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하우스
- 작성일 2024-08-16
- 댓글수 0
모자이크 하우스
김마딘
등장인물
남자
할머니
엄마
아빠
여자
친구
의사
| 0. | |
| 약 14개월 전. | |
| 인적이 드문 밤길. | |
| 장맛비가 미친 듯이 내리고 있다. | |
| 주위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
| 자동차 한 대가 멀리서부터 달려온다. | |
| 전조등 불빛이 점점 가까워진다. | |
| 순간! | |
| 바퀴가 미끄러지는 끼익 소리가 들리더니···. | |
| 쿵. | |
| 가벼운 메아리가 울린다. | |
|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 |
| 이내 다시 빗소리만 남는다. | |
| 깜··· 빡, 깜··· 빡, 전조등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 |
| 남자가 운전석에서 빠져나온다. | |
| 조수석의 여자가 얼핏 보인다. | |
| 남자 | ······. |
| 남자, 여자를 건드려 본다. | |
| 반응이 없다. | |
| 남자, 주위를 둘러본다. | |
| 아무도 없다. | |
| 남자 | ······. |
| 남자, 도망친다. | |
| 1. | |
| 현재. | |
| 거실. 9월 초. 밤 11시. | |
| 엄마, 맥주를 마시고 있다. | |
| 엄마 | 하···. |
| 물 내리는 소리. | |
| 엄마, 화장실 쪽을 바라본다. | |
| 엄마 | ······. |
| 할머니, 화장실에서 나온다. | |
| 엄마 | 물 아깝게···. |
| 할머니 | ······. |
| 엄마 | 갔다 오실래? |
| 할머니 | ······. |
| 엄마 | 어머니. |
| 할머니, 손사래를 친다. | |
| 엄마 | 고집부리지 마시고. |
| 할머니 | ···됐어. |
| 엄마 | 괜찮으시겠어? |
| 할머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 |
| 엄마 | ······. |
| 도어락 소리. | |
| 엄마 | 왔어? |
| 아빠, 들어온다. | |
| 엄마 | 왔냐고. |
| 아빠 | 어어. |
| 엄마 | 밥은? |
| 아빠 | 먹었지. |
| 엄마 | 뭐? |
| 아빠 | 거기 뭐냐, 회사 앞에. 중국집. |
| 엄마 | 회식? |
| 아빠 | 사장님. |
| 엄마 | 제대로 못 먹었겠네. |
| 아빠 | 아니야. 잡채밥 괜찮더라. |
| 아빠, 맥주 캔을 본다. | |
| 아빠 | 적당히 해. |
| 엄마 | ···알았어. |
| 아빠 | 내일 네 시. |
| 엄마 | 새벽? |
| 아빠 | (웃으며) 오후겠어? |
| 엄마 | 본사? |
| 아빠 | 컨퍼런스. |
| 엄마 | 고생이네. |
| 아빠 | 영국 새끼들, 아직도 지들이 세상 중심인 줄 알아. |
| 엄마 | 아침 안 해. |
| 아빠 | 어어. |
| 엄마 | 난 내일 회식. |
| 아빠 | 회식? |
| 엄마 | 어. |
| 아빠 | 진짜? |
| 엄마 | 가짜도 있어? |
| 아빠 | 알았어. |
| 할머니, 방에서 나온다. | |
| 아빠 | 왔어요. |
| 할머니, 화장실로 가는데···. | |
| 아빠 | 엄마. |
| 할머니 | ······어? |
| 아빠 | 또 어디 안 좋아? |
| 할머니 | ···아니여. |
| 할머니, 화장실로 들어간다. | |
| 아빠 | 왜 저러셔? |
| 엄마 | 고집이지. |
| 아빠 | ···씻는다. |
| 엄마 | 응. |
| 아빠 | 어디서 잘 거야? |
| 엄마 | 내 방. |
| 아빠 | ···들어와서 잘래? |
| 엄마 | 응? |
| 아빠 | 원하면. |
| 엄마 | 내쫓을 땐 언제고. 편하게 자. 알람은 맞춰. |
| 아빠 | ···응. |
| 아빠, 방으로 들어간다. 다시 나오더니···. | |
| 아빠 | 거기까지만 해. |
| 엄마 | 뭘? |
| 아빠 | 맥주. |
| 엄마 | 아. |
| 아빠 | 빨개, 얼굴. |
| 엄마 | 귀엽나? |
| 아빠 | 씻는다. |
| 아빠, 방으로 들어간다. | |
| 엄마 | ······. |
| 엄마, 방으로 들어간다. | |
| 정적. | |
| 물 내리는 소리. | |
| 할머니, 화장실에서 나온다. | |
| 할머니 | ······. |
| 도어락 소리. | |
| 남자, 들어온다. | |
| 남자 | 왔어요. |
| 할머니 | ······. |
| 남자, 할머니를 잠시 본다. | |
| 할머니 | ···밥은? |
| 남자 | 먹었어요. |
| 할머니 | 그려. 쉬어. |
| 남자 | 할머니. |
| 할머니 | ······어? |
| 남자 | 괜찮아요? |
| 할머니 | 가서 쉬어. |
| 남자, 머리를 쓸어 넘긴다. | |
| 남자 | 하······. |
|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 | |
| 할머니, 홀로 남겨진다. | |
| 2. | |
| 새벽 4시. | |
| 할머니 | 혜진아! 혜진아! |
| 엄마,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온다. | |
| 엄마 | ···왜요. |
| 할머니 | 병원 좀······ 가자. |
| 엄마 | (시간을 확인하더니) 지금요? |
| 할머니, 방으로 가려고 한다. | |
| 엄마 | 어디 가셔. |
| 할머니 | 양말 좀··· 신게. |
| 할머니, 몇 발짝 걷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 |
| 할머니 | 양말 가져와. |
| 엄마 | ······. |
| 할머니 | 가져와! |
| 아빠, 방에서 나온다. | |
| 아빠 | 아니, 무슨 소리를··· (할머니를 보더니) 환장하겠네. |
| 엄마 | 어머니, 알겠으니까 일단 일어나 보셔. |
| 할머니 | 병원으로 가. 병원으로. |
| 아빠 | 당신 안 돼? |
| 엄마 | 나도 일찍 나가야 돼. |
| 아빠 | 아침부터 참···. (아기 타이르듯) 엄마, 일어나 봐요. |
| 아빠, 할머니를 일으켜 세운다. | |
| 할머니 | 아바이가 운전 좀 해. |
| 엄마 | 어머니, 이 사람도 오늘 회의 있어요. |
| 할머니 | 뭔 놈의 회의. 병원만 들렀다 가. |
| 엄마 | ······. |
| 엄마, 남자의 방으로 가더니 문을 열어 본다. | |
| 잠겨 있다. | |
| 엄마 | ···나와 봐. |
| 답이 없다. | |
| 문을 두드린다. | |
| 엄마 | 아들. |
| 답이 없다. | |
| 엄마 | 나오라고! |
| 남자, 방에서 나온다. | |
| 남자 | ···왜. |
| 엄마 | 좀 갔다 와. |
| 남자, 할머니를 본다. | |
| 남자 | ···지금? |
| 엄마 | 아빠랑 엄만 일찍 나가야 돼. |
| 남자 | ···할머니, 많이 힘드세요? 할머니, 저 좀 봐 봐요. 지금 병원 가면 그것도 나름대로 힘들어요. |
| 할머니 | 병원 가. 얼른. |
| 남자 | ······. |
| 아빠 | 아들. |
| 남자 | 네? |
| 아빠 | 갔다 와. |
| 남자 | ······. |
| 아빠 | 할머니잖아. |
| 남자 | ······. |
| 아빠 | 집에 있는 놈이 할머니 챙겨야지. |
| 사이. | |
| 남자 | 근데 제가···. |
| 엄마 | 그냥 좀 갔다 와! |
| 엄마, 할머니의 방에서 양말을 가지고 나온다. | |
| 엄마 | (양말을 신기며) 도착하면 연락하고. |
| 남자 | ······. |
| 남자, 방에서 외투를 가지고 나온다. | |
| 아빠 | 엄마, 잘 다녀와요. |
| 엄마 | 당신 괜찮아? |
| 아빠 | 어? |
| 엄마 | 회의. |
| 아빠 | 아아, 정신. |
| 아빠, 방으로 들어간다. | |
