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
- 작성일 2024-08-06
- 댓글수 0
레테
- 죽어서 먼 길 떠나는 자들은 레테의 강물을 마셔야 한다.
황수아
민수
도은
소운
할미, 노인(1인 2역)
김순경
이순경
이선숙의원
보좌관
가방잃어버린여자
오토바이를탄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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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전환이 많으므로 전체적으로 빈 무대를 활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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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중산층 아파트의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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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는 2인분의 식사가 차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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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밥을 먹지 않은 채 식탁에 앉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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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민수가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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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먼저 먹지 그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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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입맛이 없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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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재킷을 벗으며) 가을이 오긴 왔나 봐. 단풍나무가 빨갛게 변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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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무미건조하게)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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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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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침묵을 깨려는 듯) 오늘 아주 웃긴 일이 있었어. 역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는데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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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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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한 여자가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거야. 것도 루이비통 가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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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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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떨어트렸대. (무언가가 생각난 듯 웃는다.) 집에 가서야 알았대. 그게 말이 돼? 핸드폰도 아니고 지갑도 아니고 어떻게 가방을 떨어트리고도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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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나도 그런 적이 있는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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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그렇게 비싼 가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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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가능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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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꼭 장난 전화 같았어. 내가 물었어. 어떻게 그런 가방을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무언가 생각난 듯 웃는다.) 2호선 라인을 하루 종일 맨발로 돌아다니는 한 나이 든 남자가 있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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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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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모르지. 정신이 이상한지 머리에는 비뚤어지게 가발을 쓰고 손에는 쿠킹호일 구깃구깃 접은 걸 들고 다녀. 그리곤 사람들을 정면으로 노려보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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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게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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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무섭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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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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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손에 든 게 얼핏 보면 칼 같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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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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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하여튼 그 남자를 보고는 도망을 쳤대. 가방을 떨어트린 줄도 모르고 뛰었다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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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무표정하다.)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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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도은을 바라보지 않은 채 말을 이어 간다.) 근데 그 전화를 끊자마자 한 젊은 남자가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역무실로 들어온 거야. 계단에서 주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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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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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신기하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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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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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타이밍 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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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바람 소리 더욱 세차게 들린다. 창밖을 바라본다.) 꼭 비명 소리 같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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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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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차라리 창문을 열까? 저런 애매한 바람 소리가 너무 싫어. 꼭 놀리는 것 같잖아. (창문 쪽으로 걸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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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밥을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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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식탁으로 걸어오다가 TV를 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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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목소리) |
오늘은 레테로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 마련으로, 레테행 버스에 높은 세율을 부과하기로 한 정부의 대책에 대해 토론해 보는 시간입니다. 먼저 경복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양휘 교수님의 한 말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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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휘(목소리) |
사람들이 레테행 버스에 몸을 싣는 것은 사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살기 팍팍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버스를 타는 것을 틀어막을 것이 아니라, 일단 사람들이 왜 자꾸 떠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우울감, 자신이 증명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자괴감 이런 감정들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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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목소리) |
은평구 이선숙 의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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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숙(목소리) |
만일 교수님 말씀대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우울감이나 증명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문제라면 사회 지도층들이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은 다만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고독과 우울, 교류하지 못하고 인터넷이나 OTT에 빠져 사는 그런 삶의 방식의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진단을 하기 앞서 일단은 사람들의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 제동장치를 거는 것이 정치 사회학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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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리모컨을 뺏어 뉴스를 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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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그만 봐. 온통 우울한 얘기밖에 없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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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오늘 병원에 갔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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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무심하게)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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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정도가 더 심해졌대. 그래서 약을 바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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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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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가방이 생각보다 작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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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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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루이비통 가방 말야. 어깨에 멜 수 있는 긴 끈이 있는 가방인데, 정말 떨어트려도 잘 모르겠더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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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나도 그런 가방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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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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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당신이 사 준 건데 기억 안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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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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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어딘가 어긋나고 어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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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밥 먹는 것을 마무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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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씻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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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방으로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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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 가방······ 언제부턴가 안 보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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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그릇을 챙겨 개수대 안으로 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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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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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창문을 열자 바람 소리가 그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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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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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밝아지면 같은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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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두드리는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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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문을 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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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안녕하세요.