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이라는 아이콘 1
- 작성일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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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이라는 아이콘 1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이한나
1. 1990년대, ‘깜찍한’ 등장
1990년대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잡지나 신문을 뒤적이다 보면 꼭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작은 인터뷰든, 신문 한 면을 다 차지하는 대기업의 광고든 ‘최진실’, 그녀의 이름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이에 따라 몇 계간지에선 ‘대중성’의 확산과 견제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던 이 무렵, ‘톱스타’ 최진실은 그 진중한 분위기와는 유리된 곳에서 한껏 포즈를 취한다. 대개 컬러로 인쇄된 그녀의 그 포즈를 바라보는 일은, 처음엔 호기심이었다가, 나중에는 한 번은 살펴보아야 할 책무로 남았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최진실을 CF 스타로서 발돋움하게 해 준 대사는 나도 어릴 적 들어 본 적이 있다. 90년대로 진입하기 직전, 통통 튀는 새댁의 모습을 한 그녀는 단숨에 “최진실 선풍”1)을 불러온다. 인기의 비결이 “누이 같고 딸같이 부담 없는 분위기를 귀엽게 보아준 결과”2)라고 일컬어지듯 최진실은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부담 없고 솔직하여 친근감 있는”3) 이미지로 만인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90년대 문화의 상징적 존재”인 “우리 시대의 스타”4), “구김살 없이 상큼한”5) 그녀는 일찍이 CF로 빚어 낸 외적인 이미지 외에도 한 PD의 발언을 보태면 “좋은 집안, 좋은 대학이 아니라도 건강하게, 제멋에 살아갈 수 있는 본보기를 마련한 인물”6)이었기에 선호된 것으로 보인다. 최진실이 답한 그 수많은 인터뷰를 따라 읽다 보면 그녀가 X세대, 오렌지족의 자유롭고 방탕한 생활과는 동떨어져 착실히 살아온 인물임이 재차 강조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섣불리 투기에도 나서지 않고 온 수입을 차곡차곡 저금하고 있는 모범적 인물로서 심지어 당시 주택은행장이었던 김재기와의 만남까지 추진되곤 한다.7)
특히 “깜찍함으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 스타”8)와 같이, ‘깜찍하다’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최진실의 옆에 꼭 붙어 있다. 아마 탤런트 중에서도 작은 그녀의 체구와 귀여운 언행들로 인해 불러들여졌을 이 말은, 동시에 최진실이라는 아이콘이 ‘깜찍함’을 경유하여 관통하고 있던 것은 과연 90년대의 무엇이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지게도 한다. 이를 찾기 위해 이 자리에서는 최진실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영화고 최진실 그대로 미영이 역을 기쁘고 편안하게 할 수 있었던 영화”라 밝힌, “최진실의 매력과 재능이 제 물을 만난 시네마 스페이스”9)였다고 일컬어지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를 돌아보고자 한다.
2. ‘즐겁고 유쾌한’ 신혼부부의 사랑 스케치―〈나의 사랑, 나의 신부〉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데뷔작 〈개그맨〉으로 평단의 주목을 끌었지만 흥행에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던 감독 이명세의 두 번째 영화 〈나의 나랑, 나의 신부〉는 1990년 12월, 개봉과 동시에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다. 상영 9일 만에 관객 5만 명을 가볍게 돌파하며 ‘빅히트 조짐’을 보인다.10) 비록 같은 시기 개봉한 할리우드 대작 〈사랑과 영혼〉 그리고 〈다이 하드 2〉에 밀려 1위를 점유하진 못하나, 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한국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한다. 미국 LA에서 개봉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11)
한 커플의 결혼 이야기를 담아낸 이 영화는 “박중훈과 최진실이 콤비를 이뤄 신혼생활을 통해 성숙해 가는 과정을 수채화처럼 곱게 그려 낸 러브 로망”12)으로 일컬어지며 이후 90년대 한국에 로맨스 영화 붐을 일으킨 작품으로서 언급되기도 한다. 애초에 관객층을 10대와 20대 초반으로 가능한 한 구체화하고, 이들에게 인기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배우 최진실과 박중훈을 기용하는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도 뒤따랐다.13)
일곱 개의 에피소드를 애니메이션을 이용하여 연결하는 구성 방식과 아름다운 세트 공간, 가벼우면서도 디테일한 인물들의 심리 묘사,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전개 등 아주 독특한 스타일의 코미디다. 출판사에 다니는 남편 영민과 그의 아내 미영의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처리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중장년층의 관객에게는 옛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젊은 관객들에겐 설레임과 웃음을 전달했다.14)
한국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감독 이명세를 ‘스타일리스트’로 쉽게 떠올릴 것이다. 화면의 구도는 말할 것도 없이, 배우의 표정, 배경의 색감, 소품의 각도까지도 아주 세밀하게 조정하는 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영화 전체를 여러 챕터로 면밀히 나누고, 군데군데 애니메이션 효과를 입혀내 작품이 독특하게 ‘설계된’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⓪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①남자와 여자가 만난다는 것은 ②I LOVE YOU ③SAD MOVIE ④남자란 무엇일까? ⑤첫사랑 ⑥남자와 여자 ⑦사랑이란?
