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시/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삐에로와 대파 - 이소명
- 작성일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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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우수상-시]
삐에로와 대파
이소명
슬픔은 삐에로의 분장이다
유명한 기자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울거나 웃지 않고
강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다만
매일 아침 대파 화분에 물을 주고
안부를 물으며 커피를 마신다
하루 만 보를 걷고
저녁은 꼭 만들어 먹는다
대파를 아주 많이 사용한다
대파를 썰면 눈이 붓는다
과학자처럼
인과관계가 분명한 것이 좋다
자다가 가끔
화분이 말을 걸어오면
나는 느릿느릿 몇 마디 대꾸하고서
냉동실로 걸어 들어간다
아침은 대파 잎을 타고 흐르는
빛 줄기처럼 눈부시다
나는 매일 쥐어짜는 얼굴로
침대에서 깨어난다
대파는
무침도 될 수 있고 구이도 될 수 있고
크림치즈도 될 수 있다
뿌리가 있으면 계속해서 살아서
자라서
나를 먹인다
슬픔은 아이스팩이다
어느 과학자가 썼다
나는 냉동실에 얼려둔 나를 전부
꺼내서
수레에 싣고 강가로 간다
다리 위로 촛불을 밝힌 사람들의 행렬이
밝게 일렁인다 무언가를 참는 순간이 가장 뜨겁다
울음은 목울대 아래서 삶만큼 길어진다
나는 그 아래서
긴 레인코트를 입고 땀에 푹 젖어 강을 향해 얼려둔 나를 하나씩 던진다
강 표면에서 물보라가 철썩 철썩 일어난다
이내 입을 천천히 다물고 일렁인다
견디듯이
사람들이 막 다리의 절반을 건넜다
강의 건너편에서는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도 강둑에 올라가서 보았다
몹시 아름다웠다
언젠가 흙과 함께 섞은 부드러운 뼈 한 줌처럼
불꽃의 잔해가 흘러내린다
사실 그건 나와 어떤 과학자가 개발한
죽어도 죽지 않는 시간과 마음을 상자에 담아 쏘아올리는 새로운 장례풍습이었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나는 한쪽 얼굴이 자꾸 흘러내리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각자의
대파 화분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유명한 기자는 부지런히 썼다
촛불과 행렬은 삐에로의 기술이다
스크린도어에 산발적으로 비치는
익숙한 분장
쌓이는 어둠 속에서
삐에로가 무언가를 견디는 동안에도
그녀의 베란다에서
대파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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