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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나무

  • 작성일 2024-10-22

떡갈나무

하성민


장소

지방 도시 노인복지관 그리고 독거노인들의 집


배경

12월 중순. 추운 날씨다. 관내 노인복지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직원 민영과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조사원 준성, 도시에서 귀촌한 준성은 복지 대상자인 노인들을 한 명씩 만난다.


인물

박수환, 남자, 80대, 독거노인.

최장수, 남자, 70대, 독거노인.

김양희, 여자, 70대, 독거노인.

김준성, 남자, 32세, 독거노인 현황 조사원.

전민영, 여자, 52세, 노인복지관 직원.


무대

무대는 삼분할된다. 왼편은 민영의 사무실, 중앙은 준성이 다니는 길, 오른편은 노인들의 집 마당이다.


하수(무대 왼쪽), 사무실 출입구

상수(무대 오른쪽), 노인들의 집



  [전막]
   
  자연은 과연 아름다운가. 말없이 무심함을 내뿜는 자연을 우리는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나. 시골은 사람 없는 자연이다. 지금 여기 겨울을 지나는 시골은 그 어느 때보다 깊게 고요하고 서늘하다. 가랑잎나무가 조용히 흔들린다. 지난 시절 푸릇하던 잎 하나가 어느새 기력을 다하고 지면으로 툭 내려앉는다. 추위에 내려앉은 잎의 맥처럼 마을에 듬성듬성 자리를 지키는 노인들의 주름살도 그 결이 또렷하다. 마을을 지나는 구불한 길은 적막을 걸치고서 노인들을 생의 끝자락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곳은 그렇게 기운을 잃었다. 무겁게 발을 내디디며 쉭쉭 빠지는 노인들의 날숨은 시간이 지나며 더욱 짙어질 뿐이다.
   
  준성, 무대 중앙에 있다.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빼고를 반복한다. 다른 손에는 서류뭉치가 들려 있다. 천천히 무대 좌우로 왔다 갔다 걷는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무대 중앙에 멈춰 선다.
   
  3초 후
   
  민영, 하수에서 등장. 손에는 종이컵이 들려 있다. 자리에 앉고 차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키보드를 두들긴다. 기지개를 켰다가 다시 차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준성, 민영 쪽으로 느리고 천천히 다가간다. 중간중간 숨을 고르기도 한다. 옷매무새를 다듬고서 민영 앞에 멈춘다.
   
준성 (서류 뭉치를 건네며) 여기요.
민영 (슬쩍 준성을 보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네, 고생하셨어요. 거 두고 가시면 됩니다.
준성 ···뭐 다른 건 없나요?
민영 (모니터만 바라보며) 다음 주에 조사원들 다 같이 모이는 거 아시죠? 시간 정해서 연락드릴게요.
준성 네. (돌아가려 몸을 돌린다)
민영 몇 분 정도 남았죠?
준성 (다시 몸을 돌린다) 아, 다섯 명 정도?
민영 다섯 명, 그거 마치면 저번에 얘기 드린 기초조사에서 사백 명 분량이 필요하니까 부지런히 다니셔야겠어요.
준성 몇 명이요?
민영 사백 명
준성 사백 명이요?
민영 예예. 저번에 얘기 드렸잖아요. 추가 명단 있다고.
준성 아.
민영 어쨌거나 시간 없으니 얼른 돌아다니셔야겠어요. 언제 다 할라고.
준성 ···네.
   
  수환, 민영과 준성이 이야기하는 중에 상수에서 등장한다. 지팡이를 짚고 있지만 크게 이용하지는 않는다. 허리를 두들기며 평상으로 걷는다. 천천히 앉으려고 할 때 평상 앞쪽 텃밭에 앉은 고양이를 발견한다. 움직임을 멈추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바라보다가 다시 천천히 평상에 앉는다.
  준성, 민영과 대화를 마치고서 인사하고 상수로 걷는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수환이 앉아 있는 평상 쪽으로 걷는다. 중간중간 숨을 고른다. 옷매무새를 다듬고서 수환 앞에 멈춘다.
   
준성 (숨 고르며) 실례합니다. (서류를 들춰 본다) 박수환 어르신 맞으세요?
   
  수환, 가만히 앞만 보고 있다.
   
준성 어르신?
   
  수환, 고개를 돌려 준성을 바라본다.
   
준성 저, 박수환 어르신 댁 아닌가요?
   
  수환, 고개를 끄덕인다.
   
준성 박수환 어르신 맞으세요?
   
  수환, 고개를 끄덕인다. 손짓으로 평상에 앉으라고 한다.
   
준성 아, 네 감사합니다. (평상에 앉는다) 저는 읍에 있는 노인복지관에서 나왔어요. 혼자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 현황 조사 중입니다. 시간 괜찮으세요?
   
  수환, 다시 앞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준성 (서류를 뒤적거리고 바라보면서) 그··· 저··· 박수환 어르신 맞죠? 지금 혼자 살고 계신 거 맞나요?
   
  수환, 고개를 끄덕인다.
   
준성 (계속 서류만 바라본다) 그럼 몇 가지만 여쭐게요. 음, 자녀분들은 몇 분이나 되세요?
수환 자식? 아들은··· 일본에 갔다.
준성 아, 아들 한 분 계신 건가요?
수환 작은놈은 서울서 일하고 있고.
준성 아들 둘?
수환 막내는 병원 신세 지고 있지.
준성 아··· 아들 세 명인 거죠?
수환 큰 딸내미는 동남아··· 필리핀 가서 살고.
준성 아이고 딸도 계시구나. (계속 서류에 체크한다)
수환 작은 딸내미는 부산서 장사한다.
준성 딸 둘?
수환 다들 제 삶이 바쁜 게 못 와. 안 와야지.
준성 아, 연락은 자주 하시고요?
수환 아무도 없어.
준성 (서류를 보면서) 명절 때는 한 번씩 들르시나요? 자녀분들이?
수환 없지 아무도.
준성 (서류에 체크하면서) 그럼, 왕래가 없으시고··· 아들 셋, 딸 두 분이 계시고··· 혹시 경제 활동 같은 건 안 하시죠? 일하는 게 있으세요?
수환 없어. 몸이 이래가꼬.
준성 (서류에 적으면서) 없으시고··· 그럼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는 자주 가세요?
수환 몸이 이래가 뭘 하겠나.
준성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가세요?
수환 안 가. 가서도 재미도 없고. 몸이 이래가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
준성 아··· 아예 안 가시는 걸로··· (서류에 적는다) 그럼 이웃분들이랑은 자주···
수환 어디서 왔다고?
준성 아, 저 읍에 노인복지관에서 왔습니다.
수환 어디?
준성 노 인 복 지 관에서요.
수환 복지관. 거서 왜 왔을까.
준성 그게···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설문조사 나왔어요. 이제 막 복지 서비스 대상 연령이 되신 분들도 있으셔서 전체적으로 조사도 하고 나라에서 다른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찾는 거예요.
수환 조사? 내 조사해서 뭐 할라고. 가끔 도시락 차가 저 마을회관 앞으로 오는데, 그 도시락이나 좀 자주 나오게 해 주라.
준성 아, 그게 대상자 조사 중이라서 확인되면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을 겁니다.
수환 도시락이나 넣어 줘.
준성 네, 그럼요. 도시락 준비도 될 것 같아요. (서류를 보며) 그러면 이웃분들이랑은 자주 만나세요?
수환 누구?
준성 주변에 이웃 분들이요. 집 근처나 아니면 회관에 가서 만나거나. 자주 얼굴 보세요?
수환 내 여서 산 지 칠십 년이다. 그만치 살았는데 그동안 내한테 해꼬지한 놈들, 흉보던 놈들, 시시덕거리던 놈들, 다 명 끊기고 이제 내밖에 없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하 밑에서 허풍이나 늘어놓고 있겠지. 지겨운 놈들. (무대 앞 텃밭을 살핀다)
준성 네. (서류를 쭉 살펴본다) 그러면, 저, 어르신 도장이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도장 있으세요?
수환 (고개를 저으며) 내도 살믄 얼마나 살겠나. 됐다.
준성 네?
   