에필로그를 포함해 총 8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주황빛 낙엽 가득한 공원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던 영민은 문득 제4의 벽을 뚫고 다가와 자신을 소개한다. 제 이름은 김영민이고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그리곤 대학교 연극 시간에 만나 반해 연애 중인 여자 친구 미영에게 드디어 결혼 고백을 하기로 정했다는 소식을 들뜬 목소리로 전한다. 그렇게 결혼식을 올린 영민과 미영은 부산으로 신혼여행을 떠나 알콩달콩한 모습을 선보인다.
어느덧 영민은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한다. 순탄한 나날만 이어질 것 같던 어느 날, 그는 카페에서 우연히 전 직장 상사를 만나 얘기 중인 미영이 전 애인을 몰래 만나는 것으로 오해하고는 방황한다. 질세라 직장 선배와 잠자리를 가지려던 영민은 저도 모르게 “사랑해 미영”을 내뱉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곤 기도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유혹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사랑해 미영.”.
이처럼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서로 바람을 피운 것 아니냐며 싸우다 화해하고(미영은 여기서 따귀를 날린다!), 문학상을 받아 들뜬 마음에 아내를 자꾸만 뒷전으로 해 다투다 화해하는 이들의 나날을 나열한다. 그리고 이윽고 십여 년이 지나 중견 소설가가 된 영민이 잠든 두 아들, 그리고 아내 미영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미소 짓다가 잠에 드는 것으로 끝이 난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평온한 멜로디와 함께.
한 신혼부부의 ‘위기’와 화해를 다루면서도 시종 발랄함을 잃지 않는 이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연이은 할리우드 대작 개봉에 밀려난 바람에 걱정에 휩싸였던 한국 영화계에 단비가 되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최진실에게도, 앞으로 기억에 남는 연기자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성패를 좌우하는 꽤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 것으로 보인다.15)
그렇다면 평론가들의 평가는 어땠을까? 영화가 개봉한 직후,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등장인물의 독백을 만화의 대사처럼 자막을 삽입하거나 애니메이션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참신하나, 에피소드와 대사들이 웃음만 자아내게 할 뿐 인생의 깊이를 담지 못하고 ‘소녀적 감수성’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쉽다는 평을 받는다.16) 그러나 아쉬움도 잠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각본상을 받는가 하면17), 대종상, 청룡영화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등에서 감독상을 휩쓴다. 최진실은 신인여우상 3관왕에 오르며 톱스타로서의 입지를 굳힌다.18)
꼼꼼한 설계자에 의해 그려진 이 영화는 과연 한 신혼부부가 소소하게 선사하는 훈훈함과 유쾌함만을 담고 있는 것일까? 최진실의 ‘깜찍함’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초 한국의 한 논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3. 주부의 ‘현장성’을 확대하는 일―그리고 ‘희극’과 ‘비극’ 사이
그녀를 CF 스타로 만들어 준 귀여운 새댁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속 최진실이 연기하는 인물 오미영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남편 회사 상사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쌓인 설거지를 하고, 또 상을 차리느라 우왕좌왕 분주하다. 소품팀의 정성이 녹아났을 노랑 주황빛 주방의 벽면에는 미영이 잡지에서 오려 붙인 음식의 레시피가 조각조각 붙어 있다. 물론 미영은 영화 제목에서 명시된 바대로 갓 결혼한 ‘신부’이지만, 2시간 남짓한 영화를 보다 보면 그녀가 점차 한 가정의 주부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알다시피 주부의 역사는 길고도 길다. 한편 그중에서도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개봉했던 1990년은 ‘주부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적극적으로 묻고 나선 시기였다는 점에서19), 영화를 ‘주부’라는 키워드와 더욱 연관하여 들여다보게 한다.