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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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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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김순경 신발을 벗고 들어와 집을 살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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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 창문이 열려 있고 커튼이 세차게 휘날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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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언제부터 저렇게 문이 열려 있었나요? (도은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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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어제요. 제가 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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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방충망까지 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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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태연하게)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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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발코니 아래를 살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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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방충망까지 다 열어 놓은 집은 잘 없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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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날씨가 덥고 답답하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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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덥다구요? 어제 비바람 장난 아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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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전 더웠어요. 더운 건 참을 수 있는데. 바람 소리가. 너무 징그럽게 들렸어요. 꼭 여자의 비명 소리처럼. 문틈으로 새어 드는 바람 소리는 정말. 끔찍해요.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 무섭잖아요. 그래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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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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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부군께서… 실종된 걸로 추정되는 시간 현재 15시간째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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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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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사실 이런 경우······ 아무런 징후가 없다가 갑자기 집에서 실종된 경우, 저희는 대부분······ 레테로 떠난 것으로 간주합니다. 요즘 레테로 떠나는 사람들이 들불처럼 번져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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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혹시 부군께서 떠나시기 전에 어떤 특별한 우울 증세가 있지는 않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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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전혀요. 직장에서 있었던 재밌는 얘기를 하며 혼자 웃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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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음. 전형적인 내현적 우울증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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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럴 리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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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내현적 우울의 경우는. 가족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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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우울증 치료는 제가 받고 있었어요. 갖은 약을 다 써 봤지만 효과가 없었죠. 사실 어제는 제가 레테로 떠나려던 날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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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그런데 왜 안 떠나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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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너무 깊게 깊게 잤어요. 일어났는데 침대에 남편이 없었어요. 집 어디에도 없었어요. 일찍 출근한 줄만 알았는데 직장에도 안 갔다고 하니 황망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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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헛기침을 한다.) 일단 어젯밤에는 비바람에 가로수가 쓰러져서 단지 입구 cctv가 모두 불통이었던 걸 확인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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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날씨 한번 요란했죠. 덥기는커녕······ (도은의 눈을 한번 쓱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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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저희가 인근 단지 cctv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는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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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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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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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흘끔흘끔 도은의 표정을 살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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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과 김순경, 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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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로 무대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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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좀 이상하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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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뭐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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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남편이 레테로 갔다는데도. 표정 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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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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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이상하리만큼 태연하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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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그랬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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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걱정도 안 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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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저 분을 의심하시는 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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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아니. 하지만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확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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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요즘 사이좋은 부부도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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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김순경 부부도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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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저희도 그렇죠 뭐. 권태기가 언제 끝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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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오죽하면 가족이 레테로 떠나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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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면피는 안 되죠. 무관심은 침묵의 살인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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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데 자꾸 어디서 그렇게 떠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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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제 주위에도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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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하여튼 사람들이 심지가 곧지 못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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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방임하는 가족이 문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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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그래서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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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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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괜찮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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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네. 괜찮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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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징후가 있으면 언제든 내게 털어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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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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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김순경의 어깨를 두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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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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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밝아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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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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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과 소운, 나란히 앉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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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소운을 쳐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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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도은을 쳐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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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몇 살인데 혼자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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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아홉 살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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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엄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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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저 엄마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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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사이) 혼자 버스 탈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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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버스카드를 보여준다.) 