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아동문학(동화)/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설기와 비밀가죽 - 김주영(유영)
- 작성일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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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장원-아동문학(동화)]
설기와 비밀가죽
김주영
해저에 굴러다니는 하얀 산호조각, 파도가 만질만질하게 만든 유리병 조각, 갈색 가리비 조개껍질,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따개비, 못난이 흑진주.
그 애가 준 팔찌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들이 대롱대롱 달려있다.
“할망! 그거 쓰레기 아니라고 몇 번 말해.”
할망 손에서 그 애가 준 팔찌를 뺏었다. 조글조글 주름진 할망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쓰레기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냐는 표정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할망에게도 그 팔찌의 비밀을 말할 수 없다.
왼쪽 손목에 팔찌를 끼고, 그 애와 헤어졌던 용머리 바닷가로 나갔다.
지난해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나는 그 애와 처음 만났다. 물질하러 나간 할망이 바다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나와 청개구리 사이엔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파도가 거세서 그런가. 바닷가에는 그날따라 애들이 없었다. 나는 물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모래장난만 쳤다. 그때, 우웅 하고 노래처럼 부는 바람결 사이로 훌쩍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바람이 아니었다. 홀린 듯이 따라갔다. 내 또래의 여자애가 포구 주차장 한가운데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갈치처럼 눈부신 은빛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호모 사피엔스 나 입을 가죽옷을 걸친 아이. 아는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울상인 그 애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툭툭 노크하는 것처럼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서 뭐해?”
그 애가 눈을 깜빡였다. 금빛을 띠는 초록 눈 외국인인가?
“이거 내 건데” 하얀 트럭의 바퀴 아래에 무언가 끼워져 있었다. 짧고 보송보송한 털옷이었다. 어두운 잿빛 털에 동그란 점이 찍힌 게 모피처럼 보이기도 했다. 12살이 입기엔 너무 촌스러운데. 그 애에게 계속 말을 걸고 싶었다.
“내가 뭐 도와줄까?”
“아무리 밀어도 이 하얗고 뚱뚱한 게 움직이지 않아….”
“당연하지. 트럭이잖아.”
그 애는 트럭이란 단어가 낯선 듯 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트럭 주위를 요리조리 둘러봤다. 앞 유리에 적힌 연락처를 읽었다. <강구호 010-2273-1013> 역시, 앞집 사는 할아버지였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는 금세 나타났다. “할부지. 얘 제 친구인데, 소중한 게 아래 깔렸대요. 도와주세요.”
“암. 우리 이은이 부탁인데, 들어주고말고.”
할아버지가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앞바퀴가 조금 움직였다. 그 애는 자기 몸보다 커다란 그 옷을 재빨리 꺼냈다. 나와 그 애는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눈물을 뚝 그친 그 애가 초승달처럼 웃었다. 피부가 하얗고 투명해서 더 환하게 보였다.
“고마워.”
나도 덩달아 기뻐서 웃었다.
“다행이야. 근데 너 여기 안살지? 이름이 뭐야?”
“나는 설기. 넌?”
“나는 이은이야. 강이은.”
기분이 좋아진 설기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조금 특이한 애지만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설기 손을 잡고 용머리 바닷가를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개인 하늘에서 여름 햇살을 흩뿌렸다. 나는 숨이 차서 잠시 멈췄다. 설기는 트럭에서 꺼낸 것을 갑자기 머리에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기가 말했다.
“우리 바다 들어가서 놀까?”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귀가 약해서. 안돼.”
그 애가 씩 웃더니 모피를 몸에 덮고서 내게 손짓했다. 이리로 오라면서. 가까이서 보니 그건 동물의 가죽이었다. 회색빛 짧은 털이 보들보들했다. 설기가 목소리를 한껏 낮춰 말했다.
“이게 원래는 일인용이거든. 두 명이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네가 친구라고 말해줘서 같이 써보게.”
“아까부터 무슨 말이야? 너 진짜 엉뚱해.”
체육시간에 줄을 서는 것처럼, 내가 앞에 설기가 뒤에 선 채로 가죽을 덮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둘이 커다란 점박이물범으로 변신한 것이다. 할망은 가끔 물질하러 가서 물범을 보면 바다에서 같이 논다고 했는데, 내가 물범이 되다니! 설기는 내게 앞으로 쭉 헤엄쳐가자고 말했다.