1990년 3월 11일 오후 12시, 여성주의 문화운동 무크지 《또 하나의 문화》에서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주부’라는 이름 아래 좌담을 연다.20) 열띤 논의 중 하나로, ‘주부’에 대한 인식이 ‘홈드레스를 입은 주부’와 ‘사회활동을 하는 주부’로 양분되어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집 안에서 마음 편안히 살림에 전념하는 여성과,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가정보다는 일에 몰두하는 여성, 이 두 모델이 뚜렷이 자리하기에 실제 주부들은 그들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피해의식에 젖어 있곤 한 것이 1990년대에 당도한 작금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좌담 참여자 중 한 사람인 조한혜정은, 그러므로 그 둘을 저울질하는 차원을 새로이 넘어서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부의 넓은 현장’이라는 좌담의 소주제는 이때 등장한다. 좌담의 참여자들은 주부가 ‘가정’ 혹은 ‘사회’ 둘 중 하나에 속해 있다는 인식에 갇히기보다, 직접 ‘주체적’으로 나서서 살림하던 이들이 현장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특히 “‘무엇으로의’ 해방”, 즉 단순히 가사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차원에서 만족하기보다, “나 자신으로의 삶”, “시민으로 살아야겠다”21)는 마음으로 줄곧 향하는 일을 가장 우선시해야 함을 강조한다. “주부가 자기가 되는 것, 주체성을 갖는다는 것”22)을 좁은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과 구분하며, 주부가 다른 주체들과 공동생활을 거쳐 ‘현장성’을 확대하는 일이 바로 지금 행해야 할 일이라 말한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고양되어 있고 주부들의 의식 수준 또한 높아진 현재, 주부 관련 교육기관도 꽃꽂이, 등공예, 수영 등 취미 교실의 역할만을 하던 것에서 벗어나 “주부들의 건강한 삶”을 교육하고 ”‘소비자 운동’, ‘학부모 운동’ 등 “주부 운동”23)을 수행하는 장소로 변화하였다는 사실을 공유한다. 가정에 고립돼 작년 자살한 주부의 경우를 언급하며 주부가 자아 위기에 고이지 않을 공동의 토대가 점차 마련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더 축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1990년 봄에 대두된다.
다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감독 이명세가 당시 진행한 인터뷰를 찾아보는 일은 긴요하다.
“〈개그맨〉, 〈나의 사랑···〉은 모두 비극입니다. 그래서 관객들이 비극의 실체를 잘 볼 수 있도록 직선적인 표현보다는 우회적으로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진리란 아픈 눈을 찌르는 밝은 빛’이란 말처럼, 찌르긴 찔러야 하지만 바로 찌를 수는 없지요. 외면당하고, 거부당하기 쉬우니까요. 결국 관객에게 얘기를 잘 전달해 주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했을 뿐입니다.”
“〈나의 사랑···〉이 비극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비극입니까?” (···)
“사랑한다는 말 뒤편에 드리워진 그림자 같은 거 말입니다. 결국 유령을 만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껍데기는 여기 있지만 영혼은 어디에 가 있는 건지. 결국 동상이몽이지요. (···) 같이 웃고, 이야기하고 마주 보고 앉아 있지만, 서로의 생각은 수백, 수천 리 다른 길을 향하고 있지요. 이것이 비극 아닙니까? (···)
우리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것에서 때로 자유와 행복 등의 실체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그러니 ‘내가 왜 이것을 느끼지’ 생각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월이 흐른 뒤, 문득 감추어진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전 이 부분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24)
개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황당하게도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비극’이라 말한다. 인터뷰어가 순간 되물을 정도로, 그때 누가 보아도 희극이라 여기고 즐거워했을 이 작품을 두고 감독 스스로는 비극이라 명명한다. 물론 바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창작자의 의도를 강하게 의식하며 텍스트를 읽어 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감독의 이 발언은 어째서 이 영화가 그림자를 품은 ‘비극’인지를 새삼 고민케 하며, 따라서 바로 방금 살펴본 1990년 초 존재했던 문제적 의식을 이 영화와 연관해 보도록 이끈다.
