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 작성일 201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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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
변선우
이팝나무 두 그루 사이 ‘김’은 앉아 있다 온몸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 을 감각하다 눈 감는다 벤치가 편안해진다 나뭇가지가 쩍, 하는 소리와 흔들린다 비염 앓는 ‘김’은 재채기를 하려다 만다 눈물이 다소 흘러내리고 있으나 손수건으로 훔친다 이팝나무 꽃이 ‘김’의 정수리에 떨어진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결코
‘김’은 고양이 한 쌍을 본다 암수거나 아니어도 상관없는, 그 한 쌍이 고요하게 지나가는 걸 본다 적요를 등에 태우고 땅의 끝으로 향하는데, 아무도 모른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므로 이팝나무 꽃이 다시 한 번 정수리에 떨어진다 톡, 톡, 이팝나무가 소리 없이 우는 것이란다, 어느 서정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그사이 자전거 두 대가 지나갔고 노후한 봄과 가을이 얼굴 맞대고 떠나갔다 어쨌든 막, 떨어진 꽃이 정수리에 있던 꽃을 ‘김’의 무릎으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이건 중력이 요구한 일인가 정수리에 있었던, 사정을 무릎으로 옮겨 온다는 것에 대하여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김’은 가만히 앉아 대책이란 말을 씹고 있다 대책, 에서도 짠물이 배어나온다
하늘이 높아지거나 낮아지지 않았다 바뀐 건 없으므로 ‘김’은 벤치에 남겨진다 못의 계략에 빠진 듯, 벤치의 송곳니에 잔뜩 물려 있다 지나가는 걸 지나가는 것으로 가만 둘 일만 남는다 이팝나무 두 그루 사이 앉아 있는 ‘김’은 얼마나 버텼길래 여기까지 온 것인가 짐짓, ‘김’은 며칠 전 액자를 사지 않은 일에 대해 안도한다 사소한 고민이 ‘김’을 식탁처럼 조금씩 떼어 먹는다 비문에 빠지기 시작할 때 발끝으로 돌멩이 둘이 굴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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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선우
- 201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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