이것만 있음 문제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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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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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아줌마는 몇 살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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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몇 살로 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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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사십 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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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실망한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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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사십 살이 늙은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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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니. 그렇게 늙은 건 아니야. 하지만 젊은 것도 아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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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늙어 보이지도 않지만 젊어 보이지도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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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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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도은의 눈치를 살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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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맞아. 나 사십 살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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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휴.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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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내 눈치 본 거야? 혹시 내가 기분 나쁠까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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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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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철들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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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저희 할머니가요. 제가 철이 빨리 들었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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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런 것 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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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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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줌마도. 너만 한 딸이 있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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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조심스럽게)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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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응. 있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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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아······ 나도 엄마가 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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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어린 애가······ 벌써 무슨 말인지 아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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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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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할머니가 키워 주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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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네. 근데 할머니는 이제 레테로 떠날 거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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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어쩌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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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기억이 없어지는 병에 걸려가지고. 가끔씩 제가 누군지도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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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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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그래서 아예 떠날 거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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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럼 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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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애써 씩씩하게) 보육원에 들어가요. 희망보육원이요. 대기 중인데 곧 순서가 올 거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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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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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할머니는 저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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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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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어? 버스 왔다. 1번 버스. 아줌마는 몇 번 버스 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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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나는 2번 버스. 너 먼저 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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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네. 또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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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소운에게 손을 흔든다.) 또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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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떠나자마자 쿵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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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일어나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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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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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사이렌 소리, 앰뷸런스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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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 |
도은아. 도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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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불빛 들어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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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일어나 할미 쪽으로 걸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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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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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 |
니 잘못 아냐. 그러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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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할머니. 하나만 말해 줘. 울 딸 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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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 |
그런 거 말해 주는 거 아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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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잘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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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 |
쓸데없는 생각 말구 맴을 굳게 먹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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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할머니. 울 딸 잘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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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 |
알아 뭐 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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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나도 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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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 |
그래서 말 안 해 주는 거여. 그냥 잊어. 그게 최선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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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김순경 걸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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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수첩 펼치며) 김소운 양 할머니 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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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 |
맞아요. 우리 소운이 할미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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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이순경에게 속삭이듯) 치매가 있으시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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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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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아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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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뇨. 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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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아까······ 서로 얘기하시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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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제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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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잘못 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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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저기요. 아까 실려 간 건······ 아이······ 맞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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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네. 어쩌다 아홉 살 애가 버스를 혼자 타고 있어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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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다들 멀쩡한데 애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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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설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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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 |
우리 도운이 어딨어? 응? 기운 없을까 봐 한약 지어 왔는데. (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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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애 이름이 소운이라고 하지 않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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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애 이름도 헷갈리나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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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에휴. 이 상황에 그나마 다행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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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그제야 도은을 알아보고) 아. 누구신가 했더니 얼마 전 그분이시네. 남편이 실종되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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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 |
|
이순경 |