어째서 비극인가? 당대뿐만 아니라 2025년 지금도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한 작품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는 지금, 감독의 말을 가만히 곁에 두고 영화를 다시 시청하는 일은 평온한 그 기억을 뒤흔든다.
다시 영화를 보자.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설명했듯 굉장히 섬세하게 직조된 영화로 정평이 나 있다.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주문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소는 어디까지만 지어라, 안경은 손 모양을 어떻게 해서 올려라”25), 라고 밝힐 정도로 감독 이명세는 이 영화의 그 무엇도 허투루 매만지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지점을 염두에 두었을 때, 눈에 띄는 것은 미영이 집을 떠나고야 만 장면이다. 밀린 빨래를 널고 나서 한참을 결혼식 사진과 영상을 들춰 보던 미영은, 집주인 아주머니로부터 눈 밑에 기미가 생긴 것 아니냐는 소리와 함께 남편 영민이 바람을 피는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훌쩍 집을 떠난다. 영화의 대부분이 미색으로 잘 칠해진 세트장 안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미영은 집을 나선다. 영화는 조금 지루하리만치 오래도록 미영이 버스를 타고 집 ‘바깥’으로 향하는 장면을 천천히 비춘다.
영화의 주 타깃층이기도 했던 10~20대 관객들은, 아마 이 장면 전까진 결혼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며 지금의 시선으로 보아도 아기자기 예쁘게 잘 꾸며진 신혼 방에 눈이 즐거이 익숙해져 있을 테다. 그러나 바로 이 장면에서 영화는 관객의 계속된 기대를 저버린다. 미영이 당도한 이곳은, 시멘트도 발리지 않은 흙바닥에 난닝구 차림의 소년이 호스로 물을 뿌려 군데군데 흙탕물이 고여 있고, 낡은 가게의 간판은 페인트도 다 떨어져 손수 글씨를 새겨 적은 모양새인 까닭이다. 이 장소에서, 미영을 연기하는 최진실은 화면 코 앞까지 성큼 다가와 잠시 망연한 표정을 짓는다.
땡땡이 원피스를 입고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을 미영은 곧이어 이 ‘바깥’을 걷는다. 무슨 일인지 미영은 그곳에서 새끼손가락으로 막걸리를 콕 찍어 먹어 보기도 하고, 혼자 사진관에서 사진도 찍고, 다방에 들어가 콜록대며 담배도 조금 피워 본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다방 마담이 다가와 스카웃을 하려 들 때 미영의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이 챕터는 종결된다. 미영은, 귀가한다. 요컨대 당시 주부에게 요청된 ‘현장성’을 확대하지 못한 (작은) 체념이 거기엔 있다.26)
4. 최진실의 ‘부재하는’ 힘
내가 내 삶과 더불어 어디에 도달하려는지 그 누가 말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어느새 나이 서른을 훌쩍 넘은 가장이 되었다. 그사이 난 조그만 집도 장만하였고 사회에서도 알아주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해 겨울 이후에도 미영과 나는 줄곧 싸웠고 사랑한다는 말도 수없이 반복했다. 요즘 나는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아내가 잠이 든 후면 몰래 서재에 들어가 아내의 사진첩을 보곤 한다. 그곳에는 겨우 일곱 살인 나의 신부가 예쁜 리본을 매고 웃고 있다.