| 남자 | 돈 보내. |
| 엄마 | 없어? |
| 남자 | ···어. |
| 엄마 | ···알았어. |
| 할머니 | 어여 가자. |
| 남자, 할머니를 데리고 현관으로 간다. | |
| 엄마, 그 모습을 바라본다. | |
| 3. | |
| 사흘 후. | |
| 카페&펍. 낮 3시. | |
| 엄마, 맥주를 마시고 있다. | |
| 친구 | 그만 마셔. |
| 엄마 | 왜 죄다 그만 마시래. |
| 친구 | 시간이 몇 신데. |
| 엄마 | 술집에서 술 좀 먹겠다는데, 안 되냐? |
| 친구 | 여섯 시까진 카페라고. (사이) 잠깐만··· 오늘 평일 아니야? 회사는? |
| 엄마 | 워크샵. 어머니 핑계 대고 빠졌어. |
| 친구 | 그러면 집으로 좀 가라. |
| 엄마 | 출근한다고 했지. 회식도 있다고 하려다가 참았어. |
| 친구 | 잘한다. |
| 엄마 | 칭찬 고맙다. |
| 친구, 엄마를 빤히 바라본다. | |
| 친구 | 애 나이가 지금 몇이냐? |
| 엄마 | 왜, 대신 키워 주게? |
| 친구 | 그냥 좀 물어봤다. 졸업할 때 된 것 같아서. (사이) 걘 뭐 하고 지내? 일? |
| 엄마 | 그냥··· 있어. 방에만. 은둔형··· 뭐 그런 건가. |
| 친구 | 그래도 부럽네. |
| 엄마 | 갑자기? |
| 친구 | 넌 결혼도 했고 이젠 애도 다 키운 거잖아. (사이) 난 살면서 별로 한 게 없으니까. |
| 엄마 | 그러니까 나한테 잘 좀 해 보지. 어릴 때 너랑 네 친구들이 나 졸졸 따라다녔던 거 기억나? 어떻게 그중에 멀쩡한 놈이 하나가 없냐. 그래도 그중에선 네가 제일 나았어. 너무 고지식해서 문제였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내가 너 합격 줬다. |
| 친구 | 아이, 아깝네. 분하다, 분해. |
| 엄마 | 그렇다고 결혼식을 안 와? |
| 친구 | 삼십 년을 우려먹네. 그만 우려먹어라, 그건. |
| 엄마 | 미안. 흐흐. (사이) 여긴 진짜 여유로워. 마음도 좀··· 싱그러워져. |
| 친구 | 그거 이런 데다 쓰는 말 아니야. |
| 엄마 | (웃음) 그런가···. |
| 친구 | 어쨌든 망해간단 소리네? |
| 엄마 | ······야. |
| 친구 | 응? |
| 엄마 | 넌 어때? |
| 친구 | 어? |
| 엄마 | 살 만해? 이사했잖아. |
| 친구 | 좁아. (사이) 좁아도 꽤 잘해 놓고 살아. |
| 엄마 | 뭐 해, 평소에? |
| 친구 | 그거 알아? |
| 엄마 | 뭐? |
| 친구 | 너 그 질문 엊그제도 했어. |
| 엄마 | 아, 그래? 넌 뭐라 대답했는데? |
| 친구 | 다 죽어가는 가게 하나 운영하고, 간간이 독서 모임 열고, 맨날 징징거리는 친구 푸념 듣고, 그러고 산다고. |
| 엄마 | 음··· 그렇군. (사이) 난 여기 좋아. |
| 친구 | 그렇다고 매일 올 필요는 없어. 너 오면 그날은 마이너스야. |
| 엄마 | 여기가 집보다 편해. 너도 있고. |
| 친구 | ···고맙네. |
| 엄마 | 나 여기서 일할까? 회사 바로 때려치운다. |
| 친구 | (웃으며) 네가? 네가 일하면 손님 줄 술이 안 남아요. |
| 엄마 | 그래서 싫어? |
| 친구 | 좋겠냐? |
| 엄마 | ···좋아할 거잖아, 내가 오면. |
| 사이. | |
| 엄마 | 싫어? |
| 친구 | 취했냐? |
| 엄마 | 아··· 미안해, 미안해. 진짜 취했나. |
| 친구 | 그래··· 너 취했다. |
| 엄마 | ···지긋지긋해. |
| 친구 | 또 뭐가. |
| 엄마 | 맥주 더 있어? |
| 친구 | 그만. |
| 엄마, 고개를 돌린다. | |
| 친구 | 야··· 왜 울어. 궁상맞게. 술 안 줘서 우는 거야? (웃는다) |
| 엄마 | 아, 씨발, 미안. 진짜 미안. 정말 미안. |
| 친구 | ······ 휴지 갖다줄게. |
| 엄마 | 야. |
| 친구 | 응? |
| 엄마 | 그래서 너, 정말 나 싫냐고. |
| 친구, 엄마를 빤히 바라본다. | |
| 4. | |
| 뻥! 폭죽 소리. | |
| 남자 |
생일 축하합니다. |
|
생일 축하합니다. |
|
|
사랑하는 엄마의 |
|
|
생일 축하합니다. |
|
| 일주일 후. | |
| 거실. 저녁 7시. | |
| 테이블 위엔 미역국과 각종 반찬이 놓여 있다. | |
| 남자, 엄마에게 케이크를 들이민다. | |
| 아빠 | 얼른 불어. |
| 엄마, 촛불을 분다. | |
| 남자 | 축하해. |
| 엄마 | 고마워라···. |
| 사이. | |
| 엄마, 두 사람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 |
| 아빠 | 술 마셨네. 오늘만 넘어가. |
| 엄마 | (웃음) 감사도 해라. |
| 아빠,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를 부엌에서 가져온다. | |
| 엄마 | 이게 다 뭐야? |
| 아빠 | 오다 주웠어. |
| 남자 | 반찬가게에서. |
| 엄마 | 그래도 너무 감동인데? |
| 아빠 | 먹자. 앉어. |
| 세 사람, 자리에 앉는다. | |
| 엄마 | 고마워. |
| 아빠 | 맛 좀 봐 봐. |
| 엄마 | 어머니는? |
| 아빠 | 어디겠어. |
| 엄마 | (화장실 쪽을 보며) 아···. |
| 아빠 | 먼저 먹자. |
| 세 사람, 식사를 시작한다. | |
| 엄마 | 정말 맛있는데? |
| 아빠 | 그건 내가 만들었어. |
| 엄마 | 장난 아니야. |
| 아빠 | 나이스. |
| 엄마 |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어? |
| 아빠 | 한 번은 해야지, 나도. |
| 엄마 | ······좋다. |
| 아빠 | 많이 먹어. |
| 남자 | 나도 오늘, 아빠가 어디 머리를 다친 줄 알았어. |
| 아빠 | 먹기나 해, 새끼야. |
| 물 내리는 소리. | |
| 할머니, 화장실에서 나온다. | |
| 엄마 | 어머니···. |
| 할머니 | 혜진아, 생일 축하한다. |
| 엄마 | 괜찮으세요? 속은 또 언제부터···. |
| 할머니 | 아이! 밥 먹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말어. 괜찮어. |
| 엄마 | ···네. |
| 아빠 | 엄마, 앉아요. |
| 할머니 | 그래. |
| 할머니, 자리에 앉는다. | |
| 남자 | 좀 드세요. |
| 할머니 | 많이 먹어. |
| 할머니, 마지못해 숟가락을 든다. | |
| 할머니 | (맛을 보더니) 아유, 이건 간이 너무···. |
| 아빠 | 에헤이, 그냥 좀 드세요. |
| 엄마 | 그래요? 저는 맛있던데. 소금 좀 드릴까? |
| 할머니 | 아니야. 어여 먹어. |
| 한동안 이어지는 말 없는 식사. | |
| 그러다가 갑자기···. | |
| 아빠 | 할 말이 있어. |
| 엄마 | 뭔데? |
| 아빠, 태블릿을 꺼내더니 사진을 보여 준다. | |
| 아빠 | 어때? |
| 엄마 | 경치 좋다. 완전 풀밭이네. |
| 아빠 | 오늘 갔다 왔어. |
| 엄마 | 어딘데? |
| 아빠 | 괜찮지? |
| 엄마 | 청량해. |
| 아빠 | 이쪽에 터를 잡아 보려고. |
| 엄마 | 어? |
| 아빠 | 뭘 그리 놀라? |
| 엄마 | ‘터’라니? |
| 아빠 | 말 그대로. |
| 엄마 | 이사? |
| 아빠 | 응, 집을 지을 거야. 은퇴 이후를 여기서 보내려고. 어디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할까 했을 때 여기만 한 데가 없더라고. 산 있지, 물 좋지, 도시 멀지. 버스가 하루에 세 번만 온대. 낮에 반차 내고 보고 왔거든? 진짜 공기가 죽여.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막 쏟아지는데, 그런 거 알아? 그냥 보고만 있어도 울컥해지는 것들. |
