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의 경제2 (1)
- 작성일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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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의 경제2 (1)
강동호
1.
일전에 나는 「문학의 경제학–문학적 ‘배움’과 ‘세대’에 관한 이론적 검토」라는 글에서, 문학의 자율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적 관점을 모색하기 위해 ‘문학의 경제’라는 다소 생경한 용어를 제안한 바 있다.1) 당시 내가 경제(economy)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문학 작품의 가치’(문학성)가 측정·평가·유통되는 과정을 ‘경제적 현상’에 비유했던 까닭은, 문학 작품을 생산·소비하는 데 관여하는 남다른 교환(exchange)의 원리 및 체계가 상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학 역시 경제적 교환의 대상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일면 낯설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적 교환은 시장에서의 행위를 지시하는 제한된 단어가 아니라, 특정한 ‘가치’(value)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다. “경제란 특정한 가치 위계 내부의 가치들을 거래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모든 사람에게 사회적 삶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문화는 그중 한 부분이다.”2) 누군가가 특정 행위를 시도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비용(cost)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요소(물론 이때의 비용은 금전적 비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가 따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주체에 의해 어떤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 행위의 선택을 통해 얻게 되는 가치의 편익이 지출된 비용보다 크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가치가 행위의 동기이자 목적이면서 동시에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가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거나 그에 대한 기대가 교환 주체 사이에서 어긋난다면, 거래는 즉각 중단되고 더 이상 유의미한 교환 행위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정한 가치를 거래하는 교환의 네트워크는 삶의 국면들에 광범위하게 편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환을 원활하게 하고 정당화하는 경제적 원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중이다.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상품 거래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일상에서의 대화, 사회적 의례의 실천, 문화적 재생산, 심지어는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행위에서도 우리는 특정한 가치들의 거래 현상, 즉 경제적 교환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2.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교환의 양태를 이해하고, 거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고유한 경제적 체제들을 변별하는 데 있다. 이를테면 욕망의 경제(프로이트), 선물의 경제(마르셀 모스), 숭고의 경제(리오타르), 구별의 경제(부르디외), 권력의 경제(푸코) 등과 같은 개념들은 인간의 다채로운 행위를 관통하는 경제적 논리가 정신분석학, 인류학, 미학, 사회학, 정치학 등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관측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는 문학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치들의 교환 행위를 가정해 볼 수 있다. 이때 관건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상품의 교환 원리와 구별되는, 문학의 경제를 작동시키는 독특한 교환의 원리를 해명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경제적 현상으로서 문학적 교환에 내포된 특수성을 교환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특이한 성격과 결부시킨 바 있다. 여기서 내가 제시하고 싶었던 가설은 문학적 교환이 매개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사실, 즉 문학적 교환의 자기 목적성이 상품 경제와 문학의 경제를 식별하는 결정적 차이 가운데 하나로 특정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그럴까? 일반적으로 상품 경제에서 교환은 상품을 소유하고 사용하기 위한 일시적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상품을 교환하는 과정과 그것을 사용하는 행위는 엄격히 분리되기 마련이다. 반면 문학에서의 교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문학적 교환은 상품으로서의 문학-책’을 구매함으로써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행위, 즉 독서라는 언어적 교환이라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문학의 경제에서 문학을 사용하는 행위는 텍스트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저자-독자’ 사이의 언어적 가치 교환과 중첩되어 있는데, 이 분리 불가능성이라는 사소한 차이야말로 상품과 문학을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요소로 지목될 수 있다. 문학에게는 상품의 가격처럼 그 가치를 대변하는 재현적 기호가 부재하며,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자산 형식으로서 소유될 수도 없다. 문학 텍스트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매개로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상호텍스트적 커뮤니케이션을 필요로 하며, 문학적 가치는 그와 같은 언어적 교환이라는 사용적 지평에서 사후적으로, 또는 수행적으로 입증되는 사건에 가깝다.
3.