나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어린 날 허공을 향해 쏜 화살이 오랜 시간이 흘러 친구의 마음속에 찾아지듯이 먼 후일이면 알게 될는지.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상술했듯 성공한 소설가로서 중년을 맞이한 영민이 잠든 두 아이와 미영을 내려다보고 한껏 미소 짓다가 잠에 드는 것으로 끝이 난다. 위와 같은 영민의 내레이션이 이때 흘러든다. 작가 앙드레 지드의 이름을 헷갈리고 가스 불도 잘 안 끄는 ‘부주의한 여자’를 아내로 거두고 사는 인물을 옮겨 낸 (자전적) 소설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해 문단에 자리를 잡은 그는,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없다며, 아내가 줄곧 나의 귀여운 ‘신부’로 남아 주길 바라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 결말부 속 미영의 모습이다. 여기서 미영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그 천진한 귀여움, ‘신부’의 깜찍함이 당연한 듯 영속돼 작품이 완결되어야 하는 그 순간에 최진실의 표정은 없다. 그 ‘부재’의 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존재력을 과시하는 힘만이 배우의 능력은 아니다. 침묵의 단단한 힘처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도 역설하는 바가 있는 까닭이다. 결말부 바로 정확한 그 순간, 최진실은 그것이 연출의 영향이든 본인의 선택이든 상관없이, 얼굴을 ‘감춤으로써’ 당대 ‘신부’에서 ‘주부’가 되어 버린 이들, 특히 중산층 주부가 밤늦게 지었을 표정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 둔다. 거의 영화 내내 화면을 채워 내던 최진실의 깜찍함이 돌연 맨 마지막에 자취를 감춤으로써, 역설적으로 ‘귀여움’, ‘깜찍함’으로 감싸여 있던, 담론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끝내 진입하지 못한 이의 어두운 윤곽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최진실을 한국의 1990년대를 대표하는 톱스타로 만든 CF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말로 회자된 이 짧은 영상은 삼성전자 VTR의 광고이다. 최진실의 정확한 대사는 “남편 퇴근 시간은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로, 이는 많은 문화 평론가들에 의해 남편을 보필하는 수동적 여성상을 양산하는 구호로서 비판받기도 했다. 당연히 그러한 의심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이 CF를 찬찬히 보면, 그간 주목하지 않은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두 화면을 동시에 본다. 삼성 VTR 톱스타!”라는 외침으로 끝나는 이 CF가 광고하는 것은 TV 채널을 시청하면서, 현재 보고 있지 않은 다른 채널까지 작은 화면을 띄워 녹화할 수 있도록 하는 VTR의 신기능이다. 다시 이 CF를 보면, 한낮에 좋아하는 영화를 따로 실컷 보다가, 남편이 퇴근하자 그가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인내심을 갖고 녹화해 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최진실이 있다. 그러고 나서 등장하는 것이 최진실의 그 유명한 멘트이다. 그녀의 멘트 부분만이 편집돼, 남편만을 위하는 순종적 여성을 표상한 것으로 여겨지곤 하나, 재차 이 영상을 보면 거기엔 되바라진 그녀가 있다.
‘깜찍하다’는 말은 사전적으로 ‘몸집이나 생김새가 작고 귀엽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 밑엔 ‘생각보다 태도나 행동이 영악하다’는 뜻도 존재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이가, 그렇게 ‘보이도록’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CF로 돌아가 보면, ‘주부’ 최진실이 따로 시청한 영화가 다름 아닌 〈에어플레인〉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1980년 개봉한 이 코미디 영화는 ‘패러디 영화’로 유명하다. 지금 세대에게는 〈무서운 영화〉 시리즈로 익숙할, 패러디 영화의 시초가 되는 이 작품은 〈카사블랑카〉(1947),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 등 수많은 고전을 인용하며 그 진중함을 우습게 만든다. 정리하자면 패러디의, 웃으며 관습을 공략하는 성질은 최진실의 ‘깜찍함’의 한편에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깜찍한’ 배우의 몸짓, 정확히는 표정/표정 없음의 이면을 따라 1990년대 한국 사회를 독해하는 일은, 지금도 어디선가 이어지고 있을 ‘되바라진’ 여성이 실제 무엇과 연관되어 있는지, 그 계보를 짚어 내는 데 유효해 보인다. 이때 ‘깜찍하다’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바를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쁘고 귀여운 배우보다는 꼭 있어야 할 배우가 되겠어요. 그리고 건강한 생활인도 겸비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제 마음을 스스로 가다듬어야지요”27)라는 최진실의 발언은 그녀가 ‘귀여움’, ‘깜찍함’ 다음의, ‘꼭 있어야 할’ 무엇을 상연하는 단계로까지 영역을 확장했을 것임을 예감케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지면에서 이야기할 예정이다.
1) 〈최진실 “선풍”〉, 《경향신문》, 1991.4.25.
2) 위의 글.
3) 〈‘따라할 수 없는’ 독창적인 재주꾼〉, 《스크린》 107호, 1993.1, 201쪽.
4) 〈90년대 스타 신드롬〉, 《스크린》 123호, 1994.5, 171쪽.
