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뒤의 설계자, 또는 조언자 ‘북디자이너’
- 작성일 2025-08-01
- 댓글수 0
[문장서포터즈]
활자 뒤의 설계자, 또는 조언자 ‘북디자이너’
―홍선우 북디자이너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2기 김성호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 하면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 다소 가려져 있는 존재는 바로 북디자이너일 것이다. 책의 판권 면에 작가와 편집자만 기재되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북디자이너와 마케터 등 말 그대로 책을 ‘만들고’ 온전히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힘쓴 모든 사람들이 대체로 기재되는 편이지만.
나는 북디자이너가 책의 외형을 만들고, 꾸미고, 문자 그대로 독자들에게 가닿는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동시에 활자 뒤에서 소리 없이 책을 설계하는 설계자라고도. 그러던 차에 이번 문장 웹진 지면을 빌려 평소 친분이 있던 자음과모음 출판사 북디자이너이자 독립 출판을 시도하는 홍선우 디자이너와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Q: 평어로 인터뷰를 하는 것도 처음이고, 북디자이너를 실제로 만나는 것도 처음이라서 조금 떨리네. 너는 어때?
A: 나도 평어로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이야(웃음).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도 이번 기회에 이렇게 대화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Q: 먼저 자신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줄 수 있어?
A: 자기를 소개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내가 어디에서 일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나의 일부분이니까, 그걸로만 나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북디자이너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인터뷰니까 일단 북디자이너라고 소개할 수 있겠네.

홍선우 북디자이너의 대표작 1 (『할도』,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Q: 내가 인터뷰 제목을 지을 때 북디자이너를 활자 뒤의 설계자라고 명명했는데, 어떻게 생각해? 공감하는 편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A: 활자 뒤의 설계자라는 표현이 참 멋있어. 다만, 내가 실무에서 느낀 걸 토대로 생각해 보면 설계라는 표현에 조금 독단적인 뉘앙스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선 정정이 필요할 듯해. 작가와 편집자, 마케터, 일러스트레이터 등 여러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책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북디자이너 혼자 설계해 나가는 과정은 아니라고 느껴.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내가 뭔가를 설계한다고 한들, 언제나 그 의도대로 독자들이 읽어 주진 않는다는 점이야.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자유롭기도 하고, 일방적이지 않아서 좋아.
Q: 좋아, 활자 뒤의 설계자라고 이름을 지었을 때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구나. 독자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너도 알다시피 요즘은 텍스트힙이라고 해서 책에 주목하는 현상이 있기도 해. 그럴 때 표지에 이끌려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단 말이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A: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책을 미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반감이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접근이 조금 우려스럽기도 해‧‧‧. 그 이유는, 획일적인 미의 기준이 생겨나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어떤 스타일의 일러스트를 쓴 책이 잘 팔리면, 다른 출판사에서 그와 유사한 일러스트를 사용한다든가, 동일 작가와 계약한다든가 해서 비슷한 표지가 양산되지. 예쁜 표지에 열광하는 경향이 어떻게 보면 되게 천편일률적인 북디자인을 낳게 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또 요즘에는 북디자인에 쓰는 일러스트의 퀄리티가 상향평준화된 느낌이야. 그래서 새롭고 독창적이기 더욱 힘들어지는 것 같고.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Q: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사실 나도 어떤 힐링 소설류의 표지가 유행하면서 그와 유사한 표지들이 많아졌다고 느꼈거든. 맞아, 생각해 보니 너의 디자인 철학이 궁금해지네. 책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거라든가, 원칙이나 기준 같은 게 있을까?
A: 나도 이 일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 철학이 있다고 하기엔 어려운 것 같아. 하지만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하면서 나만의 철학이 생기면 좋겠고, 철학을 정립해 나가고 싶어. 지금 가진 생각이 철학이라고 하긴 좀 거창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지금 내 수준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걸 얘기해 볼게.
일단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내 뜻대로만은 할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해. 나보다 경험이 더 많은 상사들의 의견에 방점이 찍힐 때도 있고, 유명 작가의 책 같은 경우엔 작가의 의견에 힘이 실리는 경우가 있고, 임원진의 의견에 의해 작업이 결정되기도 하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결정하는 게 많지 않을 때도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키고 싶은 원칙은 최선을 다하자는 것.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최대한 부딪혀 보는 것. 그게 사실 안 될 것 같아도 한 번 더 의견을 얘기해 보는 용기를 가지는 일인데, 말처럼 쉽지는 않아. 왜냐하면 컨펌이 될 것 같은 안전한 디자인을 하고 싶은 생각도 왕왕 들기 때문이야. 그리고 내 디자인이 거절당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기 때문인데, 앞으로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해 볼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고 싶어. 너무 많은 책들이 세상에 나오고 너무 빨리 잊히는 게 현실이야. 그런데 그 글의 작가들은 책을 낸다는 게 되게 귀하고 소중한 경험이잖아? 매년 낼 수 있는 작가는 드물지.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작가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
Q: 최선을 다하는 것‧‧‧ 나는 소설을 쓰는데, 언젠가 책을 내게 된다면 너같이 글 쓴 작가를 생각해 주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고마울 것 같아. 다음으로 궁금한 건데, 너는 그렇게 해서 완성된 책 표지를 보고 독자들이 무엇을 알아주거나 느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
A: 독자들은 독서라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만의 이미지를 그리고, 자신만의 의미를 가질 것이기 때문에, 나는 독자들에게 기대하는 건 사실 그다지 많지 않아. 작업을 할 때 독자를 염두에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 왜냐하면 독자라는 집단은 가정된 상상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것 그려지는 것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야. 결국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건 불가능하고 모든 독자를 만족시키는 북디자인도 없기 때문이야. 그런 걸 의식하면 할수록 디자인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고. 그래서 나는 좀 더 자신을 믿고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홍선우 북디자이너의 대표작 2 (『도깨비 섬』, 『수호신』)
Q: 그렇구나. 그런 소신이 있다면 독자들에게도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아, 그리고 듣기로는 독립 출판에도 생각이나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 독립 출판과 인하우스(회사 소속) 디자인의 차이가 뭘까?