이처럼 문학적 교환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문학의 가치를 탐구하는 경제적 시각의 이론적 편익은 무엇일까? 우선 교환에 초점을 두고 그것이 끼치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강조한다면, 문학성이 발생하는 원리를 과거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탐구해 볼 수 있다. 주지하듯 기존의 문학 이론은 문학성의 원천을 해명하고 그 토대가 되는 원리를 정초하기 위한 다양한 가설들을 제시한 바 있는데, 나는 그것들을 두 가지 패러다임으로 보다 단순하게 범주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무수히 많은 복잡한 이론들의 특징이 두 패러다임으로 깔끔하게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첫째는 문학의 가치를 대상(작품 또는 작가)에 내재되어 있는 실체로 전제하는 본질주의(essentialism)적 모델이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문학 작품의 가치를 대의하는 ‘문학성’은 객관적인 요소로 존재하며, 문학의 가치는 창조되고 발견되어야 할 실체로 설정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문학을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설정하면서 문학의 자율적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문학 이론·연구를 전문화하고 제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문학 이론의 역사에서 비교적 전통적인 입장에 가까운 이러한 시도들은 문학의 본질을 형이상학적인 가치로 신비화하는 한편, 문학에 대한 일종의 독단주의적 믿음을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두 번째는 문학에 대한 본질주의적 입장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문학의 가치를 철저히 역사적 산물로 파악하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적 모델이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문학성은 특정 시대에 만들어진 타율적 결과물이며, 문학 작품의 가치는 특수한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사회적 형성체로서 비판적으로 해부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좀 더 강조되고 이러한 현대적 관점은 문학의 가치를 객관적 실체가 아닌 주관주의적 편향의 결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가 빠질 수 있는 독단주의적 믿음을 경계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이와 같은 시각이 무비판적으로 실정화된다면, 문학의 타율성을 전면화하는 것을 넘어 문학이라는 장르를 관통하는 체재 내의 자율적 원리를 부정하고, 문학적 가치에 관한 유명론(nominalism)적 상대주의를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다.
문학의 경제학이라는 테마를 통해 내가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일종의 관계주의적(relationism) 모델의 복원이었다. 그것을 통해 문학의 역사성과 문학의 내재적 원리라는, 표면적으로 이율배반적인 두 층위를 매개할 수 있는 이론적 방법론을 다시 고민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학적 가치는 작품이나 작가라는 실체적 개체에 내재적으로 귀속되어 있는 것으로도, 특정 시대의 특정 독자들의 주관적 만족으로 부여될 수 외부적 구성물로도 한정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작가-작품-독자’로 구성된 언어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순환과 교류,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 논리를 이론적으로 전면화하는 일이다. 기존의 문학 이론에서 문학성은 창조·발견되거나 비판·해체되어야 할 것에 가깝지만, 문학의 경제학에서 문학의 가치는 창작·독서·감상·해석·분석 등의 행위 계열들로 구성된 문학적 교환을 통해 생산되고 소비되어야 하는 것으로 초점화될 수 있다. 관계주의적 관점에서 문학적 교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문학적 교환에 내포된 남다른 원리가 문학적 가치의 특수한 성격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원리 속에서 발생하는 문학적 가치의 역사적 변동 현상, 나아가서는 그 원리 자체의 체제적 변화 가능성까지도 탐구해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성이라는 느슨하고도 광범위한 개념은 특정 작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기호적 표현이자, 문학의 경제를 지탱하는 화폐 체제를 지시하는 어휘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4.
