큼이나 했는데.
준성 아, 다들 많이 하셨네요···.
민영 요 분들은 막 하루에 사십 명도 뽑던데요. (전화가 온다) 분발하셔야겠네. 잠시만요. (전화를 받는다) 네, 전민영입니다. 예. 아, 예예. 그랬어요? 제가 담당자님께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예예,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는다) 그래서··· 뭐 필요한 거 있습니까?
준성 아, 아니요. 오늘 이거 전달해 달라고 하셔서 왔어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민영 준성 쌤. 이게 지금 두 달짜리 일이지마는 열심히 해 주셔야 우리도 더 챙겨 드릴 수 있어요. 지금 내부적으로 선생님이 제일 느린 거 아시죠? 물론 많이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래도 보이는 게 그거다 아닙니까? 어제는 한 분이 그··· 일하는 속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나가는 월급은 다 똑같다 아닙니까? 불만이 생기죠. 그런 불만이 생겨도 결국 돈은 그대로 지급되긴 합니다만··· 그게 우리 입장에서도 좋아 보이지가 않은 게··· 무슨 말인지 알죠?
준성 네. 그럼요. 알겠습니다.
   
  민영,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성, 천천히 상수로 이동한다. 천천히 발걸음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걷는다. 숨을 고른다. 닫혀 있는 대문 앞에 선다.
  민영, 하수로 퇴장.
   
준성 (서류를 본다, 문을 두드리며)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문을 다시 두드리며) 누구 안 계세요. 김양희 님 계십니까. (더 세게 문을 두드리며) 안에 누구 안 계세요. 김양희 어르신 계신가요.
   
  (사이)
   
  준성, 돌아가려고 몸을 돌려 걷는다.
  양희, 평상 뒤쪽에서 계속 듣고 있다가 문으로 온다.
   
양희 누구야?
   
  준성, 양희를 본다.
   
준성 (양희에게 다가가면서) 아,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 노인복지관에서 나왔습니다.
양희 어디?
준성 노인복지관이요. 혹시 괜찮으시면 안으로 들어가도 되나요?
양희 복지관? 어어, 들어와. (평상에 앉는다)
준성 (평상으로 가서 앉으면서) 아 네 감사합니다. 노인복지관에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기초조사를 하는 중입니다. 간단하게 설문조사를 할게요. 괜찮으시죠? (바로 서류를 꺼낸다) 그 지금 혼자 사시는 거 맞죠?
양희 그치
준성 (서류에 체크하면서) 자녀는 몇 분이세요?
양희 다섯 명.
준성 아들딸?
양희 아들 셋, 딸 둘.
준성 이 집은 자가?
양희 그치.
준성 수입?
양희 없지.
준성 경로당?
양희 가지.
준성 얼마나?
양희 만날.
준성 건강은?
양희 (몸을 구석구석을 두들기면서) 이 나이 되면 성한 곳이 없어. 다 고장 났지.
준성 (서류를 보며) 네, 얼추 된 것 같고··· 그럼 어르신 도장 있으시죠? 도장 좀 찍을게요.
양희 도장?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도장 있지. 잠깐만 기다려 봐.
   
  양희, 상수로 퇴장.
  준성, 서류를 얼추 보고 평상에서 일어나 집 구경을 한다.
   
준성 와, 어르신 집 관리를 진짜 잘하셨네요. 엄청 좋아요.
   
  (긴 사이)
   
  장수, 상수에서 등장. 도장을 준성에게 건넨다.
   
