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소연 시인, 아름답고 징그럽게
- 작성일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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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징그럽게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김소연 시인(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나 잠깐만 죽을게/삼각형처럼 (…) 나 잠깐만 죽을게/단정한 선분처럼”(「수학자의 아침」) 1993년부터 시를 발표해온 김소연은 우리에게 ‘눈물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6년 첫 시집 『극에 달하다』를 시작으로 『수학자의 아침』(2013) 외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을 발간하였다. 2010년 노작문학상, 2012년 현대문학상, 2015년 이육사시문학상, 2020년 현대시작품상, 2024년 청마문학상을 수상한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표 시인 중 한 명이다. 그런가 하면 직접 설립한 어린이도서관 ‘웃는책’의 관장을 역임하며 많은 어린이들과 학부모를 위한 문화공간 마련에 주력하기도 했다. 2008년 『마음사전』으로 시작된 그의 ‘사전’ 시리즈 또한 큰 사랑을 받았다. 최근의 주목할 활동으로는 2023년 일본에서 『수학자의 아침』 번역 시집이 출간된 일과 독일에서 ‘Lyrik X Kunst X Musik!’ 낭독회에 참여한 일을 들 수 있겠다. 2025년에는 그가 소속된 텍스트-사운드 퍼포먼스 팀 ‘메아리조각’의 앤솔로지 시집 『그 밖에』를 발간하였고, 문학주간 협력 프로그램 ‘장르의 경계를 넘어’에 패널로 참여하였다. 내년에는 베를린에서 시 낭독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김소연 시인과 문지살롱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시인보다는 ‘시를 매개하는 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그림책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읻다 출판사와 뮌헨에 있는 박솔 시인의 공동초대로 2024년 6월에는 뮌헨 레지던시에 다녀왔습니다. 2025년에 유독 독자를 만나기 위한 행사를 열심히 했고,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건 광명의 소하 서점에서 『극에 달하다』, 제 첫 시집으로 대담을 해본 경험입니다. 그 시집을 유난히 좋아한다고 저한테 말한 적이 있었던 임솔아 시인이 대담을 아끌어주셨습니다. 이 시집으로 독자를 만나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30여 년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 준비를 하면서 많은 기억을 복원해야 했는데, 그 시간이 제게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메아리조각’의 이름으로 공동시집 출간을 하게 된 것 또한 제겐 재미있는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내가 지금 무슨 꿈을 더 꾸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한참 하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어떤 꿈은 너무 욕심 같고 어떤 꿈은 좀 절제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신작시를 새롭게 쓰는 일 외엔 별다른 큰 관심이 없었는데, 펠로우십에 선정되면서 용기를 좀더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도전들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해보라는 제안처럼 느껴졌달까요. 내년에도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이렇게 저렇게 촉수를 뻗고 있는 중입니다.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세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우선, ‘메아리조각’으로부터 시작된 낭독 공연을 여러 창작자들과 협업하여 계속해나갈 예정입니다. 다른 언어권으로 적극적으로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두 번째로는, ‘시인이 사랑한 단어들‘이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에 칼럼을 연재했는데, 이것을 보완하고 완성해서 산문집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저는 시를 매개하는 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세 번째는 새 시집을 출간하게 되겠지요. 천천히 꼼꼼히 원하는 세계로 닿아가고 있습니다.
낭독 공연 때 다양한 언어로 다가갈 예정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어떤 언어들을 생각하고 계실까요?
내년에 일본과 베를린에서의 낭독공연을 기획 중에 있습니다.
