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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성 문장

  • 작성일 2026-10-01

  덩굴성 문장


김이듬


  벽에 푸른 문자가 어른거린다 손가락으로 담쟁이덩굴을 걷어본다 어디서 본 구절이 적혀 있다


  누군가 연미산고개길 낮은 한옥 담벼락에 흰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파란색으로 널리 알려진 시 한 편을 옮겨적어 놓았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지 저 아래 빵 가게 외벽 전체가 화사한 꽃과 새 그림으로 꾸며져 있다


  나는 몇 발짝 물러나 늦여름의 벽을 쳐다본다 벽에 달라붙어 자라는 담쟁이는 시가 좋아서 초록색 하트를 촘촘히 붙여놓은 것도 아니고 시가 부끄러워서 덩굴손 뻗어 문장을 가린 것도 아니겠지만


  머잖아 담쟁이의 생명력이 벽을 점령할 것이다 시가 적힌 담벼락을 뒤덮을 것이다 한없이 사랑으로 번져 갔던가


  내가 심은 담쟁이는 쩍쩍 흡반으로 울타리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 뿌리만큼 암흑에 살았으므로 정말


   내 몸이 어둡기만 했나 반음지였다는 게 시를 향해 손을 뻗는 솔직한 잎새 나의 담쟁이가 내 육체라는 구조물의 구멍과 아치형 창문을 덮고 처마를 뒤덮었을 때 나는 환희했다


  벽은 소멸하는 문장을 사랑하여 담쟁이가 자신을 삼키기를 기다렸다 아아 푹썩 주저앉으리


  내 문장의 잎새는 벽에 틈새를 만들고 줄기는 배관에 균열을 내어 터뜨렸으며 구조물을 부식시켰다 


 사랑이여 입에 담지 못할 뿌리여 네가 나를 이겨라 너는 반양지에서 나를 차지하고 빠르고 날카롭게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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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이듬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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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이듬
  •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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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이듬
  •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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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송희찬

    역시 김이듬 시인님 최고!!!

    • 2026-10-01 19:32:08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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