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로 사라지는 세계
- 작성일 2024-09-24
- 댓글수 0
●
으로 사라지는 세계
조제인
인물
정아 - 준의 동생.
연수 - 정아의 친구.
준 - 정아의 언니.
점 - 모든 것.
| 시간과 공간 | |
| 점 하나의 순간마다 달라진다. | |
| 맨 처음 점과, 맨 뒤의 점만 순서가 유지되면, | |
| 장마다(점마다)의 순서는 바꿔도 좋다. | |
| ● | |
| 밝고 일상적인 빛 같은 것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점 하나가 있다. | |
| 점 | 나는 점. |
| 사이 | |
| 점이 숨 쉬려는 소리. | |
| ● ● | |
| 밝은 방. | |
| 정아와 준, 그리고 점이 있다. | |
| 정아는 어떤 것은 신중하게, | |
| 또 어떤 것은 대충 넘기며 여러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다. | |
| 정아 | 언니. |
| 점 | 응. |
| 정아 | 잘 있음 됐어. |
| 정아, 계속 동그라미를 그린다. | |
| 정아 | 언니. |
| 준 | 응. |
| 정아 | 그거 기억나? |
| 점 | 뭐? |
| 정아 | 우리가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 |
| 준, 정아를 아주 자세히 본다. | |
| 점 | 나지. |
| 정아 | 나 사실 그때부터 언니가 불쌍했다. |
| 준 | 그랬구나. |
| 정아 | 불쌍해서 미칠 것 같았어. |
| 그래서 그 약속. 하기로 한 거야. | |
| 점 | 어쩐지. |
| 정아 | 우리 사실 별로 안 친했잖아. |
| 준 | 맞아.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지. |
| 정아 | 자주 싸웠고. |
| 점 | 진짜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걸로도. |
| 정아 | 나는 사실 약속 같은 거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 |
| 준 | 미안해. |
| 정아 | 미안할 건 없지. |
| 준 | 그래도. |
| 정아 | 언니. |
| 준 | 응. |
| 정아 | 절대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돼. |
| 점 | 네 동생한테 말해. |
| 준 | 집 안이 너무 어두운 데도? |
| 정아 | 창문으로 뛰어내려도 안 돼. |
| 점 | 점은 도망 같은 거 못 간다고 해. |
| 준 | 고작 이 층 밖에 안 되는 데도? |
| 정아 | 사라지면 안 돼. |
| 준 | ···. |
| 정아 | 무슨 일이 있어도. |
| 점 | 점은 그런 거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고 해. |
| 준 | 그럴게. |
| 정아, 만족한다. | |
| 사이 | |
| 정아 | 언니. |
| 준 | 응. |
| 사이 | |
| 정아 | 잘 있으면 됐어. |
| ● ● ● | |
| 밝은 방. | |
| 밝은 빛 속에 준과 점이 있다. | |
| 준 | 인생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 않아? |
| 점 | 나는 그런 거 몰라. |
| 준 | 누군가 널 잡고 길게 늘이면 알 수 있게 될 거야. |
| 점 | 나는그런거몰라. |
| 준 | 이래서 점들이 부러운 거야. |
| 사이 | |
| 점 | 슬퍼하지 마. |
| 점은슬픔같은것은몰라야돼. | |
| 나는 너 때문에 그 단어를 알았어. | |
| 내내 모르다가. | |
| 불쾌해. | |
| 준 | 미안해. |
| 아니, 고마워. | |
| 점 | 고마워하지 마. 인간 주제에···. |
| ● ● ● ● | |
| 밝은 방. | |
| 세 번의 노크 소리가 들린다. | |
| 현관문을 사이에 둔 정아와 연수. | |
| 정아 | (동시에) 왔어? |
| 연수 | (동시에) 밥 먹었어? |
| 정아 | (동시에) 뭐라고? |
| 연수 | (동시에) 잘안들리네. |
| 정아, 연수 현관문에 더 붙는다. | |
| 정아 | (동시에) 지금은 어때? |
| 연수 | (동시에) 지금은 어때? |
| 정아 | 잘 들려. |
| 연수 | 좋아. 밥은 먹었어? |
| 정아 | ···. |
| 연수 | 대답 안 할 거야? |
| 정아 | 대답 안 하는 게 아니라 대답 못 하는 거야. |
| 연수 | 왜? |
| 정아 |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어. |
| 연수 | 얼마나 버틸 수 있어? |
| 정아 | 어제는 빵에 곰팡이가 슬어서 냉동실 안에 넣었어. |
| 연수 | 그래. |
| 정아 | 통조림엔 곰팡이가 안 슬어서 다행이야. |
| 연수 | 최고의 발명품이야. 기특해. |
| 정아 | 우리 일주일 정도는 더 만날 수 있을 거야. |
