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 일기
- 작성일 2026-04-01
- 댓글수 0
기면 일기
김남주
간밤에 눈이 내렸던 아침
거칠거칠한 목도리를 단단히 매듭짓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여름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늦었지,
눈 감은 기억 없이
신이 나를 뜨개질했다면
혈관을 엮는 신의 손이 아직 미숙할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늘을 빼고 실을 잡아당기며 다시 처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다시 처음부터 겨울, 아니 여름이었던가?
스웨터 끝자락에 매달린 올을 잡아당기는 손짓은
천진해서 거침없고
한 번 매듭이 묶였다 풀려 버린 실은 좀처럼 팽팽하지 못한데, 다시 매듭을 엮으면
어딘가 헐거운 스웨터가 될 텐데
어쩌나, 나는 내 몸이 처음인데 누군가 한 번 사용한 것 같고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직 밤이 오지 않았는데
속수무책으로 느슨해지는 혈관의 매듭
미끄러지는 팔과 다리
발작하는 태만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하지만
나는 꿈을 꾸느라 모든 때를 놓치고 말았다
시에스타가 영영 끝나지 않는 나라를 찾아 떠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주의하겠습니다
지금은 용서를 구할 때, 모두가 앉아 있는 이곳에 홀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면
아무 데서나 혼곤해지는 나는 한때 사람이었던 것
모든 계절은 쓸모 없어진다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