| 엄마 | ······. |
| 아빠 | 땅 주인 만나서 대충 얘기는 끝냈어. (사이) 다들 알아 두면 좋을 거 같아서. 그래도 우리가 살 곳이니까. |
| 엄마 | ···갑자기 왜? |
| 아빠 |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어. 다 늙어서 짓기 시작하면 몇 년 못 살 거 같아. 최근에 내가, 다리랑 왼쪽 얼굴에 마비가 조금씩 오더라고. 의사 말이, 무슨 뭐 기능 저하에 수면 부족이라나. 못해도 다섯 시간은 자래. 순 돌팔이 새끼들. 그런 말을 누가 못 해. 오십 대 아저씨 의자에 앉혀 놓고 술 적당히 마시고 잠 많이 자라고 하는 게 처방이면 나도 의사 했지. 안 그래? |
| 엄마 | ···그래서? |
| 아빠 |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모두가 다 알약이나 수술 같은 게 필요한 건 아니야. |
| 사이. | |
| 아빠 | 엄마는 어때? |
| 할머니 | 난 여기가 마지막이지. |
| 아빠 | 에헤이, 또 시작이다. (남자에게) 아들은? |
| 남자 | 나가야죠, 따로. |
| 아빠 | 네가 지금··· 일곱인가? |
| 남자 | 네. |
| 아빠 | 뭘 하면서 살 거냐? |
| 남자 | 아직··· 모르겠어요. 제가 뭘 할 수 있는지도요. |
| 아빠 | 집 밖으로 나가면 그때부턴 지원 못 해 줘. |
| 남자 | ······알아요. |
| 아빠 | 넌 다른 애들보다 혜택을 많이 받은 거야. 이번에 아빠 부서 새로 들어온 애가 너보다 세 살이 어리더라. |
| 남자 | (살짝 욱) 알아서 나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 사이. | |
| 남자 | ···죄송해요. |
| 아빠 | (조곤조곤 타이르듯) ···하나 확실히 해 두는데, 나한테는 가족이 제일 소중해. 그건 맞아. 근데 그게 내 인생을 통째로 갈아 넣겠다는 뜻은 아니야. 그런 건 삼십 년이면 충분하잖아. 뭐 다른 집 남자들처럼 고충을 이해해 달라거나 너희한테 내 시간을 보상해 달라는 말은 죽어도 안 해. 만약 내 집에 얹혀살기 싫거나 밖으로 나가고 싶으면 본인이 알아서 능력을 키워. 말로만 떠들지 말고. |
| 남자 | ······. |
| 아빠 | 그리고 당신은···. |
| 엄마 | 나? |
| 아빠 | 생일 축하해. (사이) 그러면! 맛있게들 먹어. |
| 아빠, 방으로 들어간다. | |
| 엄마 | ······. |
| 엄마, 맥주를 꺼내온다. | |
| 엄마 | 한잔할래? |
| 남자 | 아니. |
| 핸드폰 진동. | |
| 남자 | 전화 왔어. |
| 엄마 | 누구? |
| 남자 | 이몬데. |
| 엄마 | 아. |
| 엄마, 핸드폰을 확인한다. | |
| 남자 | 이모 무슨 일 있어? |
| 엄마 | 아··· 뭐. |
| 남자 | 전화가 잦아. |
| 엄마 | 외국살이가 힘든가 봐. 배부른 소리야. 그치? |
| 엄마, 방으로 들어간다. | |
| 남자 | ······. |
| 할머니 | ······아이구. |
| 남자 | 할머니, 어디 안 좋아? |
| 할머니 | 다 먹었어? |
| 남자 | 어어. |
| 할머니 | 들어가. 할미가 치울게. |
| 남자 | ···괜찮아요? |
| 할머니 | 아이, 팔팔해. |
| 남자 | 놔 둬요. 나랑 엄마랑 하면 돼. |
| 할머니 | (그릇을 모으며) 요새 네 엄마 전화 붙들면 기본이 반나절이더라. |
| 남자 | 놔 두라니까. |
| 할머니, 그릇을 들고 일어선다. | |
| 순간, 그릇을 놓친다. | |
| 5. | |
| 사흘 후. | |
| 병원. 원무과 앞. 밤 11시. | |
| 남자, 의자에 앉아 있다. | |
| 당직 의사, 응급실에서 나온다. | |
| 의사 | (남자를 보더니) 아, 예. |
| 남자 | 네······. |
| 의사 | 얼마 전에도 오셨죠? 언제부터 저러셨어요? |
| 남자 | 좀 되셨을 거예요···. (생각난 듯) 아, 며칠 전에 어머니 생신 때문에 상을 거하게 차렸었는데, 그때도 뭘 제대로 못 드시···. |
| 의사 | 그러면 그때 오셨어야죠. 왜 항상 늦게 오세요. |
| 남자 | 꼭 완전히 아파야 병원에 가시겠다고···. |
| 의사 | 이번엔 너어어어무 딱딱해서요. 약 가지곤 힘들어서 앞부분은 파냈습니다. |
| 남자 | ···감사합니다. |
| 의사 | 근데 그렇게 나가 버리시면 어떡해요. |
| 남자 | ···죄송합니다. |
| 의사 | 환자분은 보호자께서 봐 주셔야죠. 오늘이야 약이 소용없었으니까 그렇다 치는데, 만에 하나 약 넣고 바로 저질렀으면요? 제가 십오 분은 참게 해 달라고 당부를 드렸잖아요. 많이 와 봤으면 아실 거 아니에요. 저희가 할머님께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
| 남자 | 죄송합니다. 오늘은 좀··· 이상하게 힘이 들어서. |
| 의사 | (약간 미안해져서) ···아는데요, 저희도 좀 이해해 주세요. 얼마 전에도 오셨다길래. |
| 남자 | ···죄송합니다. |
| 의사 | 곧 나오실 거예요. |
| 남자 | 감사합니다, 선생님. |
| 의사 | ···예. |
| 의사, 응급실 안으로 들어간다. | |
| 할머니, 응급실에서 나온다. | |
| 남자 | 고생하셨어요. |
| 할머니, 나가려 한다. | |
| 남자 | 조금만 계셔. 수납만 하고 올게. |
| 할머니 | ······. |
| 남자 | 할머니? |
| 할머니 | 할미가 보기 드릅드냐? |
| 사이. | |
| 남자 | ······잠깐만 앉아 계세요. |
| 할머니, 나간다. | |
| 남자 | ······. |
| 여자, 응급실에서 불쑥 나온다. | |
| 여자 | 내 말이 맞지? |
| 남자 | 미안해···. |
| 순간, 남자에게 그날이 떠오른다. | |
| 아니, 이미 떠올랐다. | |
| 6. | |
| 약 14개월 전. | |
| 다른 병원. 원무과 앞. 밤 10시. | |
| 여자 | 뭘 또···. |
| 남자 | ···미안해. |
| 여자 | (웃으며) 아이, 시간만 버렸네. |
| 남자 | ···정말 미안해. |
| 여자 | 응급실 올 정도 아니랬지, 내가! |
| 남자 | 내일 다른 병원 가 보자. |
| 여자 | 야야, 괜찮아. 호들갑은. |
| 남자 | 미안해···. |
| 여자 | 사과 좀 그만해라. |
| 남자 | 널 태우는 게 아니었는데···. |
| 남자, 고개를 들지 못한다. | |
| 여자 | 운전 잘한다고 까불더니. |
| 여자, 남자를 안아 준다. | |
| 여자 | 가자. 늦었다. |
| 여자, 나가려 한다. | |
| 남자 | 근데··· 수납 좀···. |
| 여자 | 돈 없어? |
| 남자 | 응···. |
| 여자 | 잠깐만. |
| 남자 | ······. |
| 여자, 남자에게 카드를 건넨다. | |
| 여자 | 사고 칠 거면 돈은 챙겨야지! (웃는다) |
| 남자 | ···그러네. |
| 여자 | 다이내믹한 여행이었어. 그치? 계산하고 나와. 난 화장실. |
| 남자 | ···응. |
| 여자 | 야. |
| 남자 | 어? |
| 여자 | (웃으며) 어디 사람 죽었냐? |
| 남자 | ······. |
| 여자, 나간다. | |
| 7. | |
| 산책로. 밤 11시. | |
| 숲에서 들려오는 여러 생명체의 울음소리. | |
| 장맛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는다. | |
| 남자와 여자, 걷고 있다. | |
| 여자 | 완전 망했어! |
| 남자 | 다행인 걸 수도 있어. |
| 여자 | 우리 어떡해? |
| 남자 | 내일 물어봐야지. |
| 여자 | 화딱지 나······. |
| 남자 | 미안해. 길이 그렇게 미끄러울 줄은···. |
| 여자 | 너 말고, 바보야. |
| 남자 | 알아···. 그냥 사과한 거야. |
