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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로 사라지는 세계

  • 작성일 2024-09-24


으로 사라지는 세계

조제인


인물

정아 - 준의 동생.

연수 - 정아의 친구.

- 정아의 언니.

- 모든 것.



  시간과 공간
  점 하나의 순간마다 달라진다.
   
  맨 처음 점과, 맨 뒤의 점만 순서가 유지되면,
  장마다(점마다)의 순서는 바꿔도 좋다.
   
   
   
 
   
  밝고 일상적인 빛 같은 것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점 하나가 있다.
   
나는 점.
   
  사이
   
  점이 숨 쉬려는 소리.
   
   
   
  ●     ●
   
  밝은 방.
  정아와 준, 그리고 점이 있다.
  정아는 어떤 것은 신중하게,
  또 어떤 것은 대충 넘기며 여러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다.
   
정아 언니.
응.
정아 잘 있음 됐어.
   
  정아, 계속 동그라미를 그린다.
   
정아 언니.
응.
정아 그거 기억나?
뭐?
정아 우리가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
   
  준, 정아를 아주 자세히 본다.
   
나지.
정아 나 사실 그때부터 언니가 불쌍했다.
그랬구나.
정아 불쌍해서 미칠 것 같았어.
  그래서 그 약속. 하기로 한 거야.
어쩐지.
정아 우리 사실 별로 안 친했잖아.
맞아.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지.
정아 자주 싸웠고.
진짜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걸로도.
정아 나는 사실 약속 같은 거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
미안해.
정아 미안할 건 없지.
그래도.
정아 언니.
응.
정아 절대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돼.
네 동생한테 말해.
집 안이 너무 어두운 데도?
정아 창문으로 뛰어내려도 안 돼.
점은 도망 같은 거 못 간다고 해.
고작 이 층 밖에 안 되는 데도?
정아 사라지면 안 돼.
···.
정아 무슨 일이 있어도.
점은 그런 거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고 해.
그럴게.
   
  정아, 만족한다.
   
  사이
   
정아 언니.
응.
   
  사이
   
정아 잘 있으면 됐어.
   
   
   
  ●     ●     ●
   
  밝은 방.
  밝은 빛 속에 준과 점이 있다.
   
인생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그런 거 몰라.
누군가 널 잡고 길게 늘이면 알 수 있게 될 거야.
나는그런거몰라.
이래서 점들이 부러운 거야.
   
  사이
   
슬퍼하지 마.
  점은슬픔같은것은몰라야돼.
  나는 너 때문에 그 단어를 알았어.
  내내 모르다가.
  불쾌해.
미안해.
  아니, 고마워.
고마워하지 마. 인간 주제에···.
   
   
   
  ●     ●     ●     ●
   
  밝은 방.
  세 번의 노크 소리가 들린다.
  현관문을 사이에 둔 정아와 연수.
   
정아 (동시에) 왔어?
연수 (동시에) 밥 먹었어?
정아 (동시에) 뭐라고?
연수 (동시에) 잘안들리네.
   
  정아, 연수 현관문에 더 붙는다.
   
정아 (동시에) 지금은 어때?
연수 (동시에) 지금은 어때?
정아 잘 들려.
연수 좋아. 밥은 먹었어?
정아 ···.
연수 대답 안 할 거야?
정아 대답 안 하는 게 아니라 대답 못 하는 거야.
연수 왜?
정아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어.
연수 얼마나 버틸 수 있어?
정아 어제는 빵에 곰팡이가 슬어서 냉동실 안에 넣었어.
연수 그래.
정아 통조림엔 곰팡이가 안 슬어서 다행이야.
연수 최고의 발명품이야. 기특해.
정아 우리 일주일 정도는 더 만날 수 있을 거야.
연수 나는 있잖아. 네가 굶어 죽어도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정아 알아.
연수 나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거든.
정아 안다니까.
연수 미안해.
정아 미안해할 필요 없어.
   