-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돌아볼 때, 작가님이 스스로 인식하는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한 가지 잃고 싶지 않은 축이 제겐 늘 있습니다. 현실에 응전력 있는 관점과 태도여야 한다는 것. 그게 시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 현실은 언제나 변화무쌍하므로 어디에 붙박여 있지 않아야 한다는 고집이 있습니다. 다소 무방비한 마음으로 새로운 접촉면에 나를 데려다놓고 싶습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회적 국면 앞에 나를 내놓고 지내야 한다고 늘 저를 재촉하는 편입니다. 거기서 제가 느끼는 부대낌과 모순이 시의 토양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어디 잘 가지도 않고 누구를 잘 만나지도 않아서이기도 하고, 살면서 얻은 경험이 기억이라는 물질로 신체화되어 있는데, 이 기억은 당연히 가지런하지 않아서 엉켜 있고 서로 다른 링크를 생성하기도 하고 발효도 되면서 기억이 다른 형질로 변신하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시간과 기억이 협력해서 만든 매끄럽지 않은 질감과 혼재 들을 오솔길 삼아 탐색하는 과정이 시가 되는 중입니다. 시간이 스스로 빚어내는 혼선에 대해 숙고하다보니 살아보지 않은 경험도 시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점이 새로운 전환점이라면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 최근 사회나 세계의 변화 속에서 작가님이 특히 문학으로 응답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은 ‘윤리’라는 키워드입니다. 이미 많은 창작자들이 윤리를 더 정치하고 세밀하게 인식하면서 윤리의 틈새를 벌리고 있기도 하지만, 저도 더 균열을 내고 싶다 생각합니다. 문학이라는 텍스트가 윤리를 재구성하거나 새롭게 발명할 단서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독서를 할 때 가장 큰 기쁨이 저자가 발명한 윤리를 음미하는 것인데, 어떤 틈새를 어떤 식으로 균열을 냈는지를 보는 기쁨. 비평에 대해서는 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비평가 스스로가 새로운 윤리를 윤리의 틈새에서 더 자주 발명해주길 늘상 바랍니다.
- 디지털 플랫폼 시대, 독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오늘날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언제나 문학 내부의 가장 중요한 담론 중 하나였고, 그것에 대해 예견하는 것은 재미 삼아 할 수는 있지만. 유의미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저는 시인이니까, 시는 마이너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해 어느 시대에나 예외였던 것 같습니다.
- 지금의 젊은 작가 세대―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출판사와 문예지, 서점과 도서관, 문학‧문화 관련 기관들이 손을 내밀어 제안을 해오는 순간을 기다리고 반가워하는 것 외에도 주도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스스로 많이 발명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SNS가 있고 웹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독자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님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지적인 것만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더러 있습니다. 제 시의 일인칭들을 내가 차지하는 때도 있지만 타인들에게 내어주는 방식의 일인칭을 자주 사용합니다. 『눈물이라는 뼈』 때부터 쓰기 시작했거든요.
일인칭과 이인칭과 3인칭이 서로 다르게 작동될 때를 자주 상상합니다. 그걸 시에 시도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시쓰기에 열중하다 보면 내 자신을 초월한다는 느낌이 착란처럼 찾아오기도 하는데, 내 자신이 아주 작은 벌레가 되어서 나뭇잎 뒤에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오키나와 북쪽 숲속을 여행을 할 때였는데, 비가 왔고 비를 안 맞으려고 같은 종의 벌레들이 나뭇잎 뒤에 와글와글 딱 붙어 있는 걸 보았습니다. 나뭇잎 한 장이 아파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그마해지는 느낌일 때도 있고 유령처럼 천장에 떠서 조감도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주어의 자리를 제가 점점 더 얼마나 적극적으로 타자에게 내어주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하게 되었는지 선명하게 읽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유의미함이 있다고 해석되기 이전에 읽어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시인님께서는 누군가의 글을 평해야 할 때 생애나 전기적인 정보를 다 알고 쓰는 게 좋으세요, 아니면 모른 채 텍스트에 먼저 접근하는 게 좋으세요? 어떤 걸 선호하시나요?
