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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엄마의 곱사등이 - 이재숙

  • 작성일 2024-10-30

[대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엄마의 곱사등이


이재숙


   파릇파릇하고 통통한 배추가 소금물에 절여지며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렇듯 김장철이 되면 배추처럼 절여져 짠 내가 날 것 같은 엄마가 그리워진다. 엄마는 풋풋한 열아홉에 동갑내기 남편을 만나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에 가난한 집 외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그렇게 노란 배춧속같이 달짝지근하게 스무 해를 살다 서른아홉에 남편을 잃고 쪼개어진 반쪽 배추가 되었다. 치매 걸린 시할머니와 한량인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열세 살 나부터 한 달도 안 된 막내까지 오 남매가 오롯이 엄마의 몫으로 남겨졌다. 

   엄마는 일 년을 울고 나더니 어린 두 여동생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보따리 행상을 시작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동구 밖도 나가본 일이 없던 엄마였지만 우리와 살아내기 위해 서울 평화시장에서 옷과 양말 등을 사 와 머리에 이고 행상을 했다. 경험 없는 장사이다 보니 만만한 친정 동네부터 찾아갔다. 그때는 대부분 현금 대신 곡식으로 값을 냈다. 지금처럼 차가 많아 교통이 좋은 게 아니다 보니 그 곡식을 다시 이고, 먼 거리를 걷고 또 걸어 하루 이틀 만에 돌아오곤 했다. 

   없는 집 맏딸인 나는 방학 때면 엄마를 따라가 받은 곡식을 이고 와야만 했다. 엄마 심정을 모르진 않지만 발은 아프고 갈 길은 멀어 어린 마음에 짜증이 나고 입이 한 발쯤 나온 그런 내 모습에 엄마 마음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배추의 겉잎처럼 생활에 치이던 엄마는 몇 년 후 우리를 공부시키겠다고 학교 다니는 삼 남매만 데리고 강릉의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고 시장 노점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엄마는 박힌 돌처럼 한자리에서 수십 년을 감자와 메밀 부침개를 몸에 냄새가 배도록 뒤집었다. 엄마의 손맛으로 단골손님도 늘어나고, 잔칫상에는 메밀전이 있어야 하는 영동지방의 풍습 덕에 장사가 잘되었다. 그렇게 우리 식구를 위해 하루를 부쳐내는 엄마의 삶이었다. 

   갈라진 가슴에 한 바가지 쓰라린 소금이 더 뿌려졌던 건 농사짓는 할머니에게 맡겨져 엄마의 온기 없이 들꽃처럼 자라는 두 여동생이었다. 엄마를 보고 싶은 어린 두 딸의 목마름과 그 자식을 향한 젊은 엄마의 안타까운 서러움은 젖은 갈잎처럼 가슴에 붙어 켜켜이 쌓여 피딱지로 앉았을 것이다.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그 위 넷째는 중학교 졸업 때까지 엄마와 떨어져 살면서 암으로 투병하는 할머니의 대소변을 사발로 받아내며 학교에 다녔다. 그러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넷째와 할아버지까지 강릉으로 와 비로소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누워계시니 고달픔은 배가 되었다. 엄마가 장사하는 낮에는 누구든지 닥치는 대로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웠다. 그리고 밤에는 오롯이 엄마 당신의 고단한 몫이었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일 년 만에 돌아가셔서 우리 가족의 무거운 짐 하나를 덜 수 있었다.

   온종일 장사하고 절인 배추의 몸으로 돌아오면서도 엄마는 일거리를 들고 왔다. 그 밤에 우리는 공부하다가도 도라지 껍질 벗기기, 미역 줄거리 잘게 찢기 등 무엇이든지 도와야 했다. 

   엄마에게 쉬는 날이 있었던가. 그 피곤함에도 새벽기도를 빠진 일이 없었으니. 한겨울 추위에 손발이 동상에 걸려 가려워하면서도 교회 가는 일요일 외에는 쉬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소끔 주무시고는 교회 찬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우리를 위한 간절한 엄마의 기도는 하늘까지 움직였는지 그 덕에 자식들이 지금은 평안하다.

   칠순이 훨씬 넘도록 몇십 년 동안 오른손으로 강판에 감자를 가느라 엄마의 오른쪽 등은 근육이 뭉쳐 꼽추가 되었다. 그 곱사등으로 다섯 남매 모두 대학까지 마쳤지만, 그중 누구도 엄마의 등을 펴 드릴 생각조차 못 했다. 평생을 이행해 온 엄마의 기도 속엔 자식들에게 내어준 굽은 등을 펴달라는 염원은 없었던 걸까. 언제인가 “사실은 굽은 등이 너무 아프고 보기 싫어 고쳐 보려고 병원에 갔었어. 그런데 너무 늦었다더라” 고백하던 주름진 얼굴에 쓸쓸함이 지나갔다. 엄마의 모습은 TV에 방영되기도 하고 여러 기관에서 주는 상도 받았다. 그러한 작은 위로가 세월 속에 휘어진 통증을 조금이라도 잠재워 줬을까. 

   생전의 엄마는 주어진 현실에 대한 원망과 불평 대신 “고맙다”“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러더니 긴긴 회한의 시간을 훌훌 벗어버리고, 예견된 죽음 앞에서 주변을 정리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입던 옷가지는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 주고, 혼기에 다다른 손주들의 축의금까지 챙겼다. 그리고 수의를 비롯한 장례비용까지 다 준비하셨다. 그래서 우리 피붙이들은 엄마의 유품을 정리할 것이 서운하리만치 없었다.

   가실 날이 임박했음에도 끝까지 정신이 맑았던 엄마는 일일이 이별 인사를 나누고 아흔셋에 세상을 뜨셨다. 한겨울 세찬 바람 같은 모진 세월을 보내신 엄마가 조용히 생을 놓으셨다.

   누구나의 젊은 날은 푸릇푸릇했을 것이다. 우리 형제들 가슴 항아리에 그 색채를 익히고 삭혀 꾹꾹 눌러 쟁이셨다. 거기에 곱사등이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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