  수환, 상수로 천천히 퇴장.
  민영, 차를 마시고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수환이 퇴장하면 하수로 퇴장.
   
준성 (상수 쪽 바라보며) 어르신···? 혹시 도장을 찍을 수 있을까요?
수환 (무대 바깥에서) 됐다 고마 가라. 내 도시락 필요 없다.
   
  준성, 수환이 나간 방향을 바라보다가 포기하고 천천히 하수 쪽으로 걷는다. 무대 중앙에 가만히 서서 민영 쪽을 바라본다. 핸드폰을 꺼내고 전화를 건다. 민영의 책상 위 전화기가 울린다. 전화기가 세 번 울리고 나면 전화를 끊는다. 한숨 쉰다.
   
  장수, 상수에서 등장. 평상 주위를 한 바퀴 천천히 돈다. 자리에 앉는다.
  준성, 하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민영, 하수에서 등장. 자리에 앉는다.
  준성, 민영 앞에서 멈춘다.
   
준성 안녕하세요.
민영 예, 오셨네요. 일은 어떻게 잘 돼 갑니까?
준성 뭐 그냥···.
민영 (테이블에 놓여 있는 서류를 보면서) 요 다른 분들은 벌써 이만큼씩 했는데.
준성 아, 벌써 이만큼이나···.
민영 통장 사본이랑 신분증 사본 준비하셨어요?
준성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서류를 뒤적이면서 꺼내 준다)
민영 (서류를 살피면서) 준성 쌤, 이게··· 일자리 만들겠다는 사업이라. 저번에 얘기하긴 했을 텐데, 사실 이미 복지관에서 올 초에 싹 다 전수조사를 했어요. 그래도 고용을 했으니 억지로, 억지로 일을 시키는 거긴 한데. 이게 좀 그래요. 내가 생각해도 이게 뭔 짓인가 싶네. 돈을 써야 한다고는 하는데, 뭐 너무 갑작스럽게 위에서 옛다 예산, 이러면서 사람 뽑아서 일 시키라고 하니까··· 시키는 저희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원래 계획에 있던 일도 아니고 갑자기 팀 만들어서 진행하는 일인데, (준성 보면서) 나라가 이러면 안 되지. 그렇잖아요, 언제부터 나라에서 노인들 먹여 살렸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컵을 들고선 책상 주변을 걷는다) 아, 물론, 물론 노인복지도 물론, 중요한 문제긴 한데, 이··· 이게 권리와 의무가 같이 가야지. 나도 얼마 안 있으면 노인이지마는,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인 거라 이거요. 여기 지역 살림도 다 노인들한테 뿌려 놓고··· 돈이 있으면 육아에 쓰고 청년들 일자리 만드는 데 써야 이 촌구석에서도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거예요. 근데 정치인들이 그라겠어요? 싹 다 노친네들 표밭인데? 이게 이러면 진짜 미래가 없어요. 근데 뭐 나 같은 사람이야 뭐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사이)
   
준성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면 노인 분들이 참 딱하기도 하더라고요.
민영 그래요···. (자리에 앉는다) 이거 끝나면 기초조사 명단 나올 겁니다.
준성 예···. 알겠습니다.
민영 신속하게! 부지런히!
   
  준성, 민영에게 인사하고 상수로 천천히 걸어간다. 조금 힘겨워 보인다. 무대 중앙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걷는다.
   
준성 (서류와 대문 주소를 살핀다) 45번길 17-2. (평상에 앉아 있는 장수를 발견한다) 안녕하십니까.
   
  장수, 못 듣는다.
   
준성 실례합니다. 어르신?
장수 (준성을 보고) 뭡니까?
준성 안녕하세요. 저는 읍에 노인복지관에서 나왔습니다. 혼자 살고 계신 어르신들 기초조사 나왔어요.
장수 아 됐어요.
준성 네?
장수 필요 없으니 가시라고.
준성 아, 그게···.
장수 내는 받을 것도, 줄 것도 없다 이거요. 그러니까 그냥 가쇼. (일어나서 평상 뒤쪽으로 간다)
   
  (사이)
   
준성 저 어르신, 그러면 혹시 서명만 하나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장수 뭐?
준성 아, 그 제가 여기 조사 나왔다는 확인이 필요한데 괜찮으시면 서명을 좀 해 주실 수 있나 해서요.
장수 (준성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디 사람이요? 서울?
준성 아, 네.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반년 정도 됐어요. 내려온 지.
장수 촌구석엔 뭣 하러. (서류를 달라고 손짓하며) 어디다 쓰면 된다고요?
준성 아, 여기.
장수 젊은 사람이 이게 뭐 하는 거야 여기서.
   
  장수, 평상에 앉아서 서명을 하고는 준성에게 넘겨준다.
   
장수 내 큰 아들놈도 서울서 일하고 있는데, (준성 살피며) 그 젊은 사람이 여서 이러고 살면 못써요.
준성 아, 네···. 그런가요.
장수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나가서 일하고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들 만나면서 진짜 사는 걸 배워야지, 이런 데는 노후 보내려고 오는 거고. 남은 생 마무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와야지. 이 촌구석에 젊은이들이 봤어? 일자리가 있어요? 없지 다 없어. 결혼은 했고?
준성 아, 아직···.
장수 계집도 없는데 짝이나 찾겠나?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죽어 가는 동네라 이거요. 여기 삶은 젊은 사람들이 절대로 이해 못 한다 못해.
준성 하하, 그래도 얼마 안 됐지만 여기 사는 거 좋습니다. 자연도 좋고.
장수 하이고, 늙으면 알아서 좋아진다. 내가 젊었을 적에 서울에서도 살고 부산에서도 살아 보니까 여기 같이 완전히 촌구석은 사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이거야. 도시처럼 살려면 못 산다. 아무것도 없다. 됐고, 그만 가소.
준성 아,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장수, 평상 뒤로 가서 나무 장작을 정리하고 상수로 퇴장.
  준성,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걷는다.
  민영, 전화기를 들고 준성에게 전화를 건다.
  준성, 핸드폰이 두 번 울리면 전화를 받는다.
   
