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그렇게 숨을 쉬면 된다. - 정희선
- 작성일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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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상/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그렇게 숨을 쉬면 된다.
정희선
쏟아지는 햇살 탓이라 변명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왜 갑자기 이렇게도 눈물이 나는지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더운 날씨 탓에 주변은 조용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멍하니 한참 바다를 바라보았다. 괜찮다며 울어도 된다고 토닥이듯 뒤척이는 바닷소리가 울음으로 급해진 내 호흡을 진정시켰다.
“휘잇!”
길게 뿜어 나오는 한숨이 휘파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제주의 세화 바다 앞에서 나는 울었다. 일상이 많이 힘들었지만, 꾸역꾸역 참고 버틴 시간이었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난한 친정을 책임져야 했던 장녀로, 28개월 차이의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 20여 년을 쉬지 않고 달리던 직장인으로 그 모든 역할이 버거워 허덕이던 때였다.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여겼고, 직장에 휴직을 던지고 홀로 제주로 떠난 시간이었다.
오롯이 나로만 서 있고 싶었다. 간절하게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도착한 곳이 제주 구좌읍의 세화 바다였다. 그렇게 처음 만난 바다 앞에서 나는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거친 삶의 덩이들을 뭉텅뭉텅 토해냈다. 숨을 쉰다는 것이 이리 낯설다니. 갓 태어난 아기 마냥 찡하니 가슴을 타고 아픔이 전해졌다. 그 아픔을 달래듯 적당히 비린 바닷바람이 나를 훑고 지났다. 숨을 쉬라고, 그렇게 쉬면 된다고, 잘 견디었다고 잘했다고 나를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숨비소리! 제주 해녀들의 절박한 삶의 소리가 아이러니하게도 휘파람 소리를 닮았다고 하여, 흔히들 해녀들의 휘파람 소리라 전해지는 숨소리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에게 숨을 쉬라 토닥이던 그 바다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의 이름이 숨비소리 길이었다. 순간, 삶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기만 하던, 그 탓에 똑바로 숨 한번 내쉬지 못한 내 삶이 스쳤다. 그렇게 나는 운명처럼 이끌려 제주 세화 바다 앞에 섰고, 울음으로 쏟아지는 나의 숨을 바다는 과하지 않게 토닥였다.
그렇게 나는 그 바닷길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방을 뒤적여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문서를 열어 나를 적어나갔다. 이미 그곳의 주인이던 갯강구들이 낯선 이방인의 발길에 화들짝 놀라 도망을 쳤다. 그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 공간에 같이 있고 싶었다. 이 바다 곁에 더 있고 싶었다. 갯강구처럼 웅크리고 바다 앞에 앉아, 바다의 결에 맞추어 숨을 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옆으로 갯강구들이 천천히 돌아왔다. 나라는 인간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내 발 앞까지 겁도 없이 다가오는 갯강구도 있었다. 어린 시절 징그럽다고 여기며 비명을 질렀던 그들이었는데, 그 순간은 신기하게도 같은 바다를 공유하는 동지처럼 반가웠다. 아니다. 그들이 먼저이니 내가 이 바다의 순서로는 후배가 아닐까? 바다의 청소부로 해롭지 않다고 알려졌지만, 징그러운 생김 탓에 바다 여기저기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니. 저 갯강구들의 삶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 여기니 그들이 더 정겹게 다가왔다. 그 마음이 전해진 듯 사람들의 작은 인기척에도 놀란 듯 사라지던 그들이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너도 이 바다가 좋구나. 그렇다면 너도 여기 있어.”
그렇게 통 크게 허락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렇게 만나는 모든 것들이 놀랍도록 반갑고 신비하고 고마웠다.
세화 바다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여전히 코리아 장녀로 친정을 책임지고, 이른 아침 정신없이 일어나 직장으로 향한다. 마냥 어리기만 할 거라 여긴 아들들은 이제 제법 어른티가 나게 컸다. 나는 지금도 가끔 벅차게 숨이 차오르면 그날을 떠올린다. 바다가 알려준 방법대로 천천히 숨을 쉰다. 절박한 나의 호흡이 옅은 휘파람 소리로 흐른다. 그렇게 힘든 삶의 바다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맞다고. 그렇게 하면 된다고 멀리서 환청처럼 바닷소리가 들린다.
가끔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제주의 세화 바다로 간다. 그곳에는 나의 낯선 숨을 언제나 위로해 주는 바다가 변함없이 존재한다. 숨을 쉬어라 토닥이며 인생이라는 바다를 잠수하고 돌아온 나를 바다는 어김없이 위로해 준다. 그 덕에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힘차게 남은 삶을 살아간다.
혹시 나처럼 삶이라는 바다에 잠겨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바다를 나의 숨비소리 길을 소개하고 싶다. 그곳에서 그냥 털썩 주저앉아 토하듯 울어보라 권하고 싶다. 걱정하지 말라고. 바다가 당신의 등을 토닥여 줄 것이라고. 그리고 혹시 그곳에서 사람을 겁내지 않는 갯강구를 만난다면 놀라지 않게 조심해서 그 옆에 앉아 있어 주길 바란다. 그들이 그 바다의 선배임을 잊지 말고, 그들과 함께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숨을 쉬어보아라. 바다의 결에 맞추어 “휘~” 당신의 삶의 소리를 쏟으면 된다. 맞다. 그렇게 숨을 쉬면 된다. 바다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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