  사이
   
정아 나 사실 네가 갈 때 창밖을 봐.
연수 뭐?
정아 네가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려고.
연수 진짜 이상하다.
정아 그래서 네가 좋아졌어.
연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정아 너 전혀 기뻐 보이지 않네.
연수 난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정아 해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연수 난 케이스가 조금 달라.
정아 알아.
연수
정아 넌 신이잖아.
연수 그래. 그러니까 문제야.
정아 그게 문제가 돼?
연수 받기만 하는 건 어려워, 아무래도.
  받으면 주고 싶어지는데, 나는 인간사에 개입하면 안 되거든.
  그게 진짜 어려운 문제지. 그게 정말 곤란한 일이야. 받으면 울고 싶어져.
정아 아 너무 다행이다.
연수 뭐가?
정아 그러면 우리는 완벽한 사이가 될 거야.
연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정아 나는 이 상태가 좋거든. 어떤 것도 변하지 않으면 좋겠어.
  아무것도바뀌지않았으면좋겠어. 그런데네가무언갈주면내뭔가가바뀌게되잖아.
  네가 신이라 정말 다행이야.
  몽땅 받고도 하나도 주지 않는 신이라 정말 다행이야.
   
  연수, 달려서 사라진다.
   
   
   
  ●     ●     ●     ●     ●
   
  밝은 방.
  정아, 몸을 움직여 창문으로 간다.
  창문에 매달려 밖을 바라본다.
  연수가 달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작은 점 같다.
   
정아 언니.
응.
정아 나 그 친구가 좋아졌어.
  아무리 슬퍼도 집을 잘 찾아갈 수 있는 좋은 친구야.
   
  정아, 쓰러져 잔다.
   
   
   
  ●     ●     ●     ●     ●     ●
   
  밝은 방.
  어떤 어둠도 없는.
  불룩한 침대를 보니 정아가 자고 있다.
   
정아는 자나?
   
  사이
   
어젯밤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
아니. 아주 작게 살아 있고 싶다는 생각.
점은 아주 작게 살아 있는 상태야.
그래, 점들이 자주 하는 생각.
그래, 점들이 자주 있는 상태.
인생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그런 거 몰라. 누가 날 잡고 길게 늘이지 않는 이상.
   
  사이
   
여기가 우주라고 치거든. 모두가 점이라고 볼 수 있잖아.
···.
너도. 나도. 그리고 네 동생도.
개소리야.
   
  사이
   
여긴 그냥 침대 위야.
   
  라디오가 나오고 있다.
   
  더 이상 작아지지 못할 정도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면, 당신은 점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준과 점, 정아 내려다보며,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     ●     ●     ●     ●     ●     ●
   
  밝은 방.
  정아와 준, 그리고 점들이 있다.
   
  라디오가 나오고 있다.
  아, 오늘은 점을 잘 그리는 법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처음엔 큰 동그라미여도 완전 OK입니다.
  그리셨나요? 좋습니다.
  그러면 이번엔 더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보세요.
  그다음 번엔 더 작은··· 그리고 더 작은···
   
  정아, 점을 그리는 데 열중한다.
   
정아 언니.
응.
정아 언니.
응.
정아 언니는 아주 작아져 버리고 싶어 했지.
응.
정아 사람들이 언니를 그리워한대.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
   
   
   
  ●     ●     ●     ●     ●     ●     ●     ●
   
  밝은 방.
  세 번의 노크 소리가 들린다.
  현관문을 사이에 둔 정아와 연수.
   
정아 오늘은 뭘 했어?
연수 가만히 집에 있었어.
정아 나랑 똑같네. 그리고?
연수 여기로 왔어. 눈을 감고 아주 빠르게. 사실은 실눈을 뜨고, 아주 빠르게 뛰어서.
정아 보고 싶지 않아서?
연수 응.
정아 나랑 똑같네. 제일 무서운 것은 무언갈 보는 거야.
연수 넌 날 보잖아.
정아 응.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
연수 밥 먹었어?
정아 ···.
연수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어?
정아 ···.
연수 나는 있잖아. 네가 굶어 죽어도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정아 다행이다.
   
   
   
  ●     ●     ●     ●     ●     ●     ●     ●     ●
   
  밝은 방.
  준과, 점, 정아가 있다.
  정아는 현관문에 붙어 있다.
   
나 곤경에 처했어. 도와줘. 살려 줘. 구해 줘. 꺼내 줘.
···.
나 곤경에 처했다니까. 도와 달라니까. 살려 달라니까. 구해 달라니까 꺼내 달라니까.
네말에는두가지모순이있어.
뭔데?
첫 번째. 점은 곤경 같은 것에 처하지 않아.
  두 번째. 진짜 곤경에 처한 사람은 곤경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넌 동그란 거짓말쟁이야.
   