장수 인주가 있나?
준성 네. 여기 가지고 있습니다. (주머니에서 인주를 꺼내고 도장을 서류에 찍는다) 감사합니다. (집을 보면서) 이거 다 어르신이 만드신 거세요? 집이 너무 좋아요. 저기 저 신발장인가? 서랍장이랑, 저 나무 창문도 이쁘네요?
장수 원래 목수일 했다. 몇 해 전만도 여서 잘나가는 목수였지. 허리를 다쳐서 일도 못 하고 그냥 틈나면 간간이 등산이나 조심히 하면서 죽는 날만 기다리는 중이야.
준성 아··· 근데 실력이 정말 좋으세요. 여기 집도 참 예쁘고, 경치도 너무 좋네요. (앞을 본다)
장수 처음에나 좋지 만날 보면 어딜 가나 똑같지. 이런 풍경은 (사이) 며느리들이나 올 때 좋아하더라. 손주들이랑. (사이) 내가 죽으면 누가 내려는 올라나. 아무도 안 살면 이 집도 수명이 다한 게지. (앞쪽을 보면서) 저 집 보이지? 창 크게 난 집.
준성 네네 보여요. 좋네요?
장수 좋긴 뭐가 좋아. 저 집 자리가 원래 내가 지었던 집이 있었어. 근데 그 망할 노친네 지하에 눕고 나서 그 자식 놈이 바로 지 별장을 새로 짓더라고. 봐 봐 저게 어디 이런 시골에 어울리는 집이야?
준성 아.
장수 정 씨도 틈만 나면 자식 놈 욕을 바가지로 하던 게 생각이나. 생전에 찾아오지도 않던 놈들이 노인네 돈이나 빼돌리고. 어휴. 사는 게 이런 거지 하면서도 다시 생각하면, 아직도 혈기가 남았나 여 가슴에 뜨거운 게 치밀더라니까. 씨부럴. 나도 아직 죽기는 아쉬운가 봐. 젊음이 어디 갔나. 참내.
   
  (사이)
   
준성 그··· 저···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다른 집도 들러야 해서요. 수고하세요.
장수 그래. 그래. 가 봐야지.
   
  준성, 무대 중앙으로 이동한다. 가만히 서서 정면을 본다.
  민영, 하수에서 등장. 자리에 앉는다.
  장수, 상수로 퇴장.
   
  조명이 파랗게 바뀐다. 물결이 비춘다. 가벼운 파도 소리, 몽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파란 조명에 계속 물결이 친다.
   
  민영, 무대 중앙의 준성 옆으로 온다.
   
민영 놀랐겠어요.
준성 네, 뭐···.
민영 고생이죠. 이게 다. 나도 조사 다닐 때 며칠 방치된 할머니도 보고 그랬는데. 참··· 이제 나이가 드시면 언제 어떻게 가실지 모르니까. 저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도 빨리 확인이 되죠.
준성 네.
민영 옆에서 지켜보면 늙은 게 외로운 거예요. 혼자여서가 아니라.
준성 네···.
민영 나도 아침마다 몸뚱이 세우고 하는 게 벌써 힘든데, 어르신들은 더하겠죠. 그렇게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 번 더 고독해지는 거고, 결국 늙는 길이 허망한 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준성 저번 주에 어느 할머니는 절 보자마자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돈도 없고 너무 힘들다고. 근데 제가 뭘 하겠어요? 그냥··· 그냥 알반데, 일 때문에 돌아다니는 건데. 그래도 말해야죠. 알겠다고, 도와드리려고 이렇게 조사 나온 거라고.
민영 ···.
준성 별거 아닌 말에도 고맙다고, 고맙다고 계속하시는데··· 제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지.
민영 모니터 앞에만 앉아서 현장에 다녀온 조사원들이 건네준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이면 뭐랄까··· 굉장해요. 여기 사는 수많은 노인들이 한눈에 담기는 거예요. 숫자가 돼서.
준성 통계네요.
민영 그래요. 통계. 아침마다 엑셀을 열고 가만히 숫자들을 보다 보면 참 냉정하죠. 냉정하고 굉장해요. 물론 마음을 둘 자리는 없죠. 우리 마음은 사막의 모래 알갱이만도 못해요. 바람에 휙휙 날리는 모래 알갱이, 스크롤만 따라서 흘러갈 것들. (사이) 그렇게 건조하게 일하다 보면, 여기는 희망이 안 보여요. 어르신들 가시고 차례대로 우리도 늙어 가고··· 이곳에 무슨 변화가 생기긴 하겠어요? 준성 씨도 느끼겠지만요.
준성 고행 같아요. 저 멀리서 여기까지 한참을 걷고 걸으며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는 거요. 어쩌면 고행을 하는 거예요. 이 집 저 집을 찾고 끝없이 걷고 닫혀 있는 대문을 두들기고, 만나고, 다시 돌아 나오는···.
민영 그래도. 뭐.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야지.
   
  민영, 준성에게 인사하고 하수로 퇴장.
   