| 여자 | 앓는 소리 그만해. |
| 남자 | ······. |
| 여자 | 막 우리 돈 엄청 깨지는 거 아니야? |
| 남자 | 좀 빌려 놨어, 친구들한테. |
| 여자 | 언제? |
| 남자 | 병원 나오면서. |
| 여자 | 친구들 멋있네. |
| 남자 | ······. |
| 여자 | 어려 보인다고 사기 치면 어떡해? |
| 남자 | 설마. |
| 여자 | 눈탱이 맞으면? |
| 남자 | 어쩌겠어. |
| 여자 | 차 잘만 굴러가고 멀쩡하던데. |
| 남자 | 잘 봐 주시겠지, 내일 되면. |
| 여자 | 넌 애가 너무 순해. |
| 남자 | 좋게 좋게 처리하는 게 낫잖아. |
| 여자 | 혹시라도 눈탱이 치면···. |
| 남자 | 뭘 어쩔 건데. |
| 사이. | |
| 여자 | 왜 짜증 내? |
| 남자 | ······. |
| 여자 | 왜 짜증 내냐고. |
| 남자 | 의미도 없는 소릴 하니까 짜증을 내지. |
| 여자 | ······. |
| 남자 | 왜 도움도 안 되는 얘기를 늘어놓냐고. |
| 여자 | 화나는 건 나야. 네가 아니라. |
| 남자 | 그러면 화를 내든가. |
| 사이. | |
| 남자 | 화낼 거 있으면 그냥 솔직하게 화내고 끝내. 괜히 사람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
| 사이. | |
| 남자 | 미안해. |
| 사이. | |
| 남자 | 아, 미안해. 실수했다. |
| 여자 | 아니야, 나도 미안. |
| 사이. | |
| 남자 | 가자···. |
| 남자, 다시 길을 걸으려는데··· | |
| 여자 | 하나만···. |
| 남자 | 어? |
| 여자 | 솔직하게 하라며. 그니까 하나만. |
| 남자 | 뭘? |
| 여자 | ···왜 그랬어? |
| 남자 | 응? |
| 여자 | 그냥 가려고 했잖아. |
| 긴 사이. | |
| 여자 | 모를 줄 알았어? |
| 남자 | ······다시 왔잖아. |
| 여자 | 너, 나 버리려고 했어? |
| 사이. | |
| 남자 | 가자. 가서 얘기하자. 피곤하다. |
| 남자, 먼저 자리를 뜬다. | |
| 여자,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 |
| 8. | |
| 현재. | |
| 거실. 밤 12시. | |
| 엄마, 맥주를 마시고 있다. | |
| 엄마 | ······. |
| 도어락 소리. | |
| 남자, 들어온다. | |
| 남자 | 안 자? |
| 엄마, 핸드폰만 바라본다. | |
| 남자 | 안 자냐고. |
| 엄마 | 어디 갔다 와? 할머니 혼자 올라오시던데. |
| 남자 | 산책. ···들어가셨어? |
| 엄마 | 응. |
| 남자 | 아··· 파냈어. |
| 엄마 | 수고했어. |
| 남자 | 어어. |
| 엄마 | 삐지셨던데. |
| 남자 | 알아. |
| 엄마 | 말도 없으셔. |
| 남자 | 어때? |
| 엄마 | 뭐가? |
| 남자 | 느낌이. |
| 엄마 | 손주한텐 두 시간이면 풀려. |
| 남자 | ······그래? |
| 엄마 | 왜 삐지셨어? |
| 남자 | 그냥··· 애같이 그러시길래. 내가 좀 틱틱댔지. |
| 엄마 | ···잘 좀 하지. |
| 도어락 소리. | |
| 아빠, 들어온다. | |
| 엄마 | 왔어? |
| 남자 | ···오셨어요? |
| 아빠 | 어어. |
| 아빠, 맥주 캔을 본다. | |
| 엄마 | 치운다는 게···. |
| 아빠 | 작작 들이켜. |
| 엄마 | 뭘 또···. |
| 아빠 | 말을 하면 좀 알아들어. |
| 엄마 | 알았어···. |
| 아빠 | (실수를 직감하며) 걱정돼서 하는 말이잖아······. |
| 엄마 | 미안해. |
| 아빠 | (남자에게) 나갔다 왔어? |
| 남자 | 그··· 할머니 병원···. |
| 아빠 | 아··· 또. |
| 아빠, 오만 원권 지폐 넉 장을 남자에게 건넨다. | |
| 아빠 | 수고했어. |
| 남자 | ···괜찮아요. |
| 아빠 | 받아. |
| 남자, 돈을 받는다. | |
| 남자 | ······감사해요. |
| 아빠 | 노인네 잘해 줘. |
| 남자 | ···네. |
| 아빠 | 할머니잖아, 너 어릴 때 키워 주신. |
| 남자 | ···알죠. |
| 엄마 | (웃으며) 당신 기억나? 어머니가 얘 매운 거 못 먹으니까 본인이 김치를 입으로 쪽쪽 빨아서 얘 먹여 주고 그랬던 거. |
| 아빠 | ···취했어? |
| 엄마 | 안 취했어. |
| 아빠 | 씻을게. |
| 엄마 | 내일은? |
| 아빠 | 내일? |
| 엄마 | 출근 말이야. |
| 아빠 | 그만 마시라고 했지. 내일 주말이야. |
| 엄마 | 아! |
| 아빠 | 정신 좀 차려. 내일 평일이야. 새벽에 나갈 거야. |
| 엄마 | 왜 장난을 쳐. (웃음) |
| 아빠 | 그만 마시라고. (웃음) |
| 엄마 | ······응. |
| 아빠 | 나도 내일은 술 한잔하고 들어올 수도 있어. 부서 애들이랑. |
| 엄마 | 응. |
| 아빠 | 아, 맞아, 주말에 땅 보러 갈 거야. 근처에 오리백숙 집도 하나 찾았어. 다들 시간 비워 놔. |
| 사이. | |
| 아빠 | 일정들 있어? |
| 남자 | ···네. |
| 아빠 | 가기 싫으냐? |
| 남자 | ······. |
| 아빠 | 당신은? |
| 엄마 | 어? |
| 아빠 | ···가기 싫어? |
| 엄마 | 아니, 선약이 있어서. (미소) |
| 아빠 | ···못 바꿔? |
| 엄마 | 응, 못 바꿔. |
| 아빠 | ······그래. |
| 사이. | |
| 아빠 | 씻을게. 당신, 오늘 안에서 잘래? |
| 엄마 | 괜찮아. 당신 혼자 자. 나 요새 코 골아. |
| 아빠 | ······응. |
| 아빠, 방으로 들어간다. | |
| 할머니, 방에서 나온다. 화장실로 들어간다. | |
| 남자와 엄마, 그 모습을 바라본다. | |
| 엄마 | 다 보고 오셨지? |
| 남자 | 보셨겠지. |
| 엄마 | 확인했어? |
| 남자 | 괜찮아 보였어. |
| 엄마 | 제대로 여쭤 봐야지. 속인답시고 쓸데없이 물만 내리시는데. |
| 남자 | 오줌 누시는 거겠지. ···잘게. |
| 엄마 | ···낮에 어디 나가? |
| 남자 | 나? |
| 엄마 | 너지 누구겠어. |
| 남자 | 따로 계획은 없어. |
| 엄마 | 집에 있겠네? |
| 남자 | 그냥 계획만 없다고. |
| 엄마 | 집 좀 지켜. 할머니도 보고. |
| 남자 | 몰라. |
| 엄마 | 말 좀 들어라. |
| 핸드폰 진동. | |
| 엄마 | (남자를 힐끔 보더니) 이모. |
| 남자 | 안 물어봤어. |
| 엄마 | 얼른 자. |
| 엄마, 방으로 들어간다. | |
| 남자도 방으로 들어간다. | |
| 9. | |
| 새벽 5시. | |
| 할머니, 우두커니 서 있다. | |
| 엄마와 아빠,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다. | |
| 엄마 | ···어머니? |
| 아빠 | 엄마? |
| 할머니 | 왜? 가서 쉬어. |
| 엄마 | 예? |
| 아빠 | 소리··· 지르셨잖아. |
| 할머니 | 내가 언제. |
| 엄마 | 어머니···. |
| 할머니 | 왜 계속 불러! 아바이 출근해야지. 어여 준비해. 혜진이 너도. |
| 아빠 | 엄마, 왜 그래···. |
| 엄마 | 맞아요, 어머니. |
| 할머니 | 괜찮다니까! 병원 갔다 왔잖어. 남은 게 좀 있는 거 같은데, 금방 나와. 걱정 말어. |
| 아빠 | 엄마···. |
| 할머니 | 잘 거니까 깨우지 말어. 초상집도 아니고 원. |
| 할머니, 방으로 들어간다. | |
| 사이. | |
| 아빠 | ···난 준비한다. 맞다, 셔츠 어딨어? 최근에 산 거. |
| 엄마 | 왼쪽. 오른쪽 옷장 말고. |
| 아빠 | 아. |
| 엄마 | 말했나, 나 늦는다고? |
| 아빠 | 아······ 니. |
| 엄마 | 늦어. |