준성 네 여보세요.
민영 다음 주 목요일에는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니까 화요일에 들러서 서류 전달 부탁드려요.
준성 아, 알겠습니다.
민영 수고하세요.
준성 네 수고하세요.
민영 아아, 잠시만요.
준성 네?
민영 추가 명단은 옆 마을에 돌아다니는 분 있죠? 그분한테 전달했으니 받으면 됩니다.
준성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영, 전화를 끊는다.
  준성, 전화를 끊는다. 하수 쪽으로 걷는다. 천천히 걷는다. 민영 앞에서 멈춘다.
  양희, 상수에서 등장. 평상 뒤 나무 장작을 정리한다.
   
준성 안녕하세요.
민영 아이고, 고생하셨네. 많이 도셨어요?
준성 네, 뭐 그냥 도는 거죠. (서류를 건넨다)
민영 왜 이것밖에 안 돼? 요기 어머님들은 이만큼이나 했는데.
준성 아, 다들 많이 하셨네요···.
민영 요 분들은 막 하루에 사십 명도 뽑던데요. (전화가 온다) 분발하셔야겠네. 잠시만요. (전화를 받는다) 네, 전민영입니다. 예. 아, 예예. 그랬어요? 제가 담당자님께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예예,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는다) 그래서··· 뭐 필요한 거 있습니까?
준성 아, 아니요. 오늘 이거 전달해 달라고 하셔서 왔어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민영 준성 쌤. 이게 지금 두 달짜리 일이지마는 열심히 해 주셔야 우리도 더 챙겨 드릴 수 있어요. 지금 내부적으로 선생님이 제일 느린 거 아시죠? 물론 많이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래도 보이는 게 그거다 아닙니까? 어제는 한 분이 그··· 일하는 속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나가는 월급은 다 똑같다 아닙니까? 불만이 생기죠. 그런 불만이 생겨도 결국 돈은 그대로 지급되긴 합니다만··· 그게 우리 입장에서도 좋아 보이지가 않은 게··· 무슨 말인지 알죠?
준성 네. 그럼요. 알겠습니다.
   
  민영,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성, 천천히 상수로 이동한다. 천천히 발걸음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걷는다. 숨을 고른다. 닫혀 있는 대문 앞에 선다.
  민영, 하수로 퇴장.
   
준성 (서류를 본다, 문을 두드리며)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문을 다시 두드리며) 누구 안 계세요. 김양희 님 계십니까. (더 세게 문을 두드리며) 안에 누구 안 계세요. 김양희 어르신 계신가요.
   
  (사이)
   
  준성, 돌아가려고 몸을 돌려 걷는다.
  양희, 평상 뒤쪽에서 계속 듣고 있다가 문으로 온다.
   
양희 누구야?
   
  준성, 양희를 본다.
   
준성 (양희에게 다가가면서) 아,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 노인복지관에서 나왔습니다.
양희 어디?
준성 노인복지관이요. 혹시 괜찮으시면 안으로 들어가도 되나요?
양희 복지관? 어어, 들어와. (평상에 앉는다)
준성 (평상으로 가서 앉으면서) 아 네 감사합니다. 노인복지관에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기초조사를 하는 중입니다. 간단하게 설문조사를 할게요. 괜찮으시죠? (바로 서류를 꺼낸다) 그 지금 혼자 사시는 거 맞죠?
양희 그치
준성 (서류에 체크하면서) 자녀는 몇 분이세요?
양희 다섯 명.
준성 아들딸?
양희 아들 셋, 딸 둘.
준성 이 집은 자가?
양희 그치.
준성 수입?
양희 없지.
준성 경로당?
양희 가지.
준성 얼마나?
양희 만날.
준성 건강은?
양희 (몸을 구석구석을 두들기면서) 이 나이 되면 성한 곳이 없어. 다 고장 났지.
준성 (서류를 보며) 네, 얼추 된 것 같고··· 그럼 어르신 도장 있으시죠? 도장 좀 찍을게요.
양희 도장?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도장 있지. 잠깐만 기다려 봐.
   
  양희, 상수로 퇴장.
  준성, 서류를 얼추 보고 평상에서 일어나 집 구경을 한다.
   
준성 와, 어르신 집 관리를 진짜 잘하셨네요. 엄청 좋아요.
   
  (긴 사이)
   
  장수, 상수에서 등장. 도장을 준성에게 건넨다.
   
장수 인주가 있나?
준성 네. 여기 가지고 있습니다. (주머니에서 인주를 꺼내고 도장을 서류에 찍는다) 감사합니다. (집을 보면서) 이거 다 어르신이 만드신 거세요? 집이 너무 좋아요. 저기 저 신발장인가? 서랍장이랑, 저 나무 창문도 이쁘네요?
장수 원래 목수일 했다. 몇 해 전만도 여서 잘나가는 목수였지. 허리를 다쳐서 일도 못 하고 그냥 틈나면 간간이 등산이나 조심히 하면서 죽는 날만 기다리는 중이야.
준성 아··· 근데 실력이 정말 좋으세요. 여기 집도 참 예쁘고, 경치도 너무 좋네요. (앞을 본다)
장수 처음에나 좋지 만날 보면 어딜 가나 똑같지. 이런 풍경은 (사이) 며느리들이나 올 때 좋아하더라. 손주들이랑. (사이) 내가 죽으면 누가 내려는 올라나. 아무도 안 살면 이 집도 수명이 다한 게지. (앞쪽을 보면서) 저 집 보이지? 창 크게 난 집.
준성 네네 보여요. 좋네요?
장수 좋긴 뭐가 좋아. 저 집 자리가 원래 내가 지었던 집이 있었어. 근데 그 망할 노친네 지하에 눕고 나서 그 자식 놈이 바로 지 별장을 새로 짓더라고. 봐 봐 저게 어디 이런 시골에 어울리는 집이야?
준성 아.
장수 정 씨도 틈만 나면 자식 놈 욕을 바가지로 하던 게 생각이나. 생전에 찾아오지도 않던 놈들이 노인네 돈이나 빼돌리고. 어휴. 사는 게 이런 거지 하면서도 다시 생각하면, 아직도 혈기가 남았나 여 가슴에 뜨거운 게 치밀더라니까. 씨부럴. 나도 아직 죽기는 아쉬운가 봐. 젊음이 어디 갔나. 참내.
   
