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물체가 작아지는 것
- 작성일 2026-09-01
- 댓글수 0
멀리 있는 물체가 작아지는 것
이상영
그때는 번거로운 줄 몰랐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철문을 닫아야 했지.
경희는 사남 삼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배가 유명한 고장에서 자란 경희는 도시에 나가 공부를 했고.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해외에서 살았다. 서너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몇 번의 이사를 치렀다.
경희는 마지막 도시의 낮은 빌라를 가장 그리워했다. 도시의 전통 문양과 도안들을 모아둔 스크랩북을 꺼냈다. 작은 도형들이 모여 숲이 된다. 날개가 커다란 새가 구름을 쫓는다. 붉은 날개 아래로 푸른 물방울이 흩어진다.
이건 네 날개
이건 네 콩팥
피가 흐르고 있다
발밑의 마을을 조망한다. 시점이 바뀐다. 윗면. 아랫면. 내부. 기억나는 것들을 모두 적어 입체로 만든다.
빌라의 창문. 제설용 모래함. 이유가 있는 장소. 그 말을 빼면 나무 책상이 남는다. 거기에 앉아 투시도를 그린다. 먼저 오늘 후회되는 것들. 오늘 기억나는 것들. 오늘 뽑아낸 가시. 오늘 씻긴 발.
건물은 많이 낡지 않았다. 담쟁이가 타일 벽을 타고 올라간다. 여름꽃이 활짝 핀 날 완전히 막혔던 배수구. 어쩌면 내 기억이 아닐지도 몰라. 나도 누군가에게 들었고. 다른 누군가도 누군가에게 들은 초입이다.
부드러운 흙을 손으로 한 줌 들어내고. 씨앗 위로 다시 흙을 놓는다. 이제 물을 뿌린다. 새싹이 돋아난다. 팔과 팔이 닿고. 언제고 언덕은 무성해진다. 세 개의 메추리알 중에서 한 마리가 부화했다. 어울리는 계절에 태어났다. 메추리는 높이보다는 온도에 더 민감했다.
마당에서 땀을 닦는다. 나무를 내리친다. 힘이 아닌 다른 걸 사용한다. 이젤을 세우고 얇은 연필로 그린다. 무릎이 넘어진다. 마당은 이미 무성하다. 다친 발끝으로 중심을 잡는다. 매일 눈을 뜨면 적는 첫 문장. 나를 위한 작은 울타리와 나를 위한 작은 나사못.
방 안에 사람이 가득 찬다. 시점을 바뀌면 어느새 텅 빈 집이 남는다. 흰색 창틀이 투명한 유리를 감싸안는다. 먼 것부터 작아진다. 가족과 가족이 만들어내는 부피. 경희의 스크랩은 잘 넘겨지지 않는다. 언제고 이 그림을 완성할 것이다.
이어지는 손과
도망가는 사람이
여전히 더운 고장의
높은 나무 벤치에 올라
경희는 그 고장의 춤을 춘다. 느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이유 없이 웃었고 쉽게 알아차렸다. 알고 보면 같은 고향 사람이다. 알고 보면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사람이다.
능소화가 뒤덮은 지붕 아래로
팽팽한 파이프가 뻗어간다.
경희는 바퀴가 달린 보행기 손잡이를 쥔다.
이 길은 너무 많이 변했다.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