저는 삶과 작품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압도적인 우위에 두는 사람들의 삶을 우선 의심하게 됩니다. 서정주 같은 시인을 언급할 때에 꼭 그렇게 하니까요. 텍스트 중심주의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의 쓰임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더 정치적인 접근을 할 때에 삶을 챙겨 함께 언급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스테레오타입인 면이 적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몇 해 전에 비비언 고닉의 글에서 빈센트 밀레이에 대한 부분을 읽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녀가 모범적이고 건강한 시민으로 살지는 않았다 볼 수 있는데, 그 삶에서 정치성을 읽어낼 수 있고 부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다루지는 않더라구요. 에밀리 디킨슨이나 앤 섹스턴 같은 시인도 마찬가지고요. 최승자 시인이 특히 그렇고요. 말씀하신 그 두 선택지 모두 보다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시선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 김소연 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첫 시집 『극에 달하다』(1996)에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서시 「버리고 돌아오다」에는 ‘너’를 버린 뒤의 개운함과 홀가분함이 담겨 있습니다. 「행복하여」에서도 “허전하여 경망스러워진 청춘을/일회용 용기에 남은 짜장면처럼/대문 바깥에 내다놓고 돌아서니, 행복해서 눈물이 쏟아진다”라는 문장이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기억의 비워냄’과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몸의 ‘가벼움’은 30여 년 이상 김소연 시에서 중요하게 그려져온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시집에 수록된 「고통을 발명하다」에는 “기억을 비워내기 위해/심장을 꺼내어 말리”고, “슬픔을 비워내기 위해/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헹구”는 여자가 그려집니다. “늙어가는 몸 때문이 아니라/나이만큼 무한 증식하는 추억 때문에/여자의 심장이 비만증에 걸”리게 된 것인데요, 이처럼 기억과 감정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렵게 불어남에 따라 차라리 살을 찢고 꺼내버리고 싶은 충동은 김소연 시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온갖 기억과 감정들로 점철된 한 시절을 비워낸다는 것, 그러나 비워냈다고 ‘믿는’ 것밖에 안 되는 것, “텅 빈 육체” 등은 김소연 시인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나요?
사실 「버리고 돌아오다」랑 「고통을 발명하다」가 20대 때 쓴 시와 40대 때 쓴 시로, 시간적으로 꽤 간격이 있습니다. 저는 지나친 묵직함과 너무 깊은 상실과 갈등 앞에서는 오히려 비움과 가벼움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분노한다고나 할까요. 우선, 이 두 시를 나란히 언급해 주시는 것이 저는 반갑습니다. 이 두 시의 일인칭은 정확히 저였거든요. 2개가 주인공이 정확히 저예요. 「고통을 발명하다」라는 시에는 일인칭을 괴롭히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괴롭힘은 내가 나한테만 해도 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한 편의 시는 호통이지만 시집 속의 흐름상으로는 통과의례처럼 읽히도록 시를 배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순적인 정서가 팽팽하게 혼재돼 있을 때에 저는 안 꺼내고 싶은 말을 꺼내려는 충동이 있습니다. 일부러 편중된 입장에 섭니다. 하지만, 시 전체의 문체나 태도로는 안 꺼낸 것에 치우치려고 애를 씁니다. 이런 방식으로 건사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두 시에서 유독 그런 식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학살의 일부’라는 연작 제목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갓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젊은 시인에게 학살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으는 일은 왜 필요했을까요?
90년대는 대하소설이 한 걸음 물러나고 개인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시대였어요. 이전에 비하면 우리 사회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잠깐 믿기 시작한 시대였기도 합니다. 저는 평화가 안 찾아온 것 같은 불길함 속에 계속 놓여 있었고 학살의 시대가 종식된 듯 보이지만 공기 입자처럼 분산돼 있어서 안 보이는 느낌을 자주 마주쳤습니다. 거기서 생긴 제목입니다. 처음엔 이 연작을 첫 시집의 제목으로 정하려고 했습니다.
- 『마음사전』의 작가 소개에 따르면 김소연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며칠 잠을 잊어버리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또 가장 최근에 출간한 시집 『촉진하는 밤』에 수록된 「푸른 얼음」에는 수많은 ‘밤’이 감각적인 모습을 입고 등장합니다. “과즙처럼 끈적끈적한 다짐들이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밤” 등이 그러하지요. 그렇다면 김소연 시인에게 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밤은 저한테는 에너지가 많아지고 의욕이 솟고 아이디어도 많아지고 그런 시간이에요. 밤은 인간이 활동을 쉬는 시간이니까 그 의욕으로 저는 혼자서 밤을 독대하고 만지죠. 검은 베일을 쓰다듬는 기분 같달까요. 베일을 어떻게 벗길 수 있을까. 수수께끼를 푸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밤은 시간이 아니에요. 공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성을 지닌 물질처럼도 와닿습니다.