  (사이)
   
준성 그··· 저···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다른 집도 들러야 해서요. 수고하세요.
장수 그래. 그래. 가 봐야지.
   
  준성, 무대 중앙으로 이동한다. 가만히 서서 정면을 본다.
  민영, 하수에서 등장. 자리에 앉는다.
  장수, 상수로 퇴장.
   
  조명이 파랗게 바뀐다. 물결이 비춘다. 가벼운 파도 소리, 몽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파란 조명에 계속 물결이 친다.
   
  민영, 무대 중앙의 준성 옆으로 온다.
   
민영 놀랐겠어요.
준성 네, 뭐···.
민영 고생이죠. 이게 다. 나도 조사 다닐 때 며칠 방치된 할머니도 보고 그랬는데. 참··· 이제 나이가 드시면 언제 어떻게 가실지 모르니까. 저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도 빨리 확인이 되죠.
준성 네.
민영 옆에서 지켜보면 늙은 게 외로운 거예요. 혼자여서가 아니라.
준성 네···.
민영 나도 아침마다 몸뚱이 세우고 하는 게 벌써 힘든데, 어르신들은 더하겠죠. 그렇게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한 번 더 고독해지는 거고, 결국 늙는 길이 허망한 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준성 저번 주에 어느 할머니는 절 보자마자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돈도 없고 너무 힘들다고. 근데 제가 뭘 하겠어요? 그냥··· 그냥 알반데, 일 때문에 돌아다니는 건데. 그래도 말해야죠. 알겠다고, 도와드리려고 이렇게 조사 나온 거라고.
민영 ···.
준성 별거 아닌 말에도 고맙다고, 고맙다고 계속하시는데··· 제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지.
민영 모니터 앞에만 앉아서 현장에 다녀온 조사원들이 건네준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이면 뭐랄까··· 굉장해요. 여기 사는 수많은 노인들이 한눈에 담기는 거예요. 숫자가 돼서.
준성 통계네요.
민영 그래요. 통계. 아침마다 엑셀을 열고 가만히 숫자들을 보다 보면 참 냉정하죠. 냉정하고 굉장해요. 물론 마음을 둘 자리는 없죠. 우리 마음은 사막의 모래 알갱이만도 못해요. 바람에 휙휙 날리는 모래 알갱이, 스크롤만 따라서 흘러갈 것들. (사이) 그렇게 건조하게 일하다 보면, 여기는 희망이 안 보여요. 어르신들 가시고 차례대로 우리도 늙어 가고··· 이곳에 무슨 변화가 생기긴 하겠어요? 준성 씨도 느끼겠지만요.
준성 고행 같아요. 저 멀리서 여기까지 한참을 걷고 걸으며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는 거요. 어쩌면 고행을 하는 거예요. 이 집 저 집을 찾고 끝없이 걷고 닫혀 있는 대문을 두들기고, 만나고, 다시 돌아 나오는···.
민영 그래도. 뭐.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야지.
   
  민영, 준성에게 인사하고 하수로 퇴장.
   
  물결치던 조명은 사라지고 침묵과 건조한 빛만 남는다.
   
  (사이)
   
  준성, 평상에 걸터앉는다. 일어나서 하수로 걷는다. 거칠게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걷는다. 테이블 앞에 도착하고 다시 상수로 걷는다. 걸음 속도는 점점 더 느려지고 힘겹다. 평상에 도착하고 다시 하수로 걷는다. 테이블에 도착하고 다시 상수로 걷는다. 힘겹다. 평상에 도착하고 다시 하수로 걷는다.
  민영, 하수에서 등장. 손에는 종이컵이 들려 있다. 테이블 앞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키보드를 두들긴다. 기지개를 켰다가 다시 차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수환, 상수에서 등장. 평상에 앉는다.
  준성, 민영에게 인사하고 상수로 걷는다. 수환을 발견한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수환이 앉아 있는 평상 쪽으로 걷는다. 중간중간 숨을 고른다. 옷매무새를 다듬고서 수환 앞에 멈춘다.
   
준성 (숨 고르며) 실례합니다. (서류를 들쳐 본다) 박수환 어르신 맞으세요?
   
  수환, 가만히 앞만 보고 있다.
   
준성 어르신?
   
  수환, 고개를 돌려 준성을 바라본다.
   
  빠르게 암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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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콤마 희곡

이영녀와 윤심덕과 그리고 나

이영녀와 윤심덕과 그리고 나 신은수 등장인물 김우진. 이영녀. 오일삼. 윤심덕. 1925년, 늦은 저녁. 상성합명회사의 작은 사무실 안. 한쪽 벽면엔 업무 서류들이 쌓인 책장. 전화기가 놓인 책상에는 쓰고 있던 원고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사무실 안에는 작은 테이블과 소파가 있다. 수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김우진. 옆에 놓인 물컵과 약봉지. 김우진 하루하루 정말 미칠 지경이야··· 돈과 직위?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가꿔 이룬 것들이라면 애착이라도 있겠지만, 모두가 아버지 것들인데··· 난 그저 장남으로 태어난 책임으로 꼭두각시처럼 있는 거라고. 아무리 좋은 먹이를 매일 갖다 줘도··· 새장 속의 새가 행복하겠나. 지금 내 신세가 꼭 그래, 누구보다 자유로워야 할 예술가가 말이야. 이러다간 날개가 퇴화돼··· 어느 때부턴 나는 법조차 잃어버릴까 두렵다고. 약봉지를 힘겹게 뜯으며. 김우진 그래서 오늘도 쓰고 있다네. 이런 밤늦은 시간에 부친께서 앉힌 사장 역할이 끝나면, 나는 법을 잊지 않으려 말일세. 지금 쓰고 있는 것 말인가? 조선판 입센의 인형의 집, 노라인데··· 잘 풀리지가 않아. 막바지 3막으로 가고 있지만, 과연 지금의 조선 현실서 착취 속에 사는 궁핍한 여성이 자아를 찾아간단 것이 가능한 얘기인지··· 써 본들 사람들이 보고도 공감 못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뭐라 했나, 윤심덕? 당황해 말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김우진 이보게,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다고. 안 만날 걸세, 지금 윤심덕이가 어디 살고 있던 내 알 필요 없잖은가?! 그래, 그 추잡한 소문들을 여기서도 전부 다 듣고 있다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면, 밖을 향해서. 김우진 밖에 누군가. (수화기에) 잠시만··· 급하게 원고들을 구석에 숨겨 놓으면, 조심스레 문을 열고 오는 오일삼. 오일삼 접니다, 사장님. 김우진, 안도하는 표정. 오일삼 아! 전화 중이신데··· 불쑥, 실례했습니다. 김우진 (수화기에) 회사 직원이야, 신경 안 써도 돼. 나도 잘 모르겠네··· 언제 완성될지는. 얘기했잖은가, 마지막 부분에 글이 막혔다고. 다 쓰면 우선은 자네가 있는 토월회 쪽으로 보낼 테니, 한번 읽어 보라고. 오일삼 하하하. 편하게 계속하십시오. 김우진 이영녀일세. 주인공 이름 그대로가

