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산문/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루저클럽-현라희
- 작성일 2025-11-26
- 댓글수 0
[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우수상-산문]
루저클럽
현라희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그것’이라고 하면 보통 되묻는다.
“그게 뭔데요?”
스티븐 킹 소설이 원작인 영화 ‘그것’이요. 재차 답하면 대화는 거기서 뚝 끊긴다. 혹은 몇 초의 정적 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소감이 한 줄 영화평처럼 달리곤 한다.
“좀 이상한 구석이 있어요.”
그거 피에로가 애들 겁주는 영화 아닌가.
말이 덧붙기 시작하면, 소위 최애 영화가 상기된 것만으로 신이 나 떠들려던 것을 꿀꺽 삼킨다. 머쓱하게 웃고 마는 목구멍 아래엔 ‘그 영화 부제가 루저클럽이거든요.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것이란 존재가 빨간 풍선을 든 광대로 표현된 건데…….’
어쩌고저쩌고. 채 뱉지 못한 문장이 가시처럼 걸리고 만다.
광대 공포증이 없단 이유로 그저 호기롭게 본 호러영화가 최애 영화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다 보고 나니 더 없는 성장영화였던 탓이다. 저마다의 두려움과 상처를 가진 아이들은 서로 연대하며 피에로로 시각화된 그것을 결국 잠재운다는 결말. 별거 없이 쪼그라든 피에로를 보며 생각했다. 길고 집요한 괴롭힘 치곤 지나치게 시시한 엔딩이라고.
이 영화를 처음 봤을 즈음의 나는 생애 첫 이사를 한 직후였다. 태어나서 계속 살아온 집은 작은 골목의 주택이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더 이상 그곳에서의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엄마와 아빠의 손길이 몇십 년 동안 쌓인 집이 철거되고, 애지중지 가꾼 마당의 꽃나무가 뽑혀 나가는 걸 나는 이사 후에도 구태여 보러 갔었다. 내가 태어난 기념으로 심었다는 감나무가 뽑혀 나가는 순간에는 발인 후 처음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나에겐 그것이 마치 두 번째 장례식처럼 다가왔다.
영원할 것만 같던 세계의 끝을 문득 살아남아 지켜보는 기분.
그날 분명히 알았던 것 같다. 나의 빨간 풍선 든 피에로는 이별이구나. 그게 사람이든, 무엇이든, 내가 만들어 온 세계들과의 안녕.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그것이 계속 나를 따라다닐 불멸의 피에로라는 것도.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끝이 못 견디게 슬펐다. 불가항력의 이별들. 그 영화를 보기 전에도 말이다. 초등학교 한 학년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을 보낼 때마다 목 놓아 울었고, 좋아하던 과자가 단종되면 다신 군것질 같은거 안 할 듯 서러워했다.
엄마조차 유난하다던 내게 뜻밖의 힌트를 준 건 동네의 겨우 한 살 많던 혜림 언니였다. 언니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언니는 4남매 중 막내였기에 고학년 혹은 고등학생의 오빠, 언니들이 하교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 있곤 했다.
단종을 예고한 과자봉지를 울음보처럼 터뜨리곤 눈물 젖은 이별 먹부림을 하던 내게 언니가 그랬다.
“엄마랑 아빠 돌아가실까 봐 무서운 거야?”
의아해하는 내 어린 눈에 불현듯 언니의 얼굴 위로 어른의 표정이 스쳤다.
“너희 부모님은 할머니, 할아버지니까 일찍 죽을 거 아냐.”
나는 당시 그 동네 유명한 늦둥이로 유치원 때엔 같은 반 친구의 할머니가 엄마와 동갑인 경우도 있었다. 사촌 오빠들과도 스무 살씩 차이가 난다.
매일 집에 있는 우리 엄마가 부럽다던 혜림 언니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래도 우리 엄마가 너희 엄마보다 오래 살긴 할 테니까. 그런 위로로 부러움을 참았다고 했다.
돌이켜 곱씹어 봐도 악의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언니 또한 어린아이였어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오히려 어른스러운 아이여서 할 수 있던 말.
하지만 당시의 나는 머리는 그대로 세게 얻어맞았다. 이별에 대한 막연한 슬픔의 근원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게 선명한 유년의 기억 중 하나로 남고 만다.
그날 이후 내가 가장 슬펐던 건 언제나 왜 영원한 건 없을까였다. 태어날 때부터 신체 일부처럼 가지고 태어난 듯한 슬픔은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비로소 증명이라도 된 듯 나에게 더 찰싹 달라붙었다.
빨간 풍선을 든 피에로는 내 꿈에 엄마의 장례식 모습을 하고 자주 출몰했다. 텅 빈 새벽의 장례식장에 혼자 상복을 입고 선 내게 다가온 누군가가 인터뷰를 해온다.