| 연수 | 나는 있잖아. 네가 굶어 죽어도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
| 정아 | 알아. |
| 연수 | 나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거든. |
| 정아 | 안다니까. |
| 연수 | 미안해. |
| 정아 | 미안해할 필요 없어. |
| 사이 | |
| 정아 | 나 사실 네가 갈 때 창밖을 봐. |
| 연수 | 뭐? |
| 정아 | 네가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려고. |
| 연수 | 진짜 이상하다. |
| 정아 | 그래서 네가 좋아졌어. |
| 연수 |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
| 정아 | 너 전혀 기뻐 보이지 않네. |
| 연수 | 난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
| 정아 | 해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
| 연수 | 난 케이스가 조금 달라. |
| 정아 | 알아. |
| 연수 | 난 |
| 정아 | 넌 신이잖아. |
| 연수 | 그래. 그러니까 문제야. |
| 정아 | 그게 문제가 돼? |
| 연수 | 받기만 하는 건 어려워, 아무래도. |
| 받으면 주고 싶어지는데, 나는 인간사에 개입하면 안 되거든. | |
| 그게 진짜 어려운 문제지. 그게 정말 곤란한 일이야. 받으면 울고 싶어져. | |
| 정아 | 아 너무 다행이다. |
| 연수 | 뭐가? |
| 정아 | 그러면 우리는 완벽한 사이가 될 거야. |
| 연수 | 어떻게 그럴 수 있지? |
| 정아 | 나는 이 상태가 좋거든. 어떤 것도 변하지 않으면 좋겠어. |
| 아무것도바뀌지않았으면좋겠어. 그런데네가무언갈주면내뭔가가바뀌게되잖아. | |
| 네가 신이라 정말 다행이야. | |
| 몽땅 받고도 하나도 주지 않는 신이라 정말 다행이야. | |
| 연수, 달려서 사라진다. | |
| ● ● ● ● ● | |
| 밝은 방. | |
| 정아, 몸을 움직여 창문으로 간다. | |
| 창문에 매달려 밖을 바라본다. | |
| 연수가 달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작은 점 같다. | |
| 정아 | 언니. |
| 준 | 응. |
| 정아 | 나 그 친구가 좋아졌어. |
| 아무리 슬퍼도 집을 잘 찾아갈 수 있는 좋은 친구야. | |
| 정아, 쓰러져 잔다. | |
| ● ● ● ● ● ● | |
| 밝은 방. | |
| 어떤 어둠도 없는. | |
| 불룩한 침대를 보니 정아가 자고 있다. | |
| 준 | 정아는 자나? |
| 사이 | |
| 준 | 어젯밤엔 그런 생각을 했다. |
| 점 |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 |
| 준 | 아니. 아주 작게 살아 있고 싶다는 생각. |
| 점 | 점은 아주 작게 살아 있는 상태야. |
| 준 | 그래, 점들이 자주 하는 생각. |
| 점 | 그래, 점들이 자주 있는 상태. |
| 준 | 인생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 않아? |
| 점 | 나는 그런 거 몰라. 누가 날 잡고 길게 늘이지 않는 이상. |
| 사이 | |
| 점 | 여기가 우주라고 치거든. 모두가 점이라고 볼 수 있잖아. |
| 준 | ···. |
| 점 | 너도. 나도. 그리고 네 동생도. |
| 준 | 개소리야. |
| 사이 | |
| 준 | 여긴 그냥 침대 위야. |
| 라디오가 나오고 있다. | |
| 더 이상 작아지지 못할 정도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면, 당신은 점을 잘 그리는 | |
| 사람이 된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 |
| 준과 점, 정아 내려다보며, | |
| 준 | 축하합니다. |
| 점 | 축하합니다. |
| ● ● ● ● ● ● ● | |
| 밝은 방. | |
| 정아와 준, 그리고 점들이 있다. | |
| 라디오가 나오고 있다. | |
| 아, 오늘은 점을 잘 그리는 법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처음엔 큰 동그라미여도 완전 OK입니다. | |
| 그리셨나요? 좋습니다. | |
| 그러면 이번엔 더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보세요. | |
| 그다음 번엔 더 작은··· 그리고 더 작은··· | |
| 정아, 점을 그리는 데 열중한다. | |
| 정아 | 언니. |
| 점 | 응. |
| 정아 | 언니. |
| 준 | 응. |
| 정아 | 언니는 아주 작아져 버리고 싶어 했지. |
| 준 | 응. |
| 정아 | 사람들이 언니를 그리워한대.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 |
| ● ● ● ● ● ● ● ● | |
