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빨강
- 작성일 2026-09-01
- 댓글수 0
우울한 빨강
이연숙
찔레 열매빛 앙고라 스웨터가 서랍 속에서 늙어간다. 저 스웨터는 내 나이 스무 살 때 엄마가 사준 옷. 싫다고 찡그리는 딸에게 억지로 사 안겨진 채로 구겨진 옷. 그때 나는 회색빛 스커트, 회색빛 스웨터, 안과 밖 모두 온통 잿빛 그림자뿐이어서 한 번도 저 옷을 입어보지 못했고. 더 더 나이가 들면 입어야지 하고 갖고 있던, 이제는 버리지도 못하는 우울한 빨강. 그날도 재와 밤으로만 가득한 거울 속 나를 보며, 너는 왜 그렇게 어두운 옷만 입냐며 엄마는 쓰게 웃으셨지. 빨강이나 화사한 핑크, 무지개 속 하나라도 골랐으면 엄마 얼굴에 어두운 구김이 덜 갔을까. 그림자의 시간이 끝나고 서랍을 여니 후회와 걱정을 욱여넣은 우울한 빨강, 서랍 속에서 숨소리 할딱이며 뒤척이는 우울한 빨강
이어보기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댓글신고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