결국 레테로 간 것으로 결론 났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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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이순경을 툭 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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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 결론 났어요. 저기요. 아이가 실려 간 병원이 어디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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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그건 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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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가 보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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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
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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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냥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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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
그냥요? 소망병원이긴 한데. |
|
도은 |
감사해요. |
|
할미 |
(도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우리 소운이. 많이 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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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 이순경, 서로를 쳐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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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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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밝아지면 병원 중환자실 앞, 도은이 앉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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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사 분주하게 중환자실을 들어갔다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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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사, 앉아 있는 도은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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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사 |
혹시 김소운 양 보호자 되시나요? |
|
도은 |
아. 그게요. |
|
간호사 |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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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 뇨 |
|
간호사 |
앗. 죄송합니다. |
|
도은 |
저기요. |
|
간호사 |
네? |
|
도은 |
엄마는 아닌데요. 보호자로 면회 될까요. |
|
간호사 |
그럼 가족이신가요? 이모? 고모? |
|
도은 |
아뇨.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는데······. |
|
간호사 |
네? |
|
도은 |
아이 보호자가 따로 없더라구요. |
|
간호사 |
죄송하지만 가족이 아니시라면 면회는 불가합니다. |
|
도은 |
부모님도 없고 할머니는 아파요. |
|
간호사 |
그러니까. 가족은 아니고. 평소에 친분이 있던 이웃도 아닌 거죠? |
|
도은 |
네. |
|
간호사 |
안 된다는 거 잘 아실 텐데요. |
|
도은 |
절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시겠지만······ (사이) 저······ 혹시 아이 있으세요? 이해하실 것 같아서요. |
|
간호사 |
뭘 이해해요? |
|
도은 |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아이. |
|
간호사 |
(한숨 쉰다. 짜증나는 듯 보이지만) |
|
도은 |
······. |
|
간호사 |
(도은의 옆에 앉는다. 위생모자를 벗는다. 고개를 뒤로 젖힌다. 눈물을 빠르게 훔친다.) 3교대라······ 너무 피곤해서 그래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요. |
|
도은 |
네. |
|
간호사 |
제가 옆에 있어 줄게요. 소운이 옆에. |
|
도은 |
······. |
|
간호사 |
이제 다섯 살인데요. |
|
도은 |
네? |
|
간호사 |
제 딸요. |
|
도은 |
이쁘겠다. |
|
간호사 |
장난꾸러기예요. 얼마 전에 다쳤어요. 킥보드 타다가. 이마가 찢어져서 세 바늘 꿰맸어요. |
|
도은 |
저런 |
|
간호사 |
소운이요······ 머리를 많이 다쳤어요. 아마 오늘을 못 넘길 거예요. |
|
도은 |
······. |
|
간호사 |
저렇게 예쁜 아이에게 왜 아무도 안 찾아오나 궁금했어요. 원래는 퇴근해야 하는데 제가 계속 남아 있을게요. 소운이 잘 떠날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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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고마워요. |
|
간호사, 일어나려는 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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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밀려드는 인파(기자들, 경호원들, 이선숙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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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숙, 들어오며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
|
|
기자1 |
이선숙 의원님. 현재 9살 어린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는데요. 만 12세 이하의 어린이는 혼자 버스를 타지 않는 규정을 시행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
|
선숙 |
하필 우리 구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해당 아이는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약 2년 뒤에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혼자 양육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난 실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미혼모에 대한 지원이 빈약했던 점, 아이가 할머니와 둘이 남겨졌을 때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하지 못했던 사회 전반의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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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2 |
그렇다면 은평구의 돌봄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 국가 전반의 문제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기반한다는 말씀이신가요? |
|
선숙 |
네. 맞습니다. 이 모든 것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현재 더 시급한 것은 저 작은 아이가 어떻게든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저도 어린 손녀가 있기에 아이를 보는 입장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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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숙, 눈물을 흘리고 한바탕 플래시 세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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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시끌벅적한 뒤, 기자들 사라지고. 선숙과 보좌관만 남는다. |
|
|
선숙 |
(건조하게) 다음 스케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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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
종로구 김태호 의원의 지지연설이 있습니다. 약 30분 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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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숙 |
애를 볼 시간은 도저히 안 날 것 같아. 애 죽으면 바로 전화해!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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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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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자리에서 일어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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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좌관 |
(간호사 옷깃을 잡는다.) 저기······. |
|
간호사 |
(불쾌한)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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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
아이의 사진을 한 장만 찍어 주실 수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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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
미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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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
아니 사진 한 장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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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
생사를 오간다구요. |
|
보좌관 |
그러니까 죽기 전에 기념사진 한 장 남기자는 것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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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
기념사진? 뭘 기념하는데? |
|
보좌관 |
(간호사의 길을 막으며) 이러시면 곤란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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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보좌관 앞을 가로막으며) 뭐가 곤란한데? 응? |
|
보좌관 |
이 여편네들이 미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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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서 응급을 알리는 벨이 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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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급히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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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손을 크게 들어 도은을 때리려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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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cctv 쪽을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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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손을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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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
미친 아줌마네. (헛기침을 하고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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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래. 나 무서울 거 없는 미친년이야. 미친 맛 좀 볼래? 또 볼 땐 부디 cctv가 없어야 할 텐데. 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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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도은을 무섭게 노려보며 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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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중환자실 앞으로 걸어간다. 두 손 모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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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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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밝아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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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버스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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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이 앉아 있다. 성녀, 도은의 반대쪽 좌석에 앉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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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도은을 흘끔흘끔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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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종점까지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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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어떻게 아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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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반나절 넘게 안 내리길래. 우리 둘만 남았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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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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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중간에 내릴 기회는 있었어. 절망에 대한 인지, 솜털 같은 희망, 파산하고 나서 오는 회생, 자기 합리화, 이런 역들을 다 지나치고 종점까지 버티기가 쉽지 않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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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런가 봐요. 처음에 탈 때는 다들 의지가 넘쳐 보였는데. 어떻게 중간에 다 내리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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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유행처럼 레테 레테 하지만 막상 아무나 가는 건 아니지. 아까 어떤 젊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탄 것 있지? 식겁했다니까. 그래도 내려서 다행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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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걔들은 소풍 못 간다고 아쉬워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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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악수를 청하며) 난 대장암 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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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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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아예 손쓸 수가 없대. 그래서 그냥 맘 편이 떠나기로 했어. 