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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영찬 평론가, 우울에서 사랑으로

  • 작성일 2025-12-19

우울에서 사랑으로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김영찬 작가(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2003년 경향신문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한 김영찬은 첫 비평집 비평극장의 유령들(2006)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사랑의 혁명(2025)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국문학 연구와 리타 펠스키 번역에서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또 그는 2005년 현대문학상, 2007년 대산문학상, 2011년 팔봉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증상-유령들의 목소리를 따라 읽는 것으로 비평을 정의하는 김영찬 작가와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을 기념하여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최근 네 번째 비평집 사랑의 혁명(문학과지성사, 2025)을 출간했습니다. 2024년에 출간한 언어와 혁명혁명 이후의 한국문학(, 2024)1960년대 문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폈다면, 이번 비평집은 주로 2017년 이후 읽은 한국소설에 대한 비평을 실었습니다. 이 시기에 내가 읽은 한국소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적 재난의 트라우마를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었고, 나름의 언어와 형식으로 시대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 소설의 글쓰기를 떠받치고 있는 동력이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소설에서 사랑은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다림의 고통이자 동시에 역으로 고통스러운 삶의 재건축을 열망하는 기저의 동력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비평집은 사랑의 혁명이라는 타이틀 아래 그 사랑의 언어를 헤아리고 받아 적으려고 한 나름의 비평적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와 더불어, 식민지 시대부터 1960~70년대, 1990년대를 아우르며 기억해야 할 한국소설의 흐름과 맥점을 짚어보는 글들도 함께 묶었습니다. 이제는 멀어져간 그 근대문학의 유령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헤아리는 것 또한 저로서는 오늘의 한국문학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시대적 실천으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첫 평론집 비평극장의 유령들(2006)의 서문에서 비평이 할 일 중 하나는 밑바닥에서 웅성거리는 그 유령의 목소리들을 세심히 따라 읽고 그에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며 그것의 공과를 따져 헤아리는 것이다. () 그것을 통해 나 안의 증상과 대화하는 작업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청년 김영찬의 비평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선생님께서는 비평을 통해 선생님 안의 어떤 증상과 대화하셨는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비평을 무엇이라 정의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오래전 했던 말을 이렇게 새삼 소환해주시니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저는 비평이란 문학이 앓고 있는 증상을 읽어내는 일종의 정신분석적 임상 치료와도 흡사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비평이란 문학의 언어를 귀 기울여 듣고 거기서 드러나는 증상을 비평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작업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임상 치료의 중요한 수단인 전이가 작품과의 대화적 공간에서도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비평적 글쓰기에서 전이의 공간은 작품과 비평가의 역동적인 대화와 상호관계가 발생하는 공간이며, 비평가의 언어를 작품에게 되돌려주는 협력과 협상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작품으로부터 비평가인 의 증상을 거꾸로 되돌려받는 역전이가 발생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비평가인 저에게 작품과 대화하는 작업은 그 안에서 의 무지와 편견을 교정하는 것은 물론 의 실존적 자리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나 안의 증상과 대화하는 작업이란 아마도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일일 테지요.

 

- ‘증상-유령으로서의 문학이라는 분석적 방법론은 김영찬이라는 이름을 2000년대 비평을 대표하는 목소리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어떤 도구를 통해 문학을 읽고 분석하시나요? 혹은 선생님의 비평에 어떠한 관점이 더해지거나 덜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증상-유령으로서의 문학이란 문학이 이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잉여이면서도 불행한 시대를 제 몸으로 앓는 증상이자 시대가 떨쳐버리려 해도 떨쳐버릴 수 없는, 그리고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로서 지니는 고유한 가치를 말하기 위한 표현이었습니다. 보이지 않고 숨어 있는 그 증상을 읽어내는 것은 문학 읽기인 동시에 시대 읽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비평가-지식인으로서의 의 좌표를 읽고 확인하고 조정하는 작업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세월이 조금 흘렀지만 분석의 관점이나 도구가 크게 변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프로이트-라캉 정신분석은 제게는 사유의 길잡이이자 분석의 유용한 도구입니다. 다만 세월이 흐른 만큼 문학의 이모저모도 변화를 겪었고, 오늘의 문학을 바라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프레임이나 도구들도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관점의 큰 변화보다는 이런 현실적, 이론적 변화의 산물들을 제 비평의 프레임 안에서 제대로 소화하고 갱신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직 그 갱신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만, 부지런한 읽기와 쓰기를 통해 어떻게든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내딛어 봐야겠지요.