| 아빠 | 아··· 그래. |
| 아빠,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 |
| 아빠 | 외출은 좀 줄이지 그래. |
| 엄마 | 왜? |
| 아빠 | 일이면 이해를 하겠는데. |
| 엄마 | 일이야, 나도. |
| 아빠 | 무슨 일? |
| 엄마 | 왜 물어? |
| 아빠 | 물을 수 있잖아. |
| 엄마 | 그냥 일. |
| 아빠 | 사적인 일, 공적인 일? |
| 엄마 | 왜 이래? |
| 아빠 | 아니, 난 당신만 시간 괜찮으면 맥주나 한잔할까, 했지. 밤에. |
| 엄마 | 회식이라며. |
| 아빠 | 아··· 당신이 먼저지. |
| 엄마 | 준비나 해. 늦겠다. |
| 아빠 | ···그래. |
| 아빠, 방으로 들어간다. | |
| 엄마도 방으로 들어간다. | |
| 할머니가 방에서 나온다. | |
| 할머니 | 아이구, 아이구···. |
| 할머니, 화장실로 들어간다. | |
| 들려오는 옅은 신음. | |
| 10. | |
| 일주일 후. | |
| 카페&펍. 저녁 8시. | |
| 엄마, 만취 상태이다. | |
| 친구 | 너는 진짜! 제발! 좀! |
| 엄마 | 야! 어차피 여기, 뭐야, 어, 손님 없잖아! |
| 친구 | 너 때문에 없는 거야, 너 때문에. |
| 엄마 | 사랑한다! |
| 친구 | 미쳤어! 쉿! |
| 엄마 | 너도 사랑한다고 했잖아! |
| 친구 | 그건 전화고! 누가 들어! |
| 엄마 | 넌 내가 싫은 것이냐? |
| 친구 | 아, 왜 이래! (사이) 그만 좀 가. 가족들 기다려. |
| 엄마 | 누가 날 기다려. 우리 어머니? 난 병원 셔틀이지. 우리 아들? 그 자식도 보니까 그냥 맛탱이 갔어. |
| 친구 | 젊은 애들이야 방황할 나이지. 시어머니도 연세가 있잖아. |
| 엄마 | 남편은? |
| 친구 | ···일 많이 하잖아. 쉽지 않겠지. |
| 엄마 | 네 눈엔 나만 놈팽이지?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볼래? 이쪽 업계에서 나만큼 일하는 사람이 없어. 나이 좀 차면 죄다 나가리거든. 이런 판에서 난 아직도 떵떵거리면서 일해. 어딜 가잖아? 사람들이 꼭 내 의견을 물어봐. 난 또 그게 좋아서 시시덕거려. 봐 봐라, 내가 큰 걸 바라냐? 나는 새끼야, 큰 거 요구 안 해. 이 쪼만한 가게에서 네가 내 얘기만 좀 들어줘도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나 진짜 정 많거든. 좀만 맘에 들어도 거기에 뿌리내리는 사람이거든. 여기가 진짜 내 자리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거든. (사이) 우리 집 거실에서 폭탄 하나 터졌으면 좋겠다. |
| 친구 | 거짓말. |
| 엄마 | 네가 뭘 알아. (사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
| 친구 | 그래, 모르지. |
| 엄마 | 가끔 보면, 넌 사람을 헷갈리게 해. 편들 거면 똑바로 들어. |
| 친구 | 미안. |
| 엄마, 맥주를 마신다. | |
| 친구 | 그만 마셔. |
| 엄마 | 닥쳐. |
| 친구 | 그렇게 미워, 그 사람들이? |
| 엄마 | 닥치라고! |
| 사이. | |
| 친구 | ······난 있지, 네가 그 사람들 미워한다고 생각 안 해. 나야 뭐, 네 남편이랑 네 가족 미워하는 거 일도 아니지. (사이) 저번에 독서 모임을 하는데, 어떤 대학생이 거의 칠백 페이지짜리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려고 하는 거야. 흉기나 방패로 쓰면 딱 좋을 두꺼운 책이었거든. 후딱 읽고 책장을 비우는 게 목적이래. 근데 난 안다? 복잡한 글들은 원래 요약이 힘들어. 아주 극단적인 단어나 이미지를 써서 요약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겠지. 영화 한 줄 평처럼. 근데 그랬다간 한 달만 지나도 다시 책을 펴 봐야 될걸? 자칫하다 영원히 그 책에 매이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야, 그 학생은. |
| 엄마 | ···뭐라는 거야, 이 책벌레가. |
| 친구 | 넌 사랑이 많은 애야. |
| 엄마 | 애래. 우웩. |
| 친구 | 넌 사랑이 많은 아줌마야. |
| 엄마, 웃는다. | |
| 친구 | 그래서 말인데, 이제 좀 갈래? 나 장사 좀 하자! |
| 엄마 | 내가 여기서 일한다니까? 나 집 나올 수 있어. 진짜로. |
| 친구 | 여태 뭐 들은 거냐. |
| 엄마 | ···알아들었거든. |
| 엄마, 맥주를 마신다. | |
| 아빠, 들어온다. | |
| 친구 | 어서 오세요. |
| 엄마 | 어, 여보! |
| 엄마, 아빠를 안는다. | |
| 친구 | ······. |
| 엄마, 금방이라도 토를 할 것 같다. | |
| 엄마 | 나 잠깐만······. |
| 엄마, 화장실로 달려간다. | |
| 친구 | 음··· 저는··· 저 친구의··· 친구입니다. 어릴 때부터 알았던. |
| 아빠 | 주문 안 받으시나요? |
| 친구 | 아, 뭐로 드릴까요? |
| 아빠 | 오렌지주스 주세요. 차가 있어서. |
| 친구 | 아··· 오렌지주스요? 네. |
| 친구, 주방으로 들어간다. | |
| 아빠, 가게를 둘러본다. | |
| 잠시 후 친구, 오렌지주스를 가지고 나온다. | |
| 친구 | (주스를 건네며) 앉으시죠. |
| 아빠 | (무시한다) 인테리어는 좋네요. |
| 친구 | 오늘 뭐 어디 미팅 가신다고···. |
| 아빠 | 그런 얘기도 해요? |
| 친구 | 네? 아···. |
| 아빠 | 그냥 질문이었는데. |
| 친구 | 듣기만 들었습니다. |
| 아빠 | 장사가 힘든가 봐요? 한창 술 먹을 시간인데. |
| 친구 | 한 일 년 전부터 상권이 옆 골목으로 옮겨 가서요. 가끔가다 아줌마들이랑 아저씨들 오는 게 다입니다. 차라리 편하죠. 제가 이십 대 애들을 상대하긴 버거우니까요. |
| 아빠 | 그런가요. |
| 친구 |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화장실을 가리키며) 쟤가 말해 줬어요? |
| 아빠 | 우연히 이 동네 왔는데, 우연히 와이프를 봤어요. |
| 친구 | ······. |
| 아빠 | 장난. |
| 친구, 멋쩍게 웃는다. | |
| 아빠 | 저 사람 폰에 어플 하나 깔았어요. 몰래. 내가 이런 거 말하면 바로 고자질하시려나, 우리 사장님이? 혹시라도 추적 안 되면 사장님부터 의심할 겁니다! (웃음) 여기 많이 오던데요, 와이프가. 궁금해서 와 봤습니다. |
| 친구 | 아··· 네. |
| 아빠, 자리에 앉는다. | |
| 친구, 따라 앉는다. | |
| 사이. | |
| 아빠 | 그만하세요. |
| 친구 | 네? |
| 아빠 | 알 만큼 아는 사람이. |
| 친구 | ······. |
| 아빠 | 쪽팔리잖아요, 이 나이에. |
| 친구 |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네요. |
| 아빠 | (차분하게) 제가 그렇게 선한 인간이 아니에요. 트집 한번 잡으려고 계산기 두들기는 놈들 밑에서 무식하게 수명 깎아 가면서 일했어요. 앞에서 주름잡는 것들은 밟아 가면서 여기까지 올라왔고요. 지금도 제 내장을 내시경으로 보잖아요? 아마 서 있는 게 용할 지경일 겁니다. 제가 그만큼 독한 놈이라는 거예요. 사장님이 저를 적으로 두셔서 좋을 게 정말 하나도 없어요. (웃음) |
| 사이. | |
| 아빠 | 이 사람이 늦게 나오네요. 등이라도 두드려 줄까 봐요. |
| 친구 | 잘 거예요. 종종 자요, 취하면. |
| 아빠 | ······. |
| 친구 | 변기에서요. 때 되면 알아서 깨더라고요. |
