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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첫사랑 - 장미교

  • 작성일 2024-10-30

[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첫사랑


장미교


   캡모자를 거꾸로 쓰고 있는 너는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한여름의 더위에 불룩 솟아오른 두 광대뼈가 복숭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얀 피부에 붉게 물든 그 광대뼈를 손으로 꾹 눌러보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나도 모르게 그 얼굴을 한참 쳐다보자 너는 민망한 듯 눈길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촬영 중 쉬는 시간이어서 주위에는 왔다 갔다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오로지 너의 얼굴만 보였다. 그 하얀 복숭아 속살 같은 너의 얼굴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촬영이 끝나고 며칠 후, 나는 너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는 흔쾌히 그러자며 답을 해왔다. 너의 동네에서 만난 우리는 조용한 이자카야에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너는 훨씬 더 곱고, 다정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 휴지로 내 입가를 닦아주는 너의 행동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래서였나 보다. 얼큰하게 취한 채 이자카야에서 나와 한강으로 걸어가면서 난 너의 손을 잡았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떨려서, 네가 손을 뿌리칠까 봐 입술까지 파르르 떨어가면서도 나는 장난스레 웃었다. 너는 나의 손을 꽉 쥐고 다른 손으로 이어폰을 꺼내 내 귀에 꽂아 주었다. 한강으로 가는 내내 우리는 말없이 두 손을 맞잡은 채 은은한 발라드에 더 취해갔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이 친구를 동경하는 마음인지, 사랑하는 마음인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너를 만나기 전 많은 생각을 했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지나고 생각해 보니 어쩌면 너무 틀에 갇혀 있던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확률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고민 상담을 해보았을 때, 누군가 스킨십을 해보라는 말을 했었다. 그럼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친구로의 감정인지, 사랑인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살짝 땀이 차오른 너와 나의 포개어진 손을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심장에서는 계속해서 두근거리는 떨림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한강 둔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맥주를 마시며 복잡한 마음을 잠재 우려 한강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자, 너는 내 앞에서 모래에다가 커다란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곤 가끔 나를 돌아보며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날이 더워서 금방 지친 너는 내 옆으로 와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충동적으로 너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댔다. 너는 잠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천천히 내 입술을 너의 혀로 적셨다. 그때 너에게서는 달콤한 복숭아 향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복숭아 향에 젖어 나는 눈을 꾹 감고 너의 리드에 나를 온전히 맡겼다. 입술을 떼고 나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조차 못하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뒤이어 딸려 오는 감정은 불안이었다. 너는 나와 다른 마음일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짓눌려 숨조차 쉬기 버거워졌을 때 네가 말했다.

   “나중에,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겠어?”

   내 눈을 빤히 바라보는 너와 눈을 맞추고 있기를 길고 긴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미미한 고갯짓에 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야. 나중에 더럽다는 생각할 수도 있고, 이런 선택을 한 자신을 비난하게 될 수도 있어.”

   진지한 너의 얼굴에 나 역시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지만, 설사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할지라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해?”

   “넌 처음이잖아.”

   너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도시의 빛을 품은 한강을 바라보았다. 그 빛이 너의 눈에 가득 담겨 반짝이고 있었다. 문득 그 상처받은 것 같은 너의 눈을 그리워하지 않을 자신이 들지 않았다. 비록 우리의 결말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기꺼이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재촉했다. 그때 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 그 마음 가득 나는 너를 분명하게 사랑하고 싶었다.

   “아니. 나 후회하지 않을 거야. 약속할 수 있어.”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너는 그제야 굳었던 얼굴을 풀고 슬며시 웃었다. 나는 다시 너의 얼굴을 붙들고 입을 맞췄고, 우리는 더 뜨겁고 짙은 입맞춤을 나누었다. 그제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세상의 그 무엇도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이것이 나의 첫사랑이라는 것을.

   “우리 집으로 갈래?”

   너는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가는 내내 우리는 다시 손을 꼭 붙들고 걸었다. 한강 다리 위를 걸으며 너의 집으로 가는 길, 그 벅차올랐던 여름날, 나는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괜찮을 거라고. 이 감정은 사랑이 확실하다고, 그렇게 믿을 거라고 다짐했던 밤이었다. 세상에 오로지 우리만 존재하는 듯이 느껴졌고,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떨림이 온몸을 기분 좋게 간지럽혔던 그 밤,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지금 내 곁에 너는 없지만, 나는 아직도 그 싱그럽던 날을 기억한다. 더운 여름밤, 살랑살랑 불던 바람, 너의 촉촉했던 입술의 감촉, 맞잡았던 손에서 느껴졌던 열기 따위를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따금 한강을 지날 때면, 코끝을 간지럽히는 짙은 복숭아 향과 함께 그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나는 여전히 너를 첫사랑이라 추억한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나는 너를 사랑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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