가족한테 짐 안 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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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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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보아하니 아직 건강해 보이는데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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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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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결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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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했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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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근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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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딸이 먼저 떠났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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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혀를 찬다.) 어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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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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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에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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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괜찮아요. 좋은 날 떠났어요. 단풍잎이 빨갛게 변했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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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야. 우리 다 그 중간쯤에서 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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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래요? 전 잘 모르겠어요. 감정이 아예 궤도를 벗어났나 봐요. 그 후론 한 번도 웃어 본 적이 없어요. 근데 남편은 달랐어요. 어찌나 잘 웃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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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서운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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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서운하다기보다. 이해가 안 갔어요. 나보다 더 그 앨 사랑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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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그럼. 그게 진짜 웃는 게 아니었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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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럴 수도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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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그럼. 우리 다 그렇게 사는걸. 억지웃음 지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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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바본가 봐요. 그런 단순한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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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이제 알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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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남편이 떠났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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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어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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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실종됐는데. 경찰이 그러는데. 레테로 갔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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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그랬구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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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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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그래서 따라가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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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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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한 번 더 생각해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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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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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가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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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이미 끝났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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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아이 떠나고 나서 웃지 못했다고 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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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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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울어 본 적은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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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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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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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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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혹시 눈물이 한 방울이라도 난다면 가면 안 되는 거야. 고비사막처럼 통증조차 없을 때 모든 게 다 메말랐을 때. 그때 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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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주머니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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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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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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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난 마르다 못해 딱딱해졌지. 고비사막에서 천 년쯤 산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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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가족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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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아들이 있어. 우리 아들······ 잘 컸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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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어? 아주머니 눈물 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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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눈물을 닦다가 당황하며) 아. 이거 하품해서 흘린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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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가면 안 되는 건 제가 아니라 아주머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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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애를 혼자 키웠어. 애를 위해 살았어. 근데 이제 와서 애한테 짐을 지우라고? 절대 싫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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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떠나는 게 아들을 위하는 거라 생각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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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눈물 주체가 안 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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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저씨! 내려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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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차하는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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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고비사막은요. 무슨. 흘러넘치는 한강이네요. 내리세요. 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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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젊은 사람 말리려다가 왜 내가 울고 자빠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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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어서 내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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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그럼 같이 내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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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싫어요. 전 끝까지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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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성녀를 일으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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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어쩔 수 없는 듯 일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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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돌아가면 안 돼. 아들 힘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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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럼 울 거 다 울고 다시 타면 되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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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버스에서 내린다. 하지만 내리고 나니 안도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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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
새댁은? 정말 메마른 거 맞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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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완전히요. (창밖으로 성녀에게 손을 흔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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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다시 출발하고 도은 버스 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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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창밖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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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소리가 창문을 파고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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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귀를 막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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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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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목소리) |
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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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좀 살살 달려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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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목소리) |
살살 달리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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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조금만 더 살살요. 바람 소리가 너무 소름끼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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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목소리) |
그래? 난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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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이게 안 들린다구요? 비는 또 왜 이렇게 많이 내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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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목소리) |
초가을에 태풍이 오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 천재지변을 어쩔 수 없지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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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레테까지는 얼마나 남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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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목소리) |