“자, 여기가 우리 동네야.”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바다속으로 들어가 유영하기 시작했다. 찢어지는 듯한 귀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숨 쉬는 것도 땅 위처럼 편했다. 마치 점박이물범 모양의 잠수함을 타는 것 같았다.
여긴 물로 만든 우주가 아닐까? 바다는 진짜 어마어마하게 넓고, 깊고, 놀라웠다. 붉은 산호초가 해저절벽에 매달려 산들산들 움직였다. 설기 머리카락처럼 반짝이는 물고기 떼가 우리 옆에서 헤엄쳤다. 바닷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푸르기도 하고, 검기도 했다. 나는 참을 수 없어 꺄악하고 소리 질렀다. 설기가 뿌듯해하며 말했다.
“너랑 같이 와서 재밌어.”
“설기야, 너 정체가 뭐야? 인어공주 같은 거야?”
설기가 푸핫 웃으며 말했다.
“인어공주는 누군지 몰라. 여기 친구들은 나랑 엄마아빠랑, 동생을 보면 설기라고 불러. 설기들은 점박이물범 가죽을 벗으면 인간 세상에 갈 수 있더든 이래 보여도 나 이백 살도 넘게 살았다?”
설기가 내게 손가락을 걸고 말을 더 했다.
“이은아.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우리 가족은 인간을 믿지 않거든.”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설기는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내 손을 잡고 매일매일 바닷속에서 탐험을 떠났다. 설기는 손재주가 좋아서 바닷속의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자기가 만든 것 중에 가장 공들인 보석 팔찌를 내 손목에 걸어주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해저 동굴에 들어가 돌문어와 진주조개를 한아름 안겨주기도 했다. 할망이 아무리 물질해도 구하지 못하는 거였다. 집에 들어오자 할망이 “이 귀한 걸 어찌 구했을꼬”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줬다.
역시 나는 청개구리 과다. 설기의 가죽을 함께 쓰는 것이 조금씩 지겨워졌다. 어차피 가죽을 입으면 정박이 물범이 되는 거니까. 잠깐이라면 혼자 바다에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설기는 우리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재밌는 미끄럼틀이랑 그네도 탈 수 있잖아. 마음씨 고운 슬기는 내가 조르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가죽을 건냈다.
“이은아. 대신 해가 지기 전까지는 돌아와야 해. 약속해 줄 거지? 엄마 설기, 아빠설기한테 제시간에 돌아가야 되거든.”
나는 손가락을 걸었다. “그럼. 당연하지.”
짙은 잿빛의 털가죽을 둘러쓰자 나는 바닷속 용감한 영웅이 된 것 같았다. 솔직히 설기가 없으니 홀가분하기도 했다. 해저 끝까지 단숨에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기도 하고, 바닥의 모래에 숨은 물고기에게 장난을 걸기도 했다.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해가 지는 걸 알고 싶다면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어야 하는데 1분 1초가 아까웠다. 게다가 꿈에서나 보던 큰돌고래도 만났다. 나는 나가기 싫어졌다.
땅 위처럼, 바닷속에도 해가 지자, 어둑어둑해졌다. 어느새 컴컴해진 바닷속에 은은히 달빛이 드리웠다.
나는 아차, 싶어서 그제서야 용머리 해안으로 서둘러 나갔다. 설기가 오도카니 서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표정이었다. 설기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내가 벗을 가죽을 뒤집어 쓴 채 바다로 들어갔다. 그 애가 내 곁을 스쳐 가며 들릴락 말락 하는 소리로 말했다.
“너는 다를 줄 알았는데”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다시는 설기를 만날 수 없었다.
오늘도 나는 비밀을 간직한 용머리 바닷가에 간다.
그 애가 만들어준 보석 팔찌를, 다른 사람의 눈에는 쓰레기를 꿴 것처럼 보이는 팔찌를 잊지 않고 챙긴다. 덜그럭 덜그럭하고 왼쪽 손목의 팔찌에서 소리가 난다.
아직 설기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 꼭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다.
“ 설기야, 내게 너의 비밀을 선물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초승달이 웃는다. 설기가 무척 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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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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