5) 〈영화배우 최진실 구김살 없이 상큼한 “신데렐라”〉, 《경향신문》, 1993.10.23.
6) 〈(스타 스토리)톱 탤런트 5인 어려웠던 소녀가장 시절〉, 《여성동아》 34권 6호, 1995.6, 347쪽.
7) 〈(스페셜 대담)‘저축의 날’ 대통령상 받은 탤런트 최진실과 주택은행장 김재기 ‘돈 모으는 비결’〉, 위의 책, 204쪽.
8) 〈깜찍함으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 스타〉, 《스크린》 121호, 1994.3, 268쪽.
9) 〈끝없이 신화를 창조하는 신데렐라―최진실의 시네마 라이프〉, 《스크린》 109호, 1993.3, 175쪽.
10)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빅히트 조짐 “이변”〉, 《매일경제》, 1991.1.8.
11) 미국 교민들에게까지 영화의 입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LA의 교민노인회관 건립 기금 마련을 이유로 2주간 7백석 규모의 월샤포스트극장에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절찬리에 상영된다. 최진실과 박중훈이 이곳에서 직접 팬 사인회를 열기도 한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LA 개봉〉, 《동아일보》, 1991.3.29.
12) 〈외화 물결 속 방화(邦畫)―‘나의 사랑, 나의 신부’ 흥행 수입 “짭짤”〉, 《경향신문》, 1991.1.9.
13) 이명희, 〈신혼부부가 겪는 ‘작은 전쟁’의 얘기〉, 《영화》 135호, 1991.3, 101쪽.
14) 〈깜찍함으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 스타〉, 앞의 글, 268쪽.
15) “내용도 좋고 배역도 마음에 든 데다, 함께 공연한 박중훈 오빠와 호흡이 잘 맞아 대만족이에요 (···) 세 번째 출연한 영화인데 왠지 데뷔 작품처럼 떨려요.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에 내려질 평가가 제가 영화배우로 성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기준이 될 것 같은 생각도 들곤 해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촬영 마친 최진실 인터뷰〉, 《조선일보》, 1990.11.30.
16) 김종원, 〈‘나의 사랑, 나의 신부’―동화처럼 엮은 ‘사랑의 모자이크’〉, 《동아일보》, 1991.1.11.
17) 각본상 수상 이유로는 ‘오리지널 시나리오’이며, “보는 사람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는 점이 꼽혔다. 〈순탄했던 영평상 심사〉, 《조선일보》, 1991.11.29.
18)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 평론가협 최고작품상〉, 《한겨레》, 1991.11.27.
19) ‘가정에 대한 이중 기준’ 등을 짚으며 미국 가정주부의 사회상을 날카롭게 진단한 책인 레이 안드레의 《가정주부》(1983)도 바로 이 시기 직전 번역되어 한국에서 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레이 안드레, 《가정주부》, 한국여성개발원 역, 한국여성개발원, 1987; Rae André, Homemakers: The Forgotten Worker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3.
20) 조혜정 외, 〈(좌담)새로운 시대, 새로운 주부〉, 《주부, 그 막힘과 트임―또 하나의 문화 제6호》, 또 하나의 문화, 1990.
21) 위의 글, 26쪽.
22) 위의 글, 33쪽.
23) 위의 글, 36쪽.
24) 신영희 인터뷰, 〈(이명세 감독/‘나의 사랑, 나의 신부’)인간의 이중성에 바쳐진 어느 몽상가의 보고서〉, 《스크린》 84호, 1991.2, 210쪽.
25) 위의 글, 211쪽.
