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해나 소설가, 무해한 아픔과 평평한 왜곡을 넘어, 한 사람의 우주로
- 작성일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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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아픔과 평평한 왜곡을 넘어, 한 사람의 우주로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성해나 소설가(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소설가 성해나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오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다루는 소설이지만, 더 정확히는 나이도 상처의 모양도 다른 두 여성 ‘오즈’와 ‘하라’가 서로를 보듬어 안는 이야기이다. 2022년에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을 펴냈고, 2023년에는 첫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을 출간하였다.
2025년에 발간한 작품집 『혼모노』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24·2025 젊은작가상, 2024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5 신동엽 문학상 등을 연이어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예스24 ‘2024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온라인 투표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대중의 사랑과 지지도 함께 얻었다. 배제되고 소외되는 인물들에 오래 품을 내어주는 성해나 작가는 현재 자신의 모교인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며 다음 세대 문학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집요하게 탐사하는 일을 놓치지 않는, 성실하게 세심하고 치열하게 다정한 성해나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펠로우십에 선정된 이후 『혼모노』라는 작품집을 발간했습니다. 작품집이 발간된 후 부쩍 바빠진 것 같지만, 집필은 부지런히 하려 합니다. 근래에는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이라는 단편을 썼어요. 의존에 관한 가족 서사입니다.
- 성해나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음 행보에 관한 고민이 컸던 시기에 펠로우십에 선정되었어요. 어찌 보면 예술가에게 지원사업이란 마찰을 덜어 생계와 창작 사이의 톱니를 더 부드럽게 맞물리게 하는 윤활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사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 작품을 써나갈 토대를 만들어주었죠.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듣는 소설집과 친일 문제, 청년 소외, AI사회의 노동 등을 한데 엮은 기담집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기담집의 경우는 ‘어제-오늘-내일’이라는 테마로 엮을 생각이고요. 내년 발간을 목표로 둔 터라 두 작품 모두 충실히 써나가고 있습니다.
- 작품 「인비인人非人」에서는 일제 731부대의 생체 실험을,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에서는 고문에 활용된 건축물 남영동 대공분실을, 등단작 「오즈」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피해자가 실존하는 역사적 비극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일은 독자 입장에서는 매우 귀한 작업이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자료를 연구하고 따로 공부해야 할 뿐 아니라 재현의 윤리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작업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나 고민이 있으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연구나 자료 조사에 있어서는 큰 고충이 없었어요. 오히려 잊혀 가는 기억을 더 상세히 담아내고, 그러한 문제들이 독자에게 닿기 위해선 당연히 곡진한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다룬 문제들이 모두 윤리의 지점을 통과하기에 조심스러움과 대담함 사이에서 오래 고민했던 것 같아요. 피해-가해의 선을 어떻게 지키고 넘을지에 대해서도요.
역사의 비극을 다룰 때, 특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조망할 때는 그 감정과 아픔을 함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해한 아픔만 그리는 게 아니라 유해한 고통도 담아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가해를 가해로 보고, 거기서 우리도 통회하고 반성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런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있어요.
- 소설집 『혼모노』를 쓰실 때, 힘주어 쓰기보다는 덜어내는 방식으로 글을 쓰셨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인물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억지로 결론을 맺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신 부분이 있을까요?
집필의 고통은 대개 소설 속 인물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오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처음으로 되돌아가 인물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노력해요.
인물을 만드는 과정은 다수를 하나로 뭉치고 규범화하는 단순화에서 오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을 심도 있게 살피고, 이해하려 애쓰고, 넓고 깊게 보는 파고듦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속단하지 않는 마음에서요.
우리 사회가 별종으로 명명하거나 소외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우주라 여기고, 귀하게 대하며 인물을 그리려 해요. 그게 괴인이나 기인일지라도요.
- 예스24에서 진행한 ‘2024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온라인 독자 투표에서 1위로 선정되신 바 있습니다. 『혼모노』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요. 독자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일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느끼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독자분들의 애정을 부담으로 느낀 적은 거의 없어요. 분에 겨울 만큼 감사한 일이죠. 작품을 읽어주고 마음을 내주고 감상을 덧붙여 주는 이들과 조우할 때는 소설가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쓰기와 읽기라는 문학 안팎의 교류가 정말 소중해요. 그 교류와 교감 덕에 버틸 수 있고, 즐겁게 쓸 수 있어요. 그래서 저도 겸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려 해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애쓰면서요.
부담은 아니지만, 슬플 때는 분명 있어요. 작품이 화제가 되고, 독자층이 넓어지며 날선 비난도 그만큼 늘었어요. 작품을 심도 있게 읽고 담아낸 날카로운 비평은 늘 반갑고 저도 그 안에서 충분히 배우지만, 분풀이하듯 적은 험악한 악평을 읽으면 애정도 식고, 용기도 잃죠.
한때는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이제는 지금이 저의 과도기라 여기며, 그리고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보다 사랑으로, 깊게 사유하며 읽어주신 분들이 더 많다고 여기며 견뎌내고 있어요.
많은 사회적인 이슈들을 다루어 오신 만큼 세계의 변화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으실 것 같아요. 요즘, 문학을 통해 특별히 응답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금의 화두는 젠더갈등인 것 같아요. 많은 한국 작가들이 그 현상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고요.
어쩌면 그 갈등이란 일그러진 신념과 평평한 왜곡에서 온다고 비롯되는 것 같아요. 과거의 정치와 종교는 그 자체를 의미했다면, 현재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하나의 종교고, 정치적 집단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문제를 저만의 시각과 고찰로 파고들고 싶은데, 아직은 배우고 사유해야 할 게 많네요.
- 현재 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일도 병행하고 계십니다. 혹시 앞으로 작가가 될 학생들, 혹은 후배 작가에게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1학년 친구들을 가르치는데요. 그 친구들의 열정과 문학을 향한 들끓는 애정이 참 보기 좋고, 애틋하고, 기특해요. 다만 조금 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나아가길 바랄 때도 있어요.
등단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위해 소설을 쓰거나, 거기 닿지 못했을 때 실의에 빠지는 친구들이 종종 보여요. 그럴 수도 있지만,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성취보다는 쉬이 질리거나 포기하지 않는 단단함인 것 같아요. 그 단단함은 숱한 시행착오와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비롯되어요. 그 과정을 위해서는 속성이 아닌 숙성이 필요하죠. 글이 몸에 익고, 근육처럼 단단히 자리 잡히길 기다렸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소설을 좀 더 세심히, 그리고 다정히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타인의 흠결만 찾으면 그게 굳어져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아지는 것 같고요. 해서 늘 다정히 읽자, 당부하곤 해요. 그 점에 있어선 다들 잘하고 있어서 안도하고 있어요.
- 마지막으로, 어떤 소설을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작가에게 좋은 소설은 나를 ‘쓰게 하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사려 깊은 문장, 담대한 서사를 지닌 소설은 큰 용기를 주고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마음먹게 하죠.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소설은 ‘쓰지 못하게’ 만드는 소설이에요. 시릴 만큼 참혹하고, 아름답고, 빛나서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소설은 못 쓸 것 같아, 고개를 젓게 하는 소설이요. 그런 역작을 쓰고 싶어요. 너무 큰 욕심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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