앞으로 이 글이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될 ‘새로움’이라는 개념은 문학의 경제 안에서 유통되는 문학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하위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특별한 위상과 비중을 차지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새로움은 현존하는 작품들 사이의 차이를 식별하는 어휘이자, 동시에 과거의 작품과 현재의 작품 사이에서 발생하는 비교 가능성을 표현하는 방법론적 개념이다. 그런가 하면 새로움은 문학적 가치 평가의 체제를 변화하도록 만드는 주요 동력 가운데 하나이다. 독자는 늘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기 마련이며, 비평은 무수히 많은 대상들 가운데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고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론적 방법과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새로움은 내가 앞서 말한 문학의 교환적 성격을 부각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문학 작품의 새로움이 온전히 객관적인 실체로도, 주관적인 구성물로도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른바 새로움은 문학의 관계적 특징을 전면화하는데, 이것은 문학적 새로움이 경제적 현상으로 분석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함축하고 있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창작자를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가치의 적극적 발신자로, 독자는 그 새로움을 알아보고 발견하는 가치의 수동적 수신자로 파악하는 데 익숙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새로움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교환 네트워크 안에서 창발(emergence)되는 것으로서, 양자의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수행적으로 상상·평가·공표되는 것이다. 이때 실천되는 행위들에 내포된 교환적 성격은 새로움이 경제적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이론적 계기를 제공하는 것 같다. 요컨대 새로움을 낳는 문화적 혁신은 과거적인 것과 현재적인 것 사이의 거래 및 교환으로 발생하는 가치의 변동을 함축하며, 그간 저평가되었던 세속적 요소들이 문화의 아카이브 내부로 수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경계의 변동을 지시하는 경제적 현상으로 묘사될 수 있다. 이처럼 문학적 새로움이 창발되는 과정을 경제적 현상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관통하는 경제적 논리를 탐구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기대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학의 새로움을 경제적 현상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문학적 가치 평가의 역사적 메커니즘을 가시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문학적 가치는 독립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쟁적 차이 속에서 산출되며, 따라서 새로움은 관계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으로서 항상 역사적 재평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문화적 아카이브의 필연성을 전제하고 있기에, 문학의 경제에서 새로움은 현실의 직접적 반영이라는 재현주의적 논리의 단순성을 피할 수 있다. 새로움은 저자에 의해 창조되거나 역사적 현실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아카이브와 현실 사이의 역동적 교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치의 재배치 현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새로움은 문학을 둘러싼 사회·역사적 힘들이 교차하는 장면을 부각시킬 수 있지만, 그것을 외부적 힘들의 영향의 결과로 환원시키지는 않는다. 셋째, 새로움이 갖는 제도적 성격과 그 기능적 역할을 가시화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이 새롭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객관적으로 새롭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적 기억 안에서 그 이질성이 인지되고 관측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움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기억에 기반한 비교 체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이러한 기억은 아카이브라는 이름의 제도적 체제를 통해 계승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문학에서의 제도는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장치 구조가 아니라 문학적 가치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기능적 요소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새로움은 제도에 대해 저항적이고 극단적인 경우 제도의 해체를 촉구하기도 하지만, 아카이브 없는 상태에서의 새로움은 발생하지 않는다. 새로움의 경제에서 아카이브는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이 대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넷째, 문학의 새로움을 문화의 영역과 현실의 영역 사이에서 발생하는 혁신적 교환의 결과로 이해하면, 새로움을 연대기적 발전의 내러티브가 아닌 보다 유동적인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상품의 새로움과 문학적 새로움을 구별하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상품의 새로움이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소멸하는 반면, 문학에서 과거의 새로움은 현재의 새로움에 의해 온전히 대체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낡은 것으로 평가되고 망각되었던 대상들이라 하더라도, 문화적 아카이브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교환 속에서 언제든지 새로운 것으로 복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학적 새로움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열린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문화적 기억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5.
그런데 새로움이라는 어휘가 문학 및 예술 작품의 가치를 조명하는 요소로서 그간 구가했던 위상과 별개로, 새로움이라는 가치 자체가 여전히 유효한지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의문들이 제기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 새로움이 직면하고 있는 동시대적 위기의 국면은, 예술적 새로움이 전통적으로 발휘하고 있던 저항적 효과의 유효성에 관한 회의적 질문을 촉구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우리가 새삼 강조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가 정교하게 진화·발전하는 과정에서, 그간 문화적 경제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새로움이 상품에 논리에 의해 포섭되고 장악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과연 문학과 예술의 새로움은 상품의 새로움과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것을 식별하도록 만드는 원리는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글에서 나는 새로움의 경제를 동시대적으로 재탐구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이론적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다소 길지만, 인용해 본다.