  준, 마음이 상한다.
   
말하지 않을 거야. 또 점, 같지 않은 일을 하는 거니까.
그래, 또 거짓말을 하는 거야.
   
   
   
  ●     ●     ●     ●     ●     ●     ●     ●     ●     ●
   
  밝은 방.
  현관문을 사이에 둔 정아와 연수.
   
연수 나도 너를 봤어.
정아 어디서?
연수 어제, 집에가는길에.
정아 그래서 한 번 뒤를 돌았구나.
연수 알고 있었어?
정아 나는 네 발소리도 들어. 내 방이 제일 가깝거든.
연수 나도 들어.
정아 뭘?
연수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어. 매일 밤마다. 그래서 잠도 못 자고.
정아 우리언니가하는기도도들은적있어?
연수 들었을지도 몰라.
정아 확신할 수는 없어?
연수 누가 한 기도인지는 모르니까. 하지만 동생에 대한 기도는 자주 들려.
정아 그러면 우리 언니가 한 기도가 아닐 거야.
   
  사이
   
정아 난 한 번도 기도를 해 본 적 없어.
연수 ···.
정아 누군가 듣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
연수 ···.
정아 만일 기도를 할 일이 있으면 난 낮에 할게.
연수 언니에 대한 기도?
정아 글쎄.
   
  사이
   
정아 약속을 했어, 언니랑.
  언니가 애인이랑 헤어지고 싶다고 하거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거든,
  사라지고 싶다고 하거든···.
  무엇이 되었든 그 시간을 최대한 길게 늘여서 지체해 달라고.
  곧바로헤어지고그만두고사라지지않을수있도록.
  미루고, 늘이고, 비울 수 있도록···.
연수 난 못해. 그런 약속.
정아 나도 그런 약속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그 약속을 수행하면 언니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
  그것만이 진실인 것 같아.
  아주 오랫동안 그걸 씹고 싶어.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연수 그런건신의약속이야. 간섭하고유보하고만드는거말이야.
정아 그래?
연수 그런 걸 네가 할 수 있을 리 없어.
정아 난 했어.
   
  정아, 연수를 보기 위해 노력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현관문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정아 언니의 자리는 창가 오른쪽 자리.
  볕이 됐든 바람이 됐든 벌레가 됐든
  더 가까운 자리.
  내 자리는 안쪽 자리.
  아주 안전한 자리.
  난 그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생각했어.
   
  연수,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수, 달린다.
   
연수 나는 달린다. 지친 몸을 이끌고 콘크리트 바닥을 달린다.
  거리를 지나친다. 지나쳐 갈 것이다.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열매를 보았지만.
  정확하게는신의눈으로보았지만.
  지나친다.
  나로서는 보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그런 조그마하고 아름다운 것은 건강한 사람이나 볼 수 있는 거다.
   
  연수, 사라진다.
  무대 위에 조그마한 열매 하나 남아 있다.
   
   
   
  ●     ●     ●     ●     ●     ●     ●     ●     ●     ●     ●
   
  밝은 방.
  정아, 준, 그리고 점이 있다.
   
정아 있잖아. 언니가 아주 작게 프레스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그러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람은 원래 있던 자리가 있어.
  우리 언니는 변하는 걸 싫어해.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있어.
  그런 관성이 있어.
  적어도 우리는 그런 성질이 있어.
  우리는 그런 습관이 있어.
  우리는 그런 습성이 있어.
  아무튼 그런 게 있어.
  난 그렇게 믿어.
   
  사이
   
정아 거기 있어?
   
  연수, 대답 없다. 자리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아의 앞에는 수백 개의 동그라미가 있다.
  크고 작은 수백 개의 동그라미.
   
  사이
   
정아 언니.
응.
정아 나 이제 정말 잘 그리지.
응.
정아 사람들이 언니를 그리워한대.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
  언니는 잘 있다고.
  내가 여기 있기만 하면
  언니도 잘 있는 거라고.
   
   
   
  ●     ●     ●     ●     ●     ●     ●     ●     ●     ●     ●     ●
   
  밝은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점들이 있다.
  그리고 준이 있다.
   