  • 신은수
  • 2024-11-21

문장, 콤마 희곡

여전히 진행 중, 우리는

여전히 진행 중, 우리는 최해인 현실 김기훈 – 소설 속 다른 인물을 대역한다 소설 김기훈 교수 현실 김기훈의 지도교수 연구실 및 소설 속의 여러 공간 현재 1장. 무대 중앙을 기준으로 끝에서 끝까지 세로로 긴 책상 두 개가 있다. 책상 사이로 한 사람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책상 위에는 연극 포스터가 깔려 있고, 그것을 긴 유리가 덮고 있다. 마치 박물관 같다. 긴 책상을 기준으로 하수는 지도교수의 공간, 상수는 소설 속의 공간이다. 하수 아래에는 지도교수 책상이 있고, 지도교수는 객석을 향해 앉아 있다. 하수 위에는 책장이 있고, 안에는 각종 책이 가득 꽂혀 있다. 상수에도 의자가 있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교수 들어오세요. 현실 기훈이 등장한다. 교수는 기훈을 쳐다보지 않는다. 교수 거기 앉아 있어. 현실 기훈, 의자에 앉는다. 교수 포스터 나왔어? 현실기훈 아직이요. 교수 거기 자리 있으면 하나 넣어놔. (사이) 근데 지난 학기 힘들었어? 갑자기 제주도 다녀오고. 기훈아 이 바닥은 박사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선물은 안 사 왔지? 받고 싶어도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세상에는 비밀이 없어요. 현실기훈 교수님, 제가 보내드린 거 읽어 보셨어요? 교수 뭐? 현실기훈 금수일보에서 당선된 소설이요. 메일로 보내드렸는데요. 교수 아 뭐 하나 왔던데 소설이었어? 그런 걸 읽을 시간이 어딨니. 현실기훈 그렇군요. 사실 그거 때문에 온 거예요. 교수 할 말이 있다는 게? 현실기훈 교수님께 답을 듣고 싶어서요. 교수 뭔데 그래? 현실기훈 (가방에서 인쇄한 소설을 꺼내며) 소설 읽어 보실래요? 교수 시간 없다니까. 빨리 말해. 현실기훈 누가 제 얘기를 썼습니다. 교수 무슨 소리야? 현실기훈 (소설을 들며) 이거 제 얘기입니다. 교수 (그제야 기훈을 쳐다보며) 자세히 얘기해봐. 현실기훈 소설 주인공 이름이 김기훈입니다. 소설의 김기훈도 대학원을 다닙니다. 그리고 소설의 김기훈은 일광시에서 주관하는 희곡상을 받았고요. 교수 잠시만, 너잖아. 현실기훈 말씀드렸잖아요. 교수 누가 썼어? 당선작가 이름이 뭐야? 현실기훈 가까이에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교수 우리 가까워, 다 들리니까 거기서 얘기해. 현실기훈 그쪽으로 갈게요. 현실 기훈, 교수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교수 여기는 못 들어온다고 했지? 어디 건방지게, 당장 안 나가! 현실기훈 제발 제대로 좀 들어보세요. 교수, 현실 기훈의 큰소리에 당황한다. 무대 상수에 소설의 기훈이 등장한다. 소설 기훈은 통화를 하고 있다. 현실 기훈은 교수에게 소설을 읽어준다. 현실기훈 주민등록증과 통장 사본을 보내 달라는 전화였다. 시상식 날짜는 추후 공지하겠다 하고는 잠깐의 정적이

  • 최해인
  • 2024-10-15

문장, 콤마 희곡

• 으로 사라지는 세계

●으로 사라지는 세계 조제인 인물 정아 - 준의 동생. 연수 - 정아의 친구. 준 - 정아의 언니. 점 - 모든 것. 시간과 공간 점 하나의 순간마다 달라진다. 맨 처음 점과, 맨 뒤의 점만 순서가 유지되면, 장마다(점마다)의 순서는 바꿔도 좋다. ● 밝고 일상적인 빛 같은 것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점 하나가 있다. 점 나는 점. 사이 점이 숨 쉬려는 소리. ● ● 밝은 방. 정아와 준, 그리고 점이 있다. 정아는 어떤 것은 신중하게, 또 어떤 것은 대충 넘기며 여러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다. 정아 언니. 점 응. 정아 잘 있음 됐어. 정아, 계속 동그라미를 그린다. 정아 언니. 준 응. 정아 그거 기억나? 점 뭐? 정아 우리가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 준, 정아를 아주 자세히 본다. 점 나지. 정아 나 사실 그때부터 언니가 불쌍했다. 준 그랬구나. 정아 불쌍해서 미칠 것 같았어. 그래서 그 약속. 하기로 한 거야. 점 어쩐지. 정아 우리 사실 별로 안 친했잖아. 준 맞아.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지. 정아 자주 싸웠고. 점 진짜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걸로도. 정아 나는 사실 약속 같은 거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 준 미안해. 정아 미안할 건 없지. 준 그래도. 정아 언니. 준 응. 정아 절대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점 네 동생한테 말해. 준 집 안이 너무 어두운 데도? 정아 창문으로 뛰어내려도 안 돼. 점 점은 도망 같은 거 못 간다고 해. 준 고작 이 층 밖에 안 되는 데도? 정아 사라지면 안 돼. 준 ···. 정아 무슨 일이 있어도. 점 점은 그런 거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고 해. 준 그럴게. 정아, 만족한다. 사이 정아 언니. 준 응. 사이 정아 잘 있으면 됐어. ● ● ● 밝은 방. 밝은 빛 속에 준과 점이 있다. 준 인생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 않아? 점 나는 그런 거 몰라. 준 누군가 널 잡고 길게 늘이면 알 수 있게 될 거야. 점 나는그런거몰라. 준 이래서 점들이 부러운 거야. 사이 점 슬퍼하지 마. 점은슬픔같은것은몰라야돼. 나는 너 때문에 그 단어를 알았어. 내내 모르다가. 불쾌해. 준 미안해. 아니, 고마워. 점