문화의 경제 층위에서 새로움을 틀에 박힌 슬로건, 무의미한 수사로 간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움과 젊음이라는 단어의 남용을 지적하는 일과 새로움의 사건을 알아보려는 노력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움을 자본과 상품의 논리로 치부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이 둘은 자주 혼동되고, 실제로 엄밀하게 구별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최첨단 상품들의 (가령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전혀 특별하지 않은 차이를 새로움으로 포장하고, 그로부터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거대 기업들을 빈번하게 목격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움의 가치에 대한 오리지널리티를 사업가들에게 넘겨줄 필요는 없다. 그것은 새로움이라는 문화의 논리가 상품 경제에 침투한 긍정적 현상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의 논리가 문화의 논리를 전용한 부정적 결과일 수 있다. 문제는 상품 경제에 의해 변용된 새로움의 이데올로기, 물리적·기능적 새로움을 중시하는 현재주의적 태도에 의해 문화의 경제가 잠식되는 경우다. 여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움의 역사적 저작권이 문화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저작권을 관철시키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다. 동시대 비평에 부과되는 새로운 과제는, 문화의 새로움과 상품의 새로움을 구체적으로 분별하는 방법과 원리를 사유하는 일이다. 이것은 대단히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이지만 문화의 자율적 경제를 사수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전해 볼 만한 과제이다.3)
최근 우리가 명료하게 목도하고 있는 새로움의 인플레이션 현상은 우리 시대가 미학적 자본주의(aesthetic capitalism)라는 또 다른 차원의 환경과 조건에 노출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징후이기도 하다.4) 상품 공급을 정당화하고 그로부터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시장이 새로움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전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움의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오늘날의 교착 상태와 딜레마를 더욱 전면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적 가치로서의 새로움이 더 이상 신뢰받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고, 나아가 문학적 새로움의 동시대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움을 매개로 형성된 문학(예술)과 상품의 관계를 다시 탐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이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전제는, 새로움 속에서 구축된 상품과 문학 사이의 친연적 관계를 당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문학의 상업화, 혹은 상업주의에 오염된 문학이라는 익숙한 프레임은 비난의 대상을 특정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 딜레마를 이론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그리 유용하지 않다. 요컨대 우리는 새로움을 시장의 경제적 교환 원리와 문화의 경제적 원리를 매개하는 접점이자, 동시에 둘 사이의 구분을 가능하게 하는 식별의 수행적 매개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 즉,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문학과 상품의 유사성이 새로움 속에서 형성될 수 있는 원리를 규명하고, 양자 사이의 불가피한 중첩 가능성의 메커니즘을 조명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원리에 대한 해명 속에서 상품의 새로움과 문학적 새로움 사이의 근본적 차이의 가능성을 다시 사유해 보는 것이다. 이것이 선행될 때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예술의 자본화, 혹은 상품의 미학화의 메커니즘의 구체적인 양태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질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글을 통해 이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시도해 볼 것이다.
1) 강동호, 「문학의 경제학―문학적 ‘배움’과 ‘세대’에 관한 이론적 검토」, 『문학과사회-하이픈(세대-배움)』, 2024년 봄호. 본 지면을 통해 전개될 글은 ‘새로움의 경제’를 이론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기획의 서론에 해당하며, 여기서 서술된 내용의 좀 더 구체화 된 버전은 위 인용된 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 보리스 그로이스, 『새로움에 대하여–문화경제학 시론』, 김남시 옮김, 현실문화, 2017, 20쪽.
3) 강동호, 「문학의 경제학」, 182~183쪽.
4) 최근 나는 예술의 새로움이 처한 동시대적 위기를 미학적 자본주의, 또는 자본주의의 미학화라는 프레임으로 검토한 바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지면을 통해 조만간 공개될 예정이다. 강동호, 「새로움의 경제–문학적 전위를 위한 이론적 검토」, 웹진 《비유》 3~4월호, 2025. (https://www.sfac.or.kr/literature/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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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4월 16일!!! 드라마보다 더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