- 어린이도서관 ‘웃는책’의 관장으로서 김소연은 어떤 경험들을 누렸는지 듣고 싶습니다. 어린이도서관을 설립하게 된 계기를 비롯해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시인님의 삶에 어떠한 영향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린이 도서관을 만든 건 IMF가 가장 큰 계기였어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되지? 큰 걱정이 도래했는데. 너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쪽으로 용감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덜컥 저지른 일이었는데 의외로 적성에 맞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약간의 억압도 주지 않는,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엉뚱한 그림책들 권하는 재미로 지냈습니다. 저의 화양연화였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 첫 시집을 다소 이르게 낸 것과 달리, 두 번째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는 첫 시집 이후 10년 만에 나왔습니다. 『마음시집』(2008)에서 “게으름과 꼼꼼함 덕분”이라 언급하긴 하셨지만 구체적으로 그 10년은 어떠한 필요 위에서 보낸 시간이었는지, 무엇으로 채워지거나 비워진 시간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도서관을 운영했던 시간들하고 거의 겹쳐 있습니다. 시보다 더 좋은 것을 좋아하며 지냈습니다. 시인들보다 더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지내느라 시를 잊어도 괜찮았습니다.
- 초기 시집들이라 할 수 있는 2000년대까지는 시에 가운데 정렬이 자주 사용됩니다. 가운데 정렬을 적용할 때만의 의도가 있을까요?
그때는 장난 같은 질문이 제게 있었습니다. 중앙정렬에는 왜 이유를 요구하는가. 왜 모두가 의심없이 좌정렬을 쓰는가. 중앙정렬의 가지런하지 않아보임이 더 어울릴 때에는 중앙정렬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 마음을 이루는 낱말 하나하나를 시인의 눈으로 다시 정의하는 ‘마음사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사전』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로 저는 ‘존경’을 들고 싶습니다. “질투와 존경은 동기가 같지만, ‘자세’ 하나로 전혀 다른 길은 간다. (…) 그만큼 깨끗하고 단정하다.” ‘마음사전’에서 시인님이 가장 아끼는 단어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웃음. 마음사전에 수록을 못했어요. 써보았지만 재미있는 글이 아니어서 수록하지는 못했습니다. 언젠가 인터넷 서점에서 특별판을 만들 때 한 꼭지의 원고를 추가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웃음을 당연히 해야지 했습니다. 웃음을 공부하고 쓰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 세 번째 시집 『눈물이라는 뼈』(2009)에는 강렬한 파토스를 휘갈기는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녀였던 당신이었던/수많은 아이들”, 즉 자기 자신에게 밤마다 젖을 먹이다가 “자기 젖을 빨”며 잠에 드는 여자에게서는 자기를 돌볼 게 오로지 자신밖에 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돌봐야 할 이들에게 자리를 계속 내어주다 앉을 자리마저 없어지자 몸을 접고 접어 “한 마리 쥐새끼”가 됩니다.(「그녀의 생몰 연도를 기록하는 밤」) 「몬순 팰리스」에서는 ‘사내’를 욕망하는 관능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그려지지요. 「경대와 창문」에는 엄마의 죽기를 바라는 딸이, 「공무도하가」에는 자신의 “살갗을 벗겨 뼛속 어린아이를 꺼내고, 기어이 그 아이에게 젖을 물리”다가 다시 제 몸을 갈기갈기 찢고 붙이기를 반복하는 “병신” 여자가 등장합니다. 이 시기 시인 김소연에게 이러한 여자들은 어떻게 찾아왔나요?