| 밝은 방. | |
| 세 번의 노크 소리가 들린다. | |
| 현관문을 사이에 둔 정아와 연수. | |
| 정아 | 오늘은 뭘 했어? |
| 연수 | 가만히 집에 있었어. |
| 정아 | 나랑 똑같네. 그리고? |
| 연수 | 여기로 왔어. 눈을 감고 아주 빠르게. 사실은 실눈을 뜨고, 아주 빠르게 뛰어서. |
| 정아 | 보고 싶지 않아서? |
| 연수 | 응. |
| 정아 | 나랑 똑같네. 제일 무서운 것은 무언갈 보는 거야. |
| 연수 | 넌 날 보잖아. |
| 정아 | 응.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 |
| 연수 | 밥 먹었어? |
| 정아 | ···. |
| 연수 |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어? |
| 정아 | ···. |
| 연수 | 나는 있잖아. 네가 굶어 죽어도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
| 정아 | 다행이다. |
| ● ● ● ● ● ● ● ● ● | |
| 밝은 방. | |
| 준과, 점, 정아가 있다. | |
| 정아는 현관문에 붙어 있다. | |
| 준 | 나 곤경에 처했어. 도와줘. 살려 줘. 구해 줘. 꺼내 줘. |
| 점 | ···. |
| 준 | 나 곤경에 처했다니까. 도와 달라니까. 살려 달라니까. 구해 달라니까 꺼내 달라니까. |
| 점 | 네말에는두가지모순이있어. |
| 준 | 뭔데? |
| 점 | 첫 번째. 점은 곤경 같은 것에 처하지 않아. |
| 두 번째. 진짜 곤경에 처한 사람은 곤경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 |
| 넌 동그란 거짓말쟁이야. | |
| 준, 마음이 상한다. | |
| 준 | 말하지 않을 거야. 또 점, 같지 않은 일을 하는 거니까. |
| 점 | 그래, 또 거짓말을 하는 거야. |
| ● ● ● ● ● ● ● ● ● ● | |
| 밝은 방. | |
| 현관문을 사이에 둔 정아와 연수. | |
| 연수 | 나도 너를 봤어. |
| 정아 | 어디서? |
| 연수 | 어제, 집에가는길에. |
| 정아 | 그래서 한 번 뒤를 돌았구나. |
| 연수 | 알고 있었어? |
| 정아 | 나는 네 발소리도 들어. 내 방이 제일 가깝거든. |
| 연수 | 나도 들어. |
| 정아 | 뭘? |
| 연수 |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어. 매일 밤마다. 그래서 잠도 못 자고. |
| 정아 | 우리언니가하는기도도들은적있어? |
| 연수 | 들었을지도 몰라. |
| 정아 | 확신할 수는 없어? |
| 연수 | 누가 한 기도인지는 모르니까. 하지만 동생에 대한 기도는 자주 들려. |
| 정아 | 그러면 우리 언니가 한 기도가 아닐 거야. |
| 사이 | |
| 정아 | 난 한 번도 기도를 해 본 적 없어. |
| 연수 | ···. |
| 정아 | 누군가 듣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 |
| 연수 | ···. |
| 정아 | 만일 기도를 할 일이 있으면 난 낮에 할게. |
| 연수 | 언니에 대한 기도? |
| 정아 | 글쎄. |
| 사이 | |
| 정아 | 약속을 했어, 언니랑. |
| 언니가 애인이랑 헤어지고 싶다고 하거든, | |
|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거든, | |
| 사라지고 싶다고 하거든···. | |
| 무엇이 되었든 그 시간을 최대한 길게 늘여서 지체해 달라고. | |
| 곧바로헤어지고그만두고사라지지않을수있도록. | |
| 미루고, 늘이고, 비울 수 있도록···. | |
| 연수 | 난 못해. 그런 약속. |
| 정아 | 나도 그런 약속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았어. |
|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 |
| 그 약속을 수행하면 언니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 | |
| 그것만이 진실인 것 같아. | |
| 아주 오랫동안 그걸 씹고 싶어. | |
|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 |
| 연수 | 그런건신의약속이야. 간섭하고유보하고만드는거말이야. |
| 정아 | 그래? |
| 연수 | 그런 걸 네가 할 수 있을 리 없어. |
| 정아 | 난 했어. |
| 정아, 연수를 보기 위해 노력한다. | |
| 남들이 보기에는 현관문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 |
| 정아 | 언니의 자리는 창가 오른쪽 자리. |
| 볕이 됐든 바람이 됐든 벌레가 됐든 | |
| 더 가까운 자리. | |
| 내 자리는 안쪽 자리. | |
| 아주 안전한 자리. | |
| 난 그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생각했어. | |