A: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회사에 소속돼서 회사의 색깔에 맞춰서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많아. 그리고 책 자체 외에도 홍보물 등 회사 내부에 필요한 디자인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 그리고 행정적인 일들(페이퍼 워크나 자료 아카이빙, 백업 등)도 하기 때문에 디자인 그 자체보다도 앞서 말한 일들에 시간을 쏟게 되기도 해. 그리고 회사의 상품을 만드는 것에 가까워서, 실험적인 시도는 회사의 허용 범위 안에서 구상해야 하고.
반면 독립 출판의 경우에는 형식적으로 굉장히 자유롭고 실험적인 시도 역시도 예산만 된다면 마음껏 할 수 있어. 그래서 매력적이기도 한데, 동시에 위태롭기도 해. 독립 출판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한테 가닿기가 힘든 게 현실이야. 자본의 차이에 의해서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나 여력도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는 독립 출판에서만 시도할 수 있는 독창적인 컨셉의 디자인들이 오히려 상업 출판의 외연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독립 출판이 지속되면 좋겠어. 그런 다채로운 시도로 인해서 재밌는 책들이 많이 나오면 좋기도 하고.
Q: 그렇게 다르기도 하구나. 나도 독립 서점을 몇 번 가봤지만, 확실히 대형 출판사의 북디자인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였어. 인터뷰하기 전에 네가 작업한 책들을 봤어. 그중에 대표작 몇 개를 골라 소개해 줄 수 있을까?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생각해도 되고.
A: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직 없는 듯해. 지금까지 했던 책 중에 내가 가장 잘했다고 느껴지는 건 없는 것 같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금씩 아쉬운 점들이 있어. 어느 정도 일정한 퀄리티를 내는 게 프로일 텐데 나는 좀 기복이 있는 것 같아서 아직은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해.
Q: 뜬금없지만, 책이 뭐라고 생각해?
A: 책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게 책을 물신화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래서 너무 휘황찬란한 대답은 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말해 보자면, 내게 책이란, 포기할 수 없는 것!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책이 진짜 싫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품에 안고 나아가고 싶어.

홍선우 북디자이너의 작업 환경
Q: 북디자인을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가 있을까?
A: 음, 아무래도 원고라고 얘기할 수 밖에 없지만, 너무 원고에만 갇히는 것도 재미있지는 않은 것 같아. 문학책 같은 경우에 일러스트를 사용한 표지가 많기 때문에 그 일러스트와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정리를 하자면, 원고를 먼저 고려하고, 원고에 맞는 디자인을 하려고 하지. 근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정석적인 방법론에 의문이 있기도 해. 북디자인이 원고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만 할까?
원고를 충실하게 반영한다는 건 원고에 종속되는 것이기도 해서, 묘한 위계 같은 게 생겨나는 듯하고,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 위계가 생기는 게 나는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봐. 그런 관계보다 이미지는 이미지만의 힘을 통해 텍스트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는 게 더 재밌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거든.
Q: 그렇구나. 원고와 텍스트의 관계가 흥미로워. 음, 아무래도 시간과 지면상 마무리할 때가 됐네.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혹시 있을까? 또는 앞으로의 자신에 대한 다짐 같은 것도 좋아.
A: 일단 경험, 그러니까 다양한 원고를 읽거나 여러 분야 책의 디자인을 하고 싶어. 그렇게 성장하고 싶고. 그리고 개인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는데, 생각이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게 노력을 해 봐야겠지?
Q: 이런 인터뷰가 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거나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어. 인터뷰 소감을 짧게 말해 줄 수 있어?
A: 평소에 둥둥 떠다니던 생각을 정리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말로 정리하면서 아,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구나, 새삼 돌아보게 돼서 좋았어. 그리고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 지금까지 해 오면서 지치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는데 그것이 꽤나 보람차게 느껴지는 순간인 듯해 정말 감사한 마음이야.
인터뷰는 즐겁고 내내 건강한 열정이 넘쳐흘렀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거나 또는 잊고 있었던 북디자이너라는 존재와 그 세계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며, 이만 나는 또 다른 책을 집어 든 채 판권 면을 살피면서 책이 내게 와닿기까지의 길에 피어난 그네들의 땀과 힘을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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