| 아빠 | ···땅을 하나 살 겁니다. 거기에 집을 지을 생각이에요. 남은 인생을 거기서 살려고요. 와이프와 함께. 가족과 함께. (태블릿을 꺼내 보여 주며) 보이세요? 저희 집이 올라갈 땅이에요. 옆쪽으로는 소나무가 있어요. 그 앞에서 정면을 보면 풀밭이 보여요. 보기만 해도 좋지 않아요? 평생 일한 보람을 이런 데서 느껴보려고요. 어떤가요? 이것도 이미 들으셨나요? |
| 친구 | 부럽네요. 저는 꿈도 못 꿀 경치예요. 그런데··· 제 친구가 여길 좋아할까요? |
| 아빠 | 네? |
| 친구 | 자연이랑은 워낙 거리가 있는 친구라···. (웃음) 선생님 노후는 거기서 보내면 정말 행복하겠어요. 되게 잘··· 어울려요. ‘촌’스러운 느낌이. |
| 아빠 | ······. |
| 친구 | 제 친구가요, 아, 누군진 모르셔도 돼요. 걔가 제 가게에 오면 종종 울면서 푸념을 해요. 만만한 게 저라 저한테 푸념하는 놈들이 많거든요. 그 친구가, 자기는 모델하우스에 사는 것 같대요. |
| 아빠 | 무슨 뜻인가요. |
| 친구 | 자기 집이 그만큼 좋다는 거 아니겠어요? 아우, 진짜, 단칸방 얻어서 사는 사람한테 그게 할 말이에요? 어이가 없어서. |
| 아빠 | ······. |
| 친구 | 선생님도 똑같아요! 저한테 그런 땅까지 보여 주시고. |
| 아빠 | 그 사람은 좋아서 울었던 건가요? |
| 친구 | (웃으며) 그 친구가 다음에 또 오면 물어볼게요. |
| 사이. | |
| 엄마, 슬그머니 나타난다. | |
| 아빠 | 좀 깼어? |
| 엄마 | 당신···. |
| 아빠 | 사장님이랑 얘기 좀 하고 있었어. 친구분이라며? |
| 엄마 | 아······. |
| 아빠 | 당신 꼭 내가 일 있다고 하면 늦는 거 같아. (웃음) 엊그제도 그렇고 저번 주도 그렇고. (사이) 오늘 일은 끝? 아니면 뭐, 캔슬? |
| 엄마 | 아··· 갑자기. 응. |
| 아빠 | 그래서 놀자판이었구만! (사이) 짐 챙겨. 가자. |
| 엄마 | ···어떻게 알았어? |
| 아빠 | 뭘? |
| 사이. | |
| 아빠 | 아니, 뭘. 말을 해. (웃음) |
| 엄마 | 가면서 얘기해. |
| 아빠 | 난 할 얘기 없는데? 지나가는데 유리 너머로 당신이 보였어. |
| 엄마 | ······. |
| 아빠 | 진짠데. (웃음) |
| 엄마 | ······그렇구나. (사이) 미팅이 이 근처였나 봐? |
| 아빠 | 그건 아니고. 미팅은 취소됐어. 어쩌다 보니. 다른 일이 생겼거든. |
| 엄마 | ···무슨 일? |
| 아빠 | 왜 이래. |
| 엄마 | 웃기잖아. 어떻게 일이 갑자기 이 근처에 생겨. |
| 아빠 | 그러면 안 되나? |
| 엄마 | ······. |
| 아빠 | 표정 좀 풀어. (미소) 당신 나쁜 짓 했어? 아니잖아. |
| 엄마 | 아니지. |
| 아빠 | 근데 좀 너무하긴 하다. 이걸 다 마신 거야? (친구에게) 요새 술이 하도 늘어서, 이 사람이. (웃음) 이거 다 사장님 때문이네! |
| 친구 | 아, 죄송하네요···. 허허. |
| 아빠 | (엄마에게) 챙겨, 빨리. |
| 엄마 | 어어. (친구에게) ···갈게. |
| 엄마, 짐을 챙겨 나가려 한다. | |
| 아빠 | 어디 가? |
| 엄마 | 어? |
| 아빠 | 계산은 해야지, 친구분이어도. 장사꾼이신데. |
| 친구 | 오늘은 서비스. |
| 아빠 | 아니에요. 계산해 주세요. 장사도 힘드신데. 그동안 저희 와이프가 신세 진 거, 전부 내고 가겠습니다. |
| 친구 | ······그러세요, 그러면. |
| 엄마 | ······. |
| 친구 | 근데 좀 비싼데. |
| 아빠 | 괜찮습니다. 술 그거 얼마 한다고. |
| 친구 | 저희가 한두 번 만난 게 아니라. |
| 아빠 | ······. |
| 친구 | 동창이니까요. (미소) |
| 11. | |
| 거실. 밤 9시. | |
| 할머니, 벽에 기대고 있다. | |
| 도어락 소리. | |
| 엄마, 들어온다. | |
| 엄마 | ···어머니. |
| 할머니 | 나 괜찮어. 어여 쉬어. |
| 엄마 | 언제부터 이랬어요. |
| 할머니 | ······. |
| 엄마 | 언제부터 이랬냐고! |
| 할머니 | 소리 지르지 말어···. 아까 낮에···. |
| 엄마 | 왜 그걸 계속···. 말을 하셔야죠! 전화를 하셔야죠! |
| 할머니 | 그땐 정말 괜찮았어. 참을 만했어. |
| 엄마 | 어머니! |
| 할머니 | 나 괜찮어. 어여 쉬라니까. |
| 엄마 | 옷 입으셔. 병원 가요. |
| 할머니 | 괜찮대도. |
| 엄마 | 바로 가요, 애 아빠도 같이 왔으니까. |
| 도어락 소리. | |
| 아빠, 들어온다. | |
| 아빠 | ······또야? |
| 엄마 | 차 좀 다시 빼. |
| 아빠 | 낮에 병원 안 다녀오셨어? |
| 할머니 | 거길 내가 어째 가. |
| 엄마 | ···오늘 혼자 계셨어요? |
| 사이. | |
| 아빠, 남자의 방으로 가더니 문을 열어 본다. | |
| 아무도 없다. | |
| 할머니 | 애한테 뭐라 그러지 말어. |
| 엄마,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 |
| 아빠 | 안 받아? |
| 엄마, 고개를 끄덕인다. | |
| 아빠 | 이 새끼가 진짜······. |
| 엄마 | 어머니, 일단 나가요. |
| 아빠 | 엄마, 업혀. |
| 아빠, 할머니를 업는다. | |
| 아빠와 엄마, 할머니를 데리고 나간다. | |
| 12. | |
| 카페. 밤 9시. | |
| 남자와 여자, 마주하고 있다. | |
| 남자 | 답답해서···. 바람도 쐴 겸. |
| 여자 | 여기까지? |
| 남자 | 별로 안 멀어. 고속버스 타고 한 시간 반이면 와. |
| 여자 | 아···. |
| 사이. | |
| 남자 | 잘 지내? |
| 여자 | 꽤. 좋아. |
| 남자 | 뭐가 좋아? |
| 여자 | 공기. 좋잖아, 맑아서. |
| 남자 | 취직했더라. 전공 살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
| 여자 | 어떻게 알아? |
| 남자 | 인스타. 네가 올린 스토리 봤어. |
| 여자 | 네 계정 차단했는데. |
| 남자 | 친구 걸로. |
| 여자 | 노력은 가상하네. |
| 남자 | 난 네가 당연히 서울 쪽에 취직할 줄 알았어. |
| 여자 | 돈 보고 왔어. |
| 남자 | 현명하구나. |
| 사이. | |
| 남자 | 와 줘서 고마워. 사실 안 나올 줄 알았는데. |
| 여자 |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왔어. 앞으론 애들한테 내 소식 묻지 마. |
| 남자 | ···헤어질 때, 네가 생각해 보라고 했잖아. 네가 날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
| 여자 | 그건 너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 얘기고. 이젠 기대 안 걸어. |
| 남자 | ···그렇구나. |
| 여자 | 넌, 안 변해. |
| 사이. | |
| 여자 | 준비한 거 얘기해. |
| 남자 | 뭘 준비하고 오지는 않았어. 그냥··· 와야겠단 생각이 들었어. 최근 들어 네 생각을 많이 했거든. |
| 핸드폰 진동. | |
| 여자 | 받아도 돼. |
| 남자 | 아니야. 아니야. |
| 진동이 멈출 때까지 기다린다. | |
| 진동이 멈춘다. | |
| 남자 | 다시 만나 보자. |
| 여자 | ······싫은데. |
| 남자 |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 봐. |
| 여자 | 대충 네가 뭔 말 할지 느낌은 왔어. |
| 남자 | 아···. |
| 여자 | 안 될 거 같은데. |
| 남자 | 여기 오는데, 풍경 좋더라. 너만 받아 주면, 나 여기 내려와서 눌러앉을 수도 있어. 정말로. (사이) 널 떠나거나 그러지 않을 거야. |