| 연수, 자리에서 일어난다. | |
| 연수, 달린다. | |
| 연수 | 나는 달린다. 지친 몸을 이끌고 콘크리트 바닥을 달린다. |
| 거리를 지나친다. 지나쳐 갈 것이다. | |
|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열매를 보았지만. | |
| 정확하게는신의눈으로보았지만. | |
| 지나친다. | |
| 나로서는 보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 |
| 그런 조그마하고 아름다운 것은 건강한 사람이나 볼 수 있는 거다. | |
| 연수, 사라진다. | |
| 무대 위에 조그마한 열매 하나 남아 있다. | |
| ● ● ● ● ● ● ● ● ● ● ● | |
| 밝은 방. | |
| 정아, 준, 그리고 점이 있다. | |
| 정아 | 있잖아. 언니가 아주 작게 프레스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
| 그러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 |
| 모든 사람은 원래 있던 자리가 있어. | |
| 우리 언니는 변하는 걸 싫어해. | |
|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있어. | |
| 그런 관성이 있어. | |
| 적어도 우리는 그런 성질이 있어. | |
| 우리는 그런 습관이 있어. | |
| 우리는 그런 습성이 있어. | |
| 아무튼 그런 게 있어. | |
| 난 그렇게 믿어. | |
| 사이 | |
| 정아 | 거기 있어? |
| 연수, 대답 없다. 자리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 |
| 정아의 앞에는 수백 개의 동그라미가 있다. | |
| 크고 작은 수백 개의 동그라미. | |
| 사이 | |
| 정아 | 언니. |
| 점 | 응. |
| 정아 | 나 이제 정말 잘 그리지. |
| 준 | 응. |
| 정아 | 사람들이 언니를 그리워한대.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 |
| 언니는 잘 있다고. | |
| 내가 여기 있기만 하면 | |
| 언니도 잘 있는 거라고. | |
| ● ● ● ● ● ● ● ● ● ● ● ● | |
| 밝은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점들이 있다. | |
| 그리고 준이 있다. | |
| 준 | 신이 있다면 우리를 미워할까? |
| 점 | 좋아하진 않을 것 같아요. |
| 준 | 계획을 망치니깐. |
| 점 | 순리나 법칙 같은 거? |
| 준 | 일단 나는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
| 점 | 준도 점인데요. |
| 준 | 그건 그런데. |
| 점 | 조금 다르니까? |
| 준 | 다르니까 아무래도···. |
| 점 | 그러면 준은 지금 불순물 같은 거다? |
| 준 | 그렇다기보단···. |
| 점 | 아 그러니까 신이 컨트롤 프릭이다? |
| 사이 | |
| 점 | 의미가 조금 없어 보이네요. |
| 준 | 뭐가? |
| 점 | 점이라는 것이. |
| 준 | 점은 원래 의미가 없는 건데. |
| 점 | 아, 내가 잘못된 점이다? |
| 준 | ···. |
| 준, 기도한다. | |
| ● ● ● ● ● ● ● ● ● ● ● ● ● | |
| 밝은 방. | |
| 현관문을 사이에 둔 정아와 연수. | |
| 연수 | 밥은 먹었어? |
| 정아 | ···. |
| 연수 | 있잖아. 넌 나이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인간들이. 나랑 아주 가까운, 가깝다고 |
| 볼 수가 있을,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인간들이, 애기처럼.애새끼처럼. | |
| 내 앞에서 목 놓아, 재차, 엉엉 울어 버리는 거 본 적이 있니? | |
| 사이 | |
| 연수 | 없으면 이해할 수가 없어. |
| 사이 | |
| 연수 | 그런경험이없으면넌날알수가없어. |
| 정아 | 네가 너무 안됐어. |
| 연수 | 내가? |
| 정아 | 불쌍해서 미칠 것 같아. |
| 연수 | 아···. 어떻게 해. |
| 연수, 운다. | |
| 정아 | 왜 울고 그래. 난 휴지도 못 주는데. |
| 점 | 네가 이상한 말을 해서. |
| 준 | 이 상황을 아주 모르는 애처럼. |
| 정아 | 내가 이상한 말만 해서 그래? |
| 연수 | 그러면 안 돼.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러면 신은 널 구원하지 못하니까. |
| 신이 구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약자. | |
| 가엾은 영혼. | |
| 나를 불쌍해한다는 건 네가 약자가 아니라는 이야기지. | |
| 그러면 버려져. | |
| 정아 | (다시) 네가 불쌍해. |