 

- 비평의 우울(2011)에서 2000년대 문학의 중요한 특징으로 더 이상 복수심을 품거나 가상의 복수를 꿈꾸지 않는 모습, “내면의 바깥으로 느슨하게 유희적으로 풀어헤쳐버리는 문학적 태도를 강조하신 게 인상 깊었습니다. 이는 실제 현실이 아닌 2차 현실로서의 텍스트를 그 자신의 상상력과 글쓰기의 참조대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현상현실과의 긴장과 불화하나의 포즈나 언어 내부에서 관습적으로 소비한다는 진단과도 공명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2025년 오늘날 한국문학과 내면’, 한국문학과 ‘2차 현실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잘 아시는 것처럼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문학은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특히 신경숙 표절 사태와 문단 내 미투 운동을 겪으면서, 기존의 문학성이라는 가치가 심문에 부쳐지고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학의 흐름이 대두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1990년대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 중반까지 오래도록 이어져온 문학의 장기 90년대가 붕괴했습니다. 이런 시대적 변화와 함께 이후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변화 중 하나는 현실과 문학의 거리가 소멸되는 현상이었습니다. 이는 문학이 현실의 문제와는 동떨어진 게토화된 그들만의 영역을 구축하면서 그 내부에서만 순환되고 소비되는 차원에서 벗어나 현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그것을 토픽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어떤 측면에선 당시 제가 비판했던 자기 충족적 자율성을 실천적으로 돌파하는 문학사적 지각 변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한편, 현실과 문학의 거리를 의식적으로 없애고 그 둘의 동일시가 급진화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물론 없을 수는 없겠지요. 그런 문제는 오래전 제가 텍스트가 서로를 참조하고 서로를 낳는 2차 텍스트의 과잉 현상이라고 했던 현상과 정확히 반대 지점에 놓인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측면에선 문학성의 새로운 재구성 과정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실천적 반작용이라 할 수 있을 테지요. 무엇보다 지금은 내면이라는 프레임이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제가 이즈음 주목하는 것은 그보다는, 오늘의 한국소설이 가상의 열정이 지배하는 시대에 어떻게 그 가상의 전유와 재배치를 통해, 그리고 새로운 언어와 관습의 발명을 통해 지리멸렬한 현실을 돌파하고 일상을 혁명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학적 고민의 폭을 더욱더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사랑의 혁명(2025)에 수록된 비평의 전이가 말해주는 것에 따르면 선생님께 동료란 독아론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건져내주는 사람, 서로가 서로의 집요한 분석가가 되어주는 사람으로 정의됩니다. 그렇다면 지난 20여 년간 가장 소중하고 뜻깊은 동료는 누구였나요? 그분들과 나눈 우정은 어떤 특별함을 안겨주었으며 선생님이 어떤 협소함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나요?

 

비평의 동료에 대해서는 비평의 전이에 대해 쓴 그 글에서 조금은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만난 비평가들은 우정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배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오래전 저를 포함해서 모두 비평가로 등단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세미나를 같이 했던 동료이기도 하고요. 그들로부터 받은 배움비평가로서 (함께) 살아가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명을 거론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컨대 김형중에게서는 단도직입하는 명쾌함과 날렵함을, 이수형에게서는 의제 설정의 시야와 신중한 접근법을, 신형철에게서는 (저에겐 없는) 문학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기예를, 차미령에게서는 꼼꼼하고 성실한 분석의 자세를, 복도훈에게서는 방대한 독서량에서 나오는 교양적 지식의 활용을, 강동호에게서는 신선하고 도발적인 이론적 시야를, 김미정과 오혜진에서는 알게 모르게 내면화된 남성 중심적 문학주의의 편협함에 대한 교정을…… 뭐 그런 식이지요. 이 외에 저에게 배움을 나눠준 더 많은 비평가들이 있지만 이 자리에서는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여하튼 그들 모두를 포함해 이들의 비평이 모두 저에겐 제 비평의 편협과 협애를 (사후적으로) 교정해주는 분석가의 자리에 위치한 안다고 가정된 주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선생님께서는 번역 작업도 활발히 이어오셨습니다. 특별히 리타 펠스키를 주로 번역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으며 그 과정은 어떤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나요?