| 여자 | 좋은 집 놔 두고 왜 여기로 와. 너 잘살잖아. |
| 남자 | 차라리 버스 안이 더 편했어. 내가 마음 둘 곳은 너한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이) 오래 고민했어. 지금 내가 너한테 말한 것 중에 거짓말, 하나도 없어. |
| 여자 | 미안하지만, 싫어. |
| 남자 | ···박하네. |
| 여자 | ···누가 들으면 내가 잘못한 줄 알겠다. |
| 남자 | 그런 뜻이 아니라···. |
| 여자 | 하나도 안 달라졌네. 진짜 별로다. |
| 남자 | 사람이 일관됐잖아. 난 일편단심이야. |
| 여자 | 가관이네. |
| 남자 | 그래도 예전처럼··· 그러진 않을 거야. |
| 여자 | 무슨 말이야? |
| 남자 | 널 떠나거나, 두고 가거나, 버리지 않을 거야. |
| 사이. | |
| 여자 | 네가 날 떠나서, 두고 가서, 버려서, 그래서 이러는 게 아니야···. |
| 남자 | 그러면 뭔데? 그날 나······ 무서웠어. 진짜 네가 죽은 줄 알았어. 그래도 다시 왔잖아. 네가 걱정돼서. |
| 사이. | |
| 여자 | 갈게. |
| 남자 | 벌써? 커피라도 마시고 가. |
| 여자 | 별로 할 말이 없어. |
| 남자 | ···. |
| 여자 | 내 걱정··· 맞아? |
| 여자, 나간다. | |
| 남자 | ······. |
| 13. | |
| 병원. 원무과 앞. 밤 11시. | |
| 엄마와 아빠, 의자에 앉아 있다. | |
| 당직 의사, 응급실에서 나온다. | |
| 의사 | ···제 당직 때만 골라서 오세요? |
| 엄마 | 네? |
| 의사 | 아닙니다···. |
| 아빠 | 어떠신가요? |
| 의사 | 똑같이 파냈습니다. 근데요, 보호자께서 환자분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저희한테 맡겨 놓고 나가 버리시면 어쩌자는 건데요. 저희가 할머님만 봐 드릴 순 없잖아요. 아니, 이 얘길 또 하고 있네. 저번엔 아드님도 그러시더니. |
| 엄마 | 아··· 저희 애도요···. (사이) 제가 이상하게 오늘은 힘이 들어서··· 죄송합니다. |
| 의사 | 마음은 아는데요···. |
| 아빠 | 신경 쓰겠습니다···. |
| 의사 | 가족분들이 도와주셔야 안 참고 제때제때 병원도 오시죠. |
| 엄마 | ······네. |
| 의사 | ···곧 나오실 거예요. |
| 의사, 응급실로 들어간다. | |
| 할머니, 응급실에서 나온다. | |
| 엄마 | 어머니······ 볼일 다··· 보신 거 맞죠? 죄송해요, 제가······ |
| 할머니 | 어여 가자······. 미안하다. |
| 할머니, 밖으로 나간다. | |
| 엄마와 아빠, 그런 할머니를 바라본다. | |
| 14. | |
| 거실. 밤 12시. | |
| 엄마, 맥주를 마시고 있다. | |
| 도어락 소리. | |
| 남자, 들어온다. | |
| 엄마 | 얘기 좀 해. |
| 사이. | |
| 엄마 | 어디 갔다 왔어? |
| 남자 | 좀 멀리. |
| 엄마 | ···왜? |
| 남자 | 그냥. |
| 엄마 | 욕봤어, 네 할머니. |
| 남자 | ······. |
| 엄마 | 왜 나갔어? |
| 남자 | 볼 사람 생겨서. |
| 엄마 |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
| 아빠, 방에서 나온다. | |
| 남자 | 왔어요. |
| 아빠 | 왜 그랬어. |
| 남자 | ······. |
| 아빠 | 왜 그랬어. |
| 남자 | ······. |
| 아빠 | 네 할머니 죽을 뻔했어. |
| 남자 | ······. |
| 아빠 | 네 할머니, 죽을 뻔했다고. |
| 남자 | ······. |
| 아빠 | 그거 잠깐 보는 게 힘들어? |
| 할머니, 방에서 나온다. | |
| 세 사람, 할머니를 바라본다. | |
| 할머니 | 오줌 눌 거야. (웃음) 애 혼내지 말어. 내가 괜찮다고 했던 거 같어. |
| 할머니, 화장실로 들어간다. | |
| 세 사람, 그 모습을 바라본다. | |
| 아빠 | ······이 집에서 쫓겨나기 싫으면 그거에 맞게 예의를 지켜. 하는 것도 없이 밥이나 축내면서 살지 말고. 내가 너 같은 아들놈 하나 키우자고 사람들 후두려 밟아 가면서 돈 벌어다 준 게 아니니까. |
| 남자 | ······. |
| 아빠 | ···정신 빠진 새끼. |
| 들려오는 옅은 신음. | |
| 아빠, 방으로 들어간다. | |
| 남자 | ···미안해. |
| 엄마 | 됐어. |
| 핸드폰 진동. | |
| 남자 | 이모? |
| 엄마 | 어. |
| 남자 | 받아. 괜찮아. |
| 엄마 | 아니야. |
| 계속되는 진동. | |
| 그러다가 꺼진다. | |
| 사이. | |
| 남자 | 난 있잖아··· 이 집 무너지는 소리가 너무 잘 들려. 할머니가 아파하는 소리도, 벽 너머에서 엄마가 통화하는 소리도. |
| 엄마 | ······. |
| 들려오는 옅은 신음. | |
| 남자 | 솔직했으면 좋겠어. |
| 엄마 | 마음이 쓰여? |
| 남자 | 안 쓰이는 게 이상하지. |
| 엄마 | 받아 줄 거야, 털어놓으면? (웃음) |
| 남자 | 응. |
| 엄마 | 거짓말. |
| 남자 | 왜 그런 식으로 말해···. |
| 엄마 | 너··· 도망쳤다며. 할머니 앞에서. |
| 사이. | |
| 남자 | 그건···. |
| 핸드폰 진동. | |
| 엄마, 전화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간다. | |
| 남자 | ······. |
| 물 내리는 소리. | |
| 할머니, 화장실에서 나온다. | |
| 남자 | ······괜찮으세요? |
| 할머니 | 나 오늘은 진짜 괜찮다. 걱정하지 말어. |
| 남자 | (웃으며) ···그래요? |
| 할머니 | 그래. |
| 사이. | |
| 남자 | 다행이네요. |
| 15. | |
| 한 달 후. | |
| 잡초가 무성한 땅. 10월 말. 낮 1시. | |
| 할머니, 엄마, 남자가 땅을 보고 있다. | |
| 아빠는 앞으로의 미래에 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 |
| 아빠 | 그렇게 이 길을 따라서 십오 분을 걸어가면 계곡이 있어. 거기서 여름마다 가족끼리 놀아도 좋을 거야. 저쪽 옆에 보면 소나무 보이지? 저게 진짜 기운이 좋은 소나무래. 난 분명 우리 집에도 좋은 기운이 스며들 거라고 믿어.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야. 내가 좀 계산해 봤는데, 이것저것 따질 거 다 따져 보니까 십 년은 필요하더라. 십 년 긴 것 같지? 이제 봐라. 십 년 금방이다. 일만 하다가 죽을 뻔한 내 인생, 이 집에서 구원받는 거야. 우리 가족도 전부. |
| 아무도 아빠의 말을 듣지 않는다. | |
| 할머니 | 소나무야, 저거? |
| 남자 | 그런 것 같아요. |
| 할머니 | 예쁘네···. |
| 남자 | (할머니에게) 다리는 좀 괜찮아요? |
| 할머니 | 어어, 괜찮어. 우리 손주, 배고프겠네. |
| 남자 | 이제 먹으러 가겠죠. |
| 할머니 | (땅을 보더니) 할미 방은··· 이 집에 없겠어. |
| 남자 | 왜 그런 소릴 하셔. |
| 할머니 | 이러고 내가 몇 년을 더 살겠냐? (웃음) 집구석이 가시방석이지, 이놈아. 죽는 게 더 편하겠어. 근데 우리 손주 장가가는 건 할미가 봐야 되는데. |
| 남자 | 어떡하지, 나 사십 넘어서 결혼할 건데. |
| 할머니 | 안 돼, 이놈아! |
| 남자 | (웃으며) 고민해 볼게. |
| 아빠 | 이동합시다. 배고프다. |
| 엄마 | 난 잠깐 전화 좀. |
| 아빠 | ···전화? |
| 엄마 | 응, 왜? ···이번엔 뭐 안 깔아놨어? |
| 사이. | |