신이 있다면 우리를 미워할까?
좋아하진 않을 것 같아요.
계획을 망치니깐.
순리나 법칙 같은 거?
일단 나는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준도 점인데요.
그건 그런데.
조금 다르니까?
다르니까 아무래도···.
그러면 준은 지금 불순물 같은 거다?
그렇다기보단···.
아 그러니까 신이 컨트롤 프릭이다?
   
  사이
   
의미가 조금 없어 보이네요.
뭐가?
점이라는 것이.
점은 원래 의미가 없는 건데.
아, 내가 잘못된 점이다?
···.
   
  준, 기도한다.
   
   
   
  ●     ●     ●     ●     ●     ●     ●     ●     ●     ●     ●     ●     ●
   
  밝은 방.
  현관문을 사이에 둔 정아와 연수.
   
연수 밥은 먹었어?
정아 ···.
연수 있잖아. 넌 나이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인간들이. 나랑 아주 가까운, 가깝다고
  볼 수가 있을,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인간들이, 애기처럼.애새끼처럼.
  내 앞에서 목 놓아, 재차, 엉엉 울어 버리는 거 본 적이 있니?
   
  사이
   
연수 없으면 이해할 수가 없어.
   
  사이
   
연수 그런경험이없으면넌날알수가없어.
정아 네가 너무 안됐어.
연수 내가?
정아 불쌍해서 미칠 것 같아.
연수 아···. 어떻게 해.
   
  연수, 운다.
   
정아 왜 울고 그래. 난 휴지도 못 주는데.
네가 이상한 말을 해서.
이 상황을 아주 모르는 애처럼.
정아 내가 이상한 말만 해서 그래?
연수 그러면 안 돼.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러면 신은 널 구원하지 못하니까.
  신이 구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약자.
  가엾은 영혼.
  나를 불쌍해한다는 건 네가 약자가 아니라는 이야기지.
  그러면 버려져.
정아 (다시) 네가 불쌍해.
연수 내가 신만 아니었어도···.
  시발···. 내가 신만 아니었어도···. 너를 불쌍해할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해.
정아 괜찮아.
   
  정아, 현관문 사이로 열쇠를 내민다.
   
정아 나, 그 이후에 한 번도 기도 안 했다?
   
  연수, 열쇠를 받는다.
   
정아 만약 네가 찾아와도 내가 아무 대답이 없거든, 이 문을 열어도 돼.
  그건 인간사에 개입하는 게 아니니까.
   
  연수, 대답 없다.
   
   
   
  ●     ●     ●     ●     ●     ●     ●     ●     ●     ●     ●     ●     ●     ●
   
  밝은 방.
  정아, 준, 그리고 점이 있다.
   
고마워.
정아 언니.
응.
정아 언니는 아주 작아져 버리고 싶어 했지.
응.
정아 사람들이 언니를 그리워한대.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 내가 이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언니는 사라지지 않는 거야. 그냥 작아져 버린 거야. 우리는 그 상태가 되는 거야.
   
  사이
   
정아 나 이제 정말 잘 그리지.
   
   
   
  ●     ●     ●     ●     ●     ●     ●     ●     ●     ●     ●     ●     ●     ●     ●
   
  연수, 달리고 있다. 연수, 거리에 있는 열매를 본다.
  열매를 줍고 뛰는 연수.
연수 얼마 전에도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삼 년 즈음 전에도, 오륙 년 즈음 전에도, 십여 년 즈음 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이
   
연수 나는 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명랑하게 인사했다. 재미 없는 수업을 들었고. 농담 같은
  걸 했다.
   
  사이
   
연수 그래서 나는 인간사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연수, 자신의 손에 있는 열매와 열쇠를 번갈아 바라본다.
  연수 앞은 어느새 현관문이다.
   
연수 나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거든.
   
  연수, 문고리를 잡는다.
   
   
   
  ●     ●     ●     ●     ●     ●     ●     ●     ●     ●     ●     ●     ●     ●     ●     ●
   
  밝은 방.
  정아, 준, 그리고 점이 있다.
   
나는 점,
   
  사이
   
여긴 우주야?
   
  사이
   
아니면옥상,
   
  사이
   
아니면침대위?
   
  점의 말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점이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
   
  사이
   
  그곳은, 그러니까 점이 있는 그곳은 그냥 정아의 작은 집이다.
   