 

심진경 씨의 소개로 읽어보았는데 퍽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너무 오래돼 기억이 가물하지만 그때가 아마 학술장과 문학계에서 근대성 담론이 한창 펼쳐지던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남성 중심적으로 편향된 근대성 이론을 심문하고 근대성의 젠더에 대해 말하는 저자의 논리가 당시 담론장 속에서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둘 다 박사논문을 쓰기도 전이었고 비평 활동을 하지도 않았던 때라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번역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출판계약을 하고 나서 바로 후회하기는 했지만요. 어찌어찌해서 겨우 끝내고 나온 결과가 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고 당시 반향도 어느 정도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여러 번역 작업을 함께한 심진경 선생님과 명작은 시대다(2023)에 수록될 소설 선정을 함께 하기도, ‘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코너를 국민일보에 연재하기도 하셨지요. 단순히 가족이 아니라 국내 지성사를 쌓아가는 귀중한 동료가 아닐까 싶습니다. 단독 작업을 하실 때와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싸웁니다!(^^) 그래도 아무래도 같이 작업하다 보면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도 하고 도움도 주고받을 수 있어서 그렇게 나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게으름을 피울 때면 채찍질도 하고요. 그럼에도 글쓰기는 결국 각자의 고독한 몫이어서, 그런 점에서는 혼자 하는 작업과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 2018무라카미 하루키, 사라지는 매개자와 1990년대 한국문학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90년대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을 다룬 논문을 발표하셨습니다. 하루키는 한국소설 전반의 형질 변화와 관련 있으며 사라지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인데요, 구체적인 개별 사례들을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개별 사례라고 하면 조금 애매한데요. 제가 그 글에서 말한 새로운 문학 개념의 구성이라는 측면 말고도, 실제로 1990년대 한국 작가들이 하루키에게 받은 영향이 그들 소설에 알게 모르게 침윤되어 있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효서, 정정일, 장석주, 윤대녕, 김연수 등의 소설들이 그렇지요. 그리고 넓게 말하면 하루키는 1990년대 한국문학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서도 사라지는 매개자로 기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1990년대 한국소설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포괄될 수 있는 문학이었고, 그것을 매개했던 것이 하루키 문학이었습니다. 당시 아무도 그 문학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요. 실은 그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명명의 회피 자체도 역사적으로 분석되고 해명될 필요가 있는 특이한 현상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후 그 포스트모더니즘의 매개자로서의 하루키라는 이름은 망각되었죠.

 