“마침내 완벽한 혼자가 된 심경이 어떠신가요? 이젠 세상과의 이별만 남았습니다. 슬프신가요, 후련하신가요,?” 나는 대답 대신 비명을 지르거나 숨을 몰아쉬며 깬다. 그리곤 깨금발로 안방에 달려가 엄마의 코밑에 손가락을 대보곤 한다. 미지근한 엄마의 숨이 닿으면 그 밤은 내 피에로가 겨우 사라지곤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자주 아프던 엄마는 지난 삼 년간 큰 골절상과 암을 앓았다. 지금은 관해 판정을 받았지만, 나는 그 삼 년 내내 엄마 대신 섬망이라도 앓는 듯 밤낮없이 나의 피에로와 마주했다.
엄마가 오래 입원했던 병실 벽엔 유화로 그려진 목련 그림이 있었다. 목련은 원시 식물로 공룡이 있던 시절에도 봄이면 만개했다고 한다. 엄마를 목련이라고 부르면 그토록 오래 함께 갈 수 있을까. 병실의 불이 꺼지면 꿈속의 장례식장 같던 간이침대에서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이따금 내려가 로비에 걸린 멋진 그림을 보면 아무도 모를 새벽에 엄마와 걸어 들어가 영원히 그 속에서 살고 싶었다.
영원이란 없다는 걸 알고는 있다. 모든 것엔 끝이 있음을 이미 체험했다.
하지만 영원의 부재와 미발견은 아직도 내게 가장 큰 두려움이다.
영화 ‘그것’을 사랑하는 이유는 내가 미처 벗어나지 못한 이 ‘루저클럽’을 주인공들은 보란 듯 벗어났기 때문일지 모른다.
피에로의 사전적 의미는 ‘연극에서 슬픈 얼굴을 분장하고 있는 광대’다. 그 설명처럼 나의 두려움 안엔 슬픔이 있다.
다만, 어쩌면 영영 루저 클럽 일 나는 매일 사진과 기록으로 순간을 남긴다.
이 글 또한 그렇다. 이렇게 그 순간들을 이고 지고 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마주했던 두려움처럼 영원 또한 그렇게 만나 내 뒤통수를 때려주길 바라면서.
추천 콘텐츠
문장, 콤마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장원-아동문학(동화)/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설기와 비밀가죽 - 김주영(유영)[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장원-아동문학(동화)] 설기와 비밀가죽 김주영 해저에 굴러다니는 하얀 산호조각, 파도가 만질만질하게 만든 유리병 조각, 갈색 가리비 조개껍질,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따개비, 못난이 흑진주. 그 애가 준 팔찌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들이 대롱대롱 달려있다. “할망! 그거 쓰레기 아니라고 몇 번 말해.” 할망 손에서 그 애가 준 팔찌를 뺏었다. 조글조글 주름진 할망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쓰레기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냐는 표정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할망에게도 그 팔찌의 비밀을 말할 수 없다. 왼쪽 손목에 팔찌를 끼고, 그 애와 헤어졌던 용머리 바닷가로 나갔다. 지난해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나는 그 애와 처음 만났다. 물질하러 나간 할망이 바다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나와 청개구리 사이엔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파도가 거세서 그런가. 바닷가에는 그날따라 애들이 없었다. 나는 물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모래장난만 쳤다. 그때, 우웅 하고 노래처럼 부는 바람결 사이로 훌쩍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바람이 아니었다. 홀린 듯이 따라갔다. 내 또래의 여자애가 포구 주차장 한가운데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갈치처럼 눈부신 은빛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호모 사피엔스 나 입을 가죽옷을 걸친 아이. 아는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울상인 그 애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툭툭 노크하는 것처럼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서 뭐해?” 그 애가 눈을 깜빡였다. 금빛을 띠는 초록 눈 외국인인가? “이거 내 건데” 하얀 트럭의 바퀴 아래에 무언가 끼워져 있었다. 짧고 보송보송한 털옷이었다. 어두운 잿빛 털에 동그란 점이 찍힌 게 모피처럼 보이기도 했다. 12살이 입기엔 너무 촌스러운데. 그 애에게 계속 말을 걸고 싶었다. “내가 뭐 도와줄까?” “아무리 밀어도 이 하얗고 뚱뚱한 게 움직이지 않아….” “당연하지. 트럭이잖아.” 그 애는 트럭이란 단어가 낯선 듯 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트럭 주위를 요리조리 둘러봤다. 앞 유리에 적힌 연락처를 읽었다. 역시, 앞집 사는 할아버지였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는 금세 나타났다. “할부지. 얘 제 친구인데, 소중한 게 아래 깔렸대요. 도와주세요.” “암. 우리 이은이 부탁인데, 들어주고말고.” 할아버지가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앞바퀴가 조금 움직였다. 그 애는 자기 몸보다 커다란 그 옷을 재빨리 꺼냈다. 나와 그 애는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눈물을 뚝 그친 그 애가 초승달처럼 웃었다. 피부가 하얗고 투명해서 더 환하게 보였다. “고마워.” 나도 덩달아 기뻐서 웃었다. “다행이야. 근데 너 여기 안살지? 이름이 뭐야?” “나는 설기. 넌?” &ldq