  • 조제인
  • 2024-09-24

문장, 콤마 희곡

롤러코스터의 밤

롤러코스터의 밤 김성배 때 현대 곳 강으로 남북이 나뉘어져 있는 어느 도시 등장인물 선기 29세, 취업 준비생 정기 29세, 선기의 형, 편의점 직원 데니스 30세, 한국계 입양아, 영어 강사 유자 29세, 정기의 고교 동창, 작가 무대 기본적으로는 빈 무대. 장면 전환에 따라 간단한 대소도구들이 그 장면의 특징을 드러내 줄 수 있으면 된다. 1장 조명이 들어오면 밤 열 시. 빌라 응접실. 유자와 정기,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자 누가 온다고? 정기 동생. 유자 동생이 있었어? 정기 그런가 봐. 유자 뭔 말이 그래? 정기 내가 다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거든. 나는 엄마가 키웠고 동생은 아버지가 키웠어. 근데 부모님 사이가 워낙 안 좋아서 한 번도 왕래가 없었어. 유자 단 한 번도? 정기 부모님이 약속을 했었대.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경계로 엄마는 나랑 남쪽에서, 아버진 동생이랑 북쪽에서 지내기로 하고 절대 강을 넘어가지 않기로. 그럼 우연히 마주칠 일도 없을 테니까. 유자 왜 그렇게까지 하셨지? 정기 마주치기가 죽기보다 싫었나 보지. 유자 그래도 살다 보면 강을 넘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안 그래? 정기 내가 아는 한 엄마는 절대 저쪽으로는 안 갔어. 그러는 걸 본 적이 없어. 이쪽도 있을 건 다 있으니까. 유자 넌? 정기 내가 저쪽으로 넘어가는 거 본 적 있어? 유자 음··· 그러고 보니 없었던 것도 같고? 넌 왜 그러는 건데? 정기 몰라.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게 당연해진 건지. 학교도 이쪽에서 나왔고 워낙 이쪽에서만 뭘 했으니까 저쪽으로 넘어가는 게 안 내켰는지도 모르고. 근데 솔직히 말하면 어쩌다 한 번씩은 넘어갔거든. 근데 맘이 안 편해서 금세 돌아오곤 했지. 유자 어쨌든 다섯 살 때 이후로 동생을 이번에 처음 보는 거네? 정기 그렇지. 유자 어떻게 연락이 됐는데? 정기 메일이 왔어. 여기 와 보고 싶다고 해서 주소를 알려 줬어. 유자 반갑겠네. 정기 잘 모르겠어. 그냥 묘해. 아, 근데 우린 쌍둥이야. 유자 그래? 정기 응. 어렸을 땐 동생과 내가 서 있음 누가 누구인지 부모님도 몰라봤어. 유자 지금은? 정기 모르지. 자라면서 얼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데니스, 등장한다. 유자 왔어? 데니스 (소파에 주저앉으며) 완전 피곤해. 유자 술 마셨어? 데니스 조금. 유자 누구랑? 데니스 강의 마치고 친구 좀 만났어. 유자 어떤 친구? 데니스 집 있는 친구. 몇 달만 재워 줄 수 있냐고 물어봤거든. 유자 뭐래? 데니스 안 된대. 유자 왜? 데니스 큰 개를 두 마리 키우는데 그놈들이 예민해서 낯선 사람이 있으면 소화불량에 걸린대. 예전에도 사촌동생이 일주일 머물다 갔는데 두 마리

  • 2024-09-04

문장, 콤마 희곡

불란서 특파단

불란서 특파단 기하라 곳 파리 때 1900년 등장인물 민영찬 도편수 꼬막손 여주인 미브렐 죠 지 모리스 *미브렐과 모리스는 1인 2역이다. 0. 미완 무대. 신비한 우주가 펼쳐져 있다. 중앙에 태양이 있고 수성, 금성, 지구, 달, 화성이 주변을 수놓고 있다. 각 행성은 한지로 마감되어 색이 칠해져 있다. 태양은 황금색, 수성은 파란색, 금성은 붉은색, 지구는 녹색, 달은 회색, 화성은 보라색이다. 특히 지구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어 근대적인 지구본을 연상시킨다. 사이. 젊은 시절의 도편수가 무대로 난입한다. 우주의 고요가 깨진다. 식은땀이 흥건한 그의 얼굴에 사느냐 죽느냐, 긴장감이 감돈다. 태양계를 노려보던 그가 이내 달려든다. 부수고, 바닥에 팽개치고, 잔해를 한데 모은다. 그리고 품에서 부싯돌을 꺼내 불을 붙인다. 솟아오르는 불길. 무대 암전. 1. 좆 화륜선 선창. 공예품이 가득하다. 의복과 장롱, 문방사우와 청화백자, 족자와 거문고, 비단과 가마 등이다. 그 물건들 사이로 몸져누워 있는 도편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지독한 멀미에 시달리고 있다. 옆에는 꼬막손이 오물통을 들고 시중을 들고 있다. 그들은 둘 다 한복 차림이다. 수염이 덥수룩한 도편수는 상투를 틀고 있는 반면,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꼬막손은 단발의 더벅머리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에서 민영찬 등장. 깔끔하게 정리된 콧수염에 단정한 포마드 머리, 양복 차림을 하고 있다. 민영찬 (관객을 바라보며)자네가 바로 사르탈레 통역관이군. 불란서인이라지? 용케 우리나라 말을 배웠구먼. 내 말을 잘 듣게. 나는 불란서 말도 하고 아메리카 합중국 말도 한다네. 하지만 저쪽에 있는 저 둘은 외국어를 전혀 하지 못해. 그러니 불란서에 도착하면 저 두 사람 곁에 바짝 붙어서 통역을 전담해 주게. 뒷간이든, 잠자리든 무조건 따라가서 그야말로 번갯불처럼 재빨리 통역을 해 달라 이 말일세. 그게 바로 자네의 역할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당부를 마친 민영찬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간다. 도편수가 꼬막손의 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킨다. 민영찬 몸은 좀 어떤가? 도편수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송구할 따름입니다. 민영찬 보름 안에는 도착한다고 하니 며칠만 더 참게. 민영찬의 시선이 바짝 엎드린 꼬막손에게 향한다. 민영찬 스승을 극진히 보살펴야 할 것이야. 꼬막손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나리. 꼬막손이 벌벌 떠는 사이 도편수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들어 민영찬을 바라본다. 도편수 나으리. 소인이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민영찬 뭔가? 도편수 그······불란서란 곳이 대체 어떤 곳입니까? 민영찬 대국이네. 그렇게만 알면 되네