26) 덧붙여 “올드 팝송을 즐겨 쓴 음악 역시 우회적 표현의 장치”(위의 글, 211쪽)임을 시인한 감독 이명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다름 아닌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1963)와 〈새드 무비즈(Sad Movies)〉(1961)를 삽입한다. 알다시피 ‘워싱턴 스퀘어’는 광장의 바깥에서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느끼는 쓸쓸한 정조를, ‘새드 무비즈’는 슬픔을 ‘감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27) 〈현역감독 4인 추천―최진실〉, 《스크린》 71호, 1990.1,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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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을 위한 유희사라짐을 위한 유희 —황유원론1) 오경진 그는 불안에서 도망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불안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불안을 사랑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불안에서 도망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밤의 해변에서 저기, 꿈(夢·몽)과 환상(幻·환)을 물거품(泡·포)과 그림자(影·영)로 새겨넣으려는 시인이 있다. 나직한 그의 목소리가 파도에 떠밀리듯 들려온다. 잠깐 여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죽어도 된다 우린 그날 저승처럼 컴컴한 해변에 앉아 있다가 안전요원들의 눈을 피해 하나둘 밤바다로 뛰어들었지 … 잠들면 안 돼! 우린 여기서 밤새 놀다 가야 하니까 어차피 죽음을 삶에 좀 섞어보는 거다 그 역(逆)이 아니라 … 내가 더 이상 해변에서 잠들지 않으므로 간혹 해변이 내 곁으로 와 쓰러져 잠드는 밤이 있고 그런 밤이면 몰래 자리에서 일어나 어둔 밤의 해변을 홀로 거닐기도 했다 젖은 모래 위에 如, 夢, 幻, 泡, 影 손끝으로 한 자 한 자 써보며 꿈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다는 말 또 그림자 같다는 말을 문신처럼 새겨넣었다 우리 조금만 더 죽자 진짜 죽음이 있기 전에 하고 기도하던 밤이 있었다 「여몽환포영」 부분, 『초자연적 3D 프린팅』 “문신”(文身)처럼 새겨넣은 그것은 “어둔 밤의 해변”의 “젖은 모래 위” 하나의 형상으로 기록돼 있다. 결국에는 지워지고 사라질 글쓰기. 꿈이 그렇듯, 허깨비가 그렇듯, 물거품이 그렇듯, 그림자가 그렇듯. 어른거리다가 없어지는 것. ‘있음’으로 피어올랐다가 ‘없음’으로 되돌아가는 것. “죽음을 삶에 좀 섞어보는” 것. 설령 그것이 진짜 문신이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몸은 어차피 스러지는 것, 몰락하는 것, 죽는 것. “진짜 죽음”이 오면 그것 역시 꿈처럼 허깨비처럼 물거품처럼 잊힐 것이다. 그러면 시 쓰기는 다 무엇일까. 저 『금강경』의 마지막 게송조차도 결국 망각의 무로 돌아갈 것인데, 그 게송으로 시를 지어봤자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삶은 “저승처럼 컴컴한” 해변을 거니는 것과 같고, 시 쓰기는 어차피 파도가 들이쳐 지워 없어질 모래 위에 “여몽환포영” 하고 한 자씩 새겨 넣어보는 일이다. 세계의 무상(無常) 속에 스러질 것, 그것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사는 절대적인 무(無) 앞에 선 인간의 운명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불안을 사랑하는 우리는 불안에서 도망치고자 한다. 우리는 불안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불안을 사랑한다. 불안의 포로인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시를 짓는다. 문학을 한다. “불안은 가능성에 앞선 가능성으로서의 자유의 현실성이다.”2) 무(無)에서 시작되어 무(無)로 흩어
- 오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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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에 대처하는 화자들불운에 대처하는 화자들 배민정 한때 유행했던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라는 말은 개인이나 집단 차원에서 발생한 ‘불운한 사건들’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키워드였다. 마음에 드는 이성은 꼭 짝이 있고, 오랜만에 찾은 목욕탕은 정기 휴일이라는 식의 노랫말1)처럼 불운은 개인의 일상 속 ‘재수 없는 우연’에서부터, 갑작스레 발생하는 사회적 재난, 전염병, 범죄까지 아우른다. 이런 예기치 못한 불운을 맞닥뜨렸을 때, 개인이나 집단은 늘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해왔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원인을 규정함으로써 고통을 위로받고, 같은 불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러한 사건들을 문제화하고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특정 장치들을 동원한다. 가령 불운의 원인으로 초자연적 힘을 내세워 단숨에 공동체의 균열을 봉합하는 것이 ‘주술’이라면, ‘신정론(神正論)’은 사건의 원인을 사회 구조와 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해 집단의 성찰과 개혁을 도모한다. 한편, ‘보험’은 사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추궁하기보다 피해 손익 측정과 보상 계약을 통해 신속한 사후 처리를 꾀한다.2) 이처럼 정치는 예상치 못한 불운을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다양한 통치 기술을 활용한다. 