- 최근 박태순 소설을 엮는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재에의 열정에 대한 열정이 박태순 초기 문학의 동기였다는 논문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박태순 소설을 엮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 독자분들께 박태순 문학의 가치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2003년부터 10년 동안 매주 거의 빠짐없이 1960년대 소설 읽기 세미나를 했었습니다. 1960년대에 나온 모든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는데요, 최근 나온 박태순 중단편전집을 함께 엮은 분들이 저를 포함해서 모두 이 세미나의 멤버였습니다. 이때 발견한 작가가 바로 박태순입니다. 박태순은 문학주의적 문학성이라는 주류적 가치와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펼쳤던 작가였고, 그래선지 창비문지그룹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해 제대로 된 평가에서 소외되었던 작가입니다. 기존의 문학성혹은 문학적 규범에 안주하지 않고 그 바깥에서 다른 문학의 가능성을 실천했고 소설이라는 협소한 장르를 넘어 르포르타주, 기행문 등 비소설 장르로까지 문학세계를 확장시키면서 문학을 삶의 현장에 최대한 밀착시키려 노력했던 박태순의 문학적 여정은 오늘날 새롭게 재평가될 가치가 충분합니다. 박태순 중단편 소설전집은 2003년부터 시작된 이런 오랜 문제의식의 일차적 결실입니다. 이후 산문과 장편 전집까지 출간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지만, 여러 문제로 시간은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 강동호 평론가는 비평가 김영찬을 중립주의자로 일컬은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중립주의자란 주류 패러다임이 야기할 수 있는 권력과 갈등을 제거하고, 중단시키는 담론적 기술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이와 같은 가치로서의 중립, 혹은 중립이 개시하는 정치적·윤리적 공간이야말로 김영찬의 비평적 사유와 글쓰기의 위상학적 성격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상찬하였습니다. 특별히 중립주의자의 중요성은 논의의 전선을 확대시키는 존재라는 점에 있을 텐데요, 이러한 평은 비평의 영역으로서 중립에 대해 사유하게 합니다. 물론 중립은 유보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비일관적이거나 모순적이고 양립 불가한 입장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만 생성되는 비평의 역동성에 우선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중립주의자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비평 영역으로서의 중립은 무엇이며 어떠한 중요성을 내포한 것일 수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는데요, 저도 미처 정확하게 의식하지 못했던 저의 비평적 태도를 어느 면에서는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저의 실물적 실체를 초과하는 과분한 칭찬인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제 입장에서 달리 말하자면, 강동호 선생이 사용한 중립이라는 태도는 어떤 주류적 입장에도 귀속되지 않으려는, 그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비주류적 입장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특정한 이념적 프레임과 주류 담론에 포박되지 않으려는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자유로운정신이라고나 할까요. 나쁘게 말하면 회색인적 리버럴이라고도 볼 수도 있겠지만요. 어찌 됐든 어느 하나의 입장에 환원되지 않고 독단을 경계하려는, 그리고 주어진 규범과 규격을 벗어나려는 지향이 제 비평의 근저에 있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와 무관하지 않겠지만, 그런 측면에서 자유주의자, 리얼리스트, 모더니스트, 구조주의자 등 그간 비평장에서 저에게 붙여진 모순되면서도 다양한 레테르들은 어쩌면 그 어느 것도 제가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이 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요즘 비평 쓰기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이 가을을 보내고 계신가요? 혹은 최근 재미있게 읽거나 중요하다 판단되는 평론으로 무엇에 주목하고 계신가요? 저와 독자분들께 추천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최근에는 2025년 겨울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 예정인 동시대 문학사(4) 폭력편의 한 꼭지를 탈고했습니다. 분노와 충동을 주제로 삼아, ‘충동의 서사로 포괄될 수 있는 우리 문학사의 돌연변이라 할 수 있는 소설들의 계보학을 살펴봤습니다. 각기 소설들의 의미와 가치에 걸맞은 제대로 된 명명을 부여받지 못하고 한국문학사가 온전히 평가하지 못했던 별종들의 문학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재미있게 읽은 비평은 강동호의 좌파적 웃음-최근 소설에 나타난 유머의 정치에 관하여입니다. 11월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이라 아직 정식으로 출간되지는 않았는데요, 김기태, 예소연, 김멜라의 소설을 중심으로 최근 소설에 나타난 좌파적 상상의 흔적을 추적하고 재구성하는 글입니다. 저로서는 이 비평이 분석하는 작품 중 일부는 어느 면에선 보수주의적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동호의 글은 예컨대 의 재전유나 유머를 통해 어떻게 작품이 그것을 내적으로 견제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지를 매우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좌파적 우울이 배회하고 좌파적 상상력이 실종되다시피 한 오늘의 한국문학에서 텍스트의 배면에 숨어 있는 일상의 혁명과 좌파적 유산의 (불연속적) 계승에 대한 요청을 적극적으로 채굴하고 구원하려는 구성적 실천으로서 퍽 흥미롭고 유익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추천합니다.

 

- 요즘 읽고 계신 책이나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독자분들께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계속해 다시 읽는 책이 두 권 있습니다. 하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고, 다른 하나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입니다. 읽을 때마다 새롭고 아이디어를 주는 책이라 제게는 일종의 길잡이이자 충전기 같은 느낌입니다. 요즘은 자본론을 다시 펼쳐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읽다가 도중에 포기했던 라캉의 에크리도 다시 시도하고 있습니다. 독자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고 하면……, 딱히 뭐라고 이야기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재미있게 읽고 저에게 유익한 책이었다 해서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닐 테니까요. 오히려 스스로가 찾아가고 발견하면서 자기에게 좋은 책을 만들고 자기만의 목록을 쌓아가는 그 과정 속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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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콤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인터뷰] 성해나 소설가, 무해한 아픔과 평평한 왜곡을 넘어, 한 사람의 우주로