  • 2024-09-04

문장, 콤마 희곡

우리는 왜 이럴까

우리는 왜 이럴까 최원종 등장인물 현우 (남편, 38세) 수연 (아내, 39세) 장소 결혼식 피로연장 서울타워 전망대 에덴파크 모텔방 현우와 수연의 아파트 병원의 입원실 돌잔치 뷔페 홀 *** 프롤로그 - 결혼식장 정장 차림의 두 남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자줏빛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등과 짙은 감색 정장 슈트를 입은 남자의 등. 둘은 나란히 함께 서 있지만, 뒷모습은 왠지 쓸쓸해 보인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저 앞쪽의 풍경은 화려한 불빛들로 가득해 눈이 부시다. 그 불빛 속에서 사람들의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잠시 후, 신랑 신부 행진곡이 울리며 암전. 1장. 결혼식 피로연장 홀로 테이블에 앉아 있는 현우. 그의 뷔페 접시에는 단출하게 초밥 몇 개가 올려져 있다. 현우는 피로연장 넓은 홀 중앙 벽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결혼식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스크린으로는 현우의 친구 형석과 혜은이의 결혼식이 생중계되고 있다. 현우는 속이 더부룩한지, 가방에서 까스활명수를 꺼내 따서 마신다. 한 병을 마시고, 다시 한 병을 더 따는 현우. 수연이 뷔페 접시에 음식을 잔뜩 담아 들고 테이블로 온다. 수연은 까스활명수를 마시고 있는 현우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까스활명수를 홀짝이는 현우. 현우 이렇게 밥 먹고 있어도 되나. 수연 ··· 현우 잘못을 저지르는 기분이야. 수연 보고 싶으면 저걸로 봐. 현우 그게, 직접 보면서 손뼉도 치고 그래야지, 이렇게 보는 거하곤 다르지. 기념 촬영도 해야 하고. 수연 까스활명수가 와인이니? 홀짝홀짝 마시게. 현우 새벽에 고추장에 밥 비벼 먹었더니. 수연 호박죽이라도 갖다 먹어. 현우 어. 근데 기념 촬영은 해야 하지 않을까. 평생 남는 게 사진인데. 이왕 온 거 얼굴도장은 확실히 박아야지. 수연 혜은이 뒤에서 찍게? 현우 나 형석이 친구거든. 당연히 형석이 뒤에서 찍어야지. 수연 나 배고파. 사진 찍는 게 중요해, 나 배고픈 게 중요해? 현우 너 배고픈 게 중요하지. 수연 그럼 앉아 있어. 현우 응. 아니. 수연 그럼, 가. 네 마누라 놔두고 가. 네 마누라가 여기 이렇게 혼자 앉아서 밥 먹고 있으면 참 불쌍해 보여서 좋겠다. 현우 불쌍하긴. 그냥 결혼식에 왔으니까 결혼식을 보자는 거지. 수연 스크린으로 봐. 다 생중계해 주는데. 현우 괜찮아. 다 끝나고 사진만 찍지 뭐. 수연 (쳐다보는) 현우 알았어, 알았어. 사진 안 찍어. 깨끗이 포기할게. 수연 누가 뭐래? 현우 너 화나면 무섭잖아. 수연 내가

  • 2024-08-19

문장, 콤마 희곡

모자이크 하우스

모자이크 하우스 김마딘 등장인물 남자 할머니 엄마 아빠 여자 친구 의사 0. 약 14개월 전. 인적이 드문 밤길. 장맛비가 미친 듯이 내리고 있다. 주위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한 대가 멀리서부터 달려온다. 전조등 불빛이 점점 가까워진다. 순간! 바퀴가 미끄러지는 끼익 소리가 들리더니···. 쿵. 가벼운 메아리가 울린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다시 빗소리만 남는다. 깜··· 빡, 깜··· 빡, 전조등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남자가 운전석에서 빠져나온다. 조수석의 여자가 얼핏 보인다. 남자 ······. 남자, 여자를 건드려 본다. 반응이 없다. 남자,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남자 ······. 남자, 도망친다. 1. 현재. 거실. 9월 초. 밤 11시. 엄마, 맥주를 마시고 있다. 엄마 하···. 물 내리는 소리. 엄마, 화장실 쪽을 바라본다. 엄마 ······. 할머니, 화장실에서 나온다. 엄마 물 아깝게···. 할머니 ······. 엄마 갔다 오실래? 할머니 ······. 엄마 어머니. 할머니, 손사래를 친다. 엄마 고집부리지 마시고. 할머니 ···됐어. 엄마 괜찮으시겠어? 할머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 ······. 도어락 소리. 엄마 왔어? 아빠, 들어온다. 엄마 왔냐고. 아빠 어어. 엄마 밥은? 아빠 먹었지. 엄마 뭐? 아빠 거기 뭐냐, 회사 앞에. 중국집. 엄마 회식? 아빠 사장님. 엄마 제대로 못 먹었겠네. 아빠 아니야. 잡채밥 괜찮더라. 아빠, 맥주 캔을

  • 김마딘
  • 2024-08-16

문장, 콤마 희곡

레테

레테 - 죽어서 먼 길 떠나는 자들은 레테의 강물을 마셔야 한다. 황수아 민수 도은 소운 할미, 노인(1인 2역) 김순경 이순경 이선숙의원 보좌관 가방잃어버린여자 오토바이를탄남자 * 장면 전환이 많으므로 전체적으로 빈 무대를 활용한다. 평범한 중산층 아파트의 내부 식탁에는 2인분의 식사가 차려져 있다. 도은, 밥을 먹지 않은 채 식탁에 앉아 있다.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민수가 들어온다. 민수 먼저 먹지 그랬어. 도은 입맛이 없어서. 민수 (재킷을 벗으며) 가을이 오긴 왔나 봐. 단풍나무가 빨갛게 변했어. 도은 (무미건조하게) 응. 침묵 민수 (침묵을 깨려는 듯) 오늘 아주 웃긴 일이 있었어. 역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는데 말이야. 바람 소리 민수 한 여자가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거야. 것도 루이비통 가방을. 도은 왜? 민수 떨어트렸대. (무언가가 생각난 듯 웃는다.) 집에 가서야 알았대. 그게 말이 돼? 핸드폰도 아니고 지갑도 아니고 어떻게 가방을 떨어트리고도 몰라? 도은 나도 그런 적이 있는걸. 민수 그렇게 비싼 가방을? 도은 가능해. 민수 꼭 장난 전화 같았어. 내가 물었어. 어떻게 그런 가방을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무언가 생각난 듯 웃는다.) 2호선 라인을 하루 종일 맨발로 돌아다니는 한 나이 든 남자가 있거든. 도은 왜? 민수 모르지. 정신이 이상한지 머리에는 비뚤어지게 가발을 쓰고 손에는 쿠킹호일 구깃구깃 접은 걸 들고 다녀. 그리곤 사람들을 정면으로 노려보는 거야. 도은 그게 뭐? 민수 무섭잖아. 도은 왜? 민수 손에 든 게 얼핏 보면 칼 같거든. 도은 ······. 민수 하여튼 그 남자를 보고는 도망을 쳤대. 가방을 떨어트린 줄도 모르고 뛰었다는 거야. 도은 (무표정하다.) 응. 민수 (도은을 바라보지 않은 채 말을 이어 간다.) 근데 그 전화를 끊자마자 한 젊은 남자가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역무실로 들어온 거야. 계단에서 주웠다고. 도은 ······. 민수 신기하지 않아? 도은 뭐가? 민수 타이밍 말야. 도은 (바람 소리 더욱 세차게 들린다. 창밖을 바라본다.) 꼭 비명 소리 같지 않아? 민수 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도은 차라리 창문을 열까? 저런 애매한 바람 소리가 너무 싫어. 꼭 놀리는 것 같잖아. (창문 쪽으로 걸어간다.) 민수,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밥을 먹는다. 도은, 식탁으로 걸어오다가 TV를 켠다.