이제 두 정거장인데, 강을 건너야 해서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강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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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럼 어떡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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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목소리) |
다음 정거장에서 비상 정차할 테니까 태풍이 사그라들면 그때 다시 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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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다음 정거장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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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목소리) |
뭐 어차피 가는 건데 좀 더 있다 가도 상관없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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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끽 하고 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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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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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밝아지면 길에 서있는 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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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비바람에 머리칼이 날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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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흠뻑 젖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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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도은을 살핀다. 도은에게 다가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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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가방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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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미친 사람을 본 듯 화들짝 놀라며)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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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먼 길 가면서 왜 가방이 없어요? 혹시 당신도 가방 잃어버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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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웬 가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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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아니. 꼭 가방이 아니라도. 뭐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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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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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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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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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사람들은 보통 집에만 있는데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잖아요.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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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자꾸 뭘 모르냐고 묻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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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모르는 것 같아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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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참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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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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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리고 말이 돼요? 밖으로 나오는 이유가? 고작 그거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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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엄청난 이유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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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잃어버린 걸 찾으러 나온다는 게 엄청난 이유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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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물론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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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이해가 안 가요. 가방은 외출할 때 쓰는 건데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건 한때는 그걸 들고 외출을 했었다는 거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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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그렇죠. |
|
도은 |
그러니까 외출을 하는 이유가 가방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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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그렇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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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정리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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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저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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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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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잘났구요. 근데 그거 알아요? 가방을 잃어버린 날 내가 무슨 이유로 외출했는지 기억이 안 나거든요. 그 후론 가방을 찾기 위해 외출했던 기억밖에 없으니까. 당신은 이런 감정 몰라요? |
|
도은 |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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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이런 감정에 논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구요. 세상이 논리로 설명되지는 않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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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알았어요. 알았고요. 자꾸 저한테 뭐 잃어버렸냐고 묻지 말아요. 그럼 저도 논리 따위는 말하지 않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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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
|
|
가방잃어버린여자 |
오해는 말아요. 난. 그냥 당신이 가방 잃어버렸으면 나랑 같이 찾아보자고 한 얘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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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가방에 뭐 귀중품이라도 들었어요? |
|
가방잃어버린여자 |
아뇨. 가방이 비싼 거예요. |
|
도은 |
요즘 비싼 가방 잃어버린 사람이 많나 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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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무슨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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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설마 루이비통? 막 이런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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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네! 어떻게 알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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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어! 혹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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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혹시? 그 가방 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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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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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들었다구요? 제 가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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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뇨. 그 가방에 대해 들었다고요. 남편한테.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남편이 가방 봤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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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남편이 역무원인데 지하철역 분실물로 들어왔었대요. (손으로 묘사하며) 작고 이렇게 줄이 긴 가방이라고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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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맞아요! 제 것도 그런 거예요. |
|
도은 |
근데 그거 주인이 찾아갔다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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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난 찾아간 적 없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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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언제 잃어버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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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일주일 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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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맞아요. 딱 일주일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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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어디 역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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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2호선요. 강남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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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난 거길 간 적이 없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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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잃어버렸다고 전화 걸지 않았어요? 맨발로 다니는 남자? 쿠킹 호일?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네? |
|
도은 |
아. 아니군요. |
|
가방잃어버린여자 |
어떻게 확신해요? |
|
도은 |
아주 단순하죠. 정황의 문제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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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루이비통 가방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요? |
|
도은 |
루이비통 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숫자만큼 가능성은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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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비관론자? |
|
도은 |
딱히 아닌데. 비관론자는 당신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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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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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그렇잖아요.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죽을상을 짓고 서 있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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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잃어버리는 게 좋아요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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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잃어버렸으니까 비로소 소중한 건 줄 알았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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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와 말장난 잘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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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가방에 뭐 특별한 것도 들지 않았다면서요.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무심코) 네. (사이) 네? 아뇨. 특별한 것들이에요. |
|
도은 |
거봐요. 잃어버리니까 그제서야 안에 든 것들도 특별한 게 된 것 같죠? 사실은 가방 가격이 신경 쓰였으면서. 뭐가 들었는지 기억은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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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잃어버린여자 |
립밤이랑. 텀블러. 그리고······ 영수증 몇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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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겨우? |
|
가방잃어버린여자 |