| 아빠 | ···당당하네. ···하고 싶은 대로 해, 이제. |
| 엄마 | 장난, 장난. 거래처야. |
| 엄마, 멀리 떨어져 전화를 받는다. | |
| 아빠 | 오리백숙 괜찮지? |
| 할머니 | 우리 손주 먹고 싶은 걸로 먹어. |
| 아빠 | 갑시다. |
| 할머니와 남자, 먼저 자리를 뜬다. | |
| 아빠, 엄마를 바라본다. | |
| 아빠 | ···위쪽 통나무집이야. |
| 엄마 | 알아, 어딘지. 먼저 가. |
| 아빠 | ···천천히 와. 시켜 놓을게. |
| 엄마 | 어어. |
| 아빠도 자리를 뜬다. | |
| 엄마 | 맞아. |
| 미안해. | |
| 응···. | |
| 땅 보러 왔어. | |
| 엄마, 땅을 바라본다. | |
| 자기야, 난 오늘 확신이 들었다. | |
| 응. 응. | |
| 확신. | |
| 빛 보고 살긴 어려울 거 같아, 이 집에선. | |
| 응. 그 말도 맞아. 응. | |
| 나쁜가? | |
| 응. | |
| 앞으로 내 십 년이 어떻게 무너질지···. | |
| 남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 |
| 그런 게 보였거든. | |
| 응. 맞아. | |
| 알겠어. | |
| 응. | |
| 내일 봐. | |
| 응. 응. | |
| 우리? | |
| 몰라. 행복하겠지. | |
| 응. | |
| 나 욕 많이 먹을까? | |
| 응. 엥? 내가? (웃음) | |
| 무슨 소리야. | |
| 아니. | |
| 이 집은···. | |
| 내 집이 아니야. | |
| 16. | |
| 어느 볕 좋은 날. | |
| 거실. 아침 7시. | |
| 남자, 시리얼을 먹고 있다. | |
| 아빠, 방에서 나온다. | |
| 아빠 | 간다. |
| 남자 | 아침은요? |
| 아빠 | 생각 없어. |
| 남자 | 살살하세요. |
| 아빠 | 십 년을 구 년으로 줄여야지. |
| 남자 | 운전··· 조심하셔. |
| 사이. | |
| 아빠 | 간다. |
| 아빠, 나가려다가 갑자기 멈춘다. | |
| 남자 | ···왜요? |
| 아빠 | 볕이 좋아. |
| 아빠, 쏟아지는 햇빛을 멍하니 바라본다. | |
| 남자 | ······. |
| 아빠 | 간다. |
| 아빠, 나간다. | |
| 엄마, 방에서 나온다. | |
| 엄마 | 엄마 가. |
| 남자 | 늦어? |
| 엄마 | 응. |
| 남자 | 왜? |
| 엄마 | 친구. |
| 남자 | ······. |
| 엄마 | 나 어제 술 안 마셨다. |
| 남자 | 알아. |
| 엄마 | 갈게. |
| 남자 | 하루 잘 보내. |
| 사이. | |
| 엄마 | 영혼 좀 담아. |
| 남자 | 안 속네. |
| 엄마 | ······. |
| 엄마, 남자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 |
| 남자 | 으······ 술 마셨지? |
| 엄마 | 간다. |
| 엄마, 나간다. | |
| 남자, 시리얼 그릇을 정리한다. | |
| 남자 | 머니머니, 할머니, 식사 안 하셔? |
| 남자, 할머니의 방 쪽으로 다가간다.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린다. | |
| 남자 | 안 드실 거냐고. |
| 답이 없다. | |
| 남자 | 밥이요, 밥. |
| 답이 없다. | |
| 남자 | ······할머니? |
| 아주 긴 사이. | |
| 남자, 문을 연다. | |
| 17. | |
| 3년 후. | |
| 지방의 국공립 수목장림. 낮 2시. | |
| 다양한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있다. | |
| 남자와 아빠,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 앞에 서 있다. | |
| 아빠 | 몇이냐? |
| 남자 | 네? |
| 아빠 | 나이. |
| 남자 | 서른이요. |
| 아빠 | 기억나냐, 아빠 땅 처음 보러 왔을 때. |
| 남자 | 오리백숙 먹었던 건 기억나요. |
| 아빠 | 그때가 그러면··· 일곱이었겠네. |
| 남자 | 네. (사이) 괜찮으시죠? |
| 아빠 | 뭐가? |
| 남자 | 몸이요. |
| 아빠 | (심장에 손을 얹더니) 이거? 험하게 썼잖아. 그래도 수술 잘됐으니 됐지. |
| 남자 | 재발이 위험한 거예요. 일도 적당히 하세요. |
| 아빠 | 아직 일 못 관둬. (사이) 그래도 설레. 넌 이 나이에 설레는 게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모를 거야. |
| 사이. | |
| 남자 | 얼마나 남았죠? |
| 아빠 | 이 년. |
| 남자 | (진심으로 놀라워서) 와, 빠르네요. |
| 아빠 | 할머니 갔지, 너도 혼자 살지, 크게 지을 이유가 없더라. 덕분에 오 년 줄었잖아. 나야 땡큐지. |
| 남자 | 몰랐어요. |
| 아빠 | 관심이 없으니. |
| 남자 | 미안해요. |
| 아빠 | 아빠 집에 모셨어야 했나. |
| 남자 | 네? |
| 아빠 | 할머니 말이야. 왜, 아빠 땅에도 소나무 하나 딸려 있잖아. |
| 남자 | 여기도 충분히 좋아요. (주위를 보며) 주변에 친구분들도 많고. |
| 아빠 | 그런가. |
| 사이. | |
| 아빠 | 네 엄만······ 잘 사냐? |
| 남자 | 네, 아저씨랑 좋아 보이던데요. |
| 아빠 | 됐다, 그러면. |
| 남자 | 아저씨가 용돈도 줬어요. 상권이 다시 돌아와서 술집이 꽤 되나 봐요. 거기가 옆 골목으로 상권이···. |
| 아빠 | 알아. |
| 남자 | 아··· 그래요? (사이) 엄만 아직도 제가 백수인 줄 알던데. |
| 아빠 | (진심으로 놀라워서) 아니야? |
| 남자 | 알바는 해요. |
| 아빠 | 좋네. ···나중에 집 완성되면 놀러 와. |
| 남자 | 여전하시네요. |
| 아빠 | 뭐가. |
| 남자 | 다른 분들은 무슨 알바 하냐고 물어보시던데. |
| 아빠 | 물어봐 주리? |
| 남자 | (웃으며) 아니요. 기대도 안 했거든요. |
| 아빠 | 썩을 놈. |
| 사이. | |
| 아빠 | 아빤 갈 건데. 넌? |
| 남자 | 저도. |
| 아빠 | 태워 줘, 터미널까지? 차 저기 있는데. |
| 남자 | (반대를 가리키며) 전 이쪽으로 가면 정류장 금방이라. |
| 아빠 | ···그러냐. |
| 남자 | 네. |
| 아빠 | 그래, 할머니 잘 챙겨. |
| 남자 | 진짜··· 변하질 않으시네. |
| 아빠 | 할머니잖아. |
| 남자 | 알았어요. |
| 아빠, 남자를 지그시 바라본다. | |
| 아빠 | (남자의 뒤통수를 치며) 대가리 좀 깎고, 인마. |
| 남자 | ······. |
| 아빠 | (소나무에 대고) 엄마, 나 가요. |
| 아빠, 자리를 뜬다. | |
| 남자 | ······. |
| 남자, 소나무를 바라본다. 손을 뻗는다. | |
| 남자의 손바닥이 소나무 줄기에 닿는다. | |
| 소나무에 손을 댄 채 가만히 있는 남자. | |
| 잠시 그러고 있는다. | |
| 남자 | ······. |
| 남자, 자리를 뜬다. | |
| 정적. | |
| 서 있는 한 그루의 거대한 소나무. | |
| 숲을 이루고 있는 주변의 다양한 나무들. | |
| 아무도 없는 수목장림. | |
| 그런 풍경이 한동안 이어진다. | |
| 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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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해인
-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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