  물결치던 조명은 사라지고 침묵과 건조한 빛만 남는다.
   
  (사이)
   
  준성, 평상에 걸터앉는다. 일어나서 하수로 걷는다. 거칠게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걷는다. 테이블 앞에 도착하고 다시 상수로 걷는다. 걸음 속도는 점점 더 느려지고 힘겹다. 평상에 도착하고 다시 하수로 걷는다. 테이블에 도착하고 다시 상수로 걷는다. 힘겹다. 평상에 도착하고 다시 하수로 걷는다.
  민영, 하수에서 등장. 손에는 종이컵이 들려 있다. 테이블 앞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키보드를 두들긴다. 기지개를 켰다가 다시 차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수환, 상수에서 등장. 평상에 앉는다.
  준성, 민영에게 인사하고 상수로 걷는다. 수환을 발견한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수환이 앉아 있는 평상 쪽으로 걷는다. 중간중간 숨을 고른다. 옷매무새를 다듬고서 수환 앞에 멈춘다.
   
준성 (숨 고르며) 실례합니다. (서류를 들쳐 본다) 박수환 어르신 맞으세요?
   
  수환, 가만히 앞만 보고 있다.
   
준성 어르신?
   
  수환, 고개를 돌려 준성을 바라본다.
   
  빠르게 암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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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녀와 윤심덕과 그리고 나

이영녀와 윤심덕과 그리고 나 신은수 등장인물 김우진. 이영녀. 오일삼. 윤심덕. 1925년, 늦은 저녁. 상성합명회사의 작은 사무실 안. 한쪽 벽면엔 업무 서류들이 쌓인 책장. 전화기가 놓인 책상에는 쓰고 있던 원고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사무실 안에는 작은 테이블과 소파가 있다. 수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김우진. 옆에 놓인 물컵과 약봉지. 김우진 하루하루 정말 미칠 지경이야··· 돈과 직위?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가꿔 이룬 것들이라면 애착이라도 있겠지만, 모두가 아버지 것들인데··· 난 그저 장남으로 태어난 책임으로 꼭두각시처럼 있는 거라고. 아무리 좋은 먹이를 매일 갖다 줘도··· 새장 속의 새가 행복하겠나. 지금 내 신세가 꼭 그래, 누구보다 자유로워야 할 예술가가 말이야. 이러다간 날개가 퇴화돼··· 어느 때부턴 나는 법조차 잃어버릴까 두렵다고. 약봉지를 힘겹게 뜯으며. 김우진 그래서 오늘도 쓰고 있다네. 이런 밤늦은 시간에 부친께서 앉힌 사장 역할이 끝나면, 나는 법을 잊지 않으려 말일세. 지금 쓰고 있는 것 말인가? 조선판 입센의 인형의 집, 노라인데··· 잘 풀리지가 않아. 막바지 3막으로 가고 있지만, 과연 지금의 조선 현실서 착취 속에 사는 궁핍한 여성이 자아를 찾아간단 것이 가능한 얘기인지··· 써 본들 사람들이 보고도 공감 못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뭐라 했나, 윤심덕? 당황해 말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김우진 이보게,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다고. 안 만날 걸세, 지금 윤심덕이가 어디 살고 있던 내 알 필요 없잖은가?! 그래, 그 추잡한 소문들을 여기서도 전부 다 듣고 있다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면, 밖을 향해서. 김우진 밖에 누군가. (수화기에) 잠시만··· 급하게 원고들을 구석에 숨겨 놓으면, 조심스레 문을 열고 오는 오일삼. 오일삼 접니다, 사장님. 김우진, 안도하는 표정. 오일삼 아! 전화 중이신데··· 불쑥, 실례했습니다. 김우진 (수화기에) 회사 직원이야, 신경 안 써도 돼. 나도 잘 모르겠네··· 언제 완성될지는. 얘기했잖은가, 마지막 부분에 글이 막혔다고. 다 쓰면 우선은 자네가 있는 토월회 쪽으로 보낼 테니, 한번 읽어 보라고. 오일삼 하하하. 편하게 계속하십시오. 김우진 이영녀일세. 주인공 이름 그대로가

  • 신은수
  • 2024-11-21

문장, 콤마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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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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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제인
  • 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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