그 사람이 준 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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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조개?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놀이터에서 주운 조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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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놀이터에서 웬 조개? |
|
가방잃어버린여자 |
(화내며) 놀이터에 조개 있거든요. |
|
도은 |
알겠구요. 있다 칩시다. |
|
가방잃어버린여자 |
그날 밤 가로등 밑에서 그 사람이랑 같이 그네를 탔어요. |
|
도은 |
놀이터에서? 어른들이? |
|
가방잃어버린여자 |
어른들도 그네 타거든요? |
|
도은 |
아. 네네. 탄다 칩시다. |
|
가방잃어버린여자 |
그네를 타면서 이야기 나눴죠. 그리고 그 사람이 조개를 주워서 줬어요. 난 그것을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었어요. 그 후로 가방에서 물건을 꺼낼 때마다 모래가 떨어졌는데 일 년이 넘었는데도 계속 나오더라구요. 모래가. |
|
도은 |
그 사람은 남자친구?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남자친구? 가 될 뻔했던 사람. |
|
도은 |
아······ 남자친구 될 뻔했던 사람? 아주 복잡한 관계네요. 지금은 끝난 사이? |
|
가방잃어버린여자 |
아뇨. 그 모래알들이 가방에서 다 사라질 때쯤 끝나겠죠. |
|
도은 |
가방을 뒤집어서 탈탈 털어 냈어야죠.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난 그저 시간을 갖고 싶었다구요. 모래알만큼. |
|
도은 |
그럼 가방을 찾지 말고 차라리 그 사람하고 다시 만나요. |
|
사이 |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떠났어요. |
|
도은 |
어디로?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당신이 가려는 곳. |
|
도은 |
어떻게 알았어요? |
|
가방잃어버린여자 |
그냥 알아요. 그곳에 가면 다만 선 하나가 그어져 있을 뿐인데 그 선을 넘으면 모든 기억을 잃는다죠? |
|
도은 |
그렇대요? |
|
가방잃어버린여자 |
그 사람은 눈 딱 감고 넘어버리면 쉽겠죠. 근데 난? 난 어쩌라는 거야. 생각해 보면 그 사람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구. 지금 당신 같은 눈빛이었어요. |
|
도은 |
어떤 눈빛인데요?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무언가를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린 게 뭔지 모르는 그런 눈빛. 잃어버린 게 있으면서 잃어버렸다고 말하지 않는 똥고집 눈빛. |
|
도은 |
유감이네요. 가방 꼭 찾으시길. |
|
가방잃어버린여자 |
가게요? |
|
도은 |
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
|
가방잃어버린여자 |
저기요. 당신은 뭘 잃어버렸어요? |
|
도은, 몇 발짝 걷다가 뒤돌아서 |
|
|
도은 |
억지로 위로하려 하지 말아요. 짠해서 그래요. |
|
도은, 걷다가 |
|
|
도은 |
내가 착각했을 수도 있겠군요.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뭐가요? |
|
도은 |
그날 남편하고 대화를 끝내지 않았거든요. |
|
가방잃어버린여자 |
네? |
|
도은 |
찾아갔다고는 말 안 했으니까. (무언가를 얘기하려다가) 아녜요. 당신이 진짜 가방 주인일 수도 있다구요. |
|
가방잃어버린여자 |
가능성이 너무 희박한데요. 난 강남역을 간 적도 없는데. |
|
도은 |
언제는 나한테 비관론자냐더니. 희박한 가능성에 배팅 한번 해봐요. |
|
가방잃어버린여자 |
가 볼게요. 혹시 모르니까. |
|
도은 |
네······. |
|
가방잃어버린여자 |
가능성이라는 건 있는 거니까. 당신도 다시 생각해 봐요. 잃어버린 거······ 혹시 알아요. 찾을 수 있을지. |
|
도은 |
그건 못 찾는 거예요. |
|
둘, 서로 잠시 바라보고 서 있다. |
|
|
암전 |
|
|
폭우 쏟아지는 소리 |
|
|
무대 밝아지면 한편에 여인숙 불 들어온다. |
|
|
유리문은 깨져 있고, 간판은 비뚤어져 있다. |
|
|
도은, 내부로 들어가서 머뭇거린다. |
|
|
노인 |
자고 가게? |
|
도은 |
네. |
|
노인 |
버스가 내려 주지? 태풍 때문에 강이 불어난다면서? |
|
도은 |
네. |
|
노인 |
원래 그래. |
|
도은 |
네? |
|
노인 |
강 불어나도 안 넘쳐. 댐 때문에. |
|
도은 |
근데 기사 아저씨는 왜 내려 주신 거예요? |
|
노인 |
하루만 더 생각해 보라고. |
|
도은 |
하루만? |
|
노인 |
국가 방침이야. |
|
도은 |
말도 안 돼. |
|
노인 |
이혼할 때도 삼 개월인가 생각해 보라고 하잖아 왜. |
|
도은 |
네. |
|
노인 |
마찬가지야. |
|
도은 |
그래도 개인의 선택을 이렇게 막아서면 안 되죠. |
|
노인 |
막긴 뭘 막아. 하루만 연장하는 건데. 생각해 보고 내일까지도 가야겠다 싶으면 가면 되는 거야. |
|
도은 |
와 넘하네. |
|
노인 |
빨리 가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
|
도은 |
가족이요. |
|
노인 |
(혀를 찬다.) 어쩌다가. |
|
도은 |
그렇게 되었어요. |
|
노인 |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
|
도은 |
방 있어요? |
|
노인 |
딱 한 개 남았어. |
|
도은 |
방 주세요. |
|
노인 |
(방 열쇠를 주려다가) 좀 비싸. |
|
도은 |
얼만데요? |
|
노인 |
나랑 밥 먹어. |
|
도은 |
네? |
|
노인 |
그럼 공짜. |
|
도은 |
저 배 안 고파요. |
|
노인 |
난 고파. |
|
도은 |
저는 안 고프다니까요. |
|
노인 |
배고프다고 했잖아. |
|
도은 |
제가요? 언제요? |
|
노인 |
방금. |
|
도은 |
그런 말 안 했어요. |
|
노인 |
강이 불어났다고 하지? |
|
도은 |
네? |
|
노인 |
좀 비싸. |
|
도은 |
돈 드릴게요. |
|
노인 |
밥 차려 줘. |
|
도은 |
할머니. |
|
노인 |
왜? |
|
도은 |
왜 그래요. |
|
노인 |
도은아. |
|
도은 |
어? 내 이름 어떻게 알아요? |
|
노인 |
내 손녀 이름인데? |
|
도은 |
왜 장난쳐요 자꾸? |
|
노인 |
(갑자기 다시 정신이 들어오며 열쇠를 준다.) 이층 계단 올라가자마자 왼쪽으로 두 번째 방 201호실. |
|
도은 |
얼마예요? |
|
노인 |
공짜. |
|
도은 |
밥 먹어야 한다면서요. |
|
노인 |
내가 그랬어? |
|
도은 |
네. 같이 밥 먹어야 공짜라고. |
|
노인 |
밥 먹으면 좋지. 근데 밥을 안 먹어도 공짜야. |
|
도은 |
왜요? |
|
노인 |
원래 공짜야. 이거 나라에서 운영하는 거야. 공영여인숙 |
|
도은 |
장난쳐요? |
|
노인, 뒤돌아 싱크대에서 쌀을 씻는다. |
|
|
도은, 계단 올라가려다가 뒤돈다. |
|
|
도은 |
밥 먹어요. |
|
노인 |
(기뻐하며) 그럴까? |
|
도은 |
네. |
|
노인 |
된장찌개도 끓이고 쌀도 안치고. |
|
도은 |
(팔을 걷어붙인다.) 제가 뭐 하면 돼요? |
|
노인 |
이거. 쌀부터 씻어야지? |
|
도은 |
네네. 쌀 박박 씻을게요. |
|
두 사람, 함께 요리를 한다. |
|
|
암전 |
|
|
무대 밝아지면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 있는 두 사람. |
|
|
노인 |
내 나이가 몇 같아? |
|
도은 |
70? 80? |
|
노인 |
90이라면 믿을래? |
|
도은 |
이렇게 젊어 보이는데? |
|
노인 |
90이야. |
|
도은 |
세상에. |
|
노인 |
그래서 그래. |
|
도은 |
뭐가요? |
|
노인 |
자꾸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나이는 이길 수가 없더라고. |
|
도은 |
아······. 알고 계셨어요? |
|
노인 |
알지. 내가 또 이상한 말 했어? |
|
도은 |
아니. 자꾸 했던 말을 잊어버리니까. |
|
노인 |
항상 그런 건 아냐. 또 그럴 수도 있어. 그러려니 해. |
|
도은 |
네. |
|
노인 |
사는 것이 저주일 때가 있어. |
|
도은 |
설마. |
|
노인 |
설마라니? 자네도 잘 알아서 레테로 가려는 것 아냐? |
|
도은 |
그건······ 맞아요. |
|
노인 |
그러니까 내 말을 이해하겠네. 나랑 자네의 차이점이라면 나는 그냥 엉덩이 무겁게 버티고 있는 거야. 인생 참 재밌어. |
|
도은 |
뭐가요? |
|
노인 |
90 먹은 나보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더 못 버티니까. |
|
도은 |
그게 뭐가 재밌어요? 슬프지. |
|
노인 |
본인이 선택하는 건데 뭐가 슬퍼? 그냥 재밌어. 그리고 내가 이기는 게임 같아. |
|
도은 |
인생이 게임인가. |
|
노인 |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아무도 남아 있질 않아. |
|
도은 |
가족도요? |
|
노인 |
손녀 하나 남았는데. 날 보러 안 와. |
|
도은 |
······. |
|
노인 |
가는 사람은 마음 편해. 남은 사람이 문제지. |
|
도은 |
근데 왜 계속 버티고 계세요? |
|
노인 |
응? |
|
도은 |
저랑 같이 가요. |
|
노인 |
그럴까? |
|
도은 |
네. |
|
노인 |
(잠시 생각하다) 아냐. 싫어. |
|
도은 |
왜요? |
|
노인 |
이제 거의 다 왔는데. 버틴 게 아깝잖아. |
|
도은 |
쓸데없는 고집. 그냥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
|
노인 |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해 못 해. |
|
도은 |
뭘요? |
|
노인 |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지? |
|
도은 |
그렇지 않아요. |
|
노인 |
내 볼 땐 그래. 우리 땐 배곯고 춥던 시절이야. 등 따시고 배부르니까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도 하는 거야. |
|
도은 |
참 내. 저희 세대도 얼마나 빡세게 살았는지 아세요? 입시지옥 다 겪고 취업난 다 겪고 집값은 또 얼마나 비싼지 모르시죠? |
|
노인 |
난 전쟁도 겪었어. 죽고 사는 문제였어. 그래도 우리 땐 말이야. 참는 것을 배웠어. |
|
도은 |
뭘 참아야 하는데요? |
|
노인 |
참아야 하는 걸 참는 거지. |
|
도은 |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건 못 배웠네요. |
|
노인 |
그래. 그럼 가야지 |
|
도은 |
사람 참 찝찝하게 만드시네요. |
|
노인 |
말리고 싶은데 할 말이 없어. 자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근데 아쉬운 거 아니지? |
|
도은 |
뭐가요? |
|
노인 |
내가 안 말려 줘서. |
|
도은 |
전혀요. |
|
노인 |
언제 가? |
|
도은 |
내일요. |
|
노인 |
같이 놀러 갈까? |
|
도은 |
네? |
|
노인 |
내일 간다며. |
|
도은 |
네. |
|
노인 |
어디로 놀러 갈지 생각해 봐. |
|
도은 |
무슨 말이에요? |
|
노인 |
같이 놀러 가기로 약속했잖아. |
|
도은 |
난 그런 적 없는데. |
|
노인 |
할머니랑 같이 놀러 간다고 약속했잖아. |
|
도은 |
또 시작이야? |
|
노인 |
오랜만에 와 놓고 이러기야? |
|
도은 |
(일어난다.) 갈게요. |
|
노인 |
할머니는 운전 못 하잖아. 니가 해 줘야지. |
|
도은 |
산수유꽃 보러 갈까 할머니? |
|
노인 |
산수유꽃 좋아. 그거 차로 마셔도 맛나. |
|
도은 |
사실 할머니 나. 고백할 게 있어. |
|
노인 |
(도은을 노려보며) 고백은 이제 그만해. 너 임신했다고 고백했던 거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떨어져. |
|
도은 |
그런 거 아냐. 할머니. |
|
노인 |
뭔데 그럼? |
|
도은 |
나. 산수유차 한 번도 안 마셔 봤어. |
|
노인 |
그래? |
|
도은 |
가자. 할머니. |
|
노인 |
(신나서 일어난다.) 분홍 원피스 입고 갈까? (이층으로 올라가려다가 다시 정신이 들어오며 뒤돈다.) 내가 또 정신이 나갔었어? |
|
도은 |
(실망하며) 괜찮아요. 나는. 우리 할머니 생각나서 좋았어요. |
|
노인 |
201호야. 미안해. 진짜 공짜야. |
|
도은 |
언제 꼭 산수유꽃 보러 가요. |
|
노인 |
떠날 거면서. |
|
도은 |
······. |
|
노인 |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어. |
|
도은 |
······. |
|
도은, 2층으로 올라간다. |
|
|
암전 |
|
|
무대 밝아지면 |
|
|
작고 허름한 방. 도은, 짐을 풀지 않고 창밖을 본다. |
|
|
창문 밖으로 비명 소리를 닮은 바람 소리가 들린다. |
|
|
노크 소리 |
|
|
도은 |
누구세요? |
|
소운(목소리) |
저예요. |
|
도은 |
응? |
|
소운(목소리) |
저 기억 안 나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잖아요. |
|
도은 |
소운이? |
|
소운(목소리) |
네. 문 열어 주세요. |
|
도은, 문을 열자, 소운, 들어온다. |
|
|
도은 |
너······ 다 나았니? |
|
소운 |
아뇨. |
|
도은 |
많이 아파? |
|
소운 |
아뇨. 하나도 안 아파요. 아줌마. 여긴 제 방이에요. |
|
도은 |
201호 맞아? |
|
소운 |
네. (옷걸이에 걸린 자신의 옷가지를 가리키며) 저것 보세요. 제 짐이 저기 있잖아요. 아줌마는 다치지도 않았는데 여길 왜 온 거예요? |
|
도은 |
나야말로 원래 여기 오기로 되어 있었어. 넌 1번 버스, 난 2번 버스를 탔지. 기억나? |
|
소운 |
네. |
|
도은 |
근데 왜 니가 여길 와 있는 거야. |
|
소운 |
저도 몰라요. 근데 전 여기 좋아요. |
|
도은 |
넌 어려. 할 것도 많고.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기다리잖아. |
|
소운 |
할머니는 어차피 나 보내려고 했어요. |
|
도은 |
할머니가 왜 그러는지 몰라? 너 철들었다며. |
|
소운 |
철드는 게 잘못이에요? 늘 다 이해해야 하구. |
|
도은 |
(왠지 미안해진다.) 아냐. 그런 거. |
|
사이 |
|
|
도은 |
돌아갈 수 있어. 의지라는 거 생각보다 무서운 거야. 조금만 더 힘을 내봐. |
|
소운 |
싫은데요. |
|
도은 |
왜 싫어? |
|
소운 |
눈을 뜨면 또 나 혼자니까. |
|
도은 |
그렇지 않아. 널 도와주는 사람도 많아. |
|
소운 |
어른들은 늘 그렇게 말해요. 정작 자기들은 도와주지 않으면서. |
|
도은 |
다 그렇지 않아. |
|
소운 |
그럼 아줌마가 도와줘요. |
|
도은 |
내가 어떻게. |
|
소운 |
내가 딸 같죠? |
|
도은 |
어떻게 알았어? |
|
소운 |
돌아가서 날 키워 주면 되잖아요. |
|
도은 |
그건 안 돼. |
|
소운 |
왜? 왜 안 돼요? |
|
도은 |
내 딸이 레테에 있으니까. |
|
소운 |
······. |
|
도은 |
미안해. |
|
침묵 |
|
|
도은 |
있지. 사실 잘 모르겠어. |
|
소운 |
뭘요? |
|
도은 |
(창밖을 보며) 레테로 가면 그 앨 볼 수 있을지. |
|
소운 |
왜요? |
|
도은 |
거기로 간 사람들이 아무도 소식을 전해 주지 않잖아. 그 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잃어버린 사람을 다시 만날 수는 있는지. |
|
소운 |
혹시 무서운 곳이에요? |
|
도은 |
모르지. 정말 무서운 곳일지도. 근데 나 지금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알아? |
|
소운 |
뭔데요? |
|
도은 |
그곳이 내 기억을 모두 가져간다면 딸을 만나도 딸인지 모를 거 아냐. 차라리 지금처럼 사는 게 나을지도 몰라. 최소한 기억이라도 있으니까. |
|
사이 |
|
|
소운 |
아줌마. 혹시 거긴 컴컴해요? |
|
도은 |
모르지. 선 하나를 넘어간다고 빛이 모두 사라질까? |
|
소운 |
나 컴컴한 거 싫어요. |
|
도은 |
그래. 컴컴한 건 나도 싫어. |
|
소운 |
기억 안 나는 것도 싫어요. |
|
도은 |
······. |
|
소운 |
아줌마가 다시 돌아가면 나도 갈게요. |
|
도은 |
안 돼. 난 너무 늦었어. |
|
소운 |
왜요? |
|
도은 |
결심한지 오래됐으니까. |
|
소운 |
왜요? |
|
도은 |
안 행복해서? |
|
소운 |
혹시 조금이라도 행복하면 안 갈 거예요? |
|
도은 |
응. 조금이라도 행복하면. |
|
소운 |
조금만 행복하면 되잖아요. |
|
도은 |
어떻게? |
|
소운 |
맛있는 거 먹으면 되잖아요. 국수 먹으면 되는데. |
|
도은 |
그게 행복해? |
|
소운 |
면이 끊어지지 않을 때. |
|
도은 |
면치기? |
|
소운 |
네! 나 그거 진짜 잘해요. |
|
도은 |
소운아. |
|
소운 |
응? |
|
도은 |
머리 땋아 줄까? |
|
소운 |
네. 토끼머리처럼. |
|
도은 |
좋아. 토끼머리처럼 해 줄게. |
|
소운 |
아줌마 이 방에서 같이 자요. |
|
도은 |
그러자. |
|
도은, 소운의 머리를 땋는다. |
|
|
암전 |
|
|
무대 밝아지면 |
|
|
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도은, |
|
|
주위를 둘러보지만 소운이 없다. |
|
|
도은 |
소운아. 소운아. (창밖을 본다.) |
|
노인이 들어온다. |
|
|
도은 |
할머니. 꼬마 애 어딨어요? |
|
노인 |
응? |
|
도은 |
저랑 같이 이 방에 있던 소운이요. 혹시 어딨어요? |
|
노인 |
그런 애가 있었어? |
|
도은 |
이 방에 원래 머물던 아이. |
|
노인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
|
도은 |
할머니야말로.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여기 여자애 있었잖아요. |
|
노인 |
(웃으며) 장난이야. 장난. 요즘은 여유가 생겨서 정신 안 나갔을 때 정신 나간 것처럼 장난도 친다니까. 그 애 갔어. |
|
도은 |
갔어요? |
|
노인 |
아침 일찍 갔어. |
|
도은 |
말도 안 돼. |
|
노인 |
내가 그냥 이 방을 줬겠어? 한 명이 가니까 다른 한 명한테 준 거야. |
|
도은 |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
|
노인 |
각자의 시간이 있는 거야. |
|
도은 |
시간이라뇨. 이건 선택의 문제잖아요. 할머니가 그랬잖아요. |
|
노인 |
(고개를 젓는다.) 아닌 거 자네도 잘 알고 왔으면서 그래. |
|
도은 |
됐고요. (재킷을 걸친다.) 어디로 갔어요? 소운이? |
|
노인 |
이미 늦었어. |
|
도은 |
안 늦었을지도 몰라요. 따라가 볼래요. |
|
노인 |
버스 떠났어. |
|
도은 |
어느 방향이에요? |
|
노인 |
어디긴 어디야. 저기 저 강 너머지. |
|
도은, 급히 챙겨서 나간다. |
|
|
노인 |
산수유꽃 보러 간다며. |
|
도은(목소리) |
미안. 나 못 봐요. |
|
노인, 혼자 남는다. |
|
|
노인 |
(강 너머를 바라보며) 바로 저기구나. 거의 다 왔네. |
|
암전 |
|
|
무대 밝아지면 |
|
|
여인숙 밖 도로 |
|
|
오토바이를 탄 남자 도로를 달리고, |
|
|
옆으로 도은이 히치하이킹을 시도한다. |
|
|
도은 |
저기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멈추며) |
|
도은 |
저 좀 도와주세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네? |
|
도은 |
좀 태워 주세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어디까지요? |
|
도은 |
강 건너 레테.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미쳤어요? |
|
도은 |
왜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나더러 지금 그쪽으로 가란 거예요? 그 위험한 데를? |
|
도은 |
거기가 위험해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네. |
|
도은 |
왜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당연히 위험하죠. 모든 게 다 사라지는 곳인데. |
|
도은 |
그게 뭐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그게 뭐요? 몰라서 물어요? |
|
도은 |
알겠어요. 그럼 근처까지만 부탁드릴게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싫은데요? |
|
도은 |
당신 어차피 그쪽 방향으로 가고 있었잖아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아니거든요. |
|
도은 |
여기 외길인데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 |
|
도은 |
어? 이것 봐라? 당신도 레테로 가는 길이었죠?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아니거든요. 그게 아니라요. 고민 중이었다고요. |
|
도은 |
그게 그거지.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어떻게 그게 그거예요? 결심한 거랑 열심히 고민하는 거랑. 난 항상 적당히 가다가 돌아왔다구요. |
|
도은 |
알겠구요. 이정표 나오기 전까지만 가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참 순진하시네. 레테가 그렇게 친절할 줄 알아요? 이정표가 있게? |
|
도은, 무작정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는다. |
|
|
도은 |
출발! 경계선까지 안 가요. 약속해요. 버스만 앞지르면 돼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구시렁거리며 출발한다. |
|
|
바람에 속력을 내는 오토바이 |
|
|
도은 |
저기 있어요. 버스. 앞질러 봐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앞질러서 어떡하라고요? |
|
도은 |
잠깐만 멈춰 주면 돼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나한테 뭐 맡겨 놨어요? |
|
도은 |
알아요. 알아. 너무 고마운데. |
|
오토바이, 버스를 따라잡으려는데 |
|
|
끽- 하고 버스 정차하는 소리. |
|
|
암전 |
|
|
무대 밝아지면 |
|
|
오토바이를탄남자, 도은, 소운이 나란히 서 있다. |
|
|
무대 가운데를 가르는 선 하나. |
|
|
오토바이를탄남자 |
경계선까지는 안 온다더니. (비아냥거리며) 결국 왔네. 왔어. 아줌마. 고맙습니다. 덕분에 고민을 끝냈네요. |
|
도은 |
(소운의 손을 잡으며) 너 왜 말도 없이 갔어? |
|
오토바이를탄남자 |
꼬마야. 이 아줌마가 너 괴롭히니? |