무해한 아픔과 평평한 왜곡을 넘어, 한 사람의 우주로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성해나 소설가(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소설가 성해나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오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다루는 소설이지만, 더 정확히는 나이도 상처의 모양도 다른 두 여성 ‘오즈’와 ‘하라’가 서로를 보듬어 안는 이야기이다. 2022년에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을 펴냈고, 2023년에는 첫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을 출간하였다. 2025년에 발간한 작품집 『혼모노』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24·2025 젊은작가상, 2024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5 신동엽 문학상 등을 연이어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예스24 ‘2024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온라인 투표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대중의 사랑과 지지도 함께 얻었다. 배제되고 소외되는 인물들에 오래 품을 내어주는 성해나 작가는 현재 자신의 모교인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며 다음 세대 문학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집요하게 탐사하는 일을 놓치지 않는, 성실하게 세심하고 치열하게 다정한 성해나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펠로우십에 선정된 이후 『혼모노』라는 작품집을 발간했습니다. 작품집이 발간된 후 부쩍 바빠진 것 같지만, 집필은 부지런히 하려 합니다. 근래에는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이라는 단편을 썼어요. 의존에 관한 가족 서사입니다. - 성해나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음 행보에 관한 고민이 컸던 시기에 펠로우십에 선정되었어요. 어찌 보면 예술가에게 지원사업이란 마찰을 덜어 생계와 창작 사이의 톱니를 더 부드럽게 맞물리게 하는 윤활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사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 작품을 써나갈 토대를 만들어주었죠.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듣는 소설집과 친일 문제, 청년 소외, AI사회의 노동 등을 한데 엮은 기담집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기담집의 경우는 ‘어제-오늘-내일’이라는 테마로 엮을 생각이고요. 내년 발간을 목표로 둔 터라 두 작품 모두 충실히 써나가고 있습니다. - 작품 「인비인人非人」에서는 일제 731부대의 생체 실험을,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에서는 고문에 활용된 건축물 남영동 대공분실을, 등단작 「오즈」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피해자가 실존하는 역사적 비극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일은 독자 입장에서는 매우 귀한 작업이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자료를 연구하고 따로 공부해야 할 뿐 아니라 재현의 윤리까지

  •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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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선우은실 평론가, 더 자유로운 비평을 향해

더 자유로운 비평을 향해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선우은실 평론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선우은실은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페미니즘, 문학장(場)/문학제도, 저자성/독자성과 같은 동시대의 담론적 섹터를 종횡무진 가로질러온 그의 작업은 그야말로 ‘자립할 수 있는 비평’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 실천에 다름 아니었다. ‘보이는 비평’ 내지는 ‘대화 가능한 비평’이라는 화두로부터 비롯된 최근의 작업에서 선우은실은 ‘비평’이라는 텍스트가 생산되고 소비되어온 관습적 사이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그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와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문학 평론을 쓰는 선우은실입니다. 비평집 『시대의 마음』(문학동네, 2023)과 생활비평산문집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읻다, 2024)을 썼습니다. 여성, 청년, 제도, 문학의 구조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두어왔습니다. 비평집과 산문집에서도 이와 같은 주제를 비평의 언어로, 또 생활 비평의 감각으로 다루어 내고자 했습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번 펠로우십에서는 제도 안에서 생산되는 비평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제가 지금껏 체험해온 비평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의미를 생산하는 비평, 작품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 비평, 그리고 이 모든 게 혼자의 작업이 아닌 타인과 공유되는 경험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비평이란 작업은 해석을 통해 대화적이거나 구성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또 창작의 과정에서 또한 이미 비평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되, 그걸 ‘비평문’과는 조금 다른 문법으로 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비평의 독자를 직접 확인하고 ‘다른 문법’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 최근의 저에게는 중요한 문제인데요. 비평을 어떻게 ‘행위’로 소환할 수 있을지, 그것을 어떻게 타인과 교류하는 형식으로 제안하고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지가 늘 고민이었기 때문에요.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라는 제목의 비평 전시 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텍스트는 어떻게 전시되는가? 우리는 전시된 것으로부터 무엇을 읽는가?’라는 부제를 달아서요. 단적으로 말해서 저는 이 전시의 주인공을 ‘비평’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비평이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창작자를 포함한) 모든 참여자가 비평 행위를 인지할 수 있을까? 비인지적일지라도 일련의 비평 행위를 따라가면서 작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 있을까? 그런 점들을 내

  •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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