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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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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허공의 화법일 뿐이라고 바람이 중얼거리는 동안

   나뭇잎들이 품고 있던 여러 색깔의 감정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어제의 밤과 오늘의 낮이 뒤엉켜 잠들어 있는

   슬픔의 극지에서 붉은 등을 들고 있던 꿈들이 어두운 호흡 속으로 스미었다


   사건 속에서 새로운 이름을 얻은 사물들이 다른 표정을 짓는 시간 


   얽히고설켜 경계 없이 무한으로 펼쳐지는 

   종이의 심장에 기록한 낯선 행성의 유적들


   달과 별이 해석하지 못한 장문의 밤을 들여다본다

   흰 고양이가 검은 문장을 부수고 뛰쳐나갈 때까지


   조금씩 어둠의 틈새로 새어나오는 실금 같은 빛

   죽은 자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독백이라고 한다


   생각의 끄트머리로 처음 본 문자들이 두런두런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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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홍일표 가느다란 뼈만 남은 햇살 만지면 금방 부서질 것 같은 그의 얼굴에 어제가 없다 지난해의 아침과 지난해의 결심이 없다 눈을 감고 사라진 봄의 자세를 복원한다 오래된 네가 발음이 되지 않는다 햇살이 차례로 죽어가는 저녁이 되었다 나는 동굴처럼 조용해졌다 병실 밖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햇살 누군가의 유언 같아서 그가 여러 번 덜컥거리며 저녁에 닿는다 꿈속에서 죽은 사람에게 꽃 한 송이 건네받고 물로 돌아가는 피의 속도가 느려지던 날 몸을 벗고 공터를 어슬렁거리는 그림자 검은 꼬리를 흔들며 담장 너머로 멀어졌다 공터에 망초꽃 한 송이 불쑥 솟아올랐다 여름이 모르는 얼굴이라고 했다

  •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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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코끼리 홍일표 나는 멀어진다 여기서 점점 푸른 먼지들만 자욱한 곳 나는 몇 억 년을 걸어왔나 코끼리가 바닷가에 쓰러져 있어요 바다로 가다가 기진하여 쓰러진 울창한 밤 같아요 물방울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나도 몰래 젖는다 어디서 왔니? 원시인처럼 조심조심 걸어가 아이들을 바라보지만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여 나는 멀리서 온 희미한 그림자다 혼자 겨울 해변을 걸으며 어제는 어디로 갔나 어제가 있긴 있었나? 나는 머리 붉은 짐승을 만났나 마른 수숫대처럼 중얼거리다 눈앞의 코끼리를 본다 어둠으로 덮어 놓은 거대한 고분 같은 내가 한 말이 다시 귀에 들어와 죽는다 수억 년을 달려와 운석처럼 땅에 떨어진 말들이 부풀어 몸 밖에서 펄럭인다 코끼리가 코끼리 앞에 선다 내 말을 알아들을 것 같다 오래전 같은 말을 썼던 종족 같다 모래 무덤에서 나온 코끼리를 펼쳐 본다 페이지마다 여러 생을 걸어온 그늘의 터진 몸통이다 나는 돌아서서 다시 인간의 마을로 간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여 저녁의 변두리를 어슬렁거리겠지만 여전히 붉은 꽃잎 하나 적요의 곁불 쬐며 젖은 마음을 말리고 있겠지만

  •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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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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