|
도은 |
그런 거 아니거든요? |
|
소운 |
아줌마. 나 갈게요. |
|
도은 |
있어 봐. 나랑 잠깐 얘기 좀 해. |
|
소운 |
가야 해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아줌마 왜 애를 막 붙잡아. 대책 있어요? |
|
도은 |
일단 애를 말려야죠. 뭐야. 자기도 도왔으면서?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일단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는데. 그래도 애가 간다잖아. 애를 무작정 안 보내면 어쩌겠다는 거야. 자기가 책임을 질 것도 아니면서. |
|
보좌관과 선숙이 등장한다. |
|
|
보좌관은 선숙을 찍고 있다. |
|
|
보좌관 |
의원님. 지금 라이브 시작했습니다. |
|
선숙 |
(헛기침을 하며)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30년간 당에 헌신하여 제 한 몸 다 바쳐 국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저의 개인 비리로 몰아갔고 저는 당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일련의 사태가 저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기에 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오늘 저는 레테로 떠나려 합니다. |
|
보좌관 |
의원님 더 걸어가시는 건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요. 이제 끊을까요? |
|
선숙 |
내가 선 앞으로 바짝 걸어갈 테니까 롱테이크로 찍어. 몇 명 들어왔어? |
|
보좌관 |
삼만 명이 시청하고 있습니다. |
|
선숙 |
잘됐네. 계속 찍어. 나 걸어간다. |
|
소운 |
저 아줌마 뭐 하는 거예요? |
|
도은 |
(소운을 감싸 안는다.) 글쎄.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쇼하는 거지. |
|
소운 |
쇼? |
|
도은 |
말려 봐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에이. 저런 사람은 절대 못 가요. |
|
선숙 |
(무서운 듯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뭐래? |
|
보좌관 |
응원한다고······. |
|
선숙 |
뭐? |
|
보좌관 |
레테로 가는 걸 응원한다고요. |
|
선숙 |
가지 말라는 사람 없어? |
|
보좌관 |
네. |
|
선숙 |
내가 좀 더 가까이 가면 말리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
|
보좌관 |
네! |
|
선숙 |
이걸 찍어 봐. 내 발이 선 넘어가는 걸 말이야. |
|
보좌관 |
(핸드폰을 클로즈업한다.) |
|
선숙 |
지금은 뭐래? |
|
보좌관 |
······. |
|
선숙 |
(채근하며) 뭐래? |
|
보좌관 |
스릴 있다고······ 시청자가 오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
|
선숙 |
제길. |
|
보좌관 |
어떻게 마무리하죠? |
|
선숙 |
이래도? (한 발 들어 더 깊이 넘어간다.) |
|
보좌관 |
(신나는 듯) 십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
|
선숙 |
너는 웃음이 나오냐? (중심 잃고, 아슬아슬하게 선 너머로 넘어지려는 찰나) |
|
보좌관 |
의원님! |
|
선숙, 가까스로 선 밖으로 빠져나온다. |
|
|
선숙 |
에라이. 못 해 먹겠네. 다 때려쳐! (핸드폰 보며) 야 이 나쁜 인간들아. 그딴 국민성 때문에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잘 먹고 잘 살아라! 아니? 니들은 못 먹고 못 살아야 해! 나 니들 원하는 대로 안 가. 나야말로 잘 먹고 잘 살 거다! (나간다.) |
|
보좌관 |
의원님! |
|
보좌관, 선숙을 계속 찍으며 따라간다. |
|
|
도은, 소운, 오토바이를탄남자 웃는다. |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와. 저걸 또 찍어? |
|
소운 |
그러니까.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아줌마. 이제 어떡할 거예요? |
|
도은 |
뭘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애 데리고 어디로 가시냐고요? 이쪽? 아님 저쪽? |
|
도은 |
당신은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난 더 고민할 거거든요. (소운에게) 넌 어디로 가고 싶니? |
|
소운 |
국수 먹을 수 있는 곳. |
|
오토바이를탄남자 |
그럼 나랑 가자. 아저씨가 국수 백 그릇도 사 줄 수 있어. |
|
도은 |
당신이?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뭐야? 나 무시? |
|
도은 |
누가 뭐래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꼴이 이렇다고 무시하는 건가? 나 이래 봬도 부잔데? |
|
도은 |
오! 부자?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안 믿네? 나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산다고. |
|
도은 |
그렇게 많이 가진 사람이 왜 레테에 가려고 하셨나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몇 번을 말해? 고민만 했다고요. |
|
도은 |
아. 맞다. 고민. |
|
오토바이를탄남자 |
그리고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산다고 무조건 행복한 줄 아세요? 아줌마는 가난해서 여기 온 건가? |
|
도은 |
아뇨. |
|
오토바이를탄남자 |
가려고 확실히 마음먹었던 적도 있어요. |
|
도은 |
근데요? |
|
오토바이를탄남자 |
어떤 사람이랑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상하게······. |
|
도은 |
이상하게?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느껴졌거든요. 감정이······. |
|
도은 |
어떤 감정?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모르겠어요. 아주 작은 감정. 묘하게······ 무감각을 깨는 그런 거. |
|
도은 |
혹시 모래알 같은 감정? |
|
오토바이를탄남자 |
모래알? |
|
도은 |
(큭 웃으며) 아녜요. 고민될 땐 일단 멈춰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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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탄남자 |
멈췄는데 아줌마가 날 데려왔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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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멈추긴. 이도 저도 못하고 있었으면서. 어때요? 더 확실해졌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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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탄남자 |
아니. 더 헷갈리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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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또 알아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지? 세상일은 모르는 거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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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탄남자 |
뭔 소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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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아니 그렇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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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탄남자 |
아줌마. 빨리 정해요. 내가 태워 줘? 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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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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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눈을 꼭 감는다.) 태워 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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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탄남자 |
그럴 줄 알았어! 꼬마야 너도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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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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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오토바이에 일렬로 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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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가르며 출발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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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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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밝아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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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첫 장면이었던 아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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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키 누르는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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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이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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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머뭇거리다가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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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어서 들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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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신발을 벗고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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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힘들었지? 혼자 씻을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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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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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거기가 화장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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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화장실로 가다가 멈칫하며) 누가 있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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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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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화장실에 누가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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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화장실로 걸어가고, 소리를 듣고 놀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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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문이 열리고, 민수가 나온다. 목에 수건을 두른 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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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태연하게) 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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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여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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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어디 갔다 온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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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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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나 빼고 딸이랑 둘이 데이트했다 이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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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도은을 쳐다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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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소운아. 집에 오면 손부터 씻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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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어디 갔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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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내가 어딜 가. 난 계속 집에 있었지. 아 맞다. 바깥 날씨가 꽤나 쌀쌀하잖아. 그래서 잔치국수 만들었어. 소운이 그거 좋아하잖아. 면치기! (부엌으로 걸어가며 그릇에 국수를 담는다.) 오늘 하루. 소운이랑 재밌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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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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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재밌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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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다음엔 나도 끼워 줘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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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당연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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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소운아. 우리 먹자.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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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과 소운,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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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창가로 걸어간다. 창문을 열며) 와! 가을은 가을이다. 단풍나무가 빨갛게 변했어. 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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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응. (창밖을 보며) 근데 더 이상 안 들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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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
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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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
바람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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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
(도은과 민수에게 팔짱 낀다.) 행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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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함께 창밖을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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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한쪽에서는 가방잃어버린여자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오토바이를탄남자가 앉아 있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바람을 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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