서로 다른 해법이 경합하는 정치의 장에서 시스템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대중의 공포는 통제되고,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 또한 제도적 일상 안으로 안착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이 겪는 상실감과 두려움은 어떤 제도적 규범이나 보상금으로도 온전히 메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가 불운한 사건을 공적으로 의미화하여 체제의 정상화를 선언할 때, 문학은 그 수면 아래 방치된 개인의 실존적 문제들을 끌어안으면서 정치의 공백과 마주한다. 이 공백 안에서, 크고 작은 불운에 빠진 시적 화자들은 그 불행을 계기 삼아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현실 구조를 감지하고, 새로운 주체화의 순간을 경험한다. 즉 화자들에게 있어 불운은 역설적으로 체제에 길들여진 존재들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주체화의 과정인 셈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불운의 대처법을 통해 제도화될 수 없는 고통이 시적 언어로 복원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 한 남자가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들어선다.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거울을 바라보는데, 어라, 뭔가 이상하다. 남자는 그동안 자신이 남들보다 적은 이발비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왜 자신만 만 원을 받느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다. “숱이 없어서 금방 한다고.”(민구, 「거울 속의 신」,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아침달, 2021) 개인의 의지나 노력 바깥에서 마주하는 원치 않는 상황을 ‘불운’이라 한다면, 이 시의 화자는 불운한 사람이 맞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호감 가는 외모 조건 중에 적은 머
- 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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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에시스, 오토포이에시스, 심포이에시스 (2)이은지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6년 6월부터 2026년 8월까지 로 3회 연재됩니다. 포이에시스, 오토포이에시스, 심포이에시스 (2) 이은지 1. 인간됨의 성찰에서 자동화된 소외로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인간됨을 기술 환경과의 연관 속에서 조정하며 견인해왔다. 타자기 이전에, 손글씨 이전에,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도구이자 기술이었던 언어의 발생에서부터 그러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가 1772년 발표한 논문 는 당대 철학계의 주류 담론이었던 언어의 신적 기원론과 동물적 기원론을 모두 부정하며 신과도 동물과도 무관한 인간 고유의 성질로부터 언어가 유래했음을 증명한다. 자신이 태어난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고정된 본능을 발현하며 살아가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그러한 본능이 ‘결핍’되어 있다. 그러나 본능이 결핍되어 있다는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각인된 본능의 맹목적인 발현으로 벌집을 짓는 벌이나 거미줄을 치는 거미와 달리 인간은 “동물의 기술적인 능력에 뒤처져” 있기에 오히려 “자신을 비추어 볼 영역을 찾을 수 있고, 자신 속에서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게 된다.”1) 종의 본능에 따른 반응이 아닌, 각각의 고유한 개체가 세계에 대해 갖는 느낌을 표현하고 또 표상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언어를 탄생시킨다. 자기 외부의 대상을 식별하고, 사물과 사물을 구분 짓고, 이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여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인간이 된다. 세계와 사물에 대한 자아의 경계를 확정하고 그러한 자아로 이루어진 타자와의 집단적, 사회적 교류를 형성하며 그로부터 습득한 것들을 세대를 이어 전수함으로써 인간은 더욱 인간이 된다. 언어를 매개로 하여 발현되는 이러한 인간됨의 사슬은 동물적 본능과 달리 고정되지 않는다. “구분을 많이 짓고 그것들을 서로 정돈할수록 그의 언어는 더 정돈”2)되며, “언어의 지속적인 형성” 속에서 “삶의 모든 상태는 성찰을 통해 발전적인 통일체가 된다.”3) 즉 인간에 의해 발명된 언어가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대상으로 머물지 않고 인간을 거듭 새롭게 발전시키며 인간의 일부이자 핵심적인 본질을 형성하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할수록 인간의 인간됨이 발전하는 한편, 언어 또한 고도화된다. “모든 기술은 생성에 관련”4)된다고 했을 때 이는 언제나 기술 자신에도 해당한다. 기술은 자신이 투여된 대상 혹은 영역에서의 생성과 더불어 기술 자신에서의 생성 또한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무한히 순환하며 어딘가로 계속해서 나아간다. “기술과 그 기술을 적용시키는 인간 사이에는 하나의 복잡한 피드백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의식은 변화된 기술을 요청하고, 변화된 기술은 그 의식을 변화시킨다.&r
- 이은지
-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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