| 연수 | 내가 신만 아니었어도···. |
| 시발···. 내가 신만 아니었어도···. 너를 불쌍해할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해. | |
| 정아 | 괜찮아. |
| 정아, 현관문 사이로 열쇠를 내민다. | |
| 정아 | 나, 그 이후에 한 번도 기도 안 했다? |
| 연수, 열쇠를 받는다. | |
| 정아 | 만약 네가 찾아와도 내가 아무 대답이 없거든, 이 문을 열어도 돼. |
| 그건 인간사에 개입하는 게 아니니까. | |
| 연수, 대답 없다. | |
| ● ● ● ● ● ● ● ● ● ● ● ● ● ● | |
| 밝은 방. | |
| 정아, 준, 그리고 점이 있다. | |
| 준 | 고마워. |
| 정아 | 언니. |
| 점 | 응. |
| 정아 | 언니는 아주 작아져 버리고 싶어 했지. |
| 준 | 응. |
| 정아 | 사람들이 언니를 그리워한대.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 내가 이 밖으로 |
| 나가지만 않으면 언니는 사라지지 않는 거야. 그냥 작아져 버린 거야. 우리는 그 상태가 되는 거야. | |
| 사이 | |
| 정아 | 나 이제 정말 잘 그리지. |
| ● ● ● ● ● ● ● ● ● ● ● ● ● ● ● | |
| 연수, 달리고 있다. 연수, 거리에 있는 열매를 본다. | |
| 열매를 줍고 뛰는 연수. | |
| 연수 | 얼마 전에도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삼 년 즈음 전에도, 오륙 년 즈음 전에도, 십여 년 즈음 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 사이 | |
| 연수 | 나는 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명랑하게 인사했다. 재미 없는 수업을 들었고. 농담 같은 |
| 걸 했다. | |
| 사이 | |
| 연수 | 그래서 나는 인간사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
| 연수, 자신의 손에 있는 열매와 열쇠를 번갈아 바라본다. | |
| 연수 앞은 어느새 현관문이다. | |
| 연수 | 나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거든. |
| 연수, 문고리를 잡는다. | |
| ● ● ● ● ● ● ● ● ● ● ● ● ● ● ● ● | |
| 밝은 방. | |
| 정아, 준, 그리고 점이 있다. | |
| 점 | 나는 점, |
| 사이 | |
| 점 | 여긴 우주야? |
| 사이 | |
| 점 | 아니면옥상, |
| 사이 | |
| 점 | 아니면침대위? |
| 점의 말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 |
| 점이기 때문에. | |
| 점 | 그것도 아니면,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 |
| 사이 | |
| 그곳은, 그러니까 점이 있는 그곳은 그냥 정아의 작은 집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연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 |
| 정아, 깜짝 놀란다. | |
| 눈이 부시게 밝은 방. | |
| 연수, 불을 끄려 한다. | |
| 정아 | 끄지마. |
| 연수, 정아를 아주 자세히 본다. | |
| 정아 | 불 끄면 다신 널 안 볼 거야. |
| 난 슬프지도 않아. | |
| 네가 죽는 것도 아니고 | |
|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 |
| 그 정도는 슬프지도 않아. | |
| 진짜야. | |
| 연수, 불을 끈다. | |
|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 |
| 빛이 사라진 방. | |
| 수 없이 많은 점들이 있다. | |
| 올라가는 것처럼, 또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점들이 수없이···. | |
| 하나의 울렁거리는 나선 고리처럼 보인다. | |
| 연수, 어둠과 점들 사이를 걸어온다. | |
| 정아를 창문 밖으로 밀어 버린다. | |
| 암전. | |
| 거의 곧바로 다시 불이 켜진다. | |
| 잔디 위에 안착한 정아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연수가 있다. | |
| 그리고 다시 사라진 점들. | |
| 다시 암전. | |
| 점으로 사라지는 세계 | |
| 막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어보기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댓글신고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