이 『눈물이라는 뼈』는 여성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옮겨다니는 실험을 해보자는 기획으로 쓴 시집입니다. 시집의 제목으로 ‘그녀의 생몰 연도’라고 혼자서 결정해두었기도 했고요. 제게 어떤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어떤 면을 제가 존경하기도 하고 닮고 싶기도 하지만 슬프게도 느끼는 면이 있었는데, 그분의 어떤 밤을 상상하며 썼습니다. 존경이 깨끗하고 말끔하지 않을 때의 상태를, 우정과 애정이 슬픔의 공동체이자 명랑한 광기일 수 있음을, 사랑과 연민이 지긋지긋하지만 문득 새로운 눈물겨움일 수 있음을 저는 어떤 식으로든 늘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 그간 정말 많은 에세이집을 출간하셨습니다. 특별히 『나를 뺀 세상의 전부』(2019)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의류수거함에서 데려온 ‘새 친구’ 곰인형이 아직 곁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 이사할 때 그 이삿짐센터 스텝이 너무 그 곰인형이 너무 커가지고 그거 하나만 옮겨야 하는 거예요. 덩치가 너무 크니까. 가벼워서. 그러면서 책 많다고 투덜거리시다가 그거 하나 옮기면서 조금 여유 있어 하면서 너무 예뻐하시길래. 우리 딸이 이런 거 되게 좋아해요 하시길래 가져가세요 그랬어요.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죽어라 반복하고 연습해서 얻은 것’ 중 하나인 “손가락 딱 소리 핑거스냅”과 “귀 움직이기”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
(보여준다.)
(감탄한다.)
- 한 인터뷰에 따르면 중학교 시절 시인님께는 함께 책을 읽고 편지를 주고받았던 어느 선생님과의 추억이 있지요. 독후감을 곁들인 그 편지에 답장을 하고 싶어서, 또 누군가가 그 독후감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도 편지를 종종 쓰시나요?
누군가랑 계속 이메일로 주고받는 걸 좋아합니다. 편지로 토론도 하고 덜 정리된 질문들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만나지 않고 말할 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따로 존재하니까요. 많고. 펜팔처럼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들이 몇몇 있습니다.
- 2024년 성기완 시인과의 대담에서 “몇몇 시들은 특히 제가 누군가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아서 쓴 거라는 생각으로 썼다. (…) 내가 덩그러니 어딘가에 시인으로 있는 게 아니고 미립자처럼 혹은 말미잘처럼 함께 어딘가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럿이자 하나인 느낌”으로 마치 다른 누군가의 연장선에서 쓰는 듯한 감각은 구체적으로 어떤 감각일까요?
『촉진하는 밤』에 「올가미」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떤 글을 읽고 그 다음을 쓰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글을 읽고 그렇게 끝내서는 안된다고 느낄 때에 끝을 붙잡고 상상을 하는 것이 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박서원 시인의 경우, 더 많은 시를 남겨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경우도 바통을 넘겨받는 느낌입니다.
