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미자
- 작성일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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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미자*
김지숙
버스가 정류소에 정차한다. 몇몇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고 또 내린다. 차창 밖으로 한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 사내 얼굴에는 호수 아래 검은 돌멩이 하나가 표정처럼 얹혀 있다. 구겨진 셔츠 사이로 언뜻 보이는 오른쪽 팔뚝에는 김미자라는 이름이 붉은 장미와 함께 새겨져 있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일까, 아무것도 지닐 수 없는 죄수가 눈으로 마음으로 사방 벽에 새긴 이름처럼 저 사내는 저 이름의 주인과 영원을 꿈꾸었을까, 김미자는 아직 살아 있고 사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김미자를 향한 것일까, 혹여 영영 헤어져 다시는 볼 수 없대도 생의 마지막 석 달만은 함께 보내자 약속했을까, 흔적 없이 몸과 시간을 통과하는 영혼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허적허적 걸어 다니는 우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하고, 오래된 기억의 벽도, 죽음의 벽도, 사랑이 세운 벽도 통과하는 것일까, 김미자라는 이름도 그렇게 한 사람의 몸을 떠나 저 사내의 몸과 마음을 오가고 있을까. 어떤 사내는 먼 이국의 사원 담벼락 돌 틈, 물결마저 숨죽인 초록 호수 아래 이름 하나를 묻었다.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잠시 환한 얼굴로 서성이고 내린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간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듯한 사람들의 뒷모습은 투명하다. 버스가 사내를 통과하는 동안 사내는 다음 버스가 오는 쪽만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멋진 삶의 풍경마다 드리워진 모든 지나간 것들의 파수꾼처럼, 어떤 버스는 영영 도착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처럼,
* 전하를 띠지 않고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 입자. 태양에서 날아온 수많은 중성미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과 지구를 흔적 없이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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