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는 문학이 될 수 있을까
- 작성일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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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서포터즈]
도슨트는 문학이 될 수 있을까
문장서포터즈 2기 김소리
우리는 해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와 사람을 연결하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각국의 작품을 언어로 재해석하여 비로소 ‘읽을’ 수 있게 된다. 상상해 보자. 전시회장의 수많은 작품들은 비언어적으로 표현되지만, 도슨트를 통해 비로소 언어적으로 완성된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언어로 재해석하는 연결고리 속에서, 문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흐름을 짚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우리를 바꾸는 다섯 가지 대화〉 전시회를 관람하고 왔다.

전시는 총 다섯 가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슨트에 따르면 이 공간은 “‘언어적 차이’가 만들어 내는 틈이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채움으로 변화하는” 순간을 발견하기 위한 곳이다. 다른 체험형 전시와 달리 언어는 만질 수도 없다. 재미있는 ‘놀이‘ 같은 체험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상상과 달리 언어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언어를 만질 수 없다는 인식에 스스로 가두고 있던 것이 아닐까? 여기, 언어를 직접 보고 만지고 만들 수 있는 갖가지 체험의 현장이 존재한다.


같은 작품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는 다르다. 〈백개의 눈〉과 〈목소리의 형태〉는 이러한 의도 아래, 같은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각각 언어와 조형물로 표현하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전시함으로써 작품이 재해석되는 순간을 완성 시킨다. 이 과정에서 재해석은 언어로 표현될 수도, 다른 작품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반드시 언어적 표현 방식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 작품을 보고 나만의 언어 또는 문학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3차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앞선 코너에서 작품을 짧은 문장과 조형물로 재해석하는 체험을 했다면, 이번에는 나만의 ‘언어’로 새롭게 써 내려간다. 〈연결된 세계〉에서는 수많은 단어 카드 중 3장을 랜덤으로 골라 그 감정을 활용하여 나만의 일기를 쓰는 것이 목적인데, 하필이면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기란 나만의 감정과 일상을 오롯이 나의 감상만으로 쓸 수 있는 글이다. 어떠한 가공도 필요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꾸밀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솔직한 감정을 쓸 때 머뭇거리기도 한다. 정제되지 않은 나만의 것. 그것은 스스로에게조차 보여 주기 싫은 감정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단어 카드를 활용해 문장을 만들게 했다는 점이 해당 코너의 주안점이라고 보았다. 단어 카드에 빗댄 나의 감정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것도 아닌 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든 작가는 더 솔직해질 수 있으며, 직접적으로 탐구해 보지 않은 감정까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일기로 시작한 감정이 세계를 이루는 감각과 비스듬히 연결되어 만나는 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발견. 모든 문학은 이러한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이쯤 되면 이 전시는 단순히 작품 전시가 아니라 ‘나’를 찾는 여행 중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스코어〉는 스트레칭 동작을 천천히 진행하면서 몸 관절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감각을 체험시켜 준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단순한 활동에서 얻을 수 있다. 걷는 행위, 팔을 들어 올리는 행위, 발목을 꺾는 행위‧‧‧.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타자를 치고, 책을 펼치고, 머리를 쥐어짜며 새로운 창작 요소를 생각해 내고‧‧‧. 이런 사소한 행위들이 비로소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
이어서 이어지는 코너는 〈이어 쓰는 글〉로, 전시회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필자는 이 코너가 마지막에 위치해 있어서 더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글쓰기는 철저히 개인적인 활동인 동시에 공유함으로써 함께하는 감각을 완성 시키기 때문이다. 앞서 다른 네 가지 코너에서 ‘나’에 대한 사유를 확장 시켰다면, 이번에는 필사로써 모든 감각을 갈무리한다. 그리고 앞서 느꼈던 감정을 문학 작품과 연관해 다시 한번 ‘재생’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위의 모든 체험은 다섯 가지의 작품에 앞서 첨부되어 있는 도슨트를 먼저 읽고 진행했다. 비언어적 작품이더라도 도슨트를 통해 더 깊이 있는 해석을 할 수 있으며, 나만의 사유를 확장할 수도 있다. 필자는 ‘문학적’이라는 말이 단순히 문학에만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의 사유를 확장하고,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가는 모든 형태가 문학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도슨트 또한 문학이 필요한 역할 중 일부를 수행한다고 느낀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시를 기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필자는 함께 전시를 관람한 문예창작과 학우와 함께 각자 마음에 드는 문장 카드를 선택하고, 이에 연관된 문학 작품의 일부를 발췌했다. 다음은 각자 선택한 문학 작품의 일부 내용이다.
황홀하다(김소리) / 장수양 시인 「작은 글」 중 발췌
잠들기 전에는 가슴을 씻어야 한다. 얼룩을 헤아리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난 그 일을 잘 안다. 모르는 얼룩은 새로운 씻는 방법을 요구한다. 미처 지우지 못하고 잠들면 나쁜 일이 벌어진다. 나는 쥐구멍만큼 작은 꿈을 그 얼룩에게 소개해 준다. 너에게 내어줄 곳이 마땅치 않아. 어떤 공간은 머무는 것만으로 고단하여 잠이 들지. 그러나, 매회 선물 같진 않을 거야.
(‧‧‧)
무서워하는 일은 쉽다
무소유는 불가능하다
웃음을 가질 것이다
너의 것이든, 나의 것이든
그건 작아도 정말 좋을 거야
쓸쓸하다(문학 친구A) / 최영미 시인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중 발췌
내게 일어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그처럼 여러 번 곱씹은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자위 끝의 허망한 한 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
반드시 전시회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언어들을 통해서도 감각을 확장할 수 있다. 오늘 당신의 단어 카드는 무엇인가? 그 단어들로 어떤 문장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문장은 또 어떤 문학 작품과 닿아, 당신의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까? 이제는 마음껏, 나만의 언어로 세계를 확장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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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서포터즈] 2025년에 시작되어 1기 '몽글'에 이어, 2기 '쓰담' 6명이 새롭게 선정되었습니다.자신의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문장의 든든한 서포터들과 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기획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문장서포터즈가 담아낸 마음을 쓰다듬는 이야기들을 문장웹진 '모색'에서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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