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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 일기

  • 작성일 2026-04-01

   기면 일기


김남주


   간밤에 눈이 내렸던 아침

   거칠거칠한 목도리를 단단히 매듭짓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여름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늦었지, 

   눈 감은 기억 없이


   신이 나를 뜨개질했다면

   혈관을 엮는 신의 손이 아직 미숙할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늘을 빼고 실을 잡아당기며 다시 처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다시 처음부터 겨울, 아니 여름이었던가?

   스웨터 끝자락에 매달린 올을 잡아당기는 손짓은 

   천진해서 거침없고


   한 번 매듭이 묶였다 풀려 버린 실은 좀처럼 팽팽하지 못한데, 다시 매듭을 엮으면

   어딘가 헐거운 스웨터가 될 텐데 

   어쩌나, 나는 내 몸이 처음인데 누군가 한 번 사용한 것 같고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직 밤이 오지 않았는데

   속수무책으로 느슨해지는 혈관의 매듭

   미끄러지는 팔과 다리

   발작하는 태만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하지만

   나는 꿈을 꾸느라 모든 때를 놓치고 말았다

   시에스타가 영영 끝나지 않는 나라를 찾아 떠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주의하겠습니다

   지금은 용서를 구할 때, 모두가 앉아 있는 이곳에 홀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면 


   아무 데서나 혼곤해지는 나는 한때 사람이었던 것 

   모든 계절은 쓸모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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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래의 마리 김남주 우리 집 지하에 오래된 시체가 있다는 소문, 날을 잡아 창고 문을 열었더니 홀로 들어앉은 기억이 내 눈 코 입을 한 기억이 여태 울고 있지 뭐야, 붉은 실에 칭칭 감겨 옴짝달싹 못 하고 있지 뭐야 온갖 잡동사니 속 오래된 임신테스트기, 붉은 선 하나가 핏발처럼 번져 가다 못해 새빨간 실을 산더미처럼 뽑아내고 있지 뭐야 보다 못한 내가 기억의 팔을 잡고 억척스레 일으켜 세우며 이 답답아, 좀 치우고 살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지1) 아직 물들지 않은 희끄무레한 수국이 무거운 머리를 가누지 못하고 끄덕거릴 때마다 덜컥 겁을 집어먹었지 울라면 울고 웃으라면 웃던 내가 아직도 시침 초침을 꺾어다가 그물코를 뜰 줄이야 이별의 뒤치다꺼리를 한답시고, 그토록 떨떠름한 청혼 그토록 물러 터진 입맞춤을 깁고 엮으면서 엉킨 실타래를 풀려다가 와류에 휩쓸리듯 딸려 들어가서는, 철없이 밀물이 얼마나 빠른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거미줄 친 눈물들을 빗자루로 걷어 내자, 일기장 속 문장들은 여름 하천의 날파리처럼 우글우글 얼굴 주변만 맴돌아 기분 나빠 바싹 말라 납작해진 비명들은 차곡차곡 쌓아 올려 붉은 노끈으로 동여맬게 분리수거는 나중에 한꺼번에 해, 골동품으로 팔기도 민망한 저주와 닳고 닳아 넝마가 된 자책을 한꺼번에 자루에 쓸어 담는 동안 기억은 코가 깨진 후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 같고 머리카락을 곱게 땋아 줄게 깃털 같은 미래를 엮어 만든 드림캐처도 침대맡에 걸어 두자 내 멱을 잡아채 여기저기 끌고 다니던 붉은 줄을, 하늘에서 내려오기에 동아줄인 줄 알았더니 내 목을 공중에 매달았던 올가미를 쉼 없이 자리를 바꿔 앉는 낮과 밤의 실마리를 리본 모양으로 매듭지으며 아이, 예쁘다 캄캄한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무구하게 웃는 해맑아서 철딱서니 없는 얼굴과 마주 앉아 실뜨기를 하며 밤새 놀다가 나는 나를 두고 홀로 돌아왔어. 1) 윤지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 2024.

  • 김남주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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