  • 2024-08-06

문장, 콤마 희곡

마스터 클래스

마스터 클래스 박현정 등장인물 마에스트로 80대 남, 거장 지휘자, 지휘과 교수 시안 33세 여, 한국인, 지휘과 대학원생 맥시밀리언 21세 남, 독일인, 지휘과 대학원생 무대 마에스트로의 개인 연습실 그랜드 피아노 한 대, 책장을 채운 악보들, 보면대와 지휘봉, 삼인용 소파와 일인용 소파, 그 가운데 거대하지만 낡은 의자 하나 배경 2020년대, 독일 베를린의 음악학교 지휘과 1장 맥시밀리언, 시안에게 악수를 청한다. 어정쩡하게 악수하는 둘. 맥시밀리언, 시안에게 일인용 소파에 앉으라고 에스코트한다. 시안, 자리에 앉고, 맥시밀리언, 떨어진 곳에 앉는다. 맥시밀리언 중국이었나? 사이 시안 한국. 맥시밀리언 (민망해하며) 아, 한국. 맞다, 한국이랬지. 시안 응, 한국. 맥시밀리언 헷갈려서. 시안 내 이름이 좀 그래. 맥시밀리언 이름도 그렇고, 워낙 중국 애들이 많으니까. 시안 한국 애들도 많아. 맥시밀리언 중국 애들이 더 많잖아. 사이 맥시밀리언 너 영어 잘한다. 시안 너도. 맥시밀리언 나도? 시안 응, 너도. 사이 맥시밀리언 나한테 영어 잘한다는 사람은 처음인데? 시안 너 미국인 아니잖아? 영국인도 아니고. 근데 네가 영어를 잘하는 건 당연하고, 내가 영어를 잘하는 건 칭찬받을 일이야? 맥시밀리언 너 좀 공격적이다. ··· 내가 싫어? 시안 싫지 않아. 맥시밀리언 나도 네가 싫지 않아. 시안 아니! 솔직히 좀 싫어. 맥시밀리언, 어이없다는 듯 일어서서 맥시밀리언 왜? 내가 왜 싫어? 시안 나는 네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까지도 싫어. 맥시밀리언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시안 넌 영영 이해 못 해. 사이 맥시밀리언 그럼 알 필요 없겠네. 맥시밀리언, 자리로 가 앉는다. 맥시밀리언 마에스트로가 너랑 나, 둘만 따로 불렀어. 시안 부지휘자를 정하려는 거겠지. 맥시밀리언 난 엄마 없이 와 있어서 불편해. 시안 언제까지 엄마랑 다닐 건데? 맥시밀리언 엄만 내 매니저야. 그냥 엄마가 아니라고. 마마보이 취급하지 마. 시안 (웃으며) 너 안경 안 쓰면, 잘 안 보이잖아. 맥시밀리언 그게 뭐? 시안 지난번에 리허설 끝나고, 안경 안 쓴 채로 포디움에서 내려와서, ‘어, 우리 엄마 어디에 있죠? 엄마?’ 맥시밀리언 지금 날 놀리는 거야? 시안 귀여웠다고. 맥시밀리언 넌 늙었어. 시안 알아, 난 늙었지. 맥시밀리언 스물··· 다섯이었나? 시안 짜증 나면서 한편으로는 고마운데 서른이거든? 맥시밀리언 말하는 것마다 틀리네. 시안

  • 박현정
  • 2024-07-30

문장, 콤마 희곡

아연정(雅演亭)

아연정(雅演亭) 박남준 때 조선 선조의 치세 그리고 현대 등장인물 아연정 (대한민국 유형문화재) 이승호 (여행작가) 김학손 (조정의 고위관료) 유회 (조정의 고위관료) 보수반장 (문화재보수반장) 노비 (김학손의 노비) 인부1, 2 (문화재보수반 보수공) 경찰1, 2 (문화재 훼손을 조사하는 경찰) 가면 쓴 대신들 (조정의 관료들) 무대 무대 한편에 아연정과 그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다른 한편은 나무 군락이 모여 있다. 1장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 건너편 독산이 보이는 아연정. 가방을 멘 이승호, 등장. 산책하듯 주변을 둘러보다 아연정에 도착한다. 이승호 (공기 내음을 들이마시며) 공기 좋다! 모든 게 예술이네. 이런 데서 글 쓰면 잘 쓸 것 같은데. 이승호,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건너편 독산과 아연정을 찍는다. 아연정, 등장. 사진을 찍는 이승호를 째려보며 경계한다. 이승호는 갑작스레 등장한 아연정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승호 (긴장한 말투로) 누구세요? 아연정 (계속 째려보며 예의주시한다.) 이승호 전 그냥 방문객이에요. 아연정 (여전히 예의주시한다.) 이승호 (해명하며) 사진만 찍으려고 했어요. 경치가 아름다워서. 근데 거기 계시면 안 되지 않을까요? 문화재에 함부로 올라가면··· 아연정 순진한 표정이네. 이승호 (살짝 겁먹은 듯) 진짜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아연정, 정자에서 내려와 이승호를 빤히 쳐다본다. 아연정 맞네. 이승호 전 여행 작가예요. 아연정을 책에 담고 싶어서 왔어요. 혹시 김학손 선생 후손이셔서 거주하고 계신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마루에 자연스레 오르시길래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아연정 순하게 생긴 놈이 행동은 완전 딴판이네. 어젠 일부러 무시한 거냐? 이승호 (당황한 듯) 예? 아연정 (무시하며 날카롭게) 여기 왜 왔어? 이승호 아까 말씀드렸는··· 아연정 (말을 자르며) 진짜 이유를 대 보란 말이야! 순진한 표정 지으면 내가 모를 것 같아? 어제 여기 왔었잖아! 이승호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아연정 밤마다 찾아와서 때리고 부수고 흔들고. (기단을 가리키며) 어젠 기단 부분을 망치로 부쉈잖아. 체형만 봐도 알아. 내 눈은 못 속여. 불안정한 상태로 서 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네 몸으로 따지면 걸을 때마다 균형이 상실한 거랑 똑같은 거라고. (승호의 정강이를 발로 찬다.) 이승호 (정강이를 부여잡고) 악! 아연정 아프지? 내가 어제 그런 심정이었다, 이놈아! 아연정이 승호를 마구 때리자 승호는 아연정과 실랑이를 벌인다. 이승호 (아연정을 떼어 내며) 에이, 진짜! 책 쓰러 왔다니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잠깐 구경한 것뿐이에요. 할아버지야말

  • 박남준
  • 20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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