   
   
  ●     ●     ●     ●     ●     ●     ●     ●     ●     ●     ●     ●     ●     ●     ●     ●     ●
   
  연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정아, 깜짝 놀란다.
  눈이 부시게 밝은 방.
  연수, 불을 끄려 한다.
   
정아 끄지마.
   
  연수, 정아를 아주 자세히 본다.
   
정아 불 끄면 다신 널 안 볼 거야.
  난 슬프지도 않아.
  네가 죽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 정도는 슬프지도 않아.
  진짜야.
   
  연수, 불을 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빛이 사라진 방.
  수 없이 많은 점들이 있다.
  올라가는 것처럼, 또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점들이 수없이···.
  하나의 울렁거리는 나선 고리처럼 보인다.
   
  연수, 어둠과 점들 사이를 걸어온다.
  정아를 창문 밖으로 밀어 버린다.
  암전.
   
  거의 곧바로 다시 불이 켜진다.
  잔디 위에 안착한 정아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연수가 있다.
  그리고 다시 사라진 점들.
   
  다시 암전.
   
   
   
  점으로 사라지는 세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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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콤마 희곡

구와 마젠타

구와 마젠타 조제인 무대 신이문에 위치한 옥탑, 원룸. 장마철 잦은 비로 덥고, 또 습하다. 이곳의 장점은 신이 노하더라도 물에 잠길 위험은 없다는 것이고 단점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집주인이 집 관리에 다소 소홀하다는 것이다. 소정과 민서가 이사 올 때부터 지붕 틈 사이로 전봇대 전기선이 조금씩 보이지만 두 사람은 이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주의사항 소정과 민서의 원룸에는 아날로그 3 : 4 화면비의 티브이 대여섯 대가 큐브와 섞인 채로 배치되어 있다. 민서가 동네에서 하나둘 주워 오던 것들이다. 극 중 이 티브이 화면을 통해 이미지나 텍스트가 송출된다. 무대에 송출되는 텍스트와 이미지는 희곡 내에서는 분홍색으로 작성되어 있다. 무대 위 소정과 민서는 큐브와 티브이를 가구 대용으로 사용한다. 그 위에서 밥을 먹거나, 잠을 자기도 한다. 그 외 공간은 모두 사실적인 사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조잡한 페인팅으로 가득 찬 파란색 가벽들과, 쓰레기를 꽉꽉 채워 야무지게 묶은 이문동 전용 쓰레기봉투 더미, 송골매 신곡 모음 레코드판, 작은 자개 문짝 같은 것들. 하지만 2부 전까지는 조명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등장인물 소정 그리고 민서. 두 사람은 서로를 끔찍하게도 아끼고 의심한다. 1부 1장 소정, 라디오를 앞에 두고 있다. 지직, 지지직, 지지직. 라디오가 장마철 폭우처럼 울며 드문드문 소리를 뱉어낸다. 라디오 소리[신이문역…… 이문2동의 재개발을…… (앞두고―는 묵음 처리) 도시재정비…… (위원회―는 묵음 처리)는 노후, 불량 건축물이 밀집해 열악한 주거 환경 개선이 필요한……] 소정은 심각한 표정으로 라디오를 몇 번 때리거나 높이 들어 올려 신호를 잡아 보려 한다. 소정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아이 캔 두잇. 소정은 의자 위로 올라가 발을 힘껏 딛고 라디오를 최대한 위로 올린다. 기적처럼 다시 신호가 잡힌다. 라디오 소리[최근 주식 시장에 격변이 불어오며 남녀노소 다소 충동적인 투자를…… 정부는 이에 대해] 소정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소정, 있는 힘껏 라디오를 때린다. 라디오 소리[꿈을 포기한 사람들, 작가, 철학가, 영화인……] 소정됐다! 라디오 소리[소설가, 수필가, 사업가, 극작가, 지식인,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나는 내 젊은 날의 꿈을 서른 번도 넘게 배반했다 말합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신 영화, 〈방가방가〉의 육상효 감독님이 하신 말이 기억나는데요. 꿈이 바뀐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건 꿈이 없어진 것이고, 더 부끄러운 건 꿈을 핑계로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이옥섭 감독님의 단편 영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에 나오는 내레이션이죠. 감독님은 올해 신진 예술가 지원 사업을 하고 계시죠. 꿈을 포기한 사람들에서는 저번 주 사연 신청을 받아 감독님에게 전달했습니다. 감독님이

  • 조제인
  •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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