- 시인으로서 단 하나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단독자로 사는 거예요. 계속 선택을 해왔고 그 단독자의 삶에 방해가 되는 일이라면 계속해서 타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 요즘 읽고 계신 책이나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독자분들께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김복희 시인의 『보조 영혼』과 윤은성 시인의 『유리 광장에서』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저한테 큰 자극이 되었던 시집이었고 이실비 시인의 첫 시집도 아직 만져보진 못했지만 얼른 읽고 싶다 이렇게 적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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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5
문장, 콤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인터뷰] 성해나 소설가, 무해한 아픔과 평평한 왜곡을 넘어, 한 사람의 우주로무해한 아픔과 평평한 왜곡을 넘어, 한 사람의 우주로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성해나 소설가(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소설가 성해나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오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다루는 소설이지만, 더 정확히는 나이도 상처의 모양도 다른 두 여성 ‘오즈’와 ‘하라’가 서로를 보듬어 안는 이야기이다. 2022년에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을 펴냈고, 2023년에는 첫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을 출간하였다. 2025년에 발간한 작품집 『혼모노』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24·2025 젊은작가상, 2024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5 신동엽 문학상 등을 연이어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예스24 ‘2024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온라인 투표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대중의 사랑과 지지도 함께 얻었다. 배제되고 소외되는 인물들에 오래 품을 내어주는 성해나 작가는 현재 자신의 모교인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며 다음 세대 문학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집요하게 탐사하는 일을 놓치지 않는, 성실하게 세심하고 치열하게 다정한 성해나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펠로우십에 선정된 이후 『혼모노』라는 작품집을 발간했습니다. 작품집이 발간된 후 부쩍 바빠진 것 같지만, 집필은 부지런히 하려 합니다. 근래에는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이라는 단편을 썼어요. 의존에 관한 가족 서사입니다. - 성해나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음 행보에 관한 고민이 컸던 시기에 펠로우십에 선정되었어요. 어찌 보면 예술가에게 지원사업이란 마찰을 덜어 생계와 창작 사이의 톱니를 더 부드럽게 맞물리게 하는 윤활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사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 작품을 써나갈 토대를 만들어주었죠.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듣는 소설집과 친일 문제, 청년 소외, AI사회의 노동 등을 한데 엮은 기담집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기담집의 경우는 ‘어제-오늘-내일’이라는 테마로 엮을 생각이고요. 내년 발간을 목표로 둔 터라 두 작품 모두 충실히 써나가고 있습니다. - 작품 「인비인人非人」에서는 일제 731부대의 생체 실험을,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에서는 고문에 활용된 건축물 남영동 대공분실을, 등단작 「오즈」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피해자가 실존하는 역사적 비극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일은 독자 입장에서는 매우 귀한 작업이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자료를 연구하고 따로 공부해야 할 뿐 아니라 재현의 윤리까지
- 2025-12-19
문장, 콤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인터뷰] 선우은실 평론가, 더 자유로운 비평을 향해더 자유로운 비평을 향해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선우은실 평론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선우은실은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페미니즘, 문학장(場)/문학제도, 저자성/독자성과 같은 동시대의 담론적 섹터를 종횡무진 가로질러온 그의 작업은 그야말로 ‘자립할 수 있는 비평’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 실천에 다름 아니었다. ‘보이는 비평’ 내지는 ‘대화 가능한 비평’이라는 화두로부터 비롯된 최근의 작업에서 선우은실은 ‘비평’이라는 텍스트가 생산되고 소비되어온 관습적 사이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그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와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문학 평론을 쓰는 선우은실입니다. 비평집 『시대의 마음』(문학동네, 2023)과 생활비평산문집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읻다, 2024)을 썼습니다. 여성, 청년, 제도, 문학의 구조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두어왔습니다. 비평집과 산문집에서도 이와 같은 주제를 비평의 언어로, 또 생활 비평의 감각으로 다루어 내고자 했습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번 펠로우십에서는 제도 안에서 생산되는 비평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제가 지금껏 체험해온 비평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의미를 생산하는 비평, 작품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 비평, 그리고 이 모든 게 혼자의 작업이 아닌 타인과 공유되는 경험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비평이란 작업은 해석을 통해 대화적이거나 구성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또 창작의 과정에서 또한 이미 비평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되, 그걸 ‘비평문’과는 조금 다른 문법으로 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비평의 독자를 직접 확인하고 ‘다른 문법’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 최근의 저에게는 중요한 문제인데요. 비평을 어떻게 ‘행위’로 소환할 수 있을지, 그것을 어떻게 타인과 교류하는 형식으로 제안하고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지가 늘 고민이었기 때문에요.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라는 제목의 비평 전시 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텍스트는 어떻게 전시되는가? 우리는 전시된 것으로부터 무엇을 읽는가?’라는 부제를 달아서요. 단적으로 말해서 저는 이 전시의 주인공을 ‘비평’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비평이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창작자를 포함한) 모든 참여자가 비평 행위를 인지할 수 있을까? 비인지적일지라도 일련의 비평 행위를 따라가면서 작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 있을까? 그런 점들을 내
- 2025-12-19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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