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 시
옮긴이의 말
옮긴이의 말 공도이 너와 내가 찻잔의 둘레를 따라 걸을 때 그는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찻잔을. 테두리를. 싱싱한 꽃과 시들어가는 꽃이 한 줄기에 매달려 있는 장면을. 보았고. 안경 너머에서 보는 중이었고. 원반 형태로 뭉친 찻잎을 부술 때. 찻잔의 둘레를 따라. 찻잔만큼의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너와 나. 사이로. 찻잎이 날아오고. 찻잎이 쌓여가고. 찻잎 쌓인 길은 바스락대는 소리를 내고. 저기 좀 봐. 찻잔 너머로 날아가는 새를 가리키던 손……. 내가 새라면. 차라리 새였다면. 아마도 부드러울 너의 손을 낚아채 주머니 속으로 끌고 가버릴 수도 있겠지만. 찻잎이 우러나고. 방 안에 퍼져나가는 차의 향기를 맡으며. 그는 떠내려가고 있었다. 떠내려가면서 보았다. 화면 속에서 조금씩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검은 머리가 씻겨나가는 것을. 웃고 있는 백발의 노인. 줄지어 꽃다발을 안겨주던 손과 손. 꽃으로 뒤덮인 얼굴이 보이지 않고. 거기서 영상이 멈추었고. 고별 강연에서 마신 커피는 종이 맛이 났다. 서재에 넘쳐나는 종이들처럼. 불어나는 찻잎처럼. 그의 머릿속에는 왜 알고 있는지 모를 사실들이 가득했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알아서 어디에 쓰나 싶은 사실들. 찻잔 속에서 검은 찻잎의 영혼이 되살아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문득 깨달았다.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수십 년을 가르쳐놓고 알게 된 그 사실로부터 무엇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안경에 서린 김이 눈동자를 가렸기 때문에 표정이 지워진 얼굴로 그는 차를 마신다. 너와 나 사이로. 꽃잎이. 깃털이. 날아오기도 하고. 파쇄된 종이조각이 흩날리기도 하는. 찻잔의 둘레를 따라서. 찻잔이 그린 원을 돌면서. 우리는 어느새 거대한 찻잔 속에 앉아 있었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찻잔의 회전 속에서. 찻잔과 찻잔의 부딪침 속에서. 나의 체온과 너의 체온이 찰랑이는 찻물과 섞이며 흔들렸기 때문에. 찰나의 회전이 멈출 때까지 우리는 얼마간 같은 온도 안에 있었다. 여기까지는 화자의 말을 옮긴 것이다. 여기서 끝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지켜보는 동안에만 화자가 발생한다는 관점에서 잠시 벗어나 조금 더 말해보기로 한다. 나는 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들을 많이 알고 있다. 이를테면 카멜리아 시네신스가 차 나무의 학명이라는 사실. 9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면벽수행 하던 승려가 자꾸 내려앉는 눈꺼풀을 뜰에 던졌는데 거기서 향기가 감도는 나무가 자랐다는 이야기. 나는 이 시를 씀으로써 염소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시력이 몹시 나빠 안경을 벗으면 이 글씨들조차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염소가 나타난다면 이 시가 출력될 종이를 먹어 치우도록 내버려두겠지만 이 시는 아직 화면 속에 있다. 나는 가끔 내 시의 화자들이 자기들끼리 만나기도 하는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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