- 2025-11-26
문장, 콤마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우수상-시/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삐에로와 대파 - 이소명[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우수상-시] 삐에로와 대파 이소명 슬픔은 삐에로의 분장이다 유명한 기자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울거나 웃지 않고 강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다만 매일 아침 대파 화분에 물을 주고 안부를 물으며 커피를 마신다 하루 만 보를 걷고 저녁은 꼭 만들어 먹는다 대파를 아주 많이 사용한다 대파를 썰면 눈이 붓는다 과학자처럼 인과관계가 분명한 것이 좋다 자다가 가끔 화분이 말을 걸어오면 나는 느릿느릿 몇 마디 대꾸하고서 냉동실로 걸어 들어간다 아침은 대파 잎을 타고 흐르는 빛 줄기처럼 눈부시다 나는 매일 쥐어짜는 얼굴로 침대에서 깨어난다 대파는 무침도 될 수 있고 구이도 될 수 있고 크림치즈도 될 수 있다 뿌리가 있으면 계속해서 살아서 자라서 나를 먹인다 슬픔은 아이스팩이다 어느 과학자가 썼다 나는 냉동실에 얼려둔 나를 전부 꺼내서 수레에 싣고 강가로 간다 다리 위로 촛불을 밝힌 사람들의 행렬이 밝게 일렁인다 무언가를 참는 순간이 가장 뜨겁다 울음은 목울대 아래서 삶만큼 길어진다 나는 그 아래서 긴 레인코트를 입고 땀에 푹 젖어 강을 향해 얼려둔 나를 하나씩 던진다 강 표면에서 물보라가 철썩 철썩 일어난다 이내 입을 천천히 다물고 일렁인다 견디듯이 사람들이 막 다리의 절반을 건넜다 강의 건너편에서는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도 강둑에 올라가서 보았다 몹시 아름다웠다 언젠가 흙과 함께 섞은 부드러운 뼈 한 줌처럼 불꽃의 잔해가 흘러내린다 사실 그건 나와 어떤 과학자가 개발한 죽어도 죽지 않는 시간과 마음을 상자에 담아 쏘아올리는 새로운 장례풍습이었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나는 한쪽 얼굴이 자꾸 흘러내리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각자의 대파 화분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유명한 기자는 부지런히 썼다 촛불과 행렬은 삐에로의 기술이다 스크린도어에 산발적으로 비치는 익숙한 분장 쌓이는 어둠 속에서 삐에로가 무언가를 견디는 동안에도 그녀의 베란다에서 대파는 자란다
- 2025-11-26
문장, 콤마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장원-시/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플라시보 효과 - 차은지[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장원-시] 플라시보 효과 차은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옆집 꼬마의 소원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것이란다.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나는 나이를 불문하고 이기는 데 늘 최선을 다하지. 네가 어린애여도 말이야. 그리고 내 소원은 지구가 멸망하는 거란다. 누렇게 바랜 에코백에서 막대사탕 하나 건낼 뿐이다. 그럼 작은 머리통이 앞으로 쏟아지며 감사를 표하지. 그래 엄마 몰래 실컷 누리렴. 자고로 약은 써야 제맛이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안주는 막대사탕 하나면 충분하지. 조금 품이 드는 짓이긴 해도 쭈글쭈글한 껍질을 깔 때면 옆집 꼬마의 소원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지구는 혀로 굴리지 않아도 알아서 굴러다녀 북극과 남극이 뒤집힐 일도 없지. 시간이 지나 녹을 일도 없다. 빙하가 녹기야 하겠지만 그건 달콤해진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는 것만큼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흡연구역이 되어버린 금연구역. 자주 오작동을 하는 화재 비상벨과 더 이상 대피하지 않는 사람들. 러닝머신 위를 달리다 엎어진 친구는 숨을 헐떡이며 죽을 것 같아 정말 이대로 죽고 싶다고 그럼 죽어…. 라고 말할순 없지. 규칙을 어기면 인생이 조금 달콤해진다. 꼬마야 우린 멸망이 아니라 멸종을 향해 가고 있는 거야 7평 원룸에선 꼬마의 목소리가 굴러다닌다. 머지않아 빨갛게 부풀어버린 꼬마를 담지 못하고 방이 무너질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게 소원이니? 물으니 탕후루가 먹고 싶단다. 어제의 일은 까맣게 잊었다는 얼굴로 그럼 내 소원은 네가 탕후루를 먹다 이가 빠지는 거야 그것만큼 달콤한 멸종도 없다.
- 2025-11-26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